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노래-십자가의 성요한

제 27 노래

Skyblue fiat 2014. 5. 24. 13:14

 

 

 

 

 

 

            다음 노래의 설명

 

     1. 내적 일치에서 하느님은 영혼과 너무나 사랑겹게 통교하시므로 가령 어머니가 아무리 큰사랑으로 그 아이를 애무했더라도 또 형제나 벗의 사랑이 아무리 정답더라도 이토록 진실한 사랑에는 도저히 견줄 수도 없다. 광대무변하신 아버지께서 이 겸손한 영혼을 애무하시고 드높여 주실 때의 그 정겨움과 성실하심은 아! 어찌 이리도 신묘한지 그것은 정말 두렵고 놀랄만한 일이다. 하느님께선 영혼을 위대하게 만드시기 위해 마치 당신은 종이고 영혼은 영왕이듯 영혼에게 복종하신다. 그리고 영혼을 기쁘게 해주시기 위해 마음 씀씀이는 마치고 당신은 노예이고 영혼은 당신 하느님이듯 하신다.

     하느님의 겸손과 온유함은 그 한계를 알 길이 없다. 이 사랑의 통교에서 주님께서 어떤 뜻에서는 천국의 선택된 이들에게 하신 복음서의 저 봉사를 실천하신다. 말하자면 “주인이 허리를 동여매고는 그들을 식탁에 자리잡게 하고 다가와서 그들에게 시중을 들어 줄 것입니다.”(루가 12, 37)그러므로 주님께서 여기서 영혼을 기쁘게 하시고 애무하시는 것은 마치 아기를 품에 안고 젖을 주고 이어 봉사하고 기쁘게 해 주는 어머니 같다. 이것으로 영혼은 이사야의 다음 말이 참되다는 것을 깨닫는다. “젖먹이들은 그의 등에 업혀 다니고 무릎에서 귀염을 받으리라”(66,12)

 

     2. 이토록 높은 은총으로 채워진 영혼은 무엇을 느낄까? 얼마나 사랑에 용해되어 있는지! 하느님이 유방이 이토록 아낌없는 드높은 사랑으로 자신에게 젖을 쏟아 주심을 볼 때 그 감사는 어떠할까? 영혼은 자신이 이 엄청난 기쁨 가운데 두심을 느끼면서 하느님께 자신을 온통 다 내어드리고 자기 의지와 사랑의 유방을 하느님께 바치고 아가의 신부가 신랑에게 다음의 말을 할 때 느낀 것과 같은 것이 자기 영혼 안에 일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이 몸은 님이 것, 님의 날 그리시니 오십시오 우리 님 들녘으로 갑시다. 아침 일찍이 포도밭에 가 포도순이 나오는지 꽃이 피는지 석류꽃이 피는지를 구경합니다. 나는 거기서 바치리다. 사랑의 선물”(7,11-13) 이것은 말하자면 “내 의지의 힘과 기쁨으로 당신의 사랑의 봉사에 힘쓰겠습니다.”라는 뜻이다. 이 일치에서 하느님은 영혼에게 그리고 영혼이 하느님께 행한 상호 증여가 다음 노래에서 말하고 있다.

 

 

 

                                     제 27 노래

 

                      거기 님은 그 가슴을 내게 주셨네

                      거기 진진한 앎을 님은 내게 주셨네

                      나도 참말 나를 그님께

                      남김 없이 바쳤네

                      그의 짝이 되리란 약속도 거기서 하였네

 

 

                해 설

 

     3. 이 노래에서 신부는 이 영적 혼인에서 쌍방이 곧 영혼과 하느님과의 서로 주고받음(상호 증여)을 말한다. 영혼은 사랑의 그윽한 술광에서 하느님이 자신과의 통교로 어떻게 일치가 성립되었는지를 말한다. 하느님은 자유로이 그 사랑의 마음을 영혼에게 주시고 그 슬기와 신비를 가르치신다. 영혼도 또한 자기 자신이나 남을 위해서도 아무 것도 간직하지 않고 자신을 몽땅 드리고 자기는 영구히 하느님의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래서 다음 노래를 읊는다.

 

 

 

                거기 님은 그 가슴을 내게 주셨네

 

     4. 누구에겐가 자기 마음을 준다는 것은 자신의 사랑이나 우정을 주고 친우를 대하듯 자신의 비밀을 밝히는 거이다. 영혼은 “거기서 님은 그 가슴(마음)을 내게 주셨네” 라고 하는데 이것은 곧 하느님께서 그 사랑과 신비를 영혼에게 통교하셨다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이 단계에서 영혼에게 이루시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다음 시구에서 다시 이것을 더욱 진하게 되풀이한다.

 

 

 

                거기 진진한 앎을 님은 내게 주셨네

 

     5. 여기서 영혼에게 가르쳐 주신 아름다운 학문이란 신비 신학이다. 이것은 영적인 사람들이 관상이라고 부르는 하느님의 신비의 지식이다. 이것이 매우 감미로움은 사랑을 통한 지식뿐이어서 사랑은 영혼의 스승이고 모든 것을 감미롭게 한다. 이 지식과 이해를 사랑 곧 하느님께서 이것으로 영혼과 통교하시는 사랑 속에서 전달되기에 그것은 이성에는 감미로운 것이다.

사실 이것은 지식이고 지식은 지성에 속했기에 말이다. 그러나 또한 이것은 동시에 의지에게도 감미롭다. 왜냐하면 사랑에 따른 지식이고 사랑은 의지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음 시구가 이어진다.

 

 

 

                나도 참말 나를 그님께

                남김 없이 바쳤네

 

     6. 앞서 말대로 영혼은 하느님의 감미로운 음료로 온통 하느님으로 침투되어 있으므로 아주 자발적으로 그리고 매우 정겹게 자신을 온통 다 하느님께 내어드리고 완전히 하느님이 것이 되기를 원하고 하느님이 아닌 그 무엇도 자신 속에 머물러 두지 않기로 결의한다. 영혼 안에 이 일치를 이루신 하느님은 이러한 일치가 요구되는 순결과 완덕을 영혼에게 주신다. 영혼을 자신으로 변화시키는 이는 하느님이시므로 하느님께선 이것을 온통 당신 것으로 하시고 하느님이 아닌 일체를 이것에서 치워버리신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영혼에게 자유로이 당신을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이 영혼은 오직 의지로 뿐 아니라 실제로도 무엇 하나 남김없이 죄다 하느님께 바친 자가 된다. 두 의지, 곧 하느님의 의지와 영혼의 의지는 서로 은혜를 갚고 서로를 내어주고 받으며 서로가 만족하므로 약혼의 굳건 불변한 계약에 따라 서로에게 충실성이 결여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영혼은 다시 덧붙이기를

 

 

 

                그의 짝이 되리란

                약속도 거기서 하였네

 

     7. 신부는 그 사랑도 염려도 행위도 신랑이외의 것에 두지 않음 같이 영혼도 이 경지에서 그 의지의 모든 애정 지성의 온갖 생각 기억의 모든 염려와 그 일체의 행위를 그 욕구와 함께 온통 하느님께로 향한다. 이 때 영혼은 마치도 신화 되어 스스로 판단 할 수 있는 한도에서 하느님의 의지에 거스리려는 천성의 본능적 충동마저도 없다. 불완전한 영혼이 그 이성, 의지, 기억, 욕구에서 악에로 이끌고 불완전한 일을 하게 하는 천성의 본능적 충동을 자주 느끼는데 반하여 이 경지에 다다른 영혼에게서는 이성도 기억도 의지도 욕구조차도 이 천성의 첫 충동으로 즉시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이 예사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힘있는 도움의 효과이고 하느님으로 굳세어져 선에로 완전히 전향된 결과이다. 이것을 다윗이 이 경지에 올려진 자신의 영혼 상태를 말하면서 밝혀준다. “내 영혼이 어찌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으리오 님께로부터 내 구원이 오나니 님만이 나의 바위 내 구원 내 성체시기에 나는 절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시편 61, 2-3)고 하였다. 하느님께서 자기의 수용자라는 것 때문에 다윗은 자기 영혼이 하느님께 받아들여지고 우리가 여기서 말함 같이 하느님께 일치해 있으므로 하느님을 거스리는 천성의 충동을 이미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8. 이제까지 말한 것으로 이 영적 혼인에 다다른 영혼은 이미 단 하나 밖에 모른다는 것이 뚜렷해졌다. 그것은 곧 사랑하는 것, 신랑과 함께 사랑의 기쁨을 즐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영혼은 성 바울로가 말했듯이 그 형상과 본질인 완덕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어느 영혼에게 사랑이 있으면 있을수록 이 영혼은 그 사랑의 대상에게 완전하다. 그러므로 이 완전한 영혼은 만일 이렇게 말함이 허용된다면 온통 사랑이다. 그 모든 행위는 사랑이다. 그 모든 능력과 자산은 사랑으로 쓰여진다. 영혼은 지혜로운 장사꾼처럼 하느님 안에 숨겨진 것을 발견한 저 사랑의 보화를 얻기 위해서 모든 것을 드렸다.

     이 보화는 하느님의 눈에는 한없이 귀중하다. 그러므로 영혼은 사랑하는 분께서 오직 사랑 밖에 평가하지 않으시고 사랑만을 반겨 받아주심을 보고 하느님의 순수한 사랑 안에서 그분께 완전히 봉사하고저 원하여 모두를 바친다. 그것은 오직 사랑하는 분께서 그렇게 원하시기 때문에만 아니고 이 영혼을 그분께 일치시켜 주신 사랑은 영혼으로 하여금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통해서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이끄시기 때문이다.

    꿀벌이 온갖 화초에서 꿀을 취하고 다만 그 때문에만 이 화초를 이용하듯 이 영혼도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서 매우 쉽게 거기 있는 사랑의 단 맛을 끌어낸다. 그 모든 것 안에서 이 영혼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건이 달든 쓰든 문제삼지 않는다. 사랑에 감사이고 사랑에 지켜져 이 영혼은 그런 것은 느끼지 않고 맛보지 않고 알지도 못한다. 말하자면 거듭 되풀이하는데 이 영혼은 사랑하는 것밖엔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 무엇을 다루든 이 영혼은 오직 하느님 사랑의 기쁨 밖에 맛보지 않는다. 그것은 밝히기 위해 다음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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