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

제2장 /17. 먼 길에 지치신 예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요한 4, 6)

Skyblue fiat 2021. 3. 12. 06:18

도서: 제자들 가운데 계신 예수님

저자: 안나 카타리나 에메릭

 

 

제 2 장 이스라엘에 나타나신 예수

 

17. 먼 길에 지치신 예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요한 4, 6)

 

 

예수께서는 오늘 동행자들과 함께 시카르로 가셨는데, 안드레아와 야고보와 사투르닌이 그분과 함께 있었고 다른 제자들은 다른 방향으로 갔다. 예수께서는 야곱의 우물로 가셨는데, 이 우물은 그리짐 산의 북쪽에 그리고 요셉의 땅인 에발 산으로부터는 남쪽에 있는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있었다. 그 앞에서 서쪽으로 약 15분 거리에 시카르가 있었는데, 그 도시로부터 서쪽으로 한 시간 거리만큼 작은 골짜기가 뻗쳐 있었다. 시카르로부터 북서쪽으로 두 시간쯤 떨어져 사마리아가 산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깊숙히 패인 여러 개의 길들이 사면으로부터 이어지는 작은 언덕을 따라가면 나무와 잔디로 둘러싸인 정방형의 건물이 있었는데, 그 건물 안에 우물이 있었다. 이 우물이 있는 집은 사방이 개방된 아치형으로 둘러쳐 있었으며, 그 아래에는 약 스무 명의 사람이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문의 맞은편에는 펌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을 이용하여 우물집의 담 높이까지 물을 끌어올려 바닥에 설치된 즈그마한 세 개의 물통에 담을 수 있었다. 물통에 있는 물로 여행자들은 발을 씻거나 짐승들을 먹이기도 하였다.

 

예수께서 세 명의 제자와 함께 언덕에 도착하셨을 때는 정오가 다 되어서였다. 그분은 시장하였으므로 먹을 것을 얻어 오도록 그들을 시카르 쪽으로 보내셨다. 이들을 기다리시는 동안 혼자서 언덕에 오르셨다. 날씨가 몹시 더웠으므로 예수께서는 대단히 피로하셨고 목이 타셨다. 그분은 우물로 이어지는 길의 모퉁이에 앉으신 후 머리를 손으로 괴신 채 누군가 와서 우물을 열고 마실 물을 주기를 고대하시는 듯싶었다.

 

 

 

 

나는 서른 살쯤 된, 키가 크고 자태가 아름다운 여자가 물을 길으러 물자루를 팔에 걸치고 시카르 마을에서부터 언덕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아주 아름다웠는데, 우아하고 빠르고 활기차게 큰 걸음으로 언덕을 오르는 모습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푸르고 붉은 무늬가 있는 옷에는 황금빛의 큰 꽃들이 수놓여 있었다. 고급스럽고 화려한 모직 베일은 등 위로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우아하고 활달한 그 여자는, 염소털 같기도 하고 낙타털 같기도 한 갈색 앞치마를 오른팔에 걸쳐 가죽 부대를 덮었다. 그녀의 이름은 디나였는데, 잡혼으로 태어난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길이 굽이져 있었기 때문에 디나는 예수의 바로 앞에 올 때까지 그분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목이 마르신 채 길에 혼자 앉아 계신 그분의 모습은 그녀의 눈에 아주 급작스럽게 띄었다. 예수께서는 양질의 흰 모직으로 만든 길고 하얀 겉옷을 입으셨고 넓은 허리띠를 띠고 계셨다. 그것은 제자들이 가져다 드린 예언자의 옷이었다. 예수께서는 공적으로 대중을 가르치시거나 예언적인 가르침을 주실 때 그 옷을 입으셨다.

 

디나는 갑자기 길에서 예수를 만나게 되자 깜짝 놀라 베일을 얼굴 앞으로 내렸으며 그 앞으로 지나가기를 주저하였다. 그녀가 보기에 그분은 유다인이 분명했다. 예수께서는 친절하게 그녀를 바라보시며, 길이 너무 좁았으므로 발을 끌어당기셨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지나가거라. 그리고 내게 물을 좀 다오!”

 

이 말은 그 여자를 당황하게 하였다. 왜냐하면 유다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서로 상대방을 혐오하는 눈길을 주고받는 데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다시 한 번 말씀하셨다. “지나가거라. 그리고 내게 마실 물을 좀 다오!” 그러자 디나는 그분의 옆을 지나갔고 예수께서는 몸을 일으켜 우물까지 그녀의 뒤를 따라가셨다. 길을 걸으며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유다인이면서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예수께서 그녀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느님의 은총을 알고 또 너에게 물을 청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네가 나에게 구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생수를 너에게 주었으리라.”

 

그러자 디나는 우물의 뚜껑을 덮고 두레박을 치운 다음, 우물가에 앉으신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물을 길어 올릴 기구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습니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그와 그 후손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선생님이 야곱보다 더 위대하십니까?" 그러나 그녀는 샘물에 관한 예수의 말씀을 나름대로 이해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중에 두레박을 도르래에 걸어 내려 물을 길어 올린 다음, 소매를 걷어 올려 맨팔로 두레박에 있는 물을 가죽 부대에 부었다. 그리고 모피로 감겨진 작은 봉투에 물을 담아 예수께 내밀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마시고 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원한 생명이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다.”

 

디나는 이 말씀을 듣고 대단히 기뻐하였다. 그녀는 웃으며 예수께 말씀드렸다. “선생님, 그런 물을 저에게 주시어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을 길으러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녀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생수가 계약의 성취를 일컫는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지 못했으나, 생수에 대한 그분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예언적 감동을 받았으며 주님께 생수를 주시기를 청하였다.

 

예수께서 어떤 일을 하시고자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실 때 주시는 말씀들은 개별적인 인간에게 해당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전체 종족에 대한 완전한 비유임을 나는 항상 느끼고 깨달았다. 이것은 그 시대의 충만한 은총을 나타내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인 디나 안에는 이스라엘의 진실된 신앙 곧 생수의 샘에서 이탈하여 나온 전체 사마리아 종족이 있었다. 곧 사마리아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오, 주님! 저에게 그 계약의 축복을 주소서. 오랜 갈증을 풀어 주소서. 우리에게 생수를 주셔서 유다 민족과 함께 이 같은 일시적인 야곱의 우물로부터 받는 것보다 더 많은 위안을 받게 하소서.”

 

디나가 생수를 청하는 말을 한 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에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너라!” 그분께서는 그녀 하나만을 가르치시기 위해 이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고 두 번 말씀하셨다. “사마리아 여인아, 네가 속해 있는 자, 부부로서 성스러운 혼약에 의해 너와 계속적으로 후대를 잇게 하는 자를 내게로 불러 오너라.” 디나가 주님께 대답했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남편 다섯을 데리고 있었고 지금도 한 남자와 살고 있지만 그도 역시 네 남편은 아니니 너의 말은 옳다.” 이 말로써 메시아께서는 사마리아 민족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이다. “사마리아여, 네가 진실을 말하였다. 너는 다섯 민족의 거짓 신들과 결혼하였다. 하느님에 대한 현재의 너의 관계는 정사(情事)이지 결혼으로 맺은 결합은 아니다.”19) 디나가 예수의 말씀에 담긴 예언적 의미를 완전히 이해했을 때 남쪽의 그리짐 산 위에 세워진 신전을 가리키며 도움의 말씀을 청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사오나 유다인들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셨다. “여인아, 내 말을 믿으라. 이제 그리짐 산 위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 안에서도 아닌 어느 곳에서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올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이러했다. “사마리아여, 여기도 아니고 예루살렘의 성전도 아닌 곳에서 하느님께 예배할 때가 올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너희 가운데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속하여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배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예배드리는 분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구원은 유다인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분은 하나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그것은 나무와 잎만 무성하게 자라서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는 나무의 곁가지에 관한 비유였다. 이것으로써 예수께서는 이런 말을 하시고자 한 것이다. “사마리아여, 너는 확신할 수 있는 예배의 대상을 갖지 못하고 있다. 계약도 성사(聖事)도, 계약의 보증도, 계약의 궤도, 계약의 결실도 없다. 메시아가 그들로부터 나시게 될 유다인은 이 모든 것과 계약의 성취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이 진실로 영적인 예배를 드릴 때가 올 것인데, 지금이 바로 그때다.” 그러자 디나가 예수께 대답했다.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겠지요.” 이 말로써 사마리아는 자기들에게도 계약을 기다릴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였다. “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도와 주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녀에게 대답하셨다. “너와 말하는 내가 바로 그이다.”

 

예수께서 네게 말하고 있는 사람이 그라고 말씀하셨을 때 디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거룩한 환희로 몸을 떨면서 그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일어나서 물부대를 그대로 두고, 우물도 열어 놓은 채로,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남편과 모든 사람에게 전해 주기 위해 급히 언덕을 내려갔다. 우물을 열어 놓은 채로 두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야곱의 우물이 그녀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우물집에서 급히 나오면서 그녀는 세 명의 제자를 지나쳐 뛰어갔다. 벌써 음식을 가지고 온 제자들은 우물집의 문 앞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그들은 선생님이 사마리아 여자와 그렇게 오랫동안 이야기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다.

 

예수께서는 식사를 하기 위해 그곳에 더 머무르시는 것을 원치 않으셨으며, 곧장 언덕을 내려가시어 시카르로 향하셨다.

 

도시에 가까이 오자 사마리아 여자, 곧 디나가 이미 다시 예수를 마중 나와 있었다. 그녀는 기쁨 속에서 아주 겸손하면서도 솔직한 태도로 동참하였다. 예수께서는 때로는 그 자리에 서신 채로 때로는 천천히 걸으시면서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

 

시카르가 가까워지자 디나는 주님의 곁을 떠나 남편과 많은 다른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급히 뛰어갔다. 이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예수를 만나 보기 위해 성문 밖으로 밀려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기쁨에 가득 차서 환호하며 그분을 환영하였다. 그들은 예수께서 자기네 도시로 오셔서 가르쳐 주시기를 간곡히 청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그 요청을 들어주기로 약속하셨지만, 지금은 그들을 지나쳐 가셨다.

 

예수께서 성문 앞에서 사마리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동안, 아침에 무언가 주문하기 위해 다른 방향으로 갔던 나머지 제자들이 그분께 돌아왔다. 그중에는 베드로도 있었다. 제자들은 한 편으로 당혹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민족과는 절대로 접촉할 수 없다는 편견 속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그 같은 일에는 전혀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화를 내고 싶은 심경이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세우시게 될 왕국에 대해 항상 변덕스럽고 속세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다. 만일 이 일이 갈릴래아에 알려진다면 사람들이 자기들을 비난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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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예수의 이 말씀은 앗시리아 왕이 그들의 우상 숭배와 함께 사마리아로 이주시킨 다섯 이방 민족을 가리킨다. 2열왕 17, 24. 당시에 그 민족의 대부분이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갔기 때문에, 사마리아에 남아 있던 원래의 하느님의 백성들은 이 이방 민족과 그들의 우상 숭배와 혼합되었다. 여기에서 하느님께 대한 숭배와 마귀에 대한 숭배가 혼합된 혐오스러운 형태가 생겨났다 (브렌타노의 주석).

 

 

 

출처

17. 먼 길에 지치신 예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요한 4, 6) | CatholicOne (word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