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 성녀/성 프란치스코

제1생애(Vita Prima) 1부 (1-6장) 프란치스코가 회개하기 전에 해 온 세속생활 [첼라노의 프란치스코 전기]

Skyblue fiat 2016. 11. 23.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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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첼라노의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토마스 첼라노 저, 1986, 분도출판사)
제1생애(Vita Prima). 제2생애(Vita Secunda). 제3생애(Vita Tertia)

 

 

 

 

 

제 1 생 애

(VITA PRIMA)

 

 

 

머 리 말

 

주의 이름으로. 아멘.

복되신 프란치스코의 생애에 관한

머리말이 시작된다.

 

 

1. 지극히 복되신 우리 사부 프란치스코의 행적과 생활을 경건한 마음으로, 그리고 언제나 진실을 안내자와 봉사자로 삼아 순서 정연하게 기술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러나 프란치스코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것을 온전히 다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처지이므로, 비록 내가 말이 짧은 사람이긴 하지만, 위대하신 그레고리오 교황 성하의 분부를 받자와, 적어도 내가 성인의 입에서 들은 것이나 혹은 충실하고 믿을 만한 증인들에게서 들은 것들을 나의 최선을 다해서 정리하려 하였다. 그러나 바라는 바는 사물에 대해서 알쏭달쏭하게 말하는 것을 늘 피하셨고 또 미사여구(美辭麗句)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 없으셨던 분의 제자다운 제자가 되는 일이다!

 

2. 나는 복되신 프란치스코에 관해 수집할 수 있었던 것들을 3부(部)로 나누었고, 각 부(部)를 여러 장(章)으로 정돈함으로써, 이 일들이 일어났던 여러 경우의 순서가 뒤바뀌거나 그 일들의 사실성에 대해 의문이 야기될 여지를 없애도록 하였다. 제1부는 역사적 순서를 따랐으며, 주로 그분의 행적과 생활, 거룩한 품행 및 구원에 유익한 가르침에 할애하였다. 그리고 역시 제1부에는 그분이 아직 육신으로 계실 때, 우리 주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해 이룩하고자 하신 많은 기적들 가운데서 몇몇을 적어 넣었다.

제2부는 그분 생애의 마지막 2년 동안 복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일을 서술한다. 제3부는 지극히 영화로운 성인께서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굽어보시면서 이 지상에 행하신 기적들 가운데서 많은 것을 말하고 있지만, 생략한 것들이 더 많다. 또한 복되신 그레고리오 교황께서 거룩한 로마 교회의 모든 추기경들과 함께 그분을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하셨을 때, 그분에게 바친 진심 어린 공경과 영예와 찬사와 칭송도 기록하고 있다.

당신 성인들 안에서 언제나 영광과 사랑을 보여 주시는 전능하신 하느님께 감사할지어다.

 

머리말이 끝난다.

 

 

 

 

 

 

 

제 1 부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신께

찬미와 영광을. 아멘.

 

지극히 복되신 우리의 사부 프란치스코의

생애가 시작된다.

 

 

 

 

 

제 1 장

프란치스코가 회개하기 전에 해 온 세속생활

 

1. 스뽈레또 계곡 기슭에 위치한 아씨시 고을에는 일찍부터 세상의 허영심에 따라 오만 무례(傲慢無禮)하게 자란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부모의 천박한 생활과 행실을 오랫동안 모방하여 그의 허영심과 교만함은 한층 심했다.

이 매우 나쁜 습관은 이름만 그리스도인으로 간주되는 이들 가운데 어디에서나 자라고 있었으며, 이 사악한 가르침은 흡사 무슨 법이기라도 한 듯 너무도 확고히 뿌리를 내리고, 규제력을 갖게 되어 사람들은 자기 아이들을 요람에서부터 그야말로 멋대로 방종하게 교육하려고 했다. 겨우 태어나서 이제 막 말을 배우거나 더듬거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들은 못되고 끔찍한 일들을 손짓이나 말로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이유기(離乳期)가 되면 나쁜 욕망과 방종에 가득찬 일들을 말하고 행하게끔 강요당했다. 그들 또래의 나이면 의례 있는 두려움에 눌려 그들 중 아무도 정직하게 행동하려 들지 않았으니, 그렇게 하면 심한 훈육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어느 세속시인이 잘 말했다 : “우리는 우리 부모의 행실 가운데서 자라났기에, 어린 시절부터 온갖 나쁜 짓들을 찾게 된다.” 이 말은 옳다. 즉, 자녀들이란 나쁜 욕망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부모의 나쁜 욕망은 자녀들에게 더욱 해로운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나이가 조금만 더 들면, 이제는 자기 자신의 충동에 이끌려 못된 일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썩은 나무가 자라는 법이며, 일단 형편없이 타락한 것은 곧은 행실의 길로 인도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어떻겠는가? 그때에 가면 채우고 싶은 욕망을 족히 채울 수 있는 시기라, 그야말로 가지가지의 방탕에 빠져들어 온갖 시도 끝에 수치스런 일의 종이 되어 버린다. 일단 자의(自意)에 의한 굴종으로 죄의 노예가 되어 버리면, 자신들의 육신 모두를 악의 도구가 되도록 내맡겨 버리며, 생활에서나 행동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보여 주어야 할 것은 하나도 보여 주시 못하고, 다만 그리스도교라는 이름만으로 자신들을 보호한다. 이 가련한 사람들은 순결하면 할수록 보다 못나 보일까봐 자기들이 실제로 행한 것보다도 더 나쁜 짓을 행한 체하기도 했다.

 

2. 이러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성인으로 추앙하는 분께서(그분은 참으로 성인이시다) 어린 시절을 지내신 비참한 환경이었다. 그리고 거의 25세에 이를 무렵까지 자신의 시간을 비참하게 허송세월을 하고 있었다. 참으로 그는 허영에서 동시대인(同時代人)들을 앞질렀고 악을 조장하고 모방하는 자였으며, 바보 같은 짓이면 더욱 열을 올리는 형편이었다. 그는 모든 이의 감탄의 대상이었고, 허식과 농담과 이상야릇한 행동과 부질없는 한담(閑談)과 노래, 그리고 부드럽고 하늘거리는 옷차림 등에서 타(他)의 추종을 불허하고자 애썼다. 그러나 그는 매우 부유했지만 탐욕적이었다기보다는 탕아적이었으며, 돈의 축적자가 아니라 재산 낭비가였고, 조심스런 기업가라기보다는 믿음직스럽지 못한 청지기였다. 반면에 매우 인간적이었고, 매우 쉽게 대할 수 있었으며, 상냥했지만 불행히도 이 때문에 자기 자신을 바보가 되게 하는 경우조차도 있었다. 이런 성품 때문에 악을 지지하고 범죄를 조장하는 많은 자들이 그를 추종했다. 이렇게 하여 거만하고 도도한 많은 악의 무리들에 휩쓸려 바빌론의 거리를 싸다니니, 마침내 주님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당신 진노를 프란치스코에게 멀리 거두시며, 당신에의 찬미를 위하여 프란치스코가 완전히 멸하지 않도록 그에게 굴레를 씌우셨다. 이렇게 해서 주님의 손이 그에게 내리시어 지존하신 분의 오른손이 하나의 변화를 엮어 냈으니, 그를 통하여 죄인들에게 은총으로 회복되리라는 약속을 하사(下賜)하시기 위함이었고, 그가 하느님께 대한 모든 회개의 모범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제 2 장

하느님께서 육신의 병과 밤의 환시로

프란치스코의 마음에 닿으심

 

 

3. 이분이 아직도 제중에 있는 젊은이의 열정에 활활 불탔고, 철없는 나이가 젊은이의 욕구를 채우도록 무절제하게 충동했을 때, 그리고 자신을 어떻게 길들여야 할지 몰라서 해묵은 뱀의 독으로 자극되었을 때, 갑자기 하느님의 복수, 아니 차라리 하느님의 기름 불으심이 그에게 베풀어져, 정신적 고뇌와 육체적 고통이 그에게 닥쳐오게 하심으로써, 우선 그의 잘못된 감성들을 일깨워 주고자 하셨다. 예언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보라, 내가 그대의 길을 가시덩굴로 울타리를 치겠고, 벽을 세워 그것을 막아 버리겠노라.” 이렇게 하여 그는 책벌로써밖에는 고칠 수 없는 인간의 고집이 받아야 할 오랜 질병으로 인해 기진맥진하게 되어, 이제 마음속에서 과거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일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병이 다소 차도를 보이자, 지팡이의 부축을 받아 집안을 거닐었고, 이로 해서 건강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하루는 밖에 나가 주위의 풍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들판의 아름다움, 포도원의 쾌적함 그리고 그 밖의 보기에 좋은 것들도 그를 즐겁게 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갑작스런 자신의 변화에 그는 놀랐고, 이런 것들을 사랑하는 자들을 가장 어리석다고까지 여겼다.

 

4. 그러므로 그날부터 그는 자신을 하찮게 여기기 시작했고, 자신이 전에 동경하고 좋아했던 것들을 경멸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충분히 진심으로 그렇게 하지는 못했으니, 그는 아직 허영의 끈에서 풀려나지 못했으며, 비뚤어진 노예의 멍에를 목에서 떨어버리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습관 된 것에서 떠나기란 매우 힘겨운 일이며, 일단 마음속에 들어앉은 것들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는다. 마음은 비록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해도, 처음 것으로 쉽게 돌아가고 말며, 계속적인 반복에 의하여 악(惡)은 흔히 제2의 천성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아직도 하느님의 손을 벗어나 도망치려 했고, 잠시동안 아버지의 바로잡아 주심을 망각한 채 촉망되는 장래가 자신에게 던지는 미소 속에서 이 세상일에 대해 생각했으며, 하느님의 뜻을 무시한 채 세속의 영광과 멋진 성취를 아직도 헛되이 스스로에게 기대했다. 당당하게 군비를 갖추고 있던 아씨시의 어떤 귀족이 허영의 바람에 들떠 재산과 명성을 늘리기 위해 아뿔리아로 가겠노라고 다짐했다. 이 말을 들은 프란치스코는 마음이 들떠서 성급하고 대담하게 그와 함께 가기로 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지체에 있어서는 그 사람보다 떨어졌지만, 아량에 있어서는 그보다 나았고, 재산 문제에 대해서는 덜 영리했으나, 남에게 주는 데에 있어서는 한층 후했다.

 

5. 그래서 이 모든 일들을 성취하려는 생각에 완전히 몰두한 나머지 욕망에 불타 장도(壯途)에 오르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느 날 밤, 정의의 매로 그를 채찍질하셨던 분께서 은총의 감미로움 중에 환시로 그를 찾아 오셨다. 그분은 프란치스코가 영광을 바라는 마음이 열렬했기 때문에 영광의 정상을 보여줌으로써 그를 꾀어 신명을 북돋아 주셨다. 프란치스코가 보니 자기의 온 집안이 전투용 장비, 곧 말안장・방패・창 따위로 가득 차 있는 듯 하였다. 그는 기뻐 날뛰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심 궁금하게 여겼다. 그는 자기 집에서 그런 것들을 본 적이 없었으며, 다만 팔려고 내놓은 옷감더미만 눈에 익숙해져 있는 터였다. 그가 이 같은 사건이 갑작스레 생긴 데 대해서 적잖이 놀라고 있을 때, 이 모든 무기들이 자기와 자기의 부하들에게 딸린 것들이라는 응답이 왔다. 잠이 깨서 아침에 즐거운 마음으로 일어났고, 그 환시는 대단한 영화의 징조라고 생각해서 아뿔리아 여행은 미래의 자기 영화라 예감하였다. 그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를 몰랐으며 하늘로부터 자신이 받은 과업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환시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진실하지 못했었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환시는 전쟁에 관계되는 것들과 다소의 유사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그런 사물로 해서 여느 때처럼 기쁘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도를 완수하고 계획된 여행을 효과 있게 끝마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닥칠 어떤 역경에도 대처할 만한 노력을 각오해야만 했었다.

이렇게 시초부터 무기에 대해 언급이 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일이며, 제2의 다윗처럼 만군의 주(主)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원수들의 오랜 치욕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강력하게 무장하고 이제 싸움터에 나가려는 군인에게 무기를 내려 주셨다는 것은 아주 적절한 일이었다.

 

 

 

제 3 장

 

정신적으로 변했지만 육신적으로는 변하지 않은

프란치스코가 발견한 보화,

그리고 비유적으로 자신의 정배에 대해 말함

 

 

6. 육신의 변화가 아니라 마음의 변화를 일으킨 프란치스코는 아뿔리아로 가기를 마다하고 하느님의 뜻에 자신의 뚯을 굽히고자 애썼다. 따라서 잠시 세상사의 혼잡에서 물러나 자기 자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간직하고자 힘썼다. 그는 신중한 사업가처럼 미망(迷妄)에 빠진 자기의 눈에서 자기가 발견한 보화를 감추었고,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아무도 모르게 그것을 사고자 하였다.

자기와 동갑 나기였기 때문에 다른 누구보다도 더 사랑한 친구가 아씨시 읍에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친분이 매우 두터워 자신들의 비밀을 털어놓을 정도였다. 프란치스코는 의견을 나누기에 매우 적합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그를 자주 데리고 가서, 값지고 엄청난 보화 하나를 자기가 발견했다고 말하곤 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그 친구는 기뻐했으며, 자기가 들은 일에 대해서 대단히 마음을 조이며, 요청이 있을 때마다 어디건 기꺼이 그를 따라가곤 했다.

아씨시 읍 근교에 동굴이 있었는데, 그들은 자주 그곳에 가서 보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자신의 거룩한 결심으로 해서 이미 거룩해진 이 하느님의 사람은 동료를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동굴에 들어가곤 하였다. 그러고는 새롭고도 특별한 영(靈)에 충만되어 성부께 숨어서 기도하곤 했다. 누구도 자신이 동굴 안에서 한 일을 알게 되기를 원치 않았고

좋은 일이 있을 적마다 그것을 숨기는 것을 더 났게 여겼다. 그러고는 자신의 거룩한 뜻에 관해 하느님하고만 상의했다. 그는 영원하시고 참되신 하느님께서 자기의 갈 길을 가르쳐 주시고, 당신의 뜻을 실행하도록 가르쳐 주십사고 열심히 기도했다.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안고 있어, 자신이 마음속에 품은 바를 행동으로 끝낼 때까지 쉴 수가 없었다. 갖가지 잡념들이 꼬리를 물고 지나갔고, 그 끈덕진 괴롭힘이 그를 몹시도 혼란스럽게 했다. 그의 내부는 거룩한 불로 활활 타고 있었으며 그의 마음이 지닌 이 열심을 외적으로 숨길 수가 없었다. 그는 무거운 죄를 지어 엄위하신 분의 눈을 진노케 하였음을 뉘우쳤으며, 이제 과거의 악도 현재의 악도 그에게 아무런 기쁨을 주기 못했다. 그러면서도 미래의 악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충분한 확신을 여전히 얻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다시 나왔을 때 그는 기도에 애를 써 탈진한 나머지 들어간 사람과 나온 삶이 전혀 딴사람 같아 보였다.

 

7. 그러나 어느 날 그가 하느님의 자비를 애틋하게 청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가 해야 할 일을 보여 주셨다. 이에 그는 너무도 기뻐 즐거운 나머지 주체할 길이 없었고, 원하는 바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귓전에다 몇 마디를 중얼대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에 엄청난 사랑을 들이마셔 침묵하지 못하고 말해 버렸지만, 그래도 더욱 조심스럽게 또 알아듣지 못하게 말했다. 앞서 말한 대로, 자기의 각별한 친구에게는 감추어진 보화 애기를 했으나, 다른 이에게는 비유적으로 말하려 했다. 아뿔리아로 가지 않겠노라고, 그러나 고향에서 고귀하고도 위대한 일을 하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가 아내를 맞이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하여, “프란치스코야, 장가가고 싶으냐?”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답하였다 : “나는 여러분이 지금까지 보아온 정배보다 더 고결하고 아리따운 정배를 맞이하겠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움에서 다른 이를 능가하고 지혜에서도 모든 이를 뛰어넘을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티없는 정배는 바로 그가 받아들인 참된 신앙이었으며, 숨은 보화란 그가 그렇게도 애써 찾아낸 하늘 나라였다. 신앙과 진리 안에서 복음의 봉사자가 될 그에게 복음적인 모든 소명이 실현되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필연적인 일이었다.

 

 

제 4 장

모든 것을 팔고, 받은 돈을 경멸함

 

 

8. 지존하신 분의 복된 종이 이와 같이 성령에 의해 다듬어지고 튼튼하게 되어, 제때가 이르자 이제 자기 영혼의 복된 충동을 따랐으며, 이로 인해 천상사물에 다다르고 세속사물을 발로 짓밝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죽음의 병이 도처에 엄청나게 팽대했었고, 또 많은 이들의 육신을 휘어잡아 의사가 잠시라도 지체하면 생명을 앗아가고 생명을 주는 영(靈)을 차단해 버릴 기세였기 때문이다. 그는 일어나 십자성호로 스스로를 굳건하게 하고 말을 채비시켜 타고는, 좋은 옷감을 내다 팔려고 폴리뇨라고 하는 도시로 발길을 재촉했다. 그곳에서 그는 여느 때처럼 가지고 간 것들을 다 팔아버렸고, 능란한 장사꾼처럼 타고 갔던 말까지 내놓아서 그 돈을 받았다. 이제 짐을 다 떨러버리자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하며 신앙인의 자세로 이 궁리 저 궁리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그러자 얼마 안 가서 놀랍게도 하느님의 일에 마음을 온전히 기울이게 되어, 단 한 시간이라도 돈을 지니고 있는 것이 큰 부담이 됨을 깨닫고, 그 이익금을 마치 모래나 다름없이 여겨 서둘러 처리해 버리기로 했다. 이렇게 하여 아씨시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옛적에는 성 다미아노를 기념하여 세워졌지만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 금시라도 허물어져 버릴 것 같은 성당을 길 옆에서 발견하였다.

 

9. 그리스도의 새 군사가 성당에 올라가니, 너무도 초라한 성당의 모습에 딱한 생각이 들어, 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서 한 가난한 사제를 보자 큰 믿음으로 그의 성스러운 손에 입을 맞추고 가지고 있던 돈을 주며 자기가 하고 자 하는 일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 사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갑작스런 회개를 의아스럽게 여기며 들은 얘기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속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내놓은 돈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프란치스코가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친척과 친지들 가운데서 분방하게 지내면서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끈질기게 고집하여 자기가 말한 것에 대한 신뢰를 얻으려고, 주님을 위해 자기와 함께 머물 허락을 해 줄 것을 사제에게 간곡히 또 거의 빌다시피 청했다. 마침내 그 사제는 젊은 사람이 그곳에 머무는 것을 묵인했지만, 이 젊은이의 부모가 두려워 돈은 받지 않았다. 그러자 돈을 진실로 경멸하는 프란치스코는 그것을 창턱에다 집어 던졌다. 돈을 티끌만도 못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는 금보다 더 나은 지혜를 소유하고 싶어했고, 은보다 더 보배로운 분별력을 얻고 싶어했다.

 

 

제 5 장

아버지가 프란치스코를 핍박하고 묶어 감금시킴

 

 

10. 지존하신 하느님이 종이 앞서 말한 곳에서 머물고 있는 동안, 그의 아버지는 흡사 집요한 정탐꾼처럼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자기 아들한테 일어난 일을 수소문하였다. 그러고는 자기 아들이 그곳에서 그렇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뜻밖의 상황에 마음이 극도로 상하여 내심 분해하면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모으고는 하느님의 종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새 선수가 된 그는 자기를 쫓는 사람들의 협박소리가 들려, 그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분노를 피하고 싶어 바로 그러한 위기에 대비하여 준비해 둔 비밀토굴로 내려가 몸을 숨겼다. 토굴은 어느 집 안에 있었고 아마도 한 사람만이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안에서 한 달간 꼬박 숨어 있어야 했으므로, 꼭 필요한 일 때문이 아니면 감히 거기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음식이 들어오면 토굴 안에서 먹었으며, 모든 도움이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박해하고 있는 이들의 손아귀로부터 주님께서 자기를 건져 주시며, 당신의 인자한 사랑 안에서 자신의 경건한 소망을 채워 주십사고 언제나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다. 그리고 단식하고 눈물을 흘리며 구세주의 자비를 애절히 청했으며, 자신의 노력을 믿지 않고 모든 생각을 주님께 내맡겼다. 그리고 비록 토굴의 어둠 속에 있었지만 그때까지 한번도 체험하지 못한 어떤 신묘한 기쁨으로 충만 되었다. 드디어 그는 불붙은 채 토굴에서 나와 박해자들의 저주에다 자신을 활짝 드러냈다.

 

 

제 6 장

어머니가 그를 풀어 줌, 그리고 그가

주교 앞에서 옷을 벗음

 

 

13. 흔히 그러하였듯이 프란치스코의 아버지가 집안의 급한 일로 잠시 집을 비우게 되었고, 하느님의 사람이 창고에 그대로 묶여 있었을 때, 남편의 행동에 찬동하지 않았던 어머니는 자기 아들과 단 둘이 남게 되자 그에게 훈계하는 부드러운 말을 건네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버리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가슴이 메어지는 듯하여 사슬을 풀어 주어 가도록 허락하였다. 그러자 그는 전능하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전에 있었던 곳으로 급히 되돌아갔다. 이제는 유혹에 시험을 당한 후라서 보다 큰 자유를 누리고, 자기가 겪은 숱한 투쟁으로 해서 한층 더 쾌활한 모습이었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에서 더 확고한 정신을 얻을 수 있었고 더 많은 도량으로 자유롭게 어디나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러는 중에 아버지가 돌아왔는데, 프란치스코가 눈에 안 뜨이자 자기 아내에게 고함을 침으로써 죄에 죄를 쌓아올렸다. 자기 아들을 되돌아오게 할 수 없다면 최소한 그 지방에서 쫒아내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고 소리치기도 하며 아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믿음직한 의지가 된다는 진리가 있기에 이 은총의 자녀는 육신의 아버지가 자기에게 오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자신감을 가지고 기쁘게 그를 만나러 나갔고 자기는 감금과 매질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고 자유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더 나아가 자기는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악을 기꺼이 감수하겠노라고 말했다.

 

14.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프란치스코가 택한 길에서 그를 되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아들로부터 강제로 돈을 다 빼앗으려고 있는 힘을 다했다. 이 하느님의 사람은 본래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거나 그곳의 성당을 위해 쓰고자 했었다. 그러나 돈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는 돈이 지니는 어떤 좋은 점으로 해서라도 돈에 미혹될 수는 없었다. 돈에 대한 애착심에 사로잡히지 않았던 그는 돈을 잃는다 해서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승의 재물을 몹시도 경멸하고 천국의 재물을 그렇게도 탐냈던 그가 돈을 창틀 먼지 속에 던져 처박아두었고 그 돈을 찾아낸 아버지는 사나운 광기가 다소 식어 갔으며 탐욕의 갈증도 돈을 찾아낸 흥분에 어느 정도 풀어졌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기 아들을 아씨시 읍의 주교 앞에 끌어내어 아들의 모든 소유권을 자기 손아귀에 포기토록 하고 아들이 지닌 것은 무엇이건 돌려 받으려고 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이 일을 거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크게 기뻐하며 요구해 오는 일을 서둘러서 했다.

 

15. 프란치스코는 주교 앞에 끌려나오자 무엇이고 잠시도 지체하거나 주저하지 않았다. 참으로 그는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또 하지도 않고 즉시 자기 옷을 벗어들고 아버지에게 되돌려 주었다. 더욱이 자기 팬츠마저 그대로 두지 않고 모든 이 앞에서 완전히 벌거벗어 버렸다. 그러자 주교는 그의 의도를 감지하고 그의 정열과 확고함에 크게 감탄하면서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팔로 그를 끌어당겨 입고 있던 외투로 그를 덮어 주었다. 주교는 이 징표가 하느님에게서 온 것임을 명백히 깨달았고 자기가 현장에서 목격한 이 하느님의 사람이 취한 행동은 하나의 신비를 담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러므로 주교는 이어서 그의 협조자가 되어 그를 보살피고 격려하면서 자애심으로 그를 끌어안았다. 보라! 이제 그는 벌거벗은 채 벌거벗은 원수와 맞붙어 겨루며, 이승의 것을 모두 떨어버리고 오직 주님의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 그는 자기의 목숨을 가볍게 보고 그에 대한 온갖 근심걱정을 떨어버려 자신의 고달픈 길에서 가난한 몸으로 평화를 찾으려 하는데, 오직 육신의 벽만이 그 사이에서 하느님을 직접 바라보는 일에서 그를 떼어놓으려 하는 것이었다.

 

 

 

 

11. 그러므로 그는 능동적이고도 열렬하고 활기 있게 즉각 일어나, 주님을 위해 싸우고자 믿음의 방패를 두르고 신념의 무기로 무장한 채 아씨시 읍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거룩한 불이 붙어 지금까지의 자신의 게으름과 비겁함을 심히 질책하기 시작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 이것을 보자 과거의 그와 비교해서 사정없이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미쳐서 정신착란을 일으켰다고 외치면서 그에게 진흙을 던지거나 돌팔매질을 했다. 그가 이전의 생활습관으로부터 변화되어 있고 육신의 고행으로 인해 매우 쇠약해진 것을 보고, 그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쇠진함과 정신이상으로 돌려 버렸다.

그러나 인내로운 이는 오만한 자보다 낫기 때문에 하느님의 종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해 귀를 막아 버렸고, 이런 욕설 중 그 어느 것에 의해서도 마음이 부서지거나 동요하는 일없이 그 모든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나쁜 사람이 덕을 힘써 추구하는 사람을 박해해도 이는 무익한 일이다. 으르면 으를수록 그는 한층 더 힘차게 승리할 것이기에 말이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모욕은 고결한 정신을 굳건하게 만든다.

 

12. 이제 프란치스코에 관한 이런 종류의 소문과 웅성거리는 소리가 아씨시 읍의 거리와 골목 구석구석에 오랫동안 그치지를 않고 퍼져 사방에서 쑥덕대자 마침내 그의 아버지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프란치스코의 부친은 자기 아들의 이름을 듣고 또 시민들 사이에 일어난 소요가 자기 아들을 향한 것임을 알고, 그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파멸시키기 위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자제(自制) 따위는 아랑곳없이 양에게 달려드는 늑대처럼 달려가, 난폭하고 죽일 듯한 표정으로 아들을 노려보다가 창피막심한 꼴로 덥석 붙잡아 자기 집으로 질질 끌고 왔다. 그러고는 무자비하게 여러 날 동안 캄캄한 곳에다 감금하여 그의 마음을 꺾으려고 처음에는 말로, 다음에는 매질로 다스리다가 그 다음에는 쇠고랑을 채워 버렸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이것으로 해서 거룩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층 자극을 받게 되었고 한층 강해졌을 뿐, 말로 모욕을 당했다 해서 혹은 감금생활로 지쳐 버렸다 해서 인내를 포기할 턱이 없었다.

환난 가운데서 즐거워하라는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채찍과 감금에 의해서마저도 자기 정신의 올바른 지향과 위치에서 이탈할 수 없으며 혹은 그리스도의 양떼에서 떨어져 나갈 수도 없다. 또한 큰물이 닥칠지라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하느님의 아들이 피난처가 되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분은 우리의 고통이 거칠고 험난하다고 할까봐 당신이 겪으신 고통이 더 크다는 것을 늘 보여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