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수난

588. 예루살렘 입성

Skyblue fiat 2024. 3. 23. 13:32

588. 예루살렘 입성

1947. 3. 30.(종려주일)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너는 1945. 3. 3.자의 환시 ‘베타니아에서 예루살렘으로’를 여기 삽입해라. 그리고 지금 보아라!”

 

예수께서는 알패오의 요한과 야고보가 그분의 어머니께 와서 “당신의 아드님이 오십니다” 하고 말씀드리자 일어나신 그분의 어머니의 양어깨를 한 팔로 안으신다. 그 다음에 요한과 야보고는 서로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오고 있는 그들의 동료들과 합류한다. 그 동안에 토마스와 안드레아는 나귀와 나귀새끼를 찾아 예수께 데려오려고 벳파게 쪽으로 달려갔다.

예수께서는 여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시내 가까이에 와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들어가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나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라고 권합니다. 나보다 먼저 시내로 들어가세요. 모든 목자들과 가장 충실한 제자들이 엔 로겔 근처에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을 호위하고 보호하라고 명령받고 있습니다.”

“사실은… 저희가 나자렛의 아세르와 갈릴래아의 베들레헴의 아벨, 그리고 솔로몬에게도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당신께서 도착하시는 것을 살펴보기 위하여 여기까지 왔었습니다. 군중은 큰 축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보기를 원했습니다…

올리브나무들의 꼭대기들이 얼마나 흔들리는지 보이시지요? 그것들을 흔들고 있는 것은 바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길에 깔고 햇빛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해드리려고 가지들을 자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저기는요? 저기를 보세요. 저 사람들은 종려나무들에서 부채꼴의 잎사귀들을 따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슨 송이들처럼 보이는데, 그것들은 나무줄기들을 타고 올라가 잎들을 점점 더 많이 따 모으는 사람들입니다.

언덕 위에는 꽃을 따느라고 몸을 숙이고 있는 아이들이 보이시지요? 그리고 여자들은 틀림없이 당신께서 가실 길에 꽃들을 뿌리려고 꽃잎들과 향기 나는 풀들을 얻기 위하여 정원들을 훑고 있을 것입니다. 저희도 그것을 보고 싶었고… 당신께서 라자로의 정원에 들어가셨을 때 당신의 두 발에 밟힌 모든 꽃을 주운 라자로의 마리아의 행동을 본받고 싶었습니다.”

그들 모두를 대신하여 클레오파의 마리아가 말씀드린다.

예수께서는 구경거리를 보고 싶어 안달하는 어린 소녀와도 같은 그분의 늙은 친척 아주머니의 뺨을 쓰다듬어주시며 말씀하신다.

“사람들이 많아서 당신은 아무것도 보실 수 없을 것입니다. 라자로의 집, 마티아가 지키고 있는 집으로 계속 가세요. 제가 그곳을 지나갈 테니 높은 곳에서 저를 내려다보세요.”

“아들아… 너는 혼자 가려고 하느냐? 나는 네 곁에 있을 수 없느냐?”

마리아께서 몹시 슬픈 그분의 얼굴을 들어 그분의 온유한 아들의 하늘빛 두 눈을 들여다보시며 말씀하신다.

“저는 숨어 계시라고 당신께 간청하고 싶습니다. 바위틈에 있는 비둘기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저는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는 것보다 당신의 기도가 더 필요합니다!”

“아들아, 그럼 우리 모두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겠다.”

“그렇게 하세요. 당신께서는 그분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신 다음 저와 함께 시온에 있는 제 집으로 가십시다. 그리고 저는 하인들을 성전으로 보내 그들이 줄곧 그분의 뒤를 따라가 그분의 명령과 소식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항상 빨리 파악하고 지체 없이 그것을 행하는 라자로의 마리아가 결연하게 말한다.

“네 말이 옳다, 마리아야. 나는 그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슬프지만, 이것이 적절한 명령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어쨌든 라자로는 어떤 일에도 그분께 반대하지 말고, 가장 작은 일들에도 그분께 순종하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하자.”

“그럼 가시오. 보이시지요? 길에 사람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사도들은 곧 나에게로 올 것입니다. 가세요.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나는 내가 적당한 순간이라고 생각할 때 여러분을 오시게 하겠습니다. 어머니, 안녕히 계십시오. 평화가 당신과 함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어머니께 입 맞추신 다음에 그분을 떠나보내신다. 그리고 순종하는 여자제자들도 재빨리 떠난다.

열 명의 사도들이 예수와 합류한다.

“당신께서는 여자들을 앞으로 보내셨습니까?”

“그렇다. 그들은 어떤 집에서 내가 입성하는 것을 볼 것이다.”

“어떤 집에서요?”

가리옷 사람 유다가 묻는다.

“어! 지금은 우호적인 집들이 몹시 많아!”

필립보가 말한다.

“그것은 안나리아의 집이 아닙니까?”

가리옷 사람이 계속하여 캐묻는다.

예수께서는 아니라고 대답하시고,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벳파게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신다.

그분께서 벳파게 가까이로 가셨을 때 나귀와 나귀새끼를 끌고 오라고 파견되었던 두 사도들이 돌아온다. 그들이 외친다.

“저희는 당신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신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짐승들을 끌고 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짐승들의 주인이 당신을 영예롭게 하기 위하여 그놈들에게 빗질하고, 가장 좋은 마구들을 달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당신을 영예롭게 해드리기 위하여 베타니아의 거리들에서 밤을 지새운 사람들과 함께 그놈들을 당신께로 데려오는 영광을 가지기를 원하기에 저희는 동의했습니다. 저희는 그들의 사랑이 상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잘했다. 그동안에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자.”

“거기에 많은 제자들이 있나?”

바르톨로메오가 묻는다.

“오! 아주 많아. 벳파게의 거리들을 통하여 지나올 수는 없어. 그래서 나는 치즈장수 클리엔트의 집으로 나귀를 끌고 오라고 이사악에게 말했네.”

“너희는 일을 잘 처리했다. 저 야산이 솟아오른 곳까지 가서 저 나무들의 그늘에서 기다리자.”

그들은 예수께서 가리키신 곳으로 간다.

“그렇지만 우리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벳파게를 뒤로 돌아 그곳을 지나치시는데요!”

가리옷 사람이 외친다.

“만일 내가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면, 누가 나를 말릴 수 있겠느냐? 혹시 내가 이미 죄수여서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단 말이냐? 아니면 내가 죄수가 되는 것이 시급하고, 내가 잡히는 것을 피하는 것을 누군가가 염려하기라도 한단 말이냐? 그리고 만일 내가 더 안전한 길을 따라가는 것이 정당하다고 결정한다면,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기라도 하다는 말이냐?”

예수께서 배반자를 쏘아보시자, 그는 감히 더 이상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마치 ‘당신께서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하고 말하려는 듯 자기의 양어깨를 으쓱한다.

과연 그들은 예루살렘의 교외라고 말할 수 있는 작은 마을의 뒤로 돌아간다. 왜냐하면 그 서쪽은 정말로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예루살렘의 동쪽을 둘러싸고 있는 올리브 산의 사면들의 일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 아래쪽 언덕들과 시내 사이에는 키드론 개울이 사월의 태양빛에 반짝이고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너는 1944. 7. 31.의 환상, 즉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보고 여기 우시다’를 내가 환상의 도입부로 너에게 말해준 3절부터 삽입해라.”

그분께서는 그 다음 다시 그분의 개선 입성의 국면들을 나에게 보여주기 시작하신다.

 

1944. 7. 30.

나는 어떻게 해야 글을 써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심장의 통증으로 앉아 있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나는 내가 보는 것을 써야 한다.

나에게는 성령강림 후 아홉 번째 일요일인 오늘의 복음 말씀의 광경이 나에게 펼쳐진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근처의 작은 언덕에서 그분의 발아래에 펼쳐진 시가지를 바라보신다.

그것은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이다. 그것은 기껏해야 피렌체의 산 위의 성 미니아또 대광장의 높이와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눈이 예루살렘이 세워져 있는 작은 땅의 기복들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집들과 거리들을 내려다보는 데에는 충분하다. 도시의 가장 낮은 고도에서 따진다면, 이 언덕은 분명히 칼바리아보다 훨씬 더 높다. 그러나 그것은 칼바리아보다 성곽에 더 가깝다.

이 언덕은 정확히 성곽의 바깥에서 시작하여 그 방향으로 가파르게 올라가는 반면, 반대쪽으로는 동쪽으로 동쪽을 향하여 펼쳐져 있는 짙은 초록빛 들을 향하여 완만하게 내려간다. 적어도 나는 그것이 동쪽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내가 태양빛에 따라 옳게 판단하고 있다면 말이다.

예수와 그분의 사도들은 일군의 나무들의 그늘에 앉아 있다. 그들은 오래 걷고 나서 쉬고 있다. 그 다음에 예수께서는 일어나 그들이 앉아 있었던 공터를 떠나 작은 언덕으로 가서 정확히 그 가장자리에서 멈추신다.

그분의 큰 키는 그분 주위의 공터에서 두드러진다. 그분께서 혼자 똑바로 서 계시자 그분께서는 훨씬 더 커 보이신다. 그분께서는 양팔을 굽혀 그분의 푸른 겉옷 위 가슴에서 교차시키시고 아주 진지하게 주위를 둘러보신다.

사도들은 그분을 지켜본다. 그러나 그들은 움직이거나 말하지 않고, 그분을 혼자 계시도록 내버려둔다. 그들은 예수께서 기도하시려고 옆으로 비켜 가셨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기도하고 계시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시내의 모든 구역, 모든 작은 언덕, 모든 세부사항을, 때로는 이러저러한 지점을 오랜 동안 눈여겨보시고, 때로는 덜 집요하게 보고 계신다.

그 다음에 예수께서는 흐느끼지도 않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울기 시작하신다. 눈물이 그분의 두 눈을 가득 채운 다음 쏟아져 나와 그분의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려와 떨어진다…

아주 슬픈 침묵의 눈물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이해받거나 위로받기를 바라지 않고 자기 혼자 ‘울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눈물이다.

요한의 형이 그의 위치로 인하여 이 눈물을 가장 먼저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자 그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놀라움에 사로잡힌다.

“우리 중 아무도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말하자, 다른 사람이 말한다.

“군중도 우리를 모욕하지 않았어. 그들 중 아무도 그분께 적대적이지 않았어.”

“그럼 그분께서는 왜 울고 계실까?”

그들 중 가장 연장자가 묻는다.

베드로와 요한이 일어서서 함께 그분께 다가간다.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자기들이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분께서 느끼시게 해드리고 그분께 무슨 일이 있는지를 그분께 여쭙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울고 계십니까?”

요한이 자기보다 머리 하나와 목 하나만큼 크신 예수의 한 어깨에 자기의 금발머리를 기대며 여쭌다.

그리고 베드로는 한 손을 예수의 허리에 두르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거의 껴안다시피 하면서 그분께 말씀드린다.

“예수님, 무엇이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습니까? 당신을 사랑하는 저희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예수께서는 그분의 뺨을 요한의 금발머리에 대시고, 그분의 양팔을 벌려 그분의 한 팔을 베드로의 어깨에 걸치신다. 그들 세 사람은 이토록 몹시 다정한 자세로 서로에게 안겨 있다. 그러나 눈물은 계속 떨어진다.

요한은 눈물이 자기의 머리카락에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다시 한 번 여쭌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왜 울고 계십니까? 혹시 저희가 당신의 고통의 원인입니까?”

다른 사도들도 이 다정한 그룹에 둥글게 모여들어 걱정스럽게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아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그 원인이 아니다. 너희는 내 친구들인데, 우정이 진실할 때 그것은 위안과 미소이지 결코 눈물이 아니다. 나는 너희가 영원히 내 벗들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정직하게 남아 있겠다고 결연하게 바라지 않는 사람들을 동요시키고 타락시키는 부패 안으로 우리가 들어가려고 하는 지금도 말이다.”

“선생님,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군중들은 이미 기쁘게 당신께 인사드렸는데요. 당신은 그들을 실망시키려 하십니까? 우리는 뭔가 기적을 행하기 위하여 사마리아로 가고 있습니까? 파스카가 임박한 바로 지금 말입니다.”

몇몇 사도들에게서 질문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

예수께서는 두 손을 들어 침묵을 명하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그분의 오른손으로 시내를 가리키신다. 그것은 자기 앞에 씨앗들을 뿌리는 사람의 몸짓과 같은 넓은 몸짓이다.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저것은 부패다. 우리는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리로 가고 있다.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분만이 내가 하늘에서 오는 거룩함을 그리로 가져가서 이 도시를 거룩하게 하기를 얼마나 원하는지를 아신다. 이 도시는 거룩한 도시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다시 성화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이 도시를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도시는 타락했고, 타락한 채로 있다.

살아 있는 성전(the living Temple)에서 솟구쳐 나오고, 며칠 후에 그것을 생명이 없도록 내버려둘 정도로 훨씬 더 많이 솟구쳐 나올 거룩함의 물줄기들도 이 도시를 구속하는 데 충분치 못할 것이다.

사마리아와 이교도들의 세상이 거룩한 자(the Holy One)에게로 올 것이다. 참 하느님의 성전들이 거짓 성전들 위에 세워질 것이다. 이방인들의 마음은 그리스도께 경배할 것이다.

그러나 이 백성, 이 도시는 항상 그에게 적대적일 것이고, 그들의 미움은 그들을 가장 큰 죄로 인도할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일어난다. 그러나 그 죄악의 도구들이 될 사람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화가!…”

예수께서는 그분의 거의 정면에 있는 유다를 응시하신다.

“그것은 결코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사도들이고, 당신을 믿고, 당신을 위하여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유다는 뻔뻔스럽게 거짓말하며, 당황하지 않고 예수의 눈을 마주본다.

다른 이들도 항의에 가세한다.

예수께서는 유다에게 직접 대답하는 것을 피하시기 위하여 그들 모두에게 대답하신다.

“너희가 그럴 수 있다면 정말로 좋겠다. 그러나 너희는 아직 매우 약하여 유혹이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처럼 너희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열렬히 기도하고, 너희 자신들을 부지런히 살펴라.

사탄은 자기가 패배하려한다는 것을 알고, 너희를 나에게서 떼어냄으로써 복수하고 싶어 한다. 그는 우리 모두의 주위에 있다. 그는 내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내 사명을 완수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내 주위에 있다. 그리고 그는 너희를 자기의 종으로 만들기 위하여 너희 곁에 있다.

깨어 있어라. 이 성 안에서 사탄은 강하지 못한 사람들을 붙잡을 것이다. 사탄은 자기의 저주가 그 사람이 선택되었다는 것을 실현할 사람을 취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인간적인 목적을 위하여 자기가 선택된 것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 나라를 위해서가 하늘나라를 위하여 너희를 선택했다. 이것을 명심해라.

그리고 너, 너 자신의 멸망을 원하고, 내가 네 위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오, 도시여, 네 그리스도가 너의 구속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라. 오! 만일 여전히 너에게 남아 있는 이 시간에라도 네가 네 평화가 될 수 있는 그에게로 온다면! 만일 네가 적어도 너를 관통하여 지나가는 사랑(the Love)을 이해하고, 너를 너 자신과 네 유익에 대하여 너를 눈멀고, 미치고, 잔인하게 만드는 증오를 벗어버린다면!

네가 이 시간을 기억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네가 울고 뉘우치기에는 너무 늦을 것이다! 사랑(the Love)은 지나가버려서 네 거리들에서 사라졌을 것이고, 네가 선호한 증오는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증오는 너와 네 자손들 위에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가 원했던 것을 가지게 되고, 증오는 증오로 갚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그것은 무방비의 사람에 대한 강한 자들의 증오가 아니라 증오 대 증오일 것이고, 따라서 전쟁과 죽음일 것이다. 너는 참호들과 무장한 자들에 둘러싸여 파괴되기 전에 무력해질 것이고, 네 자녀들은 무기들과 굶주림으로 쓰러질 것이고, 살아남은 자들은 포로가 되어 멸시당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너는 자비를 구하겠지만, 결코 그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네 구원(your Salvation)을 알기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내 벗들아, 나는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내 조국의 폐허가 나에게 눈물 흘리게 만들기 때문에 울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일어나는 것은 정당하다. 왜냐하면 타락이 모든 한계들을 넘어 하느님의 벌을 이 성안으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조국의 파멸을 초래하는 시민들은 불행하다! 그 불행의 주요 원인인 지도자들은 불행하다! 다른 사람들을 정직하도록 이끌 성인들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섬기는 성전을 더럽히고, 자기 자신들도 더럽히는 사람들은 불행하다.

가자. 내 행동은 무익할 것이다. 그러나 빛(the Light)이 한 번 더 어둠 속에서(in the Darkness) 빛나게 하자!”

그렇게 말씀하시며 예수께서는 그분의 사도들의 앞장을 서서 내려오신다. 그분께서는 심각한 얼굴, 거의 무뚝뚝하게 보이는 얼굴로 길을 따라 빨리 걸어가신다. 그분께서는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언덕 밑 어느 작은 집으로 들어가시고,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1947. 3. 30.

예수께서 집안으로 들어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축복하시자마자 명랑한 말방울 소리들과 환호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그리고 곧 이어 야위고 창백한 이사악의 얼굴이 문이 열린 틈으로 나타난 다음에 그 충실한 목자가 들어와 자기의 주 예수 앞에 엎드린다.

많은 얼굴들이 활짝 열린 문의 문설주에 바글거리고, 더 많은 얼굴들이 그들 뒤에 보인다… 그들은 앞으로 나오려고 서로 떠밀고 쇄도한다… 군중 안에 끼어 몇 명의 여자들은 고함을 치고, 몇몇 어린이들은 운다. 그 동안 다른 이들은 인사말들과 즐거운 감탄의 말들을 외친다.

“오늘은 당신을 저희에게 다시 모셔오는 복된 날입니다! 주님, 당신께 평화! 선생님, 저희는 당신을 환영합니다. 당신께서는 저희의 충성을 상주시기 위하여 돌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일어나서 그분께서 말씀하려고 하신다는 몸짓을 하신다. 모든 사람이 잠잠해지고, 그분의 목소리가 분명히 들린다.

“여러분에게 평화! 서로 밀지 마시오. 지금 성전으로 올라갑시다. 나는 여러분과 함께 머무르려고 왔습니다. 조용히! 조용히! 자신들에게 상처 입히지 마시오. 사랑하는 내 벗들이여, 길을 내시오! 나를 나가게 해주시오. 그리고 나를 따라오시오. 우리는 함께 성도로 들어갈 테니까요.”

싫든 좋든 사람들은 순종한다. 그들이 약간 길을 내주어 예수께서는 나와서 어린 나귀를 타실 수 있다. 사실 예수께서는 결코 사람을 태워본 적이 없는 그 어린 나귀를 그분께서 타실 짐승으로 지정하신다.

그러자 몇 사람의 부유한 순례자들이 군중 사이로 길을 내어 나아온 다음에 그들의 호화로운 겉옷들을 그 나귀새끼의 잔등에 깔고, 한 사람이 한쪽 무릎을 꿇고 다른 한쪽 무릎을 주님께 발판이 되게 해드리자 그분께서는 나귀새끼에 올라타신다.

여행이 시작된다. 베드로는 선생님 곁에서 걸어가고, 반대쪽에서는 이사악이 길들여지지 않은 짐승의 고삐를 잡고 걸어가는데, 그 짐승은 예수를 향하여 던져지기 때문에 자주 그놈의 눈과 부드러운 주둥이를 때리는 꽃들에도, 그 앞에서나 주위에서 흔들리거나 꽃들의 양탄자가 되도록 땅에 던져지는 올리브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잎들에도 안달하지 않고, 마치 자기가 그 역할에 익숙한 것처럼 조용히 걸어간다. 그놈은 심지어 새로 오는 사람들로 인하여 군중이 점점 더 많아짐에 따라 점점 더 커지는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외침에도 겁먹지 않는다.

좁고 꼬불꼬불한 벳파게의 거리들을 통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머니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아이들을 안아야 하고, 남자들은 너무 거칠게 밀쳐지지 않도록 자기들의 여자들을 보호해야 하며, 어떤 아버지들은 자기들의 어린 아들들을 어깨 위로 무동 태워 그들이 군중 위에 있게 하기도 한다.

그 동안에 어린이들의 새된 목소리들은 어린양들의 우는 소리나 제비들이 우는 소리 같은 소리를 내고, 그들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는 그들의 엄마들이 내미는 꽃과 올리브나무 잎들을 던지고, 온유하신 예수께 입 맞추기도 한다.

행렬이 작은 교외마을의 좁은 길을 벗어나자 그것은 질서정연하게 펼쳐지는데,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앞으로 나아가 행렬을 앞서가며 장애물을 치우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따라가며 길 위에 나뭇가지들을 여기저기 던져놓는다.

그리고 한 사람이 자기의 겉옷을 양탄자로 던지자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를 모방한다. 그리하여 길의 가운데 부분은 땅에 깔린 옷들의 다양한 색깔의 띠가 된다. 예수께서 지나가시자 그것들은 다시 집어 올려 더 많은 다른 겉옷들과 함께 앞으로 옮겨진다.

그 동안에 꽃들, 나뭇가지들 그리고 종려나무 잎들은 흔들리고 던져진다. 그리고 더 큰 외침들이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후손과 그의 나라에 영광 돌리기 위하여 그분의 주위에서 터져 나온다!

성문을 지키는 파수병들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려고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폭동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창에 기대어 한쪽 옆으로 물러나 나귀새끼를 타고 있는 이 왕, 신처럼 미남자이고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처럼 소박하고 온유하며, “평화! 평화!” 하고 외치는 여자들과 어린이들과 무기를 가지지 않은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축복하는 이 왕의 이상한 행렬을 놀라워하거나 빈정거리며 지켜보고 있다.

이 왕은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힌놈과 실로암(나는 내가 다른 경우들에 기적적으로 치유 받고 있는 나병환자들에 대한 기적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는 이 장소들의 정확한 이름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의 나병환자들의 무덤들이 있는 언덕에서 잠깐 발을 멈추시고, 그분께서 다리를 벌리고 타지 않고 다리를 모으고 타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의 한 발이 올려져 있는 하나밖에 없는 발판을 딛고 일어서서 그분의 양팔을 벌리시고, 소름끼치는 얼굴들과 몸들이 나타나 예수 쪽을 바라보면서, 예수를 잘 보려고 오염된 언덕까지 올라올지도 모를 조심성 없는 사람들을 오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전염병자들입니다!” 하는 나병환자들의 애처롭게 부르짖는 그 소름끼치는 언덕을 향하여 “믿음이 있는 사람은 내 이름을 부르시오. 그러면 깨끗해질 것입니다!” 하고 외치시며 그들에게 강복하시고, 다시 길을 가시며 가리옷의 유다에게 명령하신다.

“너는 나병환자들을 위하여 음식을 사서 시몬과 함께 저녁 전에 그들에게 그것을 가져다주어라.”

행렬은 실로암 문의 둥근 천장 밑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다음 오펠의 변두리 마을을 지나 급류처럼 시내로 쏟아져 들어간다. 이 마을의 모든 옥상은 호산나를 노래하고, 길에 꽃들을 던지고, 향료를 쏟아 부으며 그것들을 선생님께 던지려고 애쓰는 사람들로 가득한 작은 공중광장이 된다.

공기는 군중의 발들에 짓밟혀 으깨진 꽃들의 향기와 길의 먼지 위에 떨어지기 전에 공기 중에 퍼지는 향료들의 냄새로 가득 차 있다. 군중의 함성들은 점점 더 그 수가 많아지는 것 같고, 마치 각 사람이 뿔 나팔에 대고 외치는 것처럼 커진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 가득한 수많은 둥근 장식 아치창들이 그 소리들을 끊임없이 반향하면서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샬렘, 샬렘 멜킬”(또는 멜킷. 나는 말의 음을 그대로 쓰려고 애쓰지만, 그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는 기식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는데, 나는 이 말이 복음사가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해변들과 절벽들 위에서 부딪치는 파도의 큰 소리가 아직 끊어지기도 전에 다른 큰 파도가 그 물을 모아 그것을 들어 올려 새로운 포효소리를 만듦으로써 결코 끊어짐이 없이 철썩거리는 폭풍우 이는 바다의 포효와도 같은 지속적인 울부짖음이다. 나는 이 소리로 귀가 멍멍하다!

향기, 냄새, 고함소리, 나뭇가지들과 옷들을 흔들기, 빛깔들, 외침들… 이것은 어리둥절한 장면이다.

나는 끊임없이 섞이는 군중 속에서 사람들을 본다. 알려진 얼굴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팔레스티나의 모든 지방에서 온 모든 제자들, 모든 추종자들이 보인다…

어느 순간 나는 야이로를 보고, 자기의 어머니처럼 소경이었다가 예수께서 고쳐주신 펠라의 소년 야이아(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도 본다.

나는 보즈라의 요아킴과 사론 평야의 그 농부와 그의 형제들을 보고, 요르단 강 근처 동쪽 기슭이 홍수로 온통 물에 잠겼을 때 예수께서 피난해 가셨던 그곳에 사는 늙고 외로운 마타아도 보고, 자캐오와 회개한 그의 친구들도 본다.

나는 놉의 늙은 요한과 그의 고향 사람 거의 모두를 보며, 유타의 사라의 남편도 본다…

그러나 이것이 자기가 몇 번 보았거나 단지 한 번 본 아는 얼굴들과 모르는 얼굴들의 만화경이라면, 누가 그 얼굴들과 이름들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지금 애논에서 데려온 어린 목동의 얼굴이 보인다. 그리고 예수를 따르기 위하여 자기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던 코라진의 제자가 그의 가까이에서 보인다. 그리고 그의 가까이에는 카파르나움의 벤야민의 부모와 그들의 아들이 함께 있는 것이 잠깐 보이는데, 그 아들은 예수에게서 애무를 받으려고 앞으로 뛰어나오다가 하마터면 나귀새끼 발굽 밑에 넘어질 뻔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 개선으로 인하여 분노로 납빛이 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얼굴들도 있는데, 그들은 예수의 주위에서 밀착해 있는 사랑의 원을 거만하게 헤치고 나와 그분께 외친다.

“저 미친 자들을 입 닥치게 하시오! 이자들이 이성을 되찾게 하시오. 호산나는 하느님께만 드려져야 하오. 이자들에게 조용하라고 말하시오.”

그러자 예수께서 부드럽게 그들에게 대답하신다.

“만일 내가 그들에게 잠잠하라고 말하고, 그들이 내 말에 순종한다면, 돌들이 하느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의 기적들을 찬미할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이렇게 외친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에게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시여, 찬미 받으소서! 그분과 그분의 나라에게 호산나!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임마누엘이 오셨다! 주의 그리스도의 왕국이 왔다!

호산나! 땅에서부터 가장 높은 하늘까지 호산나! 평화! 내 왕이여, 평화! 거룩하신 왕이여, 당신께 평화와 축복! 그분을 환영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평화! 땅에서는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 평화, 가장 높은 하늘에서는 영광, 왜냐하면 주님의 때가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마지막 소리를 외치는 사람들은 성탄절 노래를 되풀이하고 있는 목자들의 무리이다.

이 끊임없는 외침들에 덧붙여, 팔레스티나 사람들은 디아스포라의 순례자들에게 자기들이 본 기적들을 이야기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모르는 사람들, 우연히 시내로 지나가다가 묻는 외국인들에게 설명한다.

“그런데 저분은 누구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소?”

“저분께서는 예수요! 갈릴래아의 나자렛의 선생님, 예수요! 예언자! 주님의 메시야! 언약되신 분! 거룩하신 메시야시오!”

이런 북새통 속에서 행렬이 매우 천천히 움직이고 있어 방금 전에 지나쳐온 집에서 향기로운 연기구름을 풍기며 타고 있는 숯불과 향이 가득 들어 있어 있는 구리 향로들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운반하고 있는 건장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나온다.

그들의 이런 행동은 좋은 반응을 얻는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태워 그리스도께 경의를 표할 불과 향내 나는 수지들을 가지러 자신들의 집들로 앞질러 가거나 돌아온다.

안나리아의 집이 나타난다. 옥상은 4월의 미풍에 흔들리고 있는 새 잎들이 나 있는 포도넝쿨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거리 쪽에는 흰 옷을 입고 흰 베일을 쓴 처녀들이 장미꽃과 은방울꽃의 듣긴 꽃잎들이 가득 담긴 바구니들을 들고 한 줄로 늘어서 있고, 그들의 한가운데에는 안나리아가 있는데, 그 꽃잎들은 벌써 공중에서 흩날리고 있다.

“주님, 이스라엘의 동정녀들이 주님, 당신께 문안드립니다!”

군중을 헤치고 나와 지금은 예수 곁에 있는 요한이 난간에 기대어 미소 지으며 피처럼 빨간 장미 꽃잎과 진주들처럼 하얀 은방울꽃을 길에 뿌리고 있는 화환과 같은 동정녀들에게 그분의 주의를 끌기 위하여 말한다.

예수께서는 잠시 고삐를 당겨 나귀새끼를 멈추신다. 그분께서는 얼굴을 드시고, 땅 위의 다른 모든 사랑을 포기할 정도로 그분을 사랑하고 있는 그 동정녀들을 축복하시기 위하여 그분의 한 손을 들어 올리신다.

그러자 안나리아가 앞쪽으로 몸을 기대며 외친다.

“나의 주님, 저는 당신의 개선을 보았습니다! 당신에 대한 우주적인 찬미를 위하여 제 목숨을 가져가십시오!”

예수께서 자기의 집 가까이로 지나 앞으로 나아가시자 그녀는 매우 크게 외치며 그분께 인사드린다.

“예수님!”

그리고 또 하나의 다른 외침이 군중의 아우성을 능가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는다. 그것은 열광의 강이고, 멈출 수 없는 기뻐 날뛰는 사람들의 강이다. 이 강의 마지막 파도들은 아직 성문 밖에 있는데, 첫 번째 파도들은 이미 성전으로 이어지는 언덕들을 올라가고 있다.

“당신의 어머니십니다!”

베드로가 행렬이 들어선 모리아 산으로 이어지는 길 거의 모퉁이에 있는 집을 가리키며 말한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 위, 충실한 여자들 가운데 계시는 어머니께 미소 지으시기 위하여 위쪽을 바라보신다.

큰 대상의 장애물로 인하여 행렬은 그 집을 지나쳐 몇 미터 되는 지점에서 멈춘다. 예수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멈춰 서서 어머니들이 그분께 보여드리는 어린이들을 쓰다듬어주시는 동안에 한 사람이 군중을 헤치고 길을 내 달려오며 외친다.

“나를 지나가게 해주시오! 방금 한 여자가 죽었어요. 젊은 처녀가요. 갑자기요. 그녀의 어머니가 선생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제발 나를 지나가게 해주시오! 그분께서는 그 처녀를 이미 한 번 살려주셨습니다!”

사람들이 길을 터주자, 그가 예수께 달려와 말한다.

“선생님, 엘리자의 딸이 죽었습니다. 그녀는 그 외침으로 당신께 인사드리고 나서 뒤쪽으로 주저앉으면서 ‘나는 행복해요’ 하고 말하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녀의 심장이 당신의 승리를 보는 큰 기쁨에 압도된 것입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의 집 옆집 옥상에 있는 저를 보고, 당신을 모셔 오라고 보냈습니다. 선생님, 가십시다.”

“죽다니! 안나리아가 죽다니! 그녀는 어제까지만 해도 건강하고, 활짝 피어나고, 행복했었는데?”

사도들과 목자들이 흥분하며 모여든다. 모든 사람이 어제 그 처녀가 아주 건강한 것을 보았다. 방금 전에도 그들은 그녀가 발그레하고 미소 짓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이런 불행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여러 가지를 질문하고, 자세한 사정을 알아본다.

“나는 모릅니다. 여러분 모두는 그 처녀의 말을 들으셨지요. 그녀는 확신에 차서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그 처녀가 자기의 옷보다 더 하얗게 되어 뒤로 넘어지는 것을 보았고, 그녀의 어머니가 외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 밖의 것은 모릅니다.”

“흥분하지 마라. 그녀는 죽지 않았다. 한 송이 꽃이 떨어졌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것을 집어 들어 아브라함의 품으로 가져갔다. 땅의 백합은 곧 낙원에서 피어날 터인데, 그것은 세상의 끔찍함을 영원히 모를 것이다.

여보시오, 엘리자에게 그녀의 딸의 운명을 슬퍼하지 말라고 말하시오. 그녀의 딸이 하느님에게 큰 은총을 받았다고, 그리고 지금부터 엿새 후에 그녀는 하느님께서 자기의 딸에게 얼마나 큰 은총을 내려주셨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그녀에게 말하시오.

울지 마라. 아무도 울지 마라. 그녀의 승리는 심지어 내 승리보다 더 크다. 왜냐하면 천사들이 이 동정녀를 의인들의 평화로 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실패를 알지 못하고, 그 정도에 있어 점점 커져갈 영원한 승리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안나리아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 자신들을 위하여 울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다. 가자.”

그분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신 다음 사도들과 그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되풀이해 말씀하신다.

“한 송이 꽃이 떨어졌다. 그 꽃은 평화 안에서 누웠고, 천사들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몸과 마음이 깨끗한 그 처녀는 행복하다. 왜냐하면 그녀는 곧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녀는 무엇 때문에 죽었습니까, 주님?”

베드로가 이 사건을 믿을 수 없어 여쭌다.

“사랑으로, 환희로, 무한한 기쁨으로 인하여. 행복한 죽음이다!”

멀리 앞에 있는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멀리 뒤에 있는 사람들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비록 여기 예수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조용히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해도 호산나 소리들은 계속된다.

요한이 침묵을 깨고 말한다.

“오! 저도 미래의 시간들 전에 같은 운명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도요. 저는 당신에 대한 사랑으로 인하여 죽은 그 처녀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이사악이 말한다.

“나는 나에게 네 소원들을 희생하기를 부탁한다. 나에게는 내 가까이에 있는 네가 필요하다.”

“주님, 저희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어머니에게는 아무 위로도 없습니까?”

나타나엘이 묻는다.

“나는 그것을 살피겠다…”

그들은 성전 담장의 문들이 있는 곳에 와 있다. 예수께서 나귀새끼에서 내리시자 벳파게에서 온 어떤 사람이 그것의 고삐를 묶는다.

예수께서는 성전의 첫째 문에서 멈추지 않으시고, 담을 돌아서 담의 북쪽, 안토니아 근처에 와서야 비로소 걸음을 멈추셨다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분께서는 거기서 나귀 새끼에서 내려 성전 안으로 들어가시는데, 그분께서는 마치 자신이 항상 무죄한 방식으로 행동해 오셨다는 것을 느끼시고, 지배하는 권력으로부터 숨고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보기를 바라시는 것 같다.

성전의 첫째 마당에서는 여느 때처럼 환전상들과 비둘기, 참새, 어린양들을 파는 장사꾼들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유일한 차이점은 상인들 주위에 사람들이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보려고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중하게 주홍빛 옷을 입고 계시는 예수께서는 그 장터와 한 회랑에서부터 그분을 지켜보고 있는 한 무리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둘러보신다.

그분의 두 눈은 분노로 번쩍이고 있다. 그분께서는 급히 마당 가운데로 가신다. 비행과도 같아 보이는 예기치 않은 도약이다. 날아오르는 불꽃과도 같다. 왜냐하면 그분의 옷이 마당에 넘쳐흐르는 햇빛 아래에서 불꽃처럼 밝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우레처럼 힘찬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나가시오! 이곳은 고리대금을 하는 곳이나 시장이 아니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라고 쓰여 있소. 그런데 당신들은 왜 주님의 이름이 그 안에서 불리는 이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바꾸어놓았소?

가시오! 내 집을 깨끗하게 두시오. 내가 밧줄들을 사용하는 대신 하늘의 분노의 벼락들로 당신들을 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오.

가시오! 도둑들, 협잡꾼들, 호색한들, 살인자들, 불경한 자들, 자기의 교만한 자아의 우상을 섬기는 최악의 우상숭배자들, 부패한 자들, 거짓말쟁이들 당신들은 나가시오! 썩 나가시오. 아니면 내가 당신들에게 경고하는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이곳을 영원히 쓸어내시고, 모든 백성에게 복수하실 것이오.”

예수께서는 지난번처럼 채찍질을 되풀이하지는 않으신다. 그러나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이 순종하는 데 머뭇거리자 가장 가까운 판매대로 가서 그것을 뒤엎어 저울들과 동전을 바닥에 흩어놓으신다.

판매상들과 환전상들은 이 첫 번째 본보기를 보고 나서야 서둘러 예수의 명령을 실천한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의 뒤에서 외치신다.

“이곳이 더러움의 장소가 아니라 기도의 장소여야 한다는 말을 내가 몇 번이나 해야겠소?”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대사제의 명령에 복종하여 보복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성전에 속한 사람들을 바라보신다.

예수께서는 마당을 깨끗하게 하신 다음 소경들, 중풍환자들, 벙어리들, 절름발이들, 그 밖의 병자들이 모여 목청껏 그분을 부르고 있는 회랑들을 향하여 가신다.

“여러분은 내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랍니까?”

“주님, 보게 해주십시오! 제 팔다리를 낫게 해주십시오! 제 아들이 말하게 해주십시오! 제 아내가 건강을 회복하게 해주십시오! 저희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당신을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청을 들어주시기를. 일어나 주님께 호산나를 노래하시오!”

그분께서는 수많은 병자들을 한 사람씩 고쳐주지 않으시고, 한 손으로 넓게 손짓하시자 은총과 건강이 그 손에서부터 불쌍한 사람들에게 내려간다. 이들이 완전히 나아서 기쁨의 함성을 지르자 그 함성이 예수 가까이로 몰려드는 수많은 어린이들의 외침과 섞인다.

“영광, 다윗의 자손에게 영광! 왕들의 왕이시고, 주님들의 주님이신 나자렛의 예수께 호산나!”

몇몇 바리사이들은 경의를 가장하며 그분께 외친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저애들의 말을 들으십니까? 저애들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저애들에게 야단치십시오! 저애들이 입 다물게요!”

“왜요? 예언자 왕, 내 가문의 왕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당신께서는 완전한 찬미가 어린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오게 하시어 그분의 원수들을 혼란스럽게 하셨나이다.’

당신들은 시편 작가의 이 말을 읽어보지 못했습니까? 어린이들에게 내 찬미가들을 노래하게 하시오. 그들은 끊임없이 내 아버지를 뵙고, 그분의 비밀들을 알며, 그것들을 이 죄 없는 것들에게 넌지시 일러주는 그들의 천사들에 의하여 암시되는 찬미가들을 노래하도록 충동됩니다. 이제 나는 가서 주님께 기도드리겠소.”

그분께서는 그 사람들의 앞을 지나 기도하시려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당으로 들어가신다…

나중에 그분께서는 다른 문을 통해 나오셔서 양들의 연못을 따라가시다가 시내에서 나가 올리브 산의 언덕들로 돌아가신다…

사도들은 열광하고 있다… 개선이 그들에게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선생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일으켰던 모든 공포를 깡그리 잊어버리고 있다… 그들은 모든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들은 안나리아의 소식을 듣고 싶어 죽을 지경이다. 예수께서는 그분께서 아시는 방식으로 마련하시겠다고 그들에게 단언하심으로써 그들이 그리로 가려는 것을 어렵사리 말리신다… 그들은 모든 하느님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들은 참으로 사람들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호산나의 외침 하나로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그분과 합류한 막달라 마리아의 하인들에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을 돌려보내신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필립보가 여쭙는다.

“우리는 요나의 마르코 집으로 갑니까?”

요한이 말한다.

“아니다. 우리는 갈릴래아 사람들의 야영지로 간다. 아마 내 형제들이 와 있을 텐데, 나는 그들에게 인사하고 싶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당신께서는 내일 가실 수도 있을 텐데요.”

타대오가 그분께 지적한다.

“할 수 있는 동안에 그것들을 하는 것이 좋다. 갈릴래아 사람들에게로 가자. 그들은 우리를 보고 기뻐할 것이다. 너희도 너희 가족들의 소식을 들을 것이고, 나는 어린이들을 볼 것이다…”

“그럼 오늘 밤에는? 우리는 어디서 잘 겁니까? 시내에서요? 어디서요? 당신의 어머니가 계신 곳에서요? 또는 요안나의 집에서요?”

가리옷의 유다가 묻는다.

“나는 모르겠다. 분명히 시내에서는 아니다. 아마 다시 어떤 갈릴래아 사람들의 천막 속에서…”

“그런데 왜요?”

“왜냐하면 나는 갈릴래아 사람이고, 고향을 사랑하니까. 가자.”

그들은 갈릴래아 사람들의 야영지를 향하여 올라가기 위하여 다시 출발한다. 그곳은 베타니아 쪽 올리브 산 위에 있는데, 유쾌한 4월의 태양 아래 하얀 천막들로 온통 뒤덮여 있다.

 

1944.7. 30.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루카가 묘사한 광경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고, 거의 비논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나는 죄 있는 도시의 불행들을 슬퍼하지만, 그 도시의 관행들에 대해서는 유감스러워하지 않는다. 그렇다. 나는 그 관행들에 대하여 관대할 줄 모르고, 관대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 관행들이 바로 그들의 불행들을 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보는 것은 내 고통을 더 깊게 만든다.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에 대한 내 분노는 다가오고 있는 예루살렘의 불행들에 대한 내 묵상의 논리적 귀결이다.

하늘의 징벌들을 유발하는 것은 언제나 하느님에 대한 예배와 하느님의 율법의 모독이다.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듦으로써 그 무가치한 사제들과 그 무가치한 신자들(이름으로만 그런 자들)은 온 백성 위에 저주와 죽음을 끌어오고 있었다.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불행들에 이러저러한 이름을 붙이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짐승들과 같은 생활에 대한 벌’이 그 정확한 이름이다.

하느님께서 물러가시고, 악(Evil)이 다가온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민족적 생활방식의 결과이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금세기의 짧은 기간에도 나는 기적들로 사람들을 흔들고 경고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처럼 나는 나와 내가 도구로 쓰는 사람들에게 조소, 무관심, 증오를 야기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개인들과 나라들은 먼저 자기들의 구원을 알아보기를 원하기 전에는 울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내가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 악에 바쳐진 개인의 양심들에서 시작하여 온 나라에 퍼진 독성적인 전쟁으로 나를 쫓아내고 나서 지금 그들이 나를 불러도 소용없다. 조국들은 무기로 구원받기보다는 하늘로부터의 보호를 끌어당길 수 있는 생활방식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작은 요한아, 쉬어라. 그리고 네가 선택된 것에 항상 충실해라. 평안히 가거라.”

나는 참으로 피곤하다! 나는 정말 녹초가 되어 있다…

 

1947. 3. 30.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내 참을성 많은 비서야, 여기에 1945. 3. 4. 자 ‘종려주일 저녁’ 환상을 집어넣어라. 내 평화가 너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