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2권 공생활 첫해

하사시 2권 p644~p657 [139. 엠마오의 산 위에서. 140. 회당장 클레오파의 집에서]

Skyblue fiat 2025. 2. 21. 20:01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2권 공생활 첫해  p644~p657

 

※ 통독한 뒤 마음에 세길 구절 1~2개를 나눕니다

 

 

 

 

139. 엠마오의 산 위에서

1945. 4. 17.

예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아주 험준한 산악지방에 계신다. 길은 좋지 못하고 거칠어 나이 많은 사도들은 힘들게 앞으로 나아간다. 반면 젊은 제자들은 예수의 주위에서 기뻐하며 민첩하게 올라가며 서로 대화를 나눈다.

예수의 두 사촌들,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안드레아는 갈릴래아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고무되어 있고, 그들의 기쁨은 얼마 전부터 탁월한 정신상태를 가지게 된 유다에게도 전이된다. 그가 순박하게 말한다.

“선생님, 파스카 때 우리가 성전에 갈 때… 당신께서는 가리옷에 다시 가실 겁니까? 제 어머니는 항상 당신을 뵙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전갈을 보내왔습니다. 제 동향 사람들도 그렇고요…”

“나는 확실히 가겠다. 그러나 지금은 설혹 우리가 가고 싶다고 해도, 계절이 혹독하여 그 어려운 길을 갈 수가 없다. 심지어 여기도 얼마나 힘든지 보아라. 그 강요가 없었다면, 나는 이 여행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거기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예수께서는 입을 다무시며 생각에 잠기신다.

“그리고 나중에, 제 말씀은 파스카 때 우리는 다시 올 수 있을까요? 저는 당신의 동굴을 야고보와 안드레아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요한이 말한다.

“자네는 베들레헴 사람들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잊고 있나? 아니 그들이 선생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말이야.”
가리옷 사람이 묻는다.

“잊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오히려 야고보와 안드레아와 함께 갈 수 있을 거야. 예수님은 유타나 자네의 집에 머무실 수 있을 거야…”

“좋아, 그거 좋네. 선생님, 당신께서는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저 사람들은 베들레헴으로 가고, 당신께서는 저와 함께 가리옷에 머무시고요. 당신께서는 저와 단둘이서만 계셨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저는 당신을 독차지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너는 질투하느냐? 너는 내가 너희를 완전히 똑같이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느냐? 너는 내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너희 모두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저는 당신께서 저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만일 당신께서 저희를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당신께서는 저희를 훨씬 더 엄하게 다루셨을 것입니다. 적어도 저는요. 저는 당신의 영이 항상 저희를 보살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순전히 영만은 아닙니다. 사람의 애정, 갈망들, 회한들을 가진 인간도 있습니다.

예수님, 저는 제가 당신을 가장 기쁘시게 해드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얼마나 당신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열망하는지, 그리고 저의 비참함으로 인하여 제가 당신을 잃어버리는 시간들을 얼마나 후회하는지 당신께서는 아신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다, 유다야. 나는 너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보다 너에게 더 가까이 있다. 나는 네가 누군지를 알기 때문이다.”

“주님, 저는 무엇입니까?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저는 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는 임신으로 인하여 변덕스러워진 여자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거룩한 것들과 타락한 것들 둘 다를 갈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는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불가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신다. 그분께서는 슬퍼하신다. 그러나 그분의 슬픔에는 연민이 섞여 있다. 지극한 연민이! 그분께서는 어떤 환자의 상태를 관찰하고는 그가 나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의사처럼 보이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말씀하시지 않는다.

“선생님,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당신의 의견은 불쌍한 유다에게 가장 덜 가혹할 것입니다. 어쨌든… 저희 모두는 형제들입니다. 제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저 사람들이 안다 해도 그건 상관없습니다. 반대로 만일 저 사람들이 저에 대한 당신의 의견을 듣는다면,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바꾸어 저를 도와줄 것입니다. 말씀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다른 제자들은 당혹스러워하며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른다. 그들은 동료들을 쳐다보고, 예수를 쳐다본다.
예수께서는 가리옷 사람을 당신 가까이로, 방금 전에 야고보가 있었던 자리로 끌어당기시며 말씀하신다.

“너는 단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뿐이다. 너는 가장 좋은 모든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이 안정되어 있지 않아서 가장 가벼운 미풍에도 그것들이 뒤죽박죽된다.
방금 전에 우리는 저 협곡을 지나왔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 있는 작은 마을의 보잘것없는 집들이 물과 땅과 나무들로 인해서 입은 피해를 보았다. 물, 땅, 나무들은 유익하고 축복받은 사물들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런데도 그것들은 거기서는 저주가 되었다. 왜? 급류의 물이 일정한 길을 따라 흐르지 않았고, 사람들의 게으름으로 인하여 그것이 변덕스럽게도 여러 개의 물길들을 파놓았었기 때문이다. 폭풍우들이 불어오지 않는 동안에는 그것은 문제가 없었다. 그토록 많은 작은 물줄기들로 산을 적셔준 맑은 물은 그 물줄기들이 빛이나 숲의 그림자를 반사함에 따라 금강석이나 에메랄드 목걸이 같은 보석 세공사의 작품과도 같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졸졸 흐르는 그 물줄기들이 자기들의 밭에 유익하기 때문에 그것을 즐겼다. 식물들도 아름다웠다. 그것들은 장난스러운 바람들에 의하여 심겨져 희한한 모양의 잎들과 가지들을 가진 나무들이 자라났고 햇빛에 노출된 넓은 빈터도 남겨놓았다. 그리고 부드러운 흙도 아름다웠는데, 그것은 산의 기복들 사이의 어느 먼 급류들에 의하여 흘러내려온 것이었고, 그래서 경작하기에 아주 비옥했다.

그러나 한 달 전에 폭풍우들이 불어왔을 때 기이한 물줄기들이 서로 합류하여 다른 경로를 따라 불규칙하게 범람하여 나무들을 휩쓸어가고, 흙도 계곡 아래로 휩쓸어 가버렸다.

만일 그 물이 질서정연하게 관리되었고 나무들도 함께 모아 심겨져 숲이 만들어졌고, 토양도 적절하게 성토하여 체계적으로 지지되었다면 세 가지 좋은 요소들인 나무, 물, 토양은 그 작은 마을의 멸망과 죽음의 원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너는 지성, 대담성, 학식, 임기응변, 좋은 외모와 아주 많은 다른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네 안에서 조직되어 있지 않고, 너는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방치한다.

보아라. 너는 너의 자질들을 질서 있게 만들기 위하여 참을성 있게 지속적으로 일해야 한다. 질서는 힘이기도 하기 때문인데, 유혹의 폭풍우가 닥쳐올 때 네 안의 선이 너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악이 되지 않게 한다.”

“선생님, 당신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따금씩 저는 폭풍우로 인하여 어지러워지고, 그러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됩니다. 그런데 당신께서는 제가 할 수 있다고…”

“유다야, 네 의지는 모든 것이다(Your will is everything).”

“하지만 몹시 강한 유혹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그것들을 우리 얼굴들에서 읽어낼까 두려워 우리 스스로 숨어버립니다.”

“그것이 바로 실수다! 바로 그때가 네가 숨지 말아야 하는 순간일 것이다. 너는 세상, 착한 사람들의 세상에서 도움을 얻기 위하여 그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착한 사람들의 평화와의 접촉만으로도 열은 가라앉는다.

또한 너는 너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세상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들을 숨기도록 강요하는 교만으로 인하여 우리의 유혹당한 영혼들은 ‘읽혀지지’ 않으려는 유혹을 받기 때문에 우리를 비판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우리의 정신적 약점에 대한 반작용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당신께서는 광야로 가셨지요…”

“왜냐하면 나는 그것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독할 때 다수자에게 맞서 다수자가 되지 않는 한 혼자 있는 사람들은 불행하다.”

(영역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긴다. But woe to those who are alone, unless in their solitude they are a multitude against a multitude. 강한 유혹자인 다수자를 이기는, 성덕으로 뒷받침된 자기의 의지라는 더 강한 다수자가 되지 않는다면, 유혹당할 때 혼자 있는 것은 영적으로 위험하다는 말씀으로 해석된다.)

“어떻게요? 저는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

“많은 유혹들을 이기려면 많은 성덕들(virtues)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성덕이 약할 때에는 이 담쟁이처럼 든든한 나뭇가지들에 달라붙어야 한다. 그래야 올라갈 수 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저는 당신과 제 동료들에게 달라붙겠습니다. 그러나 자네들 모두는 나를 도와주게. 자네들 모두는 나보다 나아.”

“내 친구여, 더 나았던 것은 우리가 자라난 검소하고 정직한 환경이었다네. 그러나 지금 자네는 우리와 함께 있고, 우리는 자네를 사랑하네.


자네도 보게 되겠지만… 나는 유다 지방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지만, 갈릴래아에는, 적어도 우리 마을들에는 재물도 적게 있지만 타락도 적게 있다네. 티베리아스, 막달라, 그밖에 다른 쾌락의 장소들은 타락으로부터 멀지 않네.

그러나 우리는 자네의 표현대로 투박할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소박한 영혼을 가지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그리고 거룩하게 행복하게 산다네.”
알패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하지만 야고보, 자네는 유다의 어머니가 거룩한 부인이라는 걸 모르나? 그분의 착함은 그분의 얼굴 전체에 쓰여 있어.”
요한이 반박한다.


가리옷의 유다는 그 칭찬에 행복하게 미소 짓고,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확인해주시자 더 환하게 미소 짓는다.

“요한아, 네 말이 옳다. 그분은 거룩한 분이시다.”

“글쎄요. 하지만 제 아버지의 꿈은 저를 이 세상의 거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깊이 저를 제 어머니에게서 떼어놓았습니다…”

“자네들은 줄곧 말만 하고 있는데,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가? 멈춰! 우리를 기다리게! 자네들이 내 다리들이 아주 짧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계속 가는 건 친절한 짓이 아니야.”


베드로가 멀리서 요청한다.
그들은 다른 무리가 자기들과 합류할 때까지 걸음을 멈춘다.

“아! 내 작은 배야, 나는 너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나는 여기서 노예처럼 고생해야 한다… 자네들은 무엇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나?”

“우리는 착하게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저에게는 말씀해주지 않으실 겁니까?”


“물론 나는 말해주겠다. 질서, 인내, 끈기, 겸손, 사랑… 나는 너에게 여러 번 말했었다!”

“당신께서는 질서에 대해서는 말씀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착해지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무질서는 결코 좋은 자질이 아니다. 나는 방금 그것을 네 동료들에게 설명해주었으니, 그들이 너에게 말해줄 것이다. 나는 질서를 맨 먼저 언급했고, 사랑을 맨 나중에 언급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완전이라는 직선의 양 극단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너는 평면에 그은 직선은 시작도, 끝도 없다는 것을 안다. 각 극단은 시작이나 끝이 될 수 있다. 반면 나선이나 출발점으로 되돌아오지 않는 모든 선의 경우에는 항상 시작과 끝이 있다. 거룩함은 선형적이고(linear), 단순하고, 완전하며, 직선처럼 두 극단들만을 가지고 있다.”

“직선을 긋는 것은 쉽습니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느냐? 네 생각은 틀렸다. 그림에 있어 설혹 그것이 복잡한 것이라 해도 약간의 결점들은 눈에 띠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직선에서는 즉시 오류가 발견된다. 삐뚤어지거나 불확실한 오류 말이다.

요셉께서 나에게 일을 가르쳐주셨을 때 그분께서는 널빤지들은 완벽하게 곧아야 한다고 대단히 강조하시며 다음과 같이 지당한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아들아, 보이느냐? 장식이나 둥글리는 일에는 작은 불완전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눈이라는 것은 그것이 아주 노련하지 않다면, 한 점을 보면 다른 점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한 널빤지가 그것이 마땅히 그래야 할 정도로 평평하지 않다면, 농부의 보잘것없는 식탁과 같은 가장 간단한 작품에 있어서도 그것은 경사지거나 흔들리게 되어 실패작이 된다. 그것은 땔감으로나 적합하다.’

우리는 영혼들에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영원한 불에나 소용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우리가 하늘나라를 얻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완벽하게 평평하고 네모반듯한 널빤지처럼 완전해야 한다.

자기의 영적인 일을 무계획적으로 시작하는 사람이 무익한 일들에서 시작하여 어떤 들떠 있는 새처럼 이 일에서 저 일로 건너뛰는 것은 자기의 일의 여러 부분들을 다 짜 맞출 수 없는 채로 끝나고 말게 된다. 그것들은 아귀가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질서와 사랑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는 이 두 극단을 바이스들 사이에 끼워 단단하게 고정시켜놓아야 장식들이든, 조각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나머지 모든 것을 가공할 수 있다. 너는 알아들었느냐?”

“예, 저는 알아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침묵하며 자기가 받은 교훈을 숙고하고 나서 갑자기 결론짓는다.

“그렇다면 제 동생은 저보다 더 현명합니다. 이 애는 정말 찬찬하거든요. 한발 한발 말없이 조용하게 전진합니다. 이 애는 움직이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반면… 저는 많은 일들을 빨리 해치우고 싶어 하는데, 결과적으로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누가 저를 도와줄까요?”

“네 착한 뜻이. 베드로야, 걱정하지 마라. 너도 일하고 있다. 너도 너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다.”

“저는요?”


“필립보, 너도.”

“그럼 저는요? 저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같이 생각되는데요.”


“아니다. 토마스야, 너도 일하고 있다. 너희 모두는 일하고 있다. 너희는 야생나무들이지만, 접붙이기들이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너희를 변화시킬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내 기쁨이다.”

“바로 그겁니다. 저희가 슬퍼하면 당신께서는 저희를 위로해주시고, 저희가 약할 때 당신께서는 저희를 강화해주시고, 저희가 두려워할 때 당신께서는 저희를 격려해주십니다. 당신께서는 항상 모든 사람을 위하여 모든 경우에 조언해주시고, 위로해주실 준비가 되어 계십니다. 당신께서는 어떻게 항상 준비되어 계시고 그리도 친절하십니까?”

“내 벗들아, 그것이 바로 내가 무엇을 발견하려고 하는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미리 알고 온 이유이다. 누군가가 환상들을 품지 않는다면 그는 실망하지 않게 되고, 그래서 그는 열성(enthusiasm)을 잃지 않게 되어 앞으로 나아간다. 너희도 동물적인 사람(animal man)을 영적인 사람(spiritual man)으로 만들어야 할 때 이것을 기억해라.”

 

 



140. 회당장 클레오파의 집에서

1945. 4. 18.

요한과 그의 형이 어떤 마을에서 대문을 두드린다. 나는 그 집이 엠마오의 두 제자가 예수님의 부활 후에 그리스도와 함께 들어갔던 집이라는 것을 알아본다. 문이 열리자 들어간 다음 그들은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이야기한다. 그들은 다시 밖으로 나와서 거리를 지나 한적한 곳에서 다른 제자들과 함께 서 계시는 예수께로 간다.

“선생님, 그는 집에 있습니다. 그는 당신께서 오신 것을 몹시 기뻐합니다. 그는 저희에게 말했습니다. ‘가서 그분께 내 집을 그분의 마음대로 쓰시라고 말씀드리시오. 지금 나도 가겠소.’”

“그럼 가자.”

그들은 잠시 걸어가다가 '맑은 내'에서 본 적이 있는 늙은 회당장 클레오파를 만난다. 예수와 회당장이 서로에게 인사한 다음, 족장처럼 보이는 그 노인은 경의의 표시로 무릎을 꿇는다. 그를 보고 있는 몇 명의 주민들이 호기심을 보이며 다가온다.

노인이 일어서서 말한다.
“여기 언약된 메시아께서 오셨습니다. 오, 엠마오의 주민들이여, 이 날을 기억하시오.”

어떤 사람들은 순전히 인간적인 호기심으로 쳐다보고, 다른 사람들은 종교적인 경의를 가지고 지켜본다. 두 남자가 군중을 헤치며 다가와서 말한다.

“라삐님, 당신께 평화. 저희도 그날 거기 있었습니다.”

“당신들 모두에게 평화. 나는 여러분의 회당장께서 나에게 부탁하신 대로 여기 왔습니다.”

“당신께서는 여기서도 기적들을 일으켜주시겠습니까?”

“만일 믿고 기적을 필요로 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있다면, 나는 물론 기적을 행하겠습니다.”

회당장이 말한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회당으로 오시오. 병자들을 가진 사람들도 오시오. 선생님, 제가 이렇게 말해도 됩니까?”

“예, 그렇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6시 이후에 나는 전적으로 여러분을 위하여 시간을 내겠습니다. 지금 나는 온전히 착하신 클레오파의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말씀하신 다음 뒤따라오는 군중의 선두에서 노인과 나란히 그의 집까지 걸어가신다.

“선생님, 이 아이는 제 아들입니다. 이 사람은 제 아내고요. 그리고 이 아이는 제 며느리이고, 얘들은 제 손자들입니다. 저의 다른 아들이 그의 장인 클레오파와 이곳의 불쌍한 사람 한 명과 함께 예루살렘에 가 있어 몹시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나중에 당신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나의 주님,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들어오십시오.”

그들은 집안으로 들어가 유다인의 풍속에 따라 음식물로 원기를 회복한다. 그 다음에 그들은 넓은 벽난로에서 타고 있는 불 가까이로 간다. 날씨가 춥고 습하기 때문이다.

“잠시 후에 식사하십시다. 저는 이곳의 유력자들을 초청했습니다. 오늘은 큰 명절입니다. 그들 모두가 당신을 믿지는 않습니다만, 원수들도 아닙니다. 그들은 찾고 있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들도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최근에 메시아에 대하여 너무 자주 실망했습니다.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성전에서 한마디만 한다면, 모든 의심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에서는… 저는 사람들이 소박하게 당신을 뵙고, 당신의 말씀을 듣는다면, 많은 일들이 그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께 몇 명의 참된 친구들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도 그 중 한 분이십니다.”

“저는 한 보잘것없는 늙은입니다. 만일 제가 좀 더 젊었다면 저는 당신을 따랐겠지만, 지금은 많은 나이가 부담입니다.”

“당신은 믿음으로써 이미 나를 섬기고 계십니다. 당신은 당신의 믿음으로 나를 전하고 계십니다. 클레오파, 안심하세요. 나는 구속의 시간에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시몬이 헤르마와 함께 오십니다. 이분들은 막 도착하셨습니다.”
회당장의 아들이 알린다.

점잖은 중년의 두 남자가 들어오는 동안 모든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 사람은 시몬이고, 이 사람은 헤르마입니다. 이들은 참된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영혼은 진실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분들의 영혼들에게 그분 자신을 드러내 보이실 것입니다. 그 동안 평화가 이분들 위에 내려오기 바랍니다. 평화 없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열왕기에 엘리야에 대하여 말하는 대목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분들은 당신들의 제자들입니까?”
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묻는다.

“그렇습니다.”

“이분들은 나이도 다 다르고, 출신지방도 각양각색이로군요. 그런데 당신께서도 갈릴래아 분이십니까?”

“나자렛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는 호구조사의 시기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렇다면 당신께서는 베들레헴 출신이시군요. 당신의 얼굴 모습이 그것을 확증합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약점에 대한 친절한 말씀이시군요. 그러나 확증은 초자연적인 것 안에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당신께서 하신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헤르마가 말한다.

“그것들도 그렇고, 성령께서 내 입술에 두신 말씀들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저는 당신의 말씀을 직접 들은 사람들을 통하여 여러 번 들었습니다. 당신의 지혜는 참으로 크십니다. 그런데 당신께서는 그 위에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려 하십니까?”

“왕은 자기 나라의 법들을 아는 신민들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모든 법들은 영적입니다!”

“헤르마,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그것들 모두는 전적으로 영적입니다. 나는 영적인 나라를 가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영적인 법전(spiritual code)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재건은 어떻게 됩니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그것의 인간적인 의미로 생각하는 흔한 오류에 빠지지 마세요.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을 뜻합니다. 나는 이 하느님의 백성의 참된 자유와 능력을 재건할 터인데, 구속되고 영원한 진리에 대하여 지혜롭게 된 영혼들을 하늘나라에 돌려줌으로써 그 나라를 재건할 것입니다.”

“식탁에 앉으십시다.”

클레오파가 예수와 함께 식탁 가운데에 자리 잡으며 말한다. 헤르마는 예수의 오른편에 앉아 있고, 시몬은 클레오파 옆에 앉아 있다. 다른 자리들에는 회당장의 아들과 제자들이 앉아 있다.
예수께서 집주인의 청에 따라 봉헌하시고 축복하신 다음 식사가 시작된다.

“당신께서는 이 근방으로 오셨습니까?”
헤르마가 묻는다.

“아닙니다, 나는 갈릴래아로 갈 것입니다. 나는 나중에 이곳을 지나갈 것입니다.”


“뭐라고요? 당신께서는 맑은 내를 떠나실 겁니까?”


“그렇습니다. 클레오파.”

“겨울인데도 많은 무리들이 그곳에 가곤 했었는데, 왜 그들을 실망시키십니까?”


“내가 실망시키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자칭 이스라엘의 순결한 자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뭐라고요? 왜요? 당신께서 무슨 해를 끼치셨는데요? 팔레스티나에는 자기들이 원하는 곳에서 말하는 많은 라삐들이 있습니다. 당신께는 왜 그것이 허락되지 않습니까?”

“클레오파, 캐묻지 마시오. 당신은 연로하시고, 지혜로우십니다. 쓰라린 지식의 독을 당신의 마음에 넣지 마십시오.”

“당신께서는 새로운 가르침을 설파하고 계셨는데, 아마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잘못 평가하여 그것을 위험한 것으로 여긴 모양이로군요? 저희가 당신에 대하여 아는 바로는 그런 것 같지 않은데… 맞지요, 시몬? 아마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않겠지요. 당신께서 보시기에 그 가르침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습니까?"
헤르마가 묻는다.

“십계명에 대한 정확한 지식, 즉 사랑과 자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랑과 자비 즉 하느님의 이 호흡과 이 피가 내 행동과 내 가르침의 규칙입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모든 나날의 어려운 상황들 안에서 그것을 실천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 아니라 착함입니다.”

“그것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의하여 죄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사명을 잘못 전할 수 없고, 나를 ‘자비(Mercy)’로 땅 위에 보내신 하느님께 불순종할 수도 없습니다.

정의(Justice)의 세기들 후에 완전한 자비의 때(the time of full Mercy)가 왔습니다. 정의는 자비의 자매입니다. 그들은 한 태에서 태어났습니다.

전에는 정의가 더 강했고, 자비는 정의의 준엄성을 완화시키기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금지당하실 수는 없으니까요.
지금은 자비가 여왕이고, 정의는 이를 환호합니다. 왜냐하면 정의는 벌해야만 하는 것이 몹시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상황을 적절하게 살펴보신다면, 여러분은 사람이 엄하게 되시도록 하느님께 강요했었던 이래 그것들이 항상 함께 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인류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말하는 것의 증거입니다. 아담에 대한 처벌 그 자체에도 자비가 섞여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죄 중에서 그들을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어버리실 수 있었습니다만, 그들에게 속죄를 허락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악의 근원이었고, 자기가 악의 근원이 된 것에 대하여 낙심한 여인의 눈에 선의 원인인 한 여인(a Woman)을 빛나게 하셨습니다.그리고 그분께서는 그 두 사람에게 자녀들과 생활에 필요한 지식도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살인자 카인에게도 정의와 함께 사람들이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표를 주셨는데, 그것은 자비였습니다.
그분께서는 또한 타락한 인류에게 노아를 주셔서 방주 안에 인류를 보존하게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영원한 평화의 언약을 약속하셨습니다. 다시는 끔찍한 대홍수들이 없을 것이라고요.

정의는 자비에 의하여 억제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나와 함께 거룩한 역사를 내 순간까지 다시 살펴보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은 점점 더 큰 사랑의 파도들이 연이어 이어지는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오, 인류여, 지금 하느님의 바다는 만조인데, 그것은 깨끗해지고 아름다운 너를 그 깨끗하고 고요한 물 위로 하늘에까지 들어 올리며 너에게 말한다. ‘나는 너를 내 아버지께 넘겨드린다.’

세 사람은 그렇게도 많은 사랑의 빛에 놀라 넋 놓고 있다. 그러다가 클레오파가 한숨을 쉰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은 당신 한 분뿐이십니다. 하지만 요셉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그들이 이미 호소했을 텐데, 그 호소가 받아들여졌을까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클레오파가 예수께 말한다.

“선생님, 엠마오의 한 남자가 중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오래 전에 자기의 아내를 버렸는데, 그 여자는 안티오키아로 가 큰 상점을 가지고 있는 자기의 오빠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결혼한 지 넉 달 만에 쫓겨난 그 여자를 결코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 이유들을 조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는 그 여자에 대하여 아무 말도 들은 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이름이 자연히 그 집안에서 없어졌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인이 되고 아버지의 재산과 사업체를 상속받은 다음에 결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야포에서 큰 상점을 가지고 있는 여자를 알게 되어 그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저는 모르지만 그 여자가 그의 아버지의 첫 번째 아내였던 여자의 딸이라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비록 제가 볼 때 그 여자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극히 불확실하지만, 그것은 중죄였습니다.
요셉은 단죄받아서 한 신자로서 그리고 한 남편으로서의 평화를 한 순간에 잃어버렸습니다. 요셉은 몹시 괴로워하다가 아마도 자기의 여동생이기도 한 자기의 아내를 버렸고, 그 여자는 고통스러워 한 나머지 열병이 걸려서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양심적으로 말하는데, 만일 그의 재산을 탐내는 원수들이 없었다면, 그는 그토록 심하게 타격받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당신이시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클레오파, 이것은 매우 중대한 사안입니다. 당신이 나에게 오셨을 때 왜 나에게 그것에 대하여 말해주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당신께서 이곳을 멀리 하시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 그러나 저는 이런 일들로 멀리하지 않습니다! 이제 들으십시오. 물질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근친상간이고, 따라서 처벌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죄를 지으려는 뜻이 있을 때에만 잘못은 정신적인 죄가 됩니다.

그가 의식적으로 근친상간을 범했습니까? 당신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죄가 어디 있습니까? 즉 죄지으려는 그의 죄책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자기의 아버지의 딸과 동거했다는 잘못에 대하여 고찰해야 할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 여자가 그의 아버지의 딸이라는 것이 불확실하다고 하셨지요. 설령 그녀가 그의 누이라 해도, 그 잘못은 그들의 동거생활이 중단되었을 때 끝납니다. 그것은 그 이혼과 그녀의 그 후의 죽음으로 분명히 끝났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외관상의 죄도 용서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는 온 세상에게 알려진 가운데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왕의 근친상간에 대한 유죄판결이 없는 만큼, 사람들은 이 슬픈 사안을 동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건의 기원은 더 중대한 악이 아니라 해도 더 많은 악들을 피하기 위한 모세에 의해 허락된 아내를 버릴 권리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나는 그 권리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내를 버릴 권리는 간통과 지금 이 사안과 같은 상황들을 조장하기 때문에 그런 권리 없이 결혼생활이 행복하든, 불행하든 부부는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내가 되풀이하여 말하는데, 만일 여러분이 엄격하려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엄격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 그 다음에는 권력자들에게 엄격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세례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왕의 죄에 맞서 자기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습니다. 단죄하는 사람들 자신에게는 이와 유사하거나 더 악한 죄들이 없습니까? 아니면 그들의 호화로운 겉옷이 자주 악습들로 인하여 병든 그들 자신들의 몸을 가려주는 것처럼 그들의 이름이나 권력이 그것들을 은폐하는 베일이 되는 것입니까?”

“당신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요컨대… 당신은 누구십니까?…”


회당장의 두 친구가 이구동성으로 묻는다.
예수께서는 대답하실 시간이 없다. 왜냐하면 문이 열리며 아들 클레오파의 장인인 시몬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어서 오세요. 무슨 소식이 있습니까?”

그들 모두가 궁금해 하여 더 이상 아무도 선생님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는다…

“글쎄요… 요셉은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제물 봉헌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이스라엘에서 분리되었습니다.”

“그는 어디 있습니까?”

“저기 밖에요. 그는 울고 있습니다. 나는 가장 유력한 사람들에게 호소해보려고 했지만, 그들은 마치 내가 나병환자라도 되는 양 나를 내쫓았습니다. 이제는… 하지만… 저 사람은 망했습니다. 그의 재산도, 그의 영혼도. 그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는 일어서서 한 마디 말씀도 없이 문을 향하여 가신다.
클레오파 노인은 그분께서 홀대로 인하여 기분이 상하신 줄 알고 말한다.

“오! 선생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하지만 저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제 마음이 잠시 어지러워졌었습니다. 부디 여기 머무르십시오!”

“클레오파, 나는 머무를 것입니다. 나는 단지 저 불행한 사람을 만나 보러 나갈 뿐입니다. 당신이 원하신다면, 나와 함께 가십시다.”

예수께서는 현관으로 나오신다.
집 앞에는 좁은 빈터와 작은 화단들이 있고, 그 너머로 길이 있다. 한 남자가 문간 땅바닥에 드러누워 있다. 예수께서는 두 팔을 밖으로 뻗으신 채로 그에게 다가가신다. 그분의 뒤에는 그 광경을 지켜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요셉, 아무도 당신을 용서해주지 않았소?”


예수께서는 지극히 다정하게 말씀하신다.
그는 줄곧 자기를 단죄하는 수많은 목소리들을 듣다가 그토록 친절하게 들리는 새 목소리를 듣고 소스라치며 위를 쳐다본다.

“요셉, 아무도 당신을 용서해주지 않았소?”
예수께서는 다시 한 번 물으시며 그를 일으키시기 위하여 그의 두 손을 잡으시려고 상체를 숙이신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불행한 남자가 묻는다.

“나는 자비이고, 평화요.”

“자비와 평화는 더 이상 저에게 없습니다.”

“하느님의 품에는 언제나 자비와 평화가 있소. 그분의 품은 자비와 평화로 가득하고, 특히 불행한 자녀들에게는 더욱 그렇소.”

“그렇지만 제 죄는 너무 커서 저는 하느님으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당신은 분명히 착하신데, 당신이 부정 타지 않도록 저를 내버려두십시오.”

“나는 당신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겠소. 나는 당신에게 평화를 주기를 원하오.”

“하지만 저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당신에게 말했어요. 나는 자비이고, 평화라고요. 나는 구세주 예수요. 일어나시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소. 나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의 본의 아닌 오염을 사해주오. 다른 악은 존재하지 않소.


나는 세상의 죄들을 없애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오. 나는 영원하신 아버지에게서 모든 재판권을 부여받았소. 내 말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오.


가엾은 이스라엘의 아들이여, 오시오. 당신의 지친 몸에 활력을 주고, 낙심한 당신의 영혼을 굳세게 하시오. 나는 훨씬 더 중한 죄들도 용서해줄 것이오.


아니오. 자포자기하는 마음들은 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오. 나는 흠 없는 어린양이오. 그러나 나는 오염되는 것이 두려워 상처 입은 양들에게서 도망치지 않소. 오히려 나는 그 양들을 찾아 데려가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엄혹하고 불공정하기까지 한 판결로 인하여 완전히 파멸해 왔소. 관용이 없는 가혹함으로 인하여 한 영혼을 자포자기하게 만드는 사람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오. 그들은 하느님이 아니라 사탄의 이익들을 위하여 일하오.

지금 나는 자신을 구속하기를 갈망하지만, 그들에 의하여 구세주로부터 쫓겨난 창녀와, 의인이기 때문에 박해받고 있는 회당장 한 사람을 보아 왔소. 또한 지금 나는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 타격받는 사람을 보오.

나는 악덕과 거짓말이 번성하는 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너무 많은 것들을 보오. 하나의 벽돌 위에 다른 벽돌을 쌓아 담을 세워 장벽을 만드는 것처럼 내가 보고 있고, 1년 동안에 내가 이미 본 너무 많은 것들이 나와 그들 사이에 견고한 벽을 쌓아 올리고 있소. 그들이 제공한 재료들로 그 담이 완전히 쌓아질 때 그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오!

이것을 받아서 먹고 마시시오. 당신은 기진맥진해 있소. 그 다음에 내일 나에게로 오시오. 두려워하지 마시오. 당신이 평화로운 생각의 틀로 돌아오면, 당신은 자유롭게 당신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게 될 거요. 당신은 지금 그렇게 할 수 없고, 당신이 그것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도 위험할 거요.”

예수께서는 그 사람을 식당 방으로 데리고 가셔서 강권하여 그분의 자리에 앉히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그에게 시중드시며, 헤르마와 시몬에게 말씀하신다.

“이것이 내 가르침(My Doctrine)입니다. 바로 이것이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말로만 가르치지 않고, 실천합니다. 진리와 사랑에 목마른 사람들은 나에게로 오시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여기서 나의 복음 전파의 첫해가 끝난다. 이것에 유의해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말할까? 이 이야기가 알려지는 것이 내 소원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주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과의 사이에서 일어났었던 일이 이 작품을 두고도 일어난다. 사랑받기를 원하는 – 아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to know is to love) – 내 갈망은 너무 많은 것들로 인하여 거절된다. 그런데 그것은 너희에게 갇혀 있는 영원한 선생님인 나를 깊이 상심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