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신비한 도성

6서/ 제 2 장 주님의 변모와 예루살렘에의 개선적 입성(하느님의 신비한 도성)

Skyblue fiat 2017. 4. 8. 23:13

하느님의 신비한 도성

​MISTICA CIUDAD DE DIOS 

VIDA DE LA VIRGEN MARIA

 

가경자 아그레다의 마리아 

Maria de Jesus de Agreda



2

주님의 변모(變貌)와 예루살렘에의 개선적 입성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은 설교와 기적에 이미 2년 반 이상을 소비하고 수난과 죽음에 의해 세상을 구하고 영원하신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실 때가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수난에 의해 몸이 비참하게 상처 받으시는 것을 본 제자들이 낙담하는 것을 아시고 너무 낙담하지 않도록 같은 몸이 영광 안에 변모하는 것을 보여주고자 희망하셨습니다.

  주님은 갈릴레아 중심의 높은 산 나자렛의 서쪽으로 약 7키로 지점에 있는 타볼산에 세 명의 사도들 즉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두 사람의 예언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주님과 수난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주님이 변모하신 그때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 내 나음에 드는 아들이다. 너희들은 그의 말을 들어라

 

 거룩한 복음사가들은 성모님이 거기에 계셨는지 어떤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만 사실 성모님은 천사들이 모셔다 줘서 아드님의 변모를 목격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신앙을 재확인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복음사가들은 성모님에 대한 기술을 아꼈던 것입니다. 성모님은 아드님의 영광을 보고 듣고 마음으로 감사와 가장 깊은 통찰을 나타내고 천사들과 함께 새로운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변모 후 성모님은 나자렛집에 옮겨졌습니다. 아드님도 거기에서 돌아온 후 예루살렘을 향하였습니다. 성모님과 제자들과 사도들도 동행하고 갈릴레아와 사마리아를 통해 유다에 들어가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싶다는 열렬하고 광대한 희망을 품고 계셨습니다.

 

  다음과 같이 아드님은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영원하신 아버지, 거룩하신 뜻에 따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으로 당신의 정의를 완전하게 하기 위해 기뻐 서두릅니다. 아담의 자식들의 빚을 갚고 닫혀있던 천국 문을 열어 당신과 화해시키겠습니다. 길에서 벗어나 미아가 된 많은 사람들을 찾기를 원합니다. 야곱의 집의 자식들 중 행방불명이 된 자들을 찾고 추락한 자들을 높이고 가난한 자를 풍요롭게 하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거만한 자를 끌어내리고 겸손한 자를 높일 것입니다.

  지옥을 극복하고 루치펠과 그가 뿌린 악덕에 대한 승리를 더욱 영광되게 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깃발을 높이 올리겠습니다. 깃발에 지켜진 사람들은 싸울 것입니다. 치욕과 모욕거리가 되는 나의 마음이 당신으로부터 칭찬받을 수 있도록. 적의 손에서 죽임을 당할 때까지 나의 겸손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이 고난을 참고 견뎌 나와 같은 박해를 만날 때는 언제나 귀한 상급을 받을 수 있도록. 아아, 사랑하는 십자가! 네가 나를 품는 것은 언제가 될까? 아아, 감미로운 치욕! 십자가의 치욕을 통하여 내가 죽음을 극복하는 것은 언제가 될 것인가? 고통, 치욕, 채찍질, , 고문, 죽음이여 너는 나에게 오라! 나는 너를 포옹하고 환영한다.

  너의 가치를 아는 것이 목적이다. 세상이 너를 싫어할 때, , 너를 동경한다. 세상은 너를 모르고 증오하지만 진리와 지혜인 나는 너를 사랑하고 끌어안는다. 인간으로서 너를 초대하고 신()으로서 너를 높이고 너와 너를 사랑하는 자에 의해 죄를 없앤다.

  고통이여, 나에게 오라. 너는 내가 인성(人性)에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진정한 하느님, 창조주이신 아버지가 치욕, 십자가의 고문과 비참함의 끝에서 고통 받는 모습을 아담의 자식들이 본다면 이제까지 잘못된 생각을 한 것을 깨닫고 십자가에 달리신 하느님을 따르는 것을 명예라고 할 것이다


  성모님은 아드님을 두려운 고통으로부터 비껴가게 하고 싶은 어머니의 사랑과 영원하신 아버지와 아드님의 거룩한 뜻에 자신의 의지를 일치시키는 것과의 갈등 때문에 시메온 예언(루카 2,35)처럼 슬픔의 칼에 의해 심장이 관통되었습니다. 가장 깊고 현명한 배려와 지혜와 가장 부드러운 슬픔의 말로 성모님은 아드님에게 아드님의 고통을 방해하지 않고 아드님과 함께 죽는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호소했습니다. 성모님의 슬픔은 이미 죽었거나 장래에 죽겠지요. 세상이 끝날 때까지의 모든 순교자의 고통을 넘는 것입니다.

  이 같은 마음으로 아드님과 성모님은 나자렛에서 갈릴레아로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아드님의 구속 사업이 완성에 가까워 옴에 따라 아드님의 기적의 횟수가 늘었습니다.

 

  갈릴레아에서 예루살렘까지의 마지막 달은 특히 기적이 매우 많았습니다.

  유다 지방에서의 기적 중의 하나로서 베타니아의 나자로의 부활이 있습니다. 나자로의 집은 예루살렘 옆에 있습니다만 기적의 소문은 예루살렘 시 전체로 퍼져나갔습니다. 사제와 바리사이인들은 이 기적에 안절부절 못하고 회의를 열어(요한 11,47) 구세주를 죽이기로 결정하고 구세주가 머무는 장소를 알고 있는 사람 모두에게 보고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나자로의 회복 후 예수님은 에브라임 마을로 한 발 물러나 과월절이 가까이 올 때까지 거기에 머무르셨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은 열두 사도들과 자주 만나 예루살렘에 가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시켰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은 바리사이파인과 장관들에게 쓰러뜨림을 당하고 죄인으로서 밧줄로 묶이고 채찍으로 맞고 학대당하고 십자가위에서 죽는다는 것을 사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과월절의 6일전 예수님은 모두와 함께 베타니아로 가서 나자로의 두 자매, 마리아와 마르타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구세주의 수난과 죽음 전날 목요일이 돌아왔습니다. 그날 새벽 주님은 성모님을 부르셨습니다. 성모님은 급히 달려가서 주님의 발밑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나의 주님 말씀하십시오. 말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성모님을 일으켜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어머니 인류의 구원을 위해 내가 아버지의 영원하신 지혜에 의해 정해진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에 의해 나에게 명령하신 때가 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몇 번이나 거룩하신 뜻에 따른 것처럼 지금 따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버지를 따라 나 자신을 적의 손에 넘기는 것을 나의 참 어머니로서 동의해 주십시오.

  성모님이 나의 잉태를 당신 자유의지에 의해 승낙하신 것처럼 나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에 동의해 주십시오. 아버지가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나의 육신의 고난에 의해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길 잃은 양 아담의 자식들을 데리고 오기 위함입니다(마태 18,12).”

 

  성모님은 아드님의 발아래 엎드려 대답했습니다. “주님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창조주이신 당신은 저에게서 태어나신 아드님이시지만 저는 당신의 여종입니다. 당신이 강림하신 것으로 저는 쓰레기에서 당신의 어머니로 높임을 받았습니다.

  저는 당신의 관대함에 감사하며 영원하신 아버지와 당신의 의지에 따르겠습니다. 저의 아드님이신 주님, 아버지께서 영원토록 흠숭 받으셔야 할 거룩하신 뜻을 성취하시도록, 저에게 있어 제일 큰 희생은 당신과 함께 죽을 수 없다는 것, 당신 대신에 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신을 따라 당신 옆에서 괴로워하는 것은 최소한의 위로입니다. 당신과 함께 받는 고문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당신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고문을 인내하는 것은 나의 고통에 유일한 도움이십니다. 아아, 나의 하느님이시여, 당신과 함께 죽을 수 없다는 이 희생을 받아주소서. 인류의 악랄함을 보는 저의 슬픔도 받아주소서. 아아, 하늘이여, 자연이여, 그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여, 천사들이여, 왕들이여, 예언자들이여, 당신들을 만든 아드님의 죽음을 한탄하는 나를 도와주십시오. 아드님의 죽음의 원인인 사람들, 이 위대한 구원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비참함을 나와 함께 한탄해 주십시오. 파멸한다고 예지 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불행할까요?

  어린양의 피로 깨끗하게 된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아아, 나의 아드님, 내 영혼의 끝없는 기쁨이시여, 제가 당신의 수난과 십자가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당신의 어머니로서의 저의 희생을 당신의 희생과 함께 영원하신 아버지가 받으실 수 있도록 진정으로 부탁드립니다.” 그 외에 말로는 다할 수 없는 표현으로 성모님은 아드님께 말씀드리고 수난의 반려 및 공동구속자가 되는 것을 자원하셨습니다.


  성모님은 또 하나의 부탁을 아드님에게 드립니다. 아드님이신 주님이 자신의 몸과 피의 성사의 제정을 아드님의 영광을 위해 결심하신 것, 축성 받은 빵과 포도주의 형태로 거룩하신 교회 안에 아드님이 머무시는 것을 결단하신 것에 대해 성모님은 다시 말씀드렸습니다.

  성모님은 그 성사를 받을 가치 없는 인간이라고 겸손해하시며 아드님이신 주님의 무한하신 공덕을 나누어 받고 성체를 모시고 싶은 뜻을 절절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드님의 몸과 피는 원래 성모님으로부터 유래합니다. 아드님의 몸과 피를 배령하는 것은 아드님과의 올바른 일치임과 함께 수태하실 때와 임신 기간 중의 두 사람의 일치의 재현이기도 합니다. 다시 하나가 되어 성모님의 마음속에 아드님을 다시 맞이하고 장래에도 결코 헤어질 수 없는 기쁨을 어머니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서로 인사를 나누고 예수님은 가장 사랑하는 성모님을 남겨두고 천사들 모두와 함께 베타니아에서 최후의 만찬의 날 목요일의 정오 조금 전에 예루살렘으로 출발할 때가 되어 기도했습니다.

  “영원하신 아버지이신 저의 하느님이시여, 사람들 즉 저의 형제들인 당신의 피조물을 죄에서 구하기 위해 고통과 죽음으로 향합니다.”

  

 

모후의 말씀


  나의 딸이여, 사람들이 성체배령을 매번 받는 것을 싫어하고 게으르고 준비도 뜨거운 신심도 없이 성체에 가까이 가는 것은 주님에게나 나에게나 성인들에게 도대체 얼마나 무서운 범죄인지를 생각하십시오. 거룩한 성사 안에 들어가 계신 아드님을 모시기 위해 몇 년간이나 나는 준비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방해하는 죄가 전혀 없고 은총으로 넘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겸손과 감사의 덕을 열심히 쌓고 성체를 배령할 수 있는 몸이 되고자 했습니다. 아드님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계시는 성체를 모시기 위해 합당하게 되도록 매일 언제나 자신의 죄를 비난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