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2. 파스카 전 화요일 낮. 카이사르에 대한 세금에 관한 질문들과 죽은 이들의 부활
1947. 4. 1.
그들은 마치 예수께서 성전께서 들어가시기 전에 그분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기를 원치 않으셨던 것처럼 항상 전날 아침에 지나갔던 똑같은 한적한 오솔길을 통하여 시내로 들어가려고 한다. 성전에는 벳자타 연못 가까이에 있는 양의 문을 통하여 시내로 들어가면 빨리 도착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은 72명의 제자들 중 많은 이들이 키드론 개울 너머 다리 앞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회록색 올리브나무들 사이에서 주홍빛 옷을 입고 계시는 그분께서 나타나시는 것을 보자마자 그분께 다가온다. 그들은 함께 모여 시내를 향하여 나아간다.
어떤 악의적인 사람이 나타날지 항상 의심하면서 전방 언덕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는 베드로는 마지막 비탈들의 신록 사이에 한 무더기의 마른 잎들이 늘어져서 키드론 개울의 물 위로 드리워진 것을 본다. 이미 여기저기 녹과 같이 얼룩져 있는 오그라들고 죽어가고 있는 잎들은 불에 그을린 나무의 잎들과 비슷하다. 가끔 미풍이 불어와 잎들을 개울물 위에 떨어뜨린다.
“저것은 어제의 그 무화과나무로군요. 당신께서 저주하셨던 그 무화과나무에요!”
베드로가 손으로 마른 나무를 가리키고 선생님께 말씀드리려고 고개를 돌리며 외친다.
여느 때의 걸음걸이로 나아가시는 예수를 빼놓고는 그들 모두가 그리로 달려간다. 사도들은 다른 제자들에게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의 전의 상태를 알려주고, 그들 모두가 깜짝 놀라 예수를 바라보며 논평한다. 그들은 사람과 자연력에 대한 수많은 기적들을 보아왔다. 그러나 이 기적은 다른 많은 기적들보다 그들에게 더 충격적이다.
예수께서는 다가오시어 어리둥절하고 겁먹은 그 얼굴들을 보시고 미소 지으시며 말씀하신다.
“뭐라고? 너희는 내 말이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를 말라죽게 한 것에 이렇게 놀라느냐? 너희는 내가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사람들을 일으키고, 나병환자들을 고쳐주고, 소경들에게 시력을 주고, 빵조각들을 많아지게 하고, 폭풍우들을 가라앉히고, 불들을 끄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가 말라죽은 것에 놀라느냐?”
“그것은 무화과나무 때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당신께서 이것을 저주하셨던 어제는 무성했었는데, 지금은 말라 죽은 것이 사실입니다. 보세요, 이것들은 마른 찰흙처럼 바스러집니다. 가지들에는 더 이상 수액이 없습니다. 보세요, 이 가지들은 먼지가 되어버립니다.”
바르톨로메오가 그렇게 말하며 어렵지 않게 꺾은 가지들을 손가락으로 가루로 만든다.
“이것들은 수액을 가지고 있지 않다. 네 말이 맞다. 그리고 한 나무에도, 한 나라에도, 한 종교에도 더 이상 수액이 없고, 딱딱한 껍질과 쓸데없는 잎들, 즉 흉포함과 위선적인 외관만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다.
생명력으로 가득 찬 희고 내적인 수액은 성덕(holiness), 영성(spirituality)과 상응하고, 딱딱한 껍질과 쓸데없는 잎들은 의로운 영적 생명이 결여된 인류와 상응한다.
인간적인 것이 되는 종교들에게는 화가 있다. 그들의 사제들과 신자들은 더 이상 생명력 있는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지도자들이 잔인함 그 자체일 뿐이고, 열매 맺는 생각들이 결여된 울리는 굉음인 나라들에게는 화가 있다! 영혼의 생명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화가 있다!”
“하지만 만일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유력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비록 당신의 말씀이 옳다 해도 당신께서는 지혜롭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당신께서 말씀하시도록 허용했다고 해서 환상들을 즐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들이 회심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계산으로 인하여 그리된 것이라고 당신 자신께서 말씀하셨지요.
그렇다면 당신께서는 당신의 말씀의 가치와 결과들을 평가하시는 편이 낫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의 지혜 외에 세상의 지혜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세상의 지혜를 우리의 이익을 위하여 쓸 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국 지금 당장은 우리가 아직 세상에 있지, 하느님 나라에 있지는 않으니까요.”
가리옷 사람이 신랄하지는 않으나 현학적으로 말한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사물들을 자신의 관능성과 이기적인 고려들로 인하여 왜곡시키지 않은 채로 볼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항상 내가 보는 것의 진리를 말하겠다.”
“결론적으로 이 무화과나무가 당신이 그것을 저주했기 때문인지, 우연히… 죽었는지, 아니면 어떤 징조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필립보가 말한다.
“네가 말하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내가 한 것을 너희도 할 수 있다. 너희가 완전한 믿음을 가지는 데 성공한다면 말이다. 지극히 높으신 주님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가져라. 그리고 너희가 그것을 가지게 될 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너희는 그것과 같은 것과 그보다 훨씬 더한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만일 누군가가 기도의 힘과 주님의 선하심에 대한 완전한 신뢰를 가지는 데 성공한다면, 그는 이 산에게 ‘거기서 옮겨져 바다로 던져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만일 그가 그렇게 말하면서 마음속에서 망설이지 않고 자기가 명하는 것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가 말해왔던 것은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저희는 마술사들처럼 보일 것이고, 그래서 저희는 돌에 맞아 죽을 것입니다. 마술을 행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렇게 규정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그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기적일 것이고, 우리에게 치명적일 것입니다.”
가리옷의 유다가 머리를 흔들며 말한다.
“자네는 어리석네. 자네는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니 말이야.”
다른 유다가 반박한다.
예수께서는 가리옷의 유다에게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과거의 가르침인데, 이 시간에 나는 그것을 되풀이하고 있다. 너희가 너희의 기도 안에서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너희는 그것을 얻을 것이라고 믿어라. 그러면 너희는 그것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기도하기 전에 누군가에게 분노하고 있다면, 먼저 용서하고 화해하여 하늘에 계시고, 너희를 용서하시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그토록 많이 너희를 도와주시는 너희의 아버지를 친구로 가져라.”
그들은 성전 안으로 들어간다. 안토니아의 병사들이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본다. 그들은 가서 주님께 예배드리고 나서 라삐들이 가르치고 있는 마당으로 돌아온다.
사람들이 모여 예수의 주위에서 붐비기 전에 몇몇 사포림들과 이스라엘의 박사들과 헤로데 당원들이 그분께로 다가와 거짓 경의를 가지고 그분께 인사드린 다음에 말한다.
“선생님, 저희는 당신께서 지혜로우시고 진실하시며, 진리와 정의를 빼놓고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고려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들을 가르치시며, 당신에 대하여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고려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을 선으로 인도하는 것만을 유의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저희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적법합니까, 불법입니까? 당신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께서는 날카롭고 엄숙한 명민함을 가진 시선으로 그들을 보시며 대답하신다.
“당신들은 왜 위선적으로 나를 시험하고 있소? 당신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내가 위선적인 경의에 속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세금 납부에 쓰이는 것들 가운데 동전 한 닢을 나에게 보여주시오.”
그들은 그분께 동전 한 닢을 보여드린다. 그분께서는 그것을 앞뒤로 살펴보시고 그분의 왼쪽 손바닥에 놓으시고 오른손 검지로 그것을 두드리시며 말씀하신다.
“이것은 누구의 초상이며, 이 명문(銘文)은 무어라고 말합니까?”
“그 초상은 카이사르의 것이고, 그 명문은 그의 이름입니다. 현재의 로마 황제인 카이우스 티베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리시오.”
그분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그 동전을 그분께 드렸던 사람에게 돌려주시고 나서 그들에게 등을 돌리신다.
그분께서는 그분께 질문하는 수많은 순례자들 중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을 들으시고, 그들을 위로하시며, 그들의 죄를 사해주시고 병을 고쳐주신다. 시간이 흘러간다.
그분께서는 성전에서 나오시어 아마도 성문 밖으로 나가시는데, 그 일을 맡은 라자로의 하인들이 그분께 가져다드리는 음식을 드시려고 그러시는 것 같다.
그분께서는 오후에 성전으로 돌아오신다. 그분께서는 지칠 줄을 모르신다. 은총과 지혜가 병자들 위에 얹으시는 그분의 손들로부터, 그리고 그분께 다가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개별적인 조언을 해주시는 그분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온다. 그분께서는 그분께서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시기 전에 모든 사람을 위로해주시고, 그들을 고쳐주시기를 갈망하시는 것 같다.
지금은 석양 무렵이다. 피로에 지친 사도들은 임박한 파스카로 인하여 군중이 성전 마당들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을 놀라워하며 회랑 아래 바닥에 앉아 있다. 그때 몇 명의 부자들이 지칠 줄 모르시는 선생님께 다가온다. 그들의 화려한 옷차림으로 보건대, 그들은 확실히 부자들이다.
졸고 있던 마태오가 일어나 다른 사도들을 흔들어 깨운다.
“몇 명의 사두가이들이 선생님을 향하여 가고 있어. 그분을 혼자 내버려두지 말세. 그래서 그들이 다시 그분을 모욕하거나 해치고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세.”
그들 모두가 일어나서 그분의 주위로 가서 그분을 에워싼다. 나는 그들이 성전에 왔을 때나 6시에 다시 왔을 때 보복들이 있었던 것을 알아차릴 것 같다.
사두가이들은 지나치게 몸을 숙여 예수께 경의를 표하며 말한다.
“선생님, 당신께서 헤로데 당원들에게 그토록 지혜롭게 대답하셨기에 저희도 당신의 빛의 광선 하나를 얻기를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들어보십시오. 모세는 말했습니다. ‘한 남자가 자녀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과부가 된 형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잇게 해라.’
그런데 저희 가운데 일곱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첫째가 어떤 처녀와 결혼했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아내를 자기 동생에게 남겨주었습니다. 둘째도 자식 없이 죽었고, 그래서 그의 두 형들이 남긴 과부와 결혼한 셋째도 마찬가지였고, 그렇게 일곱째까지 내려갔습니다. 마침내 일곱 형제들 모두와 결혼했던 여자도 죽었습니다.
저희에게 말씀해주십시오. 만일 사람들이 부활하고, 우리 영혼들이 우리가 죽은 후에도 살아남아 마지막 날에 우리 육체와 결합하여 다시 산 사람들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 참으로 진실이라면, 그 7형제 중 누가 그 여자를 차지하겠습니까? 그 일곱 명 모두가 땅에서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았었으니 말입니다.”
“당신들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당신들은 성경도, 하느님의 능력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내세의 삶은 현세의 것과는 매우 달라 영원한 나라에서는 여기 있는 것처럼 육체의 필요들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으로 최후의 심판 후에 육체들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날 것이고, 그들의 불멸의 영혼들과 결합하여 지금 나와 당신들의 육체가 살아 있는 것과 같이, 아니 더 살아 있는 전체 존재들(whole beings)을 다시 만들겠지만, 더 이상 지금 있는 법칙들과, 특히 충동들과 남용들에 지배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한 후에 남자들과 여자들은 결혼하지 않을 것이고, 결혼하지는 않지만 신성하고 영적인 완전한 사랑 안에서 하늘에서 살고 있는 하느님의 천사들처럼 될 것입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하여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가시덤불에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지 못했습니까? 그때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모세에게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이 있었지만 더 이상 있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만드시기 위하여 ‘나는 …이었다(I was)’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나는 …이다(I am)’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은 있기(are) 때문입니다. 불멸하는 사람들로요. 시대들이 지속하는 동안은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불멸하는 부분으로 존재하고, 그 다음에는 부활한 그들의 육체들과 함께 영원히 존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모세와 예언자들과 의인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리고 불행히도 카인이 존재하고, 대홍수 시대의 사람들과 소돔 사람들과 대죄(mortal sin) 가운데에서 죽은 모든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존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시고, 산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당신께서도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실 겁니까?”
그들은 예수를 시험하기 위하여 묻는다. 그들은 자기들이 유순한 것에 벌써 싫증을 낸다. 그들의 증오는 엄청나게 커서 그들은 자제할 줄을 모른다.
“나는 ‘살아 있는 존재’이고 내 살은 부패를 모를 것입니다. 우리는 계약의 궤를 빼앗겼고, 지금의 것도 상징으로서 빼앗길 것입니다. 우리는 성막을 빼앗겼고, 그것은 파괴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참 성전을 빼앗고, 파괴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적들이 자신들이 그렇게 했다고 믿고 있을 때, 그때야말로 하느님의 진짜 성전이 참다운 예루살렘에 그의 모든 영광 안에서 세워질 것입니다. 안녕히 계시오.”
그렇게 말씀하시며 그분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당으로 급히 가신다. 왜냐하면 은 나팔들이 저녁제사로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다.
“요한과 야보고의 어머니가 그녀의 아들들을 위하여 자리 하나를 청한 환상에서 내가 너에게 ‘내 잔’이라는 단어들을 너에게 쓰게 하였듯이 나는 너에게 어제의 환상에서도 ‘이 돌에 부딪치는 자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질 것이다’라는 구절에 주의하라고 말하겠다. 번역에는 항상 ‘에(on)’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나는 ‘에(on)’라고 말하지 않고 ‘에 부딪쳐(against)’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것은 내 교회(the Church)의 원수들에 대한 예언이다. 내 교회는 모퉁이 돌이므로 그것을 거슬러 부딪치는 자들은 부서질 것이다. 지난 20세기동안 땅의 역사는 내가 말한 것을 확증했다. 교회의 박해자들은 그들이 모퉁이 돌에 덤벼들면 부서진다.
그러나 자기들이 교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자기들은 하느님의 벌들로부터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내 신부이고 내 신비체(My Mystical Body)인 교회의 머리이자 신랑인 나의 단죄의 무거운 벌이 누군가에게 떨어질 때 그 사람도 부서질 것이라는 것도 사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살아 있고, 내 종들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 율법학자들과 사두가이들의 반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말한다.
이 마지막 환상들 안에, 예컨대 오늘의 환상 끝에 있는 문장들 내가 불임의 무화과나무에 대하여, 그리고 다른 대목들에서 말하는 문장들처럼 복음서들에는 없는 문장들이 있는 것에 대하여, 그 비평가들은 복음사가들도 항상 그 종족에 속했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일체의 과장된 충돌은 새 입교자들에게 과격하고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사도행전을 다시 읽어본다면, 그들은 수많은 상이한 생각들의 융합은 평화적이지 않았고, 그들이 서로의 공로들을 인정하면서 서로를 우러러보는 동안에도 그들의 생각들은 다양하고 항상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견해차들이 없지 않았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복음사가들은 성령께 조명되어 이 생각과 저 생각 사이의 보다 깊은 균열들을 피하기 위하여 그들의 작품들 안에서 히브리인들의 지나친 민감성을 자극할 수도 있고, ‘그들도 우리와 같다’고 말하면서 물러가지 않게 하기 위하여 교회의 핵을 이루는 히브리인들은 완전하다고 믿을 필요가 있었던 이방인들을 분개하게 할 수도 있는 몇 개의 문장들을 의도적으로 생략했다.
그리스도가 당했던 박해들을 알리는 것은 좋았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특히 상류 계급들의 영적인 질병들을 알리는 것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복음사가들은 가능한 한 그것들을 가렸다.
그들(현대의 비평가들)은 복음서들이 나의 내 아버지께로의 승천 후 그것들이 더 늦게 쓰일수록 내 요한의 명쾌한 복음서에까지 점점 더 분명해졌음을 알아야 한다.
오로지 요한만이 드러내놓고 유다를 ‘도둑’이라고 불러 바로 그 사도단의 가장 고통스러운 결점들마저 온전히 말해주고, 유다인들의 비열한 행위들(제6장―나를 왕으로 삼으려는 듯한 가장된 의지, 성전에서의 논쟁들, ‘하늘에서 내려온 빵’에 관한 강론 후 많은 사람이 나를 버린 것, 토마스의 불신)을 완전하게 보고한다.
교회가 이미 강해졌음을 볼 만큼 충분히 살았던 마지막 생존자인 그는 다른 복음사가들이 감히 들어 올리지 못했던 휘장들을 들어 올린다.
그러나 지금 하느님의 영께서는 사람들이 이 말씀들도 알려지고 그로 인하여 주님께서 찬미받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의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만큼 더 많은 빛들이고 안내들이기 때문이다.”
“너는 여기 화요일의 두 번째 부분 즉 겟세마니에서의 밤에 12사도들에게 주신 가르침들을 삽입해라.”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 > 수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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