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3권 공생활 둘째 해 1 p448~p461

나오미의 며느리 룻과 오르파(룻기1장)
209. 엘리자의 집에서 열매 맺는 고통에 대하여 말씀하시다
1945. 7. 5.
엘리자가 자기의 비극적인 우울증을 떨쳐버리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마을에 퍼졌음이 틀림없다. 어찌나 파다하게 소문이 퍼졌는지 예수께서 그분의 사도들과 제자들의 선두에 서서 그 집으로 향하여 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주의 깊게 그분을 살펴본다.
그들은 또한 예수에 대하여, 예수께서 왜 오셨는지에 대하여, 그분과 함께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아이에 대하여, 여자들에 대하여, 오시자마자 엘리자를 그렇게도 빨리 정신착란의 어둠속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주셨던 약에 대하여, 그분께서는 무엇을 하실 것이며,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등등의 질문들을 여러 목자들에게 던진다… 더 질문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다른 질문을 더하기도 한다…
마지막 질문은 이렇다.
“우리도 그리로 가볼 수는 없습니까?”
목자들이 대답한다.
“우리는 그것을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선생님께 여쭤봐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서 직접 그분께 여쭤보세요.”
“하지만 만일 그분께서 우리를 냉대하신다면?”
“그분께서는 죄인들도 냉대하지 않으십니다. 가세요. 그분께서는 기뻐하실 겁니다.”
주로 엘리자와 동년배들인 꽤 나이 많은 남녀의 무리가 서로 의논하더니 앞으로 나아와, 베드로와 바르톨로메오와 말씀을 나누고 계시는 예수께 다가가서 그다지 자신 없는 목소리로 그분을 부른다.
“선생님…”
“여러분의 용건이 무엇입니까?”
바르톨로메오가 묻는다.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 여쭤보려고요…”
“평화가 여러분에게 오기를. 여러분은 나에게 무엇을 묻기를 원하십니까?”
그들은 예수께서 미소 지으시는 것을 보고 대담해져서 말한다.
“저희는 모두 엘리자와 그녀의 집안의 친구들입니다. 저희는 그녀가 나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희는 그녀를 보고 싶고, 당신의 말씀도 듣고 싶습니다. 저희가 그 집에 가도 됩니까?”
“여러분이 내 말을 들으러 오시는 것은 물론 좋습니다. 나의 소중한 벗들이여, 그녀를 보러 가시는 것은 안 됩니다. 여러분의 우정을 억제하고, 여러분의 호기심도 억제하세요. 왜냐하면 그것은 호기심이기도 하니까요. 방해해서는 안 되는 큰 고통을 존중하세요.”
“그런데 그녀는 회복되지 않았습니까?”
“그녀는 빛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밤이 끝날 때 갑자기 대낮이 됩니까? 그리고 여러분이 불을 피울 때 불꽃이 즉시 밝아집니까? 엘리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작은 불꽃에 돌풍이 불면, 불이 꺼지지 않습니까? 그러니 신중하게 행동하시오.
그분은 상처투성이입니다. 우정도 그분을 짜증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에게는 휴식, 고요, 은둔이 필요하니까요. 어제의 은둔처럼 비통한 것이 아니라, 안정감을 회복하기 위한 조심스러운 은둔이지만 말입니다…”
“그럼 저희는 언제 그녀를 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요. 지금은 그분이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그 칠흑 같은 어둠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아신다면! 그것은 죽음보다 더 고약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는 사람은 결국 자기가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것과 세상이 그것을 안다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합니다.”
“당신께서는 의사십니까?”
“나는 선생(the Master)입니다.”
그들은 집 앞에 도착한다. 예수께서는 목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마당으로 가시오. 그리고 당신들과 함께 가고 싶은 사람들은 가도 됩니다. 그러나 아무도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하고, 마당 밖으로 나가도 안 됩니다.”
“너희도 사람들이 내가 말한 대로 질서를 잘 지키도록 살펴라.”
예수께서는 목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사도들에게도 하신다.
“그리고 아주머니들은(그분께서는 살로메와 알패오의 마리아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이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도록 보살피세요. 안녕.”
그 다음에 그분께서 문을 두드리시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솔길로 통하여 지시받은 장소로 간다.
하녀가 대문을 연다. 예수께서는 하녀가 연신 그분께 절하는 가운데 들어가신다.
“자네의 여주인은 어디 계시는가?”
“당신의 어머니와 함께 계십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분이 정원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정말로 놀랍습니다! 놀라울 뿐입니다! 그리고 어제 저녁에 그분은 식당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분은 울고 계셨지만, 오시긴 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이 늘 드시는 양젖 한 모금 대신 식사도 조금 드셨으면 했지만, 제 뜻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분은 식사하시게 될 걸세. 강요하지 말게. 자네의 여주인에 대한 자네의 사랑에도 참을성을 가지게.”
“예, 나의 구세주님, 저는 당신께서 저에게 분부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겠습니다.”
나는 사실 설혹 예수께서 무슨 해괴망측한 일을 하라고 여인에게 분부하셨다 해도, 그녀가 군소리 없이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예수께서는 예수시고, 예수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가 잘 하시는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하녀는 과일나무와 꽃이 가득한 텃밭으로 그분을 모시고 간다.
유실수들은 그럭저럭 잎을 돋게 하고 꽃을 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고 크고 있지만, 1년 넘게 돌보아지지 않은 가엾은 화초들은 뒤죽박죽인 잡초 밭이 되어 그 중에서 허약하고 키가 작은 화초들은 기운 있는 화초들에게 짓눌려 말라죽어가고 있다. 화단과 오솔길은 무질서하게 뒤엉켜 더 이상 경계를 구분할 수 없다. 하녀가 자기의 필요로 인하여 상치와 야채를 가꾼 텃밭의 끝부분에만 약간의 질서가 있을 뿐이다.
마리아께서는 땅바닥까지 내려오는 포도넝쿨과 덩굴손이 마구 뒤엉킨 퍼골라 아래에 엘리자와 함께 계신다. 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젊으신 그분의 어머니를 바라보신다. 마리아께서는 극히 예민한 감각으로 어제까지 비탄에 잠겨 있었던 여인을 일깨우시고, 그녀의 생각을 사로잡았던 물건과는 판이하게 다른 물건들 쪽으로 그녀의 생각을 향하게 하신다.
하녀가 자기의 여주인에게 다가가 말한다.
“구세주께서 오셨습니다.”
여인들이 돌아서서 그분을 향하여 오는데, 한 분은 다정한 미소를 띠시고, 다른 한 여인은 피로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얼굴을 하고 온다.
“평화가 두 분께 있기를. 아름다운 정원이로군요…”
“이것은 아름다웠었지요…”
엘리자가 말한다.
“그리고 토양이 기름집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열매가 막 익으려 하는지 보세요! 그리고 저 장미넝쿨들에는 얼마나 많은 꽃들이 피어 있어요! 그리고 저기는? 저것들은 백합꽃들이지요?”
“예. 저것들은 제 아이들이 즐겨 놀았던 둥근 연못 주위에 있어요. 그때 이곳은 잘 정돈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폐허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곳은 제 아이들이 놀았던 정원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며칠 후에 이곳은 다시 예전처럼 될 겁니다. 나는 당신을 도와드리겠어요. 그렇지, 예수야. 너는 내가 엘리자와 며칠 함께 있도록 나를 여기 놔두겠지. 우리는 할 일이 아주 많다…”
마리아께서 말씀하신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을 저도 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엘리자는 그분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예수께서는 엘리자의 백발을 어루만져주시고 나서 여인들에게서 떠나 목자들에게로 가신다.
여인들은 정원에 남아 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하시는 예수의 목소리가 조용한 공기 속에 퍼져서 들려오자, 엘리자는 마치 저항할 수 없는 힘에 끌리듯이 텃밭과 들판을 갈라놓는 아주 높은 울타리로 천천히 다가간다.
예수께서는 먼저 세 목자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산울타리 가까이에 계시고, 그분 앞에는 사도들과 예수를 따라온 벳 추르의 주민들이 있다. 두 마리아는 아이와 함께 한쪽 구석에 앉아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당신들은 계약에 묶여 있습니까, 아니면 언제라도 당신들의 일자리를 떠날 수 있습니까?”
“예, 저희는 실제로 자유로운 하인들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양떼를 보살필 일이 아주 많고, 목자들을 구하기가 어려운 지금 갑자기 주인을 떠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요, 그것은 공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 그렇게 할 필요는 없어요. 내가 당신들에게 미리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당신들이 공정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당신들이 자유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제자들과 합류하여 나를 도와주게 하기 위해서요…”
“오! 선생님!…”
세 사람은 기쁨에 겨워 어쩔 줄을 모른다.
“하지만 저희가 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묻는다.
“나는 그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아요. 그럼 합의됐습니다. 당신들이 자유롭게 되는 대로 이사악과 합류하시오.”
“예, 선생님.”
“당신들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시오. 나는 이곳 사람들에게 몇 마디만 말하겠소.”
그분께서는 목자들을 떠나보내신 다음에 군중을 향하여 돌아서신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어제 나는 불운한 두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한 사람은 인생의 여명기에 있었고, 다른 사람은 인생의 황혼기에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고통으로 인하여 우는 두 영혼들이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는지, 어떻게 하느님만이 그 고통을 가볍게 해주실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내 마음속에서 그들과 함께 울었습니다. 하느님! 하느님에 대한 정확한 지식, 그분의 크고 무한하신 관대함(bounty), 끊임없는 그분의 현존, 그분의 약속들.
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고통당할 수 있는지, 그리고 죽음이 어떻게 사람의 고통을 더 증가시키고 파멸을 야기하기 위하여 사탄이 조장하는 비탄으로 그를 끌고 갈 수 있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때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이 이런 고통들을 겪어서는 안 된다.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그것을 주고, 고통의 폭풍우 속에서 그것을 잊어버린 사람에게 그것을 돌려주자.’
나는 또한 내 형제들의 무한한 필요들에 대하여 나 혼자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많은 제자들을, 점점 더 많은 제자들을 불러 하느님에 대한 지식에서 오는 위로의 필요를 느끼는 모든 사람들이 그 위안을 받을 수 있게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열두 사도들은 첫째들입니다. 그들은 나의 대리인들로서 너무 무거운 고통에 짓눌리는 모든 사람들을 나에게, 따라서 위안으로 데려올 수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괴로워하고, 지긋지긋해 하고, 마음이 부서지고, 피로에 지친 여러분 모두는 나에게로 오시오.
나는 여러분의 고통을 여러분과 나누고,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겠습니다. 내 사도들과 나날이 증가하는 선의를 가진 새로운 남녀제자들을 통하여 나에게로 오시오. 여러분은 고통 중에 위안을, 고독 중에 동반자를, 세상의 증오를 잊게 될 형제들의 사랑을 얻게 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최고의 위로자, 완전한 동반자, 하느님의 사랑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시는 ‘이제 나는 끝장이야!’라는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할 것입니다. ‘거리감들(distances)과 차별들(separations)이 없는 초자연적인 세상에서 나의 모든 것이 시작된다.’
고아들은 그곳에서 아브라함의 품으로 올라간 그들의 부모와 재결합하고, 아버지 어머니들이 잃었던 자녀들을, 아내들과 과부들이 잃었던 그들의 남편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나오미의 베들레헴(룻기1,1 이하)에서 아주 가까운 이 유다 땅에서 어떻게 사랑이 고통을 덜어주고 기쁨을 주는지를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겠습니다. 울고 있는 사람들은 나오미의 집에 남자들이 없어졌을 때의 그녀의 슬픔을 숙고해보시오. 나오미가 낙담하여 오르파와 룻에게 고하는 작별의 말을 들어보시오. ‘너희는 각자 너희의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너희가 죽은 내 아들들과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온 것처럼 주님께서 너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나오미의 지친 주장을 들어보시오. 한때는 아름다운 나오미였지만, 지금은 고통에 짓눌려 비참한 나오미가 된 그녀는 이제 인생에서 바라는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자기 남편의 사랑과 자기 아들들의 입맞춤을 받았던 젊은 시절에 행복을 누리던 곳으로 가서 죽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가거라, 가. 나를 따라와 봐야 소용없다… 나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 생명은 더 이상 여기 있지 않고, 저기 그들이 있는 저기 내세에 있다. 죽어가는 물건 곁에서 더 이상 너희 인생을 희생하지 마라. 정말로 나는 ‘물건’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나는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다. 하느님께서 나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가셨다… 나는 쓰라린 슬픔일 뿐이다. 나는 너희를 슬프게 할 것이다… 그것이 내 마음을 더 무겁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나를 그토록 세게 치신 분께서 나에게 그것에 대하여 해명을 요구하실 것이다… 살아 있는 너희를 죽은 내 곁에 둔다는 것은 이기심일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의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그러나 룻은 이 고통스러워하는 늙은 여인을 돕기 위하여 남았습니다. 룻은 자기 자신의 고통보다 항상 더 큰 고통들이 있다는 것과 젊은 과부로서의 자기의 고통이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시어머니의 고통보다는 가벼운 것임을 깨달았습니다.(룻기 1장)
애무들과 좋은 조언을 받지 못하고 구걸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고아 소년의 고통은 자기의 자녀들을 잃은 어머니의 고통보다 훨씬 더 큽니다. 또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인류를 미워하기에 이르게 되고, 모든 사람에게서 자기가 두려워해야 하고 그로부터 자기를 방어해야 하는 원수를 보는 사람의 고통은 다른 고통들보다 더 큽니다. 그 고통은 살과 피와 심리상태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고, 초자연적인 의무와 권리를 가진 영혼에도 영향을 미쳐 영원한 파멸로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엄마 없는 어린이들을 돌보아줄 수 있는 자녀 없는 어머니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고독한 노인들에게 동정을 베풀 수 있는 자녀 없는 과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불행한 사람들에게 자신을 전적으로 헌신할 수 있고, 사랑할 필요를 가지고 증오와 싸우고, 그래서 점점 더 증오하기 때문에 점점 더 고통당하는 불행한 인류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자신의 모든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고통은 십자가지만, 그것은 날개이기도 합니다. 애도는 우리를 다시 옷 입히기 위하여 우리의 옷을 벗깁니다(Mourning divests to reclothe).
울고 있는 여러분, 일어나시오! 눈을 뜨고, 악몽과 어둠과 이기심을 쳐부수시오! 보시오… 세상은 사람들이 울고 있고 죽어가는 광야입니다. 세상은 외칩니다. 고아들과 병자들과 외로운 사람들과 의심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배신과 잔인함에 대한 증오로 수인(囚人)이 된 사람들의 입들을 통하여 ‘도와주세요!’ 하고요.
부르짖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시오! 잊힌 사람들 가운데에서 여러분 자신을 잊으시오! 병자들 중에서 여러분의 병을 회복하시오! 실망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희망을 가지시오! 세상은 그들의 이웃 안에서 하느님을 섬기고 하늘을 얻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과 우리가 애도하는 사람들과 결합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경기장은 여기 있고, 승리는 저기 있습니다(The gymnasium is here, The triumph is there).
여러분의 모든 고통 중에서 룻을 본받으시오. 룻과 함께 말하시오. ‘나는 죽을 때까지 당신들과 함께 있겠습니다.’
자기들의 불행은 돌이킬 수 없다고 믿는 저 불행한 사람들이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시오. 하느님께서 나에게 불행을 안겨주셨으니까요’라고 대답해도 끈질기게 그렇게 말하시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집요함으로 인하여 어느 날 저 불행한 사람들이 외칠 것입니다. ‘자신의 고통으로 좋은 열매를 맺을 줄 알았던 사람을 통하여 내 고민과 낙심과 외로움을 가볍게 해주신 주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 그는 내 구원자이니 하느님께서는 그를 축복하소서.’
나오미에 대한 룻의 성덕이 세상에 메시아를 주었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왜냐하면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인데, 다윗은 이사이의 아들이고, 이사이는 오벳의 아들이며, 오벳은 보아즈와 룻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보아즈는 살몬에게서 태어났고, 살몬은 나흐손에게서, 나흐손은 암미나답에게서, 암미나답은 람에게서, 람은 헤츠론에게서, 헤츠론은 페레츠에게서 태어났습니다.(마태1,4-6)이분들은 주님의 선조들을 준비하며 베들레헴의 평야들에 정착하여 살았습니다.모든 착한 행위는 여러분이 상상하지도 못한 큰일들의 기원이 됩니다. 사람이 자신의 이기심을 거슬러서 하는 노력은 사랑의 물결을 일으키고, 그것을 점점 더 높이 들어 올려 그것을 일으킨 사람을 그 맑음 안에서 부축하여 그가 제단 아래에, 하느님의 마음에 이르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예수께서는 울타리의 쪽문을 통하여 정원으로 돌아가시지 않고, 긴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울타리의 반대쪽으로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지켜보신다. 그분께서는 벳 추르 사람들이 모두 간 다음에야 비로소 유익한 눈물을 방해하지 않고 그분의 사도들과 함께 떠나신다…
210. 헤브론으로 가는 길. 세상의 이유와 하느님의 이유
1945. 7. 6.
“자네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알려진 곳들을 순례할 생각은 아니겠지.”
가리옷 사람이 비꼬듯이 말한다. 그는 알패오의 마리아와 살로메와 안드레아와 토마스와 함께 있는 집단에서 토론하던 중이었다.
“왜 안 되나? 누가 우리를 막나?”
클레오파의 마리아가 묻는다.
“나는 안 돼요. 제 어머니는 오래 전부터 저를 기다리고 계셔요…”
“그럼 자네의 어머니에게 가게나. 우리는 나중에 자네를 따라갈 테니.”
살로메가 말한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자네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하고 덧붙이는 것 같다.
“이건 안 됩니다! 저는 선생님을 모시고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약속과는 달리 마리아께서는 안 가십니다. 그분께서 함께 가 주시기로 약속되어 있는데, 그분께서 이러시면 제 입장이 뭐가 되겠습니까.”
“그분께서는 선한 이유로 벳 추르에 머무르시네. 그 여인은 정말로 불행해.”
“예수께서는 그 여자를 점차적으로 회복되도록 하시지 않고, 단번에 고치실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왜 더 이상 깜짝 놀래줄 만한 기적을 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분께서 그렇게 하신 데는 거룩한 이유들이 있을 거야.”
안드레아가 침착하게 말한다.
“물론이겠지! 그렇게 해서 그분께서는 개종자들을 놓치시지. 요번에 우리가 예루살렘에 머물렀을 때도 얼마나 실망스러웠어! 그분께서는 평판을 높이실 필요가 있으면 있을수록 컴컴한 데서 웅크리고 계신단 말이야. 나는 뭔가를 보여주고, 싸우시기를 내심 바랐었는데…”
“내 질문을 양해해주게… 대관절 자네는 무엇을 보고 싶고, 누구와 싸우기를 바라나?”
토마스가 묻는다.
“무엇을? 누구와? 나는 그분의 기적들을 보고, 그래서 그분께서 거짓 예언자시고 마귀 들렸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맞설 수 있기를 바랐지.
그들은 이렇게 말해, 알겠나? 베엘제붑이 도와주지 않으면, 그분은 그저 불쌍한 인간일 뿐이라고 말이야. 그리고 베엘제붑의 변덕스러운 성질은 잘 알려져 있고, 그는 마치 표범이 먹이를 가지고 잡았다 놓아주었다 하듯이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심리는 사실에 의하여 정당화되기 때문에, 나는 그분께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는 생각이 들면 조급해지고 말아.
우리 꼴은 뭐가 되겠나. 가르치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하시지 않는… 선생님의 사도들,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야. 다른 어떤 것도 아니야.”
유다는 ‘선생’이라는 말 직전에 갑자기 말을 끊었었는데, 사람들이 듣기에는 그가 뭔가 상스러운 말을 하려다가 만 것 같다.
여인들은 깜짝 놀란다. 알패오의 마리아는 예수의 친척이니 만큼 분명히 말한다.
“젊은이,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자네를 용납하시는 걸세.”
언제나 온유한 사람인 안드레아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번에는 자기의 형처럼 얼굴이 빨개지고 몹시 분개하여 외친다.
“꺼져버려, 그럼 자네는 선생님 때문에 더 이상 꼴사나운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될 거야. 그런데 누가 자네를 오라고 했나? 그분께서는 우리를 부르셨어. 하지만 자네는 아니야. 자네는 받아들여달라고 여러 번 졸랐어. 자네는 억지로 들어온 거야. 나는 무엇 때문에 내가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밝히지 않는지 모르겠어.”
“자네들과는 말이 안 통해. 자네들이 싸움꾼인데다 무식한 자들이라고 하는 그 사람들의 말이 옳아.”
토마스가 다가오는 폭풍의 진로를 바꾸어보려고 농담을 한다.
“이봐, 사실 나는 선생님께서 무슨 실수를 저지르셨다고 자네가 주장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어. 나는 마귀의 변덕스러운 성질도 잘 모르겠어. 불쌍한 놈! 그놈은 틀림없이 돌대가리일 거야. 그놈이 똑똑했다면, 하느님께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자네의 말을 잘 기억해두겠네.”
“익살부리지 마. 나는 진지하니까. 자네는 혹시 그분께서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고 말할 수 있나? 라자로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
토마스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린다. 그는 여전히 웃고 있는데, 토마스의 웃음이 그 자체로 가리옷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토마스가 말한다.
“그분께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다고? 실로암과 힌놈에 가서 나병환자들한테 물어보게. 자네는 거기서 아예 나병환자를 한 명도 찾을 수 없을 거야. 그들 모두가 나았으니까. 자네는 자네의 친구들…에게 서둘러 갔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예루살렘의 계곡들과 다른 여러 계곡들에서 치유 받은 나병환자들의 찬미가들이 울려 퍼졌었어.”
토마스는 근엄한 말투로 말을 마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이 사람아, 자네의 쓸개가 고장 났나보네. 그래서 자네는 매사에 쓴 맛을 느끼고, 모든 것을 비관적으로 보게 되는 것 같아. 자네에겐 그것이 재발하는 병인 모양일세. 그러니 자네 같은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두게.
자네는 변해야 해. 나는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고, 이 착한 부인들도 내 말을 들으면 나처럼 침묵할 거고, 안드레아도 마찬가지일 거야. 하지만 자네는 변해야 해. 자네의 기대가 어긋났다고 생각하지 말게. 왜냐하면 실망 자체가 없으니까 말이야.
선생님께서는 그분께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 스스로 알고 계시니 자네는 자네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게. 자네는 선생님의 선생이 되려고 애쓰지 말게. 선생님이 그 불쌍한 여인 엘리자에게 그렇게 하신 것은 그렇게 하시는 것이 적합했기 때문이야.
뱀들이 제멋대로 씩씩거리고 침 뱉도록 내버려두게. 그 사람들과 선생님 사이에서 중개인 노릇을 하려고 공연히 애쓰지 말고, 무엇보다도 그분과 함께 있으면 자네의 위신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말게. 그분께서 앞으로 감기 하나도 고치지 않으신다 해도 그분께서는 항상 능력 있는 분이야. 그분의 말씀은 계속적인 기적이야.
자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게. 우리는 사냥꾼들에게 쫓기는 몸이 아니야! 걱정하지 마. 우리는 예수께서는 예수시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믿게 할 수 있을 걸세. 그리고 잠자코 있게. 만일 마리아께서 자네의 어머니에게 가시겠다고 약속하셨다면, 그분께서는 가실 거야.
그 동안에 우리는 이 아름다운 지방을 순례하는 거야. 이게 우리의 일이야.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나? 아브라함의 무덤과 그의 나무, 그리고 이사이의 무덤… 등등을 보러 가서 여자제자들을 기쁘게 해주세. 자네는 무슨 말을 더 했더라?”
“여기는 아담이 살았고, 아벨이 살해당했다는 곳이야…”
“노상 듣는 말도 안 되는 허구들…”
유다가 투덜거린다.
“백년만 지나면 사람들은 베들레헴의 동굴과 그 밖의 많은 것을 전설이라고 말할 걸세! 그리고 미안하네만, 자네는 저 고약한 냄새가 나는 엔도르의 동굴에 들어가기를 원했는데, 자네도 시인해야겠지만, 그 동굴은 거룩한 순례과정에는 들어 있지 않았어.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그들은 성인들의 피와 유골이 있다는 이곳에도 온다네. 엔도르는 우리에게 요한을 주었어. 그러니 누가 알겠나…”
“요한은 참 잘도 생긴 획득물이지!”
가리옷 사람이 투덜거린다.
“그의 얼굴은 잘 생기지 않았지만, 그의 영혼은 아마 우리보다 나을 수도 있을 거야.”
“뭐라고? 그 사람의 과거하며!”
“조용히 해. 선생님께서는 그의 과거를 기억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어.”
“멋진데! 만일 내가 그런 일들을 저질렀다면, 자네들이 그것을 기억하지 않을지 나는 궁금하네!”
“안녕, 유다. 자네는 혼자 있는 것이 낫겠어. 자네는 너무 까칠해. 나는 자네가 왜 그러는지 알기라도 했으면 좋겠네.”
“내가 왜 그러느냐고, 토마스? 문제는 이상한 신참자들에게 치여서 우리가 푸대접받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는 거야. 나는 그 누구보다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있어. 그분께서는 내가 없을 때를 기다렸다가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신 것도 나는 알고 있어. 자네는 그런 상황에서 내가 유쾌하기를 바라나?”
“자네의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 하지만 만일 자네가 우리와 함께 파스카 저녁식사에 참석했다면,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셨을 때 자네도 우리와 함께 올리브 산에 있었을 거라는 점을 지적하겠네. 나는 우리가 어떻게 새내기들에게 치여 소홀한 대접을 받는다는 건지는 모르겠네. 자네는 저 가엾은 죄 없는 어린이에 대하여 말하고 있나, 아니면 저 불행한 요한이 우리와 함께 있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나?”
“그들 둘 다 때문이야. 예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는 거의 말씀하지 않으셔. 지금 당장도 그분을 봐… 그분께서는 저기서 어린이와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시느라고 늦장 부리고 계시잖아. 그분께서는 그분께서 그 애를 제자들 가운데 넣으시려면 오래 기다리셔야 할 거야!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결코 제자가 될 수 없을 거야. 그는 너무 교만하고, 너무 아는 게 많고, 너무 경직되어 있고, 좋지 못한 경향들을 가지고 있어. 그런데도 ‘여기서도 요한, 저기서도 요한’이야…”
“아브라함 아버지, 이것을 인내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세요! 그런데 자네는 뭘 보고 선생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자네보다 편애하신다고 생각하나?”
“자네는 지금 당장도 보지 못하나? 이사악에게도 썩 잘 배울 수 있을 세 명의 목자들을 가르치시려고 벳 추르에 가신 다음에 그곳을 떠날 때가 되자 그분의 어머니와 함께 누구를 남겨놓으셨나? 난가? 자넨가? 아니지. 그분께서는 말수도 거의 없는 늙은이인 시몬을 남겨놓으셨어!…”
“하지만 그가 하는 적은 말은 항상 옳은 말이야.”
지금은 혼자 남은 토마스가 대답한다. 여인들과 안드레아는 마치 해가 쨍쨍 내리쬐는 쭉 뻗은 길의 한 구간을 피하려는 듯 이들을 앞장서서 빨리 앞으로 걸어가기 때문이다.
두 사도가 어찌나 흥분했는지 그들은 예수께서 오시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것은 또한 예수의 발자국 소리가 길의 먼지 속으로 완벽하게 빨려 들어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분께서는 소리를 내지 않으시지만, 두 사람은 열 사람만큼이나 큰 소리로 고함치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그들의 말을 들으실 수 있다. 그분의 뒤에는 베드로, 마태오, 주님의 두 사촌,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그리고 마르지암을 사이에 둔 채 데리고 오는 제베대오의 두 형제가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토마스야, 네 말이 맞다. 시몬은 적게 말하지만, 그가 하는 불과 몇 마디의 말은 항상 옳다. 그의 정신은 맑고, 그의 마음은 정직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대단히 착한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가 그를 내 어머니와 함께 남아 있게 한 것이다. 그는 참으로 믿을 만한 사람이고, 그와 동시에 사는 법을 알고, 고통당했고, 나이 들었다. 따라서―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 선택을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내가 짐작하기 때문이다―그가 남아 있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다.
유다야, 나는 내 어머니께서 아직 병자인 가엾은 여인 곁에 혼자 계시도록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분을 떠나는 것이 필요했다. 내 어머니는 내가 시작한 그 일을 완수하실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내 사촌들이나 안드레아나 야고보나 요한이나 너와 함께 계시게 할 수는 없었다. 만일 네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시고, 젊고, 아름답고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생각과 입술과 손과 특히 마음속에 오물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불성실한 사람들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서 그들이 느끼는 것과 같은 감정을 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진흙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마르면 저절로 떨어진다.
내가 시몬을 선택한 이유는 그가 나이 들어서 저 비탄에 잠긴 여인에게 죽은 자기의 아들들을 너무 많이 생각나게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젊은 사람들은 너희 젊음으로 인하여 그 여인에게 죽은 아들들을 생각나게 했을 것이다… 시몬은 눈에 띄지 않은 채 살펴볼 줄도 알고, 결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며, 이해심이 있고, 삼갈 줄도 안다.
나는 베드로를 택할 수도 있었다. 내 어머니 곁에 있기에 그보다 누가 더 적합하겠느냐? 그러나 그는 여전히 너무 충동적이다. 나는 그에게 공개적으로 그렇게 말하는데, 그는 그로 인하여 속상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도 안다. 베드로는 솔직하다. 그는 자기에게 불리한 경우에도 솔직성을 사랑한다.
나는 나타나엘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전에 유다에 있어본 적이 없다.
반면에 시몬은 이 지방을 잘 안다. 그래서 그는 내 어머니를 가리옷에 모시고 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는 네 농가주택이 어디 있는지도 알고, 시내에 있는 네 집도 안다, 그래서 그는…”
“그럼… 선생님!… 그럼 당신의 어머니께서는 정말로 저희 집에 오실 겁니까?”
“우리는 그렇게 말했다. 너희가 무언가를 말하면, 너희는 그것을 실행한다. 우리는 이 일대의 마을들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여기저기에서 머무르며 천천히 가자. 너는 내가 네 유다 지방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원치 않느냐?”
“물론 저는 원합니다, 선생님!… 그러나 저는 믿기를… 저는 생각하기를…”
“무엇보다 너는 너 자신의 상상으로 인하여 너 자신을 들볶고 있다. 시반 달(5월-6월의 유다력의 1개월)의 달이 이지러질 때 우리 모두는 네 어머니의 집에 갈 것이다. 우리, 즉 내 어머니와 시몬도 함께 간다는 말이다. 지금 당장은 그분께서는 유다의 도시인 벳 추르에서 복음을 전하고 계신다. 요안나가 한 처녀와 전에 나병환자였던 한 사제의 도움을 받으며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고, 라자로가 마르타와 늙은 이스마엘과 함께 베타니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유타에서는 사라가 복음을 전하고 있고, 내가 확신하는 바와 같이 네 어머니가 가리옷에서 메시아에 대하여 말하고 계시는 것처럼 말이다.
너는 분명히 내가 유다에 목소리들을 남겨놓지 않았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나는 비록 유다 지방이 다른 지방들보다 더 편협하고, 완고함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성인인 이사악과 내 친구인 라자로의 목소리 외에도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들, 즉 여자들의 목소리를 주어왔다. 여자는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영혼들을 데려갈 줄 아는 여자다운 예민한 솜씨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와 동시에 언어를 잘 사용할 줄을 안다.
너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느냐? 변덕이 심한 큰 어린이 같은 너는 왜 울려고 하느냐? 근거 없는 생각으로 너 자신을 해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너는 아직도 심란해 할 이유를 가지고 있느냐? 나에게 말해라. 큰 소리로 말해라…”
“저는 나쁩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몹시 착하시고요. 당신의 친절은 항상 저를 감동시킵니다. 당신의 친절은 항상 신선하고, 늘 새로우니까요… 저는… 저는 그 친절을 제가 가는 길에서 만날 때 무어라 말해야 할 줄을 모르겠습니다.”
“네 말이 맞다. 네가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신선하지도, 새롭지도 않기 때문이다. 유다야, 그것은 영원하다. 그것은 모든 곳에 있다… 오! 우리는 헤브론 근처까지 왔다. 마리아, 살로메, 안드레아가 우리를 향하여 손을 흔들고 있다. 가자. 그들이 어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구나. 틀림없이 그들은 역사적인 장소들이 어디인지 물어보고 있을 것이다. 내 소중한 형제여, 네 어머니는 이 회상으로 다시 젊어지시는구나.”
유다 타대오는 자기의 사촌을 보고 미소 짓고, 예수께서도 미소로 답하신다.
“저희 모두가 젊어지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말한다.
“저는 다시 학교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멋진 학교입니다. 투덜이 엘리사 선생님의 학교보다 훨씬 더 좋습니다. 필립보, 자네는 그를 기억하나? 하기야 우리가 그분에게 무슨 짓인들 안한 게 있나. 자네는 지파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나? ‘열두 지파의 도시들을 말해라!’ ‘너희는 소리를 맞추어 말하지 않았다… 다시 해라.’, ‘시몬아, 너는 잠자고 있는 개구리 같구나. 너는 뒤쳐져 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라.’
세상에! 제 머리통은 지난날의 도시들과 마을들의 이름들로 꽉 차버려서 저는 다른 어떤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여기서 우리는 진짜로 배웁니다. 마르지암아, 알겠니? 네 아버지가 지금 배웠으니 며칠 안으로 시험들을 치르게 될 것이다…”
그들 모두가 웃으며 안드레아와 여인들을 향하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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