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콘치타] 결합에서 일치로

Skyblue fiat 2015. 4. 14. 00:56

 

결합에서 일치로                        
     
 우리는 그리스도로의 변화를 하나의 정적(靜的)인 사실로 생각해선 안 된다. 지상 순례 중인 인간에게 주어진 신적 생명은 본래 끊임없이 진보하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교 생활에는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는 초기부터 그리스도로의 변화가 시작되지만, 이는 변화의 시초로서 앞으로 성장해야 할 새싹에 불과할 따름이다.  
 영성 생활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에도 이 생명의 진보는 계속된다. 결합에서 일치의 삶을 향해 올라가는 것이다. 이는 물론 존재론적 차원이 아니라 인식과 사랑의 지향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치이다. 


 “들어보아라. 이 변화에는 여러 발전 단계가 있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단계는 사람의 사고 방식과 행동 방식이 거룩해지는 것뿐만이 아니고, 나에게 자리를 내어 주기 위하여 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신마저 사라지고 없어질 정도에 이르는 변화이다. 
 그러한 단계는 홀로 그 영혼의 영혼이며 그 몸의 생명이신 성령의 작품이다.

 결합에로, 더욱이 일치에로 이끄는 그 단계는 성삼위와 가장 근접한 완성의 단계인 것이다.
 사람은 무진장한 은총의 샘이신 성령의 강력한 도움이 없고서는 혼자서 거기에 도달할 수 없다. 신비적 강생이 ‘말씀’의 사랑 깊고 강력하며 거룩하신 성령을 끌어당기는 것은 ‘말씀’이 그 영혼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의 가장 내밀하고 고상한 부분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콘치타, 어느 어머니의 영적일기 1912년 8월 6일)    

 

 

 • 삼위일체의 일치에 관한 빛
      
 “오늘은 기도 중에 주님께서 성삼위의 일치를 밝히 보게 하는 눈부신 빛을 보내 주셨다. 참으로 기묘한 완전함의 심연이여! 하느님 안에 있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가! 그러니 천국은 어떠하겠는가?”(일기 1913년 4월 9일)


 “오늘은 주님께서 그분의 창조되지 않은 빛의 심연으로 내 영혼을 휩싸셨다. 성삼위의 그 완전성의 빛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게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아라. 하느님의 완전한 속성들은 모두 무한한 것이지만 오직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 즉 ‘일치’를 이루고 있다. 이 일치 안에 모든 부(富)가 포함되어 있다. 영혼의 가장 높은 완성은 자신을 단순화시키고 사물의 다양성을 제거함으로써 그 본질적 일치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것은 그 자체의 영원성 안에서 풍요한 일치이고, 그 자체의 불변성 안에서 움직이지 않고서도 영원한 한 순간에 스스로를 증식시키는 일치인 것이다. 곧 하느님은 삼위로 계시지만 이 삼위가 오직 하나의 본질, 하나의 본체, 영원하고 나누임이 없는 일치를 이루고 계신다. 바로 이 일치 안에 하느님의 풍요성의 신비가 있다. 영혼들이 결합을 통하여 이 일치와 하나 될수록 그만큼 더 풍요해지는 것이다. 성삼위에 가까워질수록 넘치도록 풍부한 빛과 은총과 은혜들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 아름답고 거룩한 일치 안에 성삼위와 천상 성인들의 지복이 있다. 이 일치 안에 땅과 하늘의 모든 선과 모든 은총과 현재와 미래의 모든 피조물이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모든 활동과 모든 존재의 영원한 불가마이다. 그것은 ‘사랑’이다. 곧 하느님이시다.


 너의 영을 단순화시켜라. 네 영에서 피조물과 사물들에서 오는 모든 복잡성을 제거하여라. 이 일치 안에서 나를 사랑하여라. 살고 숨쉬고 움직이면서 모든 덕행과 너 자신에 대한 포기가 이 일치를 지향하게 하여라...

  너는 이 본질적인 일치 안에, 오직 한 분뿐이신 하느님 안에 살면서, 오직 하나의 사랑이신 그분 안에, 오직 하나의 뜻인 그분의 뜻 안에 네 영적 생활을 수렴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의지들의 일치이고 여기에 이 일치의 완성이 있는 것이다.』 

 

 


 이는 주님께서 미사 중에 내게 주신 말씀이었는데, 내가 다시 기도 중에 있을 때 그분은 이렇게 덧붙이셨다.

 

모든 피조물의 목적은 하느님 안의 이 일치에 있다. 여기에 영원히 지속되는 평화와 지복이 있는 것이다. 갈수록 더 이 일치에 동화되고자 하는, 다시 말해서 모든 피조물의 완성의 원형인 강생하신 말씀과 하나 되고자 하는 영혼들은, 그리하여 성령과 아버지 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신화(神化)되는 영혼들은 그야말로 가장 거룩한 영혼들이다. 왜냐하면, 성화는 사랑에 달려 있기에, 사랑이 많을수록 하느님을 더 많이 닮게 되고, 하느님과 하나 될수록 더 완전해지고 더 거룩해지기 때문이다. 
 영혼들 안에 하느님의 생명이 나타나게 하고 이어서 결합시키기 위한 성령의 비결 중 하나는 그들을 일치 안에 단순화시키는 것이니, 즉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일치의 본질인 사랑으로 그들을 부유하게 하시는 것이다.

  영적 혼인은 성령을 통하여 이 일치를 지향하고, 신비적 강생은 ‘말씀’을 통하여 같은 일치를 지향한다. 그것은 영적 혼인과 신비적 강생의 원동력이며 원인이신 아버지에 의하여 하늘에서 영예를 입게 된다... 영혼 구원을 위한 모든 계획과 그 체계, 신비 생활의 모든 수단, 영혼들을 열렬히 사랑하는 강생하신 말씀의 역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영혼들을 완덕에로 이끄시는 성령의 역할 -- 그 모든 것이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일치를 지향하고 있다. 이는 영혼을 단순하게 하고 세속적인 것에서 신적인 것으로 드높여 주며 하느님과 결합시키고 동화시키는 사랑에 기인하는 일치이다. 그리스도교 생활 곧 신비 생활 전체가 이 일치라는 정점을 향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구원과 성화를 바라는 모든 영혼들에게 주어진 목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콘치타, 어느 어머니의 영적일기 1913년 4월 11일)  

 

우리는 십자가의 신비와 더불어, ‘말씀’에 결합시키고 아버지께로 인도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변화의 가장 높은 정점에 이르게 된다.

 

 

 

 • 일치에 이르는 첩경

 

 『그렇다면 그 일치에 이르는 첩경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말씀’과 결합시키고 그분을 증거하시며 아버지께로 인도하시는 성령이시다. 이것이야말로 성령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임무이다. 그분은 거룩하게 하시는 분으로서 영혼들을 성화하고, 성화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단순하게 하고 아버지께로 이끄시어, 삼위일체와의 사랑에 잠기게 하신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다.』주님께서 흐뭇해하시며 이렇게 말씀을 이으셨다.

『그리고 이 일치의 내부에서 그분의 완전함이 무한히 재생된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다. 그러나 홀로 계시지 않는다. 한 분이신 하느님 안에 삼위가 계신다. 그리고 한 분이신 하느님은 잠자코 계시지 않는다. 당신 존재의 넘쳐흐르는 풍요성으로 말미암아 잠자코 계실 수가 없는 것이다. 한 분이시지만 바로 이 일치로부터 그분의 활동력과 창조 능력과 풍요성을 끌어내신다. 네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네 식으로 말해 보면, 하느님은 순간마다 새로 나시는 분이다. 이 빛의 심연을 바라보며 다가오너라. 그러나 너는 하느님의 행위가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은 그 뜻의 유일한 현동(現動) 안에서 영원히 일하신다. 하느님의 뜻이 모든 시대와 영원을, 모든 창조와 모든 일을 오직 한 순간에 영원토록 아우르는 것이니, 그 순간은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반사되고 항상 존재하는 저 일치의 영원한 순간이다. 따라서 끝없는 영원들이 하느님 안에 사라지는 순간이다...

 너는 네 행위의 연속에 의하여 시간의 흐름을 재지만 하느님 안에는 시간이란 것이 없다. 하느님의 모든 행위들, 자연과 은총의 모든 창조 행위들이 거울 속처럼 당신 성령의 순수성 속에 간직되어 있으니 만큼, 그분은 손 하나 까딱하시지 않고서도 무한한 권능의 유일한 현동 안에서 (영적이고 물적인) 모든 세계와 상급과 영예의 화관들을,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존재들을 그분의 가슴 속 그 무한성으로부터 꺼내어 재현하신다.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증식시키시지만 늘 한 분으로 계시고 조금도 변함이 없으시다. 불변적이고 영원하신 그분은 일치의 무한한 순간 속에서 당신의 존재와 수없이 많은 완전들을 향유하시는 것이다.                
 하늘에서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영혼들은, 땅에서 살 때 장애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그분과 가장 긴밀히 결합되어 있었던 이들이다. 수덕과 자기 포기로 악한 격정과 여타 모든 것에 대한 애착을 끊었던 이들이고, 항구한 (내적) 이탈과 꾸준한 극기로 무조건 하느님의 뜻에 일치해 있었던 이들이다.』


 나는 그 사랑하올 성삼위 안의 빛의 심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깊은 심연인지! 게다가 얼마나 높은 완성이며, 얼마나 기묘한 경이인지! 


 나는 주님께 『주님, 어떻게 하면 제가 단순해지겠습니까? 』 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그분은 이렇게 대답해 주셨다).

    
 『너의 뜻에 대해서는 죽고, 그것을 나의 뜻과 하나 되게 하여라.』(일기 1913년 4월 11일)
 주님께서는 일치에 이르는 실제적인 길을 보여 주시며 이렇게 말씀을 이으셨다.


 『너의 행위들을 오직 하나의 목적 안에 단순화하여 하느님 안의 초자연적인 것이 되게 하려면, 너의 사랑들을 오직 하나의 사랑 안에 단순화해야 한다. 그 오직 하나의 사랑은 하느님 사랑이니, 거기에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통하여 이웃 사랑이 나오는 것이다.
 하느님 안에서 하나의 시선, 단 하나의 의향, 단 하나의 애정과 의지만을 가지는 법을 배워라. 너의 삶으로 매우 단순하게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우회하거나 복잡하지 않게, 그분께 이르기 위한 다른 길이나 방책을 찾지 않고 오로지 이 본질적인 일치만을 찾아 그 안에 잠겨야 한다. 
 네가 닦고 있는 덕행들도 죄다 그 사랑의 ‘중심’을 향하게 하여라. 모든 은총과 성덕이 거기에서 나오는 유일한 존재, 바로 하느님이기도 한 그 일치를 향하게 하라는 말이다. 그러면 성부와 성자와 “하나”이신 성령께서 당신 날개에 너를 태워 그 ‘일치’의 심장부로 데려가실 것이다. 네가 성령 안에서 알고, 움직이고, 숨쉬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 거룩하신 영께서 너를 영적으로 만드시면서, 다시 말해서 너를 당신과 하나 되게 하시면서 너로 하여금 영의 내부로 즉 신성의 본질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실 것이다. 이에 앞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덕행 안에서 또 사랑으로 너를 그리스도로 변화되게 하신 뒤에 말이다.  


 그것은 극히 숭고하지만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내가 너에게 요구하는 완덕은 이상적인 완성이 아니라 덕행 실천을 수단으로 하는 매우 실제적인 것이다. 이는 단순성 자체이신 하느님, 본체의 영성이 “하나”이신 하느님, 셋이 하나이고 하나 안에 불가분적이고 모두 완전한 셋이 포함되는 하느님과 더욱 깊이 결합되기 위한 자기 포기와 단순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네가 수행하고 실천하는 모든 것을 되도록 자주 저 일치 안에 던져 넣어라. 언제나 그 새로운 아름다움의 끝없는 완성에로 또 그 무한한 사랑에로 너를 데려갈 일치 안에 말이다. 너의 아픔과 고통과 기쁨, 자기 포기의 행위들, 너의 갈망과 희망, 너의 욕구와 감정 -- 이 모든 것을 거기에 던져 넣으면 그 일치가 자신과의 접촉으로 너의 삶과 네 삶의 본질을 단일화시켜 덕행들의 복수성 속에서도 그 자신과 닮게 해 줄 것이다.』(일기 1913년 4월 15일)


 그러한 일치에 도달하는 비결은 성령의 인도에 자기를 내맡기는 것이다. 하느님 자신 안의 일치를 이루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것이 완덕이지만, 아버지께서 ‘말씀’에게 주시는 사랑, 성령을 통한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 가장 높은 완덕이다.

  일단 한 영혼 안에 예수로의 변화가 일어나면, 덕행 안의 성장에 밀접히 의거하는 이 변화의 강도와 크기에 따라 다소 높이가 다른 정도로, 성령께서 또한 그 사람의 영도 되신다. 성령께서 변화의 과정을 통하여 그의 영을 흡수하시고 바로 성령 자신이신 순수한 사랑으로 그를 채우신다. 그러므로 그는 같은 사랑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사랑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것과 같은 사랑으로, 곧 절대적 사랑으로 ‘말씀’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과 함께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은총 중의 은총이요, 신적 카리스마의 통합이며, 보잘것없는 피조물에게 개방된 하늘 자체이다. 이제부터는 이 피조물이 활동하지 않는다. 성령께서 활동하시고 고동치는 가슴으로 그 안에서 사시며, 그를 온전히 감싸신 채 그와 함께 사랑하시는 것이다.”

(일기 1913년 4월 17일)     

 

 


 이 영적 삶의 고매함을 알아차린 사람은 그러한 이상이 특은을 받은 몇몇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은총 생활의 일반적인 진보 속에 있는 이들의 것이 되기도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 주님께서 이렇게 대답해 주셨다.

“내가 성인들만 뽑아 내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선인이건 악인이건 모든 사람에게 건네진 말이다. 모두가 예외 없이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일기 1913년 4월 15일)


 

 • “하느님의 유일한 소망은 모든 이가 그분의 일치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거처를 잡는 것 -- 이것이 하느님의 소망, 하느님의 욕구가 되는 것은, 그분의 사랑이 당신 자신을, 곧 무한한 사랑이신 당신 자신을 주시기를 열망하기 때문이다. 그분은 그러므로 틀림없이 영혼들 깊이 스며들 수 있는 당신의 통상적인 현존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피조물 편의 사랑 의지에 따라서 그들을 소유하심으로써 행복하게 해 주시고자 하신다. 우리를 변화시켜 당신의 일치 안에 이르게 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유일한 열망인 것이다.”

(일기 1913년 4월 23일)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의 피조물로서 할 수 있는 만큼 그 일치에 이르게 될 때, 그 때에는 하느님의 선들에 참여하게 되고 삼위일체적 친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유심히 살펴보시는 성령께서는' 콘치타의 관조적인 눈에 빛을 비추어 주시어 '하느님의 신비로운 심연 속에' 몰입하게 하셨다.      
 “성부께서는 아무에게서도 비롯되지 않으셨으니, 잉태되신 적도 낳음을 받으신 적도 없이 그분 홀로 존재하시고 항상 존재해 오셨다. 그분에게는 시작이 없다. 영원토록, 시간이 있기 전부터 이미 영원하고 시작이 없으신 하느님이셨다. 이미 하느님이셨고 영원으로부터 하느님이셨고 언제나 하느님이실 것이기에 생겨나지 않으신 분이다. 그분은 다른 원인을 가지지 않으신 분으로서 당신 존재에 의하여 창조된 모든 존재들의 근원이시니, 하늘과 땅과 피조물과 영혼들 및 자연계와 초자연계를 낳으시는 창조력이 풍부한 존재이시다. 그분의 창조 능력은 영원하고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분은 당신 자신 안에 모든 지복을 낳으시고 거기에 싸여 계신다. 그분은 지복을 낳으시고, 바로 이 지복 전체이시다. 그분은 행복하기 위해서 자신 밖으로 나가시지 않는다. 당신이 행복 자체이시고, 본질적으로 아름다움이시며 거룩함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의 행복은 그분 자신 안에 있고 여타 모든 것은 그분의 존재에서 퍼져 나온 발산물일 뿐이다. 그분은 사랑이시니, 시작이 없는 이 사랑으로 영원토록 황홀해하시며 당신 자신을 사랑하신다.”


 그리고 콘치타는 그녀가 받은 은사에 따라 열렬하고 섬세하게 그리스도께서 삼위일체 안의 당신을 그녀에게 보여 주신 것에 대하여, 특히 ‘말씀’의 영원한 탄생에 대하여 우리에게 차근차근 전해 주었다. 또한 아버지의 관대하심과 행복, 아드님에 대해 느끼시는 기쁨을 놀랍도록 훌륭하게 묘사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나도 역시 기쁜 것은』 하고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그 일을 상기해서가 아니다. 그것이 나에게는 항상 현재적인 일인 까닭이다. 내게는 돌이켜 볼 기억이란 것이 없고, 모든 것이 현재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바로 나 자신인 태양의 희미한 빛 한 줄기를 너에게 주어, 아버지께서 당신 밖으로 나가시지 않고 펼치시는 그 거룩한 관대하심을 네가 인식할 수 있어진 것이 기쁘다.』”(일기 1931년 1월 24일) 


 그런 다음 - 놀라운 연속성이거니와 - 콘치타의 관조는 수개월의 간격을 두고 성령의 발출 쪽으로 쏠렸으니,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하시지만 스스로의 근간을 떠난 열매나 광채처럼 나오시는 것이 아니라 성부와 성령의 존재론적 필요성에 의하여 나오신다. 성부와 성자는 하느님이시고 따라서 사랑이시기에, 스스로가 무한한 사랑이신 “성령 없이는 존재하실 수 없을 것”이니 말이다. 


 “성령의 발출은 성부와 성자 사이의 상호 ‘사랑’에 의하여 이루어졌고, 같은 성령이 또한 성부와 성자를 결합시켜 단일화하는 ‘생명’이시다.
 하느님께서는 홀로 그분만이 아시는 당신의 신비들 속에서 독특한 기쁨을 맛보신다. 이에 대해서 인간에게 주시는 빛은 최소한의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인간에게 주셨으니, 사람이 되신 이 ‘말씀’으로 당신의 모든 것을 주신 셈이다. 당신 자신을 선물로 내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땅에 있는 삼위일체의 옥좌이고, 사람이 하느님을 영원히 소유하기 위해서 들어갈 수 있는 오직 하나뿐인 문이다.”(일기 1931년 9월 9일)


 콘치타는 그 지극히 고상하고 신적인 삶을, 일상적인 현실 속에서 가정 생활이 요구하는 모든 의무와 약정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더없이 단순한 모양으로 살아 내었다.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그녀 안에서 어떤 일을 이루고 계신다는 것을 결코 알아채지 못했다. 콘치타에게는 일체가 내적인 것이었다.  

    
 그녀의 영적 지도자였던 루이스 마리아 마르티네스 대주교만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한 삶의 스승이고 모범이신 분은 마리아이십니다. 그분을 보시오. 그분을 본받으며 그분의 모성적인 품에 자신을 맡기시오.”(일기 1927년 9월 17일)
 그리하여 콘치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 “나는 마리아 안에서 살아야 한다.”  

 

 “나는 마리아의 덕행과 성삼위께 대한 사랑을 본받으면서 마리아 안에서 살아야 한다.
 신비적 강생은 영혼을 성삼위와 접촉하게 한다. 성삼위 안에, 또 마리아 안에, 나의 삶이, 영적 삶뿐만이 아니고 물적 삶도 녹아들게 하면서, 이를 아버지께 바치시는 아드님의 봉헌 안에 사라지게 해야 한다. 이 봉헌에 온전히 집중하여, 먹고 자고 기뻐하며 고통을 받아야 하고, 이와 같이 나의 삶 전체를 이 지속적인 봉헌으로 단일화하여 성삼위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 그리고 평생토록 마리아와 결합하여 마리아를 떠나지 않고 살아가면서 예수님께 대한 그분의 사랑과 아버지께 대한 완전한 순종을 본받아야 한다. 오직 성령의 충동을 따라 움직이면서 말이다.”

(일기 1925년 10월 27일) 


 콘치타는 영성 생활 전체에 걸쳐 지도자들에 대한 온전한 순명으로 지냈고,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완성을 향해 진보함에 따라 갈수록 더 완전히 유순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사람이건 사물이건 일체를 초자연적 차원으로 들어올리고,나의 실제적인 삶을 천상 빛의 찬란한 광채로 이상화하며, 모든 피조물과 사건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자취, 바로 하느님을 보면서 내 지도자의 조언을 실현하고 싶다.”   


 “나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온전히 신성 안으로 들어가서, 그분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시는 성삼위의 깊이 모를 신비 앞에서 눈을 감지 않을 작정이다. 즉 그분께서 원하시는 만큼 하느님의 신비 안으로, 하느님의 지복, (말씀의) 영원한 탄생, 성령의 사랑, 자비와 선성의 조수, 성삼위 사이의 내적 친교, 성삼위의 속성, 지극히 완전한 일치, 성삼위의 내적 성소 안으로 들어갈 작정이다. 그분께서 원하실 때마다 원하시는 곳까지 말이다. 
 오, 얼마나 비할 데 없는 결합인가! 삼위 사이에 얼마나 독특한 관계, 얼마나 기묘한 일치가 있는가! 삼위일체의 이 일치 안에서 하느님은 참으로 얼마나 유일무이하고 무한한 분이신가!”

(일기 1933년 3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