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천상의책24-25권

천상의 책 24권23장 ‘피앗’ 안에서 실행된 것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행위가 된다.태양의 예. 예수님께서 광야로 들어가신 까닭. 고립의 고통.

Skyblue fiat 2022. 8. 16. 15:32

 

 

천상의 책 24권

23장

 

‘피앗’ 안에서 실행된 것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행위가 된다. 태양의 예. 

예수님께서 광야로 들어가신 까닭. 고립의 고통.

 

1928년 6월 25일

 

 

1 기도 중에 극도의 비참을 느끼며 내 천상 엄마께 엄마의 사랑을 주시어 나의 이 부족한 사랑을 보충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하고 있을 무렵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내게 이르셨다.

2 “딸아, 내 엄마는 하느님의 뜻 안에서 첫 사랑을, 첫 행위를 하셨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행해진 그것은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현행 중인 사랑의 행위처럼 지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곧 그분의 사랑은 끝이 없고, 그분의 활동은 계속 반복되는 것이 되었다. 그러기에 그분의 사랑을 받아 가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이 항상 현행 중인 사랑임을 알게 된다. 그것은 한편 첫 사랑의 효과가 반복되는 것 - 언제까지나 반복되는 것이지만 말이다.

3 내 뜻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그렇다. 그의 행위들이 지속성을 얻기에 언제나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4 그런 행위들이야 말로 참된 태양이다. 태양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순간부터 빛을 내는 첫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이는 단 하나의 행위이면서도 하늘과 땅을 채울 만큼 큰 행위였고, 그것을 언제나 끊임없 반복하여 모든 이가 그 빛의 행위를 받을 수 있게 한다. 단 하나의 행위가 모두를 위하여 스스로 영구적인 행위가 된 것이다.

5 만약 태양이 그 빛의 행위들을 반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반복하는 행위들과 같은 수의 태양들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빛의 행위는 하나였다. 그러므로 다만 하나의 태양만이 보이는 것이다.

6 그런데 태양이 하지 못했던 것을 존귀하신 여왕께서는 하실 수 있었고, 내 뜻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할 수 있다. 그것은 그 행위들의 수와 같은 수의 태양들을 형성하는 일이거니와, 이 태양들은 아름다움과 빛에 있어서 서로 구분되는 특성이 있지만, 그들의 창조주께 드리는 영광 안에, 모든 피조물에게 내려오게 하는 보편적인 선 안에 다 함께 녹아든다.

7 그 행위들은 하느님의 권능을 지닌다.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서 그 행위들로 ‘말씀의 강생’을 얻어 내실 수 있었던 것과 같이, 내 나라도 그 행위들에 의해 이 땅에 올 것이다.

8 나의 ‘피앗’ 안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행위는 우리의 신성을 정복하고 매혹하며 사로잡는 힘이 있다.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의 그 계속적인 반복이 영혼의 힘이 되고, 불패의 무기, 사랑의 무기가 되어 자기 창조주의 힘을 약화시켜 그분을 정복하는 것이다. 그러면 창조주께서는 피조물에게 그렇게 정복되는 것을 영예롭게 여기신다.”

9 나중에 나는 ‘거룩하신 피앗’ 안의 순례를 계속하며 예수님을 따라다녔다. 그런데 광야로 접어드신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문득, ‘예수님은 어째서 광야의 길로 접어드셨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분께서 찾아다니시는 것은 영혼들이지만, 광야에는 아무도 없으니 회개할 영혼도 없고, 다만 황량한 고적(孤寂)만이 느껴질 뿐 아닌가?’

10 하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이동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은 고통을 줄이거나 부서뜨려 없애는 반면, 홀로 있는 것은 고통을 집중시키고 배가하며 더욱 혹독한 것으로 만든다.


11 내가 광야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했던 것은, 나의 거룩한 뜻이 오랜 세기에 걸쳐 피조물에게서 받은 고립의 혹독한 고통을 내 인성으로 모두 느끼기 위해서였다.

12 내 인성은 신적인 질서 속으로 올라갔다가 인간적인 질서 속으로 내려오면서 하느님과 인간 양편의 고통을 다 싸안게 되어 있었다. 그것은 하느님과 인간을 갈라놓는 고통의 몫을 전적으로 떠맡으면서 인간으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창조주의 포옹에, 그 입맞춤에 매달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13 그렇지만 내가 광야로 들어간 것은 다만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흠숭하올 임금님께서는 창조 사업을 통하여 모든 곳이 주민들로 가득 차게 하셨고, 땅이 매우 비옥하여 풍부한 식물이 자라게 하심으로써 누구나 풍요를 누리게 하셨다.

14 인간은 그러나 죄를 지어 하느님 정의의 진노를 그 자신 위에 끌어당겼다. 그리하여 땅은 버려져 불모지가 되고 주민이 사라진 곳이 한두 곳이 아니게 되었으니, 이는 흡사 웃음도 축일의 기쁨도 일치도 없는 저 불임(不姙)의 가정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자식이 없으면 부부 사이의 지루한 단조로움을 깰 자가 없고, 마음을 짓누르는 고립감이 그들을 비통으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15 그 반면에 자녀가 있는 가정에는 언제나 해야 할 일과 할 말이 있고 기념하며 축하할 기회가 있으니, 이것이 인류 가족의 모습이다. 하늘을 보아라. 얼마나 많은 별들이 서식하고 있느냐! 땅은 하늘의 반영이 되어 그 별들처럼 주민들이 빽빽하게 모여 살도록 되어 있었으니, 그것은 땅이 만인을 풍요하고 행복하게 할 만큼 많은 소출을 내게 하려는 것이었다.

16 인간이 나의 뜻에서 물러가자 그의 운명도 바뀌고 말았다. 나는 그래서 광야로 들어가기를 원했다. 내 천상 아버지의 축복을 다시 청하기 위해서, 또 내 뜻이 다시 다스리게 함으로써 땅을 복구하여 어디든지 사람이 사는 비옥한 땅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더 많고 더 훌륭한 열매를 백 갑절로 맺을 만큼 땅을 더 기름지게, 찬란하도록 아름답게 만들면서 말이다.

17 그러니 내 ‘거룩한 피앗의 나라’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겠느냐! 하늘과 바람과 바다와 땅과 모든 조물이 - 모든 원소들이 그 태 안에 품고 있는 좋은 것과 효과들을 전부 낳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18 사실, 그들을 지배하는 하느님의 뜻이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다스리고 있지 않기에, 그들은 속에 품고 있는 좋은 것들을 다 내놓지는 못하고, 마치 종들에게 자선이라도 베풀 듯 내놓고 있다. 땅은 그러니 모든 씨앗을 낳지 못하고, 태양은 모든 씨앗이 보이지 않기에 자신이 소유한 모든 효과와 좋은 것을 내놓지 못한다. 다른 모든 것도 이와 같다.

19 그런 까닭에 만물이 ‘피앗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다. 창조주께서 당신 뜻의 자녀가 될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만물 안에 얼마나 훌륭한 것을 많이 넣어 두셨는지, 따라서 자기들이 얼마나 풍요한지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는 것이다.”

 

 

 

 

도서 구입처: 가톨릭출판사 (catholicbook.kr)

(천상의 책 24권 / 루이사피카레타 저 / 요한 실비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