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3권 공생활 둘째해(상)

하사시 3권 p247~p255 [181. 가라지의 비유]

Skyblue fiat 2025. 3. 27. 12:33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3권 공생활 둘째 해 1  p247~p255

 

181. 가라지의 비유

1945. 6. 8.

맑은 새벽빛이 호수의 물을 진주처럼 반짝이게 하고, 야산들을 모슬린 베일로 가리기라도 하듯 옅은 안개로 감싼다. 그 옅은 안개로 인하여 올리브나무들과 호두나무들과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마을들의 집들과 둥그스름한 언덕들이 더 운치 있어 보인다. 배들은 부드럽고 조용하게 카파르나움 쪽으로 나아간다. 그러다가 갑자기 베드로가 키의 손잡이를 홱 돌리는 바람에 배가 한편으로 기울어진다.

“지금 형은 뭐 하고 있어?”
안드레아가 묻는다.

“올빼미(올빼미는 나쁜 징조를 상징하는 새로 여겨졌다.)의 배가 있어. 그것은 지금 카파르나움을 떠나오고 있어. 난 눈이 좋고, 어제 저녁부터는 사냥개처럼 냄새도 잘 맡아. 나는 그들이 우리를 보는 것을 원치 않아. 난 강으로 돌아갈 거야. 우리는 걸어서 가야 해.”다른 배도 뒤따라온다. 그러나 키를 잡고 있는 야고보가 베드로에게 묻는다.

“자네는 왜 그렇게 하고 있어?”

“나는 나중에 자네에게 말해줄게. 나를 따라와.”

고물에 앉아 계시던 예수께서는 거의 요르단 강 근처에 왔을 때에야 잠에서 깨어나 물으신다.
“시몬아, 너는 지금 왜 그렇게 하고 있느냐?”

“우린 여기서 내려야 합니다. 재칼 한 놈이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카파르나움으로 갈 수 없습니다. 제가 먼저 가서 동향을 살피겠습니다. 저는 시몬, 나타나엘과 함께 가겠습니다. 세 명의 악인 대 세 명의 선인입니다. 만일 악당들의 수가 더 많지 않다면…”

“너는 지금 어디서나 함정을 보지 마라! 저것은 바리사이 시몬의 배가 아니냐?”
“맞습니다.”

“그는 요한이 붙잡힐 때 거기 있지 않았구나.”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는 항상 나에게 경의를 표했다.”
“저는 모릅니다.”

“너는 나를 겁쟁이로 보이게 하는구나.”
“저는 모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웃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베드로의 거룩한 고집에 미소 지으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야 한다. 오늘이 아니라면 나중에라도…”

“저는 제가 먼저 가서 동정을 살펴보겠다고 당신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만일 필요하다면… 저도 가겠습니다… 그것은 먹기 쓴 약이겠지만… 저는 당신을 위하여 그런 일도 불사하겠습니다. 저는… 저는 백부장을 찾아가 그에게 보호를 요청하겠습니다…”

“안 된다. 그것은 불필요하다.”

배는 벳사이다 맞은편 인적 없는 작은 호반에 닿는다. 그들 모두가 하선한다.

“자네들 두 사람은 이리로 오게. 필립보, 자네도. 자네들 젊은이들은 여기 남아 있게. 우리는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새 제자 엘리야가 예수께 간청한다.
“선생님, 제 집으로 가십시다. 당신을 제 집에 모신다면, 저는 정말로 행복하겠습니다.”

“그래, 가자. 시몬아, 엘리야의 집으로 오너라. 시몬아, 잘 가거라. 착하고, 지혜롭고, 자비로워라. 내가 너에게 입 맞추고 강복할 수 있도록 이리로 오너라.”

베드로는 자기가 친절하고 참을성 있고 자비롭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 그는 말없이 예수와 입맞춤을 주고받는다. 열성당원과 바르톨로메오와 필립보도 예수께 작별의 입맞춤을 한다. 두 집단은 헤어져서 서로 반대되는 방향으로 간다.

그들은 날이 환하게 밝아졌을 때 코라진으로 들어간다. 모든 풀줄기들이 영롱한 이슬들로 반짝인다. 새들이 사방에서 노래하고 있다. 공기는 맑고 시원하다. 그것은 젖의 맛, 동물성 젖보다는 식물성 젖의 맛이 감돈다. 이삭이 패려고 하는 곡식과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편도나무의 냄새는… 포강 계곡의 기름진 밭에서 시원한 아침에 맡을 수 있는 냄새이다.

그들은 금방 엘리야의 집에 도착한다. 코라진의 많은 사람이 선생님께서 도착하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 그분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려는 순간에 어떤 어머니가 달려오며 부르짖는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제 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그녀는 열 살쯤 된 소녀를 안고 있는데, 아이는 매우 야위어 있고, 그녀의 얼굴빛은 밀랍 빛깔, 아니 밀랍빛깔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누르스름한 빛깔이다.

“당신의 딸에게 무슨 병이 있습니까?”

“이 애는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얘는 요르단 강가에 있는 목장에서 열병에 걸렸습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한 부자의 목자들이니까요. 저는 이 아이의 아버지가 불러 이 어린 병자를 돌보러 왔습니다. 그이는 산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당신께서도 아시다시피 이런 종류의 병의 환자는 높은 곳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떻게 여기 남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희의 주인은 지금까지는 제 사정을 봐주었습니다만, 저는 양털 깎는 일과 양이 번식하는 일을 돌봐야 합니다. 지금은 양치기에게 바쁜 시기입니다. 만일 제가 여기 머물러 있다면, 저희는 해고되거나 서로 떨어져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제가 헤로몬 산으로 돌아간다면, 제 딸은 죽을 것입니다.”

“당신은 내가 이 아이를 고칠 수 있다고 믿습니까?”

“저는 엘리사의 목자 다니엘에게 제 사정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우리 아기(our Child)께서는 모든 질병들을 고치십니다. 메시아에게 가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메롬 호수 건너편에서부터 이 애를 안고 당신을 찾으면서 왔습니다. 저는 당신을 찾아낼 때까지 계속 걸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더 이상 걸을 필요 없습니다. 당신의 집과 당신의 평화로운 일자리로 돌아가시오. 당신의 딸은 나았습니다. 내가 그렇게 원하니까요. 평안히 가시오.”

여인은 자기의 딸을 쳐다보다가 예수를 쳐다본다. 그녀는 아마 자기 딸이 당장에 통통해지고 혈색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그런데 소녀는 지금까지는 감고 있던 피곤에 지친 두 눈을 크게 뜨고 예수를 쳐다보며 미소 짓는다.

“부인, 두려워하지 마시오. 나는 당신을 속이고 있지 않습니다. 이 아이의 열병은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이 아이는 나날이 건강한 소녀가 될 것입니다. 이 아이를 걷게 하시오. 이 아이는 더 이상 비틀거리지도 않고, 피로해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소녀를 바닥에 내려놓자 그녀는 똑바로 서고, 점점 더 명랑하게 미소 짓다가 마침내 맑은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 주님을 찬미해! 나는 다 나았어! 난 그걸 느껴.”

소녀는 어린 양치기 소녀의 순박한 마음으로 예수의 목에 달려들어 그분께 입 맞춘다. 소녀의 어머니는 자기의 나이에 걸맞게 조심성 있게 땅에 엎드려 주님을 찬미하며 그분의 옷에 입 맞춘다.

“가시오. 하느님의 선물을 기억하고 착하게 사시오. 평화가 당신들과 함께.”

그러나 군중이 엘리야의 집의 작은 텃밭에 모여 예수께서 자기들에게 말씀해주시기를 요구한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세례자가 붙잡힌 것과 그 방식으로 인하여 슬픔에 잠겨 계시는 만큼 말씀하시기가 내키지 않으시나 양보하시어 나무들의 그늘에서 말씀을 시작하신다.

“이삭에 패기 시작하는 이 좋은 계절에 나는 여러분에게 낟알에서 따온 비유 하나를 말하고자 합니다. 들어보시오.
하늘나라 자기의 밭에 좋은 씨를 뿌린 사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과 그의 하인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사이에 가라지 씨를 뿌리고 갔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겨울이 비, 서리와 함께 오고 테벳 달(12-1월 사이의 유다력의 1개월)이 끝날 무렵 싹이 텄습니다. 갓 싹튼 연약한 작은 초록빛 잎들이었는데, 순진한 어린 싹들은 모두 비슷해보였습니다. 스밧 달(1월-2월 사이의 유다력의 1개월)과 아다르 달(2월-3월 사이의 유다력의 1개월)이 되자 그것들이 자라고 곡식 줄기들에서 이삭이 패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되자 사람들은 그것들이 모두 밀이 아니라 가늘고 떨어지지 않는 덩굴손으로 밀 줄기를 칭칭 감고 있는 가라지도 섞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인의 하인들이 그의 집으로 와서 말했습니다.

‘주인님, 당신은 어떤 씨를 뿌리셨습니까? 그것은 다른 씨가 전혀 섞여 있지 않은 엄선된 씨가 아니었습니까?’

‘물론 그렇다. 내가 모든 종자를 골랐는데, 그것들 모두가 같은 품질의 것이었다. 만약에 다른 씨가 섞여 있었다면, 내가 못 보았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주인님이 뿌리신 밀 가운데 왜 그렇게 가라지가 많이 났을까요?’

주인이 곰곰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어떤 원수가 나를 해치려고 한 짓이 분명하다.’

그러자 하인들이 물었습니다.
‘저희가 밭에 가서 참을성 있게 가라지를 뽑아서 밀만 남아 있게 할까요? 당신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면, 저희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말했습니다.
‘아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너희가 혹시 밀대도 뽑을지도 모르겠고, 아직 여린 밀 이삭을 상하게 할 것은 거의 확실하다. 수확할 때까지 그것들이 함께 자라도록 그대로 두어라. 그때 나는 수확하는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다.

‘모두 함께 베어라. 그 다음에 곡식 단을 묶기 전에, 가라지의 덩굴손은 말라 부서지기 쉽고 여문 이삭은 더 강하고 단단하게 되었으니, 가라지를 밀에서 분리하여 별도의 다발로 묶은 다음 그것들을 불태워버려라. 그것들은 땅을 기름지게 할 것이다. 반면에 좋은 알곡은 곡식창고에 가져다넣어라. 그것들은 좋은 빵을 만드는 데 쓰일 것이고, 내 원수는 자기의 질투하는 악의(envious malice)로 인하여 하느님께 멸시당하는 것밖에 얻은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창피당하게 될 것이다.’

이제 원수가 여러분의 마음속에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은 씨를 뿌렸는지 성찰해보시오. 여러분은 엄선된 밀에 가라지가 약간이라도 섞이지 않도록 얼마나 참을성 있고 항구하게 살펴야 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가라지의 운명은 불태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불태워지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기를 원합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애쓰시오.

좋으신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말씀(the Word)을 주십니다. 원수는 그것을 해롭게 만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밀가루에 가라지 가루가 섞이면 위장에 해로운 쓴 빵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영혼에 가라지가 있다면, 착한 뜻으로 그것을 뽑아내버림으로써 하느님께 합당치 않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하시오.
내 자녀들이여, 가보시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사람들은 천천히 흩어진다. 텃밭에는 여덟 사도와 엘리야와 그의 형과 어머니, 그리고 늙은 이사악이 있을 뿐이다. 이사악은 자기의 구세주를 쳐다보며 기뻐한다.

“내 주위로 모여서 들어라. 나는 이 비유의 완전한 뜻을 너희에게 설명해주겠다. 이 비유에는 내가 군중에게 말했던 것 외에도 두 가지 의미가 더 들어 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비유의 개요는 이렇다. 밭은 세상이다. 좋은 씨는 하느님께서 세상에 뿌리신 하느님 나라의 아들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끝에 이르러 낫으로 베어진 다음 그분의 곡식창고에 넣을 세상의 주인께 운반되어 간다. 가라지는 마귀의 아들들인데, 그들은 세상의 주인을 고통스럽게 하고 하느님의 밀 이삭에게 해를 끼칠 목적으로 하느님의 밭에 뿌려놓은 것들이다. 하느님의 원수는 요술로 그들을 고의적으로 뿌려놓은 것인데, 실제로 사람의 본성을 변질시켜 자기 자신의 종으로 만든 다음 다른 방법으로는 굴복시킬 수 없었던 다른 사람들이 길을 잃게 하기 위하여 그들을 뿌려놓기 때문이다.

추수 즉 곡식 단을 만들어서 곡식창고로 옮기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고, 그것은 천사들에 의하여 성취된다. 그들은 베어진 곡식들을 모아 알곡을 가라지로부터 분리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비유에서 가라지는 불태워지는 것처럼 최후의 심판에서 지옥 벌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영원한 불속에서 태워질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 자기의 나라에서 모든 중상자들과 행악자들을 제거할 것이다. 그때 왕국이 땅 위와 하늘에 있을 것이고, 원수의 많은 아들들이 나라의 시민들 가운데 섞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언자들에 의해서도 예언된 것처럼 원수의 아들들은 땅에서의 모든 일에 있어 추문과 가증스러움이 극에 달하여 영의 자녀들에게 큰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어떤 부패도 하늘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하느님의 나라에는 어떤 부패도 없을 것이다. 그때 주님의 천사들이 마지막 수확물인 사람들에게 낫을 휘둘러 베어 알곡을 가라지로부터 분리하여 가라지는 불타는 풀무에 집어던질 터인데, 그들은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반면에 정선된 알곡인 의인들은 영원한 예루살렘으로 옮겨질 터인데, 거기서 그들은 나와 너희의 아버지의 나라에서 태양처럼 빛날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뜻이다. 그러나 너희가 여러 번 자문(自問)하는 질문, 특히 어제 저녁부터 자문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인 다른 뜻이 더 있다. 너희의 질문은 이것이다. ‘제자들 중에 배반자들이 있을 수 있는가?’ 그 질문과 함께 너희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몸을 떤다. 그렇다. 배반자들이 있을 수 있다. 아니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씨 뿌리는 사람은 좋은 씨를 뿌린다. 이 경우에는 뿌린다는 말보다는 ‘고른다(pick)’는 말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경우에나 세례자의 경우에 선생이 자기의 제자들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길을 잃었느냐?

아니다, 내가 제자들을 ‘씨’라고 말한 것은 정확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너희는 오해했을 수도 있다. 나는 그들을 ‘밭들’이라고 부르겠다.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부를 형성하기 위하여 주인에게 선택된 제자들의 수만큼의 밭들이다.

주인은 그것들이 100배의 소출을 내게 하기 위하여 그것들을 경작하려고 애쓴다. 그는 인내, 사랑, 지혜, 근면과 끈기로 모든 것을 보살핀다. 그도 그들의 악한 성향, 메마름, 탐욕, 고집, 연약함을 안다. 그러나 그는 항상 바라고, 기도와 고행을 통하여 그의 희망을 강화하는데, 이는 그가 그들을 완전으로 인도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밭들은 열려 있다. 그것들은 주인만이 소유하고, 그만이 들어갈 수 있는 보호 장벽들로 둘러싸여 있는 정원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열려 있다. 그것들은 세상의 중심에, 세상 사람들 사이에 위치해 있어 누구든 그 가까이로,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이. 오! 가라지만이 뿌려져 있는 나쁜 씨가 아니다! 가라지는 세속적인 영혼(the worldly spirit)의 쓰라린 경박함의 상징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원수가 뿌린 다른 모든 씨앗들에서 싹들이 돋아난다. 쐐기풀, 개밀, 새삼, 메싹, 독당근, 독초들이다. 왜? 그것들은 무엇이냐?

쐐기풀들은 과도한 독으로 상처 입히고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찌르는 길들일 수 없는 영혼들이다. 개밀들은 살금살금 기어가 자양분을 흡수하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기생식물들로서, 주인의 노동을 이용하고 자발적인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개밀을 감시하느라 신경 쓰고 주의가 분산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얻어낼 것이다. 메싹들은 다른 사람들의 노력을 이용해야만 땅에서 기어 올라갈 수 있다. 새삼은 이미 고통스러운 선생의 길에 고통을 더해주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고통을 안겨준다. 새삼들은 비틀고, 찌르고, 찢고, 할퀴고 의혹과 고통을 가져다준다. 독초들은 죄인인 제자들 즉 독당근과 다른 독초들처럼 배신하여 죽이기까지 하는 사람들이다.

너희는 희고, 붉고, 청자색의 산딸기처럼 되는 작은 꽃들을 가진 이 독당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관찰해본 적이 있느냐? 금빛 작은 중심이 있는 희거나 약간 분홍색을 띤 별모양처럼 생긴 저 꽃부리가, 새들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다른 작은 과일들과 아주 비슷한 저 여러 가지 빛깔의 산호 같은 것들이 익으면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다고 누가 말해주겠느냐? 아무도 그렇게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순진한 사람들은 덫에 걸린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처럼 착하다고 믿기 때문에 따먹고 죽는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처럼 착하다고 믿는다! 오! 이것은 선생을 숭고하게 만들고, 그를 배반하는 자를 단죄하는 진리이다! 어떻게? 선이 악을 무력하게 만들지 않는가? 선이 악의를 무해하게 만들지 않는가? 그렇게 만들지 않는다. 원수의 먹이가 된 사람은 우월한 것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는 우월한 것이 양상이 달라진다. 친절함은 짓밟아도 괜찮은 것이고, 마치 피 냄새가 맹수의 살육의지를 자극하는 것처럼 그의 악의를 자극한다.

선생도 항상 순진하다… 그는 한 인간이 무죄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자기의 배반자가 자기를 독살하도록 내버려둔다.

원수들이 선생의 밭들 즉 그의 제자들 안으로 들어온다. 원수들은 수가 많은데 사탄이 그중 으뜸이다. 다른 원수들은 사탄의 종들, 즉 사람들, 격정, 세속, 육신이다. 그들에게 더 쉽게 넘어가는 제자는 전적으로 선생의 가까이에 있지 않고, 선생과 세상 사이에 있다. 그는 자기를 하느님께로 인도하기를 원하는 선생에게 전적으로 속해 있기 위하여 세속, 육체, 격정, 마귀와 헤어질 줄을 모르고, 헤어지기를 원치도 않는다.

세속, 육신, 격정들, 마귀들은 그의 안에 자기들의 씨인 황금, 권력, 여자들, 교만, 세상의 악평에 대한 두려움, 공리주의(utilitarianism 功利主義)의 영을 뿌린다. ‘유력자들이 가장 강한 자들이다. 나는 그들이 나를 친구로 대해주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을 섬기겠다.’ 그래서 그들은 그 시시한 것들로 인하여 범죄자들이 되고, 영벌을 받게 된다…

설령 선생이 ‘그가 나를 죽일 것이다’라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그 제자의 결점을 잘 알고 있는 선생이 왜 그를 즉시 쫓아내지 않는가? 이것이 너희가 자문하고 있는 질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무익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다 해도 그가 원수가 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고, 발각되었다거나 쫓겨났다는 분노와 심적 고통으로 인하여 이중의, 훨씬 더 위험한 원수가 되는 것을 막지도 못할 것이다. 그렇다. 그의 심적 고통 때문이다. 왜냐하면 때로는 나쁜 제자가 자기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귀가 하는 일은 참으로 교묘하여 그 제자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는 자기가 마귀의 그러한 활동에 지배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해보지도 못한 채 악해진다.

그것은 또한 자기의 분노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마귀와 그 추종자들의 일을 일고 있을 때 그는 자기의 정체가 알려진 데 대하여 분노한다. 마귀의 추종자들이란 성인의 착함에 비교되는 자기들의 악함 때문에 자기들을 화나게 하는 성인을 세상에서 없애기 위하여 약한 사람들의 약점을 찔러 유혹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래서 성인은 기도하고, 하느님을 신뢰한다. 그는 ‘당신께서 허락하시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다만 ‘그것이 당신의 목적에 이바지한다면’ 이라는 조건만을 붙인다.

성인은 수확물로부터 악한 가라지가 제거되는 시간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안다. 누가 그것을 제거할 것인가? 그분의 사랑하시는 의지(loving will)가 승리하는 데 유익한 것 이상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하느님께서 친히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께서 그것이 항상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의 탓이라고 주장하신다면… 그것은 저에게 그 제자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마태오가 말한다.

“그렇게 믿지 마라. 악이 있지만 선도 있고, 사람은 분별력과 자유를 부여받았다.”

“당신께서는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사랑하시는 의지가 승리하는 데 유익한 것 이상을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그분께서 그 잘못을 허락하시는 것이고, 그분의 뜻이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 잘못은 유익하네요.”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그래서 너는 마태오처럼 그것이 제자의 죄를 정당화한다고 추론하는구나. 하느님께서는 사납지 않은 사자와 독이 없는 뱀을 창조하셨다. 그런데 지금 사자는 사납고, 뱀은 독이 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놈들을 사람에게서 갈라놓으셨다. 이것을 묵상하고, 결론을 내려라. 집으로 들어가자. 햇볕이 이미 너무 뜨겁다. 폭풍우가 다가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너희는 간밤에 잠을 못 잤으니 피곤하겠구나.”


엘리야가 말한다.
“옥상에 크고 시원한 방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거기서 쉬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바깥 층계를 올라간다. 그러나 사도들만이 쉬려고 자리에 눕는다. 예수께서는 옥상으로 나오셔서 아주 키 큰 떡갈나무에 의하여 그늘진 한 구석에서 생각에 잠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