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3권 공생활 둘째 해 1 p237~p247

180. 베드로의 집 부엌에서의 사도들에 대한 교훈과 세례자가 붙잡혔다는 소식
1945. 6. 7.
우리는 다시 베드로의 집 부엌에 있다. 고기, 생선, 치즈, 말린 과일, 꿀 과자 남은 것들이 담긴 접시들이 우리 토스카나 지방의 반죽 통을 나에게 상기시키는 일종의 찬장에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풍성한 식탁이었음에 틀림없다. 포도주 주전자들과 잔들이 여전히 식탁 위에 놓여 있다.
베드로의 아내는 자기의 남편을 만족시켜주려고 기적이라도 행한 것 같다. 그녀는 하루 종일 일한 것이 틀림없는데, 지금은 피로하기는 하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한 구석에 앉아 자기의 남편과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녀는 자기의 남편 시몬을 바라본다. 그가 비록 다소 까다롭기는 해도 그녀에게는 위대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전에는 배, 그물, 물고기, 돈 따위밖에 말할 줄 모르던 사람이 새로운 말을 하는 것을 들을 때 그녀는 마치 강한 빛에 눈이 부시는 듯 눈을 깜박인다. 베드로는 예수를 자기의 식탁에 모신 것과 자신이 풍성한 식탁으로 그분을 대접해드린 기쁨으로 인하여 오늘 저녁 최상의 영적 상태에 도달하여 군중들에게 설교할 미래의 베드로의 모습이 드러나 보인다.
동료의 내가 누가 한 말인지 알지 못하는 어떤 말에 대하여 베드로가 명쾌하게 대답한다.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에게 일어났었던 일이 그들에게도 일어날 거야. 그들 자신들의 교만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이론이 무너져 그들은 거기에 깔리고 말 거야.”
안드레아가 자기의 형에게 반론을 제기한다.
“하지만 하느님은 자비이셔. 그분께서는 그들의 행실을 고칠 시간을 주시려고 붕괴를 막아주실 거야.”
“그것을 믿지 마라. 그들은 자기들의 교만 위에 중상과 박해를 얹을 것이다. 오! 나는 그걸 미리 볼 수 있어. 그들은 우리를 불유쾌한 목격자들처럼 흩어버리려고 우리를 박해할 것이다. 그들이 덫을 놓아 진리를 공격할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복수하실 것이고, 그래서 그들은 멸망할 것이다.”
“우리가 저항할 힘을 가지고 있을까?”
토마스가 묻는다.
“글쎄… 적어도 나는 그럴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나는 선생님께 내 신뢰를 두네.”
베드로는 고갯짓으로 선생님을 가리킨다. 그분께서는 마치 그분의 내심을 나타내는 표정을 가리시려는 것처럼 머리를 약간 기울이신 채 침묵하시며 들으신다.
“나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힘에 겨운 시련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마태오가 말한다.
“아니면 그분께서는 최소한 시련들에 비례하여 우리를 더 굳세게 해주실 거야.”
알패오의 야고보가 결론짓는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렇게 해주고 계셔. 나는 부유하고 힘이 있었어. 만일 하느님께서 그분의 계획을 위하여 나를 보존해주시기로 결정하지 않으셨다면, 나는 내가 박해당하고 추방되었을 때 실망한 나머지 죽었을 거야. 나는 나 자신을 심하게 자책했을 거야… 그런데 오히려 전에 내가 결코 가지지 못했던 새 보물이 내 파멸 위로 내려왔어. 그것은 ‘하느님께서는 존재하신다’는 확신이라는 보물이었어.
전에는… 하느님께서는… 그래, 나는 믿었고, 충실한 이스라엘 사람이었어. 하지만 그건 형식주의(formalism)에 대한 믿음이었어. 그래서 나는 내 믿음에 대한 상이 항상 내 성덕에 못 미친다고 생각했었어.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이 이 땅에서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느꼈기 때문에 감히 하느님과 논쟁했었어.
시몬 베드로의 말이 옳아. 나 역시 자신을 높이고 내 자아를 만족시킴으로써 바벨탑을 쌓고 있었어.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이 모든 무익한 인간적인 것의 무게에 짓눌린 벌레처럼 되었을 때에야 나는 더 이상 하느님과 논쟁하지 않고, 나 자신과, 우둔한 내 자아와 논쟁하게 되었고, 마침내 내 자아를 부숨으로써 내가 끝나게 되었어.
우리의 지상적 존재들 안에 내재하시는 하느님(the immanent God)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위한 공간을 만듦으로써 나는 내가 혼자가 아니며, 사람들과 악에게 패배한 사람을 하느님이 보살펴주신다는 확신이라는 새로운 힘과 새로운 재물을 얻게 되었네.”
“자네가 보기에 자네가 말한 ‘우리의 지상적 존재들 안에 내재하시는 하느님’은 무엇인가? 그것이 무슨 뜻인가? 나는 자네 말을 이해할 수 없고, 그것이 이단이라고 생각하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율법과 예언자들을 통하여 아는 분이야. 다른 하느님은 안 계셔.”
가리옷의 유다가 상당히 엄격하게 말한다.
“만일 요한이 여기 있다면, 그는 자네에게 내가 말한 것보다 더 잘 말해줄 거야.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하여 자네에게 말할 거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율법과 예언자들을 통하여 아는 분이지, 그건 사실이야. 그러나 우리는 무엇 안에서 그분을 알게 되나? 그리고 어떻게?”
알패오의 유다가 외친다.
“우리는 거의 알지도 못하고 정확히 알지도 못해. 우리에게 하느님에 대하여 묘사해준 예언자들은 그분을 알았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념은 분파들에 의하여 쌓인 설명들의 무더기를 통하여 겨우 보는 것에 불과한 혼란스러운 개념일 뿐이야.”
“분파들이라니? 자넨 무엇을 분파라고 말하나? 우리는 분파들을 가지고 있지 않아. 우리는 율법의 자녀들이야. 우리 모두.”
분노한 가리옷 사람이 공격적으로 말한다.
“율법들(the laws)의 자녀들이지. 율법(the Law)의 자녀들이 아니야. 율법과 율법들 사이에는 약간 차이가 있네. 율법들은 복수이지 단수가 아니네. 실상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것의 자녀들이지, 더 이상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의 자녀들은 아니란 말일세.”
타대오가 응수한다.
“율법들은 율법에서 나왔어.”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병들도 우리의 몸들에서 생겨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병들이 좋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야.”
타대오가 대답한다.
“하지만 열성당원 시몬이 말하는 이 내재하시는 하느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말해주게.”
알패오의 유다의 주장을 논박할 수 없는 가리옷 사람은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리려고 애쓴다.
열성당원 시몬이 말한다.
“우리의 감각들이 개념을 파악하려면 용어를 필요로 하네. 우리 각자는, 나는 우리 신자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네, 신앙의 힘으로 지극히 높으신 주님이시고 창조주이신 하늘에 계시는 영원하신 하느님을 믿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이 꾸밈없고, 순수하고, 무형의 믿음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하는데, 그러한 믿음은 하느님과 영적인 본성을 공유하고 그분을 뵐 수 있기에 하느님을 뵙고 영적으로 사랑하는 천사들에게는 적합하고 충분하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하느님의 ‘그림(picture)’을 만들어야 해. 그 그림은 우리가 하느님의 무한하고 절대적인 완전을 명명하기 위하여 우리가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본질적인 특성들로 만들어져 있네. 영혼이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그것은 하느님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얻는 데 더 성공하게 되네.
그것이 내가 말하는 ‘내재하시는 하느님’이야. 나는 철학자가 아니야. 어쩌면 내가 그 단어를 잘못 사용했는지도 모르겠네. 요컨대 나는 내재하시는 하느님이란 우리의 영혼 안에서 하느님을 느끼고 지각하는 것, 그분을 더 이상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우리에게 힘과 새로운 평화를 주시는 실제적인 현존으로 느끼고 지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좋아. 그러나 요컨대 자네는 그분을 어떻게 느꼈나? 믿음으로 느끼는 것과 내재성(immanence)으로 느끼는 것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나?”
가리옷 사람이 약간 빈정거리는 투로 묻는다.
“하느님은 안전(safety)이시네, 이 젊은이야.”
베드로가 말한다.
“나는 글자대로는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 영은 이해하는 바와 같이―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들의 문자적 뜻만 이해하고, 그 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야―시몬이 말하는 대로 자네가 하느님을 지각할 때 그것은 그분의 무시무시한 위엄에 대한 개념만이 아니라 그분의 지극히 다정하신 부성(父性)에 대한 개념도 가지게 된다는 말이야.
그것은 온 세상이 자네를 부당하게 판단하고 단죄한다 해도, 자네의 아버지이신 오직 한 분뿐이신 영원하신 그분께서는 자네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네의 죄를 사해주시고, 자네를 위로해주신다는 것을 자네가 느낀다는 뜻이야. 그것은 설사 온 세상이 자네를 미워한다 해도 자네는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자네 위에 있음을 느낀다는 뜻이지.
그것은 설혹 자네가 감옥이나 사막에 격리되어 있다 해도 자네는 항상 어떤 분이 자네에게 ‘네 아버지처럼 되도록 거룩해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거라는 뜻이야.
그것은 우리가 마침내 올바르게 인식하게 될 이 아버지이자 하느님인신 분께 대한 참된 사랑으로 자네가 어떤 인간적인 고려도 없이 받아들이고 일하고 취하고 떠나면서 사랑으로 사랑에 보답하고, 자네의 행동에 있어 가능한 최대한 하느님을 모방한다는 말이야.”
“자네는 교만하구먼! 하느님을 모방하다니! 자네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어!”
가리옷 사람이 선언한다.
“그것은 교만이 아니야. 사랑은 순종으로 이끄네. 내 생각에는 하느님께서 그분의 모습과 비슷하게 우리를 만드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하느님을 모방하는 것은 순종의 한 형태인 것 같아.”
베드로가 대답한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만드셨어. 우리는 더 높이 올라가면 안 돼.”
유다가 말한다.
“여보게, 만일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네는 불행한 사람이야! 자네는 우리가 타락했다는 것과 하느님은 타락하기 전의 상태로 우리를 도로 데려가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잊고 있구먼.”
베드로가 대답한다.
예수께서 말씀을 시작하신다.
“베드로와 유다와 너희 모두는 들어라. 훨씬 그 이상이다. 아담의 완전은 사랑을 통하여 더 향상될 수 있었다. 그 사랑은 그를 자기의 창조주의 모습과 점점 더 닮게 하였을 것이다. 죄의 얼룩이 없었다면, 아담은 하느님을 지극히 잘 반영하는 거울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너희에게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버지처럼, 따라서 하느님처럼 말이다. 베드로의 말이 아주 옳고, 시몬의 말도 그렇다. 나는 그들의 말을 기억하여 그것을 너희의 영혼에 적용하라고 너희에게 말한다.”
베드로의 아내는 자기의 남편이 이렇게 칭찬 듣는 것을 듣자 너무 기뻐 거의 기절할 정도이다. 그녀는 조용히, 그러나 행복하게 베일 뒤에서 울고 있다.
베드로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마치 뇌졸중이라도 일으킨 것 같다. 그는 한 동안 잠자코 있다가 말한다.
“좋습니다. 그럼 저에게 상을 주십시오. 오늘 아침의 비유…”
다른 사도들도 베드로에게 가세하여 말한다.
“예, 당신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비유들은 사람들에게 비교들을 이해하게 하는 데 매우 유익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그 비유들에 비교 이상의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께서는 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왜냐하면 그들은 내가 설명하는 것 이상을 알아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너희는 내 사도들로서 신비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이 받는다. 그러므로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들을 이해하는 은혜가 주어진다. 그래서 나는 ‘만일 너희가 비유의 영(spirit)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에게 물어라’고 너희에게 말했던 것이다.
너희는 모든 것을 드리고, 그래서 너희가 다시 모든 것을 줄 수 있게 하려고 너희에게 모든 것이 주어진다. 너희는 애정, 시간, 이익들, 자유, 생명들을 하느님께 바치고 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 상 주시려고, 그리고 너희가 너희를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줄 수 있게 하시려고 너희에게 모든 것을 주신다. 준 사람은 더 풍성하게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만을 주었거나 전혀 주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도 빼앗길 것이다.
나는 그들이 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믿으려는 자기들의 의지가 비추어주는 것만을 알고, 그들이 귀 기울여 들으며 항상 믿으려는 동일한 의지를 통하여 듣고 이해하게 하려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한다.
보아라! 많은 사람들이 내 말을 듣지만, 소수만이 하느님을 고수한다. 그들의 영혼에는 착한 뜻이 없다.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 안에서 성취된다. ‘너희는 너희의 귀로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고, 너희의 눈으로 보아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이사42,20) 왜냐하면 이 백성은 마음이 완고하고, 귀먹었고, 눈이 감겨 있어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마음으로 깨달아 내가 그들을 고쳐줄 수 있도록 회개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그러나 너희의 눈은 보고 너희 귀는 듣기 때문에, 그리고 너희의 착한 뜻 때문에 너희는 복되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많은 예언자들과 많은 의인들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기를 갈망했지만 보지 못했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기를 갈망했지만 듣지 못했다. 그들은 말씀들의 신비를 이해하기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애태웠지만, 예언의 빛이 꺼지자마자 그 말씀들은 타고 남은 숯불처럼 남아 있었다. 그것들을 받은 성인의 경우에도 그러했다.
오로지 하느님만이 그분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느님의 빛이 사라지고, 신비를 비추는 목적이 성취되자마자, 이해불능성(the inability to understand)이 마치 미라의 붕대들처럼 받은 말씀의 핵심 진리를 에워싼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내가 너희에게 말했다. ‘내가 너에게 준 모든 것을 네가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은 네가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중에는 빛이 네 위에 임할 터인데, 그 빛은 잠깐 동안만 머무르려고 오시지 않고, 영원하신 영(the Eternal Spirit)과 네 영혼이 분리할 수 없도록 결합하려고 오실 것이고, 그것으로 인하여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네 가르침은 오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너뿐 아니라 네 후계자들도 그들이 하느님을 유일한 빵으로 삼아 살아간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이제 비유의 영(spirit)을 들어라.
우리는 네 종류의 밭들을 가지고 있다. 비옥한 밭들, 가시덤불 밭들, 돌밭들, 길들로 가득한 밭들이 그것들이다. 우리는 또한 네 가지 유형의 영혼들을 가지고 있다.
자기 자신들의 노력과 사도의 노력으로 인하여 준비된 정직한 영혼들, 착한 뜻을 가진 영혼들이 있다. 이때 사도란 ‘참다운’ 사도를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중에는 사도의 이름은 가지고 있지만 사도의 영혼은 가지고 있지 않은 사도들도 있기 때문인데, 그들은 형성 중에 있는 영혼에게 새들, 가시나무들, 돌들보다 더 치명적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관용성, 조급성, 비난들, 위협들로 사람들을 속상하게 하여 하느님에게서 영원히 멀어지게까지 한다. 반면 지나치고 부적절한 친절로 너무 무른 땅에서 씨앗이 썩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활력의 결여로 자기들이 돌보는 영혼들의 활력을 죽여버리기 때문이다.
이제 하느님의 빛나는 거울들인 진짜 사도들을 고찰해보자. 그들은 자기들의 주님처럼 아버지답고, 자비롭고 참을성 있고, 그와 동시에 강하다. 이제 그 사도들과 자기 자신들의 의지로 준비된 사람들은 돌들, 가시덤불들, 개밀들, 가라지가 없는 기름진 밭에 비유할 수 있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들 안에서 잘 자라고, 말씀의 씨앗들마다 이삭들이 패서 어디서는 100배, 다른 데서는 60배, 30배를 결실한다.
나를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있느냐? 물론 있는데, 그들은 성인들이 될 것이다. 그들은 모든 계급들과 모든 나라들 출신이다. 그중에는 이방인들도 있을 터인데, 그들은 자기들의 착한 뜻으로 인하여, 또는 그들 자신의 착한 뜻과 나를 위하여 그들을 준비시켜주는 사도나 제자의 착한 뜻으로 인하여 100배를 결실할 것이다.
가시덤불이 덮인 밭들은 부주의로 인하여 좋은 씨를 질식시켜 죽이는 개인적인 이해관계의 가시덤불이 자라도록 내버려둔 밭들이다. 너희는 줄곧 너희 자신을 살펴야 한다. ‘오! 나는 잘 함양되어 있다(well formed), 나는 씨 뿌려져 있다, 나는 영원한 생명의 씨앗들을 열매 맺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쉴 수 있다’는 말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 너희 자신들을 경계해라. 선악 간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너희는 어떤 집에 자리 잡은 개미떼를 본 적이 있느냐? 그놈들은 화덕 가까이에 있다. 그래서 주부는 모든 음식물을 거기 두지 않고, 식탁에 올려놓는다. 그놈들은 냄새를 맡고 식탁을 공격한다. 주부가 음식을 찬장에 넣으면, 그놈들은 열쇠구멍을 통하여 그리로 들어간다. 여인이 음식을 천장에 달아매면, 그놈들은 벽과 서까래를 따라 먼 길을 가서 끈을 타고 내려와 음식물에 다다른다.
여인은 개미들을 불태우고, 삶고, 독을 쳐서 죽인다. 그 여자는 그놈들을 박멸했다고 생각하고 안심한다. 오! 그러나 만일 그녀가 계속 감시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새로 부화된 개미들이 나오기 때문에 그녀는 이 모든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이것이 너희가 사는 동안에 일어나는 일이다. 너희는 항상 주의해야 하고, 악한 잡초는 돋아나오자마자 뽑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풀들은 가시덤불의 천장을 만들어 씨앗을 질식시켜 죽인다. 세상의 염려들, 기만적인 재물은 서로 뒤엉켜 하느님의 씨앗을 질식시켜 이삭이 패지 못하게 한다.
이제 돌이 가득한 밭들을 보자. 이스라엘에는 이런 밭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들은 내 사촌 유다가 아주 적절히 말한 것처럼 ‘율법들의 자녀’들의 밭들이다. 그들 안에는 하나인 증거의 돌판(the one Stone of the Witness), 율법의 돌판(the Stone of the Law)이 없다.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보잘것없는 시시한 인간적인 율법들의 채석장이 거기 있을 뿐이다.
그것들은 너무 많아 그것들의 무게로 율법의 돌을 부수어 돌조각들로 만들었다. 이것은 씨가 뿌리내리지 못하게 막는 재앙이다. 흙도, 양분도 없어 뿌리는 더 이상 영양을 섭취하지 못한다. 이 암반 위에 고여 있는 물은 씨앗을 썩게 하고, 해는 돌들을 달구고, 작은 식물들을 시들게 한다. 하느님의 단순한 가르침의 자리에 복잡한 인간적인 가르침들을 가져다놓는 사람들의 영혼들이 그렇다. 그들은 심지어 내 말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도 한다. 처음에는 내 말이 그들을 흔들어놓고, 그들의 마음을 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밭 즉 그들의 영혼과 마음에서 모든 그럴 듯한 말들의 돌들을 치우기까지 땅을 파려면 영웅적으로 일해야 할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씨가 뿌리를 내리고, 이삭이 팰 것이다. 그냥 내버려둔다면…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다.
사람들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나중에는? 유력자들이 나에게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불쌍한 씨앗은 영양분이 없어 시들어버릴 것이다. 사람이 자기가 받은 씨를 죽이는 데는 참된 계명을 대체하는 수백 가지의 인간적인 가르침들의 공허한 소리가 전체 채석장을 휘저어놓기만 하면 충분하다… 이스라엘은 이런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하느님께로 가는 것이 왜 인간의 권력과 반비례하는지를 설명해준다.
끝으로 길들로 가득한 먼지 나는 메마른 밭들이 있다. 세속적 이기주의자들의 밭들이다. 자신들의 안락이 그들의 법이고, 향락이 그들의 목적이다. 일하지 않고, 자고, 즐기고, 포식하는 것… 세상의 영이 그들의 왕이다. 세속성(worldliness)의 먼지가 곰팡이 핀 땅을 덮는다. 생활을 더 쉽게 하려고 만들어놓은 수많은 길로 주의산만(dissipation)인 새들이 달려든다. 세속의 영 즉 마귀의 영이 모든 관능성과 모든 방종함을 받아들이는 이 땅에 떨어진 모든 씨를 주워 먹고, 파괴한다.
너희는 알아들었느냐? 너희에게 질문들이 있느냐? 없다고? 그럼 우리는 가서 쉬고 내일 카파르나움으로 떠나자. 나는 파스카를 지내러 예루살렘 행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들러야 할 곳이 한 군데 있다.”
“우리는 다시 아리마태아로 지나갈 겁니까?”
가리옷 사람이 묻는다.
“그것은 확실하지 않다. 상황에 따라서는…”
대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시간에 누굴까?”
베드로가 대문을 열어주려고 일어서며 말한다.
요한이 들어온다. 그는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몹시 격앙되어 있는데, 그는 분명히 울고 있었다.
“자네가 여기를! 무슨 일인가?”
그들 모두가 외친다.
예수께서는 일어서서 이렇게만 물으신다.
“내 어머니께서는 어디 계시냐?”
그러자 요한은 마치 도움을 청하는 것처럼 자기의 양팔을 내밀고 앞으로 와서 선생님의 발 앞에 가서 무릎 꿇으며 말한다.
“당신의 어머니께서는 안녕하십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저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울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고장 쪽으로 요르단 강을 따라 오시지 말라고 당신께 부탁하십니다. 그분께서는 그것을 말씀드리도록 저를 이리로 되돌려 보내셨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종형 요한이 붙잡혔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울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당황한다.
예수께서는 얼굴이 몹시 창백해지지만, 흥분하지는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이렇게만 말씀하신다.
“서서 우리에게 말해라.”
“저는 당신의 어머니를 모시고 다른 여인들과 함께 남쪽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사악과 티모네오도 저희와 함께 있었습니다. 저희는 여자 세 사람, 남자 세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마리아 어머니를 요한에게 모시고 가라고 하셨던 당신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아! 당신께서는 그것이 그분들의 마지막 작별인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그분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어요… 며칠 전의 폭풍우로 인하여 저희는 잠시 지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요한이 마리아를 못 뵙게 되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저희는 정오에 도착했는데, 그분은 동틀 무렵에 체포되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그의 동굴에서?”
그들 모두가 묻는다. 그들 모두는 알고 싶어 한다.
“그분은 배신당했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배신하는 데 당신의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그런 추악한 짓을! 누가 그렇게 했대?”
그들 모두가 부르짖는다.
그러자 요한은 덜덜 떨며 공기조차 듣지 못하도록 속삭인다.
“그것은 그분의 제자들 중 한 사람…”
혼란이 극에 달한다. 어떤 사람들은 저주하고, 어떤 사람들은 울고, 어떤 사람들은 깜짝 놀라 화석처럼 굳어 있다.
요한은 예수의 목에 매달리며 외친다.
“저는 당신 때문에 무섭습니다!… 당신 때문에! 성인들에게는 돈 때문에, 돈과 실력자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보상의 유혹 때문에, 사탄에 대한 복종으로 자기 스승을 팔아넘기는 배신자들이 있습니다. 수천 가지 이유로! 오! 예수님! 예수님! 너무 끔찍합니다! 제 최초의 선생님! 저를 당신께 주신 내 요한!”
“그것은 괜찮다! 염려하지 마라! 지금 당장은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는요? 나중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저는 저 자신을 보고… 이 사람들을 봅니다. 저는 모두가 의심스럽습니다. 저 자신도요. 저희 중 한 사람이 당신의 배반자가 될까요?…”
“자네는 미쳤나? 그리고 자네는 우리가 그자를 갈기갈기 찢어놓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나?”
베드로가 외친다.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오! 자네는 정말로 미쳤구먼! 그것은 결코 내가 아닐 거야. 하지만 만일 내가 결국 배신할 정도로 약해진 것을 느낀다면, 나는 자살할 거야. 그것이 하느님을 죽이는 자가 되는 것보다는 나아.”
예수께서는 요한의 포옹에서 빠져나와 유다를 거칠게 흔드시며 말씀하신다.
“맹세하지 마라!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너를 약하게 할 수 없다. 그리고 설혹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너는 분명히 그것 때문에 울고, 하느님을 죽이는 죄에 더하여 다른 죄를 짓지 마라. 하느님과의 살아 있는 유대를 끊는 사람이 약해지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머리를 식탁에 얹은 채 울고 있는 요한에게 돌아와 말씀하신다.
“침착하게 말해라. 나 역시 그것으로 인하여 마음이 아프다. 그는 내 혈육이었고, 내 선구자였다.”
“저는 요한의 제자들 몇 명만을 보았을 뿐입니다. 비탄에 잠겨 있고 배신자에 대하여 격노해 있는 몇몇 제자들을요. 다른 제자들은 요한의 임종 시에 함께 있으려고 옥으로 그분을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죽지 않았어… 지난번에 그는 피신할 수도 있었어.”
요한을 아주 사랑하는 열성당원이 그를 위로하기 위하여 말한다.
“그분은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죽을 거야.”
요한이 대답한다.
“그렇다, 그는 죽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알고 있듯이 그도 그것을 알고 있다. 이번에는 어떤 것도, 누구도 그를 구해내지 못할 것이다. 언제냐고? 나는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그가 헤로데의 손아귀를 살아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예, 헤로데의 손아귀에서요. 들어보십시오. 요한은 우리도 갈릴래아로 돌아올 때에 지나온 에발 산과 그리짐 산 사이의 계곡 쪽으로 갔었답니다. ‘메시아가 그분의 원수들에게 공격받아 돌아가시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에게 비밀을 전하시기 위하여 당신을 보기를 원하십니다’라고 배반자가 그분에게 말했기 때문이었답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 배반자와 다른 제자 몇 사람과 함께 갔답니다. 헤로데의 무장병들이 골짜기 어두운 곳에 있다가 그분을 붙잡았답니다.
다른 제자들은 도망쳐서 헨논 근처에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했답니다. 제가 당신의 어머니와 함께 도착했을 때 그들도 막 도착했습니다.
소름끼치는 일 중 하나는 배반자가 우리 지방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잡으려는 음모를 주도한 사람들이 카파르나움의 바리사이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요한을 찾아가서 당신께서 자기들의 집에 손님으로 방문하셨고, 거기서 유다로 떠나려고 하신다고 말했답니다…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 관한 일이었다면, 그분은 은신처에서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한의 보고에 무거운 침묵이 이어진다. 예수의 얼굴은 핏기가 없고, 검푸른 눈에는 눈물이 어려 있다. 그분께서는 머리를 숙이시고 한 손은 여전히 요한의 어깨에 얹으신 채 거기 서 계시는데, 그분의 손은 가볍게 떨리고 있다. 아무도 감히 말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침묵을 깨신다.
“우리는 다른 길을 따라 유다로 간다. 그러나 내일 가능한 한 일찍 나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야 한다. 지금은 쉬어라. 나는 올리브 밭에 올라가겠다. 나는 혼자 있을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다른 말씀 없이 나가신다.
“그분께서는 틀림없이 울려고 나가시는 거야.”
알패오의 야고보가 속삭인다.
“형, 우리도 그분을 따라가자.”
유다 타대오가 말한다.
“아니야. 우시도록 그분을 내버려두게. 다만 조용히 가서 망을 보세. 나는 사방에 함정들이 있을까봐 걱정이네.”
열성당원이 대답한다.
“그래, 가세. 우리 어부들은 호숫가로 가세. 만일 누군가가 호수에서 온다면, 우리는 그를 보게 될 거야. 자네들은 올리브 밭으로 가게. 그분께서는 틀림없이 호두나무 옆 평소에 가시는 곳에 계실 거야. 일찍 떠나려면 우리는 새벽에 배를 준비해야 해. 저 뱀들! 제기랄! 내가 분명히 자네에게 말했지! 나에게 말해봐, 젊은이. 그런데… 그분의 어머니께서는 진짜로 안전하시나?”
“오! 그럼! 요한의 목자제자들도 그분의 어머니와 함께 갔었어. 안드레아… 우리는 다시는 우리의 요한을 볼 수 없게 됐어!”
“조용해! 꼭 뻐꾸기 울음소리 같군 그래. 한 놈이 먼저 울면 다른 놈이 또… 또…”
“제발! 조용히 해! 만일 자네들이 선생님의 불행들에 대하여 계속 말한다면, 나는 먼저 자네들부터 시작해서 자네들의 등짝에 내 노의 맛을 보여줄 거야!”
베드로가 몹시 화내며 소리친다. 베드로는 이어 올리브 밭으로 가기로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자네들은… 몽둥이들을 들고 있게. 굵은 나뭇가지들 말이야. 장작 헛간에 있으니 찾아봐. 그것들로 무장하고 흩어져 있게. 예수님을 해치려고 예수님 가까이 오는 첫 번째 놈은 죽여버려.”
“제자들! 우리는 새 제자들을 조심해야 해!”
필립보가 외친다.
새 제자가 속이 상하여 말한다.
“당신은 저를 의심하십니까? 그분께서 저를 택하셨고, 저를 원하셨는데요.”
“나는 당신을 의심하는 게 아니오. 나는 율법학자들, 바리사이들 그리고 그들을 숭배하는 자들을 말하는 거요. 거기서 문제가 생길 거요, 틀림없소.”
그들은 밖으로 나와서 어떤 사람들은 배들을 향하여 가고, 어떤 사람들은 야산의 올리브나무 밭으로 간다. 모든 것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