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1권 복음준비

하사시 1권 p185~p197[31. 즈카르야의 방문~32. 예수의 성전에의 봉헌]

Skyblue fiat 2024. 11. 8. 18:41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1권 복음준비  p185~p197
 

※ 통독한 뒤 마음에 세길 구절 1~2개를 나눕니다.

 


31. 즈카르야의 방문

1944. 6. 8.
 
나는 내가 이미 동방박사들과 예수의 만남과 그들의 흠숭을 보았던 장소인 큰 방을 본다. 나는 내가 성가정이 받아들여진 인심 좋은 집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는 즈카르야가 도착하는 것을 본다. 엘리사벳은 여기 있지 않다.
여주인은 도착하는 손님을 맞으러 현관으로 달려 나가 그에게 그 방의 문을 보여준다. 그녀는 노크한 다음에 조심스럽게 물러간다.

요셉이 문을 연다. 그는 즈카르야를 보자 기쁨의 환성을 지르고, 그를 복도처럼 좁은 방으로 들어오게 한다.

“마리아는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습니다. 그녀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피곤하실 테니 앉으십시오.”
그는 손님에게 침대에 자리를 내주고 자기도 그의 곁에 앉는다.
나는 요셉이 어린 요한의 안부를 묻는 것을 듣는다. 그러자 즈카르야가 대답한다.
 
“그 애는 작은 망아지처럼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요. 하지만 그지금 애는 이가 나고 있어, 약간 고통당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 애를 데려오지 못했어요. 날씨가 몹시 차 엘리사벳도 오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 애에게 젖을 먹이지 않을 수 없어요. 그 사람은 몹시 아쉬워했지만, 날씨가 워낙 매서워서!”
“정말로 날씨가 몹시 춥습니다.”
“당신들이 보낸 사람이 아기가 태어날 때 당신들은 당신들이 유숙할 집이 없었다고 나에게 말했어요. 당신들은 몹시 고통당했겠어요.”
요셉이 대답한다.

“예, 저희는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저희가 걱정했었던 것보다는 덜 불편했습니다. 저희는 아기의 건강이 상할까봐 걱정했습니다. 저희는 처음 며칠 동안에는 거기 있어야 했습니다만, 저희 자신들에게 부족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목자들이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저희에게 선물을 가져왔으니까요.

그러나 저희에게는 집도 없었고, 깨끗한 방도, 침대도 없었어요. 그래서 예수가 많이 울었어요. 아기는 특히 밤에 많이 울었는데,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이었어요.
저는 작은 불을 피우곤 했습니다. 연기로 인하여 예수가 기침했기 때문에 작은 불만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여전히 추웠습니다. 특히 찬바람이 사방에서 들어올 때는 두 짐승들이 덥게 해주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저희는 아기를 씻어줄 더운 물도, 그에게 갈아입혀줄 마른 기저귀도 없었습니다.

예, 아기는 아주 많이 고통당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아기가 고통당하는 것을 보며 괴로워했습니다. 저도 고통당했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아기 어머니의 고뇌를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아기에게 젖과 눈물을, 젖과 사랑을 먹였어요… 지금 여기서 형편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저는 아기를 위하여 아주 안락한 요람을 만들어주었고, 마리아는 거기 부드러운 매트를 깔아놓았지만, 그 요람은 나자렛에 있습니다! 아! 아기가 거기서 태어났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셔야 했어요. 그것은 예언된 것이에요.”

마리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들어온다. 그녀는 온통 흰 모직 옷을 입고 있다. 그녀는 여행할 때와 동굴에서 입었던 짙은 색 옷은 입고 있지 않다. 그녀는 내가 전에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을 보았던 새하얀 옷을 입고 있다. 그녀는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로 흰 배내옷에 감싸여 젖을 배불리 먹고 잠든 예수를 안고 있다.
 
즈카르야는 공손히 일어나 경의를 표하며 절한다. 그 다음에 그는 더 가까이 다가와 지극히 큰 경의를 표하며 예수를 들여다본다. 그는 상체를 숙이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예수를 더 잘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께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다. 마리아가 아기를 즈카르야에게 내주자, 그는 성광을 들고 있는 것처럼 지극한 흠숭을 가지고 아기를 두 팔로 받아 안는다. 사실 그가 두 팔로 안고 있는 것은 희생제물이다. 이미 바쳐진 제물, 사람들에게 사랑과 구속의 자양분으로 주어진 다음 희생될 제물이다. 즈카르야는 예수를 마리아에게 돌려준다.

그들 모두가 앉는다. 즈카르야는 왜 엘리사벳이 오지 못했으며, 그녀가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를 마리아에게 다시 설명한다.
“그 사람은 지난 몇 달 동안에 당신의 복된 아기를 위하여 몇 점의 옷을 준비했어요. 저는 그것들을 가져왔어요. 그것들은 아래층의 마차에 있어요.”

그가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가 큰 꾸러미 하나와 더 작은 꾸러미 하나를 가지고 돌아온다. 요셉이 더 무거운 꾸러미를 받아 바닥에 놓자 즈카르야는 두 개의 꾸러미에서 선물들을 꺼낸다. 부드러운 수제 양모담요 한 장과 몇 개의 기저귀와 작은 옷들이다. 그 다음에 그는 둘째 꾸러미에서 약간의 꿀, 아주 하얀 밀가루, 버터, 마리아를 위한 사과들, 그리고 엘리사벳이 반죽하여 구운 케이크들, 그밖에 많은 작은 물건들을 꺼낸다. 그것들은 어린 마리아에게 감사하는 사촌언니의 어머니 같은 애정을 말해주는 것이다.

“제가 대단히 고마워한다고 엘리사벳 언니에게 말씀드려주세요. 그리고 저는 형부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제가 언니를 보았다면 저는 대단히 기뻤겠지만, 저는 그 상황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저는 어린 요한을 보기를 몹시 바랐었는데…”
“하지만 당신은 봄에 그 애를 보게 될 거예요. 우리는 당신을 보러 올 테니까.”
“나자렛은 대단히 멀어요.”
요셉이 말한다.
 
“나자렛이라고? 당신들은 여기 남아 있어야 해요.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자라야 합니다. 이곳은 다윗의 도시에요.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카이사르의 뜻을 통하여 그분을 다윗의 땅, 유다의 거룩한 땅으로 데려오셨습니다.
왜 그분을 나자렛으로 데려갑니까? 당신들은 유다인들이 나자렛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지요. 이 아기는 미래에 그분의 백성의 구세주가 되어야 합니다. 수도 사람들이 그들의 임금이 자신들이 업신여기는 땅에서 오기 때문에 그를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당신들도 내가 아는 것처럼 산헤드린이 얼마나 까다롭고, 그 세 개의 주요 특권계급들이 얼마나 사람들을 멸시하는지 알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여기 내 곁에 있으면 나는 당신들을 약간 도울 수 있을 것이고, 내가 가진 것 모두, 물질적인 것들만이 아니라 정신적인(moral) 재능들을 포함한 모든 것을 이 갓난아기를 돕는 데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자라면, 나는 내가 내 아들에게 선생이 될 것처럼 그의 선생이 되어, 나중에 그가 자랐을 때 그가 나를 축복해준다면 나는 아주 행복할 것입니다.

우리는 아기가 위대한 것들을 위하여 운명 지워져 있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의 시합에서 이기기 위하여 모든 필요한 수단들을 가지고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게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그는 지혜를 가지고 있겠지요. 그러나 그가 한 사제에게 교육받았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그는 까다로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그의 임무수행이 더 쉬워질 것입니다."
 
마리아는 요셉을 쳐다보고, 요셉은 마리아를 쳐다본다. 그 모든 것을 모른 채 자고 있는 아기의 무구한 장밋빛 머리 위로 말없는 질문들이 오간다. 그 질문들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마리아는 자기의 작은 집을 생각하고 있고, 요셉은 자신의 일을 걱정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기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었던 그들은 여기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들은 그토록 많은 사랑을 가지고 아기를 위하여 집에 남겨둔 소중한 물건들을 여기서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자 마리아가 말한다.
“저희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저희는 모든 것을 거기 남겨두었어요. 요셉은 내 예수를 위하여 수고와 돈을 아끼지 않고 아주 열심히 일했어요. 이이는 밤에 일했어요. 그리하여 낮 동안에 이이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일할 수 있었고,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 가장 고운 양털, 가장 흰 아마포를 살 돈을 벌어서 예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이이는 벌통들을 만들었고, 집을 약간 고치기 위하여 석공일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요람을 제 방에 두어 예수가 장성할 때까지 거기 남아 있게 하고, 그때는 요람을 침대로 바꿀 수 있게 해두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청소년이 될 때까지 그는 저와 함께 있을 테니까요.”

“요셉이 그리로 가서 당신들이 거기 남겨둔 것을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그것을 어디에 두겠습니까? 당신도 아시다시피 저희는 가난해요. 우리는 우리의 일과 우리 집만을 가지고 있어요. 그것들 두 가지가 다 있어야 저희가 굶지 않고 살 수 있어요. 그러나 여기서는… 아마 저희는 약간의 일거리를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항상 집 문제를 가지고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착한 부인이 영원히 저희에게 숙소를 제공해줄 수는 없어요. 그리고 저는 요셉이 저를 위하여 이미 희생한 것 이상의 희생을 이이에게 강요할 수는 없어요.”
 
오! 저야! 저에게는 이것이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는 마리아의 슬픔을 염려할 뿐입니다. 자기 집에서 살지 못하는 마음의 고통을…”
마리아의 두 눈에 두 방울의 커다란 눈물이 맺힌다.

“저는 마리아에게 그 집이 낙원처럼 소중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성취된 신비로 인해서 말입니다. 저는 적게 말하지만 많이 이해합니다!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저는 마음이 어지럽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두 배로 일하겠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저는 젊고 힘이 세니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두 배로 할 수 있고, 그래서 모든 것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일 마리아가 너무 많이 고통당하지 않고… 당신이 저희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여기 있어도 좋습니다. 저는 두 분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하겠습니다. 그것이 예수에게 유익하기만 하다면 말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유익할 것입니다. 그것을 숙고해보시오. 그러면 당신들은 그 이유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메시아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마리아가 반박한다.

“맞아요. 하지만 적어도 아기가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그를 유다에서 자라게 하시오. 그 예언자는 말합니다. ‘베들레헴 에프라타야, 너에게서 구세주가 나올 것이기 때문에 너는 가장 클 것이다.’ 그는 나자렛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요. 그 명칭은 아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구세주에게 주어졌나 봅니다. 그러나 여기가 그의 땅입니다.”

“사제인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우리는… 우리는 슬픈 마음으로 당신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믿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제가 어머니가 되었던 그 집을 언제나 보게 될까요?”

마리아는 조용히 울고 있다. 나는 그녀의 슬픔을 이해한다. 오! 나는 참으로 이해한다.
환상은 마리아의 울음으로 끝난다.
 
 
그 다음에 마리아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네가 이해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너는 내가 더 비통하게 우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나는 너에게 요셉의 성덕을 보여줌으로써 네 영혼을 위로해주기를 원한다. 그는 사람이었다. 즉 그는 자신의 성덕을 제외하고는 그의 영혼을 위한 다른 도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티 없는 여자라는 내 처지에서 하느님의 모든 은총들을 누리고 있었다. 나는 내가 티 없는 여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은총들이 내 영혼 안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나에게 영적 힘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티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성이 그 모든 무게를 가지고 그의 안에 있었고, 그래서 그는 그 모든 짐을 지닌 채로 완덕을 향하여 올라가야 했는데, 그는 완덕에 도달하여 하느님의 마음에 들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했다.

오! 거룩한 내 남편! 그는 모든 일, 삶의 가장 하찮은 일들에 있어서도 거룩했다. 천사와 같은 순결에 있어 거룩했고, 인간적인 정직성에 있어 거룩했으며, 참을성, 적극성, 항구한 침착성, 겸손, 모든 것에 있어 거룩했다. 그의 성덕은 이 사건에서도 빛난다.

한 사제가 그에게 말한다. ‘당신은 여기 정착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기가 직면해야 하는 더 큰 역경들을 완전히 알면서 대답한다. ‘그것은 저에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마리아의 슬픔을 염려할 뿐입니다.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저는 마음이 어지럽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에게 유익하다면 말입니다.

예수, 마리아가 그의 천사와 같은 사랑의 대상들이다. 거룩한 내 남편은 땅 위에서 다른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았고, 그 사랑에 자신을 완전히 희생했다.

교회는 그를 그리스도인의 가정들, 노동자들, 많은 다른 범주들의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그는 임종하는 사람들, 부부들, 노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택되어야 할 뿐 아니라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들의 보호자로도 선택되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봉헌된 모든 사람들 중 누가 요셉이 했었던 것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견디고, 모든 것을 재빠르고 명랑하게, 항구적인 유쾌함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데 자신을 봉헌했겠느냐? 그와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한 가지 점, 아니 두 가지 점에 대하여 너의 주의를 환기하기를 원한다.

즈카르야는 사제이고, 요셉은 사제가 아니다. 그러나 너는 사제가 아닌 요셉이 사제보다 더 천상적인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즈카르야는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성경을 인간적으로 해석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자기의 인간적인 양식에 의하여 인도되도록 허용하는데,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으로 인하여 처벌받았었다. 그런데도 그는 비록 덜 중대하지만 그런 잘못을 또 저지른다. 요한의 탄생에 대하여 그는 말했다. ‘제가 늙었고 제 아내는 불임여성인데,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지금 그는 말한다.
‘그리스도는 그의 길을 평탄하게 하기 위하여 여기서 자라야 합니다.’
 
가장 착한 사람들에게도 남아 있는 교만의 그 교묘한 뿌리를 가지고 그는 자기가 예수에게 유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셉이 예수를 섬김으로써 그에게 유익하기를 원했던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를 가르침으로써 자기가 그에게 유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즈카르야의 착한 의향 때문에 그를 용서하셨다. 그러나 ‘하느님이신 선생님(Master)’께 선생들이 필요하겠느냐?

나는 그에게 예언들의 진리를 보게 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나보다 더 유식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 특유의 방식으로 그런 느낌을 활용했다. 나는 집요하게 주장하여 그를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지식 때문이 아니라 그의 품위로 인하여 한 사제를 존경했다. 이것이 내가 너의 주의를 끌기를 원하는 둘째 논점이다.

일반적으로 사제는 항상 하느님께 비춤을 받는다. 나는 ‘일반적으로’라고 말했다. 그가 참 사제일 때 그는 비춤을 받는다. 그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복장이 아니라 그의 영혼이다. 누군가가 참사제인지를 판단하려면, 그의 영혼에서 무엇이 나오지를 살펴야 한다. 내 예수가 말했던 것처럼 거룩하게 하거나 타락시키는 것들은 영혼으로부터 나오는데, 그것들은 한 사람의 전체 행동을 특징짓는다. 그러므로 그가 참 사제라면, 그는 일반적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우리는 참사제가 아닌 사람들에게 초자연적인 사랑을 가져야 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내 아들이 이미 너를 이 구속사업에 봉사하게 했으니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고통당하는 것을 기뻐해라. 그렇게 하여 참 사제들의 수가 늘어나게 해라. 너를 인도하는 사람의 말에 평화롭게 의지해라. 그리고 그의 조언을 믿고 순종해라. 순종은 항상 너를 구원한다. 설사 너에게 주어진 조언이 전적으로 완전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순종했다. 이것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 헤로데가 어린이들의 살육을 베들레헴과 그 근방으로 제한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탄이 그러한 증오를 훨씬 더 멀리 펼치고 증식시켜 유다인들의 미래의 임금을 죽이기 위하여 팔레스티나의 모든 권력자들을 부추겨 그와 유사한 죄를 짓게 할 수는 없었겠느냐? 그는 그런 일을 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 즉 반복된 기적들이 대중과 권력자들의 주의를 끌었을 때 일어났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우리가 어떻게 박해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동안에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자렛을 떠나 팔레스티나 전역을 가로질러 박해받는 히브리인들을 받아들이는 땅인 이집트로 여행할 수 있었겠느냐? 설사 도망치는 것이 똑같이 고통스러웠다 해도 베들레헴에서 도망치는 것이 더 쉬웠다.
순종은 항상 너희를 구원해준다. 그것을 기억해라. 그리고 사제에 대한 공경은 항상 그리스도인의 함양의 표지이다.

사도적 열정을 잃은 사제들은 불행하다! 예수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자기들이 사제들을 업신여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불행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참된 빵을 축성하고 나누어주기 때문이다. 설사 그들이 전적으로 거룩하지 못하다 해도 그 접촉이 그들을 성작(聖爵, sacred chalice)과 똑같이 그들을 거룩하게 만든다. 그들은 그것에 대하여 하느님께 대답해야 할 것이다.

너희는 그들을 사제들로 여기고, 다른 것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마라. 너희가 너희 주 예수보다 더 엄격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들의 명령에 따라 하늘을 떠나 그들의 양손에 들려지도록 내려온다. 너희는 그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눈멀었다면, 그들이 귀머거리라면, 그들의 영혼이 마비되고 그들의 생각들이 불건전하다면, 그들이 자신들의 사명과 강력하게 대립하는 죄들로 가득한 나병환자들이라면, 그들이 무덤 속의 시체들이라면, 예수가 그들을 고쳐주고 그들을 다시 살려주도록 그를 불러라.
 
오, 희생자들의 영혼들아, 너희의 기도들과 너희의 고통으로 그를 불러라. 한 영혼을 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가도록 미리 운명 짓는 것이다. 그러나 한 사제의 영혼을 구하는 것은 수많은 영혼들을 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거룩한 사제는 영혼들을 하느님께로 데려오는 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제를 구하는 것, 즉 사제를 거룩하게 하는 것, 그를 다시 거룩하게 하는 것은 이 신비한 그물을 만드는 것이다. 그 그물에 걸리는 각 영혼은 너희의 영원한 관에 더해지는 빛이다.
평안히 가거라.”
 


32. 예수의 성전에의 봉헌

1944. 2. 1.
 
나는 한 쌍의 남녀가 아주 초라한 집에서 길을 떠나는 것을 본다. 매우 어린 어머니가 흰 배내옷을 입힌 아기를 안고 바깥 층계를 내려온다.
나는 우리 어머니를 알아본다. 그녀는 얼굴이 창백하고 금발이고 날렵하며, 행동거지가 아주 다정한, 항상 한결같은 마리아이다. 그녀는 흰 옷 위에 엷은 하늘색 겉옷을 입고 머리에 흰 베일을 쓰고 있다. 그녀는 자기의 아기를 매우 조심스럽게 안고 있다.

요셉은 계단 밑에서 작은 회색 나귀와 함께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연갈색 옷을 입고 있다. 튜닉과 겉옷 모두 같은 색이다. 그는 마리아를 보고 그녀에게 미소 짓는다. 마리아가 나귀 가까이에 도착하자 요셉은 나귀의 고삐를 왼손으로 옮겨 잡고, 잠시 평화롭게 자고 있는 아기를 받아 안아 마리아가 나귀의 안장에 더 편안하게 안게 한다. 그 다음에 그는 예수를 그녀에게 돌려주고 나서 출발한다.
 
요셉은 마리아 곁에서 줄곧 나귀의 고삐를 잡고 걸으며 나귀가 비틀거리지 않고 똑바로 걸어가도록 보살피며 걷고 있다. 마리아는 예수를 품에 안고, 아기가 추울까봐 자기의 겉옷의 자락으로 그를 덮어준다. 요셉과 마리아는 거의 말하지 않지만 서로에게 자주 미소 짓는다.

계절로 인하여 황량한 들에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는 길이 구불구불 나 있다. 소수의 다른 여행자들이 길에서 그들을 만나거나 앞지른다.

그러다가 나는 몇 채의 집들과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들을 본다. 그들은 한 성문으로 들어가 몹시 부서져 아주 울퉁불퉁한 포석이 깔린 길을 걷기 시작한다. 지금은 앞으로 나아가기가 훨씬 더 어려운데, 그 이유는 교통이 혼잡하여 나귀가 매순간 걸음을 멈추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돌들이 빠져나간 구멍으로 인하여 불쌍한 나귀가 줄곧 흔들리는 바람에 마리아와 아기가 편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길은 평탄하지 않고 약간 오르막이다. 그것은 높은 집들 사이로 좁게 뚫려 있는데, 그 집들의 출입문들은 작고 좁고 낮으며, 거리 쪽으로 몇 개의 창문들이 나있을 뿐이다. 집들 사이로, 아니 옥상들 사이로 수많은 가느다란 푸른 띠들처럼 위쪽으로 하늘이 보인다. 아래쪽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몹시 소리 지르고 있다. 그들은 걸어가거나 나귀를 타고 있거나 짐 실은 나귀들을 끌고 가는 사람들도 만나고, 낙타가 끄는 무거운 포장마차를 따라가는 군중도 만난다. 어느 순간 로마군대의 순찰대가 말굽들과 무기들의 요란한 소리를 내며 좁고 돌이 많은 길을 가로지르는 아치 너머로 사라진다.
 
요셉은 더 넓고 더 아름다운 길을 따라 왼쪽으로 돈다. 나는 거리의 끝에서 나에게 이미 친숙한 감시구가 뚫려 있는 성벽들을 본다.

마리아는 다른 나귀들을 위한 일종의 마구간이 있는 문 가까이에서 작은 나귀에서 내린다. 그것이 일종의 헛간이거나 지푸라기가 깔려 있고, 짐승들이 매여 있는 고리들이 달려 있는 몇 개의 기둥들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마구간’이라고 말한다.

요셉은 자기에게 다가온 작은 남자에게 몇 개의 동전을 주고 약간의 건초를 산 다음에 한쪽 구석의 촌스러운 우물에서 물 한 동이를 길어온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나귀를 먹인다. 그는 마리아를 만나 두 사람은 성전 경내로 들어간다.

먼저 그들은 나중에 예수께서 호되게 매질하신 상인들이 있는 회랑을 향하여 발길을 옮긴다. 그들은 어린양들과 멧비둘기들을 파는 상인들과 환전상들이다. 요셉은 두 마리의 작고 하얀 비둘기들을 산다. 그는 더 이상 돈을 바꾸지 않는다. 그는 분명히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다.

그 다음에 그들은 여덟 개의 단들이 있는 층계로 올라가는 옆문으로 간다. 모든 문들에는 이렇게 층계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성전의 중심이 주위 땅 위로 들어 올려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도시 주택들의 대문들처럼 그 문 안에는 커다란 홀이 있다. 이 편이 더 넓고, 더 잘 장식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홀 안에는 좌우에 일종의 제단들이 두 개가 있다. 그것들은 두 개의 장방형 구조물들인데, 나는 처음에는 그것의 용도를 몰랐다. 그것들은 얕은 수반 같다. 왜냐하면 내부가 바깥쪽 시울보다 몇 센티미터쯤 낮기 때문이다.
 
한 사제가 그들에게 다가온다. 나는 그가 요셉에게 불려서 왔는지, 아니면 자기 스스로 왔는지 알지 못한다. 마리아는 자기의 두 마리의 작은 비둘기들을 바친다. 나는 그놈들의 운명을 알기에 눈을 다른 데로 돌린다.

나는 매우 육중한 대문과 천장과 홀의 장식들을 살펴본다. 그러다가 나는 곁눈으로 사제가 마리아에게 약간의 물을 뿌리는 것을 본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마리아의 옷이 얼룩지지 않는 것을 보면, 그것은 틀림없이 물일 것이다. 그 다음에 두 마리의 비둘기들과 함께 한 움큼의 동전들을 사제에게 주었던(나는 그것을 언급하는 것을 잊었었다) 마리아가 요셉과 함께 사제를 따라 진정한 성전으로 들어간다.

나는 모든 것을 보고 있다. 이곳은 화려하게 장식된 곳이다. 조각된 천사의 머리들, 종려나무들과 장식들이 기둥들, 벽들, 천장을 장식하고 있다. 분명히 유리들은 없고, 벽들에 비스듬히 설치된 이상한 길고 좁은 창문으로 빛이 들어온다. 나는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렇게 고안되었다고 생각한다.

마리아는 특정 지점까지 나아간 다음 걸음을 멈춘다. 그녀에게서 몇 미터 거리에 다른 단들이 있는데, 그 꼭대기에는 일종의 제단이 있고, 그 너머에 또 다른 구조물이 있다.
나는 지금 내가 성전 안에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내가 진정한 성전, 즉 그 너머로는 사제들 이외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는 성소를 둘러싸고 있는 부분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내가 성전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은 성막이 들어 있는 성전을 세 방면에서 둘러싸고 있는 담으로 둘러싸인 현관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내 생각을 잘 설명했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건축가도, 기술자도 아니다.
 
마리아는 아기를 바친다. 아기는 태어난 지 며칠 밖에 안 되는 갓난아기들의 놀란 무죄한 눈들을 사제들을 향하여 돌린다. 사제는 아기를 두 팔로 안아 계단들의 꼭대기에 위치해 있는 제단의 땅을 향하여 서서 성전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팔들을 펴서 아기를 치켜든다. 의식이 끝난다. 아기는 그의 어머니에게 건네지고, 사제는 물러간다.
 
한 무리의 구경꾼들이 있다. 그들 중에서 고령으로 인하여 등이 굽은 작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나아온다. 그는 매우 늙었음이 틀림없다. 나는 그가 80세가 넘었다고 말하겠다. 그가 마리아에게 다가와 잠시 아기를 자기에게 그녀에게 달라고 청하자, 마리아는 미소 지으며 그의 청을 들어준다.

노인은 시메온이다. 나는 그가 사제계급에 속해 있다고 항상 생각해왔는데, 적어도 그의 복장을 보고 판단하자면 그는 평신도이다. 그는 아기를 안고 그에게 입 맞춘다.

예수는 젖먹이들에게 특유한 미소로 노인에게 미소 짓는다. 아기는 호기심을 가지고 그를 살펴보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 노인은 동시에 울고 웃으며 눈물이 그의 주름들 사이로 흘러내려와 반짝이는 수예작품을 만들어놓았다가 예수가 자기의 작은 손들을 내밀어 붙잡으려 하는 길고 흰 수염에 떨어져 구슬을 만들어놓기 때문이다.

아기는 예수다. 그러나 여전히 어린 아기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앞에서 움직이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아기의 주의를 끌어 그것을 붙잡아 그것이 무엇인지 보기를 원하는 것 같다. 마리아와 요셉이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 아기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사람들도 미소를 짓는다.
 
나는 그 거룩한 노인의 말을 듣고 요셉의 놀란 시선, 깊이 감동한 마리아의 표정, 그리고 작은 무리의 시선들을 본다. 어떤 사람들은 노인의 말에 놀라고 감격하고, 어떤 사람들은 웃는다. 후자 중에는 몇 명의 수염을 기른 사람들과 빈정대며 동정의 눈초리로 시메온을 쳐다보며 자신들의 머리를 흔드는 거만한 산헤드린 위원들이 있다. 그들은 그를 노망한 늙은이로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다.
시메온이 고통을 언급할 때 마리아의 미소는 창백함으로 바뀐다. 비록 그녀가 안다 해도 그 말은 그녀의 영혼을 찌른다. 그녀는 위로받기 위하여 요셉에게 다가가고, 자기의 아기를 정열적으로 가슴에 꼭 껴안는다.

그녀는 목마른 사람처럼 프누엘의 한나의 말을 수용한다. 그녀는 여자이기에 마리아의 고통을 동정하고,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초자연적인 힘으로 그 고통의 시간을 완화해주실 것이라고 약속한다.

“부인, 그분의 백성에게 구세주를 주신 분께 당신의 눈물을 위로해주기 위하여 그분의 천사를 보내실 힘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여자들에게 주님의 도우심이 없었던 적은 결코 없었는데, 당신께서는 유딧과 야엘보다 훨씬 더 크신 분입니다. 우리 하느님은 고통의 폭풍우를 견디도록 지극히 순수한 금과 같은 마음을 당신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여자 즉 그 어머니(the Mother)가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너 아가, 네 사명의 시간에 나를 기억해다오.”
여기서 환상이 끝난다.
 
 
1944. 2. 2.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두 개의 교훈들이 너에게 주어진 묘사로부터 도출된다.

첫째 교훈은 이것이다. 진리는 의식들에는 몰두하지만 자기의 영혼은 없는 사제에게 드러나지 않고, 평신도에게 드러난다.

항상 하느님과 접촉하고 있고, 하느님과 관련된 것과 육체를 초월하는 모든 것에 바쳐진 사제는 그날 아침 성전에 바쳐지고 있는 아기가 누구인지를 즉시 알아차려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깨달으려면, 그는 살아 있는 영혼을 가져야 했을 것이다. 설혹 죽은 영혼은 아니라 해도 졸고 있는 영혼을 덮고 있는 제복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만일 하느님의 성령께서 원하시기만 한다면, 그분께서는 그분 천둥을 치실 수 있고, 가장 둔한 영혼이라도 뇌성벽력처럼 깨우시고, 지진처럼 흔들어놓으실 수 있다. 하느님의 성령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하느님께서 그 모든 위(位)에 있어, 그리고 그 행동 방식에 있어 질서이시듯 그 영께서는 질서의 영이시므로, 그분의 은총을 토로하시기에 충분한 공로가 있는 곳에 계시하시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그렇게 된다면 그 계시들은 지극히 희귀할 것이고, 너마저도 그것들의 빛을 알지 못할 것이다―그 영께서 그러한 계시를 받기에 합당한 ‘착한 뜻’이 있는 것을 보시는 곳에 영감을 주시고 말씀하신다.
그런 착한 뜻은 어떻게 구현되느냐? 가능한 한 전적으로 하느님께 헌신된 생활로 구현된다. 즉 믿음, 순종, 순결, 사랑, 너그러움, 기도로 구현된다. 행동들(practices)이 아니라 기도 안에서 구현된다.

행동들과 기도 사이의 차이보다는 밤과 낮 사이의 차이가 덜하다. 기도는 영혼의 하느님과의 교감(communion)인데, 너희는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힘을 얻고, 점점 더 하느님의 것이 되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나오게 된다. 행동들은 항상 이기적인 다양한 목적들을 위하여 구현된 공통적인 습관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너희를 너희의 원래의 상태대로 남겨둔다. 아니 그것들은 거짓말과 나태의 죄들을 너희의 짐에 보태기까지 한다.

시메온은 그런 착한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일생 동안 고난들과 시련들에서 면제되지 않았지만, 자기의 착한 뜻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나이와 불행들도 주님과 그분의 약속들에 대한 그의 믿음, 자기가 점점 더 하느님께 합당한 사람이 되겠다는 그의 착한 뜻을 손상시키거나 흔들지 못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한 충실한 종의 두 눈이 햇빛을 보지 못하게 되기 전에 성령의 빛인 그분을 그에게 보내시고, 그를 성전으로 인도하시어 세상에 온 빛(the Light)을 보게 하셨다. 그 다음에 그 두 눈은 내가 내 수난 후 승천할 때 하늘들에서(in the Heavens) 작열하는 하느님의 태양(the Sun of God)을 향하여 다시 열리기를 기다릴 것이다.
 
‘성령께 인도되어’라고 복음서는 말한다. 오! 만일 사람들이 성령께서 얼마나 완전한 벗이신지 알기만 한다면! 어떤 인도자이시고, 어떤 스승이신지를! 만일 그들이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이 사랑을, 이 빛 중의 빛, 이 불 중의 불, 이 지성, 이 지혜를 사랑하고 그분을 부른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들이 알 필요가 있는 것을 얼마나 더 잘 알게 되겠느냐!
 
마리아야 보아라. 내 자녀들아, 귀담아 들어라. 시메온은 ‘빛을 보기’ 전에, 하느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을 알기 전에 자기의 긴 일생 동안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희망과 기도 안에서 인내하는 것은 무익하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인내했다. 그래서 그는 그 사제와 오만하고 눈먼 산헤드린의 위원들이 보지 못했던 것을, 자기를 덥혀주고 자기에게 미소 지었던 한 아기의 몸에서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 구세주를 ‘볼’ 자격을 얻었다. 그는 한 아기의 입술을 통하여 정직하고 경건한 그의 일생에 대한 최초의 보상인 하느님의 미소를 받았다.
 
다른 교훈은 한나의 말이다. 여자예언자인 그녀도 갓난아기인 나에게서 메시아를 본다. 그녀의 예언자적 특은을 고려할 때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녀가 믿음과 사랑에 감동되어 내 어머니에게 말하는 것을 귀담아 들어라. 그리고 그녀의 말들을 이 암흑의 날들과 이 빛의 축일에 떨고 있는 너희의 영혼들을 위한 빛으로 삼아라.
‘구세주를 주신 분께 당신의 눈물을 위로해주시기 위하여 그분의 천사를 보내실 능력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너희의 영혼들 안에서 사탄이 한 일을 지우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그분 자신을 주셨다는 것을 숙고해라. 그런데 그분께서는 지금 너희를 괴롭히고 있는 사탄들을 이기실 수 없겠느냐? 그분께서는 이 사탄들을 쫓아버리시고 너희에게 다시 한 번 그분의 그리스도의 평화를 보내주심으로써 너희의 눈물을 닦아주실 수 없겠느냐?

너희는 왜 믿음을 가지고 그분께 청하지 않느냐? 너희의 수많은 죄들로 인하여 분개하시는 하느님의 준엄함이 그 앞에서 미소와 함께 사라지는 저항할 수 없는 참된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그러면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구원인 그분의 용서와, 너희 스스로 원하여 피의 홍수에 잠긴 이 세상에 무지개가 되는 그분의 축복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기억해라. 아버지께서는 홍수로 사람들을 벌하신 다음에 그분 자신과 그분의 족장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그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는 이번에 내가 했던 것처럼 모든 살아 있는 것을 치지 않으리라.’ 그래서 그분께서는 그 말씀에 충실하셨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 자신들과 하느님께 ‘만일 이번에 저희가 재앙을 면한다면, 만일 당신이 저희를 구해주신다면, 저희는 다시는, 결코 다시는 전쟁들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으며, 그러고 나서 항상 더 끔찍한 전쟁들을 일으키지 않았느냐? 오, 거짓된 사람들아, 하느님과 너희 자신들의 말을 존중하지 않는 자들아, 너희는 얼마나 여러 번 그렇게 했느냐? 그런데도 만일 많은 충실한 사람들이 믿음과 열렬한 사랑을 가지고 그분을 부르기만 한다면, 그분께서는 다시 한 번 너희를 도와주실 것이다.
 
너희의 근심을 하느님의 발아래에 가져다놓아라. 하느님의 준엄함을 살아 있게 만드는 수많은 사람들과 균형을 이루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은 너희, 너희의 머리 위에 매달려 나날이 증대되고 있는 현시대의 끔찍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분께 헌신된 채로 남아 있는 너희는 말이다. 그분께서는 구세주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그분의 천사를 너희에게 보내실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십자가와 결합해라. 그것은 항상 마귀의 덫들을 이겼다. 그가 다른 방법으로는 지배할 수 없는 마음들을 사람들의 잔인함과 삶의 비애를 가지고 절망 즉 하느님으로부터의 분리로 몰고 가려고 애쓰는 마귀의 덫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