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의 덕
예지가 어디에 있고 힘이 어디에 있으며
지식이 어디에 있는지를 배워라
바룩 3,14
현재 너의 진짜 의무는 단 한 가지다. 그것은 바로 내가 허락한 지금의 네 상황에서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나를 섬기는 것이다. 물론 너는 이 유일한 궁극적 의무에 속하는 부수적 책임을 지고 있다. 그것은 너 자신과 네 가족, 고용주, 상사, 또는 사회에 대한 책임이다. 이 모든 책임을 완수하려고 노력하여라.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고 덜 중요한 것에 지나치게 전념하지 않도록 하여라.
가족은 일보다 우선이며 개인적 기도나 헌신보다도 우선이다.
아이들에게는 순종이 우선이다. 이것은 나의 계획이며 내가 보여준 모범이다. 나는 열두 살이 되었을 때 그 시대의 관습에 따라 성인식을 치르러 성전으로 가서 가르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나는 공적 활동을 시작할 수도 있었지만 어머니가 바라는 대로 나자렛으로 돌아가 거기서18년 동안 머물며 내 본분에 맞게 백성의 일원으로 살았다.
내가 너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네가 상상하기에 더 매력적인 덕보다는 네 현재 상황에 맞는 덕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한 소명에 맞는 측정한 덕이 있다. 부모는 아이들을 돌보는데 큰 인내심이 필요하다. 아주 가까운 관계로 함께 사는 남편과 아내는 특별한 사랑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순종해야 한다. 사제는 사제로서의 덕이, 수녀는 수녀로서의 덕이 필요하다. 사업가나 의사도 각자 나름대로 덕이 필요하다. 같은 덕이라도 각자의 본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훌륭한 애덕일 뿐 아니라 완덕에 이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부양가족이 있는 아버지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은 올바른 애덕이 아니다. 그에게는 가족을 잘 부양하기 위해 합리적이고 통상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애덕이다.
나는 너에게 기도하라고 명한다. 그러나 아내이자 어머니가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해야 할 시간에 성체 안에 있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기보다는 부엌에서 음식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나는 더 보기 좋다.
내가 부여한 의무를 행하는 너를 보고 내가 못마땅해 하겠느냐?
네가 네 본분에 맞는 의무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소홀히 하고 기도만 하면서 모든 주의를 나에게 기울이고 있을 때보다, 네가 나를 직접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지라도 네 본분에 맞는 의무를 행하는 것이 나의 뜻임을 알고 그 일을 하느라 바쁠 때, 나는 네 옆에 훨씬 가까이 있다.
나에 대한 사랑과 순종의 마음으로 하는 너의 일은 진정한 기도다. 그것은 구체적인 기도이고 실행에 옮기는 사랑이다.
내가 바라는 사람이 되려면 네가 상상하기에 멋진 사람이 되기보다는 네 의무에 맞는 덕을 실천해야 한다고 한 내 말의 뜻을 이제 이해하겠느냐?
신앙인은 자신의 인생법칙이 있다. 남편이나 아내, 어머니, 아버지, 미혼자, 어린이들도 각각 자신들의 인생 법칙이, 자신들의 본분에 맞는 의무가 있다. 내가 수세기 전에 팔레스타인에서 내 상황과 책임을 받아들였듯이, 너도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책임을 다하여라.
일상의 단조로움 때문에 울적하냐? 나도 그랬다. 그것을 받아들여라.
오해를 받았느냐? 나도 그랬다. 그것을 받아들여라.
때로 너의 계획이 실패하여 낙담하느냐? 내가 죽기 전날에 나의 제자들이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는 문제로 논쟁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낙담하지 않았겠느냐? 내가 구원하려던 사람들에게서 거부당했을 때 좌절하지 않았겠느냐? 그것을 받아들여라.
함께 일하고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실망하느냐? 내가 신중하게 뽑은 열두 제자 중 하나가 처음에는 도둑이 되고 그다음에는 배신자가 되는 것을 보고 나도 실망하지 않았겠느냐? 받아들여라.
때로 너의 현재 상황 때문에 슬픔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으냐? 그렇다면 그것을 겟세마니에서 그날 밤 내가 겪은 슬픔과 비교해 보아라. 인류의 짐으로 심장이 내리눌리는 심한 고통속에서 피땀이 얼굴과 목을 타고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그것을 받아들여라.
네 현재 상황을 받아들여라. 그것이 지금 너에게 최선이다.
내가 부모들에게 준 아이들은, 또 내가 아이들에게 준 부모들은 서로에게 최선이다.
이 특별한 아이들과 특별한 부모들은 내 계획의 일부다.
이 특별한 고용주나 상사, 이 특별한 직원이나 부하는 지금 서로에게 최선이다.
내일은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그들은 각자 이 특별한 상황에서 특정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내가 바라는 사람이 되어라.
내 계획속의 네 자리를 받아들여라.
그러면 진정으로 너의 길은 자애와 성실의 길이 될 것이다.
기쁨에 이르는 나의 길을 찾는 사람들을 내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 나를 닮은 너에게(그리스도와 나눈 대화) / 클래런스 J. 엔즐러 / 바오로딸
'사랑해요주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주님, '프란시스코 에라스모 로드리게스 데 리마'에게 하느님 뜻안의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0) | 2015.09.10 |
---|---|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9월8일)하느님 뜻의 나라 동정 마리아 제10일 - 천상 여왕의 영광스러운 탄생. (0) | 2015.09.08 |
여러분 각자안에 이미 하느님의 기적이 심어져 있습니다.-이요한 십자가의 요한 신부님 (0) | 2015.09.05 |
화해와 용서의 결과가 일치입니다 - 이요한 신부님 (0) | 2015.09.05 |
인간이 참으로 간절히 원했을 때 '때가 차면' 주님께서 오신다- 이요한 십자가의 요한 신부님 (0) | 2015.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