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36, 거룩한 미사와 그 효과. 특히, 죽은 이들의 육신 부활
1. 이제부터 쓰려고 하는 바를 예수님께서 깨우쳐 주시리라고 확신하면서 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오, 저의 좋으신 예수님, 당신과 함께 지내려면 얼마나 큰 인내가 필요한지 모릅니다! 어쨌든, 제 감미로운 사랑이신 당신께서 바라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단, 당신 은총의 도움을 받아야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다. 저로서는 이 심오하고 숭고한 신비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없을 뿐더러 그럴만한 능력도 없다는 것을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2. 따라서, 내가 거룩한 희생제사에 참여하는 동안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깨닫게 해 주셨다. 즉, 미사 중에 전개되는 신비의 깊이를 잘 고찰해 보면 미사야말로 우리 거룩한 종교의 모든 신비를 내포한다는 것이다.
3. 그렇다. 거룩한 미사는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을 주목하게 하고, 사람의 선익을 위하여 아낌없이 당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대하여 우리의 마음에 은밀하게 알려 준다. 이는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었음을 끊임없이 기억하게 할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걸음마다 겪으신 고난도 상기하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수님의 이 사랑을 얼마나 배은망덕으로 갚곤 하는지!
4. 미사는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단 한 번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그 한없는 사랑으로, 이 영구적인 희생 제사를 통하여, 산 제물의 상태로 성체 안에 계속 머물러 계시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5. 예수님께서는 미사와 성찬례는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항구적인 기념이라는 것과 이는 우리의 영혼과 마찬가지로 육신에도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알려 주셨다. 그러므로 미사와 성체 성사는 우리의 몸이 죽음에 의해서 썩어 먼지가 된 후에도 마지막 날 불멸의 생명으로 부활하리라는 것을 말해 준다.
6. 착한 이들은 영광스러운 삶을 누릴 것이니,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는 삶을 살고 난 후 그분과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부활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악한 이들에게는 고통으로 가득 찬 삶이 기다릴 것이니, 그리스도와 함께 살지 않았으므로 그분 안에 부활할 수 없기 때문이다.
7.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미사 성제가 내포하는 가장 고무적인 점, 즉 우리 거룩한 종교의 모든 신비들 가운데서 가장 탁월한 신비는 복된 성사 안에 계시는 예수님과 그분의 부활이라는 점을 분명히 깨닫게 해 주셨다. 예수님의 부활이, 그분의 수난과 죽음과 함께, 지극히 거룩한 미사가 거행될 때마다 제대 위에서 신비스럽게 새로이 재현되는 것이다.
8. 제병의 형상 안에 숨어 계신 이 복된 성사의 예수님께서 당신을 받아 모시는 사람들에게 현세적인 삶의 여정 전체를 통해서 그들의 동반자와 생명이 되시려고 참으로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고, 그분의 은총으로, 육신과 결합되어 있는 우리의 영혼이 복되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품안에서 영광과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해 주신다.
9. 이 신비들은 너무나 심오하여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을 때라야 비로소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복된 성사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저 위 천국에서 누릴 인식의 작은 부분만을 주시되, 거의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만큼 명백한 증거와 함께 여러 모양으로 주시는 것이다.
10. 우선, 미사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생애와 수난과 죽음 및 이후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생각하게 한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실제로 지상 생활을 하신 33년 동안 이루어진 일이다. 반면에 미사 중에는 이것이 짧은 시간에 신비적으로 재현된다.
11. 성체 안에는 무(無)에 이르기까지 당신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께서 참으로 살아 계시는데, 이는 이 성체가 다 녹아 없어질 때까지 계속된다. 그 후에는 참으로 살아 계신 그분의 성사적인 참된 현존이 우리 마음에서 사라진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와 같이 당신 성부의 품으로 돌아가시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미사 중에 축성되는 모든 제병 안에 다시 내려오셔서 평화와 보상적인 사랑의 산 제물이 되신다. 이와 같이 성사적인 신분을 새로이 취하시는 것은 지상의 나그네인 우리를 위함이요, 그분의 영원하신 아버지께 보상과 영광을 드리시기 위함이다.
12. 그러므로 복된 성사 안에 계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육신이 영광을 입고 부활할 것을 생각하게 하신다.
즉 성사적인 상태가 끝나면 하느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시어 거처를 잡으시는 그분과 꼭 마찬가지로, 인간 영혼도 현세 생활이 끝나면 하늘로 건너가서 하느님의 품에 영원한 거처를 잡는 것이다.
13.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육신이 소멸되는 것은 흡사 우리 안에 오신 성체의 소멸처럼 거의 완전히 사라지는 것 같지만, 공심판 날이 오면 하느님 전능의 기적으로 생명을 얻고, 영혼과 결합되어 영육이 한가지로 그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착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참 행복을 영원히 누리겠지만, 하느님을 멀리한 악인들은 더할 수 없이 혹독한 고통을 영원히 받게 될 것이다.
14. 이제까지 말한 것이 미사 성제의 놀라운 효과이니, 이는 수정처럼 맑은 원천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잘 활용하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우리 좋으신 하느님으로부터만 가장 큰 유익과 위로를 얻기 마련이다. 이는 천국에 들어가기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우리 영혼을 양육할 뿐만 아니라 육신에도 같은 특은을 주어, 적절한 때가 오면 하느님의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15. 그 위대한 날이 오면, 해가 뜰 시각이 다가올 무렵 별이 총총한 하늘을 보고 있을 때에 나타나는 자연 현상과 같은 일이 일어나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해가 눈부신 빛에 싸여 나타나면서 모든 별들의 빛을 그 자신 속에 흡수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을 보고 있는 사람의 눈에는 그 많던 별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되지만, 그럼에도 각 별은 그 자체의 빛을 지닌 채 제 자리에 남아 있다. 해가 지면, 마치 새로운 생명을 얻기라도 한 듯이, 하늘에서 다시 반짝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16. 영혼들도 이와 같을 것이다. 그들은 위에서 말한 희생제사와 사랑의 성사에서 빛을 받아 별들처럼 반짝이는 옷을 입고, 영원한 정의의 태양이신 예수님께서 도착하시기 전에, 여호사밧 골짜기(요엘 4,2.12 : 상징적인 장소 이름. “여호사밧”은 “하느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뜻. - 역주)에서 공심판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각자는 자신이 지닌 빛으로 다른 이들의 영혼을 보고 또 그 자신도 보여지게 될 터인데, 이 빛은 바로 거룩한 희생 제사와 거룩한 사랑의 성사에 의하여 받게 될 빛이다.
17. 그렇지만, 심판자이시며 영원한 정의의 태양이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면, 별처럼 빛나는 이 복된 영혼들 모두를 그분의 무한한 빛으로 흡수하시어, 영원히 그분 안에서 살면서 하느님의 완전성으로 충만한 끝없는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니게 하실 것이다.
18. 그러면, 이 거룩한 빛이 없는 영혼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겠지만, 주님께서 하라고 하시면 다른 기회에 말해 보겠다. 나중에, 위에서 말한 사랑의 대상에 관해서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바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도록 아껴 두겠다는 것이다.
19.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은 다만, 빛으로 반짝이는 영혼과 결합된 육신은 영원히 하느님과 일치한다는 것이니, 이 역시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사실이다. 반대로, 검고 어두운 영혼과 결합된 영혼은, 자발적으로 경건하게이 희생 제사와 사랑의 성사에 참여했더라면 얻게 되었을 빛이, 곧 은총의 빛이 없기 때문에 더할 수 없이 짙은 어둠 속에 던져져 가라앉게 될 것이다. 아낌없이 관대하게 빛을 주시는 분께 고의로 대적했으니 그 배은망덕의 정도에 따라 그렇게 될 것이고, 거기에서 암흑의 왕인 루치펠의 종살이를 하면서 가장 무섭고 고통스러운 가책으로 영원히 괴로워하게 될 것이다.
1권-37, 신비적 혼인을 위한 마지막 준비
1. 이제, (내 영혼이 몸을 벗어나기 시작하는) 시점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예수님께서 희생 제사와 사랑의 성사에 화답하지 않는 배은망덕한 많은 사람들로 인한 쓰디쓴 고통에 분명히 나를 참여시키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 항상 부어 주시는 은총의 빛 덕분에 나는 더욱더 그분과 하나가 되고 싶은 거룩한 열망으로 세차게 타오르곤 하였다. 게다가, 예수님께서도 전에 하셨던 감미로운 약속을 자주 다시 해 주셨으니, 이는 되도록 빨리 예식을 올리고 싶어하신 나와의 신비적인 혼인에 관한 것이었다. 이런 일들로 하여 마음이 달아오른 나는 그분께 이렇게 간청하곤 하였다.
2. “오, 지극히 사랑하는 정배시여, 부디 서둘러 주십시오! 당신과의 친밀한 일치를 더 이상 지연시키지 말아 주십시오. 드센 열망의 불길이 저를 삼켜버릴 것만 같습니다. 굳건한 사랑의 계약이 당신과 저를 묶어, 단 한 순간도 우리를 갈라놓는 자가 없도록 하십시다…….”
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신비적인 혼인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열망을 불을 내게 붙여 주시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지상적(地上的)인 것은 무엇이든지 제거되어야 한다. 무엇이든지!
네 마음뿐 아니라 네 몸에서도 없애버려야 한다. 너는 잘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지상적인 것은 아주 사소한 그림자만 있어도 해롭고, 내 사랑에 방해가 된다.”
4.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나는 대담하게 즉시 말씀드렸다.
“주님, 당신 마음에 온전히 들기 위해서는 아직도 제거해야 할 무엇이 제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태세가 되어 있는지 아닌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5. 내가 이 말을 하는 동안 예수님께로부터 한 줄기 광선의 비추임을 받았는데, 이를 통하여 내가 손가락에 끼고 있는 금반지 -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반지- 를 지적하신 말씀이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곧바로 이렇게 말씀드렸다. “오 거룩한 신랑이시여, 원하신다면 당장이라도 이 반지를 빼겠습니다.”
6. 그러자 그분께서는, “내가 더 귀하고 더 아름다운 반지를 주마. 이 반지에는 나의 모습이 더 생생하게 새겨져 있어서 볼 때마다 네 마음에 새로운 사랑의 화살이 박힐 것이다. 그러니 네가 끼고 있는 그 반지는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7. 나는 어떤 애착도 느끼지 않았기에 아주 기쁜 마음으로 재빨리 반지를 뺀 후,
“거룩하신 정배시여, 이제 원하시는 대로 했으니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저와 이루고자 하시는 영구적이고 불가해소적인 결합을 방해하는 무엇이 달리 또 있습니까?”
하고 그분께 여쭈어 보았다.
8. 그리하여, 감미로운 위로와 적지 않은 고통이 섞인 가운데 정성을 기울이며 준비한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대망의 날이 왔으니, 바로 내 영혼이 사랑하는 신랑이신 예수님과의 신비스러운 혼인날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것은 예수님께서 나를 반영구적으로 침상에 붙들어 매신 후부터, 며칠만 더 있으면 만 일 년이 될 무렵이었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순결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9. 예수님께서는 그 전날 밤에 무척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특별한 애정을 보이시며 내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전보다 더 친밀하게 말씀을 건네시면서 내 심장을 손에 드시고 꼼꼼히 살펴보시며 마치 먼지를 털어 내는 듯한 동작을 하시더니 원래 자리에 도로 집어 넣으셨다. 그리고는 반짝이는 금실로 짠 듯한 바탕에 다양한 색상의 레이스가 달린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겉옷 한 벌을 꺼내어 내게 입혀 주셨고, 두 개의 값진 보석을 귀걸이처럼 귀에 걸어 주셨으며, 목과 팔에도 황금 목걸이와 값비싼 보석 팔찌로 단장해 주신 다음, 진귀한 빛으로 밝게 빛나는 보석이 총총 박힌, 어마어마한 값어치를 지닌 관을 머리에 씌워 주셨다.
10. 그때 그 모든 것에서 발산되는 빛들이 서로 얼마나 조화로운 음향을 내는 것 같은지, 나는 이것이 하느님의 아름다움과 능력과 선성과 사랑과 엄위를, 그리고 내 정배 예수님의 인성이 지닌 모든 덕행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11. 그러니, 그 끝없는 위로의 바다 위를 떠다니는 동안 내가 깨닫게 된 바를, 대관절 누가 설명할 수 있겠는가?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이니 그냥 지나가면서, 예수님께서 내게 관을 씌워 주시며 하시던 이 말씀이나 전하겠다. “예쁜 신부야, 네가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합당한 신부가 되도록 이 관을 씌워 준다. 우리의 혼인 예식이 끝나면 돌려 다오. 네가 죽은 후에 천국에서 다시 씌워 주마.”
12. 끝으로, 예수님께서 베일을 씌워 주셨는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가려지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그분께서는 나로 하여금 나 자신에 대해서, 또 이 하찮은 인간에게 당신께서 손수 입혀 주신 귀한 의상들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의 신비적인 혼인 전야에 나를 단장해 주시려고 달아 주신 각각의 장신구와 관련된 의미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하셨다.
13.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이처럼 엄청나게 호사로운 입장에 있었던 적은 내 평생 단 한 번도 없었고 그래야 할 필요도 전혀 없었다는 것, 따라서 이는 하느님을 자기의 연인으로 여기는 피조물에게 하느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무겁도록 풍성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14. 오, 그 결과 내 심령은 얼마나 기이한 괴로움을 겪었는지! 나라는 인간에게 숭고한 역사(役事)로 작용하신 예수님 덕분에 내가 이토록 드높여졌다는 느낌이 드는 대신, 이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났으니 바로 나 자신의 허무에 대한 사무치는 절감이었던 것이다.
15. 이와 같이 자신의 허무를 아주 깊이 실감하게 되면서 내가 나 자신의 존재 바깥에 나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죽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어지기도 하였다. 이 허무에 잠긴 상태에서 사랑하올 예수님께 의지하면서 내게 새로운 자비를 베푸시도록 기도했는데, 그것은 내가 심한 혼란에 빠져 있어서, 하느님의 사랑받는 여종들 중에서도 가장 천한 여종인 나를 극히 귀한 보석들로 치장해 주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16. 하느님께서, 손짓만 하셔도 창조된 만물이 거기에 복종하는 하느님께서, 이 여종인 신부를 단장하는 일을 하시다니,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일 뿐더러 그런 의상과 보석이 도무지 어울리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그분의 자비로 나를 용서해 주시기를 간절히 청할 수밖에 없었다.
17. 그리고, 모든 의상이나 보석들이 지니는 각각의 의미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가기로 한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터라 일일이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베일에 대해서만 말해 보면, 예수님께서 내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가려 주신 이 베일을 마귀들이 몹시 무서워했다는 점이다.
18. 그들은 예수님께서 내게 해 주시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베일로 나를 감싸시는 것을 보자마자 너무나 큰 공포심에 떨어진 나머지 내 가까이에 올 엄두를 못 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배짱이나 무모한 성급함도 잃어버렸기 때문에 겁에 질려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도망을 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다시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1권-38, 신비로운 혼인 예식
1. 내가 후렴처럼 늘 되뇌곤 하는 말이 있으니, 곧 예수님과 나 사이에 일어난 일을 전부 글로 쓰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만, 내게 주어진 명령에 순종하기를 원하는 이상, 종이에 옮기기 싫어지는 이 마음을 극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2. 그러므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정결을 기념하는 축일 전야에 내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이 가련한 인간에게 옷을 입혀 주신 이야기를 계속하고자 한다. 이 일 때문에 마귀들은 심한 공포에 사로잡혀서 와들와들 떨며 달아났지만, 반면에 하느님의 천사들은, 내가 중대한 어떤 잘못을 저지르기나 한 것처럼 당황하며 얼굴을 붉힐 정도로 특별한 존경심을 가지고 나를 대했고,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줄곧 나를 동반하며 지켜 주었다.
3. 다음날 아침, 유난히 다정하고 아름다우면서도 크나큰 엄위를 갖추신 예수님께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성녀 카타리나와 함께 오셨다. 그분께서는 천사들에게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천상 노래를 부르도록 지시하셨는데, 그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 성녀 카타리나가 내게 다가와서 예수님과의 이 신비스러운 혼인 예식에 시중을 들어 주었다. 한편, 내 사랑하올 어머니, 복되신 마리아께서는 부드럽게 용기를 북돋아 주시면서 내 손을 잡으시어, 예수님께서 지극히 귀한 혼인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 주실 수 있게 하셨다.
4. 그런 후 예수님께서는 이루 형용할 수 없도록 다정하게 나를 껴안으시고 몇 번이나 입맞춤을 해 주셨으며, 예수님의 요청에 따라 그분의 복되신 어머니와 성녀 카타리나도 그렇게 해 주셨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내게 천상적인 사랑의 담화를 해 주셨는데, 이 담화를 통하여 그분께서 내게 대해 느끼시는 섬세하고 매혹적인 사랑을 온통 다 드러내시는 것이었다.
5. 나는 몹시 당황하며 말씀드렸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제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고 계십니다.”
6. 그러자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서는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이 특별한 은총을, 즉 그분과의 나누임 없는 결합을 통하여 받게 된 이 은총을 깊이 생각하게 하셔서 분명한 깨달음을 얻게 해 주셨다. 성모님은 또한, 언제나 사랑하올 정배 예수님에 대하여 내가 품고 있는 사랑을 더없이 정겨운 응답으로 드리라고 일러주시기도 하셨다.
1권-39 , 네 가지 생활 수칙을 받다
1. 내 정배 예수님께서 마침내 새로운 생활 수칙(守則)을 나에게 주셨다. 내가 더욱 친밀히 그분과 하나 되어 살면서 전보다 더 완전히 그분을 따르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주신 이 수칙을 내가 전문적인 용어로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날마다 열심한 마음으로 이를 어김없이 실천할 수 있었던 만큼, 나의 이 수련에 의거하여 간략하게 서술해 보겠다.
첫째 수칙
2.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피조물로부터, 심지어 나 자신으로부터도 완전히 이탈하여, 모든 것을 완전히 잊어버린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고 일러주셨다.
이와 같이 하면 나의 내면이 언제나 예수님을 기억하게 되고, 그분에 대한 생생하고 아름다운 애정을 지닐 수 있어지므로, 그분께서 나의 모든 행위를 흐뭇하게 보시며 내 마음 안에 항구적인 거처를 잡으시게 된다.
3. 그분께서는, 당신을 제쳐놓고는 아무도, 곧 친구나 나 자신마저도 알려고 해선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오직 그분 안에서만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에 대한 기억을 일깨워야 하는데, 그것은 그분 안에서는 어떤 피조물이든지 반드시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4. 그분께서는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내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마음쓰지 않고 언제나 거룩한 무관심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하셨다. 달리 말하자면, 사람들의 찬성이나 반대에 구애하지 않고 언제나 올바르고 아주 단순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5. 실제로, 그 무렵 내가 어쩌다가 이를 실천하지 않을 때가 있으면, 예수님께서 엄하게 나무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네가 사실상의 이탈뿐만 아니라 감정상의 이탈도 이루지 않으면, 나의 빛에 온전히 휩싸이지 못한다.
반대로, 지상적인 모든 애착을 벗어버리면 모든 빛을 통과시키는 투명한 수정처럼 될 것이다.
그러면 빛 자체인 나의 신성이 전적으로 네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둘째 수칙
6. 둘째로, 주님께서는 내가 나 자신으로 살지 않고 다만 온전히 주님 안에서, 즉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언제나 참 신앙의 정신을 입고 살려고 마음씀으로써 나 자신을 더 잘 알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노라면,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므로 자신의 능력을 믿지 않게 되는 한편, 예수님을 더욱 잘 알게 되어 점점 더 그분께 의탁할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7. "네가 너 자신을 알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 그 결과 너는 자주 너 자신을 벗어나서 내 섭리의 무한한 바다 속에 투신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신랑은 질투심이 많아서 신부가 다른 이들과 노닥거리는 것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으므로, 그의 작은 신부인 너는 항상 신랑과만 친밀하게 지내야 한다.
그러면 신랑은 신부가 늘 얼굴을 마주 보며 함께 있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도 할 수 없어지고, 마찬가지로 신부인 너도 (아무런 의심 없이) 신랑인 나에게 너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권을 넘겨주게 될 것이다.
8. 내가 너를 쓰다듬으며 특별한 은총과 입맞춤과 사랑으로 부요하게 해 주든지, 아니면 너를 때리고 억압하며 고통을 안겨 주든지,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말이다.) 나에 대한 사랑으로 그 모든 것에 순종하되, 언제나 너의 완전한 자유 의지로 그렇게 하여라. 왜냐하면, 우리는 고통이건 기쁨이건 함께 나누어야 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상대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려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우리 둘 중 어느 쪽이 더 많은 고통을 받는지 서로 경쟁하는 것 같지 않겠느냐?"
셋째 수칙
9. “셋째로, 네 안에는 오로지 나의 뜻만이 있어야 한다. 너의 뜻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의 뜻만이, 궁전에 있는 임금처럼, 네 안에 군림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만족스럽지 못한 사랑에서 기인하는 의견 차이가 생기고, 여기에서 나타난 어두운 그늘이 네 마음에 갈등을 일으키고 행동의 모순을 가져올 것이니, 이는 나와 내 신부인 네가 공유해야 할 고결함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10. 그러나 네가 때때로 너의 허무 속으로 들어가기를 힘쓴다면, 다시 말해서 너 자신에 대해 완전히 알게 된다면 - 그렇다고 해서 그 허무 속에 머물러 있으라는 말은 아니다 - 이 고결함이 네 마음을 깃들게 될 것이다. 그렇게 너 자신의 허무를 깨달은 후에는 있는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내 뜻의 무한한 능력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 거기에서 네게 필요한 모든 은총을 끌어내어, 내 안에 이를 만큼 너를 들어올리고, 너 자신에 상관없이 모든 일을 나와 함께 해야 한다. 네가 내 안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나의 바램인 까닭이다.”
넷째 수칙
11. 넷째로, 이제부터 너와 나 사이에는 “너”니 “나”니 하는 구분이 없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네가 한다”거나 “내가 한다”라는 말 대신에 “우리가 한다”는 말로 바뀌어야 한다.
또한, "너의 것"이니 "나의 것"이니 하는 말도 사라져야 한다. 그 대신, 무엇에 대해서든지 “우리의 것”이라고 말하기로 하자. 너는 나의 충실한 신부로서 세상의 운명을 나와 함께 나누어 가지며 이끌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12. 나의 피로 구속된 사람들은 모두 나의 자녀들이요 형제들이니, 그들 모두가 나의 자녀들이요 형제들인 것처럼 너에게도 자녀들이요 형제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너는 참 어머니로서 자녀들인 그들을 사랑할 일이다. 형제요 자녀인 이 사람들은 우리에게 셀 수 없이 많은 고통을 치르게 할 것이다. 그들 대부분이 자제할 줄 모르고 고집스럽게 자기 본위로 사는 사람들이고, 타락한 사람들도 많으니 말이다.
13.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는 나의 모범을 따라 그들이 받아야 할 고통을 떠안아야 하고, 지극히 고통스러운 희생의 대가로 그들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네가 받은 고통의 공로로 뒤덮이고 너의 피와 나의 피로 온통 젖은 내 성심에 그들을 데려와야 한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를 보시면, 그들에게 자비와 용서를 아울러 베푸실 것이다. 더욱이, 그들 중 완전히 참회한 사람들 가운데는, (십자가에 달려) 착해진 강도처럼, 한 순간에 영원히 낙원을 차지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14. 끝으로, 순전히 나의 것이 아닌 모든 것에서 이탈하는 정도에 따라서, 너는 점점 더 깊이 나의 절대적인 뜻에 잠기게 될 것이다. 이 뜻 안에서, 나의 본질에 대한 지식이 나날이 더욱 생생해진 덕분에, 내 사랑의 충만함을 얻게 되기도 할 것이다.
15. 그러면, (사람들이 빛의 반사를 통하여 거울에 맺히는 상<像>을 보듯이) 너도 내 안에 참으로 질서롭게 정돈되어 있는, 지성과 사랑의 영을 지닌 모든 피조물을 어느 때보다 더 잘 알아볼 것이고, 그래서 단 한 번의 눈길로도 그들 모두를 볼 수 있고, 각자의 양심 상태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16. 이런 이유 때문에 너는 참된 자비의 정신으로 - 바로 나와 내 어머니의 정신이기도 이 정신으로 - 최대의 희생마저 마다하지 않고 너 자신을 그들을 위한 희생 제물로 바쳐야 하는 것이다. 애정 깊은 어머니 이상으로 말이다.
이 희생이, 나를 참으로 본받는 충실한 내 신부로서의 너를, 망토처럼 완전히 감싸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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