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시

I. 복음 준비 4. “요아킴은 의로운 여자의 마음 속에 간직된 하느님의 지혜를 아내로 맞이하였었다”

Skyblue fiat 2015. 11. 28. 23:53

 

I. 복음 준비
4. “요아킴은 의로운 여자의 마음 속에 간직된 하느님의 지혜를 아내로 맞이하였었다”

 

예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의인들은 항상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하느님의 벗들로 하느님을 같이 모시고 살며, 무한한 지혜이신 하느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신다. 내 조부모님은 의인들이셨고, 그러므로 지혜를 가지고 계셨다. 그분들은 성경에서 지혜의 찬미를 할 때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혜를 사랑하고 추구하였으며, 지혜를 아내로 맞이할 결심을 하였다’ 하고 말하며 노래한 것과 같은 말을 진실로 하실 수가 있었다.


   아아론의 안나는 우리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용맹한 여자였다. 그리고 다윗왕의 후손인 요아킴은 매력과 재물보다는 덕행을 더 추구하셨다. 안나는 큰 덕행을 가지고 계셨다. 안나 안에는 모든 덕행이 향기로운 꽃다발로 모여서 모든 현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인 덕행이라는 유일한 현실을 이루었었다. 하느님의 옥좌 앞에 나타날 만한 진짜 덕행이었다.


   요아킴은 그러니까 ‘안나를 다른 여자보다 더 사랑함으로써’ 지혜를 두 번 아내로 맞이한 것이니, 의로운 여자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하느님의 지혜를 아내로 맞이한 것이다.

아론의 안나도 정직이 가정의 기쁨이라는 자신과 확신을 가지고 자기의 생활을 정직한 남자의 생활과 결합시키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추구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용감한 여인의 상징이 되는데 그분에게 부족하였던 것은 솔로몬이 말하는 아내의 영광이요 결혼의 정당화인 자녀라는 화관뿐이었다. 그분의 지복에 부족한 것은 오직 이웃 나무와 결합하여 거기에서 많은 새 열매가 나오고, 또 거기에 두 개의 착함이 하나의 착함으로 되는 나무의 꽃인 그 자식들뿐이었다. 왜냐하면 남편에게서는 아무런 실망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요아킴의 아내인 안나는 이제는 늙은 안나이지만 요아킴에게는 그녀가 여전히 ‘그분의 청춘시절의 아내요, 기쁨이며, 지극히 사랑하는 암사슴이었고 맵시 있는 영양’이었다. 그의 애무는 여전히 결혼 첫날밤과 같은 신선함을 간직하고 있었고, 그의 애정을 살며시 매혹하여 그것을 이슬에 젖은 꽃과 같이, 신선하고 끊임없이 땔감을 보급하는 불과 같이 열렬하게 보존하였다. 그러므로 그분들은 자녀가 없는 불행을 겪으면서도 서로 ‘당신들의 걱정과 슬픔을 위로하는 말을’ 주고 받으셨다. 그리고 영원한 지혜가 그분들 위에 일어서셨다. 그분들을 일생 동안 가르치신 다음, 때가 이르자 그분들에게서 나기로 되어 있었고, 또 지극히 거룩한 내 어머니 마리아인 영광스러운 시(詩)가 깨어나는 시간인 밤의 꿈으로 그분들을 비추어 주셨다.


   그분들의 겸손으로 그 꿈을 마음에 두지는 않으셨지만,

그래도 그분들의 마음은 하느님의 약속의 첫 번 예고에 희망으로 떨렸다. 요아킴의 말에는 그것이 하나의 확신이었다.

 ‘희망을 가져요, 희망을 가져... 충실한 우리의 사랑으로 하느님을 이깁시다.’


  그분들은 아들을 열망하셨는데 하느님의 어머니를 얻으셨다. 지혜서의 말씀은 그분들에 대하여 씌어진 것 같아 보인다. “그 여자를 통하여 나는 백성 앞에서 영광을 얻을 것이고... 그 여자를 통하여 나는 불사불멸을 얻을 것이며, 내 뒤에 올 사람들에게 내게 대한 영원한 추억을 남겨놓으리라.”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분들이 어떤 일에도 흔들림 없는 참되고 변함없는 덕행의 왕국을 획득해야 하였다. 믿음의 덕행, 사랑의 덕행, 바램의 덕행, 순결의 덕행을.


   부부의 순결! 그분들은 이 부부의 순결을 가지고 계셨다. 반드시 동정녀라야만 순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결한 가정들은 천사들이 지켜 주며, 그런 가정에서 부모의 덕행을 그들 자신의 생활 규칙으로 삼는 착한 자식들이 내려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가정들이 어디 있느냐?

지금은 사람들이 자녀를 원치 않으며, 그렇다고 순결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들에게 사랑과 내실이 오용된다고 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