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가톨릭 십계명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십계명[그리스도의 시]

Skyblue fiat 2024. 1. 6. 01:37

128. ‘맑은 내’에서의 예수.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저는 장남이이서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단골들을 만나서 얘기하도록 저를 여러 번 예리코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고객 중… 한 사람이 아름다운 젊은 아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여자를 좋아했습니다. 저는 그 여자를 유혹했고…, 그 여자도 저를 좋아했습니다…

저희는 서로를 갈망했고… 그래서 저희는 그 여자의 남편이 집에 없는 동안 죄지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여자는 건강했으니까요. 예. 저만이 건강했고 그 여자를 원한 것이 아니라… 그 여자도 건강했고 저를 원했습니다.

저는 그 여자가 저 외에도 다른 남자들을 정부로 두어서 감염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여자는 곧 시들었고, 지금은 이미 무덤들 가운데에서 산송장으로 묻혀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리고 저는… 엄마! 엄마는 그것을 보셨지요. 그것은 작은 반점인데, 사람들은 그것이 나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으로 인하여 죽을 것입니다.

언제?… 생명도 끝장이고… 집도 끝장이고… 제 엄마도 못 보게 되고!… 오! 엄마! 저는 당신을 보면서도 당신에게 입 맞출 수 없어요! 오늘 그 사람들이 와서 제 옷을 찢고 저를 집에서… 마을에서 내쫓을 겁니다…

이건 죽은 사람들보다 더 나쁩니다. 당신은 제 시체를 붙들고 애도하지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젊은이는 울고 있다. 그 어머니는 얼마나 발작적으로 울고 있는지 그녀의 몸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는 나무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찬반양론으로 갈라져 토론한다.

 

예수께서 슬퍼하시며 말씀하신다.

“자네는 죄짓고 있을 때 자네의 어머니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았나? 자네는 자네가 땅 위에는 어머니를, 하늘에는 하느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미쳤었나? 그리고 만일 자네에게 나병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자네가 하느님께 죄를 짓고 자네의 이웃을 모욕했다는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을 게 아닌가? 자네는 자네의 영혼에게 무엇을 했나? 그리고 자네의 젊음에게는?”

 

“저는 유혹당했습니다…”

 

“자네는 그 열매가 저주받은 것임을 모를 만큼 어린 아이인가? 자네는 동정 받지 못한 채 죽어 마땅할 걸세.”

 

“오!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당신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네. 그리고 만일 자네가 지금 다시는 죄짓지 않겠다고 맹세한다면.”

“저는 그것을 맹세합니다. 주님, 저를 구원해주십시오. 저는 몇 시간 안에 선고받을 것입니다. 엄마!… 당신의 눈물로 저를 도와주세요! 오! 엄마!…”

여인은 더 이상 목소리도 내지 못한다. 그녀는 예수의 두 다리를 붙잡고 고통으로 인하여 커진 눈으로 올려다본다. 그녀의 얼굴은 물에 빠져 들고 있고, 자기가 살아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비극적인 표정을 띠고 있다.

예수께서는 그녀를 내려다보시고 동정의 미소를 지으신다.

“어머니, 일어나세요. 당신의 아들은 나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신을 위해서이지 저 젊은이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여자는 아직 그것을 믿을 수 없다. 그녀는 자기의 아들이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채로는 나을 수 없었을 것처럼 느낀다. 그래서 그녀는 계속 흐느끼며 부인의 표시로 머리를 흔든다.

“젊은이, 자네의 튜닉을 벗어 자네의 가슴을 드러내게. 거기가 자네가 반점을 가졌었던 곳이지. 그렇게 하여 자네의 어머니가 위로받게 해드리게.”

젊은이는 자기의 튜닉을 내려 모든 사람의 눈에 벌거벗은 채로 드러난다. 그의 피부는 건강한 젊은이의 매끈하고 흠 없는 피부이다.

“어머니, 보세요.”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고 그 여인을 일으키시려고 몸을 숙이신다. 그분의 몸짓은 그 여자가 기적을 보고 모정으로 그녀의 아들이 정화되기 전에 그에게로 달려가려는 것을 제지하는 역할도 한다.

그녀는 자기의 모정으로 자기가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곳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예수의 가슴에서 긴장을 풀며 미친 듯이 기뻐하며 그분께 입 맞춘다. 그녀는 울고, 웃고, 입 맞추고, 찬미한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녀를 다정하게 어루만지신 다음 젊은이에게 말씀하신다.

“사제에게 가게. 하느님께서는 자네의 어머니를 위하여, 그리고 앞으로 자네가 의인으로 살도록 자네를 고쳐주셨네. 가보게!”

젊은이는 구세주를 찬미하고 나서 떠나가고, 그의 어머니와 그녀의 일행인 다른 여자들은 멀찌감치 그를 뒤따라간다. 군중은 호산나를 노래한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자리로 돌아가신다.

 

"저 젊은이도 정직한 윤리를 명하시는 하느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잊었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하느님이 아닌 신들을 만드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을 잊었었습니다. 그는 내가 여러분에게 가르친 바와 같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잊었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어머니에 대한 애정 어린 공경을 잊었었습니다. 그는 간음하고, 도둑질하고, 거짓말하고, 자기의 이웃의 아내를 탐내고, 자살하고, 자기의 영혼을 죽이고, 간통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을 잊었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잊었었습니다. 여러분은 그가 어떻게 얻어맞았는지를 보았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120) 탈출20,17)는 ‘너희는 간음하지 말라’121) 탈출20,14)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욕은 항상 행위들에 선행합니다. 사람은 자기의 욕망을 불태우지 않은 채 무언가를 갈망할 수 있기에는 너무 약합니다. 그런데 지극히 슬픈 일은 사람은 자기의 올바른 욕망들에 관해서는 그와 같이 행동할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악에 있어 사람은 소망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의 소망을 충족시킵니다. 그러나 선에 있어서는 그는 소망하고, 그 다음에는 설사 그가 물러나지 않는다 해도, 멈춥니다.

 

죄 되는 욕구들은 저절로 퍼지는 개밀처럼 저절로 퍼지기 때문에 나는 내가 저 젊은이에게 말했던 것처럼 여러분 모두에게도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 유혹이 치명적이고, 그래서 그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할 만큼 어린 아이들입니까?

‘나는 유혹당했습니다.’ 오래된 변명입니다!122) 창세3,11-12)  그러나 그것 역시 옛날의 예이기 때문에 사람은 그 결과들을 기억하고 ‘안 돼’ 하고 말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역사에는 성의 유혹들과 난폭한 자들의 위협들에도 불구하고 순결을 지킨 사람들의 모범들이 없지 않습니다.유혹은 악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악한 자(the Evil One)의일입니다만,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은 그것을 영광으로 바꿉니다.

 

다른 여자들과 간통하는 남편은 자기의 아내와 자기의 자녀들과 자기 자신을 죽이는 사람입니다. 간통하기 위하여 자기의 이웃의 집에 들어가는 사람은 도둑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비열한 도둑입니다. 그는 뻐꾸기처럼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고 다른 누군가의 둥지를 즐깁니다.

친구의 신뢰를 속이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실상은 가지고 있지 않은 우정을 가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자기의 부모들의 명예를 손상합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하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 불쌍한 어머니를 위하여 기적을 행했습니다만, 음란에 대하여 너무 큰 역겨움을 느껴 그것이 나를 어지럽힙니다. 여러분은 나병에 대한 공포와 혐오로 외쳤지만, 내 영혼은 음란에 대한 혐오로 외쳤습니다.

나는 가능한 모든 비참함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들 모두의 구세주입니다. 그러나 나는 정욕의 냄새를 풍기는 누군가에게 다가가기보다는 시체를 만지는 것을, 정직하게 살았고 지금은 이미 자기의 영혼과 함께 평화를 누리고 있는 의인의 시체를 만지는 것을 선호합니다.

나는 구세주입니다만, 죄 없는 사람입니다. 여기 오는 모든 사람들이나 자기들의 정열들이 내 인성에도 있다고 하면서 나에 대하여 말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나에게서 다른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겨우 형성되자마자 정욕으로 무너진 한 청춘의 파멸로 인하여 나는 내가 시체를 만졌던 것보다 더 마음이 어지러워졌습니다.

병자들에게로 갑시다. 나는 나를 숨 막히게 하는 메스꺼움으로 인하여 아버지의 말씀일 수 없으므로 나에게 바라고 있는 사람들의 건강(Health)이 되겠습니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사실 예수께서는 마치 그분께서 고통당하고 계시는 것처럼 얼굴이 매우 창백하시다. 그분께서는 병든 어린이들과 들것에 누워 있는 신체장애자들에게로 몸을 굽히실 때에야 비로소 다시 미소 지으신다. 그때그분께서는 평소의 당신처럼 되신다. 특히 그분께서는 열 살쯤 된 어린 벙어리의 입에 손가락을 넣으시고 “예수”라는 말을 하게 하시고, 그 다음에는 “엄마”라는 소리를 하게 하실 때 더욱 그러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