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3권 공생활 둘째 해 1 p300~p314

189. 나인의 과부의 아들
1945. 6. 14.
예수 시대에 나인은 어느 정도 중요한 도시였던 것이 틀림없다. 그것은 큰 도시는 아니지만 잘 건조되고 성곽이 둘러쳐져 있으며, 소 헤르몬 산의 지맥인 낮고 아름다운 야산에 자리 잡고 있어 그곳에서 동북쪽으로 펼쳐진 기름진 평야가 내려다보인다.
엔도르에서 오다 보면 분명히 요르단 강으로 흘러드는 개천을 건넌 다음에 나인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요르단 강도 보이지 않고, 그 계곡도 보이지 않는다. 야산들이 동쪽으로 물음표 모양의 아치를 만들어놓고 있어 그것들을 가리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호수 지방과 헤르몬 산과 그 주변 마을들을 잇는 간선도로를 따라가신다. 그분의 뒤에는 엔도르의 많은 주민이 따라오며 자기들끼리 활발하게 대화하고 있다.
사도들의 무리와 성곽 사이의 거리는 짧다. 기껏해야 200야드쯤 될 것이다. 간선도로는 두 성문 중 하나로 똑바로 이어지는데, 지금은 한낮이기 때문에 성문이 활짝 열려 있어 성곽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도들과 새 회심자와 말씀하고 계셨던 예수께서는 곡녀(哭女: 장례식 때 직업적으로 곡하는 여자)들의 요란한 울음소리와 동방 식으로 꾸민 장례행렬이 다가오는 것을 보신다.
“선생님, 저희가 가서 볼까요?”
여러 사람이 묻는다. 엔도르의 주민들 중 여러 사람이 그 관경을 보려고 이미 달려가고 있다.
“그래, 가자.”
예수께서는 친절하게 말씀하신다.
“오! 저것은 어린 소년이 틀림없어. 얼마나 많은 꽃들과 리본들이 상여에 달려 있는지 보게.”
가리옷의 유다가 요한에게 말한다.
“아니면 동정녀이거나.”
요한이 대답한다.
“아니야, 저 사람들이 쓴 빛깔로 보아, 그리고 도금양(기분 좋은 향기가 나는 작은 흰 꽃이 피는 상록수, 지중해 연안지방 원산)이 없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젊은 남자일 거야.”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장례행렬이 성곽의 다른 쪽으로 나온다. 상여꾼들이 높이 메고 가는 상여 위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는 없다. 다만 붕대에 감기고 홑이불이 덮인 시체를 그것이 나타내는 형태만으로 짐작하게 되는데, 그 시체가 상여 길이만큼이나 긴 것으로 보아 그것은 이미 성숙한 육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베일을 쓴 한 여인이 친척들인지 친구들인지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울면서 상여 옆에서 걸어간다. 곡녀들의 소극 중에서 이 눈물만이 참된 눈물이다. 상여꾼이 돌이나 땅의 돌출부분을 딛거나 비틀거려 상여가 흔들릴 때 어머니는 비명을 지른다.
“오! 안 돼요! 조심하세요! 우리 아이가 얼마나 고통당했는데!”
그녀는 떨리는 손을 들어 상여의 가장자리를 쓰다듬는다. 그녀는 그 이상의 일을 할 수 없어 펄럭이는 휘장과 가끔 바람에 불려 움직이지 않는 시체를 가볍게 스치는 리본들에 입 맞춘다.
베드로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 착하고 날카로운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말한다.
“저분이 어머니시구먼.”
이 격렬한 아픔을 보고 눈물을 보이는 사람은 베드로만이 아니다. 열성당원과 안드레아와 요한 그리고 늘 명랑한 토마스의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그들 모두가 깊은 연민을 느낀다. 가리옷의 유다가 중얼거린다.
“이게 나라면! 오! 불쌍한 우리 어머니…”
예수께서는 말할 수 없이 다정한 눈빛을 보이시며 상여를 향하여 가신다. 운구행렬이 열린 돌무덤을 향하여 방향을 틀려고 하기 때문에 지금은 더 크게 흐느끼고 있던 여인은 예수께서 상여를 만지시려는 것을 보고 결연하게 그분을 밀어낸다. 나는 그녀가 흥분상태에서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얘는 내 아들이에요!”
여인이 부르짖으며 예수를 똑바로 쏘아본다.
“나는 압니다, 어머니. 이 아이는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얘는 내 외아들이에요! 왜 얘가 죽어야 합니까? 그렇게도 착하고, 그렇게도 사랑스럽고, 과부의 기쁨이었던 얘가 말입니다.” 고용된 곡녀들의 무리는 어머니에게 화답하는 양 더 크게 곡성을 지른다. 어머니는 계속한다.
“왜 내가 죽지 않고 이 애가 죽어야 합니까? 아이를 낳은 어미가 제 자녀 죽는 것을 보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얘는 살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남자에게 아이를 낳아주느라 찢기는 고통을 겪은 이 자궁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여인은 절망적으로 사납게 자기의 배를 때린다.
“그렇게 하지 마세요! 어머니, 울지 마세요.”
예수께서는 여인의 두 손을 꽉 잡아 왼손에 모아 쥐시고 오른손으로 상여를 만지시며 상여꾼들에게 말씀하신다.
“멈추고 상여를 내려놓으시오.”
상여꾼들이 복종하여 상여를 내려놓자 네 발로 지탱되는 침대 모양의 상여를 내려놓는다.
예수께서 죽은 젊은이를 덮어놓은 홑이불을 잡아 뒤로 젖히시자 시체가 드러난다.
어머니는 자신의 고통을 나타내며 큰 소리로 자기의 아들의 이름을 부른다.
“다니엘아!”
여인의 손을 여전히 한 손으로 잡고 계시는 예수께서는 가장 강력한 기적을 행하실 때의 얼굴을 하시고, 빛나는 눈으로 위엄 있게 몸을 일으키시며 아주 힘찬 목소리로 명령하신다.
“젊은이여,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죽은 사람은 붕대로 칭칭 감긴 채로 일어나 상여 위에 앉으며 말한다.
“엄마!”
그는 겁에 질린 어린이처럼 더듬거리고, 겁에 질린 목소리로 어머니를 부른다.
“부인, 이 사람은 당신의 아들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 사람을 당신에게 돌려드립니다. 이 사람을 도와 수의를 벗기시오. 그리고 행복하시오.”
그 다음에 예수께서는 그 자리를 뜨려고 하신다. 불가능하다! 군중은 그분을 상여에서 꼼짝 못하게 한다. 상여 위에서는 어머니가 서두르느라 붕대를 더듬고, 그 동안에 아들은 자꾸만 애절하게 자기의 엄마를 부르고 있다.
“엄마! 엄마!”
수의가 벗겨지고, 붕대들이 풀린다. 어머니와 아들은 서로를 껴안을 수 있다. 그들은 끈적거리는 연고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서로를 포옹한다. 그 다음에 어머니는 바로 그 붕대들로 사랑하는 아들의 얼굴과 양손에서 향유를 닦아낸다. 그녀는 그에게 입힐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자기의 겉옷을 벗어 그에게 입힌 다음 한참 동안 그를 포옹한 채로 있다…
예수께서는 그녀를 바라보신다… 그분께서는 더 이상 상여가 아닌 작은 침대의 가장자리에 함께 바짝 붙어선 다정한 사람들을 바라보시며 우신다.
가리옷의 유다는 그분의 눈물을 보고 묻는다.
“나의 주님, 당신께서는 왜 울고 계십니까?”
예수께서는 그에게 얼굴을 돌리시고 말씀하신다.
“나는 내 어머니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다.”
이 짧은 대화는 여인의 주의를 그녀의 은인에게로 끈다. 그녀는 자기의 아들의 육체가 아직 약간 마비에서 덜 풀렸기 때문에 그의 손을 잡고 그를 부축하며 무릎을 꿇고 말한다.
“내 아들아, 너도 너를 생명과 네 어미에게로 회복시켜주신 이 성인을 찬미해라.”
그녀는 몸을 숙여 예수의 옷에 입 맞춘다. 그 동안 군중은 하느님께와, 사도들과 엔도르의 주민들이 누가 기적을 행하였는지를 말함으로써 지금은 잘 알려진 하느님의 메시아께 찬미가를 부른다.
군중이 외친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 그분의 사자이신 메시아님이여, 찬미 받으소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찬미 받으소서! 위대한 예언자가 우리 중에서 일어나셨네!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그분의 백성을 찾아오셨네! 알렐루야! 알렐루야!”
마침내 예수께서는 군중의 압박에서 벗어나 읍내로 들어가실 수 있다. 군중은 그들의 사랑으로 환호하며 그분을 따라오며 추적한다.
한 사람이 예수께 달려와 깊이 절하며 말한다.
“선생님, 부디 저희 집에서 머무르십시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나는 파스카로 인하여 미리 정해진 것 이외에는 멈출 수 없습니다.”
“몇 시간만 있으면 황혼이 되고, 오늘은 금요일인데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황혼이 되기 전에 오늘의 여정을 끝내야 합니다. 나는 똑같이 당신에게 감사하지만, 나를 붙잡지는 마시오.”
“저는 회당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나와 함께 있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려고 하는군요. 여보시오, 내가 한 시간만 지체했다 해도, 이 어머니는 아들을 도로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다른 불행한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갈 것입니다. 이기적이 되어서 그들의 기쁨을 늦추지 마시오. 다음에 나는 나인에 꼭 다시 와서 당신과 함께 며칠 묵겠습니다. 지금은 내가 가게 해주시오.”
그 사람은 그 이상 조르지 않고 이렇게만 말한다.
“알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럽시다. 평화가 당신과 나인 주민들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엔도르의 주민 여러분에게도 평화와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집으로 돌아가시오. 하느님께서는 기적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사랑의 힘을 통하여 여러분 모두의 마음이 선으로 회복되도록 힘쓰시오.”
마지막 찬미가가 울려 퍼진 다음 군중은 예수를 가시게 한다. 그분께서는 시내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서 에스드렐론을 향하여 성 밖 시골로 나아가신다.
190. 에스드렐론에 도착하시어 미카의 집에 머무르시다
1945. 6. 15.
예수께서 요하난의 밭들이 보이는 곳에 이르셨을 때 하늘이 붉어지며 황혼이 시작된다.
“내 벗들아, 해가 지기 전에 우리의 걸음을 재촉하자. 베드로야, 너는 네 동생과 함께 도라의 하인들인 우리 친구들에게 가서 알려라.”
“예, 저는 가겠습니다. 저는 그 아들이 잘 떠났는지 보기 위해서라도 가겠습니다.”
베드로는 ‘아들’이라는 말을 강조한 다음 출발한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요하난의 농부 중 누군가가 주위에 있는지 보시려고 주위를 살펴보시며 걷는 속도를 늦추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이미 이삭들이 다 팬 기름진 밭들밖에는 보실 수 없다…
마침내 포도 잎들 사이로 땀에 젖은 얼굴이 나타나고, 이어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오! 복되신 주님!”
농부 한 사람이 포도밭 밖으로 뛰어나와 예수의 발밑에 엎드린다.
“이사야, 평화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오! 당신께서는 제 이름도 기억하십니까?”
“그것은 내 마음속에 쓰여 있어요. 일어나시오. 당신의 동료들은 어디 있소?”
“저기 사과밭에 있습니다. 저는 즉시 그들에게 알리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저희 집에 머무르실 거죠, 그렇죠? 주인은 여기 없기 때문에 저희는 당신을 환대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두려움으로 인해서도, 기쁨으로 인해서도… 그는 약간 나아졌습니다. 그가 올해에는 저희에게 어린양을 주고 성전에 가도록 허락해주었다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저희에게 엿새밖에는 주지 않았지만… 저희는 뛰어갈 겁니다. 저희도 예루살렘에 갑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것은 당신의 덕분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한 인간으로, 이스라엘 사람으로 대접받게 되어 기쁨으로 칠층천에라도 있는 것 같다.
“내가 아는 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예수께서 미소 지으시며 말씀하신다.
“오! 아닙니다! 당신께서는 굉장한 일을 하셨습니다. 도라와 도라의 밭들, 그리고 반대로 올해 농사가 이렇게 잘된 이 밭들… 요하난은 당신의 방문을 알았는데, 그는 바보가 아닙니다. 그 사람은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예, 그는 무서워하고 있어요.”
“무엇을 말이오?”
“그는 도라에게 일어났던 일이 자기에게도 일어날까봐 두려워합니다. 당신께서는 도라의 밭들을 보셨습니까?”
“나는 나인에서 오고 있습니다.”
“그럼 당신께서는 그것들을 못 보셨군요. 그것들은 황폐 그 자체입니다(그 사람은 모종의 무서운 비밀을 말하는 사람처럼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한다). 완전히 폐허가 됐어요! 건초도, 밀도, 과일도 없습니다. 포도나무들도, 사과나무들도 말라버렸습니다… 그것들 모두가 죽었습니다… 죽어버렸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처럼요… 오십시오, 저는 당신께 그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건 필요 없어요. 나는 그 농부들에게 가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여기 있지 않습니다! 당신께서는 모르십니까! 도라의 아들 도라는 그들 모두를 흩어버렸거나 내보냈습니다. 그의 소유인 다른 지방의 농지로 쫓겨난 사람들은 당신에 대하여 말하면 매 맞을 것이 때문에 당신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당신에 대하여 말하지 않다니! 그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요하난 자신도 저희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무어라고 말했나요?”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도라처럼 어리석지 않다.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나자렛 사람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무익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똑같이 그것을 말할 터인데 나는 너희를 길들여지지 않는 짐승들처럼 매질하여 죽임으로써 너희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너희에게 나자렛 사람이 분명히 가르치는 것처럼 ‘착하게 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내가 너희를 잘 대우한다고 그에게 말해라. ‘나는 저주받기를 원치 않는다.’
물론 그는 당신께서 축복하신 다음에 이 밭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당신께서 저주하신 다음에 저 밭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 저기 저를 위하여 쟁기질해주셨던 분들이 오시는군요.”
그 사람은 베드로와 안드레아를 맞이하러 달려간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에게 간단히 인사하고 길을 걸어오며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한다.
“오! 선생님! 아무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모두가 새 얼굴들뿐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황폐해졌습니다! 농부들을 여기 두지 않아도 그는 아주 잘해나갈 것입니다. 그곳은 사해보다 더합니다!”
“나는 안다. 이사야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하지만 가서 보십시오. 얼마나 기막힌 광경인지요…”
예수께서는 그를 만족시켜주시기 전에 이사야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당신들과 함께 묵겠습니다. 당신의 동료들에게 알리시오. 그러나 아무런 수고도 하지 마시오. 나는 충분한 음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들어가 잘 수 있는 건초 헛간과 당신들의 사랑만 있으면 됩니다. 나는 곧 다시 오겠습니다.”
도라의 밭들은 정말로 비참한 광경이다. 밭들과 풀밭들은 메마르고 헐벗었고, 포도밭들도 메마르고, 나무들의 잎과 열매들은 갖가지 수백만 마리의 곤충으로 인하여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집 근처에 있는 과수원도 죽어가는 숲처럼 황량해 보인다.
농부들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잡초를 뽑고, 애벌레와 괄태충과 지렁이와 그와 유사한 종류의 다른 곤충들을 쫓고, 남아 있는 잎에 까맣게 달라붙어 나무를 죽게 할 정도로 메마르게 하는 작은 나비들과 진디와 다른 기생충들을 빠뜨리기 위하여 물이 가득한 솥들을 가져다놓고, 나뭇가지들을 흔든다.
그들은 포도덩굴에서 살아 있는 징후를 찾아본다. 그러나 바싹 마른 포도덩굴은 건드리기가 무섭게 부러지고, 때로는 뿌리가 톱으로 잘린 것처럼 발에 밟혀 꺾인다. 요하난의 밭들, 포도나무들, 과수원들과는 매우 뚜렷한 대조를 이루며, 저주받은 밭들의 황폐함은 다른 밭들의 풍요함과 비교하면 한결 더 인상적이다.
“시나이 산의 하느님의 손은 묵직하시군요.”
열성당원 시몬이 속삭인다.
예수께서는 마치 ‘네 말이 참으로 옳다!’ 하고 말씀하시는 듯한 몸짓을 하시지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이렇게만 물으신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소?”
한 농부가 입 속에서 중얼거린다.
“두더지, 메뚜기, 벌레들… 하지만 가십시오. 관리인은 도라의 심복입니다. 저희에게 해를 끼치지 마십시오.”
예수께서는 한숨을 쉬신 다음 떠나신다.
사과나무 한 그루를 살려보려는 희망을 가지고 그 나무를 북돋워주느라 몸을 구부리고 있는 다른 농부가 말한다.
“저희는 내일… 관리인이 기도하러 이즈르엘로 가면… 미카의 집으로 가겠습니다.”
예수께서는 강복하는 손짓을 하신 다음 떠나신다.
예수께서 네거리로 돌아오시자 요하난의 모든 농부들이 기뻐하며 온통 잔치 분위기에 젖어 있다. 그들은 메시아를 에워싸고 자기들의 초라한 집으로 모시고 간다.
“당신께서는 그곳을 보셨습니까?”
“예, 나는 보았습니다. 도라의 농부들은 내일 올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그 하이에나들이 기도할 때… 저희는 안식일마다 그렇게 합니다… 저희는 당신에 대하여 말하고, 요나에게서 들은 것과 저희를 자주 찾아오는 이사악에게서 들은 것과 티쉬리 달에 당신께서 설교하셨던 것을 이야기합니다. 저희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말합니다. 왜냐하면 저희가 당신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저희가 고통을 당하면 당할수록, 당신에 대하여 말하지 못하도록 금지당하면 당할수록, 저희는 더욱더 당신에 대하여 말합니다. 저 불쌍한 사람들은… 안식일마다 생명의 정수를 마십니다… 그러나 이 평야에는 적어도 당신에 대하여 알 필요가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그들은 이리로 올 수 없습니다…”
“나는 그들도 돌보겠습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축복받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연기가 자욱한 어떤 부엌으로 들어가실 때 해가 진다. 안식일의 휴식이 시작된다.
191. 에스드렐론에서의 안식일. 어린 야베츠. 부자 디베스의 비유
1945. 6. 16.
“미카가 오늘 이 지방 농부들에게서 꾼 돈을 내일 갚을 수 있도록 그에게 돈을 넉넉히 주어라.”
예수께서 공동체의 돈을 관리하는 가리옷의 유다에게 말씀하신 다음 안드레아와 요한을 불러 이즈르엘에서 오는 한 갈래 또는 두 갈래 길이 보이는 두 지점으로 보내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베드로와 시몬을 부르시어 도라의 농부들을 맞이하러 가라고 보내시면서 두 소유지의 경계에서 그들을 멈추게 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러고 나서 그분께서는 야고보와 유다에게 말씀하신다.
“먹을 것들을 가지고 나와 함께 가자.”
요하난의 농부들, 남자들, 여자들 어린이들 모두가 그들을 따라가는데, 남자들은 두 개의 작은 암포라들을 가지고 간다. 그것들이 아주 작지는 않은데, 그것들은 포도주로 가득 차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것들은 암포라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각기 10리터씩은(부디 내가 말하는 용량을 믿을 교리로 생각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들어갈 만한 동이들이다. 그들은 요하난의 소유지의 끝에 있는, 이미 새 잎들로 뒤덮인 포도그루들이 밀식된 포도밭을 향하여 간다. 그 너머로는 물이 가득 찬 넓은 도랑이 있는데, 그것은 엄청난 노동력을 투입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보이시죠? 요하난은 이 도랑 때문에 도라와 다투었습니다.
요하난이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결딴난 것은 자네의 아버지 탓이야. 그를 경배하기가 싫었다 해도 그분은 그에게 도전하는 대신 그를 무서워하기라도 해야 했어.’
그러자 도라가 마귀처럼 부르짖었습니다. ‘이 도랑이 당신의 땅을 구해주었습니다. 벌레들이 이것을 건너가지 못한 겁니다…’
그러자 요하난이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전에는 자네네 밭들은 에스드렐론에서 가장 좋았는데, 그것들이 왜 그렇게 결딴났나? 그건 하느님의 벌이야. 틀림없네. 자네들은 한계를 넘어갔어. 이 물?… 이 물은 언제나 여기 있었던 거야. 이 물이 나를 구해준 게 아니야.’
그러자 도라가 다시 소리 질렀습니다. ‘이건 예수가 마귀라는 증거입니다.’
‘그분은 의인이야.’ 요하난이 되받아쳤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입씨름을 했습니다.
그 뒤 요하난은 많은 비용을 들여 도랑에 개울물을 끌어오게 하고, 지하수의 원천을 발견하려고 땅을 파게 했습니다. 그는 자기와 자기의 친척 사이의 경계에 몇 개의 도랑들을 파게 하고, 저희가 어제 당신께 말씀드린 말을 저희에게 했습니다… 결국 그는 일어난 일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는 도라를 몹시 질투했거든요… 그는 지금 자기가 모든 것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도라는 결국 모든 것을 아주 헐값에 팔고 말 테니까요.”
예수께서는 도라의 불쌍한 농부들을 기다리시며 친절하게도 이 모든 비밀 이야기를 들으신다. 도라의 농부들은 시간에 맞추어 오셔서 나무 그늘에 계시는 예수를 보자마자 땅에 엎드린다.
“내 벗들이여, 당신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이리 오시오. 오늘은 여기가 회당이고, 나는 여러분의 회당장이오. 그러나 그 이전에 나는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음식을 나누어줄 테니 내 주위에 둘러앉으시오. 오늘 신랑은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인잔치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바구니 하나의 덮개를 벗기시고 도라의 농부들의 놀라워하는 눈앞에서 빵들을 꺼내시고, 또 다른 바구니에서는 그분께서 구하실 수 있었던 음식물들을 꺼내시는데, 치즈가 있고, 익힌 야채와 통째로 익힌 작은 새끼염소 또는 어린양이 한 마리가 있다. 예수께서는 불쌍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신 다음, 포도주를 따라 투박한 잔을 돌려 모든 사람들이 마시게 하신다.
“왜 이렇게까지? 그런데 저 사람들은요?”
도라의 농부들이 요하난의 농부들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 사람들은 이미 자기들의 몫을 받았습니다.”
“비용이 아주 많이 들었겠는데요! 당신께서는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 있었습니까?”
“이스라엘에는 여전히 몇몇 착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미소 지으시며 말씀하신다.
“하지만 오늘은 안식일인데요…”
“이 사람에게 감사하시오.”
예수께서는 엔도르 출신의 사람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신다.
“이 사람이 어린양을 장만했습니다. 나머지는 얻기가 쉬웠어요.”
그 불쌍한 사람들은 오랫동안 구경해보지 못한 음식을 문자 그대로 게걸스럽게 집어삼킨다. 그 중에 꽤 나이 든 한 남자가 열 살쯤 된 어린이를 자기의 곁에 바짝 붙어 앉게 한 채 먹으며 운다.
“할아버지, 당신은 왜 그러십니까?…”
예수께서 물으신다.
“당신의 선하심이 너무 커서요…”
엔도르의 사람이 후두음으로 말한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당신을 울게 합니다만, 이것은 슬픔의 눈물은 아닙니다…”
“이 눈물은 쓰라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가 바라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제 눈물은 하나의 소원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할아버지(father), 당신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이 아이를 보십시오. 이 아이는 제 손잡니다. 이 아이는 지난겨울 산사태 때부터 저에게 맡겨졌습니다. 도라는 이 애가 저에게 와 있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애를 들짐승처럼 숲 속에서 살게 하고, 안식일에만 이 애를 보니까요. 도라에게 들키면, 그는 이 애를 내쫓거나 일을 시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연약한 제 손자는 마소보다 못한 대우를 받을 것입니다. 파스카에 저는 이 애를 미카와 함께 예루살렘에 보내 율법의 아들이 되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얘는 제 외손자입니다.”
“그럼 당신은 이 아이를 나에게 주시겠습니까? 울지 마세요. 나는 정직하고 거룩한데 아이가 없는 많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내 길에 따라 거룩하게 이 아이를 기를 것입니다…”
“오! 주님! 그것은 제가 당신에 대하여 들었을 때부터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의인 요나에게 제 손자를 이 죽음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주인 밑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얘야, 너는 나를 따라오겠니?”
“예, 나의 주님. 저는 당신께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럼 결정되었다…”
“하지만… 당신께서는 이 아이를 누구에게 주려고 하십니까? 이 아이도 라자로에게요?”
베드로가 예수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한다.
“아니다, 시몬아, 그러나 자녀 없는 사람들은 아주 많다…”
“그런데 저도 그들 중 한 명입니다…”
베드로의 얼굴은 갈망으로 핼쑥해진 것처럼 보인다.
“시몬아, 나는 이미 너에게 말했다. 너는 내가 남겨줄 모든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너는 네 자신의 어떤 자녀에게도 얽매여서는 안 된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너는 네 선생에게 너무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에 그는 애정으로 인하여 너를 그 자신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다. 시몬아, 나는 까다롭다. 나는 아주 질투심이 많은 남편보다 더 까다롭다. 나는 너를 지극히 편파적으로(most partially) 사랑하기 때문에 네가 전적으로 내 것이 되기를 원한다.”
“좋습니다, 나의 주님… 좋습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되기를.”
가엾은 베드로는 예수의 뜻에 순종함에 있어 참으로 영웅적이다.
“이 아이는 동터 오는 내 교회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렇지? 이 아이는 모든 사람의 아들이기도 하고 누구의 아들도 아니기도 할 것이다. 이 아이는 ‘우리’ 아이일 것이다. 그는 거리가 멀지 않을 때는 우리와 함께 다닐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에게 올 것이다. 목자들이 이 아이의 보호자들일 것이다. 그들은 모든 어린이들을 ‘자신들의’ 아기 예수로 보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 아이야, 이리 오너라. 네 이름은 무엇이냐?”
“요한의 야베츠입니다. 저는 유다인입니다.”
소년이 주저 없이 말한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유다인입니다.”
노인이 확인한다.
“저는 유다에 있는 도라의 소유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제 딸이 이 지방 사람과 혼인했습니다. 그는 아리마태아 근처의 숲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지난 겨울에…”
“저는 그 재난을 보았습니다.”
“얘는 그날 밤 멀리 있는 친척 집에 가 있었기 때문에 무사했습니다… 사실 얘는 야베츠라는 제 이름값을 했습니다. 주님! 저는 얘의 이름을 듣자마자 제 딸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왜 그런 이름을 붙였니? 너는 옛 역사도 기억하지 못하니?’ 그러나 사위는 이 아이에게 이 이름을 붙여주기를 원했고, 그래서 얘는 야베츠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는 주님께 간청할 것이고, 그러면 그분께서는 그에게 강복하실 것이고, 그의 경계를 넓혀주실 것이고, 주님의 손이 그와 함께 있어 불행이 그에게 다가오지 못할 것이다.’ (1역대4,9-10, 야베츠는 행운의 이름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 같다.) 할아버지, 이것이 주님께서 당신과 죽은 이들의 영을 위로하기 위하여, 그리고 고아의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하여 이 아이에게 주실 것입니다.그리고 이 어린이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가 육체의 필요들을 영혼의 필요로부터 분리한 지금,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생각해낸 비유를 들으시오.
옛날에 대단히 부유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장 아름다운 옷들을 입었습니다. 그는 주홍빛 옷과 올이 가는 아마포 옷을 입고 광장과 집에서 으스대며 걸어 다녔고, 동향인들은 그를 그 지방의 가장 권세 있는 사람으로 존경했고, 친구들은 이익들을 얻기 위하여 그의 교만을 부추겼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그의 홀들에서 연회를 즐겼는데, 그곳에서는 모두가 부자들인, 따라서 아무도 궁핍하지 않은 많은 손님들이 밀려들어 디베스에게 아첨했습니다. 그의 잔치들은 푸짐한 음식과 엄선된 포도주들로 유명했습니다.
한편 같은 읍내에 한 큰 거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부자의 재산이 대단했던 것만큼이나 이 거지의 불행도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거지 라자로의 인간적인 불행의 껍질 밑에는 라자로의 비참함보다, 디베스의 재산보다 훨씬 더 큰 보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라자로의 참된 성덕이었습니다. 그는 곤궁에 처해 있어도 율법을 어긴 적이 전혀 없었고, 특히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줄곧 지켰습니다.
그는 거지들이 늘 그렇듯이 굶어 죽지 않으려고 부잣집 문전에 앉아 구걸하곤 했습니다. 그는 적어도 화려한 홀들에 차려진 호화로운 잔칫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들을 얻기를 바라며 매일 저녁 디베스의 집으로 가곤 했습니다. 그는 대문 근처 길에 누워 참을성 있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디베스가 라자로가 와 있는 것을 보면, 그는 염증으로 뒤덮이고 누더기를 걸친 영양실조에 걸린 그의 몸뚱이를 보는 것이 자기의 손님들에게 너무 가슴 아픈 광경이기 때문에 그를 쫓아버리게 했습니다. 그 광경이 가슴 아프다고 한 것은 디베스가 내뱉곤 했었던 말이었고, 사실은 라자로의 비참함과 착함을 보는 것이 그에게 끊임없는 비난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값진 목걸이를 걸치고 있고 영양상태가 좋은 디베스의 개들이 그보다 라자로를 더 동정했습니다.
개들은 불쌍한 라자로에게 가까이 와서 그의 상처를 핥아주고, 그가 쓰다듬어주는 것을 아주 기뻐하고, 심지어 풍요로운 식탁에서 남은 음식들을 그에게 가져다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이처럼 그 짐승들 덕분에 영양실조를 극복하고 살아남았습니다. 만일 그가 사람에게 의지했다면, 그는 죽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식사가 끝난 다음에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우려고 그가 방에 들어가는 것마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그가 죽었습니다. 땅에서는 아무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아무도 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디베스는 그날과 그 이후 그가 ‘치욕’이라고 불렀던 그 비참한 꼴을 자기 집의 대문 가까이에서 보지 않게 된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은 하늘에서 그 죽음을 보았습니다. 라자로가 숨을 거둘 때 차갑고 아무것도 없는 그의 동굴에는 하늘의 군대가 와서 눈부신 빛 속에서 그의 영혼을 거두어 찬미가들을 부르며 아브라함의 품으로 데려갔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다음 디베스도 죽었습니다. 오! 얼마나 호사스러운 장례식이었는지요! 그가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이는 그의 친구로 보이기 위하여, 어떤 이는 호기심으로, 다른 어떤 이는 상속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그의 저택이 있는 광장에 몰려들었던 온 시내 사람이 함께 애도하여 그 울음소리가 하늘까지 올라갔고, 그 울음소리와 함께 ‘위대하고 의로운 은인’이라는 죽은 이에 대한 거짓 찬사들도 올라갔습니다.
사람의 말이 하느님의 심판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변호가 생명의 책에 기록된 것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판결된 것은 판결된 것이고, 쓰인 것은 쓰인 것입니다. 그래서 호화로운 장례식에도 불구하고 디베스의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그 소름끼치는 감옥 속에서 불과 어둠을 먹고 마시며, 모든 곳에서 그리고 영원의 매순간마다 미움과 고통을 보며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는 1초의 몇 분의 일밖에 안 되는 동안 번개 치는 것 같은 빛 속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는데, 형용할 수 없는 하늘의 아름다움은 그의 기억 속에 남아 혹독한 고통 중에 있는 그를 더 괴롭혔습니다.
그는 저 높은 곳에서 아브라함을 보았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빛나고 지극히 행복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품에는 역시 빛나고 행복한 라자로가 있었습니다. 전에는 비참했고, 업신여김 받고, 혐오감을 불러일으켰고, 초라했었던 거지 라자로가…
그런데 지금은? 그는 하느님의 빛과 그 자신의 거룩함의 빛 속에서 아름답고, 하느님의 사랑을 충만히 받고,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천사들에게 찬미받았습니다.
디베스는 울면서 부르짖었습니다.
‘아브라함 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저는 당신께서 직접 그렇게 하시기를 바랄 수는 없으니, 라자로를 보내주십시오. 그의 손가락 끝을 물에 적셔서 제 혀에 얹어 시원하게 해주십시오. 저는 끊임없이 제 속으로 파고 들어와 저를 태우는 이 불꽃들 속에서 죽음의 고통을 당하고 있으니까요!’
아브라함이 대답했습니다.
‘아들아,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모든 좋은 것들을 가졌었던 반면, 라자로는 모든 나쁜 것들을 가졌었다는 것을 기억해라. 그러나 그는 악을 선으로 바꿀 줄 알았던 반면, 너는 모든 좋은 것들로 악밖에 행할 줄을 몰랐다. 그러므로 지금 라자로는 여기서 위로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 것은 정당하다. 어쨌든 지금은 이미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세상에는 성인들이 온 땅에 퍼져 있어 사람들은 그들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기회들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네 경우에는 마귀로 있었다―성인들에게 도움을 청해도 소용없다.
지금 우리는 분리되어 있다. 풀들이 밭에 있을 동안에는 그것들이 섞여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베어질 때 좋은 풀들은 나쁜 풀들로부터 분리된다. 너희와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땅에서 함께 있었는데, 너희는 우리를 거절했고,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우리를 괴롭혔고, 사랑의 법을 거슬러 행동함으로써 우리를 잊었었다. 지금 우리는 분리되어 있다.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심연이 있어 그 심연을 건너 너희에게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도 그렇게 할 수 없고, 거기 있는 너희도 그 무서운 심연을 건너 우리에게 올 수 없다.’
디베스는 더 크게 울며 부르짖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제발 최소한 라자로를 제 아버지의 집에 보내주십시오. 저에게는 다섯 형제들이 있습니다. 저는 결코 사랑이 무엇인지를 이해해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가족들 사이에서도요. 그러나 지금 저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제가 있는 이곳은 미움뿐이기 때문에 제 영혼이 몇 분의 일초 동안에 하느님을 보았을 때 저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 형제들이 제가 겪고 있는 고통을 겪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들이 제가 살았던 것과 똑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저는 몹시 두렵습니다. 오! 라자로를 그들에게 보내 제가 어디 있는지, 왜 여기 있는지 알려주고, 지옥은 존재하고, 그곳은 소름끼치는 곳이며, 하느님과 자기의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온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해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주십시오! 그래서 그들이 늦지 않게 대비하여 영원한 고통의 장소인 이곳에 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아브라함이 대답했습니다.
‘네 형제들은 모세와 예언자들을 가지고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러자 디베스가 고통당하는 영혼의 깊은 신음과 함께 대답했습니다.
‘오! 아브라함 아버지, 죽은 사람이 간다면, 그들은 더 깊은 감명을 받을 것입니다… 제 청을 들어주십시오!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들은 자기들에게 진리의 말을 해주기 위하여 한 시간 동안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난 사람의 말도 믿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복된 영혼이 내 품을 떠나 원수의 아들들에게 모욕당하러 가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영혼들에게 모욕의 때는 지나갔다. 지금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 않는 사람들을 회개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이 무익한 일임을 아시는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평화 속에 있다.’
이것은 비유인데, 그 의미는 참으로 분명하여 더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 요나는 여기서 살면서 참으로 라자로의 성덕을 성취했습니다. 하느님의 가까이 있는 요나의 영광스러운 위치는 그분께 바라는 사람에게 주시는 보호로 분명해집니다. 그렇습니다. 요나는 친구이자 보호자로서 여러분에게 올 수 있고, 만일 여러분이 항상 착하다면 그는 올 것입니다.
지난봄에 내가 요나에게 했던 말을 지금 나는 여러분에게도 하는데, 내가 여러분 모두를 물질적으로도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 없고, 그래서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하늘을 가리킬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체념이라는 큰 지혜를 가르치고, 미래의 나라를 약속할 수 있을 뿐입니다.
어떤 이유로도 미워하지 마시오. 미움은 이 세상에서 강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능력이나 시간의 한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땅에서의 보호와 위로로서, 그리고 하늘에서의 상으로 사랑을 소유하기 위하여 사랑하시오. 디베스보다 라자로가 되는 편이 낫습니다. 내 말을 믿으시오. 이것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복될 것입니다.
이 밭들의 황폐함에서 여러분은 단 한마디의 미움의 말도 들을 수 없습니다. 비록 사실들이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어도 말입니다. 기적을 잘못 해석하지 마시오. 나는 사랑이고, 그래서 나는 벌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Love)이 잔인한 디베스를 굽힐 수 없는 것을 보고, 나는 그를 정의(Justice)에게 맡겼습니다. 그래서 정의가 순교자 요나와 그의 형제들을 위하여 복수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 기적이 여러분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정의는 그것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항상 깨어 있다는 것,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애벌레와 개미 같은 미물들을 써서 잔인하고 탐욕스러웠던 자들의 심장을 물게 하실 수 있고, 그들 자신의 구토로 목이 막혀 죽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 나는 여러분에게 강복합니다. 나는 새벽마다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당신은 나에게 맡기시는 이 어린양에 대한 걱정은 하지 마세요. 내가 이따금씩 이 아이를 당신에게 데려와 이 아이가 하느님의 길에서 지혜와 착함이 자라는 것을 보고 기뻐하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 이 아이는 이번 파스카의 할아버지의 어린양이 될 터인데, 주님의 제단에 바쳐진 어린양 중에서 가장 하느님의 뜻에 맞는 어린양일 것입니다.
야베츠야, 네 할아버지께 인사드려라. 그리고 네 구세주, 네 착한 목자에게로 오너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오! 선생님! 착하신 선생님! 당신과 헤어지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인지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여기 있는 것을 관리인이 보면 좋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벌을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일부러 이리로 왔습니다. 여러분에게 권고하는 사랑을 위하여 부디 순종하시오.”
불행한 사람들이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일어나 자기들의 십자가로 돌아간다. 예수께서는 다시 그들에게 강복하신 다음 한손으로는 어린이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엔도르의 사람의 손을 잡고 가셨던 길의 반대방향으로 걸어서 미카의 집으로 돌아오신다.
망보는 일을 마친 안드레아와 요한과 제자들이 예수와 합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