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1권 복음준비

하사시 1권 p165~p173 [29. 우리 주 예수의 탄생]

Skyblue fiat 2024. 11. 6. 20:40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1권 복음준비 165p ~173p

 

※ 통독한 뒤 마음에 세길 구절 1~2개를 나눕니다.
 


29. 우리 주 예수의 탄생

1944. 6. 6.
 
나는 여전히 마리아와 요셉이 몇 마리의 동물들과 거처를 공유하며 체류하고 있는 그 초라한 암석 동굴의 내부를 보고 있다.

작은 모닥불도 졸고 있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도 졸고 있다. 마리아는 자신의 잠자리에서 천천히 머리를 들고 주위를 둘러본다. 그녀는 마치 묵상하고 있는 듯 머리를 자기의 가슴 위로 숙이고 있는 요셉을 보고, 깨어 있겠다는 그의 착한 뜻이 피로에게 꺾였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녀는 우아하게 미소 짓고는 장미꽃에 내려앉는 나비보다 더 조용하게 일어나 앉은 다음에 무릎을 꿇는다. 그녀는 얼굴에 복된 미소를 띠고 기도드린다. 그녀는 팔을 거의 십자 모양으로 손바닥들을 위로 한 채 앞으로 뻗고 기도하는데, 그 자세로도 결코 피로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녀는 훨씬 더 열렬하게 기도에 몰입하여 건초에 얼굴을 대고 엎드린다. 긴 기도이다.
 
요셉은 잠에서 깨어난다. 그는 불이 거의 꺼져 마구간이 거의 어두운 것을 본다. 그가 아주 가는 헤더 한 줌을 불속에 던지자 불꽃들이 되살아난다. 그 다음에 그는 좀 더 큰 가지들을 얹고, 마지막으로 막대기들을 얹는다. 왜냐하면 사방에서 이 폐허 안으로 파고드는 고요한 겨울밤의 추위가 참으로 살을 에기 때문이다. 가엾은 요셉은 문―만일 우리가 요셉의 겉옷이 커튼 노릇을 하는 그 구멍을 이렇게 부를 수 있다면―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꽁꽁 얼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는 불에 자기의 양손을 녹인 다음 샌들을 벗어 자기의 두 발을 녹인다. 불이 잘 타고 있고, 불빛이 환해지자 그는 뒤돌아본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칙칙한 건초 위에 밝은 선을 그어놓았던 마리아의 흰 베일조차 보지 못한다. 그는 일어나 천천히 그녀의 초라한 침상으로 간다.
 
“마리아, 당신은 자지 않고 있소?”
그가 묻는다.
그가 세 번이나 묻자, 그녀가 돌아보며 대답한다.
“저는 기도드리고 있어요.”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없소?”
“없어요, 요셉.”
“잠을 청해 잠시라도 자도록 해보오. 적어도 눈을 붙이고 쉬기라도 해요.”
“저는 그렇게 해보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기도로 피로해지지는 않아요.”
“하느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시기를, 마리아.”
“당신과도요, 요셉.”
 
마리아는 원래의 자세로 돌아간다. 요셉은 잠에 떨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불 곁에서 무릎 꿇고 기도드린다. 그는 양손으로 자기의 얼굴을 가리고 기도하다가 가끔씩 불에 나무를 얹을 때 손을 뗀 다음에 다시 열렬한 기도를 시작한다. 나무들이 갈라지며 탁탁 튀는 소리와 이따금씩 땅바닥을 차는 나귀의 굽 소리 외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가느다란 달빛 한 줄기가 천장의 갈라진 틈을 통하여 들어오는데, 그것은 마리아를 찾는 기이한 은빛 칼날처럼 보인다. 달이 하늘에서 더 높이 올라감에 따라 그 빛은 점점 더 깊이 비추더니 마침내 그녀에게 이른다. 지금 그것은 그녀의 머리 위에 있다. 그것은 거기서 깨끗한 빛의 후광을 만든다.

마리아는 마치 천상의 부르심을 듣기라도 하듯 머리를 들고 일어선 다음 다시 무릎을 꿇는다. 오! 지금 이곳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녀는 머리를 드는데, 그녀의 얼굴은 흰 달빛 안에서 빛나며 초인간적인 미소에 의하여 변모한다. 그녀는 무엇을 보는가? 무슨 소리를 듣는가? 무엇을 느끼는가?
 
그녀는 자기의 모성의 광휘의 시간에 자기가 보았고, 들었고, 느꼈던 것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나는 빛이 그녀의 주위에서 점점 더 밝아지고 있다는 것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 같고, 그녀 주위의 보잘것없는 것들로부터 올라가는 것 같고, 특히 그녀 자신으로부터 발해지는 것 같다.

그녀의 군청색 옷은 지금 물망초와 같은 연한 하늘빛인 것처럼 보이고, 그녀의 손들과 얼굴은 마치 그것들이 거대한 연한 사파이어의 환한 빛 아래 있는 것처럼 맑고 푸르러지고 있는 것 같다. 이 빛깔은 그녀 주위의 사물들에 점점 더 퍼져나가고, 그것들을 덮고, 그것들을 정화시키고, 모든 것을 비춘다. 그것은 비록 약간 더 연하기는 하지만 거룩한 낙원의 환시에서 보았던 빛깔과, 동방 박사들의 방문 시에 내가 보았던 색깔도 나에게 상기시킨다.

그 빛은 마리아의 몸으로부터 점점 더 강렬하게 발산되어 달빛을 흡수한다. 그녀는 하늘로부터 내려올 수 있는 모든 빛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 지금 그녀는 빛의 수탁자(the Depositary of the Light)이다. 그녀는 이 빛을 세상에게 주게 될 것이다. 지금 주어지려고 하는 이 복되고, 걷잡을 수 없고, 헤아릴 수 없고, 영원하고, 신성한 이 빛은 새벽에 의하여, 새벽별에 의하여, 조류처럼 끊임없이 증가하고, 향처럼 점점 더 올라오고, 큰 물줄기처럼 내려가고, 베일들처럼 펼쳐지는 빛의 원자들의 합창에 의하여 전달된다…
 
틈들, 거미줄들, 물리학의 기적에 의하여 균형 잡힌 돌출한 돌무더기들로 가득한 천장, 검고 그을린 혐오감을 일으키는 천장이 지금은 왕궁의 천장처럼 보인다. 돌덩이마다 은괴와 같고, 틈들마다 오팔 빛이며, 거미줄마다 은과 금강석들로 짜인 지극히 값진 캐노피와도 같다. 두 개의 돌들 사이에서 동면하고 있는 거대한 초록 도마뱀은 어떤 여왕이 거기 두고 잊어버린 에메랄드 목걸이처럼 보이고, 동면하고 있는 한 무리의 박쥐들은 값진 마노 샹들리에와도 같다. 구유 상단의 건초는 더 이상 풀잎들이 아니다. 그것은 풀어헤친 머리카락처럼 우아하게 공중에서 흔들리고 있는 순수한 은실들이다.

구유 하단의 검은 나무는 마광한 은괴이다. 벽들은 양단으로 덮여 있는데, 흰 비단은 양각의 진주 수예품 아래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땅바닥은… 지금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흰 빛으로 불 붙여진 수정이다. 그 돌출부들은 땅에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던져진 장미꽃들과도 같다. 구멍들은 향기들과 좋은 냄새들을 풍기는 귀중한 잔들이다.
 
빛은 점점 더 환해진다. 지금 눈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 동정녀는 그토록 환한 빛 속에서, 마치 백열하는 베일에 빨려 들어가듯이 사라진다… 그러고 나서 어머니가 나타난다.
그렇다. 빛이 내 눈에 견딜 만하게 되었을 때, 나는 마리아가 갓난 아들을 품에 안고 있는 것을 본다. 장미꽃 봉오리들만큼 큰 손들로 꼼지락거리고, 장미꽃 속에도 들어갈 수 있을 작은 발들로 버둥거리는 분홍빛의 토실토실한 작은 아기, 작은 나무딸기를 닮은 예쁜 작은 입을 벌리고, 장밋빛 입천장에서 떨리는 작은 혀를 보이며 갓 난 어린양과 똑같이 떨리는 목소리로 우는 아기.

그는 어찌나 금발인지 머리카락이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작고 동그란 머리를 움직인다. 그의 엄마는 그의 작은 머리를 자기의 한 손의 움푹 파인 곳으로 받쳐 들고, 동시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자기의 아기에게 경배하고, 그의 순결한 머리가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뛰고 있는 그의 작은 심장 아래 그의 가슴 한가운데에, 어느 날 상처 그 자체가 될 곳에 입 맞추려고 고개를 숙인다… 그리하여 그의 어머니는 자기의 티 없는 이의 입맞춤으로 그 상처를 미리 싸매주고 있다.
 
환한 빛 때문에 잠에서 깬 황소는 요란하게 굽 소리를 내며 큰 소리로 운다. 나귀도 머리를 돌리고 운다. 그놈들은 빛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나는 그놈들이 자신들을 위하여, 그리고 모든 동물들을 대표하여 그들의 창조주께 인사드리기를 원했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자기의 주위의 사물들에서 초연할 정도로, 거의 황홀경에 빠져 열렬하게 기도하고 있었던 요셉도 지금 정신을 차리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자기의 손가락들 사이로 이상한 빛이 걸러져 들어오는 것을 본다. 그는 자기의 손들을 내리고 머리를 들고 돌아선다. 서 있는 황소에 가려 마리아가 보이지는 않지만, 그녀는 그를 부른다.
“요셉, 오세요.”

요셉이 서둘러 간다. 그가 그 광경을 보자 경외심에 강타되어 걸음을 멈추고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무릎 꿇으려고 한다. 그러나 마리아가 재촉한다.
“오세요, 요셉.”

그녀는 자기의 왼손으로 건초를 짚고 오른손으로는 아기를 자신의 가슴에 밀착시켜 안으며 다가오려는 갈망과 불경스러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이에서 망설이며 쑥스러워하며 걷고 있는 요셉을 향하여 간다.
그들은 지푸라기 잠자리의 발치에서 만나 기쁨에 겨워 울며 서로를 바라본다.
 
“오세요. 예수를 아버지께 바칩시다.”
마리아가 말한다.

요셉이 무릎 꿇는 동안에 그녀는 천장을 받치고 있는 두 나무줄기들 사이에 서서 두 팔로 자기의 아기를 쳐들고 말한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오, 하느님, 저는 아기를 대신하여 당신께 이 말씀들을 말씀드립니다. 
당신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제가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아기와 함께 저 마리아와 제 남편 요셉도 여기 있습니다. 오, 주님, 당신의 종들이 여기 있습니다. 당신의 뜻이 당신의 영광과 당신의 사랑을 위하여 모든 시간에, 모든 사건들 안에서 항상 저희에 의하여 행해지기를.”
 
그 다음에 마리아는 몸을 숙이고 말한다.
“요셉, 여기 있어요. 이 아기를 받으세요.”
마리아가 아기를 요셉에게 준다.
“뭐라고요! 나!… 나에게?… 오! 아니오! 나에게는 자격이 없소!”
요셉은 하느님을 만져야 한다는 생각에 완전히 망연자실해 있다.

그러나 마리아는 미소 지으며 고집한다.
“당신에게는 자격이 충분해요. 당신보다 더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당신을 택하셨어요. 요셉, 아기를 받으세요. 그리고 제가 배내옷을 찾는 동안에 안고 계세요.”
 
요셉은 거의 자줏빛이 될 정도로 얼굴을 붉히며 자기의 양팔을 내밀어 아기를 안는다. 아기는 추위로 인하여 울고 있다. 그가 아기를 안았을 때 그는 경외심으로 인하여 아기를 자기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로 안고 있으려는 생각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는다. 그는 아기를 가슴에 안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오! 주! 나의 하느님!”

그는 아기의 작은 발들에 입 맞추려고 고개를 숙이다가 그것들이 꽁꽁 얼어 있는 것을 느낀다. 그러자 그는 땅바닥에 앉아 자기의 가슴에 아기를 꼭 껴안는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갈색 튜닉과 두 손으로 아기를 가려 그를 따뜻하게 해주고, 몹시 차가운 밤바람을 막아주려고 애쓴다.

그는 불 옆으로 가고 싶지만, 문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이 있어 자기가 지금 있는 곳에 그대로 있는 편이 낫다. 아니다. 바람을 막아주고, 온기를 발산하는 두 동물들의 사이로 가는 편이 더 낫다. 그래서 그는 황소와 나귀 사이로 가 자기의 등을 문 쪽으로 돌리고, 갓난아기 위로 자기의 몸을 숙여 피난처를 만든다. 그 공간의 양쪽은 긴 귀들과 김을 내뿜는 코와 온유한 부드러운 눈들과 커다란 흰 입을 가진 회색의 머리들이다.

마리아는 궤를 열고 기저귀들과 강보들을 꺼내 그것들을 덥히려고 불 옆으로 갔다. 그녀는 지금 요셉을 향하여 간 다음 미지근해진 속옷을 아기에게 입히고, 자기의 베일로 아기의 작은 머리를 감싸준다.
 
“지금 우리는 아기를 어디에 눕힐까요?”
그녀가 묻는다.
요셉은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하다가… 말한다.

“기다려요. 짐승들과 그놈들의 꼴을 저 너머로 밉시다. 그 다음에 우리는 위에 있는 건초를 아래로 끌어내려 그것을 여기 펼쳐놓읍시다. 이 구유의 옆면이 아기에게 바람을 막아줄 것이고, 건초는 베개로 쓰일 것이고, 황소는 그 입김으로 아기를 약간 따뜻하게 해줄 거요. 황소가 나귀보다 나아요. 소는 참을성이 더 많고, 조용하니까요.”

요셉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에 마리아는 아기를 자기의 가슴에 꼭 껴안고 어르며, 그의 작은 머리를 따뜻하게 해주려고 자기의 뺨을 가져다댄다.
 
그는 불꽃이 활활 타오르게 하기 위하여 지금은 나무를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건초를 불에 쬐어서 말리고, 다시 차가워지지 않게 하려고 그것을 가슴에 댄다. 그 다음에 그는 아기의 요를 만들 만큼 건초를 넉넉히 모았을 때 구유로 가서 가지런히 정리하여 요람처럼 만든다.

“자, 준비되었소. 지금 우리에게는 담요 한 장이 필요해요. 아기가 건초에 찔리지 않게 해야 하고, 아기를 덮어주기도 해야 하니까요.”
“제 겉옷으로 하세요.”
마리아가 말한다.

“당신이 추울 텐데.”
“오! 그건 괜찮아요. 담요는 너무 거칠어요. 겉옷이 부드럽고 따뜻해요. 저는 전혀 춥지 않아요. 아기가 더 이상 고통당하지 않게 해야 해요.”

요셉은 부드러운 모직의 넓은 군청색 겉옷을 집어 두 겹으로 접어 건초 위에 깐다. 그 겉옷의 한 자락이 구유 밖으로 나와 있다. 구세주의 최초의 침대가 준비되었다.

어머니는 우아하고 날렵한 걸음걸이로 구유로 가서 아기를 그 안에 내려놓고 자기의 겉옷자락으로 아기를 덮어준다. 그녀는 건초에 거의 파묻힌 아기의 맨 머리 주위도 그것으로 감싸준다. 어른의 주먹만큼의 크기의 작은 얼굴만이 덮이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마리아와 요셉은 구유 위로 몸을 숙이고 아기가 그의 최초의 잠을 자는 것을 들여다보며 몹시 기뻐한다. 옷들과 건초의 온기가 아기의 울음을 그치게 하여 아기를 잠재웠다.
 
 
마리아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그가 자기의 평화를 너에게 가져다주러 올 것이라고 너에게 약속했었다. 너는 네가 성탄 날 내 아기와 함께 있는 나를 보았을 때 네가 누렸던 평화를 기억하느냐? 그렇다면 그때는 네 평화의 때였다. 지금은 네 고통의 때이다. 그러나 너는 지금 우리가 고통을 통하여 우리 자신들과 우리의 이웃들을 위한 평화와 모든 은총을 얻는다는 것을 안다. 사람 예수(Jesus-Man)는 그의 수난의 엄청난 고통을 겪고 나서 하느님 예수(Jesus-God)가 되었다.

그는 다시 한 번 평화가 되었다. 그가 떠나왔던 하늘, 세상에서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가 지금 그의 평화를 퍼부어주는 하늘로부터의 평화 말이다. 그러나 그의 수난의 시간들에 세상의 평화인 그는 그 평화를 빼앗겼었다. 만일 그가 평화를 소유하고 있었다면, 그는 고통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고통당해야 했다. 끝까지 극심하게 고통당해야 했다.
 
나 마리아는 나의 신적 모성을 통하여 여인을 구속했다. 그러나 그것은 여인의 구속의 시작일 뿐이었다. 나는 내 동정서원에 따라서 인간적인 혼인을 거절함으로써 모든 음란한 만족들을 거절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을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충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와의 죄는 네 개의 가지들이 있는 나무였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교만(pride), 인색(avarice), 탐욕(gluttony), 음란(lust)이었다. 그런데 그 네 가지들 모두는 나무의 뿌리들을 메마르게 하기 전에 잘려야 했다.
 
나는 나 자신을 깊이 낮춤으로써 교만을 이겼다.
나는 모든 사람 앞에서 나 자신을 낮추었다. 나는 하느님 앞에서의 내 겸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서 모든 피조물은 당연히 그런 겸손을 가져야 한다. 심지어 그분의 말씀(His Word)께서도그것을 가지고 계셨다. 그 여자인 나에게도 것을 가지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데 너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나 자신을 방어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당해야 했던 굴욕이 무엇이었는지 숙고해본 적이 있느냐?

심지어 의인이었던 요셉도 자기의 마음속에서 나를 비난했었다. 의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내 상태에 관하여 비하함으로써 죄지었고, 그들의 말들의 소문이 가혹한 파도처럼 달려와 내 인성을 파괴했다. 그런데 그것들은 내가 예수와 인류의 어머니로서의 내 일생에서 당해야 했었던 무한한 굴욕들 중 처음의 것들이었다.

가난의 굴욕들, 피난민으로서의 굴욕들, 진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청년이 된 예수에 대한 어머니로서의 내 행동에 대하여 심약한 여자라고 나를 판단했던 친척들과 친구들의 비난들로 인한 굴욕들, 예수의 공생활 3년 동안의 굴욕들, 칼바리아의 시간들의 잔혹한 굴욕들, 내가 내 아들의 장사를 위한 장소와 향료들을 살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하는 굴욕 따위를 말이다.
 
나는 그 시간 전에 내 아들을 포기함으로써 첫 부모들의 탐욕을 이겼다.

어머니는 강요받지 않고는 결코 자기의 자식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기의 조국에 의해서나 아들의 아내의 사랑에 의해서나 심지어 하느님 자신에 의하여 그녀의 마음이 자기의 자식을 포기하기를 요구받는다면, 그녀는 분개할 것이고 그 이별에 저항할 것이다.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다. 아들은 우리의 태중에서 자라는데, 그를 우리와 연결시켜주는 유대는 결코 완전히 끊어질 수 없다.
탯줄이 끊어진 후에도 항상 남아 있는 신경이 있다. 그것은 어머니의 마음에서 출발하여 아들의 마음 안으로 접붙여진다. 그것은 육체적인 신경보다 더 살아있고, 더 민감한 영적 신경이다. 그래서 만일 하느님의 사랑이나 인간의 사랑이나 조국의 필요가 자기의 아들을 그녀로부터 떠나게 한다면, 어머니는 그것이 극도로 가혹한 고통들이 될 정도로 당겨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만일 죽음이 그녀에게서 자기의 아들을 빼앗아간다면, 그것이 끊어지면서 그녀의 심장을 찢어놓는다.

그런데 나는 내가 내 아들을 가진 바로 그 순간부터 그를 포기했다. 나는 그를 하느님께 드렸고, 너희에게 주었다. 나는 하느님의 열매에 대한 하와의 절도를 속죄하기 위하여 내 태의 열매를 버렸다.
 
나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알게 하신 것만을 아는 데 동의하고, 내가 들은 것 이상을 나 자신에게나 하느님께 묻지 않음으로써 지식에 대한 탐욕(gluttony)과 향락에 대한 탐욕 모두를 이겼다. 나는 무조건적으로 믿었다. 나는 모든 관능적 쾌락을 거절했기 때문에 선천적인 개인적 향락의 즐거움을 극복하였다. 나는 사탄의 도구인 육체를 사탄과 함께 내 발꿈치 아래로 제한하여 그것들을 하늘로 오르는 발판으로 만들었다.

하늘! 내 목적. 내 유일한 갈망이신 하느님이 계시는 곳. 탐욕이 아니고, 우리가 그분만을 갈망하는 것을 보기를 원하시는 하느님께 축복받을 필요인 갈망.

나는 탐욕의 극단에 이른 탐욕인 음란을 이겼다. 왜냐하면 억제되지 않은 모든 악습은 더 큰 악습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이미 비난받아 마땅한 하와의 탐욕은 그녀를 음란으로 이끌었다. 그녀가 자기 혼자서 쾌락을 즐기는 것은 더 이상 충분치 않았다. 그녀는 자기의 범죄를 세련된 격렬함으로 이끌기를 원했고, 그래서 그녀는 음란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자기의 동반자에게 가르쳤다.
 
나는 조건을 뒤집어서 내려가는 대신 항상 올라갔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내려가게 하는 대신 항상 하늘을 향하여 그들을 끌어당겨 정직한 내 동반자를 천사로 만들었다.

내가 하느님을 소유하고, 그분과 함께 그분의 무한한 부를 소유하자, 나는 서둘러 그것을 버리고 말씀드렸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당신의 뜻이 그를 위하여, 그리고 그에 의하여 이루어지기를.”

육체만이 아니라 애정들과 생각들도 정화하는 사람이 순결한 사람이다. 나는 육체와 마음과 정신이 불결했던 여자를 무효화하기 위하여 순결한 자가 되어야 했다. 또한 나는 결코 내 자제심을 버리지도 않았고, 그가 하늘에서 하느님께만 속한 것처럼 땅에서는 나에게만 속해 있다고 해서 ‘그는 나의 것이다. 나는 그를 원한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하와로 인하여 잃어버린 평화를 여자에게 돌려주는 데 충분하지 못했다. 네가 태어나는 것을 본 그가 죽은 것을 내가 보았을 때 나는 십자가의 발치에서 너희를 위하여 그것을 얻었다. 죽어가는 내 아들의 외치는 소리에 내 창자들이 찢기는 것을 느꼈을 때 나는 모든 여성성을 잃었다.
나는 더 이상 육체가 아니고, 천사였다. 마리아, 성령의 동정녀 정배는 그 순간에 죽었다. 그녀가 그녀의 고통으로부터 낳은 은총을 너희에게 준 은총의 어머니만이 남았다. 성탄날 밤 나에 의하여 여자(woman)로 다시 봉헌된 암컷(female)은 십자가의 발치에서 하늘의 사람이 되는 방법을 얻었다.

나는 모든 만족들, 심지어 거룩한 만족들도 내 자신에게서 박탈하면서 너희를 위하여 그렇게 했다. 만일 단지 너희가 원하기만 한다면, 나는 하와에 의하여 동물의 암컷들보다 나을 것이 없는 암컷들로 비하되었었던 너희를 하느님의 성녀들로 만들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올라갔다. 내가 요셉을 위하여 했었던 것처럼 나는 너희를 더 높이 들어올렸다. 칼바리아의 바위는 내 올리브동산이다. 나는 거기서 다시 성화된 여자의 영혼을 하느님의 말씀을 낳고 하와의 마지막 흔적까지 파괴함으로써 영광스럽게 된 내 육체와 함께 하늘로 옮겨가기 위하여 도약했다.

그것은 네 개의 독 있는 가지들이 달린 그 나무의 마지막 뿌리까지, 인류를 타락으로 이끌고 시간의 끝까지, 그리고 마지막 여인까지 너희의 내장을 계속 물어뜯을 관능 안에 박힌 뿌리에 이르기까지 파괴했다. 지금 나는 사랑의 빛 속에서 빛나는 그곳에서 너희를 부르며 너희 자신들을 통제할 수 있는 약을 너희에게 보여줄 터인데, 그것은 내 주님의 은총과 내 아들의 피다.
 
내 목소리인 너는 예수의 이 새벽빛 속에서 네 영혼을 쉬게 해라. 네가 면치 못할 장래의 십자가형들을 위한 힘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네가 사람들이 고통을 통하여 오는 이곳에 오기를 원하기 때문이고, 세상을 위한 은총을 얻기 위하여 더 많은 고통을 겪을수록 더 높이 올라오는 이곳에 네가 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평안히 가거라. 나는 너와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