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연옥에서 받는 고통과 벌
가톨릭 신자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있으므로 한 사람의 기쁨과 슬픔은 가톨릭 신자 전체의 기쁨과 슬픔이 된다. 그런데 연옥은 크나큰 고통의 장소여서 연옥에 있는 망자의 영혼은 우리에게 동정을 청한다. "주님의 심판이 무거우니, 제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라고 부르짖는다.
이 불행한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그들이 느낄 감각과 정신의 고통에 대해 깊이 고찰해 보자. 당연히 우리가 그들이 느끼는 그대로는 알 수는 없을 것이니 이승에서 알 수 있는 데까지만 생각해 보기로 하자.
연옥 영혼은 죄수다
연옥 영혼이 죄수라는 것은 죽은 이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바치는 기도문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또한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문에도 "극심한 고통 속에 시달림을 받고 있는 불행한 자를 도우시어 사로잡힌 감옥에서 그를 구원하소서."라고 되어 있다.
'감옥'이라는 단어는 잔혹하고 슬픈 느낌을 준다. 그러나 연옥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내세의 감옥은 바다처럼 넓으며 심연처럼 깊고 사막처럼 쓸쓸한 곳이다. 연옥에 머무는 자는 잘 수도 없다. 그곳은 한시도 잠을 잘 수 없는 곳이다. 연옥은 사랑하고 축복하고 흠숭하며, 기도하고 기억하고 희망할 수 있지만 완전히 정화되기까지 끊임없는 괴로움을 당하는 곳이다.
빛의 결핍
빛의 결핍은 연옥에서 받는 둘째 고통이다. 만물 가운데 처음 만들어진 것이 빛이다. 빛은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다독이며 위로해 주고 기쁘게 해준다. 빛은 '즐거움'을 가리킨다. 그러나 어둠은 '고통과 죄'의 상징이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히브리인에게 자유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열 가지 고통, 특히 어둠으로 벌을 받았다(탈출 10,22-23 참조). 혼인 잔치에서 예복을 입지 않았던 손님 한 사람은 "어둠 속에 던져졌다(마태 22,13 참조).
그런데 연옥 영혼은 항상 어둠 속에 있다. 그래서 교회는 자주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라고 기도를 바친다. 미사 때에도 "그들이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뵈옵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연옥 불의 고통
성교회는 불의 존재와 성질에 대하여 아무것도 정한 바 없으나 교부들의 학설에 의하면 불은 물질적인 것이다. 어찌 유형한 불이 무형한 영혼을 괴롭힐 수 있는가? 어찌 각 사람을 죄의 경중에 따라서 괴롭힐 수 있는가? 그것은 하느님의 비밀이다. 하느님께서 그 문제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을 해소해 주시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 불의 존재와 고통을 알고 그 고통에 빠지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 많은 환시의 은총을 받아 '연옥 박사'라고 불리는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는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 없이 우리는 연옥의 불티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또 그것을 깨달을 지식도 없다. 나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것을 보았지만 이를 표현할 말이 없다."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옥 불과 지옥 불은 같다. 다만 다른 점은 그곳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즉 지옥의 죄인은 하느님을 원망하고 죄에 붙잡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의 영향을 전혀 받지 못한다. 영원한 실망과 악의에 잠겨 있다. 그러나 연옥 영혼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선의에 자신을 의탁하며 영복을 얻을 희망으로 모든 것을 천명에 맡긴다."
성 치프리아노, 성 암브로시오, 성 아우구스티노, 성 베르나르도 등에 의하면 연옥 불의 고통은 순교자들이 받은 박해보다 더 극심하다. 불은 짚을 살라 없애듯이 영혼을 태운다. 영원하지 않다는 것뿐이지 지옥 불과 똑같다. 그래서 성교회는 연옥 영혼을 위해 끊임없이 “서늘함과 광명과 평안함"을 하느님께 간구한다. 널리 알려진 영국의 순교자 성 토마스 모어는 말한다. “이 세상의 불이 사람이 그린 그림의 불보다 더한 것처럼, 연옥 불은 이 세상의 모든 불보다 더하다."
복자 히누는 중병에 걸려 5년 동안이나 딱딱한 나무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의 마음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마음과 일치되었고 그 고통을 참고 견뎠다.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상처에 벌레가 들끓고, 상처를 갉아 먹으려고 쥐가 왔다갔다 해도 쫓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괴로움도 연옥의 고통에는 비길 바가 못 된다.
성 토마스의 가르침에 따르면 연옥은 일곱 성사로 미처 완전하게 정화되지 못한 우리 영혼을 위해 더해진 여덟 번째 성사라고도 할 수 있는 엄격한 성사이다. 현세의 성사는 따뜻하고 받기도 쉽지만 연옥의 성사는 혹독하고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는 말한다.
“세상의 괴로움을 모두 합친 것보다 연옥의 가장 미소한 괴로움이 더 혹독하다.”
성녀 데레사는 연옥에 있는 영혼이 지독한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보고 극심한 두려움으로 거의 죽을 뻔했다.
성녀 비르지타가 본 바에 의하면 연옥에는 3단계가 있다. 첫 번째 단계에서 영혼은 몹시 괴로워한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괴로움으로 심신이 쇠약해지지만 이 상태를 참아 견딘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하느님을 뵙고 싶은 누를 수 없는 열망 때문에 고통에 짓눌린다.
우리가 천당과 지옥에 대해 아는 것처럼 명백하게 연옥을 알수는 없지만 연옥 영혼이 몹시 괴로워하며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옥 영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기도하고 희생을 실천하여 그들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
-연옥실화(정화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곳, 연옥) 제 2장. 연옥에서 받는 고통과 벌
/ 막심 퓌상 지음/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옮김 / 가톨릭출판사
'연옥영혼을위하여 > 연옥실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옥실화] 현세 보속의 이익, 연옥 박물관, 꼬집힌 수녀 (0) | 2022.11.17 |
---|---|
[연옥실화] 폴리뇨 시의 불에 탄 손자국 (0) | 2022.11.15 |
[연옥실화] 연옥 영혼의 부탁 (0) | 2022.11.12 |
[연옥실화] 십자가의 예수의 마리아 수녀 전기 중에서 (0) | 2022.11.11 |
[연옥실화]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라 (0) | 2022.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