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신비한 도성

6tj/ 제 4 장 겟세마니에서의 기도. 성모 마리아께서는 그에 어떻게 대처해왔는가?(하느님의 신비한 도성)

Skyblue fiat 2017. 4. 13. 10:06


하느님의 신비한 도성

​MISTICA CIUDAD DE DIOS 

VIDA DE LA VIRGEN MARIA

 

가경자 아그레다의 마리아 

Maria de Jesus de Agreda



4

겟세마니에서의 기도.

성모 마리아께서는 그에 어떻게 대처해왔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시고 최후의 만찬도 거의 끝날 무렵 만찬 다락방에서 나가 겟세마니 동산으로 나가십니다. 같은 시각 성모님은 대기실에서 나오셔서 아드님을 만나십니다.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본 채 슬픔의 칼이 심장을 관통합니다.

  이 슬픔의 굉장한 통증은 인간에게도 천사에게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모님은 아드님의 발아래 몸을 굽혀 하느님이신 주님을 경배합니다. 주님은 하느님의 위엄과 넘쳐흐르는 애정을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어머니, 함께 고통을 받읍시다. 둘이서 영원하신 아버지의 뜻과 인간 구원을 성취합시다.” 성모님은 자신을 희생으로서 드리고 주님의 축복을 원합니다. 축복을 받은 후 성모님은 대기실에 돌아가 주님의 수난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느님의 특별하신 배려로 보시게 됩니다. 이같이 성모님은 아드님 옆에 항상 계시고 협력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성모님의 옆에는 성모님밖에 보이지 않는 천사들이 천위정도 따르고 신심 깊은 여인들도 함께였습니다. 주님은 열두 사도들과 함께 다락방을 떠나 예루살렘의 동쪽 성벽 바로 바깥쪽의 올리브산으로 향합니다. 유다는 주님을 배반할 기회를 노리면서 주님이 언제나처럼 철야기도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때야말로 주님을 자신과 한 패거리인 학자나 바리사이인에게 넘기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과 수행하는 사도들의 뒤를 천천히 따라 걷습니다. 그들로부터 보이지 않게 되자 유다는 온 길을 되돌아가 자기 자신의 멸망으로 돌진합니다. 그의 마음에 돌연 무서움과 불안과 양심의 가책이 덮칩니다.

  유다가 주님의 죽음을 서두르는 것을 알아차린 루치펠은 주님이 정말로 구세주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구속 사업을 방해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필사적이 됩니다. 유다의 배반으로 서로 알게 되어 극악한 자가 된 것 같은 행세를 하며 유다에게 말을 겁니다. “주의 악행 때문에 주를 팔아넘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생각을 바꾸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주는 네가 생각하는 정도로 악인도 아니니 만약 기적적으로 대사제들과 바리사이인으로부터 도망친다면 네가 매우 곤란하게 될 것이다.” 라고 유다의 변심을 다그쳤습니다.


  한편 주님은 열한 사도들과 함께 우리 구세주를 죽이려고 하고 있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아담의 때에 시작된 선과 악의 격전은 주님의 죽음으로 최종결전이 됩니다.

  주님의 일행이 키드론의 물살이 빠른 곳을 건너 올리브산에 오르고 겟세마니 동산에 도착한 곳에서 주님은 사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기다려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내가 기도하는 동안 너희들도 기도하여라(마태 26~36).”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루카 22,40).” 이 유혹은 최후의 만찬에서 설명이 있었던 것처럼 주님의 수난을 위해 사도들 모두가 악한 자로 취급 받아 악마에게 여러 가지로 부추김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언에 있는 것처럼 목자가 학대받고 부상당하면 양은 여기저기 도망칩니다(즈카 13,7). 주님은 여덟 명의 사도들을 거기에 남기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다른 장소에 데리고 갔습니다. 주님은 영원하신 아버지를 향하여 언제나처럼 아버지를 찬미하고 즈카리아의 예언의 성취를 부탁하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아버지의 정의 즉 주님의 희생이 행해지는 것을 새롭게 기도했습니다. 이때부터 모든 위로도 도움도 주님으로부터 거두었기 때문에 수난은 더욱 가혹한 것이 된 것입니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마태 26,38).”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주십시오(마태 26,39).”

 

 주님의 고통은 주님 사랑의 크기와 사람들이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효과에 무관심한 것에 비례합니다. 주님의 고통은 피와 땀이 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님이 고통에 의해 획득하신 은혜는 거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며 성인과 의인에게는 보다 많이 주어집니다.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은 은혜는 선택된 사람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이처럼 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거룩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다락방에서는 성모님의 옆에 거룩한 여인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계시에 의해 아드님이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모습이 매우 잘 보였습니다. 유혹에지지 않기 위해 잘 기도하도록 부인들에게 권하고 나서 막달라 마리아와 또 두 사람의 마리아를 데리고 다른 방으로 갔습니다.


  성모님은 영원하신 아버지에게 모든 감각적, 영적 위로가 단절되도록 기도하고 기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드님이 받을 고통을 똑같이 그대로 받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혹독한 고문 때문에 몇 번이나 죽을 것 같았습니다만 그것만은 영원하신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드님과 함께 죽을 수 없는 것이 성모님에게는 제일 큰 고통이었습니다. 세 사람의 여인들에게 말한 대로입니다. “나의 영혼은 슬픕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드님이 고통을 받아 지금 죽으려고 하고 있고 아드님의 고문에 의한 죽음에 관여하는 것은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겨 아드님에게 마음을 일치시켜 기도했습니다.

  악마가 성모님과 일행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는 것, 어떤 사람들의 추락, 영원한 구원과 멸망의 신비를 숙지하고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주님이 성 미카엘 대천사의 방문을 받은 것처럼 성 가브리엘 대천사를 만났습니다. 두 천사가 전해준 영원하신 아버지의 거룩한 뜻도 기도도 슬픔도 완전히 같습니다.

  주님이 세 번째로 세 사람의 사도들에게 돌아와 보니 세 사람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아직도 자고 있느냐? 아직도 쉬고 있느냐? 이제 되었다. 시간이 되어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마르 14,41).” 이 말을 듣고 사도들은 일어나 주님을 따라 여덟 명의 사도들에게로 갔습니다.

 

  여덟 명도 슬픔에 지쳐 자고 있었습니다. 일어나 일치단결하고 자신들의 적에게로 향해야 하는 것을 주님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적 즉 악마는 한 줄의 밧줄은 간단하게 잡아당겨 찢습니다. 그러나 서너 줄의 밧줄에는 이길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제부터 일어나는 것을 사도들에게 미리 경고했습니다. 병사들과 가세한 자들이 여기로 향해오는 어마어마한 소리가 벌써 들려옵니다. 주님은 그들을 만나기 위해 전진하고 진심으로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마음속으로 부드러운 신심 깊은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아아,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갈망하는 고통, 상처, 박해, 노동, 어려움과 수치스러운 죽음이여 오라 빨리 오라, 너희가 모든 피조물 중 가장 결백한 나를 만나는 것을 소망하라. 사람의 구원 때문에 불타는 사랑의 불꽃은 너희의 진가를 알기에 너희들을 최고의 위엄에까지 높인다.

  죽음이여 오라, 죽음에 저항 없이 죽음을 감수하는 것은 내가 죽음에 승리하기 위해 죄로 인해 사형이 되고 사람들에게 생명을 회복시키기 위함이다. 내가 친구들의 고집, 독선을 버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 혼자 이 싸움에 나아갈 때 친구들 때문에 승리를 얻는 것을 소망한다(이사 53,3).”

 

 기도하고 계신 생명의 창조주를 향하여 유다는 가까이 걸어옵니다. 탐욕과 주님에 대한 증오 외에 두려움도 있습니다. 만약 주님이 죽지 않고 자신을 만날 때의 일을 생각하면 두려워서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배신을 빨리 해버리는 것뿐입니다. 주님에게 달려가 주님의 얼굴에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평화의 입맞춤을 하고 말합니다.

  “주님이시여, 하느님이 주님을 구해주시기를.” 이 인사는 속일 수 있다는 유다의 악의와 대담함을 잘 나타냅니다. 이 대역죄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두려운 죄의 전부가 됩니다. 배신, 살인, 신성모독, 배은망덕, 비인간적, 불순종, 위증, 불신, 비교할 수도 없는 위선 등이며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인성(人性)에 대해서 범한 것입니다.

 

 성모님은 환시에 의해 주님의 포박 모습을 그곳에 있던 사람들보다도 더욱 선명하게 보았습니다. 대사제 관저에서 병사들과 종들이 자신들의 창조주이신 구세주를 모독하는 모습도 잘 보였습니다. 성모님은 천사들과 여인들에게 자신과 함께 주님을 경배하며 모독을 조금이라도 속죄하도록 부탁했습니다.

  성모님은 주님이 죄인이 되고 가장 잔혹한 판결을 받게 되자 여인들에게 전했습니다. 여인들은 성모님을 본받아 무릎을 꿇어 엎드려 창조주의 무한한 신성(神性)과 지극히 거룩하신 인성(人性)을 마음 깊은 곳에서 찬미합니다. 성모님은 주님을 찬미하며 경배하고 악의에 찬 사람들의 불경(不敬)과 폭력에 속죄를 합니다.

  불충실하고 완고한 유다가 성체배령 후에 주님을 배신한 것에 대해서 성모님은 주님에게 은총을 부탁했으며 아드님이신 주님은 강력한 은총을 유다에게 주었습니다. 불행히도 유다는 그것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주님이 밧줄과 쇠사슬로 묶여 매를 맞고 있을 때 성모님도 같은 아픔을 만났습니다. 성모님이 같은 고통을 기뻐하며 참으신 것으로 주님의 고통이 어느 정도는 가볍게 되었습니다.

  

 

모후의 말씀


  나의 딸이여, 아들의 신비를 주셔서 쓴다 해도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주야로 묵상하는 것에 의해 너의 소심함, 배은망덕과 비참함을 극복하도록 하지 않으면 큰 벌을 받게 되겠지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라고 말씀하신 주님을 따라 모독 받고 채찍으로 맞고 고통, 십자가상에서 죽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세상의 즐거움을 쫓고 고통을 싫어한다면 영원한 생명은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자녀도 아니고 주님이신 아드님의 제자도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 보다도 유다를 따르는 자가 훨씬 그 수가 많습니다. 이들은 불충실한 자들이고 올바르지 못한 가톨릭 신자이며 유다 같은 위선자입니다.

나와 함께 이러한 것들의 악을 한탄하며 슬퍼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