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21, 하느님의 뜻은 빛이다.
언제나 이를 행하는 사람은 빛을 먹으며 자라기에 결점들이 끊임없이 정화된다
1903년 10월 16일
1. 평소의 상태대로 있노라니 내가 온통 죄와 쓴 물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그 순간 그분께서 번쩍 하는 빛처럼 나의 내면에 나타나셨다. 흠숭하올 예수님을 그렇게 잠깐 뵈었는데 그럼에도 그분의 현존 안에 나의 죄들이 죄다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는 두려워하면서 이렇게 여쭈었다.
“주님, 주님의 현존 안에서는 마땅히 더 잘 깨달아야 하겠거늘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니 어찌 된 일입니까?”
2. 그분께서는 이렇게 대답해 주셨다. “딸아, 나의 현존은 끝없는 바다이니, 이 현존 안에 있는 사람은 조그만 물방울과도 같다. 바다인 내 안에 사라졌으니 자기가 검은지 흰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더군다나 내 거룩한 손길은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하며 검은 것을 희게 한다. 그러니 네가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
3. 그뿐만 아니라, 나의 뜻은 빛이다. 네가 언제나 나의 뜻을 행하면 빛을 먹으며 자라게 된다. 너의 고행과 극기와 고통이 네 영혼을 위한 빛의 양분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뜻이 참 생명을 줄 수 있는 오직 하나의 본질적인 음식이기 때문이다. 계속 빛을 먹으며 자란다면 네 영혼에 배어 있는 결점들이 끊임없이 정화된다는 것을 모르겠느냐?” 그런 다음 그분은 모습을 감추셨다.
5권-22, 죄란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인간 의지의 행위이다
1903년 10월 18일
1. 평소의 상태로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한 순간 흠숭하올 예수님을 뵈었는데,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무엇이 죄를 이루는지 알겠느냐?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인간 의지의 행위이다.
서로 사이가 나쁜 두 친구를 상상해 보아라. 만약 그것이 사소한 불화라면, 비록 사소한 일에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우정은 불완전하고 충실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서로 사랑하면서 어떻게 사이가 틀어질 수 있겠느냐? 사랑한다는 것은 희생이 요구될 때에도 상대방의 뜻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 불화가 만약 심각한 것이라면 그들이 이제는 벗이 아닐뿐더러 사나운 적이기도 함을 뜻한다.
4. 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사소한 일들 속에서라도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은 하느님의 적이 되기 시작하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창조주와 조물 사이를 틀어지게 하는 것은 언제나 조물이다.”
5권-23, 교회에 산 제물이 필요한 이유
1903년 10월 24일
1. 신부님에게 나의 (산 제물이라는) 신분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면 어쩔까 불안하다고,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시험 삼아 한 번 나가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신부님은 평소와 달리 반대하지 않으면서 “좋아요. 내일 그렇게 해 보시오.” 하셨다.
2. 그래선지 어떤 부담감에서 풀려난 느낌이었다. 그리고 신부님은 거룩한 미사를 집전하셨고 영성체 후에 나는 내적으로 예수님을 뵈었다. 예수님은 두 손을 합장하신 채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시면서 자비와 도움을 간청하시는 모습이었다.
3. 그 사이 나는 나 자신의 바깥으로 나와서 어떤 방 속에 있게 되었고, 여기에는 매우 아프지만 위엄있고 존귀한 한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은 침상에 누워 있었다. 침상의 머리맡과 발치가 매우 높아서 거의 천장에 닿을 정도였다. 나는 어느 사제의 팔에 안겨 있었으므로 침상 머리 위쪽에서 침상이 흔들리지 않게 지탱하면서 그 가련한 여인을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4. 그런 자세로 있는 동안, 두 세 명의 수녀들이 그 병자를 에워싸고 돌보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무척 슬퍼하면서 “몹시, 몹시 편찮으십니다. 침상이 조금만 움직여도 큰일날 것입니다.....” 하고 서로 속삭였다. 그래서 나는 침상 머리가 흔들리면 병자가 죽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계속 붙잡고 있었다.
5. 그렇지만 너무 오래도록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있어야 하는 상황이 괴로웠기 때문에, 나를 안고 있는 분에게 이렇게 청하였다. “제발 저를 좀 내려놓아 주십시오. 여기에서는 아무런 선행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있어야 합니까? 제가 내려가면 병자를 돌보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6.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조금만 움직여도 그녀의 증세가 악화될 수 있으며 아주 심각한 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느냐? 네가 내려간다면 침상이 흔들리지 않게 할 사람이 없을 터인즉 그녀는 죽을지도 모른다.”
7. “제가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 여인에게 정말 큰 도움을 주는 것이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디 저를 내려놓아 주십시오.” 하고 내가 몇 번이나 거듭 졸라대자 그분은 나를 바닥에 내려놓으셨다. 그러므로 나는 혼자 그 병자에게로 다가갔다. 이제는 아무도 붙잡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고 슬프게도 침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흔들림으로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몸을 떨며 숨결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주위에 있었던 수녀들은 울먹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젠 시간이 없어요. 이미 마지막 순간이 되었어요.”
8. 그때 군인과 관리로 구성된 여러 명의 원수들이 방으로 들어와서 병자를 때렸다. 여인은 고통스러우면서도 두려움 없이 일어나 앉아 품위 있게 얻어맞으며 상처를 받고 있었고, 이 광경을 보면서 나는 사시나무 떨듯 했다. 이렇게 된 원인이 나에게 있었으니 내가 그 많은 악을 작동시킨 장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 여인은 지체들이 병들어 있는 교회를 상징한다는 것을 또 다른 점들도 많이 깨달았는데, 이는 여기에 기록된 것을 읽으면 분명히 알 수 있을 터이니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9. 나중에 나 자신의 몸 안으로 돌아와 있을 때 예수님께서 내 마음속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 신분을 영구적으로 정지시키면 원수들이 내 교회로 하여금 피를 쏟아내게 할 것이다.”
10. 그래서 나는 “주님, 제가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로서는 단 한 순간도 주님의 뜻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이 (산 제물의) 상태로 있든지 그만두든지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했다.
11. “딸아, 고해사제가 ‘좋아요. 내일 그렇게 해 보시오.’ 하고 말하면서 너를 풀어 주었을 때, 실은 그 즉시 산 제물의 역할이 소멸되었다. 왜냐하면 순종의 가치만이 산 제물의 신원을 확립시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이 없으면 이 신분이 가납되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기에, 필요한 경우, 내 전능의 기적으로 영혼의 지도자에게 빛을 주어 영혼으로 하여금 그에게 순종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자원해서 고난을 받았지만 나를 산 제물이 되게 한 것은 내 사랑하올 아버지께 대한 순종이었다. 아버지께서 가장 작은 일에서부터 가장 큰일에 이르기까지 나의 모든 행적에 순종의 영예로운 가치를 부여하시고자 하셨던 것이다.”
12. 그 뒤 나 자신 속에 되돌아왔을 때 (이 신분에서) 벗어날 시도를 한다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러므로 그렇게 해 보라고 하신 신부님이 알아서 처리하시겠지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두려움을 몰아내었다. 게다가 주님께서 나를 원하신다면 나로서는 언제든지 (그 뜻을 따를)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다.
5권-24, 은총을 지닌 영혼의 비상한 아름다움,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것은
성덕의 절정이며 영혼 안에 은총의 지속적인 성장을 이룩한다.
죽어 가는 것 같지만 다시 일어날 교회의 상징.
1903년 10월 25일
1. 나의 일상적인 상태가 시작될 순간이 되자, ‘만일 주님께서 오시지 않으면 나 스스로 이 상태를 벗어날 시도를 해 보아야지. 그러면 적어도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처음에는 그것이 가능했지만, 그 다음에는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오셨다. 내가 이 상태대로 남아 있겠다고 생각하면 그분께서 다가오시어 나를 당신께 묶어 버리시기에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벗어나겠다고 생각하면 그분께서 물러가시며 나를 자유롭게 풀어 주시기에 벗어날 수 없어졌다. 그러니 나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할 수 없었다.
2. 고해 신부님을 만난다면 어떻게 할지 몰어 보련마는! 하는 마음이 간절했는데, 좀 뒤에 그가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즉시 “제가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 아닌지 말씀해 주십시오.” 하였다. 이 말을 하는 순간 신부님의 의중(意中)이 들여다보였는데, 그 전날 내게 했던 명령을 이미 거두어들인 뒤였다. 그래서 나는 머물러 있기로 마음을 정했다.
3. 신부님이 정말 그 명령을 취소하셨다면 적절한 결정이겠고, 이와 반대로 명령의 취소가 단지 내 상상에 불과한 것이라면 그릇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사정이 이러한지라 이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다른 날, 곧 신부님이 오셨을 때 해야 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자 다시 마음이 평온해졌다.
4.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시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은총 중에 있는 영혼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바로 하느님 자신을 매혹할 정도이다. 아직 지상에 몸담고 있으나 은총을 소유한 영혼의 이 놀라운 모습을 보고 천사와 성인들도 경탄해 마지 않는다. 그들은 이 영혼이 풍기는 천상 향기를 맡고 그 주위로 달려가서 모인다. 천상에서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예수를 그 영혼 안에서 발견하고 그렇듯 기뻐하는 것이다. (같은 예수와 함께 있기에) 저 높이 천상에 있건 여기 지상의 이 영혼 곁에 있건 그들에게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5. 하지만 이 놀라운 일을 지속시키며 보존하는 것, 그 영혼을 늘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감싸 주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나의 뜻 안에서 사는것이다..... 불완전의 ‘녹’을 모조리 없애주어 그가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지식을 얻게 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나의 뜻이다. 은총 안에 그를 불러 굳건히 자리잡게 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나의 뜻이다. 그런즉 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은 성덕의 절정이며 영혼 안에 끊임없이 은총이 자라게 하는 것이다.
6. 그러나 하루는 나의 뜻을 행하고 다음날은 자기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결코 은총 안에 굳건히 머물 수 없다. 증가와 감소 사이를 오락가락할 뿐이다. 이것이 그 영혼을 얼마나 해치는지, 그리고 하느님과 그 자신에게서 얼마나 많은 기쁨을 앗아가는지 모른다! 이런 자는 오늘은 부유하고 내일은 가난한 자와도 같다. 부유함이건 가난이건 어느 것에도 확고하게 자리를 잡지 못하니 결국 어떻게 끝막음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분은 사라지셨다.
7. 좀 뒤에 신부님이 오셨다. 위에서 기록한 바를 이야기했더니, 내게 주었던 명령을 사실 철회했노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8. 그리고 이제 그의 명에 따라, 이 달 24일에 일어난 일에 대하여 내가 깨닫게 된 또 다른 의미들을 다시 서술해 보겠다.
9.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 지체들이 병들어 있는 여인은 교회를 상징한다. 비록 원수들의 타격과 학대를 받으며 지체들 안에서 앓고 있지만, 결코 품위와 위엄을 잃지 않은 여인이다. 여인이 누워 있었던 침상을 보면서 내가 이해한 것은 외관상 억압과 병에 시달리며 반대를 받고 있는 교회가 한편은 어머니의 태중에 있는 아기처럼 하느님의 부성적인 품안에서 참으로 평화롭고 안전하게 항구적이고 영원 안식을 누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10. 그리고 천정에 닿을 정도로 높은 침상의 머리맡과 발치는 언제나 교회를 도와주시는 하느님의 보호로 이해되었다. 교회가 지닌 일체가, 곧 성사들과 교리와 다른 모든 것들이 하늘로부터 온 것이기에, 모든 것이 천상적이고 거룩하고 순수한 것이다. 따라서 하늘과 교회 사이에는 결코 단절되지 않는 지속적인 통교가 있다.
11. 그리고, 여인을 돌보며 보좌하는 몇 사람의 수녀들을 보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교회를 수호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며 교회가 받는 박해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수가 그만큼 작다는 점이었다.
12. 여인이 있었던 석조의 방은 자기 고유의 권한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교회의 굳셈과 확고함 및 엄정성을 상징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원수들의 타격을 허용하며 죽어가고 있는 여인은 죽어가는 것 같이 보인 후 더욱 용맹스럽게 다시 일어날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바로 고통과 유혈의 참사를 통해서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학대받을 각오가 되어 있는 교회의 진정한 정신인 것이다.
5권-25, 오직 사랑만이 신적인 방식으로 일하고 고통받게 한다.
1903년 10월 27일
1. 여느 때의 상태로 있으면서 흠숭하올 예수님을 잠시 뵈었는데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고행과 고통을 속죄의 징벌로 받아들이는 것은 칭찬할만한 좋은 일이지만 하느님의 방식과는 상관이 없다. 나는 많은 일을 하고 많은 고난을 겪었으나 이 모든 것을 오로지 아버지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네가 즉각 알아들을 수 있겠거니와, 오직 사랑으로 말미암아 일하고 고통받는 사람은 신적인 방식으로 일하고 고통받는 것이 된다.
3. 다른 방식으로 한다면 비록 그것이 좋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인간적인 방식이다. 그러니 창조주와의 합일이 결여되어 있고, 따라서 창조주의 공로가 아니라 인간의 공로만을 얻을 뿐이다.
4. 반면에 참으로 나의 방식과 일치해 있으면 사랑의 불이 모든 차이점을 태워 없애기에 나의 일과 사람의 일을 하나 되게 한다.”
5권-26, 창조의 목적대로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영혼을 보시면서
보답으로 천상 행복의 한 몫을 미리 맛보게 하시는 예수님
1903년 10월 29일
1. 오늘 아침에는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 나타나셨는데,
흡사 나라는 인간 안에 강생하신 것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시면서
“딸아, 나는 영혼안에 새겨진 내 창조 목적의 인호를 볼 때, 내가 창조한 작품이 완성에로 이끌려지고 있음이 보이기에 흐뭇함을 느낀다. 그 보답으로 천상 행복의 한 몫을 미리 주어야 하겠다는 의무를 느낀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즉시 이렇게 덧붙이셨다. “아니다. 의무는 아니다. 왜냐하면 내게는 의무라는 것이 없으니까 의무가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더욱 강렬한 사랑을 뜻할 따름이다.”
2. “그렇게 천상 행복의 한 몫을 미리 맛보게 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영원한 진리라는 양식으로 영혼을 끌어당기면서 그의 지성에 내 신성에 대한 지식을 나타내 보이고,
나의 아름다움으로 그의 눈을 즐겁게 하며, 내 부드러운 음성이 그의 귓전에 울리게 하고,
그의 입에 나의 입맞춤을 주며, 나의 포옹과 모든 애정을 그의 마음에 준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그를 창조한 목적과 일치하는 것이니, 나를 알고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그 목적인 까닭이다.”
이 말씀을 마치고 그분은 사라지셨다.
3. 나중에, 나 자신의 바깥에 나와 있는 동안 고해사제를 만났다. 복되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옮기면서 그 말씀이 진리와 일치하는지를 물었더니, 신부님은 그렇다고 대답하셨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일 경우에는 그것을 쉽사리 알 수 있다고도 하셨다.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다른 사람에게 옮길 경우 듣는 이는 그것이 참으로 하느님의 말씀임을 알게 될 뿐더러, 오직 하느님의 영만이 지니신 감동을 내적으로 느끼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5권-27, 평화가 없는 마음은 하느님의 일을 중단시킨다
1903년 10월 30일
1.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아침에 오시지 않으니까, 내게 나타나곤 하는 이가 정말 주님인지 나를 속이려는 원수인지 누가 알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이처럼 매정하게 나를 떠나 계실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잠깐 나타나셔서 오른손을 드시더니 엄지손가락으로 내 입을 누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쉬! 조용히! 어떤 사람이 태양을 보고서도 지금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보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말이 맞겠느냐? 차라리 태양이 모습을 감추었다고 하는 편이 더 참되고 온당한 말이 아니겠느냐?”
2. 그 뒤에는 그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입과 정신과 마음에 두루 손을 대시고 어루만져 주시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를 온통 환히 빛나게 하시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분을 뵐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분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너 계속 그러겠느냐? 의심 때문에 네가 평화롭게 있질 못하니, 네 안에서 내가 일을 하지 못하도록 애쓰는 격이다. 나는 평화의 원천이다. 그런데 네가 평화롭지 못한 것을 보면 네 안에 살고 있는 이 지도자가 과연 네 ‘평화의 왕’인지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4. 아, 모쪼록 좀 조심하려무나. 내가 영혼 안에서 모든 일을 하기에 나 없이는 영혼이 아무 일도 할 수 없음이 사실이지만, 내가 언제나 영혼에게 의지의 끈을 남겨 주어 이 끈에 의해서 그가 ‘나 자신의 뜻으로 모든 일을 한다.’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네 마음이 소란스러워지면 나와의 일치의 끈을 잘라 버리는 것이고 그러면 나는 네 안에서 일을 할 수 없어지므로 팔짱을 낀채 네가 평화를 회복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네 의지의 끈을 다시 붙잡아 매고 내 일을 계속하기 위함이다.”
Fiat Voluntas Tua! “천상의 책” 5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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