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여러분 각자안에 이미 하느님의 기적이 심어져 있습니다.-이요한 십자가의 요한 신부님

Skyblue fiat 2015. 9. 5. 22:28

 

[연중 제13주일 교황주일] (2015-06-28)

덕신성당 주임, 이요한 십자가의 요한 신부님 강론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마르코 5,21-43

 

 

교황주일은 한국교회가 성베드로와 성바오로 축일에 교황님을 생각하면서 교황님의 사목활동을 돕고자 헌금을 하고 헌금을 교황청으로보내드리는 주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었던 야이로의 딸 이야기와 하혈하는 여자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런 특별한 기적을 누구나 다 바라게 됩니다. 나에게도 이런 특별한 기적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하느님을 믿을 수도 있을 거고 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건데...

 

그런데 문제는 이런 기적이 이미 나에게 있었고 또 그 기적이 내 안에서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버리는 것이죠. 이 야이로의 딸이나 하혈하는 여자같은 경우에는 바로 이 기적을 다른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너희들에게도 이와같은 기적이 항상 너희안에 있다라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당신 특별한 하나의 예로 보여주는 사실일 뿐이고 우리 각자 모두에게도 이와 같은 기적이 우리안에 들어있습니다.

 

우리는 가톨릭 신자가 되고 신앙생활한다라고 하면서 많은 부분에서 어떻게 생각하냐면 내가 가톨릭 신자, 그 무리에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나는 주일날 미사도 와야 되고, 가톨릭 신자로서의 계명도 지켜야 되고 함으로서 나는 '우리' 즉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 '우리', 가톨릭 신자라는 '우리', 나의 '내 편' 그 단체에 내가 소속된다라고생각하는 거죠.

 

정확하게 표현하면 아니죠. 이 세상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교회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따라서 내가 어딘가에 속해있다는 그 소속감 그걸 벗어야 하느님께 속할 수 있는 거죠. 우리는 가톨릭 교회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미사에 참석하고 영성체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가톨릭 교회에 속해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을 올바로 우리가 배우고 익혔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오는 겁니다.

 

따라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내가 가톨릭 신자의 무리에 들어갔다’가 아니라 그동안 내가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에 속해 있다가 이제는 거기에서 빠져나와서 하느님에게 속하게 됐다라는 거죠.

 

(어린아이의 떠드는 소리) 네, 우리 아이가 평상시에 성당에서 참석하는데 훈련이 안되있으면 당연히 말이 나옵니다. 거기에 대해 별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아이의 목소리가 성당에서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슬퍼해야 됩니다. 성당에 미래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이가 성당에 오는 것을 기다리고, 그것을 참는 이유는 부모님들이 잘 교육을 해서 그 아이가 정말 하느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바라는 거지요. 아이를 억지로 성당에 끌고와서 “너도 이제 천주교 신자니깐 말 잘 듣고, 계명 지키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다 해야 돼!” 이렇게 짐을 지워주는게 아니고, 여태까지 가지고 있던 착한 아이가 돼야 되고, 어떻게 해야 되고, 저렇게 해야 되고 했던 짐을 오히려 벗겨줘야 되는 겁니다. “그래 너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래서 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

 

오늘 우리가 듣는 복음의 기적을 보면, 결국 사실은 그 이야기이죠. 나는 너희들을 돕고 너희들을 구해주려고 이 세상에 왔다. 내가 하는 모든일은 너희를 구하기 위해서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내가 정한다는 거죠. 어떤식으로. 오늘같이 이렇게 하혈하는 여자가 병이 낳았거나 아니면 죽었던 야이로의 딸이 다시 살아났던 것처럼, 이건 전부다 나에게 유리한 거라는 거죠. 뭔가 어려운 나의 어떤 어려움 고통이 해결되는 것, 이런 기적을 우리는 은연중에 바라게 되죠.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기적은 이런 기적만 있는 것이 아니죠. 예수님 본인한테는 어떤 기적을 하셨습니까?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채찍질과 고통과 피땀흘린 가시관 끊임없는 수난으로 자신을 이끌고 가시죠. 그건 기적이죠. 따라서 우리안에 아주 나쁜 버릇이 있는 겁니다. 나한테 유리한 것은 받아들이고 나한테 불리한 것은 버릴려고 하는 것이죠. 하느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한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고 나한테 나쁜것을 주신다고 생각하면 가차없이 하느님을 버릴 수도 있는 거죠. 그게 바로 하느님이 ‘내 편’ 내가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느님께서 잘해주시는 그 무리 안에 들어가서 뭔가 복을 받고 다 좋은 것만을 차지하려는 그런 인간의 욕망이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이 결코 오늘 이 기적에서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이미 주님의 기적이 와 있습니다. 즉 내가 이런 모습으로 태어났고 지금 여기에서 이 세상에서 받고 있는 여러가지 시련, 어려움, 기쁨, 행복 이 모든 것이 사실은 하느님의 기적이죠. 그걸 알아들어야 합니다.

 

내가 어딘가에 속해있다는 안도감, 그것을 벗어버리고 실제로 내가 있는 그대로 하느님을 만났을 때 우리가 하느님의 본모습을 만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알아야 되는 거죠.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안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아픈 것이죠. 힘든겁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앞에서 하느님 앞에 섰을 때 ‘아, 이런 나의 모습을 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하느님이 사랑하시는구나’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인간은 참된 해방을 느낍니다. 왜냐면 더이상 내가 좋은 사람인것처럼 꾸밀 필요도 없고 내가 좋은 사람이 될려고 거짓되게 가면을 쓸 필요도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의 우리를 사랑하신다. 있는 그대로의 너가 바로 기적이다.

 

이게 가톨릭 신자로서 우리가 가톨릭 교회에 속해있다가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교회밖에서 아니 이미 교회에 속해 있었지만 내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있고 하느님의 자녀고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몰랐다가 이제서야 그것을 깨달은 겁니다.

 

그러니까 A라는 그룹에 있다가 B라는 그룹으로 이적하고, 교적 옮기듯이 이사를 오고, 다른 무리에 속해진게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원래 속해있던 하느님의 자녀라는 그 지위를 깨닫지 못하고 모르고 있다가 ‘아,실제로 내가 이미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었던 존재였구나, 하느님께서는 내가 어떻게 하니깐 사랑하시는게 아니라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구나~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은 다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는 일이다.’

 

따라서 내가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때 그 안에서 하느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게 정말 중요한 거죠. 결국 하혈하는 여자가 열두해 동안... 12년입니다. 12년동안 하혈증을 앓다가 그 12년동안 무슨 고생입니까? 하지만 이 고생을 한 이유는 바로 오늘 복음에서처럼 ‘주님께서 믿음으로 당신에게 손을 대는 사람은 다~ 받아주신다.’ 

 

제자들이 말하죠. "아니, 많은 사람들이 다 예수님한테 손을 대고 있는데 누가 손을 댔냐니 여기 있는 사람이 다 댔죠. 거기 있는 사람 다 댔는데 왜 그 여자만 나았습니까?"라는 이야기죠. 그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겠지만 왜 야이로의 딸만 되살아났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죽었지만 왜 라자로만 다시 살아났습니까? 그 라자로가 영원히 산게 아니죠. 이 야이로의 딸도 영원히 산게 아닙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딸과 라자로를 통해서 너희들이 정말 받아야 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시기를 바라시는 거죠. 그걸 못알아들으면 이 부활의 의미는 우리안에서 참된 빛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아, 주님께서 나에게 이미 기적을 심어주셨구나, 그 씨앗이 이미 나에게 있구나.’ 그것을 못보고... 씨앗은 키워야 되는거죠. 화분에 잘 심겨져있는 그 씨앗을 못보고... 그 씨앗을 심어서 크게 자라게 했던 나무만 전부 쳐다보며 ‘나는 언제 저런 나무를 갔다가 심나?’

 

그럼 예수님께서 그러시겠죠. '아니, 그걸 뽑아다가 네 안에 심는게 아니고, 이미 네 안에 들어있는 너의 나무를 싹을 틔우라니깐!"

 

그런데 매일 화분을 쳐다보고는 ‘아... 내 화분은 왜 비었을까? 언제 꽃이 피나? 어디서 좋은 것을 옮겨와서 심을까?’ 하고선 남의 화분만 감상을 하고 있는 거죠. 그러지 말고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고 자신에게 가장 완벽한 씨앗이 이미 여러분 화분에 다 심어있다는 겁니다. 그니깐, 물을 주시고 기도를 하시고 싹을 틔워주시기를 하느님께 청해야 됩니다. 그러면 누구보다도 가장 내게 맞는 나의 꽃이 나의 나무가 거기에서 싹을 틔울거라는 거죠.  그게 여러분 각자안에 이미 하느님의 기적이 다 심어져 있습니다. 그 기적을 싹 틔우고 꽃 피울 수 있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