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천주교로 개종하였는가?-개종실화 25

개종실화 - 「개종실기」 개정판을 내면서(이범주바오로 신부)

나는 왜 천주교로 개종하였는가? 개종실화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에페 4,3-4) 「개종실기」 개정판을 내면서 개신교 계통의 학교에 다니던 중학교 2학년 성탄 때 영세를 하고, 중학교 3학년 때 「18인의 개종실기」 책을 읽으면서 큰 감명을 받았다. 이 책을 통하여 개신교에서 비난하던 천주교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개신교 신자들과 신앙에 대하여 토론을 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 때에는 개신교 학교에서 천주교 신앙을 전하고자 서클을 만들기도 하였다. 또한 중학교 3학년 때 개종실기를 읽으면서 「교부들의 신앙」이란 책이..

1. 일두다체(一頭多體)는 불가능 - 마르타 신학생 유영복

'개종실화-나는 왜 천주교로 개종하였는가?' 1. 일두다체(一頭多體)는 불가능 전 마르타 신학교 3년생 유영복 크리스티나 1910년 출생, 1940년-1942년 원산 장로교 마르타 신학교 재학 1941년, 나는 함경남도 원산 명석동 ‘마르타 월손’ 여자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천진스러운 학생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믿고 있는 장로교가 진정한 종교라고 믿어 왔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그처럼 교리를 중대시하여 반대자들을 사정없이 파문해 버리는 엄격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던들 오늘의 그리스도교 정신은 어떤 시대, 어떤 물결에 흘러갔을는지 그 흔적을 찾아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우리가 로마 가톨릭 교회에 감사의 뜻을 표시해야 한다. 그 후 내 생각은 더욱 파고 들어간다.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

2. 진정한 종교는 하나뿐 - 전 장로교 영수 윤석근

'개종실화-나는 왜 천주교로 개종하였는가?' 2. 진정한 종교는 하나뿐 전 장로교 영수(領袖 : 어떤 조직의 대표를 뜻하는 것으로, 한국 초대 장로교회에서 조직이 갖추어지기 이전에 사용된 명칭) 윤석근 1910년 11월 23일생, 1936년 피어선 고등성경학원 졸업, 1954년 영세입교 세상에는 정사(正邪 : 바른 일과 사악한 일)가 있고 진위(眞僞 : 참과 거짓. 또는 진짜와 가짜)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들 인식하고 있는 바이다. 여기에 정사, 진위의 구별과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종말과 결실을 보고서는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농작물을 보건데 벼에는 피가 있고 조에는 가라지가 있고 보리에는 깜부기가 있다. 또한 사물에도 정사와 진위가 있어 처음에는 분..

3. 인조교회(人造敎會)의 분열은 불가피 - 권영규

'개종실화-나는 왜 천주교로 개종하였는가?' 3. 인조교회(人造敎會)의 분열은 불가피 권영규 1929년 10월 8일생, 1952년 국립대구사범대학 영문학과 졸업 나는 중학교 재학 시에 기독교에 대하여 큰 흥미를 가져 그로부터 나오는 각종 출판물을 읽고 인생 문제 해결에는 기독교 밖에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가톨릭교에 대해서는 삐뚤어진 지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으며 무조건 비현실적인 케케묵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대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 줄로만 알았다. 그리하여 사범대학 전문부 1학년 학생의 몸으로 아무 인도자 하나 없이 홀로 찾아 문을 두드린 곳이 대구 봉산동 성결교회였다. 그때는 프로테스탄트에 그렇게나 많은 교파가 있는 줄도 몰랐으며, 그저 열심히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배우고 해서 제법 ..

4. 사도 교회는 어디 있나? - 장로교 목사 이석락

'개종실화-나는 왜 천주교로 개종하였는가?' 4. 사도 교회는 어디 있나? 이석락 아우구스티노 1895년 5월 2일 출생, 1929년 3월 23일 조선 예수교 장로회 목사 피임, 1932년-1935년 중국 봉천성 조선 기독교회 목사 피임, 1935년 9월 20일 중국 봉천성 남만 의과대학 이학박사 학위 1. 교파와 직책 나는 여덟 살(1902년) 때 예수교 장로파 교회에 입교하고 그 교회의 소학교, 대구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그 교회의 장로가 되고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그해(1929년)에 목사에 임명되어 대구 성경학교 교감과 경북 장로회 종교교육부 총무, 1930년에 장․감 연합교회 주일학교 연합회에 시무하였다. 그리고 1931년에 전조선 예수교 장로회 총회 종교교육부 총무로 있다가 만주사변 전후에 중국..

5. 교파전전 이십여 년 - 김재천

'개종실화-나는 왜 천주교로 개종하였는가?' 5. 교파전전 이십여 년 김재천 1902년 4월 17일 출생, 1933년 의사시험 합격 내가 열교에서 가톨릭으로 귀정하기까지는 이십여 년을 장로교에서 조선기독교회로, 조선기독교에서 오순절교회로, 오순절교회에서 성결교회로 이렇게 여러 교회로 전전하면서 긴 세월을, 믿는다기보다 고민으로 지내왔던 것이다. 그뿐인가! 때로는 감리교회, 일본 감리교회에도 나가 보고, 일본의 유명한 가가와 우찌무라 등의 저서를 밤을 새워 읽은 일도 있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중심 사상이 없는 사람, 변덕스러운 사람이라고 비웃기도 하였을 것이다. 나는 주일학교 교사, 기독청년회장 등의 직책을 맡고 교인들의 총망을 받으며, 권함을 이기지 못하여 때로는 강단에 나서서 설교도 한 일이 있다. ..

6. 신앙의 회의를 넘어서 - 서울 감리교 신학교생 김창수

'개종실화-나는 왜 천주교로 개종하였는가?' 6. 신앙의 회의를 넘어서 전 서울 감리교신학교생 김창수 1926년 12월 8일 출생, 1946년 평양 성화신학교 입학(본과) 1949년 4월 광주 초월면 신양리 교회 시무 1950년 10월 천주교로 개종 준희 양! 편지 정말 반가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양을 본 지도 어느새 두 해 가까웠군요. 평양을 떠난 지 여섯 해만에 뜻하지 않은 곳 부산에서 양을 만난 것은 2년 전 늦은 가을이었나 봅니다. 양은 그때 반갑게 인사를 하자마자 “선생님은 비겁해요. 무엇 때문에 개종을 하셨나요?” 첫마디로 이런 질문을 하였지요. “글쎄, 그야 물론 개종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었지요.” 할 뿐 의미 있게 웃어 보이는 것으로 쏘아붙이는 물음에 답을 미루어 버렸던 것 같소. ..

7. 루터는 신신학파(新神學派)의 시조

'개종실화-나는 왜 천주교로 개종하였는가?' 7. 루터는 신신학파(新神學派)의 시조 전 장로교 신학교 졸업 유을준 1915년 8월 11일 출생, 1943년 일본 동경 제국대학 의학부 전공과 졸업 1946년 장로교 조선 신학교 학부 입학 1950년 4월 장로교 대한 신학교 졸업(목사 후보생) 1950년 5월 27일 천주교로 개종하여 영세 내가 천주교에 귀정한 것은 하루아침에 된 것도 아니었고 단순한 동기로 돌변한 것도 아니었다. 실로 여러 해를 지나는 동안 몇 가지 문제를 연구할 때 만족한 해답을 얻지 못함에 따라 정신상 불안이 하나씩 둘씩 늘어갔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비판적으로 나가게 되었다. 이제 생각나는 대로 그 대강을 적어 보자. 내가 천주교를 전연 모르고 있던 조선신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

8. 진정한 종교와 권위의 필요 - 장로교 영수의 아들 김한규

'개종실화-나는 왜 천주교로 개종하였는가?' 8. 진정한 종교와 권위의 필요 장로교 영수의 아들 김한규 1908년 4월 12일 출생 나는 지금 47세인데 장로교 영수(領袖 : 어떤 조직의 대표를 뜻하는 것으로, 한국 초대 장로교회에서 조직이 갖추어지기 이전에 사용된 명칭)의 아들이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구한 말년에 예수교(열교)를 믿기 시작하여 용인 아실리 장로교회 영수셨다. 우리 집이 기도처가 되어서 미국인 도마련 목사와 유흥렬 조사와 오근영 장로와 황희철 권사가 일 년에 몇 번씩 다녀갔다. 그때만 해도 마을 사람들의 비방이 심했다. 내가 8, 9살 때 마을 글방에 한문을 배우러 다녔는데 동무들이 ‘예수쟁이! 조상의 제사 안 지내는 놈!’ 하고 조롱하고 비방이 심하여 울기도 많이 하였는데 이런 단련을..

9. ‘믿음으로만’은 캄플주사 - 복음교회 목사 서창제

'개종실화-나는 왜 천주교로 개종하였는가?' 9. ‘믿음으로만’은 캄플주사 전 복음교회 목사 서창제 1899년 7월 6일 출생, 1932년 - 49년 조선 기독교 복음교회 목사 봉직 개종의 동기 몇 가지 1. 루터의 ‘믿음으로만 구원 얻을 수 있다.’는 이단적 교설에 속아 헛된 평안을 누리던 나는, 자칫하면 지옥의 자식이 될 뻔했다. 이 헛된 평안이 무너지는 그날, 나는 진리의 기둥인 성교회에 달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바 ‘죽은 믿음’의 헛된 평안 수십 년! 나는 정말 기막히게 어두운 자였다. 부산 피난 삼 년 동안에는 프로테스탄트 목사인 나였지만 소위 예배당에는 나가지 않았다. 왜 그랬는가? 암만해도 프로테스탄트의 에배는 천주께 드리는 예배라 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기껏해야 성서고전 강연..

10. 악선전에서 반동 - 장로교 배정효

'개종실화-나는 왜 천주교로 개종하였는가?' 10. 악선전에서 반동 배정효 1888년 2월 9일 출생, 1932년 장로교에 입교, 1936년 천주교로 개종 입교 나는 금년 67세로서 42세에 장로교에 입교하여 참교로 알고 열심히 신봉하였다. 한번은 진해읍 경화동 예배당에서 강 목사의 강론을 들으니 “천주교라는 교가 있는데 이전 로마 구교요, 그 교는 우상을 숭배하고 술 먹고 담배를 피우고 주색잡기 등 맘대로 죄를 짓고는 신부 앞에 가서 돈만 주면 죄를 사하여 준다 하니 그렇게 해서야 천당 갈 수 있느냐?”고 하면서 특별히 비평을 하였다. 그래서 본인이 그 목사에게 “그러면 천주교에도 성경책이 있느냐?” 하고 물으니 “성경은 있으나 주일마다 절수만 한 조목씩 빼어주고 거룩한 성경을 교인들에게는 주지 않고 ..

11. 성경을 더 연구하러 - 평양고등성경학교 졸업생 홍은순

'개종실화-나는 왜 천주교로 개종하였는가?' 11. 성경을 더 연구하러 전 평양고등성경학교 졸업생 홍은순 1943년 3월 평양 여자 고등성경학교 졸업, 개성 감리교 동문내 교회 취무 1946년 한국 순교복자 수녀회 입회 개종한 지도 10년이 가까운 데다가 과거 25년간이나 신봉하던 교회를 참 진리로 인하여 떠나는 왔으나, 애착심은 너무나 굳고 두터워 이 마음을 물리치려고 애도 써왔고, 게다가 남다른 수도생활에 투신하고 보니 그날그날의 생활에 골몰하여 머리에 몇 가지나 남아 있는지 살펴보아야 알 지경이다. 개종 당시라면 어떤 사실이라든가 연월도 명백하였겠으나, 이제는 그나마도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 오로지 내가 찾은 이 길에 만족감은 깊어 가고 열교에 대한 정은 추호도 남음이 없는지라 글로써 발표한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