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시간
오전 3시 - 4시
가야파 앞에 끌려가신 예수님
═ 준비기도 ═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의 거룩하신 현존 안에 엎드려
사랑이 지극하신 성심께 간청하오니,
저로 하여금 당신께서 24시간 동안 겪으신
고난의 묵상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소서.
그 때 당신께서는 저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까지
당신의 흠숭하올 몸과 지극히 거룩하신 영혼으로
그토록 많은 고난을 받기를 원하셨나이다.
이제 제가 제(11)시간을 묵상하는 동안
도움과 은총과 사랑과 당신을 동정하는 마음과
당신 수난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해 주소서.
제가 묵상하지 못하는 시간들에 대해서는
그 시간들을 묵상하겠다는 의지를 봉헌하오며,
일과에 전념하거나 잠에 빠져드는 모든 시간에도
이 지향으로 그들을 묵상하겠나이다.
오 자비로우신 주님,
저의 이 사랑 깊은 지향을 받아들이시어,
제가 하고자 하는 바대로 거룩하게 이미 실행한 것처럼
저 자신과 많은 이들에게 유익이 되게 해 주소서.
오 제 예수님,
기도를 통하여 당신과 결합하도록
저를 불러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저는 더욱더 당신 마음에 들기 위하여
당신의 생각과 말씀과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제 온 존재가 당신의 뜻과 사랑 안에 녹아들게 하겠나이다.
이제 팔을 벌려 당신을 포옹하며
당신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시작하겠나이다.
(‘준비기도’를 바친 후)
버림받고 비탄에 잠기신 제 사랑이시여, 이 나약한 몸은 괴로워하시는 당신 마음 안에서 자고 있었지만, 사랑과 고통에서 오는 당신 성심의 살을 에는 듯한 아픔으로 말미암아 번번이 잠이 깨곤 합니다. 자면서도 원수들이 당신을 밀치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깨어나 이렇게 말씀 드립니다:
“모든 이에게서 버림받으신 가엾은 예수님, 당신을 보호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당신 마음 안에 있는 제가 제 생명을 바쳐 드립니다. 원수들의 가격(加擊)으로 당신께서 비틀거리실 때마다 부축해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잠듭니다. 하지만 사랑에서 오는 당신 성심의 격심한 아픔 때문에 다시 깨어납니다. 그러자 원수들이 퍼붓는 욕설들과 군중이 지르는 야유의 휘파람과 아우성과 소음들로 귀가 멍멍할 지경입니다.
제 사랑이시여, 어찌하여 모든 사람이 당신을 거슬러 들고일어납니까? 당신께서 무슨 일을 하셨기에, 이토록 미친 이리들처럼 당신을 갈가리 찢어발기려고 합니까? 원수들이 당신을 죽일 준비를 하고 있는 소리를 들으면서 저는 피가 얼어붙는 듯 합니다.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노라니 몸이 떨리고 슬픔이 밀려듭니다.
그런데, 비탄에 젖으신 당신께서 당신 성심 안에 있는 나를 당신께 더욱 가까이 끌어당기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나는 나쁜 짓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해야 할 모든 일은 다 하였다. 말하자면, 사랑이라는 “죄”를 지은 셈이다. 그런데 사랑은 모든 희생을 내포하는 것이니, 곧 헤아릴 수 없도록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아직은 다만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니 너는 내 마음 안에 머물러 모든 것을 살펴보고 나를 사랑하면서 말없이 배워 익혀라.
너의 시원한 피를 내 혈관으로 보내어 온통 불타고 있는 내 피를 진정시켜 다오. 나와 하나 되어 굳건해질 수 있도록 네 몸의 떨림을 나의 팔다리로 흘려보내어라. 그러면 네 몸이 따뜻해지고, 이처럼 몹시 고통 받고 있는 나를 보는 것으로 힘을 얻을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의 일부를 네가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나를 수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충실하게 주의를 기울여라.”
감미로우신 제 사랑이시여, 당신 원수들이 너무 시끄럽게 떠들고 있어서 저는 다시 잠들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더 세게 당신을 밀어 던지고, 제 귀에는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찌나 꽁꽁 묵었는지 당신 손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길바닥에 자국을 남깁니다. 당신의 피 속에 저의 피도 섞여 있음을 기억하소서. 그런즉 당신 피가 쏟아져 나올 때면 제 피가 입맞춤과 흠숭을 드리며 보속을 드립니다. 이 피가 밤중에 당신께 죄 짓는 모든 이들에게 빛이 되고, 당신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자석이 되기를 빕니다.
제 사랑, 제 전부이시여, 원수들이 당신을 끌고 가는 동안 그 고함 소리와 야유의 휘파람 소리가 공중에 가득하더니, 드디어 가야파 앞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지극히 온유하시고 기품이 있으시며 겸손하십니다. 그러한 온유함과 인내심을 보고 원수들이 겁을 집어먹을 정도입니다. 가야파는 벌컥 화를 내며 당신을 잡아먹을 기세입니다. 오, 그렇습니다, 무죄와 죄가 그야말로 뚜렷이 구분되는 광경입니다!
제 사랑이시여, 당신은 죄인 중의 죄인으로서, 바야흐로 사형 선고를 받게 될 대죄인으로서 가야파 앞에 서 계십니다. 가야파는 지금 증인들에게 당신의 죄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오, 당신의 죄가 아니라 사랑에 대해서 묻는 것이 나을 것을! 어떤 사람은 이렇다고 고발하고 다른 사람은 저렇다고 고발하는데, 그 말들이 서로 부딪치며 모순을 이룹니다. 그런 고발들이 있는 동안, 곁에 있는 군졸들은 당신의 머리를 잡아당깁니다. 거룩하신 뺨을 얼마나 세게 때리는지 그 소리가 온 실내에 울려 퍼지는가 하면, 어떤 자들은 당신 입술을 비틀고, 어떤 자들은 마구 두들겨 패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을 당신은 말없이 받고 계십니다. 당신께서 그들을 바라보실 때면 눈에서 나오는 빛이 그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어 꼼짝도 못한 채 물러가고 말지만, 물러간 자들 대신 다른 사람들이 와서 한층 더 당신을 괴롭힙니다.
베드로의 부인
이제, 그 많은 고발과 모욕이 자행되는 와중에서, 당신께서 귀를 기울이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당신 성심은 심한 고통으로 폭발하여 산산조각이 날 것 같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슬픔으로 짓이겨진 사랑이시여, 대체 그것은 무엇입니까? 제가 보니 원수들이 당신께 행하고 있는 짓을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애타게 기다리실 지경이고, 저희의 구원을 위하여 이를 봉헌하십니다. 당신 성심은 지극히 차분하게 욕설과 증오와 거짓 증언을 보속하시고, 무죄한 이에게 계획적으로 가해지는 부당한 짓을 보속하시며, 지도자들의 부추김을 받고 당신을 모욕하는 자들과 성직자들의 죄를 보속하십니다.
당신과 하나 되어 같은 보속을 따라하면서 저는 당신 안에 변화가 일어남을 느낍니다. 그것은 제가 일찍이 겪은 적이 없는 새로운 고통입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말씀해 주십시오, 대체 그것은 무엇입니까? 오 예수님, 모든 것을 저와 함께 나누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딸아,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냐?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베드로의 말을 들은 것이다. 그런 다음에도 베드로는 거듭 맹세하면서 나를 부인한다. 결국은 거칠게 저주의 말을 내뱉으면서 단호하게 부인한다.
오 베드로야, 네가 어떻게 나를 알지 못한단 말이냐? 내가 너에게 얼마나 많은 은총을 쏟아 부어 주었는지 기억나지 않느냐? 다른 사람들이 고통으로 나를 죽인다면 너는 슬픔으로 나를 죽이는구나! 네가 멀리에서 나를 따라온 것이 잘못이었으니, 그래서 죄 지을 기회를 피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부인당하시는 제 예수님, 이로써 당신께서 가장 아끼시는 사람들에게서 당하시는 모욕이 어떤 것인지를 단박 알 수 있습니다. 오 예수님, 저는 제 심장 고동을 당신의 고동 안으로 흘러들게 하여 당신이 겪고 계시는 그 미어질 듯한 아픔을 덜어 드리고자 합니다. 당신 안에 있는 저의 심장 고동이 당신께 대한 충성과 사랑을 맹세하고, 수천 번 수만 번이라도 맹세하면서 당신을 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사랑은 여전히 잦아들 줄 모릅니다. 그래서 눈으로 베드로를 찾으십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부인 때문에 눈물에 젖은 당신의 눈 앞에서, 그 사랑에 찬 눈길에 감동되어 울면서 걸어갑니다. 그렇게 베드로를 구하신 당신은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시고 교황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죄를, 특히, 죄 지을 기회를 피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보속하십니다.
그러는 동안 원수들은 계속 당신을 고발합니다. 가야파는 당신께서 그들의 고발에 대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엄숙히 명령하니 대답하시오. 그대가 과연 ‘하느님의 아들’이오?”(마태 26,63 참조 - 역주)
제 사랑이시여, 당신의 입술에는 진리의 말씀이 떠나는 법이 없으니, 더할 수 없이 엄위로우신 태도로, 쩌렁쩌렁 울리면서도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답하십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찌르고, 마귀들을 깊은 구렁 속으로 던져 넣는 음성이십니다.
“그렇소. 나는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오. 장차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내려와 뭇 민족들을 심판할 것이오.”
당신 특유의 창조적인 말씀을 듣고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그들은 공포와 전율을 느낍니다. 그러나 잠시 후 그 공포에서 깨어난 가야파는 들짐승보다 더 사나운 태도로 모두에게 말합니다.
“이런데도 증인들이 또 필요하겠소? 여러분은 방금 하느님을 심히 모독하는 말을 들었소. 망설일 것 없이 사형 선고를 내려야 하지 않겠소? 이자는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것이오!”
가야파는 자기의 이 말에 더 큰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 격한 분노를 터뜨리며 옷을 찢어대고, 그래서, 어지신 예수님, 그들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되어 당신께 덤벼듭니다. 어떤 자는 당신의 머리를 치고 다른 자는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뺨을 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얼굴에 침을 뱉고 발로 밟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당신에게 가하는 고문이 이토록 혹독하고 종류도 많으니,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흔들립니다!
제 사랑, 제 생명이시여, 그들이 당신을 괴롭히는 것을 보는 슬픔이 제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댑니다! 오, 저로 하여금 당신의 비통하신 성심 밖으로 나가서 이 모든 모욕을 대신 받게 하소서. 정말이지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의 손아귀에서 당신을 빼내고 싶건만, 당신은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이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니, 저는 단념할 수밖에 없어집니다.
감미로우신 제 사랑이시여, 그래도 당신을 깨끗이 닦아 드리고 머리를 빗어 드리며 침을 없애고 피를 닦는 일만은 허락해 주소서. 그리고 당신 성심으로 저를 감싸 주소서. 이제 지친 가야파가 물러가려고 하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당신을 군졸들에게 넘겨줍니다.
이제 당신께 찬미 감사드리오니, 저에게 강복하시며 사랑의 입맞춤을 주소서. 저는 당신 성심의 불가마 속에 저 자신을 집어넣고 잠들렵니다. 제 입술이 당신 성심에 닿이게 하여 숨쉴 때마다 입맞춤을 드리고, 고통의 크고 작음에 따라 달라지는 고동 소리를 들으면서 당신께서 고통을 겪고 계시는지 쉬고 계시는지를 느끼겠습니다. 그리고 양팔을 날개처럼 활짝 펴서 당신을 껴안고 지켜 드리면서 당신 성심에 바짝 붙어 잠들겠습니다.
성찰과 실천
예수님께서는 가야파 앞에 끌려가서 부당하게 고발당하시고 일찍이 들어본 적 없는 고문을 받으신다. 심문을 받으실 때는 항상 진리를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당한 고발과 모욕을 당하도록 허락하실 때에, 우리는 우리의 무죄함을 알고 계신 하느님만을 찾는가? 아니면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존중과 경의를 애걸하는가? 우리의 입술로 언제나 진실을 말하는가? 속임수와 거짓에 대해서 과감히 맞서는가? 사람들에게서 조롱이나 무안한 일을 당하면 참을성 있게 견디는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가?
☨☨☨
오 인자하신 예수님, 당신과 저 사이에는 얼마나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까! 저의 입술에서 진리가 떠나지 않게 하시어, 누구든지 제 말을 들으면 마음이 찔리게 해 주소서. 그러면 모든 이를 당신께 데려올 수 있겠나이다.
(이어서 ‘감사기도’를 바친다.)
═ 감사기도 ═
사랑하올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께서는 수난의 이 ‘시간’에
당신과 함께 있도록 저를 불러 주셨으니,
번민과 비탄에 잠겨 기도하시며 대속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는 모습을 뵌 것 같나이다.
당신께서는 사랑에 찬 감동적인 음성으로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간청하셨으니,
저도 당신을 따라 그 모든 것을 하고자 했나이다.
이제 당신을 떠나 저의 일과로 돌아가면서
감사와 찬미를 드림이 마땅한 일로 생각되나이다.
그렇습니다, 오 예수님,
저와 모든 사람을 위해서 그 모든 고난을 받으셨으니
천만번 감사하고 또 찬미하나이다.
당신께서 흘리신 피 방울방울마다
당신의 숨과 성심의 고동마다
모든 걸음과 말씀과 눈길마다
참아 받으신 모든 쓰라림과 모욕마다
감사와 찬미를 드리나이다.
오 제 예수님,
그 모든 것에 대하여
저의 ‘감사합니다.’와 ‘찬미합니다.’를
도장처럼 찍어 드리고자 하나이다.
오 예수님,
저의 온 존재가 당신께로 끊임없이 흘러드는
감사와 찬미의 강물이 되게 하시어,
당신의 풍부한 은총과 축복을
저 자신과 모든 이에게 끌어당기게 해 주소서.
그렇습니다. 오 예수님,
저를 당신 가슴에 껴안아 주시고,
제 존재의 작디작은 부분마다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손으로
‘네게 강복한다’ 도장을 찍어 주소서.
그러면 제게서는 오로지 당신을 향한
끊임없는 찬미가만이 흘러나올 수 있겠나이다.
그러므로 저는 모든 것 속에서 당신을 따르려고
저 자신을 당신께 맡기나이다.
저의 생각을 당신 안에 두어
원수들에게서 당신을 지키게 하고,
저의 숨을 당신 안에 두어
당신을 동반하는 행렬이 되게 하고,
저의 심장 고동을 당신 안에 두어
줄곧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게 하면서
다른 이들이 드리지 않는 사랑을 보상하겠나이다.
또한 저의 피를 방울방울 보속의 제물로
원수들이 앗아가곤 하는 영예와 존경을 당신께 되돌려드리며,
제 온 존재를 바쳐 당신을 수호하겠나이다.
오 저의 감미로운 사랑이시여,
일과로 돌아가 있는 동안에도
저는 당신 성심 안에 머물러 있겠나이다.
성심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렵사오니,
당신께서 저를 당신 안에 간직해 주시리라 믿나이다.
그러면 우리의 심장 고동이 서로 전해지고 합쳐지면서
저에게 생명과 사랑을 주고
떨어질 수 없도록 긴밀한 당신과의 일치를 주겠나이다.
저의 예수님,
제가 당신에게서 달아나려고 하는 기색을 보시면
제 안에서 당신 성심의 고동이 빨라지게 하소서.
당신 손으로 저를 더 세게 껴안아 주시고
당신 눈으로 저를 보시며 불화살을 쏘아 주시면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심을 느끼면서
당신과의 합일 속으로 이끌려갈 수 있겠나이다.
오 제 예수님,
저에게 거룩한 사랑의 입맞춤과 축복을 주소서.
저는 더없이 감미로운 당신 성심에 입맞추며
당신 안에 머물러 있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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