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3권 공생활 둘째해(상)

하사시 3권 p223~p237 [177.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시다. 178. 그분을 따르기를 원하시는 세 사람을 만나시다. 179.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Skyblue fiat 2025. 3. 25. 10:19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3권 공생활 둘째 해 1  p223~p237

 

177.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시다

1945. 6. 2.

예수께서는 시골로부터 카파르나움으로 들어오신다. 열두 제자만이, 아니 요한은 여기 없으니 열 한 제자만이 예수와 함께 있다. 사람들의 일상적인 인사들은 그 표현이 아주 다양한데, 어린이들의 아주 단순한 인사에서부터 약간 수줍은 여자들의 인사, 기적적으로 치유된 사람들의 황홀한 인사, 호기심을 나타내거나 빈정거리는 인사에 이르기까지 온갖 형태가 있다. 모든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다양하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답례하시는데, 사람들이 그분께 어떻게 인사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답례하신다. 그분께서는 어린이들은 쓰다듬어주시고, 여자들에게는 축복하시고, 기적적으로 고쳐진 사람들에게는 미소 지으시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깊은 경의로 답례하신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생각하기에 읍내의 백부장으로 보이는 사람의 인사가 합쳐져 인사의 다양성이 완결된다. 그가 그분께 인사드린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오시기를.”

이 만남의 결과를 보려고 군중이 다가오는 동안에 백부장이 말을 잇는다.

“저는 여러 날 동안 당신을 기다려왔습니다. 저는 산 위에서 당신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 가운데 있었는데, 당신께서는 저를 알아보지 못하셨겠지요. 저는 민간인 복장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당신께서는 제가 왜 거기 갔었는지 저에게 묻지 않으시겠습니까?”

“나는 그것을 묻지는 않겠습니다만,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저희는 모임들을 개최하는 사람들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외관상으로는 정직한 모임들을 허가한 것을 로마가 후회했던 적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을 뵙고, 당신의 말씀을 듣고, 당신을 생각하기를 마치… 마치…

주님, 저는 병든 하인 한 사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뼈의 병으로 인하여 마비되어 제 집의 자기 침대에 누워 있는데, 몹시 고통스러워합니다. 저희의 의사들은 그를 고치지 못합니다. 저는 당신의 동족 의사들을 청했습니다만, 그들은 저희에게 오기를 거절했습니다. 그 병은 이 지방의 부패한 공기로 인한 병이라 이곳 의사들이 물이 바다의 모래에 스며들기 전에 고여 있는 바닷가의 열이 있는 땅에서 자라는 풀로 그 병을 치료할 줄 알기 때문에 저는 그들을 청했었습니다. 앓고 있는 사람이 충실한 하인이기 때문에 저는 대단히 안타깝습니다.”

“내가 가서 그를 고쳐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나의 주님. 저는 그 모든 수고를 당신께 끼쳐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보시기에는 부정한 이교도일 뿐입니다. 만일 유다인 의사들이 제 집에 옴으로써 오염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신성하신 당신을 오염시키는 훨씬 더 큰 이유가 될 것입니다. 저에게는 당신을 제 집에 모실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다스리시니 여기서 한 말씀만 하셔도 그가 나을 것입니다. 저는 카이사르를 위시한 많은 권위자들의 수하에 있기 때문에 명령받은 대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한편 저도 제 밑에 있는 병사들에게 명령할 수 있어서 제가 한 병사에게 ‘가라’ 하면 가고, 다른 병사에게 ‘오너라’ 하면 오고, 하인에게 ‘이것을 해라’ 하고 말하면 제가 말하는 대로 합니다. 당신께서는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니(as You are Who You are), 병은 즉시 당신께 복종하여 물러갈 것입니다.”

“그런데 병은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반대하신다.

“당신께서도 보통사람(a man)이 아니시고, 바로 그분(the Man)이십니다. 그러므로 당신께서는 원소들과 열병들에게도 명령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의 능력에 복종하니까요.”

카파르나움의 몇 명의 유력자들이 예수를 따로 불러 그분께 말한다.

“저 사람은 로마인이지만, 그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저 사람은 저희를 존중하고 도와주는 정직한 사람이니까요. 저 사람이 저희의 회당을 지어주고, 자기의 병사들에게 엄명하여 안식일에 저희를 비웃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생각해주십시오. 그러니 당신의 도시를 위하여 저 사람에게 그 은혜를 베풀어주시어 그가 실망한 나머지 화나지 않게 해주시고, 저희에 대한 그의 애정이 미움으로 변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의 말을 들으신 다음에 미소 지으시며 백부장에게 돌아서시면서 말씀하신다.

“앞장서시오. 나는 당신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다시 한 번 말한다.

“아닙니다, 나의 주님. 제가 당신께 말씀드린 것처럼 당신께서 제 집에 들어오신다면 저에게는 큰 영광이겠지만, 저에게는 그렇게 많은 것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한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제 하인은 나을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가시오. 바로 이 순간 열병이 그를 떠나고 있고, 생명이 그의 사지들로 흘러 돌아오고 있습니다. 당신의 영혼에도 생명이 들어오도록 애쓰시오. 가보시오.”

백부장은 군대식 경례를 한 다음 몸을 굽혀 인사하고 나서 물러간다.

예수께서는 그가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시다가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돌아서서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나는 이스라엘에서 저만한 믿음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오! 참으로 그렇습니다! ‘어둠 속에서 걸어가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깊은 그늘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큰 빛이 비추었다.’

그리고 이런 말도 있습니다. ‘메시아는 민족들 위에 자기의 기를 높이 들어 그들을 한데 모을 것이다.’ 오! 내 나라! 정녕 무수한 사람들이 너에게 흘러들어올 것이다! 미디안과 에파의 모든 쌍봉낙타와 단봉낙타들보다, 스바의 금과 향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보다, 케다르의 모든 양떼와 느바욧의 숫양들보다 너에게 오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고, 바다의 모든 사람들과 민족들의 부가 나에게 오는 것을 보고 내 마음은 기쁨으로 환호할 것이다.59) 이사60,6―7)

섬들이 나를 흠숭하려고 나를 기다리고 있고, 외국인들의 자녀들이 내 교회(My Church)의 벽들을 쌓을 것이며, 내 교회의 문들은 항상 열려 있어 왕들과 민족들의 부를 받아들여 내 안에서 그들을 거룩하게 할 것이다. 이사야가 본 것이 실현될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동쪽과 서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자리에 앉을 것이고, 반면에 나라의 자녀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져 눈물 흘리고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께서는 이방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들과 동등해질 것이라고 예언하시는 것입니까?”

“동등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높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탓이니 여러분은 후회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내가 아니라 예언자들이 그렇게 말하는데, 표징들은 이미 그것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 중 몇 사람이 백부장의 집에 가서 그 로마인의 믿음에 합당하게 그의 하인의 병이 고쳐진 것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갑시다. 아마 집에는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병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몇몇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분께서 카파르나움에 계실 때 머무시는 집을 향하여 발길을 돌리신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호기심에 이끌려 큰 소리로 떠들며 백부장의 집을 향하여 서둘러간다.



178. 그분을 따르기를 원하는 세 사람을 만나시다

1945. 6. 3.

나는 예수께서 아직 여기 없는 요한을 제외한 열 한 사도들과 함께 호숫가를 향하여 걸어가시는 것을 본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데,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산 위에 있었던 사람들이고 대다수가 남자들인데, 다시 한 번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카파르나움으로 그분을 찾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분을 붙잡으려 한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말씀하신다.

“나는 모든 사람의 것입니다. 나를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돌아올 테니, 그때 나에게로 오시오. 그러나 지금은 내가 가게 해주시오.”

그분께서는 좁은 길에 운집해 있는 군중을 뚫고 나가시느라 매우 고생하신다. 사도들은 그분께서 지나가실 공간을 만드느라고 그들의 양팔로 사람들을 밀친다. 그러나 그것은 누르자마자 다시 튀어나오는 스폰지를 누르는 것과 같다. 그들은 화내보기도 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다.

그들이 격렬한 몸싸움 끝에 호수가 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 세련된 외모의 중년남자 한 명이 선생님께 다가와서 그분의 주의를 끌기 위하여 그분의 어깨를 건드린다.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걸음을 멈추시며 물으신다.

“당신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저는 율법학자입니다만, 저희의 가르침들은 당신의 말씀과는 모든 면에서 비교가 안 됩니다. 저는 당신의 말씀에 매혹되어 있습니다. 선생님, 저는 당신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어디로 가시든 당신을 따라가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어느 길로 가고 계십니까?"

“하늘로 가는 길로요.”

“제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라 지금 당신께서는 어디로 가고 계시냐고 여쭙는 것입니다. 이 집 말고는 어느 집들로 가야 제가 항상 당신을 만나 뵐 수 있겠습니까?”

“여우들도 굴들을 가지고 있고, 공중의 새들도 둥지들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자기의 머리를 둘 곳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이 내 집입니다. 가르쳐야 할 영혼들이 있고, 위로해주어야 할 불행이 있고, 구속해야 할 죄인들이 있는 곳마다 내 집입니다.”

“결국 모든 곳이라는 말씀이군요.”

“당신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스라엘의 박사인 당신이 이 단순한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하는 것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는 희생, 순종,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 모든 것과 모든 사람들에게 적응하는 생각이 요구됩니다. 순응(compliance)은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치료해주기를 원하는 사람은 모든 상처에 몸을 숙여야 하니까요. 나중에는 하늘나라의 깨끗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진흙 속에 있는데, 우리는 우리가 걷고 있는 이 진흙에서 이미 그 안에 빠져 들어가 있는 희생자들을 빼내야 합니다. 우리는 옷을 걷어 올려도 안 되고, 바로 옆은 진창이 더 깊기 때문에 옆으로 비켜서도 안 됩니다. 깨끗함은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다른 어떤 것도 더 이상 들어올 수 없도록 우리는 깨끗함에 배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까?”

“적어도 제가 시도해보게 해주십시오.”

“해보세요. 나는 당신이 성공할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다시 길을 가기 시작하신다. 그러다가 그분의 일행이 지나가게 하려고 걸음을 멈춘 채 서 있는, 그들과 다른 방향으로 가려는 것처럼 보이는 키 크고 튼튼한 청년이 그분을 응시하는 두 눈을 주목하시며 말씀하신다.

“나를 따라오시오.”

젊은이는 깜짝 놀라 안색이 변하고 빛에 눈이 부신 것처럼 눈을 깜박인다. 그 다음에 그는 말하려고 입을 벌리지만, 대답할 말을 찾아내지 못한다. 마침내 그가 말한다.

“저는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아버지가 코라진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저는 그분의 장례를 치러야 합니다. 저는 그 일을 마친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나를 따라오시오. 죽은 사람들의 장례는 그들의 죽은 사람들에게 맡기시오. 당신은 이미 생명에 이끌렸소. 당신 스스로 그것을 바라기도 했소. 생명(Life)이 당신을 제자삼기 위하여 당신의 주위에 열어놓은 틈으로 인하여 울지 마시오.

애정의 단절은 진리(Truth)의 종이 된 사람에게서 돋아나는 날개들의 뿌리요. 부패는 그것 자신의 운명에 맡기시오. 부패가 없는 나라를 향하여 올라가시오. 당신은 거기서 당신의 아버지의 썩지 않는 진주도 만나게 될 것이오.

하느님께서는 부르시고, 지나가시오. 내일 당신은 더 이상 오늘의 당신의 마음이나 하느님의 초대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오. 오시오.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전하시오.”

그 사람은 낮은 담에 기대서서 자기의 양팔을 늘어뜨린 채로 있다. 그는 두 개의 보따리들을 들고 있는데, 그 안에는 향료들과 붕대들이 가득 들어 있다. 그는 머리를 숙인 채 두 가지 사랑, 즉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자기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예수께서는 기다리시며 그를 바라보신다. 그분께서는 그러다가 한 어린이를 붙들어 그분의 가슴에 껴안으시며 말씀하신다.

“나와 함께 기도해라. ‘오, 아버지, 저는 당신을 찬미하오며, 인생의 안개 속에서 우는 사람들을 위하여 당신의 빛을 청합니다.

오, 아버지, 저는 당신을 찬미하오며, 부축 받을 필요가 있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당신의 힘을 청합니다.

오, 아버지, 저는 당신을 찬미하오며, 비록 그들이 믿지 못하지만 그들은 여기서와 하늘에서 당신 안에서 자신들의 모든 선을 얻을 수 있을 터이므로 사람들에게 당신 자신이 아닌 모든 것을 잊게 해줄 당신의 사랑을 청합니다.’”

그러자 네 살 가량의 무구한 소년은 두 손을 기도하는 자세로 모아 예수의 오른손에 붙잡힌 채 그의 맑은 목소리로 거룩한 말씀을 되풀이한다. 예수께서는 아이의 포동포동한 손목을 두 송이의 꽃인 양 잡고 계신다.

그는 결심한다. 그는 두 개의 보따리들을 자기의 동료에게 주고 예수께로 온다. 그분께서는 어린이에게 강복하시고 땅에 내려놓으신 다음 젊은이의 양어깨를 껴안으시고, 그의 용기를 북돋아주고 그의 노력을 부축해주시려고 그 자세로 그와 나란히 걸어가신다.

다른 사람이 그분께 묻는다.

“저도 당신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만, 당신을 따르기 전에 제 부모님께 하직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예수께서는 그를 응시하시다가 대답하신다.

“당신의 인간존재 안에는 너무 많은 뿌리들이 있소. 그것들을 뿌리 뽑으시오. 만일 당신이 그것들을 뽑을 수 없다면, 그것들을 잘라버리시오.하느님을 섬기려고 오는 사람은 영혼의 자유를 가지고 와야 하오. 자기를 바치는 사람은 끈들을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하오.”

“살과 피는 항상 살과 피입니다! 저는 당신께서 언급하시는 자유에 천천히 다가가겠습니다…”

“아니오, 당신은 결코 거기에 이르지 못할 것이오. 하느님께서는 상 주시는 데 있어 무한히 너그러우신 것만큼 까다로우시기도 하오. 만일 당신이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십자가를 껴안고 나를 따라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그는 평신자로 남아 있게 되오.

하느님의 종의 길에는 장미꽃잎들이 깔려 있지 않소. 그리고 그 길의 요구는 절대적이오. 마음 밭의 고랑을 내고 거기에 하느님의 가르침의 씨를 뿌리려고 쟁기에 손을 댄 사람은 누구도 자기가 두고 온 것, 자기가 잃어버린 것, 자기가 다른 평범한 길을 따라갔다면 얻을 수도 있었을 것을 보려고 뒤돌아보아서는 안 되오. 그렇게 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에 적합하지 않소. 당신 스스로 노력하시오. 스스로 씩씩하게 되시오. 그 다음에 오시오. 지금은 아니오.”

그들은 호숫가에 도착한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배에 오르시며 그에게 몇 마디 속삭이신다. 나는 예수께서 미소 지으시고, 베드로가 감탄하는 듯한 몸짓을 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예수를 따르기 위하여 자기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가지 않은 사람도 그 배에 오른다.



179.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1945. 6. 4.

예수께서는 나에게 요르단 강의 경로, 다시 말하면 요르단 강이 티베리아스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하구, 즉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볼 때 강의 우안 벳사이다 읍내가 있는 곳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신다.

“요즈음 읍내는 더 이상 호숫가에 있는 것 같지 않고, 약간 내륙처럼 보인다. 이로 인하여 학자들이 혼란스러워한다. 그 설명은 20세기 동안 강물이 흘러내려 벳사이다의 야산들로부터의 충적토와 돌들이 퇴적됨에 따라 호수의 이 부분이 메워졌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

그때 벳사이다 읍내는 정확히 하구에 있었고, 작은 배들은 특히 강물의 수면이 더 높은 계절에는 코라진까지 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또한 강 자체는 호수에 돌풍이 부는 날에는 언제나 벳사이다의 배들의 포구와 피난처로 사용되었다.
나는 이것을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까다로운 박사들을 위하여 말한다. 그럼 이제 계속하자.”

사도들의 배들은 카파르나움에서부터 벳사이다까지의 짧은 거리를 운항한 다음 벳사이다에 닻을 내린다. 다른 배들도 그들을 따라와 거기서 많은 사람이 내려 선생님께 인사드리려고 벳사이다에서 온 사람들과 합류한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집으로 들어가시는데, 그의 아내는 다시 거기 와 있다. 나는 그녀가 자기의 남편에 대한 자기의 어머니의 끊임없는 불평을 듣기보다는 차라리 혼자 있는 편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목청껏 선생님을 부른다. 베드로는 그것에 몹시 신경이 거슬려 참다못해 옥상으로 올라가 동향인들에게 선생님께 경의를 표하고, 예의를 지키라고 열변을 토한다. 자기 집에 그분을 모신 지금 그는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을 조용히 즐기고 싶은데, 이와는 반대로 그가 아내에게 가져오라고 말한 수많은 물건 중에서 꿀물 약간조차 그분께 드릴 시간과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 그래서 그는 투덜댄다…

예수께서는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이시고 그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신다.

“너는 네가 나를 전혀 보지 못하다가 우연히 방금 만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구나!”

“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을 때 당신과 제가 언제 함께 있습니까? 당신의 생전에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당신과 저 사이에는 병자들과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과 당신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과 구경꾼들, 중상자들, 원수들과 함께 세상이 있지, 당신과 저는 결코 함께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침 오늘 당신께서는 저와 함께 여기 제 집에 와 계십니다. 그러니 저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정말로 화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차이를 모르겠구나, 시몬아. 내 사랑은 똑같고, 내 말도 똑같다. 내가 너에게 개인적으로 말하든, 모든 사람에게 말하든 거기에 무슨 차이가 있느냐?”

그러자 베드로는 자기의 큰 걱정거리를 털어놓는다.

“문제는 제가 돌대가리이고, 제 정신은 쉽게 산만해진다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광장에서, 산 위에서, 많은 군중 앞에서 말씀하실 때 저는 다 알아듣는데도,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제가 제 동료들에게도 그렇게 말했더니 그들은 제 말이 맞는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 즉 당신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당신의 말씀을 알아듣고,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기억합니다. 저희는 누군가가 ‘당신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저는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라든가 ‘언젠가 당신께서 이러저러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제가 듣고 제가 감명을 받았기 때문에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얼마나 많이 들었습니까!

반면에 저희는… 흠! 흘러가버리고 멈추지 않는 강물과 같습니다. 강기슭에는 흘러간 물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른 물이 오고, 많이 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가고, 지나가고, 또 지나갑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생각하며 몹시 두려워합니다. 만일 당신께서 말씀하시듯이 더 이상 당신께서 계시면서 강과 같은 역할을 해주시지 않는 순간이 올 때… 저는… 만일 제가 당신께서 저에게 주시는 많은 것 중 한 방울도 간직할 수 없다면, 제가 목마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도들도 베드로의 탄식을 지지하며, 그들도 자기들에게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대답하려고 모든 것을 기억하려고 해도 자기들이 듣는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불평한다.
예수께서는 미소 지으시며 대답하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너희에게도 매우 만족하고 있다…”

“물론… 그렇겠지요! 저희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는요! 팔꿈치로 인파를 헤치며 나아가 당신께 빈 공간을 마련해드리는 일, 병자들을 운반하는 일, 헌금을 거두는 일, 그리고 ‘예, 저분께서 선생님이십니다!’ 하고 말하는 것 따위에 대해서는 말입니다. 대단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시몬아, 너 자신을 너무 비하하지 마라.”

“저는 저를 낮추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압니다.”

“그것은 가장 어려운 지혜이다. 그러나 나는 너의 큰 두려움을 없애주고 싶다. 내가 말하는데, 너희가 모든 것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기억할 수 없을 때 나를 지겹게 하거나 실망시킬까봐 두려워하지 말고 나에게 물어보아라.

우리는 항상 우리끼리만 있는 시간이 있는데, 그럴 때 너희는 너희의 마음을 나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 나는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많은 것을 준다. 그러니 하느님께서도 더 사랑하시지 못할 만큼 내가 사랑하는 너희에게 내가 무엇인들 주지 않겠느냐?

너는 강기슭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흘러가는 물결들에 대하여 말했다. 모든 물결이 씨앗 하나씩을 두고 갔고, 그 모든 씨앗들로부터 한 그루씩의 나무가 자라났다는 것을 네가 깨닫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너는 모든 경우들에 꽃들과 나무들을 네 앞에 가지게 될 것이고, 그래서 너 자신에 대하여 놀라며 말할 것이다.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해주셨는가?’
왜냐하면 그때 너는 죄의 속박에서 구속되었을 것이고, 지금의 네 성덕들이 완전의 큰 높이에 도달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주님, 당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는 당신의 말씀을 믿고 안심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가자. 따라오너라. 여인이여, 당신에게 평화. 오늘 저녁에 나는 당신의 손님이 되겠습니다.”

그들이 밖으로 나온 다음에 예수께서는 군중에게 시달리시는 것을 피하여 곧바로 호수를 향하여 가신다. 베드로는 예수의 목소리가 모든 사람에게 들릴 수 있게, 그러나 그분과 청중 사이에 약간의 간격이 있게 하려고 서둘러 배를 호숫가에서 몇 미터 가량 떨어뜨린다.

“나는 카파르나움에서 이리로 오며 여러분에게 말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있었던 사건들에서 하나의 단서를 포착했습니다.

여러분은 세 사람이 나에게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은 자발적으로 왔고, 두 번째 사람은 내가 권해서 왔고, 세 번째 사람은 갑작스런 열정으로 인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내가 세 사람 중 두 사람만을 받은 것도 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혹시 내가 세 번째 사람을 배신자라고 생각하여 그랬을까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준비되어 있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외양만을 본다면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려고 가고 있던 여기 내 곁에 있는 이 사람이 가장 덜 준비된 것처럼 보였습니다만, 사실은 가장 덜 준비된 사람은 세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여기 있는 이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잘 준비되어 참으로 영웅적인 희생을 바칠 줄을 알았습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데 있어 영웅적 행위(heroism)는 항상 강한 영적 준비의 증거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내 주위에서 일어난 어떤 놀랄 만한 사건들을 설명해줍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가장 잘 준비된 사람들은 그들의 파당이나 교육정도가 어떻든 절대적인 신속함과 믿음을 가지고 나에게 옵니다. 덜 준비된 사람들은 나를 예외적인 사람으로 생각하며 지켜보거나 경계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나를 살펴보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비난하며 나를 공격하고, 중상합니다. 행동의 이 상이한 태도들은 영혼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정도에 비례합니다.

성조들과 예언자들이 애타게 기다렸던 메시아, 마침내 와 있는 메시아, 모든 예언된 표징들이 선행하거나 함께 하고, 사람들의 몸과 자연력에 미치는 가시적인 기적들을 통하여, 그리고 회개하는 양심들과 참 하느님께로 돌이키는 이방인들에게 미치는 비가시적인 기적들을 통하여 그 영적인 모습이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메시아를 재빨리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선택된 백성 가운데에서 어디서나 만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메시아를 따르는 데 있어서의 신속함이 바로 그 백성의 자녀들에 의하여 강하게 방해받고, 말하기도 서글픈 일입니다만, 사회에서 지위가 높아질수록 그 신속함이 더 방해받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화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으로 하여금 기도하고 묵상하게 하려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왜 이방인들과 죄인들이 내 길에서 더 앞서나갑니까? 왜 그들은 내가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진주조개들처럼 자기들이 태어난 곳에 닻을 내리고 있기 때문에, 아니 그들이 거기 붙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지혜로 포식하고, 압도되고, 비만해져서, 필요한 것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없어도 되는 것을 버려 내 지혜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노예상태로 고통당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표류하는 배처럼 매여 있지 않는 불쌍한 이교도이거나 불쌍한 죄인들입니다. 그들은 자기들 자신의 재물을 가지고 있지 않고, 오로지 오류나 죄의 무더기만을 가지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복음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되자마자 그 오류와 죄 무더기를 벗어버리고, 자기들의 죄의 메스꺼운 혼합물과는 아주 다른 복음의 보양해주는 꿀을 맛봅니다.

들으시오. 그러면 아마 여러분은 어떻게 같은 행동이 다른 열매들을 맺을 수 있는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습니다. 그는 다양한 종류의 밭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아버지로터 약간의 밭들을 상속받았는데, 그는 그것들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들에 가시나무들이 번식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밭들은 그가 구입한 것이었는데, 그는 그것들을 태만한 사람에게서 사서 그대로 방치해두었습니다.

또 다른 밭들은 그가 편한 것을 좋아하여 이 밭에서 저 밭으로 갈 때에 많이 걷기가 싫었기 때문에 많은 교차로들이 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기의 집 앞에 전망을 좋게 하려고 온갖 정성을 기울인, 그 집에서 가장 가까운 약간의 밭들도 있었습니다. 이 밭들에서는 조약돌들, 가시나무들, 개밀들과 또 다른 잡풀들도 모두 치워져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종자 자루에 가장 좋은 씨를 넣어가 씨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씨는 쟁기질되고, 잡초가 제거되고, 거름을 잘 준,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밭들의 좋은 땅들에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많은 길과 오솔길이 나서 잘게 쪼개진데다 기름진 토양 위에 보기 흉한 메마른 먼지가 켜켜이 앉은 밭들에도 떨어졌습니다. 다른 씨는 그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가시나무들이 번식하게 된 밭에도 떨어졌습니다. 지금은 쟁기로 갈아엎어졌기 때문에 그 가시나무들은 없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여전히 없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잡초의 근본적인 파괴자인 불이 아니라면 그것들이 자라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씨는 최근에 사들여 놓고 쟁기질도 하지 않고 땅 속에 박혀서 어떤 식물도 뿌리를 내릴 수 없게 하는 돌들도 치우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했던 밭에 떨어졌습니다.

그는 씨를 다 뿌린 다음 집으로 돌아오며 말했습니다. 아주 좋다! 이제 나는 추수만을 기다리면 된다.’ 그는 몇 개월이 지나 집에 가까운 밭에 굵은 새싹이 트고 자라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대단히 기뻐했습니다. 오! 얼마나 아름다운 바다인가! 이삭은 누렇게 되어가며 자기들끼리 부딪치면서 해를 향하여 환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모든 밭들이 이 밭들과 비슷하겠지! 낫과 곡식창고를 준비하자. 얼마나 많은 빵을 만들 수 있고, 돈은 얼마나 많이 생길까!’ 그는 몹시 기뻐했습니다.

그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밭들에서 곡식을 베고 나서 아버지에게서 유산으로 받아놓고 가꾸지 않은 채로 방치했던 밭으로 갔습니다.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밭이 좋았고 아버지에 의하여 경작된 땅은 기름지고 비옥했기 때문에 싹은 많이 났었습니다. 그러나 그 비옥함은 갈아엎어지기는 했어도 박멸되지는 않은 가시나무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시나무들은 다시 자라나 가시덤불로 참으로 두꺼운 천장을 만들어놓아 몇 개의 이삭만을 제외하고는 그 가시나무 천장을 뚫고 머리를 내밀 수 없어 그 싹들은 완전히 질식하여 죽어버렸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곳을 소홀히 했다. 그러나 다른 밭들에는 가시나무가 없으니 괜찮을 거야.’ 그는 자기가 최근에 사들인 밭들로 갔습니다. 그의 놀람과 고통은 더 컸습니다. 가늘고 마른 곡식줄기들은 마른 건초처럼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이야?’ 하고 그 사람은 탄식했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가시나무들도 없는데! 씨도 똑같았는데! 튼튼하고 아름답게 싹이 텄었는데! 좋은 형태와 많은 잎들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어. 그런데 왜 이삭이 생기기 전에 다 말라버렸지?’

그는 심한 자책감을 가진 채 혹시 두더지 굴이나 해충들이 있는지 보려고 땅을 파보기 시작했습니다. 곤충들과 설치류들은 없었습니다만, 돌들이 어찌나 많은지! 그곳은 채석장이었습니다. 밭들에는 돌들이 문자 그대로 쫙 깔려 있었고, 그 위에 덮여 있는 약간의 흙은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 적절한 시간에 땅을 파보았더라면! 오! 만일 그가 이 밭들을 좋은 땅인 줄 알고 사기 전에 파보았더라면! 오! 만일 그가 그 밭의 토양을 확인하지 않고 달라는 값에 사버린 실수를 저지른 다음에라도 열심히 일하여 그 땅을 개량했더라면! 지금은 너무 늦었고,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일어나 무거운 마음으로 자기가 편하기 위하여 여러 갈래의 길을 만들어놓았던 밭들로 갔습니다… 그는 슬픔으로 가슴이 미어져 자기의 옷을 찢었습니다. 거기에는 전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밭의 짙은 색 흙 위에는 흰 먼지 한 켜가 엷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탄식하며 땅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왜 이래? 여기는 돌들도, 가시덤불도 없는데, 여긴 우리 밭들이잖아. 할아버지, 아버지, 내가 이 밭들을 소유했고, 길고 긴 세월 동안 우리가 기름지게 한 땅인데. 내가 이 밭들에 길들을 내고 여기서 흙을 파 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밭들이 이렇게까지 불모지가 될 수는 없어.’

그가 여전히 울고 있는 동안에 한 떼의 새들이 그의 의문에 대하여 대답해주었습니다. 새들은 낟알을 찾아 오솔길에서 밭으로 밭에서 오솔길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오솔길들이 촘촘한 그물망처럼 난 밭의 길가에 씨가 떨어져 수많은 새떼를 끌어들였는데, 그놈들이 처음에는 길에 떨어진 씨를 먹은 다음에 밭의 씨 하나까지도 남김없이 다 먹어치운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밭에 떨어진 똑같은 씨는 어떤 곳에서는 백배, 다른 곳에서는 60배나 30배의 열매를 맺었고, 또 다른 곳에서는 아무것도 열매 맺지 않았습니다.

누구든 귀를 가진 사람은 들으시오. 씨는 말씀(the Word)인데,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습니다. 씨가 떨어진 장소들은 여러분의 마음들입니다. 비유를 묵상하고, 그것을 이해하시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그분께서는 베드로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신다.

“강 상류로 최대한 올라간 다음에 맞은편에 배를 대라.”

두 척의 배들이 강으로 약간 올라가 강둑 근처에 멎는 동안 예수께서는 앉아서 새 제자에게 물으신다.

“지금 네 집에는 누가 남아 있느냐?”

“제 어머니와 5년 전에 결혼한 큰형이 있습니다. 제 누이들은 이 지방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제 아버지는 대단히 좋은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을 몹시 애도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는 가슴에서 흐느낌이 북받쳐 올라 갑자기 말을 중단한다.
예수께서는 그의 손을 잡으시며 말씀하신다.

“나도 그런 고통을 겪었고, 내 어머니께서 우시는 것도 보았다. 그래서 나는 너를 이해한다…”

배가 자갈로 뒤덮여 있는 강바닥에 닿는 바람에 대화가 중단된다. 사람들이 배에서 내린다. 거의 호수까지 뻗어 내려온 벳사이다의 낮은 야산들이 여기서 끝나고, 곡물들이 풍부하게 재배되고 있는 평야가 벳사이다의 이 강변 맞은편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펼쳐져 있다.

“우리는 메롬으로 갈 겁니까?”
베드로가 묻는다.

“아니다. 밭들 가운데에 나 있는 이 오솔길을 따라가자.”

아름답고 잘 가꾸어진 밭들에는 곡식 이삭들이 보이는데, 그것들은 아직 연하지만 튼실해 보인다. 이삭들은 높이가 모두 같아서 북쪽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불려 가볍게 물결치기 때문에 또 다른 작은 호수처럼 보이는데, 그 호수에 떠 있는 배들의 돛은 여기저기서 자라고 있는, 많은 새들이 깃들어 지저귀고 있는 나무들이다.

“이 밭들은 비유에 나오는 밭들과 같지 않군요.”
예수의 사촌 야고보가 지적한다.

“확실히 다르구먼! 새들이 휩쓸어가지 않았고, 돌들도 가시덤불도 없네. 이삭이 훌륭해! 이제 한 달만 있으면 누렇게 익을 것이고… 두 달만 있으면 베어서 곡식창고로 들어가겠지.”
가리옷의 유다가 말한다.

“선생님… 저는 당신께서 제 집에서 말씀하셨던 것을 당신께 상기시켜드립니다. 당신께서는 아주 잘 말씀하셨습니다만, 저는 저 하늘의 엉킨 구름들처럼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뒤엉키기 시작합니다…”
베드로가 말한다.

“오늘 저녁에 나는 그것을 너에게 설명해주겠다. 지금 우리는 코라진이 보이는 곳에 와 있다.”
예수께서는 새 제자를 응시하시며 말씀하신다.

“주는 사람들이 많이 받는다. 그리고 받았다고 해서 그 공로들의 선물이 없어지지도 않는다. 너희 가족의 무덤과 네 어머니의 집으로 나를 인도해라.”

젊은이는 무릎 꿇고 울며 예수의 손에 입 맞춘다.

“일어나라, 가자. 내 영은 네 슬픔을 느꼈다. 나는 내 사랑으로 네 영웅적 행위를 강화해주고 싶다.

“이사악 어른이 당신께서 얼마나 착하신지 저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이사악 어른을 아시지요? 당신께서는 그분의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분은 제 사도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의 친절하심은 제가 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우리는 그분께도 들러 나에게 제자 한 사람을 준 것에 대하여 감사드리자.”

그들은 코라진에 도착하였는데, 그들이 가장 처음 만난 집은 이사악의 집이다. 집으로 돌아가던 노인은 제자들과 함께 오시는 예수와 그분의 사도들과 그들 가운데에 있는 코라진의 젊은이를 보고는 손에 지팡이를 든 채 두 팔을 들고 너무 놀라서 멍하게 서 있다. 예수께서 미소 지으시자 그분의 미소를 보고 비로소 노인의 말문이 열린다.

“선생님, 하느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기를! 제가 어떻게 이렇게 큰 영광을 받게 됩니까?”

“나는 당신에게 고맙다고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나의 하느님, 그런데 무엇이 고맙다는 말씀이십니까? 제가 그 말씀을 당신께 드려야 합니다. 들어오십시오. 오! 제 딸이 자기의 시어머니를 도와드리느라 집을 비운 것이 얼마나 유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애는 결혼했거든요, 아시지요?
제가 당신을 만난 후에 저는 축복만을 받았습니다. 제 딸의 병이 고쳐졌고, 곧 이어 홀아비가 된 저희의 부자 친척이 어머니가 필요한 어린것들을 데리고 먼 데서 돌아왔고요… 오! 그런데 저는 이미 당신께 그 모든 것을 말씀드렸지요! 제 머리는 늙었습니다!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당신의 머리는 지혜로워 그것이 자기의 선생에게 한 좋은 일을 자랑하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자기가 행한 선행을 잊어버리는 것은 지혜입니다. 그것은 겸손과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나타냅니다.”

“하지만 저는… 저는 모르겠는데요…”

“그럼 이 제자는… 내가 당신을 통하여 얻게 된 것이 아닙니까?”

“오!… 그러나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서도 아시지요? 저는 단지 그에게 진실을 말해준 것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엘리야가 당신과 함께 있어 기쁩니다.”

그는 엘리야에게 돌아서서 말한다.

“자네의 어머니는 처음 순간에는 깜짝 놀랐지만, 자네가 선생님과 함께 있다는 것을 전해 듣고는 안심하셨네. 자네의 아버지의 장례는 아주 엄숙하게 잘 거행되었네. 그분은 무덤에 묻힌 지가 얼마 안 되네.”

“그럼 제 형은요?”

“그 사람은 침묵하고 있네. 자네도 짐작하겠지만… 그는 상당히… 자네가 오지 않아 상당히 화났어… 마을 사람들 때문에도… 그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젊은이가 예수께 돌아서서 말씀드린다.

“당신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형이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제가 살아 있는 것처럼 형도 살고, 당신을 섬기게 해주십시오.”

다른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해서 의아해하며 서로를 쳐다본다. 그러나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실망하지 말고, 꾸준해라.”

예수께서는 이사악에게 강복하시고, 그분께서 머물러주십사는 사람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떠나신다.

그들은 먼저 무덤 곁에 멈추어 서서 기도한 다음 아직 반쯤 헐벗어 있는 포도밭을 거쳐 엘리야의 집을 향하여 간다.


두 형제의 만남은 꽤나 냉랭하다. 형은 모욕당했다고 느끼며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원한다. 아우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죄책감을 느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어머니가 와서 말없이 땅에 엎드려 예수의 옷자락에 입 맞추자 분위기와 사람들의 영혼이 밝아져 선생님을 찬미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이렇게만 말씀하신다.

“당신들이 애도하고 있는 분이 의로웠던 것처럼 당신들도 서로에게 의로운 마음을 가지시오. 초인간적인 것 즉 죽음과 한 사명에의 선택을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지 마시오. 당신들의 의로운 아버지의 영혼은 아들이 자기의 시체를 매장하는 데 참석하지 않은 것을 보고 서운해 하지 않았고, 자기의 아들 엘리야의 미래의 확실성에 대하여 안도했소.

세속적인 생각들이 선택의 은총을  방해하지 않게 하시오. 세상 사람들은 아들이 자기의 아버지의 관 옆에 있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랐지만, 천사들은 그가 메시아 곁에 있는 것을 보고 환호했소. 의로워지시오. 어머니, 그것이 당신에게 위로가 되기를. 당신은 이 아들을 지혜롭게 길렀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아들은 지혜(Wisdom)로부터 부름 받았습니다. 나는 당신들 모두에게 이제와 항상 평화가 있도록 축복합니다.”

그들은 배를 타고 벳사이다로 돌아가기 위하여 강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간다. 엘리야는 자기의 아버지의 집 대문에서 한 순간도 지체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어머니에게 작별의 입맞춤을 한 다음에 자기의 진정한 아버지를 따라가는 어린이와 같은 순진함으로 선생님을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