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2. 최초의 부모들에 관한 다른 가르침들. 카인과 유다의 유사성
1944. 4. 5.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창세기에 이렇게 쓰여 있다. ‘그러자 아담은 자기의 아내를 하와라고 불렀는데, 그녀는 사는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오! 그렇고말고. 여자는 하느님께서 아담의 동반자가 되도록 남자의 갈빗대로부터 지어 만드신 ‘여장부(Virago)’에게서 태어났다. 여자는 그런 방식으로 태어나기를 원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어떤 천박한 육욕 없이도 후손을 가지는 기쁨을 그녀에게 주시는 기쁨을 그분 자신을 위하여 유보하시어 그녀에게 숨기셨던 것을 그녀가 알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아담의 반려자는 악 속에 감추어져 있는 선과, 특히 선 안에, 외관상의 선 안에 감추어져 있는 악을 알기를 원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루치페르에게 유혹되어 홀로 하느님만이 아무런 위험 없이 아실 수 있는 지식을 갈망했고,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여자 창조자(creatress)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선의 힘을 부당하게 씀으로써 그 힘을 타락시켜 악한 행위로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느님께 대한 불복종이요, 악의와 육체의 탐욕이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그녀는 ‘어머니’였다. 만물의 더럽혀진 여왕의 무죄성에 대하여 만물이 무한히 통탄했다! 그리고 뒤늦게 그 중요성과 무효화가 불가능함을 깨달은 여왕은 자기의 모독에 대하여 슬피 탄식했다! 암흑과 대이변들이 무죄한 이(the Innocent)의죽음과 동시에 일어났다면, 암흑과 폭풍우가 첫 부모들의 마음속에서 무죄성과 은총의 죽음에 동반했다. 고통이 땅 위에 태어났다.
그러나 하느님의 섭리는 그것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원치 않으시어, 그분께서는 고통의 많은 세월 후에 고통에서 나올 수 있는 기쁨을 너희에게 주셨다. 만일 너희가 의로운 정신들로 살 줄 안다면 말이다.
만일 인간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생명의 주인이 되었다면, 사람에게 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가 자기의 죄악들과 그것들의 끊임없는 증가를 기억하며 살아야 했다면, 그것도 불행한 일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빛을 알도록 창조 되었건만 암흑이 중독시켜 그 희생물로 만든 피조물들인 너희가 죄짓지 않고 살기는 숨 쉬지 않고 살기보다 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암흑! 그것이 끊임없이 너희를 에워싸고 있다. 그것은 고해성사가 취소한 것을 되살아나게 하여 너희를 목 조르고, 너희가 하느님의 것이 되겠다는 의지로 그것에 저항하지 않기 때문에 세례로 인하여 무해하게 되었던 그 독으로 다시 너희를 부패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사람의 불순종의 표징들이 분명하여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그를 천상의 복락들의 장소로부터 내보내시어 그가 자기의 도둑질하는 손을 생명의 나무로 들어 올려 다시 한 번 그리고 더 중대한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더 이상 그분의 자녀들을 믿으실 수 없었고, 그분의 낙원에서 안전하다고 느끼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분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피조물들에게 사탄이 덫들을 놓으려고 한번 그곳에 침입했고, 그가 그들이 죄 없을 때 그들을 죄짓도록 유인할 수가 있었다면, 그는 그들이 더 이상 무죄하지 않게 된 지금 그들을 훨씬 더 쉽게 죄로 유인하는 데 성공할 것이다.
사람은 낳는 자(Generator)로서의 보물을 하느님께 남겨두지 않고 모든 것을 소유하기를 원했다. 따라서 그분께서는 그를 폭력을 통하여 얻었던 자기의 재물을 가지고 유배지로 가게 하시어 자기의 선물들을 빼앗긴 기가 꺾인 왕으로 하여금 자기의 죄를 항상 생각나게 하셨다.
낙원의 사람이 땅의 사람이 되었다. 그리하여 생명의 나무로 자기의 손을 뻗칠 수 있는 유일한 자가 와서 온 인류를 위하여 그 열매를 딸 수 있게 되기까지 고통의 시대들이 지나야 했다. 그런데 그는 자기의 꿰뚫린 두 손으로 그것을 따서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이 하늘의 공동 상속자가 되고 영원히 사는 생명의 소유자들이 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창세기는 이렇게도 말한다. ‘그 후 아담은 자기의 아내 하와와 동침했다.’
그들은 선의 비밀들과 악의 비밀들을 알기를 원했었다. 그러니 지금 그들이 육체 안에서 자신들을 재생산해야 하는 고통을 경험하는 것은 당연했다. 사람이 창조할 수 없는 것, 즉 하느님에게서 오는 불똥이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불어넣으시는 숨이며, 육체에 영원한 창조주의 표를 찍는 도장인 영혼을 위해서만 하느님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으며 말이다. 그리하여 하와는 카인을 낳았다.
하와는 자기의 죄를 짊어지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사실에 너희의 주의를 촉구하려고 한다. 하와는 자기의 죄를 짊어지고 있었다. 고통은 아직 그녀의 죄를 줄이기에 충분할 정도로 경험되지 못했다. 그녀는 독소들을 지니고 있는 유기체와 같이 자기의 아들에게 자기 안에 가득 차 있는 것을 전해주었다.
이리하여 하와의 맏아들 카인은 냉혹하고, 시기심 많고, 성마르고, 음란하고, 악하게 태어나 본능에 관해서는 야수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초자연적인 것에 관해서는 야수들보다 훨씬 나았다. 비록 그의 포악한 자아 안에서 그가 하느님을 원수로 생각했고, 자기가 진실한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믿었으며, 하느님에 대한 공경을 거부하기는 했어도 말이다. 사탄이 하느님을 조롱하라고 그를 부추겼다. 하느님을 조롱하는 자는 세상에서 아무도 존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조롱하는 자들과 접촉하는 사람들은 쓰라린 눈물을 맛보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자식들로부터의 존경어린 사랑의 바람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들의 배우자의 충실한 사랑의 확실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친구들의 정직한 우정의 확실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아들의 냉혹함으로 인하여 많은 눈물이 하와의 얼굴로 흘러내렸고, 그녀의 마음은 쓰라린 눈물로 부어올랐다. 그 눈물들은 그녀의 마음속에 회개의 씨앗을 뿌렸고, 그녀의 잘못의 감소를 얻게 했다. 하느님께서는 뉘우치는 사람들의 고통을 보시고 용서하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와의 둘째 아들은 자기의 어머니의 눈물로 영혼이 씻기게 되었고, 그래서 자기의 부모들에게 상냥하고 공손했으며, 그가 자기의 주님의 전능성이 하늘들로부터 빛나는 것을 느꼈던 그분께 헌신했다. 그는 비탄에 빠진 자기의 어머니의 기쁨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고통의 길은 죄의 경험 안의 그녀의 길에 비하면 길고 고통스러워야 했다. 후자에는 관능들의 전율이 있었고, 전자에는 고통의 전율들이 있었다. 전자에는 입맞춤들이, 후자에는 피가 있었다. 후자에는 한 아들이, 전자에는 한 아들의 죽음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착함으로 인하여 그녀에게 가장 사랑스러웠던 아들의 죽음이었다.
아벨은 죄지은 어머니를 위한 정화의 도구가 된다. 그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정화였느냐! 그녀는 형제살해로 인하여 공포에 떨고 있는 땅을 자기의 울부짖음으로 채웠고, 한 아들의 피에 한 어머니의 눈물을 섞었다. 그 동안에 하느님과 하느님께 사랑받는 자기 동생에 대한 증오로 인하여 그를 피 흘리게 한 자는 가책에 쫓겨 도망치고 있었다.
주님께서는 카인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왜 화내느냐? 네가 나에 대한 너의 의무를 소홀히 하여 내가 너를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하여 너는 왜 화내느냐?’
땅 위에 얼마나 많은 카인들이 있느냐? 그들의 나에 대한 예배는 하찮거나 위선적이거나 실재가 없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내가 사랑으로 자기들을 바라보고, 행복으로 그들을 채워주기를 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왕이시지, 너희의 종이 아니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아버지시다. 정의에 따라 판단한다면, 아버지는 결코 종이 될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의로우시지만, 너희는 그렇지 않다. 그분께서는 정의로우시다.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넘치도록 은혜를 베푸시는데 너희가 그분을 아주 적게 사랑한다면, 그분께서는 너희를 벌하시는 것을 확실하게 피하실 수 없다. 너희가 그분을 업신여기기 때문이다.
정의는 두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 한 길이 정의의 길이다. 너희는 너희가 행하는 대로 얻게 된다. 만일 너희가 착하다면 너희는 선을 얻고, 너희가 악하다면 너희는 악을 얻는다. 그리고 하느님의 법을 거슬러 반역하는 너희 생활방식으로 인하여 너희가 얻어야 할 악에 비하면, 너희가 얻는 선이 항상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믿어라.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일 네가 선을 행한다면, 너는 선을 가지게 될 것이고, 만일 네가 악을 행한다면, 죄가 즉시 네 문 앞에 와 있을 것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냐?’ 사실 선은 끊임없는 영적 상승으로 이끌고, 점점 더 큰 선행들을 할 수 있게 하여 완덕에까지 이르게 하고, 성인이 되게 한다. 반면에 악에 굴복하면 타락하고 완덕에서 멀어지며, 마음들에 들어와 점점 더 큰 유죄성으로 그 마음을 내려가게 하는 죄의 힘을 알게 된다.
‘그러나’ 또한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나 죄의 욕망이 네 아래 있을 것이나 네가 그것을 제어해야 한다.’
그렇다.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죄의 종들로 만들지 않으셨다. 격정들은 너희 아래 있지, 너희 위에 있지 않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 지성과 너희 자신들을 억누를 수 있는 힘을 주셨다. 하느님의 엄격하심으로 얻어맞은 최초의 사람들에게도 그분께서는 지성과 윤리적인 힘을 남겨주셨다. 그리고 구속자가 너희를 위하여 제헌을 완수한 지금, 너희는 지성과 힘을 도와주는 은총의 강물들을 가지고 있어 악한 갈망들을 지배할 수 있고, 지배해야 한다. 은총으로 강화된 너희의 의지를 통하여 너희는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태어났을 때 천사들이 땅을 향하여 노래했다.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 평화.’
나는 너희에게 은총을 되돌려주려고 왔는데, 너희의 착한 뜻들과 은총의 결합을 통하여 평화가 사람들에게 올 것이다. 평화는 하느님의 하늘의 영광이다(Peace: the Glory of God's Heaven).
카인은 자기의 아우에게 ‘들로 나가자’고 말했다.’ 살인자의 배신을 감추고 있는 미소 뒤의 거짓말이다. 범죄행위는 그 희생자들과 그것이 속이려고 애쓰는 세상 사람들에게 항상 거짓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심지어 하느님도 속이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들을 읽으신다. ‘들로 나가자’ 많은 세기들 후에 한 사람이 말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그는 그에게 입 맞추었다.
두 카인들은 자기들의 범죄들을 무해한 외양들 속에 감추고, 그들의 질투, 분노, 오만, 그리고 그들의 모든 나쁜 본능들을 희생자에게 분출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을 제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의 영혼을 그들의 타락한 자아들의 노예들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와는 속죄를 통하여 올라가고, 카인은 지옥을 향하여 내려간다. 실망이 그를 붙잡아 그를 심연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실망과 함께 인간의 처벌에 대한 육체적인 비겁한 공포라는 마지막 치명적인 일격이 죄악으로 인하여 이미 쇠약해진 영혼에게 온다. 영혼이 죽은 사람은 더 이상 하늘을 마음에 두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의 동물적인 생명 때문에 떨고 있는 동물이다.
죽음, 그것의 모습은 의인들에게는 하나의 미소이다. 왜냐하면 의인들은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을 소유하는 기쁨으로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는다는 것은 자기의 마음의 지옥에서 사탄의 지옥으로 영원히 건너가는 것을 뜻하는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환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처럼 그들은 도처에서 자신들을 칠 태세를 갖추고 있는 복수를 본다.
그러나 나는 의인들에게 말하고 있는데, 너희는 설사 죄 지은 마음의 가책과 암흑이 죄인의 환각들을 허용하고 부추긴다 해도, 누구도 자기 자신을 형제에 대한 재판관으로 세우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집행관으로 세우는 것을 더욱더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재판관은 하느님 한 분뿐이시다.
사람들의 정의가 재판소들을 만들어놓았고, 정의를 집행하는 일이 그것들에게 맡겨지게 되었지만, 그 이름을 모독하고 그들 자신들의 격정들에 의하여 자극받거나 인간의 권력들의 압력을 받아 재판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자기 동료들 중 한 사람의 사적 집행자(private excutioner)로 만드는 사람에게는 저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급한 분노가 아니라 냉정한 인간적인 이해관계로 불의하게 사람을 보내 죽이거나 감옥의 수치를 겪게 하는 사람에게는 더 큰 저주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카인을 치는 사람이 누구든 그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시피 살인한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일곱 배나 더 큰 벌을 받을 것인데, 사탄에 대한 예속으로 인간적인 횡포로 정당하지 않게 단죄하는 자들은 하느님의 준엄함에 의하여 일흔일곱 배나 벌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쓰러진 사람들을 너희의 승리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서로 죽이면서도 너희가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저주받아 떨어질 함정을 너희의 발밑에 파고 있는 것임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이것을 항상, 그리고 특히 지금 이 순간에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을 죽이지 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와는 자신의 속죄의 길을 올라간다. 자기의 죄의 증거들 앞에서 뉘우침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커진다. 그녀는 선과 악을 알기를 원했었다. 그런데 자기가 잃어버린 선의 기억은 그녀에게 갑자기 소경이 된 누군가의 태양에 대한 기억과 같고, 악은 살해당한 자기 아들의 시체 안에, 자기의 앞에 있고, 동생을 죽이고 도망친 자기의 아들이 남긴 빈 공간으로 인하여 자기의 주위에 있다.
그 다음에 셋이 태어났다. 그리고 셋은 에노스를 낳았다.그는 최초의 사제이다.
너희의 생각들은 너희의 과학의 강물들과 함께 부풀어 오른다. 그래서 너희는 진화에 대하여 너희의 자연발생의 표시라고 말한다. 동물 인간은 진화하여 초인이 될 것이라고 너희는 말한다. 그렇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길 안에서, 내 영역 안에서이지 너희의 영역 안에서가 아니다. 영장류의 상태에서 사람들의 상태로 넘어옴으로써가 아니라, 사람들의 상태에서 영들의 상태로 넘어옴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이다.
선(腺)에 대하여 말하고, 뇌하수체나 송과선에 대하여 말하면서 너희의 입들을 채우고, 너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아니라 앞서간 시대와 뒤에 올 시대에서 그것을 취하여 그것을 생명의 자리에 위치시키는 너희는 너희의 참된 선(腺), 즉 너희를 생명(Life)의 영원한 소유자들로 만드는 선(腺)은 너희의 영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너희의 영혼이 발달할수록 너희는 하느님의 빛들을 더 소유하게 될 것이고, 사람들에서 신들(gods)로, 불사의 신들로 진화하여, 하느님의 갈망과 생명나무에 관한 그분의 명령을 침해하지 않고, 정확히 하느님께서 너희가 그것을 소유하기를 원하시는 대로 이 생명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그것을 영원하고 빛나도록 창조하셨고, 너희를 그분 자신 안에 흡수하고 그분의 재산들을 너희에게 전달하는 그분의 영원성과의 축복받은 포옹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너희의 영혼들이 진화하면 진화할수록 너희는 하느님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고 섬긴다는 뜻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너희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그분께 기도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그것은 땅에서 그들의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제들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축성된 사람이 사제이지만,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사랑이 가득하고 충실한 신자도 사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랑의 충동으로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희생자 영혼이 사제이다.
하느님께서는 복장을 보시지 않고, 마음(mind)을 보신다. 그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나는 성직자다운 것이라고는 그 삭발례 밖에 가진 것이 없는 삭발례 받은 사람들을 많이 본다. 또한 나는 내면에 사랑을 가지고 그 사랑으로 자신들을 불사르도록 허락하는 많은 평신도들도 보는데, 그 사랑이 그들을 세상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알려진 내 사제들로 만드는 성직서품의 기름이다. 나는 그들에게 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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