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3권 공생활 둘째해(상)

하사시 3권 p273~p282[185. 폭풍이 가라앉다 186. 게라사인들의 지방에서의 마귀 들린 사람들]

Skyblue fiat 2025. 4. 1. 00:25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3권 공생활 둘째 해 1  p273~p282


185. 폭풍이 가라앉다

1944. 1. 30.

…모든 사람이 잠든 지금 저는 제 기쁨을 신부님께 말씀드립니다. 저는 오늘의 복음을 ‘보았습니다.’ 제가 오늘 아침 그 복음을 읽으며 ‘이것은 내가 결코 보지 못할 복음서의 에피소드로구나. 왜냐하면 이것은 환상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으니까’ 하고 생각했다는 것에 유의하십시오. 그런데 반대로 제가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있을 때에 그것이 와서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이것이 제가 본 것입니다.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배 한 척이 있다. 그것은 위에서 대여섯 사람이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어선이다. 그 배는 아름다운 감청색의 겐네사렛 호수의 물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다.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여느 때처럼 흰옷을 입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왼팔에 머리를 얹고 계시고, 여러 겹으로 접힌 회청색 겉옷을 그분의 양팔과 머리 밑에 놓아두셨다. 그분께서는 배의 바닥에 누워 계시지 않고 앉아 계시며, 그분의 머리를 고물 끝에 있는 판자에 얹고 계신다. 나는 뱃사람들이 이 판자를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그분께서는 조용히 주무시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지쳐 계시고, 평온하시다.

베드로는 키를 잡고 있고, 안드레아는 돛을 보살피고 있으며, 요한과 내가 누군지 알지 못하는 다른 두 사람은 아마 밤에 고기잡이하려고 준비하려는 것처럼 배 밑창에서 밧줄과 그물들을 정돈하고 있다. 해가 이미 서쪽에서 지고 있는 것을 보니 날이 저물어 가는 것 같다.

모든 제자들이 더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고, 노, 걸상, 바구니, 그물 따위를 지나서 배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는 데 있어 자기들의 옷에 방해받지 않으려고 그것들을 걷어 올리고 있다. 그들 중 아무도 겉옷을 입고 있지 않다.

나는 하늘이 구름들로 뒤덮이고, 한 야산 꼭대기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소나기구름으로 인하여 해가 가려지고 있는 것을 본다. 바람이 구름을 호수 쪽으로 빨리 몰고 온다. 지금 당장은 바람이 높이 불고 있어 호수는 아직 잔잔하다. 다만 그것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고, 그 수면은 더 이상 완전히 잔잔하지는 않다. 아직 파도들은 일지 않지만, 물은 출렁이기 시작한다.

베드로와 안드레아는 하늘과 호수를 살펴보고 배를 부두에 대기 위하여 조종하려 한다. 그러나 갑자기 바람이 호수를 덮쳐 몇 분 사이에 모든 것이 부글부글 끓고 거품이 인다. 끓어오르는 파도들은 사람들을 서로 부딪치게 하고, 배에 부딪쳐 배를 들어 올렸다 내려놓았다 하며 배를 사방으로 이리저리 돌려 키를 조작하지 못하게 하고, 바람은 돛대에 붙잡아매야 하는 돛을 마음대로 조작하는 것을 방해한다.

예수께서는 주무시고 계신다. 제자들의 걸음들과 흥분한 목소리들도, 거센 바람 소리와 뱃전과 이물에 파도가 부딪치는 파도들도 그분을 깨우지 못한다. 그분의 머리카락은 바람에 날리고, 물방울들이 그분에게까지 미친다. 그래도 그분께서는 여전히 주무시고 계신다. 요한은 이물에 있다가 고물로 가서 한 널빤지 아래서 자기의 겉옷을 꺼내와 섬세한 사랑으로 그분을 덮어드린다.

폭풍은 점점 더 광포해진다. 호수는 마치 잉크를 쏟아 부은 것처럼 시커멓고 파도들의 거품으로 줄무늬가 생겨 있다. 물이 배 안으로 넘쳐 들어오고, 배는 바람에 밀려 호수 가운데로 점점 더 깊이 밀려들어간다. 제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배를 조종하고 쏟아져 들어온 물을 퍼내고 있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그들은 이제 무릎까지 차오르는 물속에서 철벅거리고 있고, 배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

베드로는 침착성과 참을성을 잃는다. 그는 키를 아우에게 맡기고, 비틀거리면서 예수께로 가서 그분을 세차게 흔든다.
예수께서는 잠에서 깨어나시며 머리를 드신다.

“선생님, 저희를 살려주십시오. 저희는 빠져 죽어가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외친다(들리게 하려면 큰 소리로 외쳐야 한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사도를 응시하시고 다른 제자들을 바라보신 다음 호수를 바라보신다.

“너는 내가 너희를 구해줄 수 있다고 믿느냐?”

“빨리요, 선생님”

베드로가 외치는데, 그때 정말 산더미 같은 파도가 호수 한가운데에서 일어나 그 보잘것없는 배를 향하여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그 파도가 얼마나 높고 무서운지, 그것은 회오리바람에 불려 올라가는 큰 물기둥처럼 보인다. 그것이 오는 것을 보는 제자들은 무릎을 꿇고 이제는 끝장이라고 확신하며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붙잡는다.

예수께서는 일어서신다. 그분께서는 고물에 있는 널빤지에 올라서신다. 검푸른 호수를 배경으로 그분의 흰 얼굴은 두드러져 보인다. 그분께서는 그 파도를 향하여 양팔을 뻗으시고 바람을 향하여 말씀하신다.

“멈추어라. 그리고 잠잠해져라.”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물을 향하여 말씀하신다.
“잔잔해져라. 나는 그것을 원한다.”

그러자 그 물기둥은 스러져 거품이 되어 손해를 끼치지 않고 마지막 포효가 속삭임이 되어 사라지고, 바람소리도 휘파람이 되었다가 한숨으로 변한다. 하늘은 진정된 호수 위에서 다시 맑아지고, 그 동안 희망과 믿음이 제자들의 마음을 가득 채운다.

나는 예수의 위엄을 묘사할 수 없다. 보지 않고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내면 깊은 곳에서 그 위엄에 경탄한다. 왜냐하면 그 위엄은 여전히 내 마음에 현존하며, 예수의 잠이 얼마나 평온했는지, 바람과 파도에 대한 그분의 명령이 얼마나 위압적이었는지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복음서를 다른 모든 사람이 해석하는 것과 같은 뜻으로 해설해주지 않고, 복음서의 이 대목에 선행하는 상황을 명백히 밝혀주겠다.

내가 왜 자고 있었느냐? 혹여 내가 폭풍이 불어올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었느냐? 아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아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왜 자고 있었느냐?

마리아야, 사도들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착한 뜻으로 충만해 있었지만, 여전히 아주 많이 ‘사람들’일 뿐이었다. 사람은 자기가 항상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그가 실제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될 때 그는 오만과 자기의 ‘능력’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 차게 된다. 베드로,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은 훌륭한 어부들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배를 다루는 일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훌륭한 ‘선생님(Rabbi)’이었지만, 뱃사람으로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내가 자기들을 도와줄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들은 갈릴래아 바다를 항행하는 배 위에서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니 그저 앉아 있기만 하라고 청했던 것이다. 내가 어떤 물질적인 일을 하기를 원치 않았던 그들의 생각의 이면에는 나에 대한 그들의 애정도 있었지만, 그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집착이 애정보다 우세했던 것이다.

마리아야, 나는 예외적인 경우들 외에는 내 뜻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체로 나는 너희를 자유롭게 내버려두고 기다린다. 그날 나는 피곤했었다. 그들은 유능한 자신들이 알아서 할 테니 쉬라고 나에게 말했었다. 그래서 나는 잤다. 내 잠에는 사람은 역시 ‘사람’이라는 것과 사람은 하느님께서 그를 도와주시기만을 바라신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제 힘으로 일하기를 원한다는 확인도 섞여 있었다.

나는 그 ‘영적인 귀머거리들’, 그 ‘영적인 소경들’에게서 ‘자신들의 힘으로 하기(to do by themselves)를 원했기 때문에’ 세기들을 통하여 파멸로 가게 될 모든 영적인 귀머거리와 소경들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도와달라고 호소하기를 기다리며 그들의 필요를 들여다보고 있는데도 말이다.

베드로가 ‘저희를 살려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을 때 내 고민은 돌처럼 떨어져 나갔다. 나는 그냥 ‘사람’이 아니고 하느님-사람이다. 나는 너희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너희는 너희의 충고나 도움을 거절한 누군가가 곤경에 빠져 있는 것을 보게 되면, 설사 너희가 그것을 기뻐할 정도로 악하지는 않다 해도, 도와달라는 그의 호소에 냉담한 채 경멸적이고 무관심하게 그를 쳐다볼 정도로 몰인정하다. 그런 너희의 태도는 이런 뜻이다. ‘내가 당신을 도와주려고 했을 때 당신은 내 도움을 거절했지요? 자, 이제 당신 혼자 해보세요.’

그러나 나는 예수다. 나는 구세주다. 그래서 나는 구해준다. 마리아야, 나는 언제나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자마자 구해준다.

그 불쌍한 사람들이 이렇게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께서는 왜 폭풍이나 태풍이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십니까?’ 만일 내가 내 능력으로 악(Evil)을 없애버린다면, 그것이 사실은 내 선물인데도 너희는 너희 스스로 선(Good)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너희는 더 이상 나를 기억하지 않게 될 것이다.

가엾은 내 자녀들아, 너희에게 아버지께서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려면, 고통이 필요하다. 굶주렸을 때에야 자기에게 아버지가 계신다는 것을 기억했던 그 탕자처럼 말이다.


불행들은 너희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 수많은 오류의 원인인 너희의 무지, 수많은 슬픔과 고통의 원인인 너희의 악의, 스스로 벌어들인 벌의 원인인 너희의 잘못, 그리고 내 현존, 내 능력, 내 착함을 너희에게 믿게 하는 데 필요하다.

이것이 오늘의 복음이 너희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가엾은 내 자녀들아, 현재의 ‘너희’의 복음 말이다. 나를 불러라. 그는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을 보기 때문에 그가 고뇌 가운데 있을 때를 빼놓고는 자지 않는다. 나를 불러라, 그러면 나는 올 것이다.”

 

 


186. 게라사인들의 지방에서의 마귀 들린 사람들

1945. 6. 11.

1944. 1. 30.에 네가 본 ‘폭풍이 가라앉다’의 환상을 여기 삽입해라. 그 후 이어지는 환상을 본다.

예수께서는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호수를 건너가신 다음 히포 근처에서 상륙하라고 베드로에게 부탁하신다. 베드로는 군말 없이 순종하여 작은 강의 하구까지 배를 가져간다. 강은 봄비와 최근에 내린 뇌우로 수량이 많아져 이쪽 호안의 특징인 거친 바위투성이의 협곡을 통하여 호수로 흘러 들어온다. 조수들은 배들을 고정시키며―각 배에 한 명씩 있다―카파르나움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저녁때까지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는다.

“너희는 황소처럼 벙어리가 되어라. 만일 그들이 선생님께서 어디 계시냐고 물으면 ‘나는 몰라요’ 하고 주저 없이 대답해라. 그리고 만일 누군가가 그분께서 어디를 향하여 가고 계시는지 누가 알려고 해도 마찬가지로 대답해라. 어쨌든 그것은 사실이다. 너희가 그것을 모르니까 말이다.”

베드로가 명령한다.

예수께서는 조수들과 헤어지신 다음 수직절벽에 가까운 가파른 오솔길을 올라가기 시작하시다. 사도들은 어려운 오솔길을 따라 예수를 뒤따라서 절벽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절벽 위에는 참나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고원이 있는데 수많은 돼지들이 거기서 방목되고 있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짐승들! 우리는 저놈들 때문에 지나갈 수 없구먼…”
바르톨로메오가 부르짖는다.

“아니다. 저놈들이 있어도 우리는 지나갈 수 있다. 모두에게 자리는 있다.”
예수께서 조용히 대답하신다.

뿐만 아니라 돼지 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길을 지나가기 쉽게 하려고 돼지들을 참나무 아래로 모으려고 애쓴다. 사도들은 살이 잔뜩 쪘으면서도 주둥이로 땅을 파헤치면서 더 뚱뚱해지려고 하는 짐승들이 남긴 오물 가운데로 오만상을 찌푸리며 지나간다.

예수께서는 별 탈 없이 지나가시면서 돼지 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 당신들의 친절을 갚아주시기를.”

돼지 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키는 돼지들보다 별로 더 깨끗하지도 못하고, 말할 수 없이 더 야윈 불쌍한 사람들인데, 놀라서 그분을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속삭인다. 그 중 한 사람이 말한다.

“저분은 혹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가?”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대답한다.

 

“너는 저분의 옷에 있는 술도 보지 못하니?”

사도들의 무리는 무리지어 걸어갈 수 있게 된 지금 한 군데에 모여 있다.
경치가 아름답다. 여기는 호수 위로 불과 수십 미터 위로 올라온 곳이지만, 거울 같은 수면 전체와 호숫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도시들을 내려다볼 수 있다. 티베리아스는 사도들의 맞은 편 호반에서 아름다운 건축물들과 함께 화려한 자태를 드러내 보인다. 이곳 바로 아래 현무암 절벽 밑에는 좁은 호반이 초록색 방석처럼 보이고, 맞은편 호반에는 티베리아스에서 요르단 강의 하구까지 꽤 넓은 습지처럼 보이는 평야가 있는데, 고요한 호수에서 천천히 흘러가다가 다시 빨리 흘러가기 전에 여기서 머뭇거리는 것 같은 강으로 인하여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 평야는 습지식물 군락으로 꽉 차 있고, 갖가지 보석으로 치장한 듯한 형형색색의 다양한 종류의 물새들이 밀생하고 있어 마치 공원처럼 보인다. 새들은 풀숲과 갈대밭에서 날아올라 호수 위를 날아다니다가 물고기를 낚아채려고 물속으로 자맥질하고, 물이 자신들의 깃털로 인하여 더 빛나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되어서 물 위로 날아올라 바람에 불려 여러 가지 빛깔이 춤추는 꽃핀 들판으로 돌아간다.

반대로 여기 위에는 대단히 큰 참나무 숲이 있고, 그 아래에는 부드러운 에메랄드 빛 풀이 나 있다. 이 띠 모양의 숲 너머 큰 계곡을 지나 산이 다시 오르막이 되면서 아주 가파른 바위산 정상을 이루는데, 그 위에는 바위로 된 계단식 대지에 집들이 지어져 있다. 나는 산비탈의 동굴이 주거로 사용되어 혈거인 촌과 보통 마을의 혼합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산비탈과 건물의 벽들이 일체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산은 집의 대지가 계단처럼 올라가게 되어 있는 특색이 있다. 그로 인하여 밑에 있는 집들의 지붕이 그 위의 평평한 대지에 있는 집들의 아래층과 같은 높이에 있게 된다. 산이 일체의 건축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른 쪽에는 깊은 동굴들, 깊이 갈라진 틈들 그리고 계곡으로 내려오는 가파른 오솔길들이 있다. 우기에는 이 오솔길들이 모두 변덕스러운 작은 급류가 될 것이 틀림없다.

갖가지 종류의 바윗덩어리들이 물에 떠밀려 내려와 몹시 가파르고 몹시 황량하고 울퉁불퉁한 이 작은 산에 무질서한 받침을 만들어놓았는데, 이것은 꼽추처럼 구부러지고 위압적이어서 마치 어떤 수를 써서라도 굽실거리게 만들고 말겠다는 태도를 가진 시골 대지주처럼 거만하게 보인다.

“저곳은 가말라가 아닙니까?”
열성당원이 묻는다.

“그렇다, 저곳은 가말라다. 너는 가말라를 아느냐?”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저는 아주 오래 전에 도망자로서 거기서 하룻밤을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 후 저는 나병이 생겨 무덤들이 있는 곳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자네를 여기까지 추격했나?”
베드로가 묻는다.

“나는 피난처를 찾아 시리아에 갔다가 거기서 돌아오는 길이었어. 그런데 나는 그자들에게 들켜 이리로 도망쳐 와서 붙잡히는 것을 겨우 면했어. 그 후 나는 여전히 위협을 받으며 천천히 트코아 사막까지 내려왔어. 나는 나병환자가 되었기 때문에 거기서 죽은 사람들의 골짜기로 갔지. 결국 나병이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해준 셈이야…”

“저 사람들은 이교도들이지, 그렇지?”
가리옷 사람이 묻는다.

“거의 모두가. 장사하는 유다인이 겨우 몇 사람 있었고, 나머지는 신자들과 비신자들이 섞여 살았지. 하지만 그들은 도망자인 나에게 나쁘게 대하지는 않았어.”

“이 지방은 산적들의 소굴처럼 보이는 곳들이야! 굉장한 협곡들이로구먼.”
여러 사람이 부르짖는다.

“맞아. 하지만 사실 산적들은 건너편에 더 많이 있어.”
아직도 세례자가 체포된 것으로 인하여 받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요한이 말한다.

“건너편에는 의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도 산적들이 있어.”
요한의 형이 말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 시작하신다.
“그런데도 우리는 거부감 없이 그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그런데 여기서 너희는 짐승들 가까이 지나오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 짐승들은 부정하니까요…”

“죄인은 훨씬 더 부정하다. 저 짐승들은 그렇게 만들어졌는데, 그놈들이 그렇게 생긴 것이 그놈들의 탓은 아니다. 반대로 사람은 죄로 인하여 부정하게 된 것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그럼 왜 우리는 저놈들을 부정한 짐승으로 분류합니까?”
필립보가 묻는다.

“나는 그것에 대하여 전에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다. 이 계명에는 초자연적인 이유와 자연적인 이유가 있다. 초자연적인 이유는 선택된 백성에게 먹는 것과 같은 일상행동에 있어서도 그들이 선택되었다는 것과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항상 마음에 생각하며 살아가는 생활방식을 가르치는 것이다.

미개인은 무엇이든 다 먹는다. 그들은 자기의 배를 채우기만 하면 된다. 이교도는 그가 미개인이 아니라 해도 과식이 사람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악습과 경향들을 부추긴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역시 아무것이나 다 먹는다. 이교도들은 그들에게는 거의 종교와도 같은 그 강렬한 쾌락에 도달하려고 애쓰기까지 한다. 너희 중 학식이 있는 사람들은 호색적인 주지육림으로 이어지는 이교도들의 신들을 위한 외설적인 축제에 대하여 알고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의 아들은 자제할 줄 알아야 하고, 자기의 기원이고 목적인 하느님과 하늘나라를 생각하며 순종과 인내로 자기 자신을 완전하게 해야 한다. 자연적인 이유는 사람에게 부적절한 충동을 야기하는 음식으로 피를 자극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육체적인 사랑도 사람에게 금지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사람은 하늘을 지향하는 영혼의 신선함으로 그런 사랑을 항상 조절해야 한다. 그러므로 남자는 자기를 자기의 아내와 결합시키는 감정은 그녀를 암컷으로 보지 않고 자기와 똑같은 사람으로 보는 사랑이어야지, 육욕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렇지만 저 불쌍한 짐승들에게는 그놈들이 돼지가 된 것에 대해서도, 돼지고기가 결과적으로 사람의 피에 대하여 일으키는 결과에 대해서도 죄가 없다. 돼지 치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죄가 없다. 만일 그들이 정직하다면, 그들과 책을 열심히 들여다보지만 불행히도 거기에서 착함을 배우지 못하는 율법학자와 내세에서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우리는 의인들 중에서 돼지를 쳤던 사람들을 보고, 불의한 사람들 중에서 율법학자들을 볼 것이다. 그런데 저 달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

돌과 흙이 산비탈로 굴러 내려오며 튀어 오르기 때문에 모두 산허리에서 비키며 놀라서 쳐다본다.

“저기요, 저기요! 저 건너편이요! 완전히 발가벗은… 두 사람이… 손짓을 하며 우리를 향해 오고 있네요. 미친…”

“혹은 마귀 들린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예수께서는 마귀 들린 두 사람이 예수를 향하여 오는 것을 가장 먼저 본 가리옷 사람에게 대답하신다.

그들은 산중턱의 어떤 동굴에서 나왔음이 틀림없다. 그들은 소리 지른다. 더 빨리 뛰는 사람은 예수를 향하여 달려온다. 그 사람은 얼마나 빨리 뛰며 두 팔이 날개라도 되는 양팔을 상하로 많이 젓는지 그는 마치 깃털이 빠진 이상하고 못생긴 큰 새처럼 보인다. 그는 예수의 발 앞에 쓰러지며 외친다.

“세상의 주인이시여, 당신께서 여기를?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여, 제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가 벌 받을 시간이 벌써 왔습니까? 당신께서는 왜 때가 되기 전에 우리를 괴롭히러 왔습니까?”

다른 마귀 들린 사람은 혀가 굳었는지 아니면 마귀가 그를 마비시키는지, 그저 땅바닥에 쓰러져 고개를 숙이고 울기만 한다. 그러다가 그는 일어나 앉아 무기력하게 조약돌과 자기의 맨발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마귀는 첫 번째 사람의 입으로 계속 말하고 있는데, 그는 극도의 공포에 질려 땅바닥에서 몸을 비비꼬고 있다. 그는 반항하고 싶어 하지만 예수의 능력에 끌리기도 하고, 그와 동시에 혐오감을 일으키기도 하며 경배밖에 할 수 없는 것 같다. 그가 부르짖는다.

“제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간청하니, 저를 그만 괴롭히시고, 제가 떠나게 해주십시오!”

“그래라. 하지만 이 사람에게서 나가라. 더러운 영아, 이 사람들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나에게 네 이름을 말해라.”

“제 이름은 군대(Legion)입니다. 저희는 수가 많으니까요. 저희는 여러 해 전부터 이자들에게 붙어서 이들을 통하여 밧줄들과 쇠사슬들을 끊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의 힘은 없습니다.

이들은 저희로 인하여 공포의 대상이 되는데, 저희는 이들을 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을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합니다. 저희는 당신의 저주에 대하여 이 사람들에게 복수합니다. 저희는 사람의 품위를 야수보다 낮게 떨어뜨려 당신을 비웃게 합니다. 늑대도, 재칼도, 하이에나도, 독수리도, 흡혈귀도 저희가 붙잡고 있는 이자들보다는 낫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를 내쫓지는 마십시오. 지옥은 너무 끔찍합니다!…”

“나가라.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

예수의 목소리는 우레와 같고, 그분의 두 눈은 섬광을 내뿜는다.

“저희를 당신께서 보신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가거라.”

마귀들은 짐승같이 부르짖으며 불쌍한 두 사람을 떠나, 참나무들을 풀들처럼 흔들리게 하는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돼지 떼에게 달려든다. 돼지들은 마귀 들린 사람들처럼 정말 마귀 같은 비명을 지르며 참나무들 사이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놈들은 서로 부딪치고, 상처를 입히고, 물어뜯으며 마침내 절벽 가장자리에 이르러 아래에 있는 물밖에 피할 곳이 없게 되었을 때 호수로 뛰어내린다.

돼지 치는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망연자실하고 겁에 질려 울부짖는 가운데 돼지들은 수백 마리씩 첨벙첨벙 소리를 내면서 조용한 물로 떨어지며 거품의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그놈들은 가라앉았다 다시 수면으로 떠올라 몸이 뒤집혀 둥근 배와 겁에 질린 눈과 뾰족한 주둥이를 보이다가 마침내 빠져죽고 만다. 돼지치기들은 고함을 지르며 시내 쪽으로 뛰어간다.

사도들은 재난의 현장에 갔다가 돌아오며 말한다.

“살아남은 놈은 한 마리도 없습니다. 당신께서는 그들에게 많은 해를 끼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침착하게 대답하신다.

“사람 한 명이 죽는 것보다 돼지 이천 마리가 죽는 편이 더 낫다. 이 사람들에게 옷을 주어라. 이 사람들은 이렇게 있을 수 없다.”

열성당원이 배낭을 열어 그의 튜닉들 중에서 한 벌을 준다. 토마스가 다른 한 벌을 준다. 두 사람은 마치 악몽에 시달리다가 깊은 잠에서 방금 깨어난 듯 아직도 약간 어리벙벙하다.

“이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어라. 이들을 돌려보내 다시 정상인들로 살게 해라.”

두 사람이 사도들이 준 빵과 올리브를 먹고 베드로의 수통에 들어 있는 물을 마시는 동안 예수께서는 그들을 살펴보신다.

마침내 그들이 말한다.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나자렛의 예수요.”

“저희는 당신을 모르는데요.”
다른 사람이 말한다.

“당신들의 영혼은 나를 알고 있소. 지금 일어나 집으로 가시오.”

“저는 저희가 아주 많이 고통당했다고 생각합니다만, 잘 기억할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누굽니까?”
마귀를 대신하여 말했던 사람이 물으며 자기의 동료를 가리킨다.

“나는 모르오. 이 사람은 당신과 함께 있었소.”

“당신은 누구요? 당신은 왜 여기 있소?”


그가 자기의 동료에게 묻는다.
벙어리 같았고 아직도 둘 중에서 더 기력이 없는 사람이 말한다.

“나는 데메트리우스요. 여기는 시돈이오?”

“여보시오, 시돈은 바닷가에 있소. 여기는 갈릴래아 호수 건너편이오.”

“그런데 내가 왜 여기 와 있어요?”

아무도 대답해줄 수 없다. 사람들 몇 명이 오고, 돼지 치던 사람들이 뒤따라온다.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면서도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 그들은 마귀 들렸던 두 사람이 옷을 입은 채 단정하게 있는 것을 보고는 더 깜짝 놀란다.

“이 사람은 요시야의 마르코로구먼!… 저 사람은 이교도 상인의 아들이고!…”

"그리고 이분은 이 사람들을 고쳐주고 우리 돼지들을 죽게 한 사람입니다. 마귀들이 돼지들에게 들어갔을 때 그놈들은 미쳐버렸거든요.”

돼지를 쳤던 사람들이 말한다.

“주님, 당신은 능력이 크십니다. 저희는 그것을 인정합니다만, 당신께서는 이미 저희에게 너무 큰 손해를 끼치셨습니다! 여러 탈렌트의 손해입니다. 제발 떠나주십시오. 당신의 능력으로 산이 무너져 호수에 처박히지 않게요.”

“나는 가겠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나 자신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더 이상의 말씀 없이 왔던 길로 돌아서신다.
말했던 마귀 들렸던 사람이 제자들을 뒤따라온다. 그 도시의 여러 주민들이 예수께서 정말로 떠나시는지 보려고 약간의 거리를 두고 뒤따라온다.
그들은 가파른 오솔길을 통하여 작은 급류의 입구 배 가까운 곳으로 돌아온다. 주민들은 제방에 머무른 채 지켜보고 있다. 치유된 마귀 들렸던 사람은 예수를 뒤따라 내려온다.

배 안에서는 조수들이 겁에 질려 있다. 그들은 돼지들이 소나기가 내리는 것처럼 호수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고, 지금도 둥그런 배를 드러내고 비계 덩어리에 말뚝처럼 박힌 짧은 다리를 내보이며 점점 더 부풀어 오르는, 점점 더 많이 떠오르는 시체들을 보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이 묻는다.

“우리는 나중에 너희에게 말해주겠다. 배들을 풀어라. 떠나자… 나의 주님, 어디로 갑니까?”
베드로가 말한다.

“타리케아 만으로.”

그들을 뒤따라온 사람이 지금 그들이 배에 타는 것을 보고 애원한다.
“주님, 저를 데려가주십시오.”

“아니오, 당신의 집으로 돌아가시오. 당신의 부모들은 당신과 함께 지낼 권리가 있소. 주님께서 당신에게 해주신 큰일들을 그들에게 말하고 그분께서 어떻게 당신을 불쌍히 여기셨는지 말해주시오. 이 지방에는 믿음이 필요하오.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믿음의 불꽃들을 놓으시오. 가시오. 안녕.”

“마귀가 다시 저에게 들리지 못하도록 적어도 당신의 강복으로라도 저를 위로해주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시오. 만일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마귀는 돌아오지 않을 거요.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강복하오. 평안히 가시오.”

배들은 호반을 떠나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하여 간다. 배들이 돼지 시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물을 가르는 동안에 그제야주님을 원치 않은 도시의 주민들이 제방을 떠나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