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3권 공생활 둘째해(상)

하사시 3권 p461~p470 [211. 헤브론의 환영]

Skyblue fiat 2025. 4. 26. 18:45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3권 공생활 둘째 해 1  p461~p470

 


211. 헤브론의 환영

1945. 7. 7.

그들 모두는 헤브론 근처의 작은 숲 속에 둘러앉아 서로 이야기하며 음식을 먹고 있다. 마리아께서 자기의 어머니를 방문하실 거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 지금 유다는 기분이 최상인 상태여서 자기와 자기의 동료들과 여자들과의 사이에 있었던 언짢았던 기억을 여러 가지 친절한 행동을 보임으로써 지워버리려고 애쓴다. 그는 물건을 사러 시내에 들어갔었는데, 이 도시가 작년보다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전도와 기적들의 소식이 여기까지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것들을 숙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도라가 이 지방에 약간의 소유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쿠자의 아내도 여기 이 산들 위에 약간의 땅과 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그녀의 지참재산이라서 그녀의 개인 소유입니다.


그녀와 도라의 농부들이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 확실합니다. 에스드렐론에서 온 농부들 몇 사람이 분명히 여기 있을 테니까요. 그 사람… 도라는 자기 농부들에게 침묵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는 설혹 그들이 도라에게 고문당한다 해도 그들이 잠자코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늙은 바리사이의 죽음에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습니다. 당신께서도 아시지요? 게다가 파스카 전에 이곳에 온 요안나의 아주 좋은 건강도요.

아! 그리고 아글라에의 애인도 당신께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우리가 여기 왔다 간 직후에 그녀가 도망쳤다는 것을 아시지요. 그는 분풀이하느라 죄 없는 여러 사람들에게 난폭하게 행동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사람들은 결국 당신을 압제당하는 사람들의 복수자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좀 더 나은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압제당하는 사람들의 복수자(Avenger of the oppressed)! 사실 나는 그렇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그렇다. 이 세상의 영(spirit)에 따라 왕과 재판관으로서 양손에 왕홀과 도끼를 들고 있는 사람으로 나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올바르게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사람들을 속박에서 자유롭게 해주려고 왔다. 죄의 속박, 병의 속박과 실망의 속박, 무지와 이기심의 억압에서 말이다.


그중 가장 중대한 것은 죄의 속박이다. 운명에 의하여 높은 지위에 올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압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그 지위는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다.”

“라자로는 그렇게 하고, 요안나도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수백 명 대 두 명입니다…”
필립보가 서글프게 말한다.

“강들은 그것들의 발원지들에서는 그것들의 하구들에서처럼 넓지 않다. 몇 방울의 물, 가느다란 물줄기 그러나 나중에는… 하구에서는 바다처럼 보이는 강들이 있다.”
알패오의 마리아가 말한다.

“나일 강이요? 당신의 어머니께서는 당신들이 이집트에 가셨을 때에 대하여 나에게 말해주었는데, 그녀는 늘 이렇게 말했어요. ‘바다 같았어요, 청록색 바다. 홍수 때 그 강을 보면 꿈만 같았어요!’ 그분은 또한 물에서 솟아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식물들과 물이 빠질 때 강바닥에 남겨진 초록색 초원에 대해서도 나에게 말해주었어요…”

“자! 그럼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마치 나일 강이 발원지에서는 가느다란 물줄기에 지나지 않았다가 나중에는 거대한 강이 되는 것처럼 지금 당장은 형제들 중 가장 작은 자들에게 사랑을 가지고, 사랑으로 인하여 관심을 기울이는 위대한 사람들의 가느다란 물줄기는 나중에는 커질 것이다. 지금 당장은 요안나, 라자로, 마르타지만, 나중에는 얼마나 많아지겠느냐!”

예수께서는 자기들의 형제들에게 자비를 베풀 사람들을 보고 계시듯 그분 자신의 환상에 사로잡혀 미소 지으신다.
유다는 회당장이 자기와 함께 오기를 원했지만, 감히 자기 혼자서 결정하지는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요한, 작년에 그가 우리를 어떻게 쫓아냈는지 기억하나?”

“나는 기억해… 하지만 선생님께 여쭤보세.”

질문을 받으시자 예수께서는 그들이 헤브론으로 들어갈 거라고 말씀하신다. 만일 주민들이 그들을 원하면 부를 것이고, 그러면 그들은 머무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갈 거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요한의 집도 보게 될 것이다. 지금 그것은 누구의 집이냐?”

“저는 그것을 원하는 사람 누구나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삼마이는 떠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인들을 데리고 갔고, 가구들도 치웠습니다. 주민들은 그의 권력남용에 대하여 복수하기 위하여 둘러쳐진 담장을 헐어버렸고, 그래서 누구나 그 집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정원은 그렇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세례자를 공경하기 위하여 정원에 모입니다. 그들은 삼마이가 살해당했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틀림없이 여자문제 때문일 겁니다…”

“틀림없이 궁정의 모종의 추악한 음모겠지!…”
나타나엘이 수염 속에서 중얼거린다.

그들은 일어나 헤브론을 향하여, 세례자의 집을 향하여 간다. 그들이 그 집에 거의 도착할 무렵 그들은 상당히 머뭇거리면서 다가오는 밀집해 있는 한 무리의 주민들을 본다. 그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지만, 망설이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미소 지으시며 그들에게 인사하신다. 그들은 대담해져서 서로 간격을 넓힌다. 그리고 지난해에 무례한 행동을 했던 회당장이 앞으로 나온다.

“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
예수께서 인사하신다.

“당신은 우리가 당신의 도시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시겠습니까? 나는 마음에 드는 내 모든 제자들과 그들 중 몇 사람의 어머니들과 함께 왔습니다.”

“선생님, 하지만 당신께서는 저희에게, 아니면 저에게 원한을 품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원한이요?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또한 나는 왜 내가 원한을 가져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지난해에 저는 당신을 모욕했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신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하며 알려지지 않은 사람을 모욕했습니다. 나중에 당신은 깨달았고, 자신이 그렇게 행동한 것을 뉘우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회개가 죄를 없애는 것처럼 현재도 과거를 지웁니다. 지금 나는 당신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나에 대한 당신의 감정은 무엇입니까?”

“주님, 존경의 감정입니다. 갈망의… 감정…”

“갈망이요? 당신은 나에게서 무엇을 원하십니까?”

“저는 제가 지금 아는 것보다 당신을 더 낫게 알기를 원합니다.”

“어떻게요? 어떤 방법으로요?”

“당신의 말씀과 당신의 행위들을 통해서요. 저희는 당신과 당신의 가르침과 능력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당신께서 세례자의 구출에 관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께서는 그분을 미워하지 않으셨고, 우리 요한을 쫓아내려고 애쓰지도 않으신 것입니다!… 그분 자신도 자기가 당신 덕택에 거룩한 요르단 강의 계곡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저희가 요한을 찾아가 당신에 대하여 말했을 때 그분은 저희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어떤 분을 거절했는지를 모릅니다. 나는 당신들을 저주해야겠지만, 그분이 저에게 용서하라고, 온유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에 당신들을 용서합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들이 주님과 나에게 저주받고 싶지 않다면, 메시아를 사랑하시오. 의심하지 마시오.

그분의 증거는 이것입니다. 평화의 영, 완전한 사랑, 가장 뛰어난 지혜, 천상의 가르침, 절대적 온유, 모든 것에 미치는 능력, 전적인 겸손, 천사와 같은 순결.

당신들은 오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들이 그분 자신께서 메시아라고 말씀하시는 그분 곁에서 평화를 호흡하고, 그분의 사랑을, 그분에게서 배어 나오는 사랑을 마시고, 당신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건너가고, 죄인들이 구원받고 육체가 고쳐지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때 이렇게 말하시오. ‘이분께서는 참으로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저희는 당신의 행위들이 요한이 말한 그런 행위들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저희를 용서해주시고, 사랑해주시고, 세상이 당신께 기대하는 것을 저희에게 주십시오.”

“그래서 나는 이곳으로 왔습니다. 나는 내가 나를 받아들이는 모든 곳에 다 주는 것을 요한의 도시에도 주려고 멀리서 왔습니다.”

“저희에게도 병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무식합니다. 특히 저희는 사랑과 착함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무식합니다. 요한은 하느님에 대한 그분의 전적인 사랑으로 강철 같은 손과 불같은 말을 가지고 있고, 저희 모두를 마치 거인이 풀잎을 구부리듯이 휘어잡으려 합니다. 사람은 성인이기보다는 죄인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낙심하고 맙니다. 성인들이 되기는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런데 당신께서는… 구부리지 않고 일으키시며, 뜨거운 불로 태우지 않고 방향제를 발라주시며, 으스러뜨리지 않고 어루만져주신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당신께서는 죄인들에게 자애로우시고, 모든 병, 특히 마음의 병들에 대하여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저희는 압니다. 저희의 라삐들은 더 이상 그렇게 할 줄을 모릅니다.”

“나에게 여러분의 병자들을 데려오시오. 그리고 전에는 그 안에서 살았던 은총의 성전이었다가 지금은 버려지고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 저 정원에 모이시오.”

헤브론 사람들은 제비들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가고 회당장만이 남아 있다. 그는 예수와 제자들과 함께 정원 안으로 들어간다. 그 다음에 그들은 모두 장미나무와 포도나무가 제멋대로 자라서 얽혀 있는 정자 그늘로 들어간다. 헤브론 사람들이 곧 돌아오는데, 그들은 들것에 실린 중풍 환자와 어린 소경 소녀와 어린 벙어리와 사람들이 부하여 데려오는,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내가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을 데려온다.

“여러분에게 평화.”

병자가 올 때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부드럽게 다시 물으신다.

“당신들은 내가 당신들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십니까?”

그 말씀을 들은 그 불행한 사람들이 일제히 푸념을 늘어놓으며 제각기 자기 자신의 사연을 말하고 싶어 한다.
앉아 계셨던 예수께서는 일어나 벙어리 소년에게 가시어 당신 침을 그의 입술에 바르시며 위대한 말씀을 하신다.

“열려라!”

그리고 그분께서는 침을 묻힌 당신 손가락으로 여인의 감긴 눈꺼풀을 적시시며 같은 말씀을 반복하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중풍환자에게 그분의 양손을 얹으시며 말씀하신다.

“일어나시오!”

끝으로 그분은 두 병자에게 손을 얹으시며 말씀하신다.

“주님의 이름으로 고쳐져라!”

전에는 웅얼거리기만 했었던 소년이 분명하게 말한다.

“엄마!”

젊은 여인은 빛을 향하여 떠진 눈꺼풀로 눈을 찡긋하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태양빛에 대하여 손가락으로 눈을 가려 눈을 보호함과 동시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빛에 적응하지 못하여 눈을 반만 뜨고 나뭇잎들과 땅과 사람들을 바라보고, 특히 예수를 바라본다.

중풍병자는 대담하게 들것에서 내려오고, 인정 많은 들것 메는 사람들은 빈 들것을 쳐들어 은총이 내려졌다는 것을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알게 한다. 그 동안 두 명의 병자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구세주께 경배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는다.

군중은 열광적인 호산나를 외친다. 유다 가까이에 있던 토마스는 유다를 뚫어지게, 그리고 아주 분명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래서 유다가 토마스에게 말한다.
“내가 어리석었네. 나를 용서해주게.”

환호가 가라앉자 예수께서는 말씀을 시작하신다.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해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말한 대로 도피성들을 선택해라. 우발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살인한 사람이 도피처를 찾게 하여 근친, 피의 복수자의 분노를 피할 수 있게 해라.’ 헤브론은 그 도시들 중 하나였습니다. 또한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성읍의 원로들은 무죄한 사람을 죽이려고 찾는 사람에게 그를 내주어서는 안 된다. 그를 받아들여 그가 그 성읍에서 살도록 허락해야 한다. 그 살인자는 재판을 받기까지, 그리고 당시의 대사제가 죽기까지 거기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야 그는 자기의 성읍,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여호20,1 이하, 신명19,1-13)

이 법은 이미 우리의 이웃에 대한 자비로운 사랑을 숙고하여 처방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의 신문 없이 단죄하거나 분노의 폭발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이 법을 제정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도덕적인 죄와 비난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알지 못하면서 비난하고, 피고인의 신문 없이 판결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통상적인 죄악이나 죄라고 주장된 것과 관련하여 이미 존재하는 죄들과 비난들에 새로운 일련의 비난과 단죄가 덧붙여져 왔습니다. 그것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오는 사람들을 거슬러 덧붙여진 비난과 단죄입니다. 과거에는 그런 일들이 예언자들에 대하여 일어났고, 지금은 그리스도의 선구자와 그리스도에 대하여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례자는 속임수에 의하여 스켐 지역 밖으로 유인되어 나가서 지금은 헤로데의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결코 거짓말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의 목숨을 끊고 목을 벨 수는 있겠지만, 그의 정직성을 꺾지는 못할 것이고, 그가 신성하거나 초자연적이거나 도덕적인 모든 형태로 충실히 섬겨온 진리(the Truth)에서 그의 영혼을 분리시키지도 못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두 배, 아니 열 배의 분노로 박해당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헤로데에게만 ‘그것은 불법입니다’ 하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죄를 발견하거나 죄라고 알고 있는 모든 곳에서 어떤 부류도 빼놓지 않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우레 같은 목소리로 똑같이 ‘그것은 불법입니다’ 하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에 더 이상 하느님의 종들이 없습니까? 아니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상들’입니다.

유배당한 사람들에게 보낸 예레미야의 편지에 다른 많은 말들 중 다음의 말이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여러분의 주의를 끌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성령께서 그 당시의 사건에 대하여 쓰게 하시는 바와 같이 미래에 발생할 어떤 사건과도 관계가 있는 가르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대들이 바빌론에 들어가면 금, 은, 돌, 나무로 만든 신들을 볼 것입니다. 외국인들을 흉내 내지 말고, 그들의 신들(gods)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시오. ‘주님, 저희가 경배드릴 분은 당신뿐입니다.’”

그리고 그 편지는 장색이 만든 혀를 가지고 있는 그 우상들에 대한 세부사항들을 처방하고 있는데, 그 우상들은 창녀들을 치장하기 위하여 우상들에게서 금을 벗기고, 나중에는 매음의 땀으로 더럽혀진 그 금을 도로 가져다가 우상을 꾸미는 거짓 사제들을 나무라는 데 그 혀를 쓰지도 못합니다. 녹이 슬고 좀이 쏠 수 있으며, 사람들이 얼굴을 씻어주고 옷을 입혀주면 깨끗하고 말쑥해지고, 비록 왕 홀과 도끼를 손에 들고 있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런 우상 말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그는 계속합니다. ‘그 신들은 깨진 그릇들처럼 무익합니다. 그것들의 눈은 신전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발이 일으키는 먼지로 가득 차 있고, 사람들은 그것들을 단단히 묶어놓습니다. 마치 무덤에 매장하는 것처럼 또는 왕을 모욕한 사람을 묶어놓는 것처럼 말입니다. 누구든지 그것들의 값진 겉옷을 훔쳐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등잔의 빛을 볼 수도 없고, 신전의 기둥과 같기 때문에 등잔들은 그것들을 연기로 그을려 검게 하는 데나 소용됩니다. 한편 올빼미와 제비와 다른 새들이 그것들의 머리 위로 날아다니며 똥으로 더럽히고, 고양이들은 그 옷 속에 잠자리를 만들고, 그 옷을 찢습니다.’(바룩4,2-22)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들은 죽은 물건들입니다. 금도 그것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고 단지 진열해놓은 것일 뿐입니다. 그것들은 사람이 닦아주지 않으면 반짝이지 않으며, 그것들은 그것들이 만들어질 때에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불도 그것들을 깨우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엄청난 돈을 주고 그것들을 샀습니다. 그것들은 창피하게도 아무런 힘이 없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그것들을 마음대로 데리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왜 신들이라고 불립니까? 그것들에게 봉헌물이 바쳐지고, 거짓 의식이 행해지기 때문인데, 그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그것들을 보는 사람들도 그것들을 믿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자기들을 나쁘게 취급하든 좋게 취급하든 그 취급에 대하여 반응할 능력이 없고, 왕을 세우거나 폐위시킬 능력이 없고, 재물을 주거나 해를 끼칠 수도 없으며, 사람을 죽음에서 구해내지도 못하고, 압제자에게서 약한 사람을 구해내지도 못합니다.

그것들은 과부들과 고아들에 대하여 연민을 느끼지도 못합니다. 그것들은 산에 있는 돌들과 같습니다.’ 그 편지는 대체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는 주님의 종들 중에 성인들을 가지지 못하고 우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Evil)이 선(Good)에 대항하여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성인이 아닌 사람들의 지성과 마음에 똥칠하고 선을 가장한 거짓 외투 속에서 둥지를 트는 악이 말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느님의 말씀을 말할 줄 모릅니다. 물론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만든 혀를 가지고 있어 사탄의 말을 하지 않을 때는 사람의 말을 합니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무죄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꾸짖을 수 있을 뿐이고, 권세 있는 자들의 부패를 볼 때에는 침묵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타락했기 때문에 그들은 똑같은 범죄들에 대하여 서로를 비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맘몬을 위하여 탐욕스러워, 모든 제한과 상상을 뛰어넘는 무절제한 욕구에 사로잡혀 음란과 범죄의 황금을 받고, 그것을 교환하고 훔치며 일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썩게 하는 먼지에 덮여 있으며, 그들이 깨끗한 얼굴을 보여준다 해도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추악한 마음을 보십니다. 그들은 증오의 녹과 죄의 기생충에게 파 먹히고 있는데, 그들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하여 반응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마치 왕홀과 도끼인 양 저주를 휘두르지만, 자기들이 저주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마치 무덤속의 시체들이나 감옥 속의 죄수들처럼 자신들의 생각과 증오 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누군가가 자신들을 거기서 끌어내지 못하도록 창살을 움켜쥐고 거기 남아 있습니다. 그 죽은 자들이 여전히 어떤 물건 즉 미라,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사람처럼 보이는 미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몸뚱이들은 마른 나무로 바뀌었는데, 참 생명(Life)을 찾고 있는 세상,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의 젖을 필요로 하듯이 참 생명을 필요로 하고, 자신에게 죽음의 악취가 아니라 참 생명을 줄 수 있는 자를 원하는 세상에서 그들은 외관상으로는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들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틀림없이 성전에서 삽니다. 등잔 즉 명예의 연기가 그들을 그을려 검게 하지만, 빛은 그들 위로 내려오지 않습니다. 모든 격정이 새들과 고양이들처럼 그들 안에서 둥지를 틀고 있고, 사명에 대한 열정은 그들에게 하느님의 불로 타오르는 신비적인 고통을 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랑(Love)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그들을 찬란한 금으로 옷 입히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불이 그들을 태우지 못합니다. 두 가지 형태와 근원을 가진 사랑이 말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그 형태이고, 하느님으로부터의 사랑과 사람으로부터의 사랑이 그 근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떠나시고, 그래서 첫째 근원이 마르고, 사랑이 악인에게서 떠나고, 그래서 둘째 근원이 마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사랑 없는 사람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갑니다. 그들은 저주받은 돈에 매수되고, 이익과 권력에 부합하는 곳으로 끌려갑니다.

안 됩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어떤 돈도 양심 특히 사제나 선생의 양심을 살 수 없습니다. 땅의 힘 있는 것들이 하느님의 계명과 반대되는 행동으로 이끌어가려고 할 때 그것들을 따라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무능력(spiritual inability)인데,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자는 주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 (레위21,20)

육체적으로 불능인 사람이 하느님의 백성의 일원이 될 수가 없는데, 영적으로 무능력한 사람이 하느님의 사제가 될 수 있습니까?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지금 많은 사제들과 선생들이 영적 남성성(spiritual virility)을 잃었기 때문에 그들은 죄 있는 영적 거세 상태에 있습니다. 많은 사제들과 선생들이, 너무 많은 사제들과 선생들이!

묵상하고, 관찰하고, 비교하시오. 여러분은 우리가 많은 우상을 가지고 있고 하느님이신 선(the Good)의 사제들을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도피성이 더 이상 도피성이 아니게 된 이유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에서는 아무것도 존중되지 않고,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이 거룩한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 성인들이 죽어갑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오시오!’ 나는 요한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부릅니다. 요한은 성인이었기 때문에 임종의 고통을 당하고 있고, 나를 앞장서가며 어린양의 길들에서 오물을 치우려고 애썼기 때문에 타격받았습니다. 와서 하느님을 섬기시오.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준비 없이 구속을 맞이하지 마시오. 씨 뿌려진 땅에 비가 오게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비가 와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헤브론의 여러분이 앞장서야 합니다! 즈카르야와 엘리자벳이 함께 이곳에서 살았는데, 그분들은 하늘로부터 요한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성인들이었습니다. 요한은 여기서는 자기의 참다운 어린이와 같은 무구함으로 은총의 향기를 풍겼고, 광야에서는 타락을 막는 경이로운 회개가 된, 그의 은총의 향을 여러분에게 보내주었습니다.

여러분의 요한을 실망시키지 마시오. 그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거의 신적 수준으로까지 끌어 올려 광야의 가장 하찮은 주민을 동향인인 여러분을 사랑하듯이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는 틀림없이 여러분의 구원을 간구할 것입니다. 구원은 주님의 목소리를 따르는 것이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이 사제의 도시에서 일치하여 하느님을 섬기러 오시오. 나는 지나가고 있는데, 여러분을 부릅니다. 여러분은 자비의 말씀 한 마디만을 듣고도 자신들의 과거의 길을 버리고 선의 길로 오는 창녀들보다 못한 사람들이 되지 마시오.

내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런데 당신께서는 저희에게 원한을 품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원한이요? 천만에요! 나는 여러분에게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이 내 백성 가운데 있는 것을 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내가 모든 종류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게 하여 관능의 홍해와 죄의 광야 저편에 있는, 기쁨으로 가득 차고 평화가 충만한 영원한 땅인 하느님의 나라라는 참된 약속의 땅을 향한 새 대탈출(new exodus)로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백성 말입니다…

오시오! 나는 지나가고 있는 사랑입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그를 따라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오로지 착한 뜻만 있으면 되니까요.”

예수께서는 말씀을 마치셨다. 군중은 놀라움에 사로잡혀 침묵한다. 많은 사람들이 들은 말을 숙고하고, 검토하고, 음미하고, 비교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동안에 예수께서는 피로하시고 더위에 지치셔서 앉아서 요한, 유다와 말씀하신다. 그런데 정원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려온다. 그 큰 소리는 분명치 않다가 나중에는 점점 분명해진다.

“메시아께서 여기 계십니까? 그분께서 여기 계세요?”

그렇다는 대답을 듣자 사람들이 몸이 S자로 보일 정도로 뒤틀려 있는 불구자를 데려온다.

“오! 저 사람은 마샬이구먼!”

“저 사람은 너무 뒤틀렸는데! 저 사람은 뭘 바라는 건가?”

“저 여자가 그의 어머니야! 불쌍하기도 하지!”

“선생님, 저 여자의 남편은 자기 아들인 저 조산아 때문에 저 여자를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 여자는 여기서 구걸하여 연명하고 있는데, 늙어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 조산아는―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지금 예수 앞에 와 있다. 그는 어찌나 몸이 굽었고 기형인지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는 마치 인간 침팬지 또는 사람이 된 낙타의 캐리커쳐 같다. 불쌍한 그의 늙은 어머니는 말도 못하고 그저 신음만 내뱉는다.

“주님, 주님… 저는 믿습니다…”

예수께서는 겨우 그분의 허리께에 미칠까 말까한 그의 뒤틀린 양 어깨에 두 손을 얹으시고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천둥 같은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일어나 주님의 길을 걸으시오.”

그러자 그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지극히 완전한 사람처럼 똑바르게 펴진 채로 벌떡 일어선다. 그의 움직임이 어찌나 빨랐던지 그를 비정상적인 자세로 고정시켜놓았던 용수철들이 갑자기 부서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지금 그는 예수의 어깨까지 미친다. 그는 예수를 쳐다보더니 자기의 어머니와 함께 무릎 꿇고 자기의 구원자의 두 발에 입 맞춘다.

군중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묘사하기란 불가능하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의지에 반하여 헤브론에서 묵으시도록 강요당한다. 그분께서 밖으로 나가시지 못하도록 사람들이 출구를 막고 인의 장막을 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그분께서는 지난 해 이후 몹시 변한 늙은 회당장의 집으로 들어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