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연옥에 대한 네 가지 흥미로운 문제
-들어가는 사람, 장소, 시간, 고통의 등급-
신학에 등장하는 많은 주제들이 인간의 지혜가 얕음을 증명한다. 그중 하나가 '연옥'이라는 주제이다. 우리는 연옥에 대해 똑똑히 다 알 수는 없다. 연옥에 대해 이미 알려져 있는 내용만 잘 지켜도 우리의 사랑과 분발심을 키워 나갈 수 있다. 그러면 신덕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어 죄의 성질과 근원을 깨닫게 할 것이다. 따라서 연옥에 대한 네 가지 문제를 논함은 무익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흥미롭지만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미리 고백해 두어야겠다. 바오로 사도의 “내가 여러분에게 신비 하나를 말해 주겠습니다.”(1코린 15,51)라는 말이 이 경우에 딱 들어맞는다.
연옥에 가는 이들은 누구인가
세례성사 때의 결백한 상태로 이승을 떠나는 어린이, 최고의 사랑을 드러낸 순교자, 현세에서 죄의 잠벌을 다 보속한 이, 극소수의 성인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은 천국 영복을 얻기 전에 그 현관, 즉 연옥을 거쳐 간다는 것은 단언할 수 있다.
자기 시대의 주요한 성인들을 알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한 은혜로 성인들의 사후 영혼에 대하여 묵시를 받았던 유명한 성녀 데레사는 말했다.
“이 많은 성인 중에 연옥을 거치지 않고 바로 천국에 들어간 영혼은 단지 셋밖에 보지 못했다.
현세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으로는 가장 높은 경지까지 도달한 것으로 알려진 성녀 데레사도 임종을 앞두고 곁에 있는 수녀들에게 말했다.
"제가 연옥에 있을 때에 저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성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성녀 데레사는 연옥을 거쳤다."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거쳐갈지도 몰랐기에 성녀는 준비를 하고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이 방법은 가장 유익하고 또 안전하다. 우리도 성녀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천사'라는 별명의 수사
파리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서 깊은 신심으로 이름이 높아 '천사'라 불리던 수사가 죽었다. 그의 벗 중에 신학 박사가 있었다. 그는 망자를 위해 드리기로 규정되어 있는 미사 세 대를 일부러 드리지 않았다. 천사 수사는 틀림없이 천국에서 영광의 맨 윗자리에 있을 것이므로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를 의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후, 박사가 수도원 뜰에서 산책을 하고 있는데 죽은 이가 불에 싸여 그에게 나타나더니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부디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당신이 저를 위해 바쳐야 하는 미사 세대가 봉헌될 때까지 저는 연옥에서 고생해야 합니 다. 만일 규정대로 당신이 의무를 다해 주셨더라면 저는 지금 천국에 있었을 것입니다."
박사는 놀라서 물었다.
“형제여, 어찌 그대를 위해 기도가 필요하겠소? 그대는 모두가 탄복할 정도로 모범적인 수사가 아니었소? 그대의 구원을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소." 그러자 죽은 이는 말했다.
"아아, 슬프도다. 하느님의 심판이 얼마나 엄하신지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습니다. 무한하신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우리의 가장 완전한 행위 안에서도 부족함을 발견하십니다. 하느님 대전에서는 천사까지도 불완전합니다. 그런데 어찌 우리 인간이 부족함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고행의 도구
성 비안네는 에퀼리라는 본당의 보좌신부로 있으면서 주임신부인 발레 신부에게서 훌륭한 가르침을 받아 한평생 그 가르침을 지켰다. 임종 때가 되자 주임신부는 베개 밑에서 고행의 도구ㅡ채찍, 쇠사슬, 낡은 옷 따위를 비안네에게 내주면서 말했다.
"비안네 신부님, 이걸 빨리 숨겨 주십시오. 내가 죽은 후에 발견된다면 사람들은 내가 벌써 죄 보속을 다한 줄로 알테고, 그러면 나는 세상 끝날까지 연옥에서 고생해야 할 테니까요."
그리고 울고 있는 비안네 신부를 보고 말을 이었다. "당신은 한결같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섬기시오... 안녕히,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성 비안네는 강론에서 말했다.
“형제들이여, 연옥 불에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아주 미소한 죄로도 넉넉합니다.”
십중팔구
독자 여러분, 이런 까닭에 "당신도 십중팔구는 연옥을 거칠 것 입니다."라고 단언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건 아주 알기 쉬운 일이다. 생각해 보라. 천국에 들어가는 이는 하느님의 공의를 완전히 만족시킨 청정 결백(潔白淸淨)한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상태로 이승을 떠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우선 완전한 통회, 아니 불완전한 통회가 될 지언정 고해성사를 통해 대죄의 영원한 벌이 없어졌다고 가정하 자. 그래도 나머지 잠벌은 이승에서 보속을 다할 겨를이 없으니 연옥에 가서 해야 한다. 대부분 소죄를 지니고 죽게 되며 소죄의 사함은 받았다고 해도 조그마한 보속도 남지 않을 만한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연옥에서 자기 영혼을 정화해야 한다.
성녀 비탈리나는 모범적 여인이었다. 성녀의 높은 명성을 전해 듣고 투르 시의 주교인 성 그레고리오는 그 무덤을 참배했다. 주교는 그때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는 먼저 성녀께 인사하고 하느님께 기도드린 후 무덤 속에서 내 강복을 청하는 소리를 듣고 그에 따랐다. 그러고 나서 '당신은 천상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무덤 속에서 슬픈 목소리로 '살아 있을 때에 범한 소죄 하나 때문에 아직 누리지 못합니다.'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옆에 있던 이에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한 동정녀이며 사후에는 기적을 행할 만큼 완전한 성녀도 단 하나의 소죄 때문에 아직까지 천상 행복을 얻지 못했다면 불쌍한 죄인인 우리는 어떠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유명한 예수회의 신부 라콜롱비에르는 자신의 장례식 날까지 연옥에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일을 친히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에게 알려 주시며 "이 사제는 착한 종"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예들만 보아도 천사들에게서도 더러움을 보시는 하느님께 인간의 더러움이 안보일 리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있는 문제가 절로 머리에 떠오른다. 즉 "어린이는 연옥에 가는가?" 하는 문제이다.
어린이의 영혼
어린이도 잘못임을 알면서 불순명, 욕심, 게으름 따위의 소죄를 범한다. 또 아이들은 자신이 소죄를 지었다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 보속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따라서 만일 그대로 죽는다면 연옥에서 그 보속을 다해야 한다.
195년 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태어난 디노크라테스는 뺨에 생긴 흉한 혹 때문에 일곱살에 죽었다. 그의 누이 페르페투아는 신자였는데 우상 숭배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옥에 갇혔다. 옥에 갇혀 기도를 하던 중 페르페투아는 필요할지 어떨지는 몰랐지만 동생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했다.
며칠 후 야수에게 먹혀 순교자가 될 이 처녀는 밤에 돌연히 환상을 보던 중에 동생 디노크라테스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깜깜한 암흑 속에 있는 것을 보았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불처럼 타올 랐으며 뺨에는 혹이 나 있었다. 동생 가까이에 물이 가득 담긴 큰 항아리가 있는데도 동생은 항아리에 입이 닿지 않아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다.
페르페투아는 동생이 몹시 목말라한 모습이 지금 동생이 연옥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표시라고 깨닫고 그를 구해 주기 위해 마음을 모아 다시 기도했다. 한참 후 그녀는 또 환상 중에 동생을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동생의 몸 전체가 깨끗했다. 동생은 새하얀 옷을 입고 있었고 얼굴빛은 건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세상의 어버이들 중에는 예닐곱 살 난 귀여운 어린이의 천진스러움을 보고 이들은 천사처럼 바로 천당에 갔으리라고 생각하고 기도를 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어린이들도 연옥에서 고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린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그들에 게 도움이 되며 부모에게는 의무이다.
이렇게 볼 때, 연옥을 거쳐가는 영혼은 대단히 많다. 성녀 데레사는 이렇게 말한다. "갈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만큼 수많은 영혼이 연옥에 간다." 한편으로 임종 때에, 최후의 일순간에 대죄인이 그 생애 중에 몇 가지 선행을 했기 때문에, 또는 미래에 친척이나 신자들이 그를 위하여 기도와 고행을 할 것을 하느님께서 미리 보셔서 그 특별한 은총으로 영혼이 회개하여 연옥에 가는 수가 있다. 이런 사람들이 연옥에는 많다. 선한 사람 가운데 이 세상에서 살면서도 마음을 다스려 죽을 때까지 보속을 완수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 대단히 어려운 일이므로 선한 사람들도 연옥에 많다.
형제여, 연옥에는 우리의 친척, 벗, 동포 또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한 형제들이 정말로 많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연옥에서 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연옥실화(정화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곳, 연옥) 제5장. 연옥에 대한 네 가지 흥미로운 문제
/ 막심 퓌상 지음/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옮김 /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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