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1권 복음준비

하사시 1권 p229~p241 [37. 예수의 최초의 노동학습~38. 예수와 유다와 야고보의 선생 마리아]

Skyblue fiat 2024. 11. 14. 17:27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1권 복음준비  p229~p241

 

※ 통독한 뒤 마음에 세길 구절 1~2개를 나눕니다

 

 

37. 예수의 최초의 노동학습

1944. 3. 21.

 

나는 내 어린 예수가 비 오는 날의 햇살처럼 기분 좋게 나타나는 것을 본다. 그는 다섯 살쯤 된 어린 소년인데, 완전히 금발이고, 잘 생긴 종아리들 중간까지 내려오는 소박한 푸른 색 옷을 입고 있는데 무척 아름답다. 그는 작은 텃밭에서 흙을 가지고 놀고 있다. 그는 마치 축소된 작은 숲을 만들려는 듯 흙으로 작은 무더기들을 만들고, 그 꼭대기에 작은 나뭇가지들을 꽂는다.

 

그는 조약돌들로 작은 길들을 만들고, 자기가 만든 작은 야산들 밑에 작은 호수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는 낡은 접시 조각의 바닥부분을 가져다가 그 시울까지 땅에 파묻은 다음에 틀림없이 빨래하거나 작은 정원에 물을 주는 데 쓰이는 대야에서 물을 퍼 그 물을 땅에 묻은 접시 바닥에 붓는다. 그러나 그 결과는 고작 자기의 옷, 특히 양 소매를 적시는 일뿐이다. 물은 아마 금이 간 이 빠진 접시로부터 새버리고… 호수는 물이 말라버린다.

 

요셉이 문지방에 나타나더니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아기가 일하는 것을 보며 미소 짓는다. 그것은 실로 행복하게 미소 짓게 하는 광경이다. 그러다가 요셉은 아기가 옷을 더 적시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를 부른다. 예수는 돌아서서 방긋 웃으며 요셉을 보고 자기의 작은 두 팔을 벌리고 그에게 달려간다. 요셉은 자기의 짧은 작업복 한 귀퉁이로 더러워지고 젖은 작은 손들을 닦아주고 그것들에 입 맞춘다. 그 다음에 다정한 대화가 두 사람 사이에 오간다.

 

예수는 그의 일과 놀이와 그 안에서 자기가 만난 어려움들을 설명한다. 그는 겐네사렛 호수와 같은 호수를 만들려 했다(이 말을 들으니 나는 그들이 예수에게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거나 그것을 보도록 그를 그리로 데려갔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는 자기 자신의 기쁨을 위하여 조그만 호수를 만들기를 원했다. 여기는 티베리아스이고, 저기는 막달라, 그 너머는 카파르나움이다. 이것은 카나를 거쳐 나자렛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는 호수에 몇 척의 작은 배들을 띄우기를 원했다. 이 나뭇잎들은 배들이다. 그는 그 배들을 타고 호수 반대쪽으로 건너가기를 원했다. 그런데 물이 새나가니…

요셉이 지켜보며 마치 그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관심을 보인다. 그 다음에 그는 내일 이가 빠진 낡은 접시가 아니라 피치와 벽토로 잘 방수된 작은 나무대야로 작은 호수를 만들고, 그 안에 요셉이 만드는 방법을 그에게 가르쳐줄 작은 진짜 나무배들을 띄울 수 있게 하자고 제안한다. 그는 때마침 예수가 힘들이지 않고 쓰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작게 만든 연장들을 가지고 오는 길이었다.

“그럼 나는 아버지를 도울 수 있을 거야.”

예수가 방긋 웃으며 말한다.

“그럼 네가 나를 도와줄 것이고, 그러면 너는 훌륭한 목수가 될 것이다. 와서 그것들을 봐라.”

 

그리하여 그들은 작업장으로 들어간다. 요셉은 어린 예수의 키에 맞는 작업대, 아기 목수 작업대에 놓인 작은 망치, 작은 톱, 아주 작은 드라이버들, 인형의 체격에도 맞을 작은 대패를 그에게 보여준다.

 

“봐라, 톱질을 하려면 너는 이 나무를 이렇게 눌러야 한다. 그러고 나서 너는 이렇게 톱을 잡고, 네 손가락들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톱질을 시작해야 한다. 해보아라…”

수업은 이렇게 시작된다. 예수는 노력으로 인하여 얼굴이 상기되고 입을 꽉 다문 채 조심스럽게 나무 조각을 톱으로 썬다. 그 다음에 그는 그것을 대패질한다. 비록 그것이 완벽하게 똑바르지 않다 해도 그는 그것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요셉은 그를 칭찬해주고, 인내와 사랑으로 그에게 일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마리아가 돌아온다. 그녀는 외출했었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그녀는 문에서 안을 들여다본다. 요셉과 예수는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에 그녀를 보지 못한다. 그녀는 예수가 얼마나 열심히 널빤지에 대패질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요셉이 얼마나 다정하게 예수를 가르치고 있는지를 보며 미소 짓는다.

그런데 그녀가 미소 짓고 있는 것을 예수가 느낀 것 같다. 그는 돌아서서 자기의 엄마를 보고는 그녀에게 달려가 아직 대패질이 마무리되지 않은 작은 널빤지를 그녀에게 보여준다. 마리아는 그것에 감탄하며 예수에게 입 맞추려고 몸을 숙인다. 그녀는 헝클어진 예수의 머리카락을 가다듬어주고 그의 얼굴의 땀을 닦아주면서, 자기의 엄마가 일할 때에 더 편하도록 자기가 작은 스툴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는 예수의 말을 애정 어린 주의를 기울여 듣는다. 요셉은 조그만 작업대 옆에 서서 한 손을 허리에 댄 채로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다.

나는 내 예수의 첫 번째 노동수업을 참관했는데, 이 성가정의 모든 평화가 내 안에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나의 소중한 영혼아, 나는 그 가난 중에서도 행복했었던 내 어린 시절의 환상으로 너를 위로해주었다. 왜냐하면 나는 세상이 지금까지 가졌던 성인들 중 가장 위대한 두 성인의 애정에 감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요셉이 내 양부였다고 말한다. 오! 그는 남자였으므로 자기 젖으로 내 어머니 마리아처럼 나에게 젖을 줄 수는 없었지만 나에게 빵과 안락함을 마련해주기 위하여 참으로 열심히 일했고, 친어머니와 같은 다정한 상냥함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서 어린이로부터 어른이 되는 것을, 그것도 자기 자신의 빵을 벌어야 하는 어른이 되는 것을 배웠다. 그보다 친절한 선생을 모셨던 제자는 일찍이 없었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내 지성은 완전했지만, 너희는 내가 내 자신의 연령 그룹의 특성들과 성취들을 과시하듯 벗어나기를 원치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고,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하느님으로서의 지적 완전성을 인간적인 지적 완전성의 수준으로 낮춤으로써 사람을 내 스승으로 가지고, 스승의 필요를 느끼도록 나 자신을 굴복시켰다. 내가 빨리 그리고 기꺼이 배웠다 해도 그것은 나 자신을 사람에게 굴복시켰다는 공로를 나에게서 박탈하지 않고, 그 의인에게서도 내 어린 정신을 생활에 필요한 방안들로 양육한 공로를 박탈하지 않는다.

내가 천국에 있는 지금도 나는 마치 나와 함께 노는 것처럼 일을 잘할 수 있는 경지까지 나를 이끌어주었던 요셉 곁에서 내가 보냈던 행복한 시간들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추정상의 내 아버지를 뵐 때면, 나는 다시 한 번 그 작은 텃밭과 연기에 그을린 작업장을 보게 되고, 여전히 내 엄마가 그곳을 낙원으로 바꾸고 우리를 몹시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그분의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들여다보시는 것처럼 느낀다.

 

가족들은 누구도 그렇게 사랑하지 못했을 만큼 서로를 사랑했던 부부의 이 완전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워야겠느냐!

 

요셉은 가장이었다. 그래서 가정에서 그의 가장으로서의 권위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 권위 앞에서는 하느님의 정배이시며 어머니이신 분의 권위도 공손히 머리를 숙였고, 하느님의 아들도 기꺼이 복종했다. 요셉이 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잘하는 일이었다. 거기에는 토론들도, 딱딱함도, 반대들도 없었다. 그의 말은 우리의 작은 법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얼마나 겸손했느냐! 그에게는 어떠한 권력의 남용도, 자기가 가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어떤 것도 결정하는 법도 결코 없었다. 그의 아내는 그의 상냥한 조언자였다. 그녀는 깊은 겸손으로 자신을 자기 남편의 종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그는 은총이 가득한 그 여자의 지혜로부터 모든 사건들에 있어 그를 인도하는 빛을 이끌어냈다.

그리하여 나는 나를 보호하고 나를 사랑하기 위하여 내 위에서 서로 얽히는 그 두 사랑들 사이에서 기운찬 나무들에 의하여 보호받는 한 송이 꽃처럼 자라났다.

 

내 나이로 인하여 내가 세상을 모르는 동안에 나는 낙원에서 떠나 있는 것을 유감스러워하지 않았다. 성부와 성령께서는 그곳을 떠나시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리아께서는 그분들로 충만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천사들도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그들을 그 집에서 쫓아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 중 하나가 육체가 되었는데, 그것이 요셉이었다고 나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육체의 짐에서 해방되어 오로지 하느님과 그분의 이유를 돌보는 일과 치품천사가 그분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분을 사랑하는 일에만 전념하는 천사 같은 영혼이었을 것이다. 요셉의 시선! 그것은 세속의 정욕을 모르는 별의 빛처럼 차분하고 깨끗했다. 그것은 우리의 평화이고, 우리의 힘이었다.

 

많은 이들은 내가 우리 집의 보호자의 거룩한 시선이 사라졌을 때 고통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하느님이었고, 그래서 나는 하느님으로서 요셉의 복된 운명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나는 고성소(Limbo)에서의 짧은 시간 후에 그에게 하늘나라의 문을 열어줄 작정이었으므로 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지만, 사람으로서 지금은 텅 비고 그의 존재가 사라진 집에서 비통하게 울었다. 나는 고인이 된 내 친구를 애도하며 울었다. 내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 그의 품안에서 잠들었고, 그토록 여러 해 동안 나를 사랑해주었던 내 거룩한 친구를 내가 애도하지 않았겠느냐?

 

끝으로 나는 요셉이 어떻게 배운 지식의 어떤 도움도 없이 나를 유능한 장인으로 만들 수 있었는지에 관하여 부모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내가 연장을 다루기에 충분한 나이가 되자마자 그는 내가 한가하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나에게 일을 시작하게 했고, 마리아에 대한 내 사랑을 내가 일하도록 격려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나는 내 엄마를 위하여 유용한 물건들을 만들어야 했다. 그것이 그가 모든 아들이 자기의 어머니에게 가져야 할 존경심을 고취했던 방식이다. 미래의 목수를 양성하는 그의 가르침은 존경과 사랑의 동기에 기초한 것이었다.

부모들을 기쁘게 하는 것을 수단으로 하여 어린 자녀들에게 노동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가족들이 지금 어디 있느냐? 오늘날 자녀들은 가정의 폭군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모들에게 냉혹하고, 무관심하고, 무례하게 자란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모들을 자신들의 종들이나 노예들로 여긴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모들을 사랑하지 않고, 그들로부터도 별로 사랑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너희가 너희 자녀들을 무례하고 거만한 자들로 만드는 동안에 너희는 수치스러운 무관심으로 그들로부터 분리되기 때문이다.

 

오, 20세기의 부모들아, 그들은 너희의 자녀들만 아닐 뿐 모든 사람의 자녀들이다. 만일 너희가 부자들이라면, 그들은 유모나 가정교사나 학교의 자녀들이다. 만일 너희가 가난하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친구들에게 속해 있고, 거리들과 학교들의 자녀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너희의 자녀들이 아니다.

어머니들아, 너희는 그들을 낳지만, 그것이 전부이다. 아버지들아, 너희도 똑같다. 아들은 육체만이 아니다. 그는 정신, 마음, 영혼을 가지고 있다. 내 말을 믿어라. 그 정신, 그 마음, 그 영혼을 형성할 자격과 의무를 부모보다 더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족은 필요하다. 그것은 존재하고 있고, 존재해야 한다. 파멸을 초래하지 않고 이 진리를 파괴할 수 있는 이론이나 진보는 없다. 산산조각 난 가정에서는 미래에 더 도착(倒錯)될 것이고, 그래서 점점 더 큰 파멸을 야기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을 산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지극히 엄숙하게 너희에게 말하는데, 원숭이들의 부족들보다 더 화합하지 못하는 가정들과, 가정이 성덕, 노동, 사랑, 종교의 학교들이 되지 못하고, 모든 사람이 맞물리지 않아서 결국 부서지고야 마는 톱니바퀴들처럼 자기 나름대로 사는 바벨보다는 차라리 더 이상 땅 위에 결혼들이 없어지고 자녀들이 없어지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파괴된 가정들. 너희는 사회적 삶의 가장 거룩한 방식을 파괴하고, 그 결과들을 보고 그로부터 고통당한다. 만일 너희가 원한다면, 계속 그렇게 해라. 하지만 이 세상이 점점 더 깊은 지옥이 되고 가족들과 민족들을 잡아먹는 괴물들의 소굴이 된다 해도 불평하지 마라. 너희가 그것을 원하니 그렇게 될 것이다.”

 


38. 예수와 유다와 야고보의 선생 마리아

1944. 10. 29.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작은 요한아, 와서 보아라. 너를 인도할 내 손을 잡고 내 유년시절의 해들로 돌아가거라. 네가 보게 될 것은 모두 내 소년시절의 복음에 포함되어야 한다. 나는 성가정의 이집트에서의 체류에 대한 환상도 거기 삽입되기를 원한다.

너는 그것들을 이런 순서로 배열해라. 이집트에서의 성가정, 그 다음에는 아기 예수의 최초의 노동수업, 그 다음에는 네가 지금 묘사하려는 광경, 그 다음에는 내 성인례 광경(오늘, 11월 25일에 약속된 것), 끝으로 예수의 열두 번째 파스카 때 성전에서 학자들 사이에 있는 그에 대한 환상이다.

 

네가 지금 보게 될 환상은 이유가 없지 않다. 반대로 그것은 내 어린 시절의 세부사항들과 친척들과의 관계를 비추어준다. 이것은 내 왕권의 축일(the feast of My Regality)에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너는 네가 나자렛의 집을 볼 때마다 그 집의 평화가 네 안으로 주입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써라.”

 

나는 보통 그들이 식사하고 마리아가 물레질하거나 바느질하는 방을 본다. 이 방은 요셉의 작업실 가까이에 있는데, 나는 그가 일하는 소리를 듣는다. 반대로 이곳은 조용하다. 마리아는 틀림없이 그녀 자신이 짠 몇 점의 모직 천들을 꿰매고 있다. 그것들은 너비가 1미터 50센티미터쯤 되고, 길이는 그 곱절쯤 된다. 나는 그것들이 요셉의 겉옷에 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텃밭 쪽으로 열린 문으로는 헝클어진 작은 데이지들의 산울타리가 보인다. 그것들의 색깔은 자주 하늘색인데, 그것들은 보통 ‘마리아들’ 또는 ‘별이 빛나는 하늘’이라고 불린다. 나는 그것들의 정확한 식물명을 모르겠다. 그것들은 만개해 있는데, 그렇다면 지금은 틀림없이 가을이다.

그러나 초록빛은 아직 식물들에 무성하고 아름다우며, 양지바른 담에 기대어놓은 두 개의 벌통들로부터 벌들이 밝은 햇빛 아래에서 무화과나무에서 포도나무들로, 거기서부터 그 둥근 열매들로 가득한 석류나무로 윙윙거리고 춤추며 날아다닌다. 석류들 중 몇 개는 너무 익어 이미 벌어져, 노란 칸들로 분리된 적록색 보석함 안에서 줄지어져 있는 과즙이 풍부한 루비들의 줄들을 보여준다.

 

예수는 나무들 아래에서 자기와 거의 동갑내기인 두 어린이와 함께 놀고 있다. 그들의 머리카락도 곱슬머리지만, 금발은 아니다. 그 중 하나는 아주 검은색이다. 그것은 검은 어린양의 작은 머리 같아서, 청보라 빛의 매우 아름다운 큰 두 눈을 가진 둥근 얼굴의 흰 살갗이 더 희게 보인다. 다른 아이는 머리카락이 덜 곱슬곱슬하고 암갈색이며, 그의 눈들은 갈색이다. 그의 얼굴색은 더 짙고, 두 뺨은 분홍빛을 띠고 있다. 예수의 작은 금발머리는 빛의 불꽃처럼 보인다.

그들은 아주 사이좋게 몇 개의 작은 짐수레들을 가지고 놀고 있는데, 거기에는… 나뭇잎들, 조약돌들, 대팻밥들, 작은 나무 조각들 따위의 다양한 물건들이 실려 있다. 그들은 장사꾼 놀이를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예수는 자기의 엄마를 위하여 물건들을 사는 손님이다. 예수는 어떤 때는 이 물건, 어떤 때는 저 물건을 그녀에게 가져온다. 마리아는 미소 지으며 모든 구입품들을 받는다.

 

그때 놀이가 바뀐다. 두 아이 중의 하나가 제안한다.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놀이를 하자. 예수는 모세가 되고, 나는 아론, 그리고 너는… 마리아가 되어라.”

“그렇지만 난 사내아인데!”

“그건 상관없어. 어쨌든 똑같으니까. 너는 미르얌이고, 그래서 너는 금송아지 앞에서 춤추는 거야. 금송아지는 저기 저 벌통이야.”

“나는 춤추지 않을 거야. 나는 남자야. 그래서 나는 여자가 되기 싫어. 난 충실한 신자야. 그래서 나는 우상 앞에서 춤추지 않을 테야.”

예수가 그들 사이에 개입한다.

“이 대목의 놀이를 하지 말고 다른 놀이를 하자.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로 뽑혔을 때 말이야. 그러면 끔찍한 죄인 우상숭배 문제도 없어지고, 유다는 남자로서 내 후계자가 되는 것이 기쁠 거야. 너는 기분이 좋니?”

“그래, 예수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너는 죽어야 해. 왜냐하면 모세는 그 다음에 죽었으니까. 나는 네가 죽는 게 싫어. 너는 항상 나를 아주 좋아했으니까.”

“모든 사람은 죽어… 그렇지만 나는 죽기 전에 이스라엘을 축복할 거야. 여기에는 너희밖에 없지만 나는 너희를 축복하면서 이스라엘 전체를 축복할 거야.”

그들은 합의한다. 그러다가 논란이 생긴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오랫동안 여행한 다음에도 그들이 이집트를 떠날 때 가지고 있었던 짐수레들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의견의 차이가 있다.

그들은 마리아에게 문의한다.

 

“엄마, 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전히 짐수레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는데, 야고보는 그렇지 않다고 해. 유다는 누가 옳은지 몰라. 엄마는 알아?”

“그렇다, 내 아들아. 유목민들은 여전히 그들의 짐수레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휴식하기 위하여 멈췄을 때 그들은 그것들을 고쳤단다. 몸이 허약한 사람들은 그것들을 타고 여행했고, 식료품들도 그것들에 실려 운반되었단다. 그리고 그토록 많은 백성들에게 필요한 많은 것들도 그것들에 실려 옮겨졌단다. 남자들이 손으로 운반한 계약의 궤를 빼놓고 다른 모든 것들은 짐수레들에 실려 옮겨졌다.”

지금 문제가 해결된다. 아이들은 과수원의 바닥을 향하여 내려갔다가 거기서부터 시편들을 노래하며 집을 향하여 온다. 예수가 앞장서서 오며 부드러운 은처럼 맑은 목소리로 몇 편의 시편들을 노래하고 있다. 유다와 야고보가 성막을 반열에 오른 작은 짐수레를 들고 예수를 뒤따라온다. 그런데 그들은 여호수아와 아론의 역할 외에 백성의 역할도 해야 하므로, 자신들의 허리띠들로 다른 모형 짐수레들을 자신들의 발에 매고 마치 진짜 배우들처럼 아주 진지하게 행진한다.

그들이 퍼골라 전체를 다 지난 다음에 마리아가 있는 방 문 앞을 지나가는데, 예수가 말한다.

“엄마. 지나가는 성막에게 인사드려.”

마리아는 미소 지으며 일어나 밝은 햇빛 아래에서 빛나는 얼굴로 자기의 아들에게 절한다.

 

그러고 나서 예수는 집의 경계, 아니 정원의 경계가 되는 산자락을 기어 올라간다. 그는 작은 동굴 위에 똑바로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한다… 그는 하느님의 명령들과 약속들을 되풀이해 말하고,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지명하고, 그를 자기에게로 부른다. 그러자 유다가 절벽을 올라간다. 예수는 유다를 격려하고, 그를 축복한다.

그 다음에 예수는 석판(그것은 넓은 무화과나무 잎이다)을 가져오도록 하여… 성가를 쓰고, 그것을 읽는다. 그것은 성가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의 많은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나뭇잎에 쓰인 것을 읽고 있는 것 같다. 그 다음에 그가 여호수아에게 작별인사를 하자 여호수아는 울면서 그를 포옹한다.

그러자 예수는 더 높이 깎아지른 곳 가장자리로 올라간다. 그는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즉 땅에 엎디어 있는 두 아이에게 축복하고 나서 짧은 풀 위에 누워 두 눈을 감고… 죽는다.

마리아는 미소 지으며 문지방에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예수가 움직이지 않고 땅에 누워 있는 것을 보자 외친다.

“예수야, 예수야! 일어나라! 그렇게 누워 있지 마라! 네 엄마는 네가 죽어 있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예수는 미소 지으며 일어나 그녀에게 달려가 입 맞춘다. 야고보와 유다도 와서 마리아의 애무를 받는다.

어떻게 예수는 그렇게 길고 어려운 성가와 그 축복들을 욀 수 있어?”

야고보가 묻는다.

마리아가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예수는 훌륭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데다 내가 읽을 때 매우 집중해서 듣는단다.”

“나도 학교에서 주의를 집중해. 하지만 그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나는 금방 졸려. 그럼 난 전혀 배우지 못하게 될까?”

“너도 배우게 될 것이다. 염려하지 마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요셉이 빨리 정원과 방을 가로질러 가서 대문을 연다.

“알패오와 마리아, 형님네에게 평화가 있기를!”

“너희에게도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그것은 요셉의 형과 그의 아내이다. 튼튼한 나귀가 끄는 투박한 짐마차 하나가 바깥 길 가운데 멈춰 있다.

“형은 잘 다녀오셨어요?”

요셉이 묻는다.

“나는 아주 잘 다녀왔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 애들은 마리아와 함께 정원에 있어요.”

그러나 아이들은 자기들의 엄마에게 인사하려고 벌써 달려온다. 마리아도 예수의 손을 잡고 온다. 두 동서가 서로에게 입 맞춘다.

“얘들은 착하게 있었어요?”

“그들은 아주 착하고 아주 예쁘게 행동했어요. 친척들은 모두 안녕하세요?”

“예, 그들은 다 잘 있어요. 그들은 당신들에게 안부 전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들은 카나에서 많은 선물들을 당신에게 보냈어요. 포도, 사과, 치즈, 달걀, 꿀, 그리고… 요셉? 나는 당신이 예수에게 주려고 구해오라고 한 바로 그것을 발견했어요. 그것은 짐마차 위에 있는 저 큰 둥근 바구니에 들어 있어요.”

 

알패오의 아내는 미소 짓는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예수에게 몸을 숙인다. 그녀는 그의 군청색 두 눈에 입 맞추며 말한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가져왔는지 너는 아니? 알아맞혀 봐라.”

예수는 곰곰이 생각하지만, 알아맞히지는 못한다. 나는 그가 요셉이 자기에게 깜짝 놀랄 선물을 하는 기쁨을 주기 위하여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과연 요셉은 큰 둥근 바구니를 들고 돌아온다. 그는 그것을 예수 앞에 땅바닥에 내려놓고, 뚜껑을 묶고 있는 로프를 끊고 뚜껑을 연다… 그러자 매우 깨끗한 건초 위에서 자고 있는 새하얀 작은 양이 진짜 거품 덩어리처럼 나타난다.

예수는 놀라고 몹시 기뻐서 외마디 소리를 낸다.

“오!”

그는 작은 짐승에게로 달려가려고 하다가 돌아서서 방금 전과 같이 여전히 몸을 숙이고 있는 요셉에게로 달려간다. 그는 요셉을 껴안고 고맙다고 말하며 그에게 입 맞춘다.

두 명의 어린 사촌들은 작은 동물을 감탄하며 들여다본다. 양은 지금은 잠에서 깨어나 발그레한 작은 머리를 쳐들고 자기의 어미를 찾으며 울고 있다. 그들이 그놈을 바구니에서 꺼내준 다음 토끼풀 한 줌을 준다. 그놈은 온순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먹는다.

 

예수가 계속 말한다.

“나를 위해! 나를 위해! 아버지, 고마워요!”

“너는 이놈이 그렇게나 마음에 드니?”

“오! 아주 많이요! 하얗고 깨끗한… 새끼 양… 오!”

그는 자기의 작은 팔들을 그 양의 목에 감고 자기의 금발머리를 그놈의 작은 머리에 대며 기쁘게 그 자세로 남아 있다.

“나는 너희에게도 두 마리를 가져왔다.”

알패오가 자기의 아들들에게 말한다.

“하지만 그놈들은 검정색이다. 너희는 예수처럼 차분하지 못해서 너희의 양들이 흰빛이라면 그놈들은 늘 지저분할 거다. 이놈들이 너희의 양 떼가 될 것이다. 너희는 함께 이놈들을 돌보아라. 그러면 너희 두 개구쟁이들은 더 이상 길거리들에서 어슬렁거리며 서로에게 돌들을 던지지 않게 될 거다.”

아이들은 짐마차로 달려가 흰색보다는 검정색에 더 가까운 두 마리의 양들을 본다.

 

예수는 자기의 양 뒤에서 그대로 있다가 그놈을 데리고 정원으로 들어가 그놈에게 물을 먹인다. 그러자 그 작은 애완동물은 마치가 그놈이 예수를 오래 전부터 알아왔던 것처럼 그를 졸졸 따라다닌다. 예수는 손짓으로 그놈을 부른다. 그는 그놈을 ‘눈(snow)’이라고 부르는데, 어린양은 기쁜 울음으로 대답한다.

 

손님들이 식탁에 앉아 있고, 마리아는 그들에게 빵, 올리브, 치즈를 대접한다. 그녀는 꿀로 가미된 사과주인지, 물인지가 든 항아리도 가져온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나는 그것이 아주 옅은 색인 것을 본다.

어른들이 대화하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세 마리의 양들을 데리고 노는데, 예수는 자기가 다른 양들에게도 물을 주고 이름을 지어주려고 함께 모은다.

“유다야, 네 양은 이마에 그 표시가 있으니 ‘별’이라고 부르자. 그리고 네 양은 마른 헤더(heather)를 태울 때의 불꽃의 빛깔을 띠고 있으니 ‘불꽃’이라고 부르자.”

“좋아.”

어른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알패오가 말한다.

“나는 내가 아이들이 다투는 문제를 해결했기를 바란다. 요셉, 네 부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나는 혼자 생각했다. ‘내 동생은 예수가 데리고 놀 수 있는 어린양 한 마리를 원한다. 나도 이 말 안 듣는 녀석들을 위해서 양 두 마리를 사서 그 애들을 약간 조용하게 하고, 머리가 멍들거나 무릎이 벗겨진 데 대하여 다른 아이들의 부모들과의 끊임없는 말다툼들을 피하겠다. 학교에도 보내고 양들도 돌보게 하다보면, 나는 그 애들을 조용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너도 예수를 학교에 보내야 한다. 지금이 그때다.”

 

“저는 결코 예수를 학교에 보내지 않겠어요.”

마리아가 단호하게 말한다.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고 무엇보다 요셉을 앞질러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더욱 그렇다.

“왜요? 어린이가 성년이 되어 시험에 합격하려면, 그는 미리 배워야 하는데요.”

“아이는 준비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애는 학교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분명합니다.”

“당신은 이스라엘에서 그렇게 하는 유일한 여자일 거요.”

“예, 저는 유일한 여자일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가 하려는 거예요. 그렇지요, 요셉?”

“예, 맞아요. 예수는 학교에 갈 필요가 없어요. 마리아는 성전에서 자랐고, 그래서 이 사람은 여느 박사에 못지않게 율법을 잘 알아요. 이 사람이 예수의 선생이 될 거예요. 이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기도 해요.”

 

“너희는 저 애의 버릇을 망치고 있다.”

“형은 그렇게 말할 수 없어요. 저 애는 나자렛에서 가장 착한 아이예요. 형은 저 애가 울거나 말을 안 듣거나, 불순종하거나, 불손한 것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어요?”

“못 봤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계속 저 애의 버릇을 망친다면, 저 애는 그 모든 짓을 할 것이다.”

“자기 아이들을 집에서 교육한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그 아이들을 망치는 것은 아니에요. 그들을 집에서 데리고 있다는 것은 양식을 가지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내포해요. 이것이 우리가 예수를 사랑하는 방식이에요. 더구나 마리아는 학교선생보다 교육을 더 잘 받았으니, 그녀가 예수의 선생이 될 겁니다.”

“그런데 네 예수가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애는 파리들에게도 놀라는 어리석은 계집애 같은 녀석이 될 것이다.”

“그 애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예요. 마리아는 강한 여자이고,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강인한 교육을 할 거예요. 나도 겁쟁이가 아니고, 그래서 나도 그 애에게 남자다운 모범을 보일 줄 알아요. 예수는 육체적, 정신적인 결점들이 없는 아이이니 육체적, 영적으로 올바르고 강하게 자랄 것입니다.

알패오 형, 형은 그것을 확신할 수 있어요. 그 애는 가문을 욕되게 하지 않을 겁니다. 어쨌든 이것은 제가 결정한 일이니, 저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마 마리아가 결정했고, 너는…”

“그런데 만일 그렇다면요?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 상대의 소원들을 마치 그것들이 자기 자신의 것인 양 받아들여 같은 생각들과 같은 소원들을 가진다면, 그건 좋은 일이 아니겠어요? 만일 마리아가 어리석은 것들을 원한다면, 나는 그녀에게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지혜로 충만한 무언가를 청하고 있고, 그래서 나도 동의한다면, 나는 그것을 내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첫날 우리가 서로 사랑했었던 것처럼 우리는 서로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계속 그렇게 할 겁니다. 내 말이 맞지요, 마리아?”

“그래요, 요셉, 그리고 그런 일이 결코 없기를 바라지만, 한 사람이 먼저 죽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사랑할 거예요.”

요셉이 마치 마리아가 자기의 어린 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녀는 차분하고 애정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녀의 동서가 개입한다.

“당신들의 말이 정말로 옳아요. 나도 가르칠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선과 악을 배우고 있어요. 그러나 그들은 가정에서는 선인 것만을 배웁니다. 그렇지만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만일 마리아가…”

“내 소중한 형님, 무엇을 말하고 싶으세요? 자유롭게 말씀하세요. 당신은 제가 당신을 사랑하고 제가 당신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때 제가 기뻐한다는 것을 아시잖아요.”

“나는 생각하고 있었어요… 야고보와 유다는 예수보다 약간 더 나이 들었잖아요. 그 애들은 이미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그 애들이 배운 것이라고는!… 반면에 예수는 이미 율법을 아주 잘 알아요… 나는 바라건대… 에, 그래서 말인데 만일 내가 당신이 예수를 가르칠 때 그 애들도 받아달라고 당신에게 부탁한다면? 그러면 그 애들이 더 착하게 행동하고 더 잘 교육될 거라고 나는 생각해요. 결국 그 애들은 사촌간이고, 그들이 서로 친형제들처럼 사랑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오! 나는 정말로 기쁘겠어요!”

“만일 요셉이 원하고, 아주버니도 동의하신다면, 저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어요. 한 아이에게 말하든, 세 아이에게 말하든 그것은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성경 전체를 살펴보는 것은 기쁨입니다. 그 애들을 보내세요.”

세 아이들이 아주 조용히 왔다가 이 말을 듣고는 최종결정이 내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마리아, 그 애들이 당신을 실망시킬 겁니다.”

알패오가 말한다.

“아니에요! 그 애들은 저에게는 항상 착해요. 만일 내가 너희를 가르친다면, 너희는 착하게 행동할 거지?”

두 소년은 마리아에게로 달려가, 한 아이는 그녀의 오른쪽에, 다른 아이는 그녀의 왼쪽에 서서 그녀의 양어깨에 그들의 양팔을 감고 자신들의 작은 머리들을 그녀의 양어깨에 기댄 채 세상에서의 모든 선을 약속한다.

“알패오 아주버님, 그 애들이 해보도록 맡겨보세요. 저도 해보게 해주시고요. 저는 두 분이 성인례 시험 결과에 실망하시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요. 애들을 매일 제6시부터 저녁까지 저희 집에 보내세요. 그거면 충분할 거예요. 제 말을 믿으세요. 저는 애들을 지치지 않게 하면서 가르치는 방법을 알아요. 그 애들의 주의를 끌면서 동시에 긴장을 풀게 해주어야 해요. 만일 당신들이 좋은 결과들을 얻기를 원한다면, 당신들은 그 애들을 이해하고, 그 애들을 사랑하고, 그 애들에게서 사랑받아야 해요. 그리고 너희는 나를 사랑할 거지, 그렇지?”

두 개의 큰 입맞춤들이 그 대답이다.

“보이시죠?”

“알겠소. 나는 고맙다는 말밖에 못하겠군요. 그런데 예수는 자기 엄마가 다른 아이들에게 바쁜 것을 볼 때 뭐라고 말할까요? 예수야, 네 생각은 어떠니?”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그녀의 집 곁에 거처를 정하는 사람들은 복되다’고 말하겠어요. 지혜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 어머니의 친구들이 되는 사람들은 복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어머니의 친구가 되는 것이 나도 기뻐요.”

“그런데 누가 어린이의 입술에 저런 말을 담아두었지?”

알패오가 깜짝 놀라서 묻는다.

아무도 없어요, 형. 이 세상의 누구도.”

환상은 여기서 끝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이렇게 해서 마리아는 내 선생님이었을 뿐 아니라 야고보와 유다의 선생님이기도 하였다. 우리의 친척관계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지식으로 인하여, 그리고 우리가 함께 자랐다는 사실로 인하여 우리는 친형제들처럼 서로를 사랑했다. 같은 버팀목으로 지지되는 세 개의 순들처럼 말이다.

 

그 버팀목은 내 어머니였다. 이스라엘에 다정한 내 엄마와 같은 박사는 없었다. 지혜, 참된 지혜의 좌(Seat of Wisdom)이신 그분께서는 세상과 천국을 위하여 우리를 가르치셨다. 나는 ‘그분이 우리를 가르쳤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나도 내 사촌들과 똑같이 그분의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탄의 조사들에 대하여 하느님의 비밀 위에 찍힌 봉인이 그대로 유지되었고, 그것은 보통사람들의 생활의 외관 속에서 보호되었다. 너는 이 기분 좋은 광경을 즐기느냐? 이제는 평화 안에 있어라. 예수는 너와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