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세번째 혼인 : 십자가의 혼인
1. 다시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예수님께서는 당신 수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즐겨 말씀하시면서 내가 기꺼이 당신 생애를 본받을 마음이 되게 하시려고 힘쓰셨다.
2. “내 신부야, 우리가 이미 거행한 혼인 외에 또 하나의 혼인이 남아 있는데, 이는 십자가의 혼인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네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십자가와 접목되어 힘차고 튼튼해진 덕행들은 감미롭고도 사랑스러운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내가 지상에 오기 전에는 고뇌, 치욕, 고통, 가난, 질병 및 갖가지 고난의 십자가가 영락없는 부끄러움과 불명예로 간주되었지만, 내가 다 겪은 후에는 그 모든 것이 나와의 접촉으로 말미암아 신성하고 거룩한 것이 되었으므로, 그 모양을 바꾸어 감미롭고 즐거운 것이 되었다. 그 중 어떤 것을 겪을 은혜를 받게 된 사람은 이를 큰 영예로 여기게 된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그 영혼이 나의 제복(인 고난)을 입음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3. 십자가의 외관만을 보고 멈춰서고 마는 사람에게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기에 이를 극심한 고통으로 여기면서 몹시 싫어하고 불평해대기 마련이다. 자기에게 부당한 것이 주어진 것처럼 받은 까닭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신비)를 통찰한 사람은 누구든지 십자가를 매우 맛있고 건강에 좋은 무엇으로 여기기에 십자가 안에서 자신의 행복을 이루어 간다.
4. 딸아, 그러므로 나는 너를, 네 몸과 한가지로 네 영혼도, 되도록 빨리 십자가에 못박고 싶다. 이것만이 나의 간절한 바람이다.”
5.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동안 나도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싶은 큰 열망이 마음속에 부어지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제 사랑이신 예수님, 어서 저를 당신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 주십시오.”하고 거듭거듭 청하였다.
6. 그리고 그분께서 다시 오셨을 때에 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고 제일 먼저 청한 것은 내 죄로 인한 괴로움과 통회 및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힐 은총에 관한 것이었다. 이 은총을 얻게 되면 매우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 이것과 함께 모든 것을 얻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7. 마침내 어느 날 아침, 지극히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참으로 나를 당신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나는 그분의 손발을 박은 못이 보일 정도로 환한 광선이 지극히 거룩한 그 상처들로부터 내게로 뻗어오는 것을 보았다.
8. 동시에 예수님께서 나를 못박아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강렬한지, 고통에 대한 사랑으로 온 몸이 불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너무나 큰 두려움이 엄습하는 바람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 몸이 떨렸고, 나 자신의 허무를 새삼 절감하면서 그런 특별한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9. 이런 이유로 다시는 감히 “주님, 저를 당신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 주십시오.”라고 청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예수님께서는 그 희귀한 은총을 주시려고 나의 동의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 같았다. 나는 한동안 갈등에 잠겨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그 은총을 청하고 싶은 크나큰 열망이 영혼 깊은 데서 솟아나고, 또 한편으로는 그럴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10. 나의 본성이 두려움에 싸여 뒤흔들리며 떨고 있는 통에 그렇게 해 달라고 예수님께 선뜻 청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 영혼이 이런 상태에 있을 때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로 하여금 그 은총을 받아들이도록 지혜로운 방법으로 촉구하셨다. 따라서, 예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나는 용기를 모아 그분께 말씀드렸다.
11. “예, 주님, 십자가에 못박히신 제 사랑, 거룩한 정배이신 예수님, 저도 당신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힐 은총을 마침내 허락해 주시기를 빕니다. 동시에, 당신께서 제게 주실 그 은총이 겉으로는 아무 표시가 나지 않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예, 그렇습니다. 당신의 모든 고통과 아픔을, 당신의 상처들을 빨리 주시되, 그 어떤 것도 다른 이들의 눈에는 띄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과 저만이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12. 그리하여 그 은총이 내게 허락되었으니,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빛살들이 못들과 함께 지체 없이 내 손발을 꿰뚫으며 상처를 내었고, 더욱 찬란한 또 하나의 빛살이 창과 함께 내 심장을 꿰뚫었던 것이다.
13. 그 행복한 순간에 내가 체험한 크나큰 기쁨을, 동시에 다른 모든 아픔을 능가하는 그 아픔을 대체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내가 느낀 그 평화와 기쁨과 고통은 좀 전에 나를 사로잡고 있던 두려움과 전율만큼 큰 것이었다. 손발과 심장의 통증이 어찌나 극심한지 벌써 임박한 죽음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손발의 각 상처 속에서 못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지고 뼈가 으스러져 산산조각이 나는 것 같았다.
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처들은 형언할 수 없도록 감미로운 기쁨을 주기도 하더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고통으로 곧 죽을 것만 같은데 놀랍게도 크나큰 원기와 힘이 전해지는 것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으니, 고통 그 자체가 생명을 떠받치는 힘이 되어 나를 죽지 않게 했던 것이다.
15.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 아무 상처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신체적으로는 그 극심한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었고, 그러므로 고해사제가 찾아와서 순종을 명하며 신경 수축으로 뻣뻣해진 내 팔의 마비를 풀어 주려고 했을 때에, 특히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로부터 나온) 빛살과 못과 창에 찔린 상처 부위들은 그야말로 죽음 같은 고통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정신을 잃게 했을 정도로 극심한 이 고통이 상당히 완화된 것은 사제가 순종의 이름으로 즉시 가라앉으라고 명령한 직후였다.
16. 오, 거룩한 순종의 기적이여! 너는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도다! 우리의 자매인 죽음과의 힘겨운 싸움 속에서 단말마의 고통을 느낄 때마다 너 순종은 얼마나 자주 이를 가라앉히며 즉시 생명을 돌려주곤 했는지! 그런즉, 솔직히 말하자면, 이 고통들이 사제의 명령에 순종하여 다소 완화되지 않았다면, 나는 그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17. 죽음의 밥이 된 영혼을 그 손아귀에서 빼앗을 만큼 큰 권능을 당신 사제들에게 주신 주님께서는 언제나 찬미 받으소서! 그러한 권능이 오로지 주님의 더욱 큰 영광과 영혼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18. 여기서 또 한 가지 밝혀야 할 점은, 내가 죽음 같은 수면 상태에서 깨어났을 때는 위에서 말한 상처들이 몸의 어디에도 보이지 않은 반면, 다시 의식을 잃어버리면 내게 찍혀 있는 예수님의 상처들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바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상처들이, 말하자면 내 손발과 심장에 날인되어 있는 듯 했던 것이다.
19. 이제까지 말한 것은 오직 십자가의 혼인과 내가 최초로 십자가에 못박히는 고통을 겪었던 일에 관한 것뿐이었다. 그 이후 여러 해에 걸쳐 일어난 수없이 많은 일들을 하나하나 전부 되새겨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 적으라는 명령을 받은 이상, 내게 가장 깊은 영향을 끼친 중요한 일들에 대해서, 즉 앞에서 말한 십자가 고통과 관련하여 내가 1899년까지 겪은 일들에 대해서, 되도록 진솔하게 말해 보고자 한다.
1권-50, 참된 통회의 은총을 받다
1. 무엇보다도 먼저 써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내게 십자가에 못박히는 고통을 주신 이후 다시 오실 때마다 나는 이렇게 번번이 말씀드렸다는 점이다.
2. “사랑하올 예수님, 부디 저에게 참된 통회의 은총을 내려 주십시오.
당신을 모욕한 죄들에 대한 통회가 저 자신을 불살라
당신의 기억에서도 제 영혼에서도 그 모든 죄가 사그라지게 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좋으신 예수님, 저에게 깊은 통회를 주시어,
당신을 모욕한 뻔뻔스러운 마음을 보속하게 해 주십시오.
이 통회가 죄를 자라게 한 모든 집착을 능가하게 하셔서,
완전히, 참으로 완전히 그것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당신 품에 더 바싹 안기게 해 주십시오.”
3. 일단 이 은총부터 청한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나를 모욕한 일을 네가 뉘우치며 괴로워하고 있으니 내가 몸소 잘 참회하도록 도와주마. 이와 같이 하면 네가 죄의 추함을 깨닫고 이것이 내 마음에 얼마나 쓰라린 고통을 끼치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런즉 나를 따라 이렇게 말하여라.
4. “이 몸이 바다를 가로질러 가며 당신을 보지 못한다 해도 거기에 당신은 계시나이다.
땅 위를 걸어가도 당신은 제 발 아래 계시나이다. 그럼에도 저는 죄를 지었나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거의 울먹이는 음성으로 속삭이듯이 덧붙이셨다.
“그러나 나는 너를 사랑하며 지켜 주었다…….”
5.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하셨을 때에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달았으므로 하나하나 다 말할 수가 없다. 다만, 무엇보다도 특히, 모든 사물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과 그 무한성과 위대성을, 그리고 하느님의 이 속성으로 말미암아 우리네 생각의 그림자까지도 그분을 피해 달아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만 하겠다. 또한, 이다지 위대하고 거룩하신 하느님의 엄위에 비하면 허무한 나는 한낱 그림자만도 못해 보이는 것이었다.
6. “그럼에도 저는 죄를 지었나이다…….” 라는 말씀에서는 죄의 추함과 나의 악의와 뻔뻔스러움을 알게 되었으니, 이는 한 순간의 만족을 위하여 그분을 뒷전으로 돌림으로써 엄청나게 모욕했기 때문이었다.
7. 또한, “그러나 나는 너를 사랑하며 지켜 주었다.”는 말씀을 듣자, 몹시 격렬한 통회에 사로잡혀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하찮은 쾌락을 그분보다 앞세움으로써 그분을 모욕하고 거의 돌아가시게까지 하는 순간에도 그분께서는 나를 한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8. 그렇습니다, 주님, 당신께 대한 저의 망은(忘恩)과 악의는 제게 대한 당신의 인자하심과 맞먹습니다.
부디 저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어제나 오늘이나 앞으로도 영원히 저를 사랑하시는 당신의 사랑만큼 깊은 통회를 항상 느끼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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