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1권 복음준비

하사시 1권 p207~p218[34. 현자들의 경배(2)~35. 이집트로의 피난(1)]

Skyblue fiat 2024. 11. 12. 17:24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1권 복음준비  p207~p218

 

※ 통독한 뒤 마음에 세길 구절 1~2개를 나눕니다

34. 현자들의 경배

1944. 2. 28.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자, 이제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오, 자기의 믿음이 죽어가는 것을 느끼는 영혼들아?

동방에서 온 그 현자들은 자기들에게 진리를 확증해주는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초자연적인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천문학적 계산과 엄격하게 정직한 생활로 완전하게 된 그들 자신들의 숙고들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것에 대한 믿음, 즉 지식에 대한 믿음, 자신들의 양심에 대한 믿음, 하느님의 선하심에 대한 믿음을 말이다.

그들은 지식으로 세기들을 통하여 인류가 기다려온 ‘그 별’, 즉 메시아의 별일 수밖에 없는 새 별의 징조를 믿었다. 그들의 양심들로 인하여 그들은 자기들에게 ‘저것은 메시아의 도래를 알리는 별이다’ 하고 말하는 천상의 ‘목소리들’인 그들의 양심의 목소리들을 믿었다. 하느님의 선하심으로 인하여 그들은 그분께서는 그들을 속이시지 않으실 것이고, 그들의 의향이 착하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그들의 목적지에 이르도록 모든 방법으로 그들을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성공했다. 징조들을 연구하기를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그들만이 그 징조를 알아차렸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혼들만이 정직한 목적을 위하여 하느님의 말씀들을 알기를 열망했는데, 그 목적의 요체는 지체 없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께 영광을 드린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떤 개인적인 이익도 추구하지 않았다.대로 그들은 수많은 역경들에 직면해야 하고,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어떤 인간적인 보상도 청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기억해주시고, 영원한 삶으로 구원해주시기만을 청한다.

그들이 어떤 미래의 인간적인 보상들에 대한 갈망을 가지지 않기에 길을 떠나기로 결정할 때에도 그들은 아무런 인간적인 걱정을 하지 않는다.

 

너희라면 수백 가지의 문제점들을 제기했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다른 언어들을 말하는 나라들과 민족들을 통과하는 그토록 먼 여행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나를 믿을까, 아니면 나를 간첩이라고 감옥에 가둘까? 사막들과 강들을 건너고 산을 넘는 데 있어 사람들은 나에게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 그리고 더위는? 그리고 고원의 바람들은? 물이 고여 있는 늪지대에 창궐하는 말라리아 열병들은? 그리고 홍수들과 폭우들은? 그리고 생소한 음식은? 그리고 다른 언어들은?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이것이 너희가 추론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추론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실하고 거룩한 대담성을 가지고 말한다. ‘오, 하느님, 당신께서는 저희의 마음들을 읽으시고, 저희가 추구하고 있는 목적을 아십니다. 저희는 당신의 손에 맡깁니다. 저희에게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신 당신의 둘째 위에게 경배하는 초인간적인 기쁨을 주십시오.’

 

그것이 전부이다. 그래서 그들은 머나먼 인도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분께서 인도라고 말씀하실 때 그분께서는 그곳은 우리의 지도상에서 터키,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페르시아가 있는 남아시아를 가리키신다고 나에게 말씀하신다.

또한 그들은 독수리들의 땅인 몽골의 산맥에서 떠난다. 바람들과 급류들의 포효하는 소리와 함께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빙하들의 광대한 페이지들에 신비의 말씀들을 쓰시는 그 땅 말이다.

다른 한 무리는 나일 강이 발원하여 청록색의 물들이 흘러 지중해의 파란 심장으로 흘러가는 땅에서 떠난다. 산들도, 숲도, 모래도, 바다들보다 더 위험한 메마른 대양인 사막도 그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별은 밤에 그들 위에서 빛나 그들이 자는 것을 방해한다. 사람이 하느님을 찾을 때 자연적인 습관들은 초인간적인 고려들과 필요들에게 양보해야 한다.

그 별은 그들을 북쪽, 동쪽, 남쪽에서 데려오며, 하느님의 기적으로 그들 세 사람을 위하여 한 지점을 향하여 나아간다. 그리고 다른 하느님의 기적으로 그것은 머나먼 여행 후에 그들을 그 지점에 모아놓는다. 그리고 또 다른 기적으로 그것은 성령강림의 지혜를 앞당겨, 그들에게 오직 한 가지 말 즉 하느님의 말만을 하게 될 낙원에서와 같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고 자신들의 말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게 하는 은총을 부여한다.

 

그들은 별이 사라진 한 순간에만 실망에 빠진다. 그들은 참으로 위대하기 때문에 겸손하여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사악함에 기인한 것이라는 것, 즉 예루살렘의 타락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별을 볼 자격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을 모시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용서를 청할 각오로 두려워하고 통회하며 자신들을 성찰한다.

그러나 그들의 양심은 그들을 안심시킨다. 그들의 영혼들은 묵상에 익숙해져 있고, 그래서 그들 각자는 항구적인 주의와 날카로운 내성(introspection)에 의하여 세련된 지극히 민감한 양심을 가지고 있다. 그 내성은 그들의 내면을 거울로 만들어 나날의 행동들의 가장 사소한 잘못들이라도 거기 비춰진다. 그들의 양심은 가장 작은 실수에 대해서 뿐 아니라 실수들, 인간적인 모든 것 그리고 자기의 자아의 만족에 대한 최소한의 경향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소리치는 선생이자 목소리가 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그들이 이 선생이자 엄격한 거울 앞에 자신들을 비추어볼 때 그들은 그것이 거짓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이 그들을 안심시키고 다시금 그들에게 용기를 준다.

오! 우리 안에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얼마나 감미로운가! 그분께서 그분의 충실한 아들의 영혼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계시고, 축복하신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얼마나 감미로운가! 믿음, 신뢰, 희망, 강인함 그리고 인내는 그런 느낌에 의하여 커진다.

지금 당장은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갈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을 아시며, 틀림없이 다시 나를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모든 행동의 여왕인 올곧은 양심으로부터 오는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참으로 위대하기 때문에 겸손했다’고 나는 말했다. 이와는 반대로 너희의 생활 안에서는 무엇이 일어나느냐? 누군가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더 지배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의 거만함과 너희의 어리석은 우상숭배로 인하여 그가 권력을 얻게 되기 때문에 결코 겸손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자기들이 어떤 거들먹거리는 자의 집사들이거나, 어떤 관청의 경비원들이거나, 어떤 소도시의 관료들이거나, 말하자면 그들을 고용한 사람들의 하인들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반신(半神)들처럼 허세부리는 어떤 불쌍한 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세 현자들은 참으로 위대했다. 첫째로 그들의 초자연적인 성덕들로 인하여, 둘째로 그들의 지식으로 인하여, 마지막으로 그들의 부유함으로 인하여 그러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낀다. 한 번의 미소로 세상들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낟알들처럼 흩뿌려 보석 같은 별들로 천사들의 눈을 만족시켜주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에 비하면 자기들은 땅의 먼지 위의 먼지라고 느낀다.

그들은 자기들이 사는 행성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지극히 다채롭게 만드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에 비하면 자기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낀다. 끝없는 작품들의 무한하신 조각가께서는 그분의 엄지손가락으로 만져 여기 야산들의 원을 두시고, 저기 땅이라는 이 거대한 몸의 척추와 같은 산의 능선들의 골격과 산봉우리들을 두셨는데, 이 몸의 정맥들은 강들이고, 그 세숫대야는 호수들이고, 그 심장들은 대양들이며, 그 옷들은 삼림들이고, 그 베일들은 구름들이고, 그 장식들은 수정 같은 빙하들이고, 그 보석들은 터키옥들과 에메랄드들, 오팔들, 숲들과 바람들과 함께 그들의 주님께 찬미의 대합창을 노래하는 모든 물속의 녹주석들이다.

 

그들은 지혜의 원천이시며, 그들이 사물들을 보는 두 개의 눈동자들보다 더 강력한 눈들, 즉 사물들 안에서 사람의 손들에 의하여 쓰이지 않고 하느님의 생각에 의하여 새겨진 말을 읽을 줄 아는 그들의 영혼의 눈들을 그들에게 주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에 비하여 자기들의 지혜에 관해서도 자기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물에 관해서도 자기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항성들과 행성들에 금속들과 보석들을 흩뿌려놓으시고,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소진되지 않는 초자연적인 재물을 주시는 우주의 주인의 부와 비교하면, 자신들의 부는 티끌에 불과하다고 느낀다.

 

그리하여 그들이 유다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마을의 초라한 집 앞에 이를 때 그들은 ‘말도 안 돼’ 하고 머리를 흔들지 않고, 자기들의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무엇보다도 자기들의 마음을 낮추고 경배한다. 저기 저 초라한 벽 뒤에 하느님께서 계신다. 자기들이 뵈올 최소한의 가능성도 결코 가지지 못한 채 그들이 항상 간구해온 그 하느님께서 계신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든 인류의 복지를 위하여, 그리고 ‘자신들의’ 영원한 복지를 위하여 그분을 부른다. 오! 그것은 그들의 유일한 소원이었다. 그것은 더 이상 새벽들도, 황혼들도 없는 삶에서 그분을 뵙고, 그분을 알고, 그분을 소유하는 것이었다.

그분께서는 저 초라한 벽 뒤에 계신다. 여전히 한 하느님의 마음인 한 어린이이신 그분의 마음은 길의 먼지 속에 엎드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우리 주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가장 높은 하늘에서는 그분께 영광, 그분의 종들에게는 평화. 영광, 영광, 영광 그리고 찬미’ 하고 외치고 있는 그 세 사람의 마음을 아실까? 그들은 사랑의 떨림을 가지고 궁금해 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온밤 내내, 그리고 이튿날 오전 동안 가장 열렬한 기도로 자신들의 영혼을 아기 하느님과의 교제를 위하여 준비한다.

 

그들은 하느님이신 성체(the Divine Host)를 안고 있는 동정녀의 품인 제대를 향하여 너희처럼 인간적인 염려들로 가득한 영혼들을 가지고 가지 않는다. 그들은 침식을 잊는다. 그들이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은 인간적인 허세를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왕들의 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이다. 왕궁들에서 신료들은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는다. 그러니 현자들이 그들의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그 왕에게 가지 않겠느냐? 그 옷을 입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겠느냐?

오! 그들은 머나먼 자기들의 나라들에서 그들과 동등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을 환영하고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여러 번 성장(盛裝)해야 했다. 그러므로 그들이 최고의 왕의 발 앞에 홍포들과 보석들, 비단들과 값진 깃털들을 가지고 엎드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의 작고 귀여운 발 앞에 땅의 직물들, 땅의 보석들, 땅의 깃털들, 땅의 금속들―그것들은 모두 그분의 작품이다―을 놓아 땅의 이 모든 것들이 그것들의 창조주를 공경하는 것은 당연하다. 만일 그 작은 아기가 그들에게 땅바닥에 엎드려 자기의 발걸음들을 위한 살아있는 양탄자가 되라고 명한다면, 그리고 그가 별들을 떠나 먼지에 지나지 않는 그들에게 왔기에 만일 그가 그들을 밟고 지나간다면 그들은 기뻐할 것이다.

그들은 겸손하고, 너그러우며, 위로부터의 ‘목소리들’에 순종한다. 그것들은 새로 태어난 왕에게 선물들을 가져가라고 그들에게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선물들을 가지고 온다. 그들은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니 선물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이시니 돌아가시지도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순종한다. 그래서 그들은 가난한 구세주를 돕는 최초의 사람들이 된다. 곧 도망자가 되어야 하는 그에게 그 금은 얼마나 유익하겠느냐! 머지않아 살해당할 그에게 그 몰약은 얼마나 의미심장한 것이겠느냐! 그의 무한한 순결 주위에서 끓어오르는 사람들의 음란의 악취를 맡아야 할 그에게 이 유향은 얼마나 경건한 것이겠느냐!

 

그들은 겸손하고, 너그럽고, 순종하고, 서로를 존경한다. 성덕들은 항상 다른 성덕들을 낳는다. 하느님을 향한 성덕들로부터 우리의 이웃들에 관한 성덕들이 파생된다. 존경, 그것은 사랑이다. 가장 연장자가 그들 모두를 대표하여 말하고, 구세주의 입맞춤을 받고, 그의 작은 손을 잡아 인도하는 최초의 사람이 된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늙었고, 하느님께로 돌아갈 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참혹한 죽음 후에 그를 볼 것이고, 그가 하늘로 돌아갈 때 다른 복된 영혼들과 함께 그를 따라갈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에서 다시 그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은 손의 온기가 주름 잡힌 그의 손에 그를 위한 노자로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질투심이 없다. 반대로 그 나이든 현자에 대한 그들의 존경심은 더 커진다. 그는 틀림없이 자기들보다 더 합당한 자격을 더 오랫동안 갖추었을 것이다. 아기 하느님은 안다. 아버지의 말씀(the Word of the Father)은 아직 말하지 않지만 그의 모든 행동은 말이다. 그의 무죄한 말은 찬미받기를! 왜냐하면 그것은 그를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으로 지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내 자녀들아, 이 환상에는 두 가지의 교훈이 더 있다.

‘자기’ 자리에 있을 줄을 아는 요셉의 행동이다. 그는 순결과 거룩함(Purity and Holiness)의 보호자로 거기 있지만, 그들의 권리를 부당하게 가로채지 않는다. 경의를 받고 말을 듣는 것은 예수와 함께 있는 마리아이다. 요셉은 그녀로 인하여 환호하고, 자기가 부수적인 인물이 되는 것을 슬퍼하지 않는다.

요셉은 의인이다. 그는 둘도 없는 의인이다. 그는 항상 의롭다. 이 순간에도 그렇다. 축제의 분위기는 그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는 겸손하고 의로운 채로 남아 있다.

그는 선물들에 기뻐한다. 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그것들을 가지고 자기의 배우자와 사랑하는 아기가 더 안락하게 살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셉에게는 탐욕이 없다. 그는 노동자이고, 그래서 그는 계속 일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들’, 자기의 두 사랑이 안락하기를 열망한다.

그도, 동방박사들도 그 선물들이 도망치는 데와 망명생활을 하는 데 쓰일 것이며, 그들이 망명지에서 자기들의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재물이 바람들에 흩어지는 구름들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것, 그들은 고객들과 가구 따위의 모든 것을 잃었을 것이고, 그곳에서 그들의 집의 벽들만이 보존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라는 것을 모른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동정녀와 결합하여 육화하셨기 때문에 그분에 의하여 보호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셉은 비록 자기가 하느님의 보호자이고, 하느님의 어머니이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정배의 보호자지만, 하느님의 이 신하들의 등자들을 잡아줄 정도로 실로 겸손하다. 사람들의 지속적인 압제들로 다윗의 상속인들이 그들의 왕실의 재산을 빼앗겼기 때문에 그는 보잘것없는 목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항상 왕의 후손이고, 왕의 예의범절을 가지고 있다. ‘그는 참으로 위대했기 때문에 겸손했다’는 말은 그에 관해서도 말해진 것이다.

 

친절하고 의미심장한 마지막 교훈은 이것이다.

아직 강복할 줄 모르는 예수의 손을 붙잡고 거룩한 손짓을 인도하는 사람은 마리아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거룩한 몸짓을 하도록 그 손을 인도한다.

예수의 손을 잡고 그것을 인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마리아이다. 지금도 그렇다. 지금 예수는 강복할 줄 안다. 그러나 때로 그의 꿰뚫린 손은 지치고 낙심하여 떨어져 내린다. 왜냐하면 그는 축복하는 것이 무익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너희는 내 축복을 망친다.

그때 자기의 입맞춤들로 내 손에서 경멸을 제거하는 분이 마리아이다. 오! 내 어머니의 입맞춤! 누가 그 입맞춤에 저항할 수 있겠느냐? 그분께서는 그분의 가냘픈 손으로, 그러나 거역 못할 사랑을 가지고, 내 손목을 잡고 강복하도록 나에게 강요하신다. 나는 그분의 청을 거절할 수 없다. 그러니 너희는 그분께로 가서 그분을 너희의 변호인으로 만들어라.

 

그분께서는 너희의 모후이기 전에 내 모후이시며, 너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아무도 상상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허용들(allowances)을 만들어낸다. 그분께서는 심지어 아무 말 없이 그분의 눈물, 내 십자가의 기억, 그분께서 나에게 허공에 긋게 하는 십자 성호만으로 너희의 이유를 애원하고 나에게 권유한다. ‘너는 구세주다. 그러니 구원해라!’

 

소중한 내 자녀들아. 이것이 동방박사들의 광경의 환시 안의 ‘믿음의 복음’이다. 너희 자신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것을 묵상하고 모방해라.”

 


35. 이집트로의 피난

1944. 6. 9.

 

내 영혼은 다음의 광경을 본다.

 

지금은 밤이다. 요셉은 아주 작은 자기의 방에 있는 작은 침대 위에서 자고 있다. 이것은 고된 하루의 정직하고 부지런한 노동을 하고 난 사람의 평화로운 잠이다.

나는 어두운 방 안에 있는 그를 볼 수 있는데, 가느다란 한줄기 달빛이 약간 열려 있는 창의 덮개를 통하여 들어오기 때문이다. 작은 방안이 너무 덥거나 동틀 녘의 이른 새벽빛에 즉시 잠에서 깨어나기를 원하여 요셉이 창문을 약간 열어두었던 것 같다. 그는 한쪽에 누워 자면서 자기가 꿈속에서 보고 있는 어떤 광경에 미소 짓고 있다.

그러나 그의 미소는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바뀐다. 그는 마치 악몽을 꾸기라도 하는 것처럼 길게 한숨을 쉬더니 벌떡 일어난다. 그는 자기의 침대에 앉아 두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본다. 그는 희미한 빛이 비쳐 들어오는 작은 창을 바라본다.

 

지금은 깊은 밤이다. 그러나 그는 침대 밑에 펼쳐져 있는 자기의 겉옷을 집어 침대에 앉은 채 맨살 위에 입고 있는 소매 짧은 하얀 튜닉 위에 걸쳐 입는다. 그는 이불을 젖히고 방바닥으로 내려서며 샌들을 찾아 신고 그 끈들을 맨다. 그는 일어나서 침대 맞은편 문 쪽으로 간다. 그것은 박사들을 맞이하였던 방으로 통하는 큰방으로 이어지는 문이 아니다.

그는 손가락들의 끝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노크한다. 그는 안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알아듣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그것을 반쯤 닫는다. 그는 문으로 가기 전에 심지 하나만 있는 작은 기름등잔에 불을 켜서 그것으로 자기의 길을 밝혔다. 이 방은 그의 방보다 약간 더 크다. 요람 옆에 낮은 침대가 놓여 있다. 한쪽 구석에 야등 하나가 켜져 있는데, 그것의 흔들리고 있는 작은 불꽃은 자는 사람의 잠을 방해하지 않고 볼 수 있게 하는 부드러운 황금빛을 내는 작은 별과 같다.

마리아는 자지 않고 있다. 그녀는 가벼운 옷을 입은 채 요람 가까이에서 무릎 꿇고, 평화롭게 자고 있는 예수를 지켜보며 기도드리고 있다. 예수는 내가 동방박사들의 환상에서 그를 보았을 때와 같은 나이이다. 그는 아름답고 발그레하며 금발인 한 살쯤 된 어린이다. 그는 머리카락이 곱슬곱슬한 머리를 베개에 파묻고 주먹을 쥔 한 손은 턱 아래에 둔 채 자고 있다.

 

“당신은 자지 않고 있었소? 왜? 예수의 몸이 불편하오?”

요셉이 놀라 작은 소리로 묻는다.

“오, 아니에요! 예수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저는 기도하고 있었어요. 저는 나중에 자겠어요. 당신은 왜 오셨어요, 요셉?”

마리아는 같은 자리에서 무릎을 꿇은 채로 말한다.

요셉은 아기를 깨우지 않으려고 아주 작은 소리로 말하지만, 그것은 흥분한 목소리이다.

“우리는 즉시 여기를 떠나야 하오. 즉시 말이오. 당신이 넣을 수 있는 모든 물건들을 담을 수 있는 상자와 자루를 준비하시오. 나머지는 내가 준비하겠소. 나는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최대한의 물건들을 가져가겠소… 우리는 새벽에 도망쳐야 하오. 나는 훨씬 더 일찍 떠나고 싶지만, 이 집의 여주인에게 말해야 하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왜 이렇게 도망쳐야 해요?”

“나중에 내가 당신에게 말해주겠소. 이것은 예수를 위해서요. 한 천사가 나에게 말했소.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해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시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하겠소.”

 

마리아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그녀는 요셉이 천사, 예수, 도망을 언급하는 것을 듣자마자 자기의 아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밀랍보다 더 창백한 얼굴로 벌떡 일어나 한 손을 자기의 가슴에 얹으며 몹시 불안해한다. 그녀는 재빠르고 날렵하게 걸으며, 아직 흐트러지지 않은 채로 있는 침대 위에 자기가 가져다놓은 상자와 큰 자루에 옷가지들을 넣기 시작한다.

비록 그녀는 불안해하지만, 당황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재빠르지만 질서 있게 행동한다. 이따금씩 요람 곁으로 지나갈 때, 그녀는 조용히 자고 있는 아기를 들여다본다.

“당신은 도움을 필요로 하오?”

요셉이 벙싯 열린 문으로 방안을 들여다보며 가끔씩 묻는다.

“아니오. 고마워요.”

그때마다 마리아가 대답한다.

 

그녀의 자루가 가득 차서 아주 무겁게 되었을 때에야 그녀는 요셉을 불러 자기가 그것을 묶고 침대에서 치우는 것을 도와달라고 한다. 그러나 요셉은 마리아의 도움을 원치 않고 자기 혼자 일하는 편을 선호한다. 그래서 그는 긴 자루를 들고 자기의 작은 방으로 옮긴다.

“모직담요들도 가져갈까요?”

마리아가 묻는다.

“가능한 한 많이 가져갑시다. 우리는 나머지를 잃을 테니까요. 당신이 가져갈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가져갑시다. 물건들은 유익할 거요. 왜냐하면… 왜냐하면 우리는 오랫동안 머물러야 할 것이기 때문이오, 마리아!…”

요셉이 매우 슬퍼하며 말한다. 그리고 누구나 마리아가 어떤 심정인지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녀는 자기의 이불들을 개키고 있고, 요셉은 깊은 한숨을 쉬고 있다. 그가 말한다.

“누비이불들과 매트들은 놔두고 갑시다. 설사 내가 나귀 세 마리를 쓴다 해도, 나는 그놈들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울 수는 없소. 우리는 때로 산들과 사막들을 지나기도 해야 하는 멀고 힘든 여행을 하게 될 거요. 예수를 잘 감싸시오. 산속에서나 사막에서의 밤들은 추울 거요.

나는 박사들의 선물들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들은 거기서 매우 유익할 거요. 나는 나귀 두 마리를 사는 데 모든 돈을 쓰겠소. 우리는 그놈들을 돌려보낼 수 없으니 그놈들을 사야 하오. 나는 새벽을 기다리지 않고 지금 가겠소. 나는 어디서 나귀를 살 수 있는지 아오. 당신은 모든 준비를 끝내도록 하시오.”

말을 끝내고 요셉이 나간다.

 

그녀는 몇 개의 물건들을 더 모은 다음 예수를 살펴보고 나서 밖으로 나갔다가 아직 축축해 보이는 작은 옷들 몇 점을 가지고 돌아온다. 아마 그것들은 전날 빨래해둔 것 같다. 그녀는 그 옷들을 개켜 한 옷 속에 뭉쳐 넣은 다음에 다른 것들과 함께 넣는다.

다른 것은 전혀 없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쪽 구석에서 예수의 장난감들 중 하나, 나무로 조각된 작은 양이다. 그녀는 흐느끼며 그것을 집어 그것에 입 맞춘다. 나무에는 예수의 작은 이빨자국들이 있고, 작은 양의 귀들은 온통 깨물려 있다. 그것은 아무런 값어치가 없는, 가벼운 나무의 평범한 조각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에게 큰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에 대한 요셉의 애정을 그녀에게 말해주고, 그녀의 아기에 대하여 그녀에게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것을 닫힌 상자 위에 놓인 다른 물건들과 함께 놓는다.

이제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 요람에 있는 예수를 빼고는 말이다. 마리아는 자기가 아기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요람으로 가서 아기를 깨우려고 그것을 약간 흔든다. 그러나 아기는 약간 훌쩍이다가 돌아누워 계속 잔다. 마리아가 아기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자 예수는 그 작은 입을 벌리고 하품한다. 마리아는 몸을 숙여 아기의 뺨에 입 맞춘다. 예수는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 두 눈을 뜬다. 그는 자기의 엄마를 보자 방긋 웃으며 작은 두 손을 엄마의 가슴을 향하여 내민다.

“오냐, 네 엄마의 사랑아. 그래, 젖을 주마. 보통 때보다는 이르다마는… 그렇지만 너는, 너는 항상 네 어미의 젖을 빨려고 하지, 내 거룩한 어린양아!”

 

예수는 웃으며 작은 두 발로 이불을 걷어차고 보기에도 귀여운 어린이다운 몸짓으로 행복하게 두 팔을 움직인다. 아기는 자기 엄마의 명치에 두 발을 가져다대고 등을 구부려 금발 머리를 엄마의 가슴에 가져다댄 다음에 돌아와 마리아의 옷을 그녀의 목에 묶는 레이스들을 자기의 두 손으로 잡고 옷을 헤치려 하면서 웃는다. 작은 아마포 셔츠를 입고 있는 아기는 매우 아름답고 포동포동하고 꽃처럼 발그레하게 보인다.

마리아는 몸을 숙인 채 그 자세로 마치 아기를 보호하려는 듯이 요람을 들여다보며 동시에 울고 웃는다. 그 동안에 아기는 모든 아기들이 하는 말과는 다른 말로 조잘거리는데, 그 말 중에서 ‘엄마’라는 말은 아주 분명하게 되풀이한다. 아기는 자기 엄마가 울고 있는 것에 놀라 그녀를 쳐다본다. 아기는 반짝이는 눈물자국으로 한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토닥이다가 손가락이 눈물에 젖는다. 그 다음에 아기는 아주 사랑스럽게 자기 엄마의 가슴에 기대고 거기 매달려 한 손으로 그 가슴을 토닥인다.

마리아는 아기의 머리에 입 맞추고, 그를 들어 품에 안아 앉힌 다음에 그에게 옷을 입힌다. 아기는 지금 작은 모직 옷을 입고 있고, 양발에 샌들을 신고 있다. 그녀가 아기에게 젖을 주자, 예수는 자기 엄마의 맛있는 젖을 게걸스럽게 빤다. 그녀의 오른쪽 가슴에서 젖이 조금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느끼자, 아기는 왼쪽 젖가슴을 찾으며 자기의 엄마를 올려다보며 웃는다. 그러다가 그는 발그레하고 동그란 작은 뺨을 그녀의 희고 둥근 젖가슴에 기댄 채 다시 잠든다.

마리아는 아주 천천히 일어나 아기를 자기의 침대의 누비이불 위에 눕히고 자기의 겉옷으로 그를 감싼다. 그녀는 요람으로 돌아가 작은 담요들을 개키면서 작은 매트도 가져가야 하나 하고 고심한다. 이것은 이렇게도 작은데! 가져갈 수 있다. 그녀는 매트를 베개와 함께 이미 상자 위에 있는 다른 물건들 가까이에 놓는다. 자기의 어린 아들과 함께 박해당하는 가엾은 엄마는 텅 빈 요람을 내려다보며 운다!

 

요셉이 돌아온다.

“당신은 준비되었소? 예수도 준비되었고? 당신은 아기의 담요와 작은 침대도 챙겼소? 우리는 아기의 요람을 가져갈 수는 없소. 하지만 아기의 작은 매트는 가져가야 하오. 사람들이 죽이려 하는 가엾은 아기!”

“요셉!”

마리아가 외치며 요셉의 팔을 붙잡는다.

“그렇소. 마리아, 아기를 죽이려 하오! 헤로데가 아기의 죽음을 원하고 있소… 그 더러운 짐승이 아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오. 그자가 자기의 인간적인 왕권으로 인하여 이 무죄한 아기를 무서워한단 말이오. 아기가 도망쳤다는 것을 그가 알게 될 때 무슨 짓을 할지 나는 모르겠소. 하지만 그때 우리는 멀리 가 있을 거요.

나는 그가 갈릴래아까지 아기를 찾아와 복수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우리가 갈릴래아 사람이라는 것을 그가 알아내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고, 우리가 나자렛 사람이라는 것과 우리가 정확히 누구라는 것을 그가 알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오. 사탄이 그가 자기의 충실한 종노릇하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여 그를 도와주지 않는 한 말이오.

그러나…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하느님께서도 똑같이 우리를 도와주실 거요. 마리아, 울지 마시오. 당신이 우는 것을 보는 것은 나에게는 망명을 떠나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소.”

 

“요셉, 저를 용서해주세요! 저는 저 자신이나 제가 잃는 얼마 안 되는 재물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에요. 저는 당신 때문에 울고 있어요… 당신은 이미 당신 자신을 그토록 많이 희생해야 했는데! 지금 당신은 다시 한 번 고객들도 잃을 것이고, 집도 없어요! 제가 당신에게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하게 하나요, 요셉!”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하느냐고? 아니오. 마리아, 당신은 나에게 대가를 지불하게 하지 않소. 당신은 나를 위로해주오, 항상.

미래에 대하여 염려하지 마시오. 우리는 동방박사들이 준 보물들을 가지고 있소. 그것들이 초기에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 거요. 나중에 나는 일거리를 얻게 될 거요. 유능하고 재치 있는 일꾼은 항상 자기의 길을 만들 것이오. 당신은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았어요. 나는 시간이 모자라 내가 맡은 일을 다 하지 못할 지경이었소.”

“나는 알아요. 그렇지만 누가 고향에 대한 당신의 향수를 달래주겠어요?”

“그러는 당신은 어떻소? 누가 당신에게 그토록 소중한 집에 대한 당신의 향수를 달래주겠소?”

“예수가요. 제가 예수를 가지고 있으니, 저는 제가 거기서 가졌던 것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셈이에요.”

“그럼 나도 예수를 가지고 있으니, 나는 내가 몇 달 전까지 돌아가기를 바랐던 고향을 소유하고 있는 셈이오. 나는 내 하느님을 소유하고 있소. 나는 모든 것들보다 나에게 소중한 것 중 아무것도 잃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당신도 아오. 유일한 중요한 일은 예수를 구하는 것이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지는 것이오. 비록 우리가 이 하늘이나 이 땅, 그리고 훨씬 더 소중한 갈릴래아 땅을 보지 못하게 된다 해도, 우리는 항상 모든 것을 가지게 될 거요. 우리가 예수를 가지게 될 터이니 말이오.

마리아, 갑시다. 동이 트고 있소. 지금은 우리의 여주인과 이별하고 우리의 물건들을 실을 시간이오. 모든 것이 잘 될 거요.”

 

마리아는 순종하여 일어선다. 그녀가 겉옷을 입고 있는 동안 요셉은 마지막 꾸러미를 싸서 그것을 들고 나간다.

그녀는 아기를 살짝 들어 올려 숄로 감싼 다음 그를 가슴에 꼭 껴안는다. 그녀는 몇 달 동안 자기가 살았던 방의 벽들을 바라보고, 그것들을 한 손으로 애무하듯 어루만진다. 마리아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었던 복된 집!

그녀가 나온다. 그녀는 요셉의 작은 방을 지나 다른 큰방으로 들어간다. 여주인은 눈물을 글썽이며 마리아에게 작별의 입 맞춤을 한 다음에 숄의 끝자락을 들치고 조용히 자고 있는 아기의 이마에 입 맞춘다. 그들은 바깥 계단으로 내려온다.

 

그들은 새벽의 최초의 빛으로 희미하게 볼 수 있다. 이 희미한 빛 속에서 세 마리의 작은 나귀들이 보인다. 가장 튼튼한 놈에게 짐들과 소지품들이 실려 있고, 다른 두 놈들에는 안장이 얹혀 있다.

요셉은 첫째 나귀의 길마 위에 궤와 꾸러미들을 매는 데 열중하고 있다. 나는 그의 목수의 연장들이 자루의 꼭대기의 꾸러미에 매어 있는 것을 본다.

또 다시 눈물어린 작별인사를 한 다음에 마리아는 자기의 나귀에 올라탄다. 그 동안에 여주인은 예수를 품에 안고 있다가 다시 그에게 입 맞춘다. 그 다음에 그녀는 그를 마리아에게 건네준다. 요셉도 마리아의 나귀의 고삐를 붙잡기 위하여 자기의 손을 자유롭게 하려고 자기의 나귀를 짐 실은 나귀에게 붙잡아 맨 다음에 자기의 나귀 위에 올라탄다.

여전히 동방박사들의 환상적인 광경에 대하여 꿈꾸고 있는 베들레헴이 자기에게 임박한 일을 알지 못한 채 평온하게 자고 있는 동안에 도망이 시작된다.

 

환상은 이렇게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