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사순시기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과 함께하는 온라인 피정
비우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당신을 채우실 수 있습니다!
제 1 주:
전투에 참여하기
복음: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분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셨다. 그런데 유혹자가 그분께 다가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데리고 거룩한 도성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마태 4,1-11)
1. 이 주의 묵상: “시련이나 유혹을 두려워하지 마라.”(우리성소의 위대함 12)
⚫ 단식하는 시기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셨다. 거기서 그분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셨다. 케노시스 혹은 “자기비움”의 장소인 광야는 주님께서 마음으로 호소하기위해 가신 곳 이였다. 엘리사벳의 거듭되는 초대를 들어보자.: “이 사순시기 동안 하느님의 무한하심과 그분의 사랑 안에서 당신을 만나겠다고 약속합니다. 당신도 우리가 우리의 신성한 정배와 함께 깊은 고독 속에서 사는 사막이 되길 바라시죠? 그분은 이 고독 속에서 우리 마음을 향해 말씀하시니까요.”(편지 156, 앙글레 부인에게, 1903년 2월)
모세는 산 위 구름 속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했다.(탈출 24,18) 예언자 엘리야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 가운데서 하느님을 만나기 전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했다.(1열왕 19,12) 단식은 우리를 하느님과 만나도록 준비시킨다.
우리는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로 반드시 단식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나는 나의 마음속에 말씀하시기를 원하시는 주님께 더 합당하게 되기 위해 사순시기의 이번 주간동안 어떻게 단식할 수 있을까? 나는 생명의 원천이신 주님께 내 자신이 자유롭고 합당하게 되기를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 단식은 몸을 위한 음식 외에 다른 것들이 될 수도 있다. 우리 각자는 우리의 자유를 키우기 위해 어떤 부분을 단식해야 할지 우리 자신에 대해 검토하고 따져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반드시 기쁨 중에 해야 한다. 이것은 단지 포기의 행위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나에게 생명을 주시는 그분을 향한 사랑의 행위인 것이다.
엘리사벳은 일기에서 그녀가 단식할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삼일동안 나는 엄마 모르게 아침에 단식할 수 있었다. 오, 나는 나의 예수님께 이 작은 고행을 드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일기 4) 그리곤 며칠 후에 그녀는 쓰기를:“엄마는 내가 오늘 아침식사를 하지 않은 것을 알아챘다.; 그녀는 정말 나를 꾸중하셨다. 그래도 계속 해야 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일기 6) 엘리사벳은 예수님께 무엇인가를 드리고 싶었고 그녀는 단식하기를 결심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가 알아챘을 때, 엘리사벳은 단식을 포기하고 어머니께 순명하여 자신의 뜻을 끊는 것을 택했다. 그녀가 가르멜에서 쓴 편지에서 말하기를: “스승님께서는 다른 성녀의 고행보다 순명을 더 좋아하신다고 우리 사모 성녀 데레사께 말씀하셨다.”(편지 309) 엘리사벳은 여기서 영적 보고서(20)를 언급하면서, 아빌라의 데레사는 주님께서 까르도나의 카타리나가 그녀 자신에게 강요한 참회의 행위보다 데레사가 고해사제에게 순명하는 것을 더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렸다.
우리들은 단식이 오직 우리를 자유롭게 사랑하도록 할 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상을 받기 위해서 완성해야 하는 “성과”는 없다. 아마도 어떤 균형감을 가지기 위해 단식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우리 자신의 뜻을 포기하는 것이고, 하느님을 믿음으로써 오는 은총을 깨닫고 그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다.
⚫ 영적 시련의 시기
예수님은 단식 끝에 그분을 유혹하러 온 적, 악마에게 맞서는 영적 시련을 경험했다. 엘리사벳은 디종에서 1900년 3월 4일에서 4월 2일까지 영적 시련의 시기동안, 그녀의 일기에 그녀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점을 적었다.: “인생은 고역이다.”(욥 7,1) 우리는 삶 안에서 어떤 때는 이 점에서 어떤 때는 또 다른 점에서 유혹을 받는다. 유혹 자체가 죄는 아니다. 만약 우리가 유혹을 당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우리가 우리 자신의 정신을 딴 데로 돌리면서 유혹에 대항한다면, 우리가 그 안에서 만족을 발견하는 것조차 죄는 아니다. 가장 좋은 선택은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유혹에 대항할 무기를 주셨다. “깨어 기도하여라.”(마태 26,41) 하느님과 함께라면 우리는 승리를 확신한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은총을 주시지 않고는 우리에게 결코 유혹을 보내시지 않는다. 그렇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13)(일기 73)
엘리사벳은 그녀의 삶의 마지막에 그녀의 어린 친구, 그녀가 정답게 프랑부아즈[주: 이것은 그녀의 이름에 프랑스어의 라즈베리라는 단어를 결합시킨 것이다.]라는 별명을 붙여준 프랑수아즈 드 수르동에게 길게 편지를 쓴다. “기억하렴. ‘하느님께서는 네가 사랑 안에서 그분의 현존 가운데 깨끗하고 순수하도록 창조 이전에 그분 안에서 너를 택하셨단다.’(에페 1,4) 그러니 결코 투쟁도 유혹도 두려워 하지 말아. 사도께서는 이렇게 쓰셨어. ‘내가 약할 때 나는 강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힘이 내 안에 머무르기 때문입니다.’”(2고린 12,9-10)(우리성소의 위대함 12) 엘리사벳과 프랑부아즈 사이에 7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있다. 엘리사벳은 이 젊은 친구의 화를 잘 내는 성격 안에서 어릴 때의 자신을 발견한다. 엘리사벳은 격정적인 성격을 가졌고, 때때로 화가 폭발했다. 그녀의 동생 기트가 말했던 것처럼 “정말 악마 같았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어머니와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면서 그녀의 격렬한 기질에 대항하며 투쟁하였다. 그녀의 첫 번째 고해성사와 무엇보다도 첫영성체가 그녀가 변화되는데 깊은 도움을 주었다. 우리는 유혹에 대항하여 굳건히 서서 우리 영적 투쟁을 도와주는 교회 성사의 도움에 의지하는가?
1899년, 엘리사벳은 19살에 그녀의 일기의 시작에 이렇게 썼다.: “오늘은 나를 크게 지배하는 결점[화를 폭발시키는 기질]에 대해 예수님께 여러 가지 희생을 봉헌하는 기쁨을 가졌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거기서 나는 내 나약함을 알게 되었다. 나는 부당하게 관찰 받는다고 생각할 때, 혈관의 피가 끓어오르는 걸 느낀다. 내 모든 존재가 거꾸로 치솟는 듯하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계셨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그분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그분에 대한 사랑으로 그 모든 걸 견딜 준비가 됐다...!”(일기 1) 엘리사벳은 이 유혹을 알아차렸고 그녀의 약함에 투쟁해야 함을 알았다. 그녀는 인간의 본성이 자기 뜻대로 하게 내버려 두었을 때 얼마나 쉽게 과거의 습관으로 돌아가는지 알았기 때문에 계속 깨어있었다. 예수님께 대한 그녀의 사랑이 그녀가 싸우도록 격려했다. 그녀의 경험으로 굳건해진 엘리사벳은 그녀 생애의 말년에 그녀의 친구, 샤를 알로에게 적었듯이 바로 그렇게 우리를 돕기를 원한다.: “나의 작은 형제여, 너는 투쟁을 견뎌 내야 할 거야. 그러고 네 삶의 길에서 여러 가지 장애물도 만나게 될 거란다. 하지만 실망하지 말고 나를 부르렴. 그래, 너의 이 작은 누이를 부르렴. 그러면 너는 천국에서 이 누이의 행복을 더 크게 해 줄 거란다. 그리고 이 누이는 네가 승리하도록, 네가 하느님께 맞갖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며 많이 행복해할 거야.”(편지 342) 엘리사벳처럼 우리는 성인들의 공동체에 속해 있으니, 우리의 싸움과 투쟁과 유혹에서 그들을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
예수님은 적에 대항한 싸움에서 승리하셨다. 예수님은 악마의 모든 유혹에 대해 성경에서, 좀 더 정확하게는 하느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율법으로 준 모세오경에서 대답을 끌어내셨다. 가르멜의 규칙에서 영적 전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항상 믿음의 방패를 잡아야 합니다. 그것으로 악마의 불화살을 막아 꺼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칼, 곧 하느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여러분의 마음과 입에 가득히 지니고, 또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주님의 말씀으로 할 것입니다.”(가르멜 규칙, 16항)
우리의 영적 투쟁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에 의지해야 한다. 예수님은 신명기의 구절을 다시 확인한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명 8,3; 마태 4,4)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자양분으로 주도록 하고,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생명을 받음을 드러내도록 하자. 우리 자신이 말씀의 식탁에서 만족하도록 단식하자. 엘리사벳이 그녀의 편지 수취인들에게 빛을 주며 얼마나 많이 하느님의 말씀을 언급하였는지 그녀의 편지들은 우리에게 감명을 준다. 우리는 그것의 아름다운 예문을 위의 단락에서 인용했던 우리성소의 위대함, 그녀가 “프랑부아즈”에게 보낸 글에서 발견한다. 우리의 사순시기 단식의 시작에서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보자.: 성경과 우리의 관계는 어떠한가? 어떻게 이 관계를 발전시켜서 우리의 마음과 입에 계속 남아있도록 할 것인지 깨달았는가? 어떻게 적의 공격에 대항하여 하느님의 말씀으로 싸울 것인지 깨달았는가? 아마도 우리는 그 날이나 각 주일의 성경본문을 읽고 묵상하는데,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의 복음에서 우리는 2가지 다른 방식의 성경 접근법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서 성경을 이용한 적의 방식과 경건하게 하느님을 언급하며 아버지와의 관계를 성경 안에서 반추하시는 예수님의 방식. 엘리사벳은 하느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경청하는 독자였고, 이 안에서 그녀는 그분을 따르도록 부르시는 각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과 그녀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발견했다. 그녀가 죽기 몇 주 전에 적었던 그녀의 마지막 피정에서 (1906년 8월) 엘리사벳은 매우 강력한 말을 쓰고 있다.: “성 바오로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영과 혼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가르기까지 합니다.’(히브 4,12) 그러므로 이 말씀께서 직접 영혼 안에서 그를 적나라하게 벗기는 일을 완성시켜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이처럼 고유하고 특별한 것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 말씀이 영혼으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그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 맡기게 할 뿐만 아니라 그가 들은 것을 믿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마음 깊이 간직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간직하는 가운데 영혼은 ‘진리 안에서 거룩하게 될’ 것이며 그것이 바로 스승님이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들을 진리 안에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말씀을 간직하는 이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 안에 우리의 거처를 만들 것입니다.’ 영혼이 진리 안에서 사랑할 때,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할 때,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그 영혼 안에 사십니다!”(마지막 피정 27-28)
엘리사벳은 하느님 말씀의 창조적 과정에 우리를 내어 맡기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오직 하느님의 말씀 만이 우리를 순수하게 하고 완전히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지 우리를 준비시키는 정도까지이다. 엘리사벳은 단지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우리는 반드시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공간을 만들어야 그곳에서 그 소리가 울려 퍼지고 효력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말씀을 소중히 간직한다는 것은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삼위일체께서 들어오시도록 허락하는 것이고 우리와 함께 사시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세례성사의 은총에 응답하는 것이다. 이번 주 동안 엘리사벳의 도움으로 우리의 여정을 계속하도록 하자.
2. 매일의 삶을 위한 3가지 실용적인 제안들
1. 나는 주님께 더 합당하게 되기 위해 단식하기를 결심할 것이다.
2. 나는 나의 개인적인 영적 투쟁의 특성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가지고 성령의 도움을 청할 것이다.
3. 나는 이번 주 동안 성경 한 구절을 정해서 가지고 다니며 마음으로부터 배울 것이다.
4. 이번 주 동안 매일 성녀 엘리사벳과 함께하는 기도
5. 이번 주 동안 매일 성녀 엘리사벳과 함께하는 기도
3월 6일 월요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아! 그분께서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너를 통해서 그분이 얼마나 사랑받고 싶으신지 네가 안다면!”(편지 233)
나는 나의 마음과 눈을 친절로 채우려고 노력할 것이다.
3월 7일 화요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태 6,9)
“사랑하는 제르멘 자매, 언제나 기도를 사랑하세요. 제가 기도를 말할 때는 매일 읊어야 할 구송기도의 양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만사를 통해 하느님께로 영혼을 들어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눈길 아래 계속해서 그분과 아주 단순히 친교를 나누게 해 줍니다.”(편지 252)
제가 당신 앞에 작은 아이처럼 오래 머물도록 가르쳐 주소서.
3월 8일 수요일
“당신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 주소서.”(시편 51,14)
“아! 우리 영혼은 그분을 향한 간청, 특히 영혼 전체가 하느님 안으로 흘러 들어가고 하느님 또한 당신 안에서 영혼을 변모시키기 위해 그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내밀한 대화인 기도 속에서 힘을 끌어낼 필요가 있습니다.”(편지 278)
오소서 성령님, 오셔서 제 마음 안에 사시고 치유해 주소서.
3월 9일 목요일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그분께서 우리의 사랑을 진실하게 해 달라고 청하기로 해요...”(편지 250)
나는 오랜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평화의 말을 건넬 것이다.
3월 10일 금요일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으니.”(시편 130,7)
“제 생각에 아주 나약하고 심지어 허물이 가장 많은 영혼이 더 많은 희망을 가질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잊고 하느님의 품에 자신을 내던지고자 하는 영혼이 하는 이 행위는 자신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과 자기반성보다 훨씬 더 하느님께 영광과 기쁨을 드립니다.”(편지 249)
무엇이 내가 하느님의 자비를 완전히 믿는 것을 방해하는가?
3월 11일 토요일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내 현존 안에 걸으며 완전하게 되어라.’ 바로 이것이 천상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이 완전함에 도달하는 방법입니다.”(마지막 피정 23)
아버지, 제가 사랑의 힘을 믿을 수 있도록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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