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가톨릭 십계명

“살인하지 마라.” 십계명[그리스도의 시]

Skyblue fiat 2024. 1. 6. 01:48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126. ‘맑은 내’에서의 예수. “살인하지 마라.”

도라의 죽음

 

1945. 3. 10.

 

“성경에 ‘너희는 살인하지 마라’ 114) 탈출20,13)고 쓰여 있습니다. 이 계명은 계명들의 두 그룹 115) 십계명 중 제1군은 하느님에 대한 죄를 금하는 계명 군이고, 제2군은 사람에 대한 죄를 금하는 계명 군이다.) 중 어떤 군에 속합니까? 여러분은 둘째 군에 속한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확신합니까?

 

나는 여러분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하겠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을 모욕하는 죄입니까, 아니면 살해당한 사람에 대한 죄입니까? 여러분은 살해당한 사람이라고 말합니까? 여러분은 그것도 확신합니까?

나는 다시 질문합니다. 이것은 살인죄일 뿐입니까? 살인자는 사람을 죽임으로써 이 죄 하나만을 짓습니까? 여러분은 ‘이 죄만을 짓는다고 말합니까? 아무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대답들을 큰 소리로 나에게 말하시오. 여러분 모두를 대표하여 한분만 말씀하세요. 나는 기다리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조용히 있으라고 자기의 엄마가 준 사과를 조금씩 갉아먹는 것을 잊어버린 채 넋을 잃고 예수를 쳐다보고 있는, 그분께 다가온 한 어린 소녀를 쓰다듬어주시려고 몸을 굽히신다.

 

어떤 위엄 있는 노인이 일어나 말한다.

“선생님, 제 말씀을 들으십시오. 저는 늙은 회당장인데, 이 사람들이 저에게 모두를 대표하여 말하라고 하기에 제가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와 저희 모두는 저희가 정의에 따라, 그리고 저희가 배운 것에 따라서 대답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확신은 살인과 구타에 관한 율법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저희가 왜 왔는지 아십니다. 저희는 당신께서 지혜이시고 진리시라는 것을 알기에 당신께 배우려고 왔습니다. 따라서 만일 제가 틀렸다면, 제 어둠을 비추어주시어 이 늙은 종이 빛의 옷을 입고 저의 임금님께로 가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이와 비슷하게 제 양떼에 속한 이 사람들, 자기들의 목자와 함께 생명의 원천에서 물을 마시려고 온 이 사람들에게도 빛을 비추어주십시오.”

그 노인은 앉기 전에 지극히 공손하게 절한다.

 

“어르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의 종 엠마오의 클레오파입니다.”

 

“내 종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종입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와 땅 위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모든 우선권과 모든 사랑이 아버지께 드려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그분께 이 영광을 드려야 할 사람은 그분의 말씀입니다. 그는 사제가 진설병을 드리듯 착한 사람들의 마음을 취하여 흠 없는 제단에 올려놓고 바칩니다. 그러나 클레오파 선생, 당신의 거룩한 소원대로 빛 비추어져서 하느님께 갈 수 있도록 내 말을 들으시오.

죄를 판단하려면 그 죄에 선행하고 그것을 준비하고, 정당화해주고, 설명해주는 상황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살인한 사람은 용서를 청하기 위하여 하느님께 나아가기 전에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누구를 쳤는가? 나는 무엇을 쳤는가?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가지고, 왜, 어떻게, 언제 쳤는가?”

 

“나는 누구를 쳤는가?”

사람을. 나는 말합니다. ‘사람을’이라고요. 나는 그가 부자인지 가난한지, 자유인인지 노예인지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나에 관한 한 노예들도, 유력자들도 없습니다. 한 분 하느님에 의하여 창조된 사람들이 있을 뿐이고, 따라서 그들 모두는 평등합니다. 사실 땅 위에서 가장 권세 있는 군주도 하느님의 위엄 앞에서는 먼지입니다.

그분의 눈과 내 눈에는 다만 한 가지 노예상태 밖에 없는데, 그것은 죄 즉 사탄에 대한 노예상태입니다.

옛 계명은 자유인들과 노예들을 구별하고, 피해자가 단번에 죽었느냐, 하루나 이틀 동안 살아남아 있었느냐, 그리고 이와 비슷하게 임신한 여자가 맞아죽었느냐, 아니면 그녀의 태의 열매만 죽었느냐를 세밀하게 분류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의 빛(light of perfection)이 아직 멀리 있을 때 말해졌습니다.

지금 그것은 여러분 가운데 있으며, 여러분에게 ‘자기의 동료 인간을 죽이는 사람은 죄짓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하느님께도 죄짓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입니까? 사람은 피조세계의 왕이 되도록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최고의 피조물입니다. 그분께서는 영에 따라(according to the spirit) 그에게 그분과의 유사성(likeness)을 주셨고, 그분의 완전한 생각으로부터 그의 완전한 모습을 끌어냄으로써 그분의 모상(image)을 주시어 그를 그분의 모상대로, 그분과 비슷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공중과 땅 위와 바다를 보시오. 여러분은 동물이나 식물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사람과 동등한 것을 볼 수 있습니까? 동물들은 달리고, 먹고, 마시고, 자고, 새끼를 낳고, 일하고, 노래하고, 날고, 기고, 기어 올라갑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말하지 못합니다.

사람도 달리고 뛰어오를 줄 아는데, 그가 뛰어오를 때는 민첩하여 새들과 겨룰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는 헤엄칠 줄도 아는데, 아주 빠르게 헤엄치기 때문에 그가 물고기라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는 길 줄도 알아서 파충류처럼 보입니다. 그는 원숭이처럼 기어오를 줄도 알고, 새처럼 노래 부를 줄도 압니다. 그는 아이를 낳아서 번식할 줄도 압니다. 그밖에도 그는 말할 줄도 압니다.

‘모든 짐승은 각자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마시오. 사실입니다. 한 놈은 음매 하고 울고, 다른 놈은 매애매애 하고 울고, 다른 놈은 앙앙하고 울고, 다른 놈은 지저귀고, 다른 놈은 떠는 목소리로 노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황소는 최초의 황소와 똑같은 소리로 울 것이고, 양은 세상 끝 날까지 매애매애 하고 울 것이고, 나귀는 첫 번째 나귀가 운 것처럼 앙앙 하고 울 것입니다. 참새는 항상 짧게 짹짹거릴 것이고, 종달새는 낮에 태양을 향하여, 나이팅게일은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향하여 노래 부를 터인데, 이 세상 마지막 날에도 이놈들은 첫 날과 첫 밤에 태양에게 인사한 것과 정확히 똑같이 인사할 것입니다.

반면 사람은 목소리와 혀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지성의 자리인 뇌에 그 중심을 둔 신경체계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감각들을 지각하고, 그것들을 숙고하고, 그것들에게 이름을 붙여줄 줄 압니다.

아담은 자기의 벗을 개라고 불렀고, 짧은 턱수염이 나 있는 얼굴 위에 갈기를 달고 있지만 개를 가장 많이 닮은 친구에게 사자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다정하게 인사하는 새끼 양에게 양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나비처럼 날아다니지만 나비는 노래하지 못하는 유쾌한 노래를 노래하는 깃털을 가진 아름다운 꽃에게 새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세기들을 통하여 아담의 후손들이 하느님의 피조물들 안에서 그분의 작품들을 알게 되었을 때, 또는 사람 안에 있는 신성한 불똥을 통하여 그들은 자녀들을 낳았을 뿐 아니라 그들이 하느님과 함께 있는지, 그분을 거슬러 있는지에 따라 자기들의 자녀들에게 유익하거나 해로운 것들을 창조함에 따라 새로운 이름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좋은 것들을 창조하고, 좋은 일들을 하는 사람들은 하느님과 함께 있고, 악한 것들, 자기들의 이웃들에게 해로운 나쁜 것들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하느님과 맞서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악함으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그분의 자녀들의 원수를 갚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느님께서 총애하시는 피조물입니다. 비록 지금 그가 죄지은 존재라 해도, 그는 여전히 그분께 가장 소중한 피조물입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천사, 대천사, 케루빔, 세라핌을 보내지 않으시고, 사람의 육체로 옷 입혀 그분 자신의 말씀(His own Word)을 보내셨다는 사실로 입증됩니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말씀이 지극히 순수한 영이므로 그대로는 고통당하고 사람의 죄를 속죄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가 고통당하고 속죄할 수 있도록 사람의 육체로 옷 입혀지는 것을 마땅치 않은 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사람(man), 그 사람(the Man)이 되어야 한다. 나는 사람을 만들었는데, 그는 내가 만드는 모든 것처럼 완전했다. 그는 평화로운 삶을 살도록 되어 있었다(He was destined to a peaceful life.). 지극히 평화로운 마지막 잠, 행복한 깨어남, 그리고 내 천상낙원에서의 지극히 행복한 영원한 삶 말이다.

그러나 너도 알다시피 이 낙원에는 하나이며 삼위인 나-우리 하느님(I-We, one and trine God)이 우리 옥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염된 것은 무엇이든 우리의 낙원으로 들어올 수 없다. 거룩함만이 이 옥좌 앞에 서도록 허락받는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I am He Who I am). 나의 신적 본질, 우리의 신비한 존재는 죄 없는 사람들에게만 알려질 수 있다.

지금 사람은 아담 안에서, 아담을 통하여 더럽혀져 있다. 가서 그를 깨끗하게 해라. 나는 그것을 원한다. 지금부터 영원히(from now on) 너는 사람(the Man)이 될 것이다. 맏아들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죄 없는 죽을 육체와 원죄 없는 영혼을 가지고 이리로 들어오는 첫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보다 먼저 땅 위에 있었던 사람들과 네 뒤에 올 사람들은 구속주로서의 네 죽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을 것이다.’

 

태어난 사람만이 죽을 수 있습니다. 나는 태어났고, 그래서 나는 죽을 것입니다.

사람은 하느님께 사랑받는 피조물(the favoured creature)입니다. 지금 나에게 말하시오. 한 아버지에게 많은 자녀들이 있고, 그 중 하나가 아버지가 눈동자처럼 아끼는 사랑 받는 아들인데 그 아들이 살해당한다면, 그 아버지는 다른 아들이 살해당했을 때보다 더 괴로워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는 그의 모든 자녀들에게 공평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는 안 될 것이지만, 사람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정당하게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창조된 모든 것들 중 그의 창조주와 공통되게(in common) 영적인 영혼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피조물인데, 그것은 사람이 그의 창조주를 아버지로 자기고 있다는 부인할 수 없는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한 아버지의 아들을 죽인다면, 그는 그 아들에게만 죄짓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그 아버지에게도 죄짓습니다. 그는 아들의 육체와 아버지의 마음을 해치는 것입니다. 두 사람 다 상처 입습니다. 누군가가 한 사람을 죽인다면, 그는 그 사람만을 해칩니까? 아닙니다. 그는 하느님도 공격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그의 육체를, 하느님에게는 그분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과 죽음은 그분만이 주시고 거두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살인은 하느님과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입니다. 살인은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입니다. 살인은 사랑의 계명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살인자는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분의 작품들 중 하나를 소멸시키기 때문입니다. 살인자는 자기의 이웃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살인자가 그 자신도 가지기를 원하는 생명을 자기의 이웃에게서 빼앗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나는 처음 두 질문에 대하여 대답했습니다.

 

“나는 어디에서 죽였는가?”

사람은 길에서 죽일 수도 있고, 피해자의 집에서 죽일 수도 있고, 피해자를 자기 자신의 집으로 유인하여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여기저기를 때려 더 심한 고통을 입힐 수도 있고, 임신한 여자를 죽임으로써 한꺼번에 두 건의 살인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고의 없이 길에서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손에서 빠져나간 짐승이 행인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 경우에는 예모(豫謀, premeditation)는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한 사람이 단도를 가지고 멋진 위장복을 입고 자기의 원수의 집으로 가거나–그런데 그 원수에게는 더 나은 사람이라는 죄밖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피해자를 존경하는 체 하면서 그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그의 목을 찔러 죽여 우물에 집어던진다면, 그때는 예모가 있는 것이고, 그의 죄책은 악의, 잔인성, 폭력성에 있어 완전합니다.

만일 내가 한 어머니와 그녀의 배속에 있는 아이를 함께 죽인다면, 하느님께서는 두 죽음에 대한 책임을 나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계명에 따라 사람을 낳는 태는 신성하고, 그 안에서 자라고 있는, 하느님에게서 영혼을 부여받은 작은 생명도 신성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떤 방법으로 죽였는가?”

만일 누군가가 흉기로 무장하고 갔다면, 그가 ‘나는 죽일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해도, 그것은 헛된 주장입니다.

화가 났을 때에는 그 사람의 손이나 길에서 주워든 돌이나 나무에서 잘라낸 가지도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냉혹한 결의를 가지고 단검이나 도끼를 검사하여 그것이 충분히 날카롭지 않다고 생각되면 날을 예리하게 만들어 쉽게 꺼내 휘두를 수 있게 하되 그것이 보이지 않도록 옷 속에 숨긴 채 자기의 원수의 집으로 가는 사람은 분명 ‘나는 죽이려고 의도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독성 있는 풀이나 열매를 구하여 독을 채취하여 분말이나 음료를 만든 다음에 향신료나 발효음료인 것처럼 피해자에게 주는 사람은 분명히 ‘나는 죽이기를 원치 않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 처벌받지 않고 수많은 생명들을 태연히 죽이는 여자 여러분, 들으시오. 여러분의 태안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가 죄의 씨이거나 여러분의 몸이나 재산에 무익한 짐이어서 여러분이 그 아이를 원치 않기 때문에 그 아이를 떼어내는 것도 살인입니다.

그 짐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순결을 지키는 것입니다. 음란에 살인을, 불순종에 폭력을 덧붙이지 마시오. 사람이 보지 못한다고 해서 하느님께서도 보지 못하신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시고 모든 것을 기억하십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왜 죽였는가?’

오! 참으로 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서 폭력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갑작스러운 심적 흥분 예컨대 여러분의 부부의 침상이 더럽혀진 것이나 집안에 들어온 도둑 또는 여러분의 어린 딸을 겁탈하려는 불결한 놈 등을 발견한 것으로 인한 흥분, 위험한 증인이나 여러분의 앞길을 가로막는 어떤 사람이나 당신이 노리는 지위나 재산을 가진 사람을 제거하겠다는 냉정하고 치밀한 계획 등은 수많은 이유들 중의 일부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격정상태에서 살인자가 되는 사람을 용서해주실 수 있지만, 권력이나 사람들의 존경에 대한 갈망으로 인하여 살인하는 사람은 용서해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항상 올바르게 행동하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그 누구의 눈이나 말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것으로 만족하시오. 여러분의 이웃의 것을 차지하려고 살인자가 될 정도로 남의 재산을 탐내지 마시오.

 

‘나는 어떻게 살인했는가?’

최초의 충동적인 분출 후에도 무자비했는가? 사람에게는 때때로 자제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사탄은 투석수가 돌을 던지는 것처럼 사람을 악 속으로 던집니다.

그러나 어떤 돌이 목표물에 명중한 다음 저절로 다시 투석기로 돌아와 목표물을 한 번 더 때린다면, 여러분은 그 돌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이것은 마술적인 지옥의 힘이 달라붙어 있는 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한번 때리고 나서 억제되지 않는 흉포함으로 두 번, 세 번, 열 번을 때리는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이유에 의하여 야기된 최초의 폭발이라면, 그 후에는 분노가 가라앉고, 이성이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짜 살인자 즉 형제에 대하여 연민을 느끼지 않고 느낄 수도 없는 사탄이 가해자인 경우에는 피해자가 맞으면 맞을수록 더 흉포해지는데, 그는 인격화된 증오(personified hatred) 즉 사탄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언제 죽였는가?’

최초의 분노의 폭발 중에 죽였는가? 그것이 가라앉은 다음에 죽였는가? 내 원한이 점점 더 심해지는데도 나는 용서한 체하면서 죽였는가? 혹시 나는 어떤 사람의 자녀들을 죽여 그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두 배의 고통을 주기 위하여 여러 해 동안 기다렸다가 죽였는가?

여러분은 살인이 제1군과 제2군의 계명을 범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부당하게 하느님의 권리를 주장하고, 여러분의 이웃을 압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느님과 여러분의 이웃을 거스르는 죄입니다. 여러분은 살인죄만을 짓지 않고, 분노, 폭력, 교만, 불순종, 신성모독의 죄도 짓고, 때로 만일 여러분이 지위나 재산을 빼앗기 위하여 살인한다면, 탐심의 죄도 짓습니다.

지금 나는 이 주제에 대해서는 언급만 해두고, 어느 날 더 상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사람은 무기나 독약으로만 살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중상으로도 살인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묵상하시오.

나는 이것도 여러분에게 말하겠습니다. 주인이 노예를 때리되 교활하게 때려서 자기의 손안에서만 죽지 않게 한다면, 그는 두 배로 죄가 있습니다. 노예는 그의 주인의 돈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혼입니다. 노예를 황소보다 못하게 대우하는 사람은 영원히 저주받습니다.”

 

예수의 눈들은 위엄으로 번쩍이고, 그분의 목소리는 우레와 같다. 그들 모두가 놀라 그분을 쳐다본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방금 전까지는 조용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자는 저주 받으라! 새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서 성인들인 체 하면서 하느님의 율법을 이용하거나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서만 자신들의 재간을 벼리는 위선자들이 없었을 때는 여전히 정의였던 가혹함을 폐기합니다. 모든 변덕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할 때는 적법하다고 주장하는 독사들, 하느님께서 증오와 혐오감을 가지고 보시는 비참한 권력자들이 이스라엘에 넘쳐흐르는 지금 나는 말합니다. 그것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고 말입니다.

노예들은 밭들이나 맷돌들 앞에서 쓰러집니다. 그들은 채찍으로 얻어맞아 뼈들이 부러지거나 힘줄이 드러난 채 쓰러집니다.

주인들은 노예들을 때리며 자신들의 악마적인 가학취미를 정당화하려고 그들에게 거짓 죄들을 뒤집어씌웁니다. 그들은 노예들을 때릴 권리를 가지기 위하여 심지어 하느님의 기적들마저 비난거리로 이용합니다.

하느님의 능력도, 노예의 거룩함도 그들의 악한 영혼을 회개시키지 못합니다. 그들은 회개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으로 가득 찬 영혼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만(It is enough).’

아벨들을 죽이는 카인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거죽들은 회로 칠해져 있고, 율법의 말씀들로 덮여 있지만, 그 속들은 사탄이 왕으로 지배하고, 가장 교활한 악마주의가 넘쳐나는 더러운 무덤들인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당신들은 아벨은 아담의 아들이었을 뿐이고,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노예들이 아닌 사람들만을 호의적으로 바라보시고, 노예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제물인 눈물로 양념된 그의 정직함은 거절하신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비록 그가 족쇄를 차고 있다 해도, 밭고랑 위에서 죽어 가고 있다 해도, 당신들의 채찍질로 인하여 피 흘리고 있다 해도, 모든 의인은 아벨이고, 진정한 존경심이 아닌 교만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죄들과 피로 얼룩진 것을 하느님께 드리는 모든 불의한 사람들은 카인들입니다.

기적을 모독하는 자들, 사람들을 모독하는 자들, 살인자들, 불경스러운 자들이여! 나가시오! 내 눈앞에서 사라지시오! 이제 그만! 나는 말합니다. 이제 그만! 나는 하느님의 생각을 번역하는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가시오!”

 

투박한 연단 위에 서 계시는 예수께서는 무서울 정도로 위압적이시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오른팔을 문을 향하여 뻗으시고, 두 개의 푸른 화염 같은 그분의 눈들을 부릅뜨고 계시는데, 마치 현장에 있는 죄인들을 번개로 내리치고 계시는 것 같다.

그분의 발치에 있는 어린 소녀는 울음을 터뜨리며 자기의 엄마를 향하여 뛰어간다. 제자들은 놀라 서로를 쳐다보고, 이 준엄한 심판이 누구에게 발해진 것인지 보려고 살펴본다. 군중들도 궁금해 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마침내 수수께끼가 풀린다. 방의 반대쪽 끝 문밖에 키가 큰 몇몇 시골사람들에게 반쯤 가려진 채 도라가 나타난다. 코가 크고, 턱이 튀어나온 그는 더 마르고, 더 누렇고, 더 주름져 보인다. 그는 반쯤 마비된 것처럼 보이는데, 그의 하인 한 사람이 그가 움직일 수 있도록 그를 도와준다. 아무도 마당 한가운데 있는 그를 보지 못했었다. 그는 닭이 우는 것 같은 목소리로 감히 말한다.

 

“당신은 나에게 말하고 있소? 그것은 나에 대한 말이오?”

“그렇소, 당신에게 하는 말이오. 내 집에서 나가시오.”

“나는 나가겠소. 그러나 머지않아 나는 당신과 계산하겠소. 염려하지 마시오.”

“머지않아? 즉시요. 내가 당신에게 말했듯이 시나이 산의 하느님께서 당신을 기다리고 계시오.”

“그리고 당신도요. 왜냐하면 당신은 내 병과 내 땅 안의 해로운 동물들의 원인이기 때문이오. 나는 당신을 다시 볼 거요. 그런데 그것은 내 기쁨일 거요.”

“그렇소. 그런데 당신은 나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거요. 왜냐하면 내가 당신의 재판관일 것이기 때문이오.

“아! 아! 저주…”

그는 더듬거리고 중얼거리더니 바닥에 쓰러진다.

“그는 죽었습니다! 주인은 죽었습니다! 우리의 복수자이신 메시아여, 당신께서는 찬미 받으십시오!”

하인이 외친다.

 

“내가 아니라 하느님, 영원하신 주님이시오. 아무도 부정해지지 않도록 하시오. 하인만이 자기의 주인을 돌보시오. 그리고 그의 유해를 정중하게 처리하시오.

그의 하인들인 여러분 모두는 착한 마음을 가지시오. 당신들은 쓰라린 증오로 인하여 그가 쓰러진 것을 기뻐함으로써 단죄 받아 마땅한 사람이 되지 마시오.

하느님과 의인 요나가 항상 여러분의 친구가 되고, 나도 그들과 함께 여러분의 친구가 되기를. 잘 가시오.”

 

“그런데 그는 당신의 요청으로 죽었습니까?”

베드로가 묻는다.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내 안으로 들어오셨다… 이것은 네가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다. 하느님을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너희가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분께서는 친히 그분 혼자서 복수하신다.”

“그렇다면 당신께서는 당신을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을 죽게 해주십사고 아버지께 말씀드리실 수는 없습니까?”

“조용히 해라! 너는 네 정신상태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나는 자비이지 복수가 아니다.”

 

늙은 회당장이 다가와 말한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제 모든 질문들에 대답해주셔서 제 안에 빛이 있습니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찬미 받으십시오. 제 회당으로 와주십시오. 늙은이에게 당신의 말씀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나는 갈 것입니다. 평안히 가십시오.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군중이 아주 천천히 물러가는 동안 모든 것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