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인들/성 김대건 안드레아 16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스물한 번째 편지 (옥중서한3-마지막 회유문)

● 김대건 신부의 스물한 번째 편지 (마지막 회유문) 발신일 : 1846년 8월 말 (나이 26) 발신지 : 옥중 수신인 : 조선 신자들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천주 무시지시(無始之時)로부터 천지 만물을 배설(配設)하시고, 그중에 우리 사람을 당신 모상과 같이 내어 세상에 두신 위자(慰藉)와 그 뜻을 생각할지어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있어 쓸데없고, 비록 주은(主恩)으로 세상에 나고 주은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의 제자 되니 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을 무엇에 쓰며, 세상에 나 입교한 효험(效驗)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배주배은(背主背思..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스무 번째 편지(옥중서한2-투옥과정 설명)

● 김대건 신부의 스무 번째 편지 발신일 : 1846년 8월 26일 발신지 : 옥중 수신인 : 페레올 주교 (이 편지는 아주 얇은 한지에 붓으로 양면에 빈자리 없이 빽빽하게 라틴어로 쓴 것이다. 그 라틴어 원본은 유실되고, 페레올 주교가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만 보존되어 있다. 달레 신부는 자신이 저술한 한국천주교회사에 이 편지를 수록하였다.) 공경하올 주교님께 , 우리가 주교님을 떠나온 다음에 서울에서 일어난 일은 주교님께서 이미 자세히 아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여행 준비를 마친 후 닻을 올리고 순풍을 만나 무사히 연평 앞바다에 도착하여 보니 바다는 어선들로 덮여 있었습니다. 저의 일행은 생선을 사가지고 순위도 항구로 가서 되팔려고 하였으나 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선을 육지에 풀어놓고 사공..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열아홉 번째 편지(옥중 서한1)

● 김대건 신부의 열아홉 번째 편지 발신일 : 1846년 음력 6월 8일 (양력 7 월 30 일) 발신지 : 옥중 수신인 : 베르뇌, 메스트르, 리부아, 르그레주아 신부 예수 마리아 요셉 지극히 공경하올 베르뇌 신부님, 메스트르 신부님, 리부아 신부님, 르그레주아 신부님께, 지극히 공경하올 여러 신부님께 한 장의 편지를 드리게 되니 공경심이 모자라는 듯합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처해 있는 곳과 환경뿐 아니라 공경하을 신부님들께 대한 저의 정성과 애정이 이렇게라도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음력 3월경에 지극히 고귀하시고 공경하을 고 페레올 주교님이 분부하신 대로 저는 배를 타고 백령도에 갔습니다. 거기에 와 있는 중국 어선들을 통하여 여러 신부님께 보내는 라틴어 편지와 한문 편지를 전하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열일곱(상해), 열여덟번째(서울)편지

● 김대건 부제의 열일곱 번째 편지 발신일 : 1845년 7월 23일 발신지 : 상해 수신인 : 페레올 신부 예수 마리아 요셉, 조선 대목구장 페레올 주교님께 지극히 공경하올 주교님, 지극히 존엄하신 주교님께 벌써 편지를 올렸어야 했습니다마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분주하여 편지를 올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주교님께서 보내주신 편지는 영국 영사로부터 전해 받았습니다. 참으로 그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기쁨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공경하올 주교님의 분부를 받고 조선에 파견된 후 저는 하느님의 은혜로 무사히 입국하여 서울에서 신자들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그 동안 저는 병에 걸려 여러 차례 심하게 앓았습니다. 신자들은 지금 박해를 받지 않고 편안히 지내고 있습니다마는 목자가 없어 탄식하고 있습니다. 신자수가 나날이 증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열여섯 번째 편지(상해-항해중 풍랑)

● 김대건 부제의 열여섯 번째 편지 발신일 : 1845년 7월 23일 발신지 : 상해 수신인 : 리부아 신부 리부아 신부님께 지극히 공경하을 신부님, 저는 모든 준비를 끝낸 후 11명의 신자와 함께 배에 올랐습니다. 이들 가운데 4명만 사공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바다를 구경도 못한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모든 것을 비밀리에 급히 추진하다 보니 유능한 사공을 구할 수도 없었고 그 밖의 요긴한 물건들도 장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음력 3월 24일에 돛을 펴고 바다로 나아갔습니다. 신자들은 바다를 보고 매우 놀라면서 수군거렸으나 감히 저에게는 묻지 못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제가 하는 일에 대하여 질문하지 말라고 미리 금지해 두었던 때문입니다. 처음 하루 동안은 순풍을 만나 무사히 항해했으나 그후 갑자기 비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열세 번~열다섯번째 (짧은 편지)

● 김대건 부제의 열세 번째 편지 발신일 : 1845년 6월 4일 발신지 : 상해 수신인 : 리부아 신부 예수 마리아 요셉, 리부아 신부님께 공경하올 신부님, 저는 작년에 조선 대목구의 감목이신 공경하올 페레올 주교님으로부터 주교님의 선교지인 조선에 파견되었습니다. 지금은 조선 안의 준비를 끝내고 11명의 신자와 함께 배로 상해에 와 있습니다. 그리고 페레올 주교님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대단히 분주하여 많은 것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나중에 신부님께 조리있게 편지를 써서 올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공경하올 스승님께, 조선인 학생 김 안드레아가 올립니다. ● 김대건 부제의 열네 번째 편지 발신일 : 1845년 6월 4일 발신지 : 상해 수신인 : 페레올 주교 조선 대목구장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열두 번째 편지 (조선의 파벌에 대해)

● 김대건 부제의 열두 번째 편지 발신일 : 1845년 4월 7일 발신지 : 서울 수신인 : 리부아 신부 예수 마리아 요셉 리부아 신부님께, 조선 왕국의 대신들과 관장들 사이에는 어떤 계통, 즉 파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실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다만 공연한 이름만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 하나는 벽파(僻派)라 하고 하나는 시파(時派)라 하는데 서로 반대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이 두 파가 서로 대립하는 근본 이유는 각각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데 있습니다. 이 당파 싸움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았으나 지금은 가법게 볼 수없는 문제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 파 사이에는 시기와 비난, 논쟁과 학살 등이 연출되어 서로 도발하고 고발하여 내몰고 귀양 보내기에 급급합니다. 그들 당파는 다시 노론(老論)..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열한 번째 편지 (서울, 순교하신 신부님들에 대해)

● 김대건 부제의 열한 번째 편지 발신일 : 1845년 4월 6일 발신지 : 서울 수신인 : 리부아 신부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리부아 신부님께 공경하올 신부님 제가 중국에 있을 때 몇몇 주목할 만한 사람으로부터 들은 말로는 조선에 계신 신부님들이 포졸들에게 자수한 것은 올바르게 행한 것이 아니었고, 또 신자들이 배반자를 제외하고 마치 신부님들을 경멸하고 저버린 사람들처럼 비난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부님들과 신자들이 처해 있던 주변 환경이 어떠했는지를 주목하고 인식한다면 어김없이 그들의 운명을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신부님들은 체포될 위험에 놓여 있었고, 또 탈출하기가 윤리적으로 불가능하였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은 박해와 굶주림에 억눌려 있었고 그들은 거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열 번째 편지 (서울에서, 조선 입국 보고)

● 김대건 부제의 열 번째 편지 발신일 : 1845년 3월 27일 발신지 : 서울 수신인 : 리부아 신부 리부아 신부님께, 지극히 공경하올 신부님, 신부님이 아시는 바와 같이 작년에 지극히 존경하올 페레올 주교님을 모시고 몽고를 출발하여 변문까지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도착하였습니다. 거기에는 조선에서 온 신자들이 이미 도착하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교님께 담당 선교지인 조선에 입국하는 데는 난관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주교님은 저를 먼저 조선에 파견하시어 제가 조선의 정세를 살펴보고 그 가능성 여부에 따라 주교님의 입국을 주선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페레올 주교님의 강복을 받고 한밤중에 신자들을 따라 출발하여 해질 무렵에 의주 읍내가 바라보이는 곳까지 왔습니다. 거기에 이르러 연락원들에게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여덟 번째, 아홉번째 편지 (몽고 소팔가자)

● 김대건 신학생의 여덟 번째 편지 발신일 : 1844년 5월 17일 발신지 : 몽고 소팔가자 수신인 : 리부아 신부 예수 마리아 요셉. 리부아 신부님께. 지극히 공경하올 신부님, 5월 15일부로 신부님께서 보내주신 편지를 아주 반가운 마음으로 탐독하였습니다. 작년 음력 3월과 9월경에 장상(메스트르 신부)의 분부대로 저는 다시 변문으로 가서 조선에서 보내온 소식을 받아왔습니다. 조선에 있는 신자들은 지금 평화를 누리고 있으나 목자들이 아니 계셔서 암흑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고 합니다. 박해자인 대비(純元王后)는 아직 생존해 있고 왕(憲宗)은 정신병에 걸려 때때로 정신착란을 일으킨다는 소문이 퍼져 있습니다. 지금 계획으로는 만일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어떤 신자 가족을 의주(義州)로 이사시켜서 조선에 입국..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일곱 번째 편지 (여섯번째 편지에 추가보충)

● 김대건 신학생의 일곱 번째 편지 발신일 : 1843년 2월 16일 발신지 : 요동 백가점 수신인 : 리부아 신부 예수 마리아 요셉, 리부아 신부님께. 지극히 공경하올 신부님, 먼저 써넣은 편지를 아직 보내지 못하였으므로 새로 들은 소식을 추가하여 동봉합니다. 12월 23일에 메스트르 신부님이 안배하신 대로 4일이 걸려 아무런 장애 없이 변문에 도착하였습니다. 조선에서 온 연락원 김 프란치스코는 벌써부터 변문에 도착하여 여러 날을 머무르면서 우리와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중국인 안내자들이 오지 않을 줄로 알고 외교인 친구들의 호의와 후원으로 그들을 수행하여 중국에 들어갈 허가를 얻어, 북경으로 들어가는 일행 명단에 올라 조선 임금님이 보내는 사신 일행과 함께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여섯 번째 편지(세분 신부님들과 부모의 순교를 알림)

● 김대건 신학생의 여섯 번째 편지 발신일 : 1843년 1월 15일 발신지 : 요동 백가점 수신인 : 르그레주아 신부 (여섯 번째 편지와 일곱 번째 편지의 일부 내용이 중복되어 있으나 편지를 받는 분이 다르다.) 예수 마리아 요셉, 지극히 공경하올 르그레주아 신부님께. 지극히 공경하올 신부님, 저는 계획대로 12월 23일에 떠나 나흘 후에 아무런 장애 없이 변문에 도착하였습니다. 변문에서 멀지 않는 곳을 지나가다가 길에서 굉장히 큰 무리를 거느리고 북경으로 들어가는 조선 임금님의 사신 일행을 만났습니다. 하느님의 안배로 그 일행 중에 김 프란치스코라는 조선의 연락원이 저에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저도 그를 모르고 그 역시 저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제가 그에게 신자냐고 물었더니 그가 그렇다고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