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천상의책1-5권

(천상의책 5권-11~20)충실과 정신 집중의 열매/거룩하신 뜻 안에서 지신 십자가의 성격/부재고통

Skyblue fiat 2014. 9. 9. 15:47

 

 

15권-11,  빈사 상태에 처해 있는 두 사람

 1923년 2월 3일

 

1. 다정하신 예수님의 부재로 생명이 빠져나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분은 나의 내면에서 기적을 내실 때에도 저 끔찍한 죄들의 바다 속에 계신 모습을 보여 주신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진 내가 소리 내어 울부짖자, 그제야 그 죄들의 바다에서 나오시어 나를 껴안으시고 말씀하셨다. 내 신음 소리에 자극을 받으신 모양이었다.

 

2. "딸아, 무슨 일이냐? 숨넘어갈 듯한 그 신음 소리를 듣고 내가 만사를 제쳐 놓고 왔다. 너를 도우며 지탱해 주려고 말이다. 딸아, 인내하여라. 너도 나도 인류의 선익을 위해 죽어 가는 가련한 상태에 처해 있다.

 

3. 하지만 사랑이, 죽어 가고 있는 우리를 지탱하여 죽지 않게 한다. 허다한 죄들의 바다 속에 빠져 죽을 듯한 가엾은 인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4.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동안에도 그 바다의 파도들이 우리 둘을 익사시키려 드는 것 같았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누가 다 말할 수 있으랴!

 

5. 그런데 그 파도들 속에 전쟁 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이 보이기에,

"저의 생명이시여, 이 두 번째 전쟁이 얼마 동안 계속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첫 번째 것이 그렇게 오래 끌었다면, 더욱 광범위하게 번질 것 같은 이 전쟁에서야 무슨 일인들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하고 내가 묻자, 예수님을 매우 괴로워하시며 이르셨다.

 

6. "과연 광범위한 전쟁이 되겠지만 그다지 오래 끌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개입할 터인즉, 하늘에서 내려오는 징벌이 땅의 징벌을 약화시킬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기도하자. 그리고 너는 결코 내 뜻 밖으로 나가지 마라.”

 

 

    

15권-12,  충실과 정신 집중의 열매

1923년 2월 13일

 

1. 내가 심히 괴로워하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잠시 나타나셔서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고, 내게 충실하며 집중하여라. 충실과 정신 집중은 한결같은 성정(性情)이라는 결실을 낸다. 이것은 변덕을 부리지 않게 하면서 영혼 안에 완전한 평화를 확립한다.

 

2. 이 평화가 그 사람을 지배하기에,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게 되고 원하는 것에 도달하게 된다. 특히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변함없이 빛과 열을 방출하는 하나의 작용만 하는 태양과 같다. 태양은 오늘 이랬다 내일 저랬다. 하는 법이 없다. 언제나 충실하고 항구하게 같은 일을 한다.

 

3. 그러나 태양의 이 하나뿐인 활동이 지구 표면으로 내려와 맞닿으면, 얼마나 다양한 작용을 하는지 모른다! 그 수는 거의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니, 만약 반쯤 닫힌 꽃봉오리를 보면 빛과 열의 입맞춤으로 활짝 열리게 하면서 색채와 향기를 넣어 주고, 설익은 과일을 보면 충분히 익히며 단맛을 부여하고, 녹색인 들판을 보면 황금색으로 바꾸고, 썩어 악취가 나는 공기를 보면 빛의 입맞춤으로 정화한다.

 

4. 요컨대 태양의 활동은 만물에게 지구상에서 생존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어, 하느님께서 정하신 대로 각자가 내포한 유용성을 산출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태양은 충실하게 언제나 같은 일을 하는 것으로, 만물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5. 오, 태양이 만일 빛을 보내는 일을 한결같이 하지 않는다면, 지상에 얼마나 큰 이변과 무질서가 속출하겠느냐! 밭에 대해서건 농작물에 대해서건 사람들도 도무지 가늠할 수 없어서 '태양이 나에게 빛과 열을 보내지 않으니, 언제 수확할지, 언제 과일이 익을지 알 수가 없다.' 하고 말할 것이다.

 

6. 충실하게 정신을 집중하는 영혼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내 뜻 안에서 행하는 그의 행위는 하나이지만, 그 효과는 셀 수 없이 많은 것이다. 반면에 그가 변덕스럽고 주의가 산만하다면, 그 자신도 나도 아무런 가늠을 할 수가 없고, 산출 가능한 선의 열매를 확정할 수도 없다.“

 

 

 

 

​15권-13  예수님께서 거룩하신 뜻 안에서 지신 십자가의 성격.    

구원 사업은 영원의 영역에서 이루어졌기에 완전하다.

1923년 2월 16일

 

1. 늘 하듯이 십자가에 달려 계신 분께 경배하며 그분의 사랑하올 뜻 안에 나 자신을 맡기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내 마음 안에서 기척을 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2. "딸아, 서둘러라. 서둘러라. 서둘러라. 어서 내 의지 안에서 네 길을 따라 걸어라.

네 행위나의 행위내 엄마의 행위와 결합시킬 수 있도록,

내 인성이 지고한 뜻 안에서 행한 모든 것을 통해 계속 나아가거라.

 

3. 한 피조물이 영원한 뜻 안으로 들어와서 우리의 행위가 삼중으로 되게 하지 않고서는 이 지고한 뜻이 땅에 내려와 인간 세대들 가운데 자신의 생명을 베풀지 않기로 정해져 있다.

이 뜻은 스스로를 알리기 위하여 삼중의 행위들이 행렬을 이루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니 서둘러라."

 

4. 예수님은 침묵을 지키셨고, 나는 마치 거룩하고 영원하신 뜻 안으로 던져진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예수님의 모든 행위들을 발견하고 나 자신의 행위들을 겹쳐 놓았다는 것뿐이다. 그때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5. "딸아, 내 뜻은 내 인성이 이 거룩한 뜻 안에서 행한 일에 대하여 아주 많은 것을 알려 줄 것이다. 내 인성은 흠 없고 완전한 구원 사업을 이루기 위해 영원의 영역 안에서 이를 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6. 여기에 영원한 의지가 반드시 있어야 했던 이유가 있다. 곧, 나의 인간적인 의지가 영원한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내 모든 행위가 끝이 있는 유한한 행위가 되었을 터이지만, 가지고 있었기에 끝이 없는 무한한 행위가 된 것이다.

 

7. 따라서 나의 고통, 나의 십자가는 끝없이 무한한 것이었고, 내 인성으로 하여금 이 모든 고통과 십자가를 만나게 한 것은 거룩한 뜻이었다. 이 뜻이 첫 사람에서 마지막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 가족 위에 나를 눕혔고 나는 온갖 종류의 고통을 나 자신 안에 흡수했으니, 각각의 피조물이 내 십자가를 이루었던 이다.

 

8. 그러므로 십자가는 과거와 미래의 모든 세기만큼 길었고, 인간의 모든 세대만큼 넓었다. 그것은 유다인들이 나를 못 박게 한 갈바리아의 그 작은 십자가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이 십자가는 지고한 뜻이 나를 못 박혀 있게 한 저 긴 십자가의 비유였을 뿐이다.

 

9. 각 피조물이 그 십자가의 길이와 너비를 이루고 있었고 그렇게 하면서 그들 자신도 같은 십자가에 붙어 있게 되었으므로, 거룩한 뜻이 나를 그 위에 누이고 못 박으면서 그것이 나만의 십자가가 아니라 이를 이룬 모든 이의 십자가도 되게 하였다.

 

10. 이런 이유로 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 내게 영원의 영역이 필요했던 것이니, 땅이 그것을 담기에는 너무 협소한 공간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1. 내 인성이 하느님의 뜻 안에 행한 것과 이 뜻이 나로 하여금 모든 피조물에 대한 사랑으로 겪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들이 알게 된다면, 오, 얼마나 큰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겠느냐!

 

12. 내 십자가는 나무로 된 것이 아니었다. 나무가 아니라 영혼들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뜻이 나를 누인 십자가에서 나는 그들의 심장이 고동치는 것을 느꼈다.

 

13. 이 십자가는 그들 중 아무도 내게서 빠져나가지 않게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리를 잡아 주었다. 그리고 그 모두에게 자리를 잡아 주려고 나를 너무나 끔찍하게 잡아 늘렸다. 얼마나 혹독한 고통이었는지, 이에 비하면 내 수난 중의 고통은 경미한 고통, 아니 오히려 위안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14. 그러니 내 뜻이, 이 영원한 의지가 내 인성 안에서 행했던 모든 것을 알릴 수 있도록 너는 서둘러라.

이 지식이 수많은 사랑들을 획득할 것이다.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하리니, 내 뜻이 그들 가운데서 다스리게 될 것이다."

 

15.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에 애정이 어찌나 철철 넘쳐흐르는지 나는 아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제 사랑이시여, 당신의 뜻에 대해 말씀하실 때면 그리도 큰 사랑을 나타내시니 어인 까닭이십니까? 너무나 큰 사랑을 느끼신 나머지 당신 자신 안에서 또 한 분의 당신을 내보내시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다른 어떤 것에 대해 말씀하실 때는 그런 사랑을 느끼지 않으십니까?"

 

16. 그러자 그분께서 이르셨다.

"딸아, 그것이 알고 싶으냐? 내 뜻이 피조물에게 알려지게 하려고 이 뜻에 대해 말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은, 그 피조물 안에 나 자신의 신성을, 따라서 또 하나의 나를 불어넣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나의 사랑이 그 안으로 들어가서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를 사랑하게 된다. 내 뜻에 대해 내가 말할 때에 사랑이 흘러넘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때문이니, 그 피조물의 마음 안에 내 뜻의 거처를 장만하려는 것이다.

 

17. 반면에 다른 어떤 것에 대해 말할 때 내가 불어넣은 것은 내 덕행들이다. 그에게 지금 내가 알려 주고 있는 덕행이 무엇이냐에 따라 나는 그를 창조주로서 사랑하거나, 어떤 때는 아버지로서, 어떤 때는 구원자로서, 어떤 때는 스승으로서, 또 어떤 때는 의사거나 기타 등등으로서 사랑한다. 이런고로 내가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 주고 싶을 때와 같은, 저 넘쳐흐르는 사랑은 아닌 것이다.“

 

 

 

 

​15권-14,  청천벽력 같이 몰아닥친 고뇌.  높이 오를수록 낮아져야 한다.

1923년 2월 22일

 

1. 나의 상태가 지속적인 위장(僞裝)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여간 괴롭지 않았다. 이 무슨 청천벽력인가! 그것이 내 위에 온갖 폭풍이 몰아닥치게 하고, 나를 모든 악인들 아래에, 심지어 저주받은 이들 아래에도 놓았으니, 나보다 몹쓸 인간은 일찍이 이 땅에 존재한 적이 없었을 성싶었다.

 

2. 그러나 무엇보다도 비통한 것은 이러한 상태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나갈 수만 있다면 내 죄를 고백하고,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인자하신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몹쓸 이 인간을 당신의 무한하신 자비로 용서해 주시련마는!

 

3. 그런데 이 폭풍들 중의 하나를 치르고 나자,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모습을 보여 주시기에 대뜸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랑하올 예수님, 이 무슨 추악한 생각입니까! 오, 부디 제 안에 그런 거짓이 존재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차라리 저에게 죽음을 주실지언정, 위장이라는 그지없이 추악한 악덕으로 주님께 죄를 짓는 일은 없게 해 주십시오.

 

4. 그것이 저를 겁먹게 하고 짓밟아 으깨며 사그라지게 하고, 당신의 다정하신 품안에서 빼내어 모든 사람의 발밑에, 저주받은 이들의 발밑에 던져둡니다. 저의 예수님, 저를 무척 사랑한다고 하시기에 드리는 말씀이오니, 제 영혼의 이 잡아 찢는듯한 고통이 당신에게서 달아나게 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마음이 저의 이 큰 고통을 어찌 참고 보실 수 있겠습니까?"

 

5. 그러자 예수님게서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고, 낙심하지 마라. 모든 사람보다 높이 올라가야 할 사람은 모든 사람 아래, 가장 낮은 바닥까지 내려가야 한다.

 

6. 사람들은 만물의 여왕이신 내 어머니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보다 높은 사람이 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모든 이들 가운데서 가장 겸손하셨다고들 하는데, 그러나 그분은 모든 이들 가운데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가장 작은 바닥까지, 모든 사람 아래로까지 내려가셔야 했다.

 

7. 게다가 내 천상 엄마께서는 당신의 하느님이신 창조주에 대하여, 그리고 일개 피조물인 당신의 신원에 대하여 알고 계셨으므로 그토록 낮게 내려가셨고, 그러기에 우리 성삼위가 그분을 높이, 아무도 그분과 같은 수준일 수 없을 정도로 높이 끌어올렸던 것이다.

 

8. 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내 뜻의 작은 딸을 모든 사람 위로 끌어올려 내 뜻 안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게 하려고, 내가 그녀를 가장 낮은 바닥까지, 모든 사람 아래로까지 내려가게 한다. 내려갈수록 내가 끌어올려 거룩한 의지 안의 자기 자리를 차지하게 하려는 것이다. 오, 모든 이들 위에 있을 사람이 모든 이들 아래에 있는 것을 보면 내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9. 나는 달려서, 아니 날아가서 너를 팔에 안고, 내 뜻 안에 너의 영토를 확장한다. 그러므로 너의 선익을 위해 모든 것을 허락하고, 또한 너에 대한 나의 가장 높은 계획도 성취하게 한다.

 

10. 하지만 내가 이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느라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내가 너를 팔에 안거든, 만사를 제쳐두고 즉각 내 뜻을 따라라.”

 

 

 

​15권-15, 예수님 부재의 고통을 빈번히 겪는 이유와 의미

1923년 3월 16일

 

1. 다정하신 예수님의 부재 고통으로 반죽음 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분께서 어쩌다 오신다고 해도, 번쩍하다 사라지는 섬광 같기 때문이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그분께서 측은한 마음이 드셨는지 내 안에서 나오셨고, 나는 그분을 뵙자마자 대뜸 우는 소리부터 늘어놓았다.

 

2. "저의 사랑이시여, 너무 지독한 고통입니다! 당신 없이는 죽어 가는 느낌이건만, 죽지 않으면서도 죽어 가는 이것이야말로 죽음 중에서도 가장 가혹한 죽음입니다. 인자하신 당신 마음이, 오직 당신 때문에 계속 빈사지경을 헤매는 저를 어떻게 참고 보실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3. 예수님께서는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너무 낙심하지 마라." 하시고 말씀을 이르셨다. "이 고통은 너만 홀로 겪는 것이 아니다. 내 사랑하올 엄마도, 나도 겪었다. 오, 그것은 너의 고통보다 훨씬 더 혹독한 것이었다.

 

4. 하느님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 있는 내가, 마치 신성이 나를 떠나버린 것처럼, 신음하는 내 인성 안에 얼마나 자주 홀로 남아 있었던지! 그것은 속죄와 고통에 자리를 내 주기 위함이었는데, 이런 것들은 신성과 접촉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 나 역시 하느님 부재의 고통을 그토록 사무치게 절감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5.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창조 사업을 하시면서 각 피조물이 현세에서뿐만 아니라 천상 본향에서도 받게 될 모든 영광과 모든 선과 행복도 함께 내셨다. 그런데 어떤 영혼들에게 주려고 예정되어 있었던 몫은, 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전부 보류되어 있었다. 그들이 멸망했기 때문이다.

 

6. 나는 모든 것을 완성하고 모든 것을 내 안에 흡수해야 했으므로 바로 그 멸망한 영혼들이 지옥에서 겪는 고통을 겪기로 자원하였다. 오, 이것이 내게 얼마나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던지! 지옥의 실고(失苦)와 무자비한 죽음의 고통을 치러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7. 내가 모든 것을, 즉, 창조 사업을 통해 우리에게서 나온 모든 것과 모든 영광, 모든 선과 행복을 나 자신 안에 흡수해야 했던 까닭은, 이들을 받아들여 누리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 안에 다시 넣어 주기 위해서였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어떻게 줄 수 있었겠느냐? 그러므로 나는 모든 고통과 내 신성의 부재까지도 흡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8. 이제, 창조 사업 전반의 이 모든 선을 내 안에 흡수하여 모든 세대들 위에 흘러내리게 하는 우두머리가 된 나는, 고통이며 활동에 있어서 나를 닮은 영혼들을 찾고 있다. 그들로 하여금 내 인성이 담고 있는 이 큰 영광과 영예를 나누어가지게 하기 위함이다.

 

9. 그런데 모든 영혼들이 그것을 받아 누리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 자신과 현세적인 것을 비우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 나는 먼저 나 자신을 알릴 영혼들을 찾고 있다. 그런 다음 내 모습을 그들에게서 감추려는 것이다. 그들의 이 빈자리에, 나에 대해 알게 된 이 앎의 공간에, 내 부재의 고통을 양성하기 위함이다. 영혼은 부재의 고통을 겪으면서 내 인성의 영광을, 남들이 거부하는 영광을 자신 안에 흡수하게 되기 때문이다.

 

10. 만일 내가 거의 언제나 너와 함께 있지 않았다면, 너는 나를 알지도 사랑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내 부재의 이 고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이것이 네 안에 양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곧 이 고통의 씨앗과 양분이 네 안에 없었을 것이다.

 

11. 오,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나 없이 있는지, 그리하여 죽은 상태로 살아 있는지! 그들은 어떤 작은 쾌락을 잃거나 하찮은 무엇이 없으면 비통해하지만, 내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12. 그런즉 이 고통이 너에게는 위로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내가 너에게 오고 있다는 것과 네가 나를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남들이 거부하는 영광과 선과 행복을 네 안에 넣어 주기를 네 예수가 바라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확실한 표가 되기 때문이다.”

 

 

    

​15권-16,  하느님의 뜻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과 영혼을 묶는 일치의 끈이다.

 1923년 3월 18일

 

1. 다정하신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 안에 온 존재를 맡기고 있었지만, 그분의 부재로 마음이 꿰뚫리는 듯한 아픔을 느끼면서였다. 그래선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2. '그분께서 지금 이렇게 나를 떠나 계실 바에야, 무엇 때문에 내게 당신의 영원하신 의지에 대하여 그토록 많은 말씀을 하셨을까? 바로 그 말씀들이 내 가슴을 찢어발기는 칼이 되고 있지 않은가? 비록 이를 감수하며 찢어진 상처들과 찢는 손에 입을 맞추고 있지만 그래도 내게는 모든 것이 끝장났다는 느낌이 새록새록 들고 있다.'

 

3. 그러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상냥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어 양팔을 내 목 언저리에 두르시고 말씀하셨다.

 

4. "딸아,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마라. 너와 나 사이에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너의 예수는 너에게 언제까지나 너의 예수다.

 

5. 영혼을 가장 강력하게 내게 비끄러매는 것은 영혼이 그 자신의 뜻을 나의 뜻 안에 녹아들게 하는 것다. 그렇게 하는 너를 내가 어떻게 떠날 수 있겠느냐?

 

6. 게다가 나는 너에게 내 뜻에 대하여 많은 말을 함으로써 너와 나 사이에 나뉠 수 없는 결합의 끈도 그만큼 많이 만들었다. 나의 영원한 의지가 너에게 말을 하면서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대해서 내 영원한 뜻의 끈으로 너의 작은 뜻을 묶어 온 것이다.

 

7. 그 밖에도 네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을 창조할 때 우리 (성삼위)의 지고하고 일차적인 뜻은 사람이 마땅히 우리의 의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점이다.

 

8. 사람이 이 의지 안에서 살아야 우리의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고, 우리의 재산으로 살아가며 우리의 뜻 안에서 행한 행위들의 수와 같은 수의 신적 행위들로 우리의 뜻에 응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우리의 뜻이 지니고 있는 모든 재산들로 사람을 부요하게 해 주려는 것이었다.

 

9. 그러나 사람은 자기의 뜻 안에서 그 자신의 것으로 살고자 하였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재산을 잃은 채 아버지의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의 재산은 상속자가 없는 상태로 있었다. 이는 무한한 재산이건만 소유할 인간이 없었으니, 내 인성이 와서 순간마다 이 영원한 의지 안에 삶으로써 그 모든 것을 차지하였다.

 

10. 즉, 내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고난을 받고 일하다가 이 지고한 의지의 영원한 입맞춤을 받으며 죽기까지 언제나 이 의지 안에서 살기를 원하였고, 또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은혜를 모르는 인간이 망각 속에 방치한 채 손 댄 적이 없는 그 많은 선물들이 내 차지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11. 딸아, 내 무한한 지혜가 나의 뜻에 관하여 이제껏 많은 말을 해온 것은 네게 단지 그 지식만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고말고! 오히려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에 대하여, 또 이 뜻 안에 있는 재산에 대하여 알려 줌으로써, 네가 이 뜻 안의 길을 걸어감에 따라 그것을 소유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12. 나의 인성은 모든 일을 다 했고, 모든 것을 차지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형제인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나는 숱한 세기를 기다렸고, 그러는 사이에 숱한 세대가 지나갔다.

 

13. 지금도 여전히 기다리고 있으니, 이제는 사람 편에서 그 자신이 생겨난 원천인 내 뜻의 날개를 타고 내게로 돌아와야 한다. 여기에 네가 최초로 도착하여 환영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 말은 너로 하여금 내 뜻을 소유하도록 격려하는 박차가 될 것이고, 네가 내 뜻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묶어 주는 사슬이 될 것이다.”

 

 

 

15권-17,  성모님의 고통들과 그 안에 작용하신 하느님의 '피앗'

1923년 3월 23일

 

1. 천상 엄마의 고통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노라니,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이르셨다. "딸아, 고통의 첫 왕은 바로 나였다. 사람이요 하느님인 나는 모든 것을 내 안에 모아들여야 했으니, 고통을 위시하여 모든 것에 대한 최고권을 가지고자 했던 것이다.

 

2. 내 엄마의 고통은 다름아닌 내 고통의 반영이었다. 이것이 그분 안에 반영되면서 그분으로 하여금 모든 고통을 공유하게 하였고, 얼마나 깊이 꿰찌르며 혹심한 괴로움과 아픔을 끼쳤는지, 내 고통이 반영될 때마다 그분은 초주검이 되실 정도였다.

 

3. 그러나 사랑이 그분을 지탱하면서 다시 생명을 주었다. 그러므로 영예뿐만 아니라 정의의 권한에 의해서도 내 엄마는 그 무한한 고통의 바다들의 첫 여왕이었다."

 

4.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동안, 어머니께서 예수님 앞에 계신 것 같았는데, 과연 예수님께서 지니신 모든 고통들과 성심의 꿰뚫린 상처까지, 이 고통의 여왕님의 성심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5. 그 고통이 반영될 때마다 이미 꿰찔린 어머니의 마음을 다시 찌르는 칼이 되었고, 빛나는 '피앗'이 새겨져 있는 이 칼들이 그분을 에워싸고 있었으며, 지극히 찬란하게 빛나는 그 수많은 '피앗'이 그분에게 형언할 수 없도록 어마어마한 영광을 주고 있었다.

 

6. 그때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내 엄마를 여왕으로 선정하고 그토록 큰 영광으로 빛나게 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나의 전능한 '피앗'이었다.피앗이 그분의 모든 행위와 고통마다 함께 짜여 있었고, 그 각 고통의 생명이 되기도 하였다.

 

7. 그러니 원하는 강도(强度)의 고통을 그분에게 주면서 칼을 이룬 첫 행위자는 내 '피앗'이었다. 내 '피앗'이, 극히 가벼운 일말의 반항도 받음 없이, 찌르고 또 찌르고 아픔에 아픔을 더하면서 원하는 모든 고통을 저 꿰찔린 마음에 줄 수 있었던 것이다.

 

8. 그러나 그분은 당신의 심장 박동까지 내 '피앗'이 그 생명이 되는 것을 오히려 영예로 여기셨다. 그러기에 '피앗'이 그분에게 완전한 영광을 주면서 그분을 참되고 정당한 여왕으로 선정한 것이다.

 

9. 그러면 내가 누구에게 내 고통과 내 생명 자체를 반영할 수 있겠느냐? 바로 내 '피앗'을 생명으로 지닐 영혼들이다. '피앗'이 그들로 하여금 내 반영들을 흡수하게 할 것이고, 그러면 내가 내 뜻이 내 안에서 행하는 바를 그들과 함께 아낌없이 나눌 것이다.

 

10. 나는 그러므로 내 뜻 안에서 영혼들을 기다린다. 그들에게 각각의 행위와 고통에 대한 참된 지배력과 완전한 영광을 주기 위해서다.

 

11. 그러나 내 뜻 바깥에서 일어나는 활동과 고통은 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렇게 하는 이에게 '내가 너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행동하고 고통을 겪도록 너를 움직인 것은 누구의 뜻이냐? 그에게서 보상을 받도록 하여라.' 하고 말할 것이다.

 

12. 선행이나 고통의 감수라고 하더라도 내 뜻이 그 안에 있지 않으면, 그런 것이 도리어 나쁜 격정으로 변질되기에 비참한 예속이 될 수 있다. 홀로나의 뜻만이 참된 지배력과 참된 덕행과 참된 영광을 주어, 인간적인 것을 신적인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15권-18,  예수님께서 당신의 성사적 생명의 열매를 주시려고 

미리 주시는 은총은 천지창조의 선물들을 능가한다.

1923년 3월 27일

 

1. 영성체를 하고 나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나는 그분을 뵙자마자 그 발치에 몸을 던지고 입 맞추며 온몸으로 그분께 매달렸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게 손을 펼치시며 이르셨다.

 

2. "딸아, 내 팔 안으로 오너라. 내 심장 속으로도 들어오너라. 나는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려고 성체라는 베일로 나를 덮어 가렸다. 이 성사에서 내가 낮춤의 심연으로 더할 수 없이 깊이 내려간 이다.

 

3. 그것은 피조물을 나의 수준까지 끌어올려 나와 하나가 될 정도로 내게 동화되게 하고, 또한 내 성혈을 그의 혈관 속으로 흘려 넣어, 나 자신이 그의 심장 박동의 생명이 되고, 그의 생각과 온 존재의 생명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4. 내 사랑의 불꽃이 나를 삼키고 이 불꽃으로 사람도 삼켜 또 하나의 나로 다시 태어나게 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이 내가 성체의 베일 아래 숨어 있기를 원한 까닭이었으니, 이렇게 숨은 상태로 사람 안에 들어가 그를 나로 변화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5. 하지만 변화가 일어나려면 사람 편의 마음이 준비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넘쳐흐르는 사랑으로 성체 성사를 제정했을 때에, 사람을 위해 내 신성 내부로부터 더 많은 은총과 선물과 호의와 빛을 쏟아내었다. 합당하게 나를 받아들이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때 내 사랑이 얼마나 많은 선을 쏟아내었는지, 천지창조의 선물들을 능가할

정도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 말하자면 사람에게 나를 받아들이는 데에 필요한 은총부터 먼저 주고, 그 다음에 나 자신을 받아들이게 했던 것이니, 그것은 내 성사적 생명의 참된 열매를 주기 위함이었다.

 

7. 그러나 이 선물을 미리 받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비운 작은 공간죄에 대한 혐오, 나를 받아들이려는 원의가 있어야 한다. 부패한 진창 속에는 들어갈 수 없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8. 그러므로 내 선물을 미리 받지 않고서는 나를 받아들이기 위한 진정한 내적 준비를 하지 못한다. 내가 이런 영혼들 안으로 내려갈 경우, 내 생명을 소통할 공간을 찾아낼 수 없게 된다.

 

9. 나는 그들에게 시체와 같고 그들 역시 내게는 시체이니, 내가 불타고 있어도 그들은 내 불꽃을 느끼지 못하고, 내가 빛인데도 그들은 더욱 캄캄한 맹목 상태로 있을 뿐이다. 아아, 내 성사적 생명 안에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자리하고 있는지!

 

10. 많은 사람들이 준비 부족으로, 좋은 느낌을 조금도 받지 못한 채 나를 영하기에 내게 염증을 낼 지경이 된다. 그러면서도 나를 계속 영하면, 이것이 나에게는 계속적인 갈바리아가 되고, 그들에게는 영원한 멸망이 된다. 사랑에 힘입어 나를 영하지 않는 것은 내게 또 하나의 모욕을 주는 것이고, 그들에게는 자기 영혼에 또 하나의 죄를 보태는 것 되기 때문이다.

 

11. 그런즉 너는, 이 성사 안의 나를 영하면서 사람들이 저지르는 숱한 능욕과 모독을 보속하며 기도하여라.“

 

 

 

    

15권-19,  하느님 뜻은 은총과 성덕과 영광에로 부활케 하는 씨앗이다.    

신적 활동 안에 있는 인간적 활동의 공간.  지식은 영혼의 눈이다.

1923년 4월 2일

 

1. 여느 때와 다름없는 상태로 있는데,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빛의 그물 안에 둘러싸이신, 매력적인 아름다움과 엄위가 서린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그것은 그분의 눈에서 발하는 빛, 입에서 나오는 빛, 그리고 말씀 한마디마다, 심장 박동마다, 각각의 몸짓과 걸음마다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한마디로 그분의 인성이 바로 빛의 심연이었다.

 

2. 그분께서 나를 보시며 이 빛으로 칭칭 감아 묶으시고 이르셨다.

"딸아, 내가 부활했을 때 내 인성이 그토록 큰 빛과 영광에 싸이게 된 것은, 지상 생활의 전 과정에 걸쳐, 하나하나의 행위와 숨과 눈길 따위 모든 것 안에 지고한 뜻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3. 내가 끊임없이 그렇게 함에 따라, 하느님의 거룩하신 의지가 내 부활의 그 영광과 빛을 마련해 두셨던 이다. 하기야 내 안에 하느님 뜻의 끝없는 빛의 바다를 지니고 있었으니, 내가 보고 말하고 행동할 때마다 모든 사람에게 빛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빛을 내게서 나온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4. 이런 이유로 내가 너를 이 빛으로 묶어 빛 안에 잠기게 하고 싶었다. 네가 내 뜻 안에서 계속하는 행위들의 수와 같은 수로 부활의 씨앗을 네 안에 뿌리기 위함이었다.

 

5. 내 뜻만이 사람의 혼과 몸을 영광에로 다시 일으킬 수 있다. 뜻이 은총에 부활하게 하는 씨앗이요, 더없이 높고 완전한 성덕에로, 또한 영광에로 부활하게 하는 씨앗이다.

 

6. 그러므로 내 뜻 안에서 움직이는 영혼은 그 행위마다 새로운 신적 빛을 한데 묶는다. 내 뜻은 본성상 빛 까닭이니, 이 뜻 안에 사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곧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을 빛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다."

 

7. 나중에 나는 다정하신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주님 뜻 안에서 비오니,

저의 말이 주님 뜻 안에서 불어나, 각 사람의 말 하나하나에 대하여,

기도와 찬미와 감사와 사랑과 보속의 말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저의 목소리가 하늘과 땅 사이에 떠올라 사람의 모든 목소리를 흡수하고자 합니다.

사람이 쓰는 말을 주님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바꾸어 공경과 영광의 말로 주님께 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8. 그런데 사랑하올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하는 내 입에 당신 입을 가까이 대시고 숨을 쉬시면서 그분의 숨 안에 나의 숨과 음성과 숨쉬기를 흡수하시어, 그분 뜻 안의 길 위에 갖다 놓으셨다.

 

9.그리하여 그것이, 내가 그분께 방금 말씀드린 대로 사람들의 말을 하나하나 거쳐 가면서 그 말과 목소리들을 변화시켰고, 그렇게 거쳐가는 동안 높이 솟아올라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모든 이의 이름으로 하느님 앞에 가져가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10. 나는 놀라움에 잠기는 한편, 예수님께서 당신의 뜻에 대해 더 이상 이렇다 할 말씀을 하시지 않으신 것이 기억나서 그분께 물었다. "말씀해 주십시오. 저의 사랑이시여, 당신 뜻에 대한 말씀을 별로 하시지 않으니 어찌 된 일입니까? 혹시 제가 그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충실히 실천에 옮기지도 않기 때문입니까?"

 

11.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딸아, 내 뜻 안에는 하느님의 업적 안에 사람의 업적이 들어가야 할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은 내 뜻 안에 사는 사람에 의해 채워져야 한다.

 

12. 그것은 네가 내 뜻 안에서 살면서 이 뜻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려고 정신을 모을수록, 그만큼 더 빨리 채워질 것이다. 내 뜻은 사람의 뜻이 그렇게 자신이 태어난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듯 내 뜻 곁에서 맴돌고 있는 것을 보면서 흐뭇해할 것이니, 인류에게 품고 있었던 열망이 채워지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13. 그렇게 하는 이들이 극소수에 불과하거나 다만 한 사람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 뜻은 다른 이들이 보이지 않고 다만 한 사람만 있어도 그와 함께 모든 것을 보완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좌우간 사람의 뜻이 내 뜻 안으로 들어와서 남들이 하지 않는 모든 것을 대신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14. 그러면 그것이 너무나 내 마음에 든 나머지 내가 하늘을 쪼개고 내 뜻이 내려가게 하여, 이 뜻이 지닌 모든 선과 놀라운 기적들을 알리게 한다.

 

15. 네가 내 뜻 안으로 거듭거듭 들어올 때마다, 나로 하여금 내 뜻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너에게 주게 하고, 더욱 많은 기적들에 대해 설명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행하고 있는 선이 무엇인지 알고 그 진가를 인정하며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갈망을 가지는 것이 내 바람이기 때문이다.

 

16.  이윽고 네가 이를 사랑하고 그 진가를 알아보는 것이 눈에 띌 때라야 내가 그것을 너의 소유로 내주는 것이다. 지식은 영혼의 눈이다. 이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은 이것에 대해서만은 소경이나 진배없다.

 

17. 내 뜻 안에는 그런 소경이 한 사람도 없다. 오히려 각 지식이 저마다 그의 시력을 더 좋아지게 한다. 그러니 너는 자주 내 의지 안으로 들어와 내 뜻 안에 네 영역을 확장하여라. 그렇게 하는 것이 보이면 내가 다시 와서 내 뜻이 지닌 더 놀라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겠다."

 

18. 그분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나와 함께 잠시 지상을  한 바퀴 둘러보셨다. 그러나 얼마나 간담이 서늘하던지! 칼이나 창을 들고 사랑하올 예수님을 해치려고 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들 가운데에는 주교들과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있었고, 이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게 그분의 심장을 푹푹 찔러대는 것이었다.

 

19. 오! 너무 아프신 나머지 그분은 이를 피해 내 팔 안으로 몸을 던지셨다. 나는 그분을 꼭 끌어안고 당신 고통을 나누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그분은 이 간청을 들어주셨는데, 어찌나 세게 내 심장을 찌르셨는지 종일토록 그 깊은 상처가 느껴지고 있었다. 이후에도 그분은 몇 번이나 다시 오셔서 그렇게 하셨다.

 

20. 그다음 날 아침, 내가 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을 때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어,

"네 심장 좀 보자." 하셨다. 그리고 이것을 들여다보신 뒤 내게 물으셨다.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가라앉도록 내가 고쳐 줄까?"

 

21. 나는 "저의 지고한 선이시여, 왜 저를 고쳐 주시고자 하십니까?" 하고 되물었다.

"제가 당신을 위해 고통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까? 당신 심장은 온통 상처투성이니, 이에 비하면 제 심장은 - 오, 제 고통은 너무나 미미한 것입니다! 저를 낫게 해 주시기보다는 모쪼록 더 많은 고통을 주십시오."

 

22. 그러자 예수님을 나를 껴안으시고, 전보다 더 아프게 내 심장을 계속 찌르셨다. 그리고 나를 떠나셨다. 이 모든 것이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기를 빈다.

 

 

    

​15권-20  만물을 움직이는 원초적 행위이신 하느님.

​하느님의 뜻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이 원초적 행위 안에서

움직임으로써 모든 피조물의 행위들 안에서도 움직인다.

1923년 4월 2일

 

1. 하느님의 의지 안에 완전히 잠겨 있음을 실감하면서 다정하신 예수님께

 '아, 비오니, 제가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 밖으로 결코 나가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언제나 이 사랑하올 뜻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이고, 사랑할 수 있겠나이다.'

하고 혼잣말을 했다.

 

2.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동안 굉장히 순수한 빛에 에워싸인 느낌이 들더니,

내 지고하고 한 분뿐이신 하느님의 모습이 보였다. 그분께서 이르셨다.

"내 사랑하는 딸아, 나는 내 뜻 안에서 수행되는 이 행위들을 무척 사랑하기에, 영혼이 그렇게 하려고 이 뜻 안으로 들어오면 곧바로 내 빛의 그늘로 그를 에워싼다. 그리고 내가 달려온다. 나의 행위와 영혼의 행위를 하나 되게 하기 위함이다.

 

3. 나는 천지만물을 움직이는 원초적 행위다. 그러므로 이 원초적 행위가 없다면 만물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는 마비 상태가 될 것이다. 생명은 각종 운동 속에 있다. 움직임이 없는 것은 모두 죽은 것이다.

 

4. 따라서 원동력인 내가 모든 것의 모든 움직임에 생명과 능력을 주기에, 나의 원초적 행위에서부터 만물의 운동이 시작된다. 이는 흡사 전동(傳動) 장치에 연결된 바퀴들과 같다. 첫 바퀴의 첫 운동이 전해지는 순간부터 다른 모든 바퀴들도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5. 보아라, 그러니 내 뜻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자연히 나의 원초적 행위 안에서 움직인다. 그리고 나의 행위 안에서 움직임으로써 모든 피조물의 행위들 안에서도 움직인다.

 

6. 그런 사람이 나 자신의 행위 안으로 들어오면, 나는 그가 피조물의 모든 행위 안에 있는 것을 보고 또 느낀다. 왜냐하면 그들이 범하는 죄스러운 행위들을 같은 수의 거룩한 행위들로 바꾸어 내게 주기 때문이다. 한데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나의 원초적 행위 안에서 움직였다는 점에 있다.

 

7. 그런고로 내가 말한다.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대리하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나를 지키며, 내 행위를, 바로 내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한다. 이런 이유로 내 뜻 안에서 활동하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지만, 사람들의 떠들썩한 갈채도 외침도 없다.

 

8. 이것이 모든 피조물을 이긴 나의 진정한 승리다. 그것도 완전히 신적인 승리이기에 인간적인 것은 입을 다물게 한다. 내 지고한 뜻의 개선을 환호하는 표현이, 여기에 맞갖은 말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