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천상의책24-25권

천상의 책 24권46장: 당신의 나라를 주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지만 피조물 편에서 받을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Skyblue fiat 2022. 10. 6. 16:31

천상의 책 24권

46장

 

당신의 나라를 주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지만

피조물 편에서 받을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어떤 아버지의 비유.

창조 사업 전반의 유일한 목적: '피앗'이 피조물 가운데에서 다스리는 것.

예수님께서 진리를 말씀하실 때 쓰시는 방식

 

 

1928년 9월 24일


1 '예수님은 그분 '피앗의 나라'라는 큰 선물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바라신다. - 열망하신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에게 그 나라를 주시도록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일까? 하고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자니,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과연 나의 뜻은 내 '거룩한 의지의 나라'를 주는 것에 있다. 이 큰 선물을 주기를 내가 간절히, 애타게 바라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 다시 말해서 사람이 내 거룩한 뜻의 왕궁 속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 내가 우리 창조 사업의 질서를 거스르는 격이 될 것이다. 이는 지극히 높은 지혜로 사람을 창조하여, 우리가 상속 재산으로 준 '피앗'의 왕궁에서 우리 자신의 양식으로 살게 한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3 사람은 그러나 그 재산 바깥으로 나가 버림으로써 우리의 창조 사업에 무질서를 초래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지극히 아름다운 사업이 무질서한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을 너그럽게 봐 줄 수 있겠느냐?

 

4 여러 세기가 지나갔고 또 앞으로 더 많은 세기들이 지나갈지라도 우리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우리의 유일한 목적이자 특별한 관심사는 - 이것이 언제나 우리의 가장 긴요한 중심점이다. - 우리의 창조물이 우리의 창조적인 손에서 나왔을 때처럼 회복되고 재정리되는 것이요, 우리 거룩한 뜻의 나라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5 흠숭할 임금인 우리는 이런 아버지의 처지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아버지는 한때 행복하고 드물게 수려한 외모를 가진 아들이 있었다.

아버지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오면서 그에게서 받은 상속 재산의 주인으로 살아 온 아들이었다. 그런데 그는 자진해서 아버지의 상속재산을 떠나 불행한 처지가 되었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아름답고 순수한 기쁨을 파괴하고 말았다.

 

6 아버지는 너무나 큰 비통에 잠기지 않겠느냐? 또한 사랑하는 아들이 다시 행복해지기를 탄식과 눈물과 흔들림 없는 의지로 바라지 않겠느냐? 게다가 아들에게 준 재산이 아직 그대로 있으니 - 아버지 자신이 그만큼 소중하게 보존해 왔으니 - 아들이 그것을 다시 소유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지 않겠느냐?

 

7 하지만 그토록 큰 비통과 눈물과 탄식 한가운데서도 아버지의 뜻은 단호하다. 자기의 불행한 아들이 아버지의 상속 재산과 스스로 잃어버린 행복을 돌려받기를 갈망하기를 - 기도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갈망, 그 기도가 아들을 준비시켜 상속재산과 행복한 상태를 돌려받을 수 있게 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8 아버지는 그러면 그 소중한 아들에 대한 사랑에 빠져 이렇게 말한다.

'너의 기도가 너를 두고 불타는 내 마음을 지배할 권리를 만들었다. 네가 잃은 것을 도로 가져가거라. - 너는 그럴 자격이 있다. 나는 네가 행복한 것을 보기만 하면 흡족하다. 그러므로 '내 아들은 더 이상 불행하지 않다. 이제 행복하다.' 하고 말할 수 있어진다.'

 

9 그런데 우리는 그 아버지보다 더 부성이 강한 아버지다. 심지어 그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에 비하면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리의 거룩한 뜻은 확고부동하다. - 아무도 그것을 달리 바꿀 수 없다. 사람의 불행은 창조 사업에 있어서 무질서이기에 우리는 이 우리 사업의 권리를 원한다. 이 사업이 우리에게서 나왔던 것처럼 우리에게 돌아오기를 원하는 것이다.

 

10 우리의 사랑이 우리를 덮쳐누르고, 우리의 정의가 그것을 요구하고, 우리의 선성이 그것을 주장하고, 바로 우리 자신의 행복이 그것을 갈망하며 우리 사업 안의 그 불행을 참고 봐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의 거룩한 뜻이 화관처럼 우리를 에워싸고, 변화를 타지 않게 하며, 우리로 하여금 그 나라가 (사람에게) 소유되기를 원하게 하는 것이다.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주고자 하는 큰 선을 사람이 얻기 위해 기도하기를 - 갈망하기를 원한다. 이 기도와 갈망이 우리의 부성적인 마음을 지배할 권리를 만들고, 그의 마음 안에는 우리가 주고자 하는 것을 받아 놓을 선반을 만든다.

그리하여 우리가 더욱더 애정어린 음성으로 그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아들아, 너는 그럴 자격이 있다. 우리는 너에게 주고 싶었던 것을 주었으니까.'

 

12 이와 같이 기도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잘 정비하는 사람이다. 

기도로 얻어 낸 것에 대해서는 고마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안전하게 보존하기도 하는 것이다.

 

13 게다가 내 거룩한 뜻에 대한 지식과 그 뜻에 대한 지식과 그 뜻의 나라를 소유하는 것은 개인적인 선이 아니라 보편적인 선이기에, 나는 네가 그것을 얻어내기 위해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모든 이의 이름으로, 그들의 각 생각과 말과 행위로 기도하기를 바란다.

 

14 그러면 네가 우리의 거룩한 부성 안에서 권리를 형성하여 모든 이가 우리 '피앗의 나라'를 받을 뿐더러 내적 준비를 갖추어 이를 소유하게 할 수도 있다.

 

15 그것이 천상 여왕께서 '구원의 나라'를 간청하시려고 하신 일이었다. 그분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와 탄식과 행위를 가지고 계셨다. 아무도 그분에게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로 인해 그분은 각 사람에게 그 자신의 구세주를 받을 권리를 얻어 주셨다. 나도 그들을 속량하려고 그렇게 하였다. 너도 내 뜻의 나라를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16 그 후 나는 계속하여, '주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뜻이 사람들 가운데에 알려지고 다스리는 것에 이리도 깊은 관심과 애착을 보이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다.

 

17 "딸아, 창조 사업의 일차적 목적, 그 처음이며 마지막인 행위는 홀로 우리의 거룩한 뜻만이 다스리는 것이었다.

다스리기 위해서는 알 필요가 있고, 그래서 우리의 뜻이 창조 현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자신의 '창조적인 피앗'을 '무' 위에 발하여, 하늘과 태양과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빚어내었고, 또한 사람도 빚어내었다.

 

18 그렇게 빚어낸 모든 작품들 안에 지울 수 없는 표정으로 우리 뜻 자신의 전능한 '피앗'을 찍어 넣었으니, 이것이 그 작품들 하나하나 안에 자기 나라를 통치하는 왕처럼 남아 있었다.

 

19 그러므로 창조 사업의 목적은 우리의 권능, 우리의 선성, 우리의 정의, 우리의 무한성 등등과 같은 것에 있지 않았다. 이 모든 것, 곧 우리의 속성들이 그 안에서 함께한 것은 창조 사업의 결과이지 목적은 아니었다.

 

20 우리가 만약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면,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처럼 될 것이다. 그런데 만물은 사람을 위해 창조되었고, 사람은 우리 (성삼위)를 위해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사랑의 필요와 정의의 권리로, 우리 자신과 우리의 모든 작품들의 영예와 품격을 위하여, 마침내 우리 목적의 성취로서, 우리의 거룩한 뜻이 사람의 온 존재의 기원과 생명과 목적이 되어 사람 안에서 다스리기를 원한다.

 

21 내 '피앗'이 사람을 보면서 얼마나 괴로워하는지를 네가 안다면! 너무나 괴로운 나머지 이렇게 말할 지경이다.

'내가 정말 내 창조적인 손으로 그를 만들었을까? 사람이 나의 작품일까? - 내가 진실로 그토록 즐거워하며 만든 작품일까? 하지만 나는 내 나라에 있는 것처럼 그 안에 있지 않다. 그가 내 ('피앗') 날인을 훼손하고 나를 쫓아내는 것으로 내가 그에게 생명을 준 목적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22 그러니 나의 거룩한 뜻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 일이냐! 그때까지 우리의 극히 아름다운 작품들은 그들이 내포한 좋은 것을 사람에게 다 내놓지 못할 것이니, 구원 사업 자체도 완성되지 못할 것이다."

 

23 그 무렵 내가 마음 속으로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분 자신의 '피앗'에 대하여 이전만큼 자주 말씀하시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하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딸아, 우리가 진리를 드러내는 통상적인 방식은 그것을 조금씩 조금씩 알려 주는 것이다. 사람은 그 영혼 안에 우리의 모든 진리를 한꺼번에 받아들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24 우리는 또 우리가 알려 준 진리의 생명이 그 사람 안에서 성숙하게 하기 위해서도 같은 방식을 쓴다.

그리하여 우리 진리의 생명이 생성하는 아름다운 작품들이 성숙한 모습으로 그 사람 안에 있는 것을 보면서 큰 즐거움을 느끼고, 바로 우리가 드러내 보인 것의 그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려, 한층 더 많은 진리를 드러내려고 한다. 이 때문에 우리가 시간을 준다. 아니 시간과 기회를 가진다. - 더 많이 주면서 즐거워할 시간과 기회를.

 

25 우리는 창조 사업도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 단 한 번의 '피앗'으로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창조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우리의 '피앗'이 발해질 때마다 나오는 작품들의 아름다움과 장려함을 보면서 즐겼기 때문이다.

이 작품들이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피앗'을 발하게 하였으니, 또 다른 아름다운 것들을 더 빚어내기 위해서였다.

 

26 나는 너하고도 그렇게 하고 있다. 너는 내 거룩한 뜻과 이 뜻의 나라에 관한 것은 바로 창조 사업의 계속이라는 점을 알지 못하느냐? - 그것은 사람이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내 '피앗의 나라'를 소유하고 있었다면 계속되었을 것을 사람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라는 점을?

 

27 사람은 그러나 내 거룩한 뜻을 배척하였고, 따라서 내 뜻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중단시켰다. 게다가 내 뜻도 더 이상 그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었다. 사람이 더 이상 내 뜻의 나라를 소유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8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른 끝에 내 뜻이 스스로를 알리기 위하여 다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 이는 내 뜻이 그 자신의 나라를 주고자 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표징이다. 그러기에 내 거룩한 뜻에 관하여 내가 너에게 드러내고 있는 것은, 내 거룩한 뜻의 생명을 설명하기 위하여 창조 사업의 시작점부터 계속하고 있는 것 - 다름 아닌 창조 사업의 계속이다."

 

 

 

도서 구입처: 가톨릭출판사 (catholicbook.kr)

(천상의 책 24권 / 루이사피카레타 저 / 요한 실비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