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71, 믿음과 희망과 사랑에 관하여
하느님의 살아 있는 성전인 영혼
1899년 9월 9일
1 예수님께서 계속 오시지만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오신다. 내가 보기에 각기 다른 세 개의 뿌리를 가진 한 나무 줄기가 그분의 복되신 심장에서 자라난 것 같았다. 이 줄기가 그분의 심장에서 뻗어 나와서 나의 심장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2 그것은 그분의 심장에서 나오면서 매우 많은 가지들을 뻗고 있었고, 이 가지들에는 꽃과 열매들과 진주와 보석들이 주렁주렁 달려 더없이 찬란한 별들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 사랑하올 예수님은 이 나무 그늘 아래서 즐거운 놀이를 하고 계셨는데, 특히 수많은 진주들이 나무에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진주들이 지극히 거룩하신 그분의 인성을 꾸미는 아름다운 장식품이 되고 말았다. 그분께서는 그와 같은 모습으로 계시면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3 “극진히 사랑하는 딸아, 이 나무에서 보이는 세 개의 뿌리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다. 네가 보다시피 줄기가 나에게서 나와 너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는데, 이는 영혼이 소유하고 있는 선(善)치고 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은 없다는 것을 뜻한다
4 그러므로 이 줄기가 믿음과 희망과 사랑 다음으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모든 선이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리고, 영혼 혼자서는 그 자신의 허무외에는 가진 것이 없으며 이 허무(한 존재)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일은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가서 원하는 일을 할 자유를 주는 것임을 알리는 것이다.
5 동시에 다른 허무들, 곧 다른 영혼들도 있는데 그들은 자기네가 가진 자유 의지로 내게 대적하는 이들이다. 그런즉, 이에 대한 지식이 없고서는 줄기가 가지를 뻗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도 못하며 다른 어떤 선도 낳지 못하는 것이다.
6 이 나무에서 나온 가지들은 온갖 꽃과 열매와 진주와 보석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데 이는 한 영혼이 지닐 수 있는 다양한 덕행들이다. 그런데, 누가 이리도 아름다운 나무에 생명을 주겠느냐? 물론 뿌리이다.
이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모든 것을 포괄한다는 것을 뜻한다. 뿌리는 그 자체 안에 모든 덕행을 담고 있으므로 나무의 기초와 근거가 된다. 뿌리가 없고서는 다른 어떤 덕행도 자랄 수 없는 것이다.”
7 그리하여 나는 꽃은 덕행을 상징하고 열매는 고통을 상징하며 진주와 보석은 순전히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겪는 고통을 상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이유로, 진주들이 우리 주님 주위에 떨어지면서 그분을 위한 아름다운 장식품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8 이제 예수님께서는 이 나무 그늘 아래 앉으시더니, 아버지다운 애정이 잔뜩 서린 눈길로 나를 바라보셨다. 그리고 억누를 길 없도록 황홀한 사랑에 사로잡히신 것처럼 나를 꽉 껴안고 이렇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9 “너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는 나의 순박한 비둘기, 나의 소중한 집, 성부와 성령과 함께 내가 즐겁게 지내는 나의 살아 있는 성전이다. 너의 끊임없는 열망이 내가 사람들에게서 줄곧 받는 모욕들로부터 나를 구하여 원기를 회복시켜 준다.
10 나는 네가 알기 바란다.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은 너무나 커서 그 일부를 네게 감추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은 네가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만일 내가 그 사랑을 다 보여 주면 너는 미칠 뿐더러 삶을 계속할 수도 없을 것이다. 너의 약한 본성이 내 사랑의 불꽃에 타서 사그라질 테니 말이다.”
11 이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깊이 모를 심연처럼 내 존재의 허무 속에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특히, 주님께서 내게 주시는 수많은 은총에 대해 곧잘 잊어먹고 냉랭한 마음이 되기도 하는 나 자신을 보고 그 불완전을 절감했기 때문에 당황해서 한줌의 재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분의 사랑이 나의 굳은 마음을 처이기시기를 확신을 가지고 바라면서, 모든 것이 결국 그분의 영광과 영예를 위한 것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2권-72, 오로지 하느님을 위하여 겪는 고통의 효과와 가치
1899년 9월 16일
1 아침에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오셨는데, 나는 마귀일까 봐 불안해서 그분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가 당신 이마에 성호를 긋겠습니다.”
2 나는 그렇게 그분의 이마에 성호를 그은 후에 안심하고 평화 속에 있었다. 예수님은 그러나 지쳐 보이셨고 내게서 쉬기를 원하셨다. 나도 이 며칠 동안 고통 중에 있었고, 예수님께서 아주 드물게 오셨던 터라 그분 안에서 쉬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좀 말씨름을 한 후에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내 마음의 생명은 사랑이다. 나는 열이 펄펄 끓는 병자와 같다. 열이 내릴 방도를, 곧 자기를 집어삼키려는 불길에서 구제될 길을 찾는 병자 말이다. 나의 열은 다름아닌 사랑이다.
4 그런데 나를 태우는 이 불길에 가장 적절한 서늘함을, 그 위로를 내가 어디에서 얻는지 너는 알겠느냐? 내 가장 사랑하는 영혼들이 오로지 나를 위하여 겪는 고통과 고뇌로부터이다. 그래서 나는 영혼이 나를 향하여 ‘주님, 저는 오직 당신께 대한 사랑으로 이 고통을 감수하고자 합니다.'하고 말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5 그렇고 말고! 그것이야말로 나의 고통을 덜어 주며 나를 태우는 불길을 끄는 서늘함이요, 가장 적절한 위로이다.”
6 그런 후에 기운이 빠져 나른해진 그분께서는 쉬시려고 내 팔 안으로 몸을 던지셨다. 그렇게 쉬시는 동안, 나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특히 그분을 위하여 겪는 고통에 대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오, 그것은 얼마나 값을 헤아릴 수 없도록 귀중한 주화(鑄貨)인가! 만일 모든 사람이 이를 안다면 누가 더 많이 고통을 받는지 보려고 경쟁하련마는! 그러나 이 값진 주화에 대한 지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근시안적이어서 결국 그 지식을 얻지 못하고 만다는 생각이 든다.
2권-73, “믿음이 왕이고 사랑이 여왕이라면,
희망은 모든 것을 평화롭게 하는 화해의 어머니이다.”
1899년 9월 19일
1. 오늘 아침 나는 좀 불안했다. 특히, 예수님이 아니라 마귀가 오면 어쩔까 싶어서였다. 또한, (산 제물이라는) 나의 신분이 하느님의 뜻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있었다. 이렇듯 마음이 어수선할때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나는 네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기 바란다. 네 정신이 나에게서 흩어지기에 내가 먹을 음식이 없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것과 내 안에 너 자신을 내맡기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여라. 이와 같이 하는 것이 내 마음에 드는 음식을 마련하는 길이다. 그것도 네가 하는 것처럼 할 수 있을 때에 이따금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하는 것이다. 너 자신을 내 안에 내맡기고 나를 사랑함으로써 너의 뜻이 네 하느님을 위한 음식이 된다면, 그것이 너의 가장 큰 행복이 되지 않겠느냐?”
3. 나중에 예수님께서 내게 당신 심장을 보여 주셨는데, 그 안에 세 개의 각기 다른 빛의 구체(球體)들이 하나의 광구(光球) 를 이루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분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내 심장 안에서 보는 이 빛나는 구체들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다. 이는 내가 고통 속에 있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려고 땅으로 가져와서 주었던 선물이다. 그러므로 너에게도 더욱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다.”
4. 그분께서 이 말씀을 하시자 그 빛나는 구체들로부터 수많은 빛의 가닥이 나와서 내 영혼을 그 속에 잠기게 했는데, 마치 내가 일종의 그물 속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5. “이것이 네 영혼이 전념하며 살기를 내가 바라는 처소이다. 먼저 믿음의 날개로 날아올라 저 빛 속으로 몸을 던져라. 거기에서 너는 너의 하느님인 나에 대해서 한층 더 많은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됨에 따라 너라는 하찮은 존재가 말하자면 산산이 흩어지는 느낌이리니 너를 붙잡아 둘 것이 도무지 없을 것이다.
6. 그런즉 한층 더 높이 날아올라서 희망의 끝없는 바다 속으로 몸을 던져라. 그것은 내가 지상 생활 동안 획득했던 모든 공로이고 또한 인간에게 주기도 했던 수난의 모든 고통이다. 이것이 네가 믿음의 무한한 재산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 재산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7. 그러므로 네가 나의 공로를 네 공로처럼 쓴다면 더 이상 너의 허무 속에 잠기거나 그 깊이 속에 떨어지는 느낌이 들지 않을 것이고, 새로운 생명을 받아 대단히 아름답고 부유해져서 하느님의 눈길을 끌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희망은 영혼에게 용기와 힘을 주어, 온갖 풍상(風霜)을 다 겪은 기둥처럼 견실하게 만드는데, 여기의 온갖 풍상은 삶의 갖가지 고통을 말한다.
8. 희망은 또한 영혼으로 하여금 믿음의 무한한 풍요 속으로 겁도 없이 뛰어들게 할 뿐만 아니라 그 모든 재산의 임자가 되게 하기도 한다. 그렇다. 희망은 영혼이 가고 싶은 데로 가게 한다. 희망은 하늘의 문이다. 희망만이 하늘을 열 수 있으니, 진실로 희망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얻기 때문이다.
9. 그런즉,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하느님을 바로 자기의 소유로 삼은 영혼은 그 즉시 사랑의 무한한 바다 속에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사랑과 함께 믿음과 희망도 데려와서 그 바다 속에 잠기게 하기에 그 자신의 하느님인 나와 하나가 된다."
10. 사랑하올 예수님께서는 잇달아 이렇게 말씀하셨다. "믿음이 왕이고 사랑이 여왕이라면, 희망은 모든 것을 평화롭게 하는 화해의 어머니이다! 믿음과 사랑만으로는 여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희망은 화해의 끈이어서 모든 것을 평화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혼이 믿음으로 드높여지면 그 아름다움과 거룩함과 사랑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하느님 사랑에로 마음이 끌림을 느낀다.
11. 그러나 자기가 얼마나 부족한지, 하느님을 위해서 행하는 것이 얼마나 없는지, 마땅히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얼마나 그렇지 못한지를 보고 낙담과 괴로움에 빠져 감히 그분께 다가갈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때 평화를 이룩하는 이 어머니가 서둘러 나와서 믿음과 사랑 사이에 자리를 잡고 화해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즉 그 영혼의 평화를 회복시키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고, 도움과 새로운 힘을 주며, 왕인 믿음과 여왕인 사랑 앞으로 데리고 간다.
12. 어머니는 그를 위해서 변호해 줄 뿐더러, 어머니 자신의 공로인 새로운 강물도 그 앞에 흘러들게 주면서 기꺼이 받아들이라고 당부한다. 그러면 믿음과 사랑이 그리도 자상하고 인정 많은 이 화해의 어머니를 보고 오직 이 어머니 때문에 그 영혼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리하여 하느님이 그 영혼의 기쁨이 되고, 그 영혼이 하느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13. 오 거룩한 희망아, 너는 얼마나 경탄스러운지! 이 아름다운 바람에 사로잡힌 영혼은 그의 전 재산이 될 땅을 구입하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어느 귀족 나그네와 같다. 그는 그러나 자기 땅이 아닌 데를 돌아다니는데다 아는 이가 아무도 없으므로, 비웃고 모욕하며 옷을 빼앗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를 때리며 살가죽을 벗기겠다고 위협하기도 한다.
14. 그런데 이 귀족 나그네는 그 모든 위험 속에서 어떻게 처신하겠느냐? 근심으로 속을 태우겠느냐?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사람들을 보고 웃는다. 고통을 많이 받을수록 자기 땅을 차지하게 될 때에 그만큼 더 큰 영예와 영광을 받을 것이며 그때에는 자기가 그들을 괴롭히게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시종일관 온전한 평화를 누리며 차분함을 유지한다. 더군다나, 모욕을 당하면서도 어찌나 평온한지, 그렇게 하는 이들이 모두 깨어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데도 그는 사모하는 하느님의 무릎에서 잠을 잘 정도이다.
15. 누가 이 나그네에게 그다지도 큰 평화와 참을성을 주어, 그가 택한 이 길을 계속 가게 하겠느냐? 그것은 물론 영원한 재산에 대한 희망이다. 영원한 재산이 그의 소유가 되기를,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하여 그가 모든 것을 쳐 이기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보고 사랑하게 된다. 이와 같이 희망이 사랑을 낳는 것이다.”
16. 복되신 예수님께서 내게 비추어 주신 빛 안에서 이를 보았으니 그 빛에 의하여 내가 덧붙일 말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점에 대하여 말없이 넘어가려고 했는데, ‘귀부인 순명’이 벗으로서의 우호적인 의상을 벗어버리고 무사로 변하고 나하고 싸워 상처를 입히려고 무장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17. -제발 그렇게 서둘러 무장하지 말고, 무기를 버리십시오! 진정하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한 당신 말대로 할 터이니, 우리는 벗으로 남아 있습시다그려.
18. “사랑의 넓은 바다 속에 있는 영혼은 이제,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을 느낀다. 유한한 인간으로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을 체험하는 것이다. 일체가 사랑이다. 그의 생각들은 모두 사랑의 낭랑한 음성이 되어 그가 지극히 사랑하는 하느님 주위에서 울리면서 자기에게 오셔 달라고 하느님을 부른다. 그러면 복되신 하느님께서 사랑에 찬 그 음성에 어찌나 마음이 끌리고 꿰뚫리시는지 입장을 바꾸어 그와 똑같이 행동하신다. 사랑의 탄식과 심장 고동과 신적인 존재 전체로 끊임없이 그 영혼을 부르시며 당신께 와 달라고 하시는 것이다.”
19. 이 음성에 내 영혼이 얼마나 꿰뚫리는지, 이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 영혼이 불덩이처럼 펄펄 끓는 열에 사로잡힌 듯 얼마나 즐기기 시작하는지! 얼마나 미친 듯이 달음질쳐서 사랑하는 분의 가슴속에 뛰어들어 휴식을 취하는지! 거룩한 기쁨을 얼마나 억수 같이 끌어 당기는지!
20. 사랑으로 황홀해진 이 영혼은 그 황홀 속에서 자신의 지극히 감미로우신 정배께 모든 사랑의 노래를 불러 드리는 것이다.
21. 그러나 그 영혼과 하느님 사이에 무엇이 지나가는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랑은 바로 하느님 자신이시니, 사랑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22. 이 순간 매우 큰 빛이 보이니 놀랍다. 이 빛이 나로 하여금 사랑에 관해서 받아쓰게 하려고 처음에는 한 점에, 다음에는 또 다른 점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내가 이를 표현하려면 떠듬떠듬 자꾸 막힐 것 같다. 어떻게 표현할지를 모르겠으니 숫제 입을 다물 작정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귀부인 순명’이 용서해 주리라고 믿는다. 이 귀부인이 내게 화를 내고자 해도 이번에는 자기 탓으로 그런 것이니 노여워할 까닭이 별로 없을 것이다. 유창한 말솜씨를 주지 않아서 내가 어떻게 표현할지를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23. -존경하는 귀부인이여, 아시겠습니까? (게다가) 우리는 서로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2권-74, 순명과의 갈등, 산 제물이라는 신분의 유용성
1899년 9월 21일
1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대해서 표현할 줄 아는 언변을 주지 않은 ‘귀부인 순명’ 탓에, 내가 그것에 대해서 기록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과연 이 귀부인은 나의 그 말을 언짢게 받아들여 잔인한 폭군이 되기 시작했다. 얼마나 잔인한지 나의 유일한 위로이신 예수님을 내 시야에서 앗아간 것이다.
2 때때로 그녀는, 고집대로 되지 않으면 큰 소리로 울고불고해서 온 집안이 떠나가도록 시끄럽게 굴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하자는 대로 해 주어야 하는 아기와 같이 행동하기도 한다. 이치를 따질 수도 없고, 타일러 주저앉힐 방법도 없다.
3 그런데 '귀부인 순명'이, 그것도 싸움도 거는 듯한 태도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 귀부인이 그렇다고 여기에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나를 이기려고 한다는 것과 내가 얼마나 더듬거리며 서툴게 표현하건 사랑에 대해서 글을 쓰기를 원한다는 것 때문이다.
4 -오 거룩하신 하느님, 이 귀부인이 좀더 이성적으로 행동하게 해 주십시오. 이런 식으로는 분명히 일이 진척될 수 없을 것입니다.
5 -그리고 오 그대 순명이여, 인자하신 예수님을 내게 돌려주시어 더 이상은 이 가슴이 찢어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제발 나의 가장 큰 선이신 분을 시야에서 앗아가지 말아 주십시오. 그러면 더듬거리면서라도 당신 원대로 글을 쓰겠다고 약속하리다. 당신에게 청하는 것은 다만 며칠 동안 내 상태가 나아지게 해 달라는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하찮은 내 마음이 하느님 사랑의 광대한 바다에 잠기면 견딜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6 특히, 그 바다 속에서 내 마음은 자신의 비참과 추함을 한결 더 지각하면서 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보게 될 것이기에 거의 정신을 잃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약한 본성은 까무러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며칠 동안, 그러니 나는 다른 것에 관한 글 쓰기에 전념한 다음 사랑에 대해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7 그런 궁색한 말을 하면서 내 정신은 그 말에 팔려,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쓰는 것을 나 자신이 실천하지 못한다면 이를 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글이 나에게는 저주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8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글은 너에게 말을 건네며 너를 차지하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를 알리는 데에 소용될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너에게 쓸모가 없다면, 나의 빛이 이를 읽게 될 다른 이들을 비추어 그들에게 유익하게 할 것이다.”
9 그러니 이 글을 읽게 될 다른 이들은 그분께서 내게 주신 은총에 의하여 이익을 얻을 터인데 이 은총을 받은 나는 그렇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 죽을 듯한 괴로움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 은총이 나를 단죄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그것이 다른 이들의 손에 넘어가리라는 생각만 해도 고통과 자괴심(自愧心)으로 가슴이 짓눌리는 것이었다.
10 그러니 더없이 큰 고통 속에서 이렇게 자꾸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단죄를 받기 위한 것이라면 (산 제물이라는) 나의 이 신분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11 그러자 내 지극히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생애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상 생활을 계속할 수 없기에, 뽑힌 이들 안에서 생활하면서 계속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있다. 여기에 네 신분의 유용성이 있는 것이다.”
2권-75, “내가 너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는 모든 것은...”
1899년 9월 22일
1 인자하신 예수님께서 어제 하신 말씀을 듣고 심장에 못이 박힌 느낌이 드는데, 그분께서 오셔서 그 고통을 덜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참한 죄인에게 언제나 친절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나를 측은히 여기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너무 괴로워하지 말아라. 덕행에 관해서나 이와 유사한 다른 것에 관해서 너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는 모든 것은 다만 네가 너 자신을 묘사하게 하면서 내가 네 영혼을 완성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다.”
3 그러나 야단났다! 이 말씀이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아서 이렇게 글로 옮기는 것 자체가 지겨운 것이다. 무슨 덕과 완성을 뜻하는지를 내가 깨닫고 있어서가 아니라, 순명이 이를 원하는데다 이 귀부인과 맞서기보다는 항복하는 편이 낫기 때문에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 이유는 특히 그녀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4 자기 말대로 하면 귀부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신실한 벗처럼 어루만져 주고 땅과 하늘에 있는 온갖 선을 약속하기까지 하지만, 그 반대로 좀이라도 난색(難色)을 보이면 아무 경고도 없이 무장한 무사의 모습으로 불쑥 나타나서 상처를 입히거나 죽이려고 드는 것이다. 맙소사! 이 순명이라는 덕행은 대체 어떤 종류의 덕행이란 말인가! 그 생각만 해도 몸이 부들부들 떨리니 말이다!
5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위의 말씀을 하셨을 때에 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어지신 예수님, 수많은 은총이 나중에는 제 온 삶을 쓰디쓰게 하니, 특히 당신께서 오시지 않으실 때는 더욱 더 그러하니, 그 많은 은총을 받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제 영혼에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 당신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면서 그런 당신을 빼앗기고 말면, 그것이 제게는 끊임없는 순교적 고통이 되니 말입니다. 그러니 그 은총들은 저로 하여금 계속 고통스럽게 살아가게 하는 것 외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6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어떤 음식의 단맛을 본 후에 어떤 쓴 것을 먹어야 할 때면, 그 쓴맛을 가시게 하기 위해서 단 것을 먹고자 하는 열망이 더 커지기 마련이다. 이 점이 그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되는 까닭은, 늘 단 것만 먹고 쓴 것은 전연 먹지 않는 사람은 단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알지 못하고, 반대로 단 음식은 맛도 못 본 채 늘 쓴 것만 먹는 사람은 단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도무지 원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데에 있다. 그러니 둘 다 유익한 것이고, 따라서 너에게도 유익한 것이다.”
7 “인내심이 지극하신 예수님, 이리도 비참하고 은혜를 모르는 자를 참아 주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이번에는 제가 너무 시시콜콜 캐내려고 드나 봅니다.”
8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속끓이지 말아라. 너의 내면에 이런 어려움을 일으키는 이는 바로 나 자신이다. 너와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가짐과 동시에 매사에 있어서 가르침을 주려고 그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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