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1. 파스카 전 월요일 밤. 겟세마니에서 사도들에게 주신 가르침들
1945. 3. 6.
저녁에 예수께서는 아직 올리브나 밭에 사도들과 함께 계신다. 그분께서 다시 말씀하신다.
“또 하루가 지났구나. 지금은 밤 시간이고, 그 다음에는 내일이고, 그 다음에는 모레고, 그 다음에는 파스카 만찬이다.”
“나의 주님, 우리는 어디서 만찬을 먹게 됩니까? 올해는 여자들도 있습니다.”
필립보가 여쭙는다.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마련하지 못했는데, 시내는 초만원입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가장 먼 지방의 개종자들에 이르기까지 의식을 행하려고 것 같습니다.”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예수께서는 그를 바라보시며 마치 시편이라도 읊듯이 말씀하신다.
“모여라. 서둘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바치려는 내 희생 제물을 향하여, 이스라엘의 산들 위에서 바쳐지는 큰 희생제물을 향하여 와서 그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셔라.”
“그런데 무슨 희생제물 말씀입니까? 무슨? 당신께서는 미친 고정관념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처럼 보이십니다. 당신께서는 죽음만을 말씀하시고… 그래서 저희를 슬프게 하십니다.”
바르톨로메오가 격렬하게 말한다.
예수께서는 알패오의 야보고와 베드로에게로 몸을 숙이시고 그들과 말씀을 나누시다가 시몬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시 바르톨로메오를 보시며 말씀하신다.
“뭐라고? 네가 나에게 그것을 묻고 있느냐? 너는 배우려면 반드시 일곱 가지 빛을 받아야 하는 이 어린이들 중 하나가 아니다. 너는 내가 그 따뜻한 봄날 아침에 필립보를 통하여 너를 부르기 전에 이미 성경의 전문가였다. 내 봄 말이다.
그런데 너는 나에게 무엇이 산들 위에서 바쳐지는 희생 제물, 모든 사람이 와서 그것을 먹을 희생제물인지를 묻느냐? 그리고 너는 내가 죽음에 대하여 말하기 때문에 내가 고정관념을 가진 미친 사람이라고 말하느냐?
오! 바르톨로메오야! 한 번도 빛을 향하여 열린 적이 없는 너희의 어둠 속에서 경비병들의 외침처럼 나는 한 번, 두 번, 세 번 선포하는 외침을 발했다.
그러나 너희는 결코 그것을 이해하기를 원치 않았다. 너희는 그것으로 인하여 그 순간에 고통당했다… 그러고 나서 너희는 어린이들처럼 죽음에 대한 말을 곧 잊어버리고, 자신만만하고 너희의 말과 내 말이 세상을 점점 더 설득하여 자기의 구속자를 따르고 사랑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가득 차서 기쁘게 너희의 일로 돌아갔다.
아니다. 이 세상이 나를 거슬러 죄지은 다음에야 비로소― 그리고 이것은 주님께서 그분의 예언자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해라―그 다음에야 비로소 백성이, 그리고 특히 이 백성이 아니라 아담의 큰 백성이 ‘주님께로 가자, 우리를 상하게 하셨던 그분께서 우리를 고쳐주실 것이다’하고 한탄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구속된 세상은 말할 것이다. ‘이틀 즉 영원의 두 기간 후 그분께서 우리를 떠나 우리가 거룩하신 분을 때리고 죽인 것처럼 모든 종류의 무기들로 우리를 때리고 죽일 원수(the Enemy)의 처분에 맡겨지실 것이고―그리고 우리는 그분을 때리고 죽일 것이다. 왜냐하면 신성모독과 악행들로 하느님의 아들, 구속자를 죽이고, 그분의 영원한 영광스럽게 되신 위격이 아니라 그분에 의하여 대속된 영혼들을 향하여 죽음의 화살들을 쏘아 죽이고,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영혼들을 죽임으로써 그분을 죽이는 카인들의 족속이 항상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오로지 두 기간들 후에 셋째 날이 올 것이고, 우리는 땅 위의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그분의 현존 안에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 그분 앞에서, 영의 승리 안에서 살 것이다.
우리는 그분을 알 것이고,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이 참된 지식을 통하여 천사의 일곱 번째 나팔 전에 루치페르가 사람과 함께 참여하는 마지막 전투를 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미리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 나팔소리는 영원히 완전해진 수의 사람들과 함께―영원히 완전한 수에 가장 어린 어린이나 가장 나이 많은 노인이 더해지는 것은 결코 불가능할 것이다―하느님의 성인들의 지극히 복된 합창을 시작하게 할 터인데, 합창단은 노래할 것이다.
‘땅의 초라한 왕국은 지나갔다. 세상은 그 모든 주민들과 함께 승리하시는 재판관 앞에서 심판을 통과했다. 그리고 선택된 사람들은 이제 우리 주님과 그분의 그리스도의 손안에 있고, 그분께서는 영원히 우리의 왕이시다. 계시고, 계셨고, 계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큰 권능을 취하셨고, 그분의 나라를 차지하셨기 때문이다.’
오! 너희 중 누가 이미 다니엘서에서 은은한 소리로 울려 퍼지는 이 예언의 말, 지혜로운 이의 목소리로 놀란 세상과 세상보다 더 놀란 너희 앞에 지금 사자후를 토하고 있는 그 예언의 말을 기억할 수 있겠느냐?
‘왕의 내림(來臨)은―세상은 지속될 것이다. 그 상처들 안에서 신음하고 무덤에 갇힌 채 살아서는 악하고, 죽어서도 악하며, 일곱 겹의 악덕과 그 무한한 이단들에 갇히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세상의 영은 유기체 안에서의 마지막 노력들과 함께 닫히고, 그 모든 오류들로 인하여 나병으로 죽을 것이다―새벽이 오는 것처럼 준비되어 마침내 봄철과 가을철의 비처럼 우리에게 오고야 말리라.’
밤은 새벽을 앞서가며 그것을 준비한다. 지금은 밤이다. 지금의 밤 말이다.
그런데 에프라임아, 내가 너를 위하여 무어라고 말해야겠느냐? 그리고 유다야, 내가 너를 위하여 무어라고 말해야겠느냐?… 시몬, 바르트, 유다, 그리고 너희 내 사촌들아, 성경을 더 경험한 너희는 이 말들을 알아듣겠느냐? 이것들은 미친 영혼으로부터가 아니라 지혜와 지식을 가진 영혼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어떤 왕이 자기가 찾고 있는 어떤 보석을 자기가 직접 자기의 금고들에 넣어두어 그것이 어디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자신 있게 그 금고들을 여는 것처럼 나는 예언자들의 말을 인용한다. 나는 말씀이다. 세기들을 통하여 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시대들을 통하여 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말하겠다. 말해진 모든 초자연적인 것들은 내 말이다.
가장 유식한 사람, 가장 거룩한 사람이라도 독수리의 영혼을 가지고 눈먼 세상의 한계들 너머로 날아올라 영원한 신비들을 파악하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래는 하느님의 생각 안에서만 ‘현재’이다. 우리의 뜻에 의하여 뒷받침되지 않고 예언들과 계시들을 말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리석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그 거짓말을 주시고, 그들을 치신다. 왜냐하면 유일하신 분만이 ‘나는 있다’고 말씀하실 수 있고, ‘나는 본다’고 말씀하실 수 있으며, ‘나는 안다’고 말씀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아려질 수 없고, 판단될 수 없고, 머리 숙여 받아들여져야 하고, 토론 없이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해야 하는 한 뜻(a Will), 그 ‘뜻’이 ‘오너라. 올라오너라. 들어라. 되풀이해라’ 하고 말할 때, 그때 영혼은 그의 하느님의 영원한 현재에 잠기고, ‘목소리’가 되도록 주님께 부름 받아서 보고 떨고, 보고 울고, 보고 환호한다.
그때 그 영혼은 ‘말’이 되도록 주님께 부름 받아 듣고 탈혼(ecstasy)이나 임종의 고통의 땀 안으로 던져져 영원하신 하느님의 무시무시한 말씀을 말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모든 말씀은 무시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의 판결은 변경할 수 없고, 그분의 정의는 준엄한 분으로부터 사람들에게 말해지는데, 파문과 유죄판결이 아닌 사랑과 축복들을 받을 만한 사람들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지금 이 말씀이 말해졌는데도 경멸당하는데, 그것을 들은 다음에 물리치는 자들에게는 그것이 끔찍한 죄와 벌의 원인이 되지 않겠느냐? 그것은 분명히 죄와 벌의 원인이 된다.
오, 에프라임아, 오, 유다야, 오, 세상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해주지 않은 무엇을 너희에게 해주어야 하느냐? 오, 내 땅아, 나는 너를 사랑하여 너에게로 왔다. 그런데 내 말은 네가 그것을 몹시 싫어했기 때문에 너에게 죽이는 칼이 되었다.
오! 자기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네 구세주를 죽이는 세상아, 너는 더러운 영혼으로 그토록 사탄에 들려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제물이 살해되고 제헌된 짐승의 제물이 아니라 자기의 죄의 희생이라는 것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최근 3년 동안에 내가 너에게 무어라고 말했느냐? 내가 무엇을 설교했느냐?
나는 말했다. ‘하느님의 법들과 그분의 자연을 통하여 그분을 알라.’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율법과 너희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생명의 지식을 퍼뜨리느라고 햇볕에 노출된 다공성 진흙 그릇처럼 고갈되었다. 그런데도 너는 유일하게 필요한 일인 참 하느님께 네 나쁜 뜻을 제물로 바치는 일을 결코 하지 않은 채 계속 제물들을 바치기만 했다!
죄악의 도성아, 불충실한 백성아! 지금 영원하신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다. 심판의 시간에 너는 로마와 아테네에게는 사용되지 않을 채찍으로 채찍질당할 것이다.
로마와 아테네는 우둔한 도시들이어서 언어도, 지식도 모른다. 그러나 유모들이 잘 돌보지 않아 영원한 어린이들 같고, 능력에 있어서는 짐승들 같은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어울리는 무수한 자녀들을 나에게 낳아줄 나의 유일한 숭고한 정배인 내 교회의 거룩한 품안으로 들어와 어른이 되고, 유능하게 되어 궁궐들과 군대들, 성전들과 성인들을 나에게 바쳐 마치 그들이 별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늘을 가득 채우게 될 것이다.
지금 영원하신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더 이상 너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너희의 손에서 어떤 선물도 받지 않겠다. 그것은 나에게 똥과 같기에 나는 그것을 너희의 얼굴들에 도로 던질 것이고, 그것은 거기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나는 외양뿐인 너희의 제식들을 혐오한다. 나는 아론의 줄기와의 내 언약을 폐지할 것이고, 그것을 레위의 아들들에게 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나의 레위인데, 나는 그와 영원히 지속될 생명과 평화의 언약을 맺었으며, 그는 시간의 끝까지, 희생에 이르기까지 나에게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을 가졌고, 모욕당한 내 이름의 소리만 들어도 모욕당했다고 느끼며 분노로 떨었다. 그는 진리의 법을 말했고, 그의 입술에는 죄악이 없었으며, 나와 함께 평화와 형평성(equity) 안에서 걸었고 많은 사람들을 죄짓지 않게 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깨끗하고 흠 없는 제물(Host)이 더 이상 유일한 시온의 제단에서가 아니라 모든 곳에서 제헌되고 내 이름에 드려질 때가 왔다. 왜냐하면 너희는 더 이상 그것을 바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영원한 말씀들을 알아들을 수 있느냐?”
“오, 주님, 저희는 그것들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저희가 마치 얻어맞은 것처럼 의기소침해 있다는 것을 믿어주십시오. 저희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합니까?”
“바르트야, 너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르느냐?”
“저는 다른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속죄, 이것이 그 이름이다. 주님께 죄지었다면, 반드시 그것을 속죄해야 한다. 그런데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창조된 첫째 사람에게서 모욕당하셨다. 그때부터 모욕은 점점 커져왔다. 그리고 대홍수의 범람도, 소돔과 고모라에 내린 불비도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물도, 불도 말이다.
땅은 사탄이 자유롭게, 그리고 왕처럼 돌아다니는 끝없는 소돔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삼위일체(a trinity)가 와서 땅을 씻어야 한다. 사랑의 불, 고통의 물, 희생자(the Victim)의 피가 그것이다.
오, 땅아, 이것이 내 선물이다. 나는 너에게 이것을 주려고 왔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것의 성취를 피하겠느냐? 지금이 파스카다. 그것은 피할 수 없다.”
“당신께서는 왜 라자로의 집으로 가지 않으십니까? 당신께서는 피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거기 계신다면, 그들은 당신께 손대지 못할 것입니다.”
“시몬의 말이 옳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께 간청합니다. 제발 그렇게 하십시오!”
가리옷의 유다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며 부르짖는다.
그의 행동에 요한이 통곡하기 시작하고, 그분의 사촌들과 야고보와 안드레아도 운다. 비록 그들은 고통 가운데에서도 더 자제하지만 말이다.
“너는 나를 ‘주님’으로 믿느냐? 나를 보아라!”
예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가리옷 사람의 고민하는 얼굴을 응시하신다. 왜냐하면 그는 실제로 고민하고 있고, 가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은 그의 영혼과 사탄의 마지막 싸움일 터인데, 그는 승리하지 못한다.
예수께서는 그를 관찰하시며 과학자가 병자의 위기를 관찰하는 것처럼 그의 싸움을 지켜보신다. 그러다가 그분께서는 벌떡 일어나시는데, 어찌나 세차게 일어나셨던지 그분의 두 무릎 위에 기대고 있던 유다가 뒤로 떠밀려 방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다. 예수께서도 분개한 얼굴로 뒤로 물러서시며 말씀하신다.
“라자로도 잡히게 하려고? 그러면 두 배의 먹이와 두 배의 기쁨이 되겠지. 안 된다. 라자로는 미래의 그리스도, 개선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보존되어야 한다. 한 사람만이 생명 너머로 던져지고, 되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나는 돌아올 것이다. 그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라자로는 남아 있을 것이다. 많은 것들을 아는 너는 그것도 안다.
그러나 독수리와 독수리 새끼를 그들의 둥지에서 어렵지 않게 잡음으로써 곱절의 이득을 얻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독수리가 모든 사람을 살펴보며 자기의 새끼에 대한 사랑으로 둥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혼자 붙잡혀 자기의 새끼를 구하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나는 증오에 의하여 살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랑하기를 계속한다. 가거라. 나는 여기 혼자 남아서 기도하겠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처럼 내 영혼을 하늘로 들어 올릴 필요를 느낀 적은 결코 없었다.”
“주님, 제가 당신과 함께 남아 있게 해주세요.”
요한이 애원한다.
“안 된다. 너희 모두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가거라.”
“당신께서는 혼자 남아 계실 겁니까? 혹시 그들이 당신을 해치면요? 당신께서도 고통당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저는 남아 있겠습니다.”
베드로가 말한다.
“너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거라. 내가 한 시간 동안 사람들을 잊게 해다오! 내가 내 아버지의 천사들과 연락하게 해다오! 내 어머니께서 눈물과 기도로 소진되고 계시는데, 나는 절망적인 내 고통으로 그분의 짐을 가중시켜드릴 수 없으니 천사들이 나를 대신할 것이다. 가거라.”
“당신께서는 저희에게 평화를 기원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분의 사촌 유다가 말한다.
“네 말이 맞다. 주님의 평화가 그분의 눈에 치욕스럽지 않은 사람들 위에 머무르기를. 안녕.”
예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비탈을 올라가 밀집되어 자라고 있는 올리브나무들 가운데로 들어가신다.
“그렇지만…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정말로 성경에 있어! 그리고 그분에게서 그것을 들으면 왜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그것이 말해졌는지 이해하게 돼.”
바르톨로메오가 중얼거린다.
“나는 첫째 해 가을에 베드로에게 그렇게 말했네…”
시몬이 말한다.
“맞아… 하지만… 안 돼! 내가 살아 있는 한 나는 그분께서 잡히시도록 버려두지 않겠어. 내일…”
베드로가 말한다.
“내일 자네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데?”
가리옷 사람이 묻는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고? 나는 혼잣말을 하고 있는 거야. 지금은 음모의 날들이야. 나는 공기에게도 내 생각들을 털어놓지 않겠네. 그런데 자네가 그토록 여러 번 말했던 것처럼 힘 있는 자네는 왜 예수님을 위한 보호를 추구하지 않나?”
“나는 그렇게 할 거야, 베드로. 나는 그렇게 할 거야. 그러나 내가 때때로 자리에 없는 것에 대하여 놀라지 말게. 나는 그분을 위하여 일하고 있어. 그렇지만 그분께 말씀드리지는 마.”
“그건 염려하지 말게, 그리고 축복받게. 가끔 나는 자네를 불신했었네. 나는 자네에게 사과하겠네. 나는 필요한 때에는 자네가 우리보다 낫다는 것을 알겠네. 자네는 행동하는데, 나는 공허한 말만을 할 줄 아네.”
베드로가 겸손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말한다. 유다는 칭찬을 기뻐하며 웃는다.
그들은 겟세마니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큰길 쪽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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