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 스테파노의 순교, 사울과 가말리엘
1944. 10. 7.
목요일에서 금요일에 걸친 밤사이의 예수의 재판 때와 똑같은 좌석배치에 똑같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산헤드린의 큰방이다. 대사제와 다른 사람들은 의자들에 앉아 있다. 가운데 대사제 앞 빈 공간에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 예수께서 계셨던 자리에 지금은 스테파노가 있다.
이미 그가 자기의 믿음을 고백했고, 그리스도의 참된 본질과 그분의 교회에 관하여 말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소란이 절정에 달해 있는데, 그 소란은 그 격렬함의 정도에 있어 배반과 하느님 살해의 그 치명적인 밤에 그리스도를 거슬러 흥분했던 소란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주먹질들, 저주들, 소름끼치는 맹세들이 부제(deacon) 스테파노에게 던져지는데, 그는 야만적으로 얻어맞고, 그들에게 사납게 이리저리 끌리는 바람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침착성과 품위를 잃지 않고, 오히려 더 침착하고 더 품위 있다. 그는 침착하고 의젓할 뿐 아니라 심지어 지극히 행복하고 거의 황홀해 있다.
그는 자기의 얼굴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침들과 지독하게 얻어맞은 자기의 코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피를 무시하고, 어느 한 순간 영감을 받은 얼굴과 밝고 미소 짓고 있는 두 눈을 들어 그만이 아는 어떤 환상을 응시한다. 그는 자기의 두 팔을 십자로 교차하여 앞으로 뻗고 마치 자기가 보는 것을 안고 싶은 듯 그것들을 들어 올린다. 그 다음에 그는 무릎 꿇고 외친다.
“나는 여기서 하늘들이 열리고 당신들이 죽였던 사람의 아들, 예수, 하느님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서 계시는 것을 봅니다.”
그러자 그 소란은 지금까지 유지되었던 최소한의 인간성과 합법성마저 잃고, 늑대들이나 재칼들이나 야수들의 떼의 흉포한 분노로 그들 모두는 그 부제에서 달려들어 그를 물어뜯고, 짓밟고, 움켜쥐고, 그의 머리채를 잡아 들어올리고, 끌고, 다시 쓰러뜨리고, 격노와 격노가 맞부딪친다. 왜냐하면 서둘러 그 순교자를 밖으로 끌어내려고 하는 자들이 그를 다시 때리고 짓밟기 위하여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자들에게 방해받기 때문이다.
가장 흉포한 자들 가운데 사울이라는 이름의 젊고, 키 작고, 못생긴 남자가 있다. 그의 얼굴의 사나움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다.
홀 한 구석에 가말리엘이 있다. 그는 소란에 결코 끼어들지 않고 스테파노에게도, 어떤 권력자에게도 결코 말하지 않는다. 불의하고 사나운 광경에 대한 그의 혐오가 뚜렷이 드러난다. 다른 구석에는 니코데모가 있는데, 그 역시 혐오감을 나타내며 재판과 난장판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가 가말리엘을 바라보자 가말리엘의 얼굴은 어떤 말보다 더 분명하다.
그러나 스테파노의 머리채가 붙잡혀 거머쥐어지고 그가 세 번째 공중으로 들어 올려지는 것을 가말리엘이 보자, 그는 갑자기 자기의 넓은 겉옷으로 자신의 몸을 감싸며 부제가 끌려가고 있는 방향과 반대방향에 있는 출구를 향하여 간다.
그의 행동은 사울의 눈을 피하지 못한다. 사울이 외친다.
“라삐님, 당신은 가실 겁니까?”
가말리엘은 대답하지 않는다.
사울은 가말리엘이 그 질문이 자기를 상대로 한 것인지 깨닫지 못했을까봐 염려하며 되풀이하고 꼬집어 말한다.
“가말리엘 라삐님, 당신은 이 재판을 회피하고 계십니까?”
가말리엘은 홱 돌아서며, 분노하고 혐오하는 표정으로 위엄 있고 냉엄하게 짧게 대답한다.
“그렇다.”
그의 “그렇다”는 긴 연설보다 더 웅변적이다.
사울은 이 “그렇다”가 함축하고 있는 모든 것을 깨닫고, 사나운 무리를 제쳐두고 가말리엘에게로 돌진한다. 그는 그를 따라잡고 멈춰 세우며 그에게 말한다.
“오, 라삐님, 당신께서는 저희의 단죄를 반대하신다고 저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가말리엘은 그를 바라보지도 않고, 그에게 대답하지도 않는다.
사울이 고집스럽게 말한다.
“저 사람은 베엘제붑이 들린 사마리아 사람을 따라 율법을 부인했고, 당신의 제자가 된 다음에 그렇게 했으니, 그에게는 이중으로 죄가 있습니다.”
가말리엘은 여전히 그를 쳐다보지 않고, 침묵한다.
그러자 사울이 그에게 묻는다.
“그런데 당신은, 당신도 예수라는 이름의 그 죄인의 추종자십니까?”
가말리엘은 지금은 입을 열어 말한다.
“나는 아직은 아니다. 그러나 만일 그분께서 자기가 말했던 분이시라면, 그리고 사실 많은 것들이 그분께서 그러셨다고 증명하는데,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되게 해주십사고 하느님께 기도한다.”
“소름끼치는 일입니다.”
사울이 부르짖는다.
“소름끼치는 것은 없다. 모든 사람은 활용할 수 있는 지성과 그것을 적용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신 자유와 그분께서 모든 사람의 마음 안에 넣어두신 빛에 따라 그것을 활용해야 한다. 의인들은 조만간 하느님의 이 두 개의 선물들을 선한 목적들을 위하여 쓸 것이고, 악인들은 악한 목적들을 위하여 쓸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헌금 궤가 있는 안마당을 향하여 똑바로 걸어가 예수께서 기대서서 성전의 헌금 궤에 자기가 가진 것 전부 즉 동전 두 푼을 넣는 불쌍한 과부에 대하여 말씀하셨던 그 기둥으로 가서 거기 기대선다.
그가 그곳에 기대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울이 다시 그에게로 와서 그의 앞에 떡 버티고 선다.
두 사람은 아주 대조적이다. 가말리엘은 키가 크고, 고상하고 잘 생긴 용모에, 높은 이마, 아주 검고, 지적이고, 찌르는 듯하고, 짙고 일직선인 눈썹들 아래 길고 움푹 들어간 두 눈, 그 아래 예수의 코를 약간 연상케 하는 곧고, 길고, 가는 코 등 강렬한 셈족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그의 안색도, 입술이 얇은 입도 그리스도의 그것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가말리엘의 콧수염과 턱수염은 한때 매우 검었었는데, 지금은 반백이고, 더 길다.
반대로 사울은 키가 작고, 양어깨가 떡 벌어졌으며, 거의 구루병에 걸린 것 같으며, 두 다리는 짧고 굵은데, 무릎 부분이 약간 벌어져 있다. 그가 겉옷을 벗고, 짧은 희끄무레한 튜닉만을 입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잘 보인다.
그의 두 팔도 그의 두 다리처럼 짧고, 근육이 발달해 있고, 목은 짧고 두꺼우며, 그 위에 크고 갈색인 머리가 얹혀 있고, 머리카락은 짧고 까칠까칠하고, 귀들은 꽤나 튀어나와 있으며, 코는 납작하고, 입술은 두껍고, 광대뼈는 크고 높으며, 이마는 튀어나와 있고, 대단히 휘어지고 숱이 많고 거친 눈썹들 아래 두 눈은 검고 튀어나와 있는데, 그는 온유하지도, 상냥하지도 않지만, 매우 총명해 보인다.
그의 두 뺨에는 그의 머리카락처럼 텁수룩하고 대단히 숱이 많은 수염이 나 있는데, 짧게 잘려 있다. 아마 그의 목이 대단히 짧아서 그렇겠지만, 그는 약간 꼽추이거나 대단히 둥근 양어깨를 가진 것 같다.
그는 한참동안 가말리엘을 응시하며 침묵한다. 그러다가 그는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그에게 말한다.
가말리엘은 분명하고 큰 소리로 그에게 대답한다.
“나는 여하한 이유로도 폭력에 찬성하지 않는다. 너는 어떤 폭력적인 계획에 대해서도 결코 내 찬성을 얻지 못할 것이다. 나는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두 번째 체포되어 재판받기 위하여 산헤드린 앞에 소환되었을 때 산헤드린 전원 앞에서 공공연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같은 말을 반복하겠다. ‘만일 이것이 사람들의 계획과 일이라면 저절로 없어질 것이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라면 사람들에 의하여 파괴되지 않을 것을 것이다. 반대로 그들은 하느님께 얻어맞을 것이다.’ 그것을 명심해라.”
“당신께서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라삐이신 당신께서는 이 불경한 나자렛 사람의 추종자들의 보호자이십니까?”
“나는 정의의 보호자이다. 그런데 정의는 판단할 때 신중하고, 공정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나는 너에게 되풀이하여 말한다. 만일 이 일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지속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저절로 쓰러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사형 받아 마땅한지, 어떤지를 모르는 피로 내 손들을 더럽히기를 원치 않는다.”
“바리사이이고 박사이신 당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당신은 지극히 높으신 분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까?”
“나는 네가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두려워한다. 그러나 나는 숙고한다. 그리고 나는 기억한다… 네가 어린아이에 불과하여 아직 율법의 아들이 되지 못했을 때 나는 이미 이 성전에서 우리 시대의 가장 지혜로운 라삐와… 지혜롭기는 했지만 의인은 아니었던 다른 라삐들과 함께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의 지혜는 우리의 여생 동안 우리를 숙고하게 만들었던 교훈을 이 건물 안에서 받았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지혜롭고 가장 의로운 분의 두 눈과 정신(mind)1)라삐 힐렐)은 그 시간의 기억 위에서, 그리고 사람들에게, 특히 의인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던 한 아이의 입술에서 들었던 그 진리들을 연구하는 도중에 감기고 말았다. 내 눈들은 계속 지켜보았고, 내 정신은 사건들과 일들을 조직하면서 계속 생각했다… 나는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한 아이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특은을 받았다. 그 아이는 그 후 의롭고, 지혜롭고, 능력 있고, 거룩한 어른이 되었고, 바로 그의 이 자질들로 인하여 사형에 처해졌다. 그때의 그의 말들은 여러 해들이 지난 후에 다니엘이 언급했던 시기에 발생했던 사건들에 의하여 사실로 확증되었다…
더 일찍 깨닫지 못했으니 나는 가련한 사람이다! 나는 믿고 이해하기 위하여 마지막 무서운 표를 기다렸으니 말이다! 그때도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가련한 이스라엘 백성들! 다니엘의 예언, 다른 예언자들의 예언들, 하느님의 말씀의 예언은 계속되고, 그것들은 메시아의 제자들을 통해 그분을 박해하기를 계속하는 완고하고, 눈멀고, 귀머거리이고, 불의한 이스라엘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저주받을!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의 라삐들이 거짓 메시아를 찬양하고 그를 믿기 위하여 참 하느님 야훼를 모독하고 부인한다면, 하느님의 백성에게는 참으로 구원이 없어질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지 않다. 나자렛 분을 모욕하였고, 그분의 추종자들을 업신여김으로써 계속 그분을 업신여기는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다. 너는, 그렇다, 너는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다. 왜냐하면 너는 그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추종자들 안에서 그분을 미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는 더 이상 이스라엘의 구원이 없다고 말했는데, 그 말은 옳다. 그분의 양떼 안으로 넘어간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그분을 죽였기 때문이다.”
“당신은 저를 경악하게 만들고 계십니다! 당신은 율법을, 성전을 배반하고 계십니다!”
“그럼 나도 너희가 지금 막 돌로 쳐 죽이려고 하는 저 사람과 같은 운명을 공유하도록 나를 산헤드린에 고발해라. 그것은 네 임무의 시작이자 행복한 결론이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나의 이 희생을 통하여 그분의 자녀들이자 그분의 백성인 우리 가운데에서 구세주이시자 선생님으로 지나가고 계셨던 하느님을 알아 뵙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용서받을 것이다.”
사울은 화난 몸짓으로 불손하게 그곳을 떠나, 산헤드린의 홀에 면한 마당, 군중이 스테파노에게 격분하여 여전히 외치고 있는 마당으로 돌아간다. 사울은 이 마당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고문자들과 합류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성전 밖으로 나가고, 그 다음에는 시내의 성벽들의 밖으로 나간다. 이미 기진맥진해 있고, 상처 입은 채 형장을 향하여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부제(deacon) 스테파노에게 욕설, 조소들, 주먹질들이 계속 쏟아진다.
성벽들의 바깥에는 완전히 황폐하고 돌들로 덮여 있는 긴 황무지가 있다. 사형집행인들이 그곳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옷이 찢어지고, 이미 받은 상처들의 결과로 몸의 여러 군데가 피투성이가 된 사형선고 받은 사람을 혼자 가운데 놓아두고 원형으로 흩어진다. 그들은 그에게서 물러가기 전에 그의 옷을 찢는다.
스테파노는 매우 짧은 튜닉만을 입고 있다. 그들 모두가 사울이 입은 것과 같은 짧은 옷만을 입고 긴 옷을 벗어 그것들을 사울에게 맡긴다. 그는 투석형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그가 가말리엘의 말들로 인하여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자기가 목표물을 잘 겨냥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그런지 나는 모르겠다.
사형집행인들은 그곳에 많이 있는 굵은 자갈들과 날카로운 돌들을 몇 개 주워 투석형을 시작한다.
스테파노는 첫 번 돌들을 서서 맞는데, 상처 입은 그의 입에 용서의 미소를 띠고 있다. 투석형을 시작하기 직전에 스테파노는 사형집행인들의 옷들을 모으는 데 골몰해 있는 사울에게 외쳤다.
“내 친구여, 나는 그리스도의 길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겠네.”
그 말에 사울은 이렇게 대답했었다.
“돼지! 마귀 들린 놈!”
그는 욕설을 퍼부으며, 돌들을 맞고 아파서 쓰러지려 하는 부제의 정강이를 힘껏 걷어찬다.
사방에서 자기에게 날아온 돌들을 몇 번 맞은 후 스테파노는 자기의 상처 입은 두 손으로 자신을 지탱하며 무릎 꿇고, 분명히 오래된 한 일화를 회상하며 상처 입은 자기의 관자놀이와 이마를 만지며 속삭인다.
“그분께서 나에게 예언하셨던 대로! 관이… 루비들이… 오, 나의 주님, 선생님,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주십시오!”
이미 상처 입은 그의 머리에 또 한 차례의 돌들의 우박이 쏟아지자 그는 땅에 쓰러지고, 그의 피가 땅에 흠뻑 스며든다. 그가 여전히 우박처럼 더 많이 쏟아지는 다른 돌들을 맞으며 돌들 위에 쓰러져 있는 동안에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속삭인다.
“주님…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저 사람들의 이 죄로 인하여 그들에게 원한을 품지 마십시오…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릅…”
죽음이 그의 입술에서 문장을 중단시킨다. 마지막 경련이 그를 위로 휘게 했다가 그 자세로 있게 만든다. 숨을 거둔 것이다.
사형집행인들이 그에게 다가오며 그에게 또 다른 돌들을 쏟아 부어 그를 돌들 아래 거의 묻히게 한다. 그 다음에 그들은 다시 옷을 입고 그곳을 떠나, 악마적인 열성에 취하여 자기들이 한 일을 보고하려고 성전으로 돌아간다.
그들이 대사제와 다른 유력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동안에 사울은 가말리엘을 찾아 나선다. 그는 즉시 가말리엘을 찾아내지는 못한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증오로 불타며 사제들에게 돌아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을 설득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기에게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성전의 도장이 찍힌 문서를 주게 한다. 스테파노의 피가 붉은색을 보는 황소나 알코올 중독자에게 준 넉넉한 술처럼 그를 광분하게 했음이 틀림없다.
그는 막 성전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다가 가말리엘이 이교도들의 행각 아래 있는 것을 본다. 사울은 그를 향하여 간다. 아마 그는 논쟁을 시작하거나 정당화하려는 모양이다. 그러나 가말리엘은 마당을 가로질러 한 홀로 들어가 사울의 면전에서 문을 닫는다. 그는 모욕당하고 격분하여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위하여 성전 밖으로 뛰어나온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여러 번, 그리고 여러 사람에게 내 모습을 드러냈고, 예외적인 방법으로 나타나기도 했었다. 그러나 내 발현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효과를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우리는 나의 각각의 발현이 평화, 생명, 정의를 가지려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의 성화와 어떻게 일치하는지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은총은 목자들 안에서 나의 숨은 생활 30년 동안에 작용했고, 그 다음에 그것은 착한 사람들이 사탄에 의하여 흩어지고 해산된 영원한 양떼의 양들을 모으는 자기의 사랑의 소리를 외치며 세상의 길들을 따라 지나가고 있는 하느님의 아들을 따르기 위하여 악한 사람들에게서 분리될 때가 되었을 때 꽃을 피우고, 거룩한 이삭을 냈다.
나를 따랐던 군중들 가운데 있었던 그들은 내 사자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의 소박하고 확신에 찬 보고들로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저분이십니다. 우리는 저분을 알아봅니다. 저분의 첫 울음에 천사들의 자장가들이 내려왔습니다. 천사들은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은 평화를 얻을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착한 뜻은 선과 진리에 대한 갈망입니다. 저분을 따릅시다! 저분을 따르세요! 우리 모두는 주님이 언약하신 평화를 얻을 것입니다.’
비천하고, 무식하고, 가난한 내 최초의 사자들은 이스라엘의 왕, 세상의 왕의 길을 따라 보초들처럼 달려갔었다. 충실한 눈들, 정직한 입들, 다정한 마음들. 나는 그들을 위하여,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육화되었던 내 신적 위격 주위의 땅의 공기를 덜 부패하게 하려고 그들의 성덕들의 향기를 발산하는 향로와 같은 그들을 골고타의 피어린 길에서도, 극소수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었던 유일한 그들에게 내 두 눈으로만 축복을 보낸 다음에 십자가의 발치 아래에서도 보았다.
그들은 제어되지 않는 군중들 가운데서 나를 저주하지 않았고, 나를 사랑했고, 믿었고, 여전히 바랐으며, 오래 전의 내 탄생의 밤에 대하여 생각했고, 최초의 잠을 불편한 나무토막 위에서 잤고, 마지막 잠을 훨씬 더 고통스러운 나무 위에서 자는 죄 없는 사람을 위하여 울며 동정의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의로운 영혼들인 그들에 대한 내 발현이 그들을 거룩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똑같은 일이 동방으로부터의 세 현자들, 성전에서의 시므온과 한나, 요르단 강에서의 안드레아와 요한, 그리고 타보르 산에서의 베드로, 야고보, 요한, 부활절 아침의 막달라 마리아, 올리브 동산에서, 그리고 그전에 이미 베타니아에서 그들의 일탈에 대하여 용서받은 열한 명의 사도들에게도 일어났다…
아니다, 깨끗한 사도인 요한은 용서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충실했고, 항상 사랑하는 영웅이었다. 그의 지극히 깨끗한 사랑, 그의 정신과 마음과 육체의 순결이 모든 약함으로부터 그를 보존해주었다.
가말리엘은, 그리고 그와 함께 힐렐은 목자들처럼 소박하지도 못했고, 시메온처럼 거룩하지도 못했고, 동방박사들처럼 지혜롭지도 못했다. 가말리엘과 그의 스승이자 친척인 힐렐 안에는 바리사이의 칡넝쿨들이 빛과 믿음의 나무의 자유로운 팽창을 질식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바리사이적 존재 안에 순수한 의향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했고, 자기들이 그렇기를 바랐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갈망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의인들이었고, 그래서 지성으로도 그것을 갈망했기에, 그들의 영혼이 불만스럽게 외쳤기 때문이다. ‘이 빵에는 너무 많은 재들이 섞여 있소. 우리에게 참된 진리의 빵을 주시오.’
그러나 가말리엘은 이 바라사이적인 칡넝쿨들을 부숴버릴 용기를 가질 만큼 강하지 못했다. 그의 인성은 여전히 너무 많이 그를 예속했고, 그것과 함께 인간적인 존경, 개인적인 위험, 가족의 복지 따위의 고려들도 그러했었다. 그는 이 모든 것들로 인하여 ‘자기 백성들 가운데로 지나가고 계시는 하느님’을 이해할 줄 몰랐고,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활용하라고 주셨던 ‘그 지성과 그 자유’를 활용할 줄을 몰랐었다.
오로지 그가 그토록 여러 해 동안 기다렸던 표징, 끝나지 않는 가책으로 그를 무너뜨리고 고통스럽게 했던 표징만이 그의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마음이 생기게 했고, 그의 옛 생각을 바꾸게 했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알아봄으로써, 오류의 라삐였던 그가 율법학자들, 바리사이들, 박사들이 하느님에게서 온 단순하고 밝은 진리를 다량의 인간적인 교훈들로 질식시킴으로써 율법의 본질과 영을 부패시켰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은 자주 그릇된 것들이었지만, 그들에게는 항상 유리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옛 자아와 그의 현재의 자아 사이의 오랜 갈등 끝에 하느님의 진리의 제자가 되었다.
어쨌든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행동하는 데 강하지 못했던 것은 가말리엘만이 아니었다. 아리마태아의 요셉도 그러했고, 니코데모는 훨씬 더 그러했는데, 그들도 유다인들의 풍습과 칡넝쿨들을 즉각 짓밟고, 공개적으로 새 교리를 받아들일 줄을 몰랐다.
그래서 그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 그리스도를 ‘비밀리에’ 만나러 오거나 우연히 그를 만나는 것처럼 만나곤 했었고, 주로 그들의 농가주택들이나 베타니아의 라자로의 집에서 만났다. 그 집이 더 안전했고,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테오필로스의 아들에 대한 로마의 보호를 잘 알고 그 집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감히 성 금요일에 동정적인 행동을 취할 정도로 가말리엘보다는 선에 있어 훨씬 더 앞섰었고, 더 용감했었다.
라삐 가말리엘은 덜 나아갔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있는 그대들은 그의 올곧은 의향의 힘에 주목해라. 그것을 통하여 그의 매우 인간적인 정의가 초자연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다. 반대로 사울의 정의는 악의 억제되지 않은 분노가 그와 그의 스승 가말리엘에게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했을 때 악마적인 것으로 더렵혀진다.
선악의 나무는 모든 사람의 앞에 똑바로 서 있어 그 악의 열매들을 가장 유혹적이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보여주고, 잎들 사이에는 유혹하는 뱀이 나이팅게일의 목소리처럼 아름다운 속이는 목소리로 속삭인다. 좋지 않고, 영혼에 손상과 죽음을 야기하는 수많은 열매들 중에서 좋은 열매를 식별할 줄 알고, 원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에게 주신 이성과 영혼을 가진 사람이 할 일이다.
그래서 설사 가시에 찔리고 좋은 열매를 따기 어렵다 해도, 그 열매의 맛이 쓰고 모양이 보잘것없다 해도 좋은 열매를 따야 한다. 그 열매가 더 매끄럽고, 만지기에 더 부드럽고, 입에 달고, 보기에 더 아름답게 되는 변모는 영혼과 이성의 정의를 통하여 좋은 열매를 고를 줄 알고, 쓰기는 하지만 거룩한 그 과즙으로 영양을 취했을 때에만 일어나는 것이다.
사울은 악, 증오, 불의, 죄악의 열매를 향하여 탐욕스러운 그의 두 손을 내민다. 그리하여 그는 번개에 강타당하여 쓰러지고, 인간의 시력을 잃고, 그리하여 초자연적인 시력을 얻어 의인이 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미워했고 그의 제자들 안에서 박해했던 그분의 사도와 고백자가 될 것이다.
가말리엘은 자기의 인성과 히브리지상주의의 끈질긴 칡넝쿨들을 끊고, 인간적일 뿐 아니라 초자연적이기도 한 빛과 정의의 오래된 씨앗이 싹이 터서 꽃이 피게 하려고 선의 열매를 향하여 자기의 양손을 내민다.
그 씨앗은 아마도 너희에게 더 분명하고 더 알아듣기 쉬운 말인 내 네 번째 공현 또는 발현 2)아마도 첫 번째는 목자들의 경배, 두 번째는 성정에의 봉헌과 시메온과 한나의 예언, 세 번째는 동방박사들의 경배였을 것이다.) 으로 그의 마음에, 올곧은 의향들을 가진 그의 마음에 뿌려진 것이었는데, 그는 그것이 싹트고 꽃이 피는 것을 보려는 고귀한 갈망과 정직한 애정으로 이 씨앗을 보존하고 보호했다. 그의 의지와 내 피가 그가 그의 마음속에 수십 년 동안 간직했던 그 오래된 씨앗의 딱딱한 껍질을 깨뜨렸다. 바위와 같은 그 마음은 성전의 휘장과 예루살렘의 땅이 갈라짐과 동시에 갈라졌고, 나를 향하여 그것의 최고의 소원을 소리높이 외쳤다. 나는 더 이상 인간인 나의 청력으로는 그의 부르짖음을 들을 수 없었으나, 그가 십자가의 발치 아래 땅에 엎드려 있을 때 하느님인 내 영으로는 그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사도들과 가장 훌륭한 제자들의 말이라는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최초의 순교자인 스테파노의 피의 소나기를 맞아 그 씨앗이 뿌리내리고, 나무가 되어, 꽃 피고, 열매 맺는다. 그의 그리스도교 신앙의 새 나무는 성 금요일의 비극이 모든 옛 나무들과 풀들을 쓰러뜨리고 뿌리뽑아버렸던 곳에서 돋아났다.
그의 새로운 그리스도교 신앙과 그의 새로운 성덕의 나무는 내 눈앞에서 돋아나서 자라났다. 비록 그에게는 나를 더 일찍 이해하지 않은 잘못은 있지만, 내 사형선고나 스테파노의 사형선고에 참여하기를 거절했던 그의 정의로 인하여 그는 나에게 용서받았고, 내 신자가 되고, 진리의 아들, 빛의 아들이 되고자 하는 그의 소원은 아버지와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의 강복도 받아서 소원에서 현실이 되었다.
그렇게 되는 데 있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정의, 사랑, 빛, 진리, 하늘나라의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생명으로 데려올 수 없었던 오만한 사울에게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필요했었던 강력하고 난폭한 번개를 그는 맞을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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