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라노의 프란치스코 전기 (4) 제1부 제7장~ 나환자들을 돌봄
강도들에게 잡혀 눈구덩이에 던져짐,
그리고 나환자들을 돌봄
16. 한때 좋은 옷을 입었던 그는 이제 허리만 매는 허수룩한 옷을 걸치고 돌아다녔다. 그가 불란서 말로 주님께 찬미의 노래를 부르면서 어떤 숲속을 지나갈 때였다. 느닷없이 강도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네 놈이 누구냐고 그들이 사납게 물었을 때, 하느님의 사람은 자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 “나는 위대하신 하느님의 사신(使臣)이오. 무슨 일입니까?” 그러자 그들은 그를 두들겨 패고는 눈이 쌓인 구덩이에다 집어던지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하느님의 이 촌스러운 사신아, 거기 누워 있거라!” 하나 그는 몸을 굴려 눈을 떨어 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지자 구덩이에서 껑충 뛰어나와서 기쁨에 겨워 큰 소리로 만물의 창조자에 대한 찬미가로 숲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윽고 어느 수도원에 당도하게 되어, 그곳에서 며칠간 부엌데기로 지냈는데 너덜너덜한 적삼을 걸치고 멀건 국물로 배를 채우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인정머리 없게도 낡은 옷가지 하나 얻을 수 없자 부득이 떠날 수밖에 없었다. 화가 나서 떠난 것은 아니었다. 그후 굽비오 읍으로 가 그곳에서 한때 친구지간이었던 사람으로부터 작은 고쟁이 하나를 얻어 입었다.
그후, 세월이 흘러 이 하느님의 사람에 대한 명성이 점점 올라가고, 그의 이름이 사람들간에 퍼지자 앞서 말한 수도원의 원장이 하느님의 사람에게 있었던 일을 회상해서 깨닫고는 그에게 찾아와 구세주께 대한 공경심으로 자신과 자신의 수하 수도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곡히 빌었다.
17. 그후 완전한 겸손을 사랑한 거룩한 그는 나환자들에게 가서 하느님을 위해 성의를 다하여 시중들면서 함께 살았다. 온갖 썩은 곳을 씻어 주며 상처와 고름도 깨끗이 닦아주었으니, 자신의 유언에서 말한 대로였다 : “내가 죄 중에 있었기에 나병환자들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가운데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자신이 허영에 차 있던 시절에는 나환자를 바라보는 것마저 지겨워 두 마일 가량이나 떨어져서 그들의 집을 쳐다보는 데도 손으로 코를 막아 버렸다고 늘 말해 주곤 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은총과 권능으로 거룩하고 유익한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아직도 그가 세속의 옷을 입고 있던 어느 날 나환자를 만나게 되자, 마음을 더욱 굳게 먹고 다가가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 때부터 그는 자기 자신을 더욱 더 천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구세주의 자비로 자기 자신에게 완전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세속에 머물러 아직도 세속을 따라갈 때에도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기는 했었고,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 자비의 손을 뻗쳤으며 고통받는 이들에게는 동정심이 솟았었다.
어느 날이었다. 그는 매우 예절바른 사람이었지만, 애긍을 청하는 가난한 사람을 자기의 습관과는 어긋나게 꾸짖어 돌려보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마음이 아파 즉시 용서를 청했다. 그렇게 위대하신 임금님의 이름으로 구걸하는 것을 물리친 것은 자신에게 큰 비난거리요, 수치라고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청을 받으면 가능한 한 하느님을 위해서 아무도 거절하지 않겠노라고 마음으로 다짐했다. 그는 이 일을 지극히 성실하게 행하고 완수하여 마침내 모든 면에서 송두리째 자기 자신을 내주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복음을 권고하는 교사가 되기 이전에 먼저 자신이 그 실천가가 되었다 : “당신에게 청하는 이에게 주고 빌리려고 하는 이를 거절하지 마시오.”
성 다미아노 성당을 수리함, 그리고
그곳에 거주한 자매들의 생활
18.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자기 육신의 아버지의 수중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은 후 최초로 시작한 일은 하느님께 집을 지어 드리는 일이었다. 그는 새 성당을 세우려 하지 않고 묵은 것을 손봐 옛 상태로 수선했다. 기초를 허물지 않고 그 위에다 지었다. 비록 그가 모르고 했겠지만 특권은 늘 그리스도께 유보(留保)했다. 아무도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으니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가 이미 놓여졌기 때문이다. 이미 말한 대로 옛날에 세워졌던 성 다미아노 성당이 있던 바로 그곳으로 되돌아왔을 때, 그는 지극히 복되신 분이 주시는 은총의 도움으로 짧은 기간에 열심히 수리했다.
이곳이 복되고 거룩한 곳이니, 이곳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이 회두한 지 6 년 후에 바로 복되신 그분에 의해서 거룩산 수도생활과 가난한 자매 및 거룩한 동정녀들의 탁월한 수도회가 비롯되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아씨시 읍 출신이고 전(全) 조직체의 가장 보배롭고도 가장 튼튼한 반석인 글라라가 그 토대가 되었다. 형제회가 시작된 후, 앞서 말한 글라라가 이 거룩한 이의 권고를 통해 하느님께 회두한 이래 그녀는 많은 이들에게 선익을 가져다주며 수많은 무리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그녀는 귀족가문 출신이었지만 은총으로 인해 가일층 고귀해졌다. 그녀는 육신으로 동정이었고 정신으로 지극히 정결했으며 나이는 어렸지만 영(靈)으로는 성숙해 있었고 목표에 항구했고 신적 사랑에 대한 욕망에서 열렬했다. 천부적으로 지혜를 지녔고 겸손에서 탁월했다. 이름은 영롱이었고 생활은 더욱 영롱했으며 품행은 더더욱 영롱하였다.
19. 그녀 위로 지극히 보배로운 진주들로 엮어진 한 고결한 단체가 솟아 나왔으니, 그들의 찬미는 인간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에게서 연유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좁은 상상력으로는 그들을 칭송할 그 무엇도 생각해 낼 수 없고 우리의 짧은 어휘로는 그것을 표현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그들 가운데에는 첫째로, 상호적이고 영속적인 애덕이 우거져 있었다. 그 애덕은 그들의 뜻을 하나로 묶어 40 명 혹은 50 명이 함께 살아도 어디서나 다양성 안에서 한마음 한뜻이 되게 했다.
둘째로, 각자 모두에게 겸손의 보석이 빛났다. 이 겸손은 하늘에서부터 오는 선물과 재물을 모아 잘 정리해서 보존하였다가 많은 덕을 이루게 했다.
셋째로, 동정과 정결의 백합은 감탄할 향기를 온 집안에 뿌려, 세상사를 생각에서 떨어버리게 하고, 오직 천상 것들만 명상하고 싶어지게 했다. 또 그들의 영원한 정배께 대한 사랑이 마음으로부터 일게 하여, 바로 이 거룩한 사랑의 완전성이 이전의 생활에서 그들이 지녔던 온갖 습관을 그들에게서 몰아냈다.
넷째로, 그들은 모두 지극히 높은 가난의 직함을 달고 다녀, 반드시 필요한 음식과 의복도 거의 혹은 결코 충족시키려 들지 않았다.
20. 다섯째로, 그들은 극기와 침묵의 특수한 은총을 얻음으로써 육(肉)의 동작에 제동을 걸고 혀를 억제하는 데에 조금도 고통을 받지 않았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말하는 습관이 되어 있지를 않아, 말을 꼭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도 거의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마땅한 말을 찾지 못했다.
여섯째로, 이 모든 것들과 함께 그들은 감탄할 정도로 인내의 덕이 꾸며져 있어, 어떤 환난과 역경과 어떤 고통의 상처도 그들의 생기를 꺾거나 변질시키지 못했다.
마지막 일곱째로, 관상의 극치에 오르니, 이는 그들에게 당연한 귀결이 되어 그 극치 안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혹은 피해야 할 모근 것을 배웠다. 그리고 행복하게도 그들은 하느님을 위해서 마음을 비우는 법을 알고 있어 밤이나 낮이나 그분께 대한 찬미와 기도에 끊임이 없었다.
영원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은총으로써 그처럼 거룩한 시작을 한층 더 거룩한 결말로 이끌어 주시기를! 이것으로 하느님께 바쳐진 동정녀들과 그리스도의 지극히 경건한 여종들에 대한 충분한 이야기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레고리오 성하께서 오스띠아의 주교로 봉직하실 때 본인이 받은 그녀들의 놀라운 생활과 영광스런 창립에 관한 부탁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어야 충분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것은 특별히 따로 취급되어야 하고 또 집필하는 데에는 여가를 필요로 한다.
수도복을 입고 뽀르찌웅꿀라의 성 마리아 성당을 수리함,
그리고 복음을 듣고 나서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형제들이 입을 수도복을 마련함
21.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은 이제 수도복의 형태를 갖춘 옷을 입고 앞서 말한 성당을 보수한 후, 아씨시 읍 가까이 있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 거기서 폐허가 되어 거의 무너질 듯한 성당을 다시 짓기 시작하였다. 완성시킬 때까지 자신의 훌륭한 목적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뽀르찌웅꿀라라 불리는 다른 곳으로 갔다. 거기에는 옛날에 세워졌으나 이제는 버려져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천주의 복되신 동정 모친의 성당이 있었다.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은 이렇게 폐허가 된 채로 서 있는 성당을 보자 그만 애석한 마음이 동(動)했다. 온갖 선(善)의 어머니이신 분께 대한 공경심으로 불탔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그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가 이 성당을 수리하기 시작한 때는 회두한 지 3년째 되는 해였다. 이때에 그는 허리에 끈을 두른 일종의 은수자의 옷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발에는 신발을 신고 있었다.
22. 그러나 어느 날 바로 그곳 성당에서 주님이 당신의 제자들을 복음 전파하도록 어떻게 파견하셨는지에 관한 복음이 봉독 되었을 때, 거기에서 일을 거들던 하느님의 거룩한 이는 복음말씀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였다. 미사가 끝나자 사제에게 가서 그 복음에 대한 설명을 겸손하게 청하였다.
사제가 모든 것을 순서대로 이야기하기를,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금도 은도 돈도 소유해서는 안 되고, 길을 떠날 때 식량자루도 돈지갑도 빵도 지팡이도 가져가서는 안 되며, 신발도 두 벌의 옷도 가져서는 안 된고, 하느님의 나라와 회개를 선포해야 한다고 하자, 이 말씀을 듣고 거룩한 프란치스코는 즉시 하느님의 영(靈) 안에서 기뻐 외쳤다 :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 온 정성을 기울여 하고 싶어하던 바다.” 그러더니 거룩한 사부님의 환희에 넘쳐 자신이 방금 들은 영혼에 유익한 말을 완수하기 위해 서둘러 댔다. 그리고 자기가 들은 바를 심혈을 기울여 이룩하는 데에 있어서 시간이 경과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그는 즉시 발에서 신발을 벗어버리고 손에서는 지팡이를 치워 버리며 한 벌의 옷에 만족하고 허리띠는 가느다란 새끼줄로 바꾸어 버렸다. 이제 십자가와 흡사하게 생긴 옷을 손수 마련하였으니, 그로써 악마의 모든 환영(幻影)을 물리치기 위함이었다. 그는 매우 거칠은 옷을 마련하여 그로써 육신을 모든 악과 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으려 했다. 매우 초라한 넝마옷을 마련한 것은 세상에서 아무도 그 옷을 탐내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그가 복음에서 듣게 되었던 다른 일들도 최대한의 열심과 존경으로 실행하려 애썼다. 그는 결코 복음을 듣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자신이 들은 바를 경탄할 만큼 잘 기억해 두었다가 그것을 문자 그대로 부지런히 이행하고자 신경을 집중하였다.
프란치스코의 복음에 관한 설교와 평화를 전함,
그리고 초기 여섯 형제의 회두
23. 이때부터 그는 모든 이에게 큰 열정과 기쁨으로 회개를 설교하기 시작하였으며 소박한 말과 위대한 말로 모든 이들을 교화시켰다. 그의 말은 흡사 심장 깊은 곳을 파고드는 타오르는 불과 같았으며, 듣는 모든 이의 마음을 감탄으로 채웠다. 그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된 듯하였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보았으며, 땅을 보는 것을 하찮게 여겼다. 그가 아직 어렸을 때에 글 읽는 것을 배운 곳에서 처음 설교를 시작했다는 것과 그곳에서 또한 존경 속에 잠시나마 묻혔다는 점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러므로 복된 시작은 보다 복된 완성으로 말미암아 훌륭해지는 것이다. 그는 배운 곳에서 또한 가르쳤고, 시작한 곳에서 더욱 복되게 마쳤다.
그는 설교할 때마다 하느님의 말씀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 전에 항상 먼저 평화를 기원하였다 : “주께서 여러분께 평화를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는 만나는 모든 남녀 행인들에게도 언제나 열심히 평화를 전하였다. 이러한 까닭으로 해서 평화를 싫어하고 또한 구원도 싫어했던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협력으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평화를 간직하게 되어 평화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구원을 갈구하는 이가 되었다.
24. 그들 중 경건하고 단순한 정신을 지닌 아씨시 출신의 어떤 사람이 최초로 하느님의 사람을 헌신적으로 따르게 되었다. 그 사람 다음에 베르나르도 형제가 평화의 사신(使臣)의 사명을 다할 것을 수락한 다음 하늘나라를 획득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을 열심히 쫓아갔다. 그는 복되신 사부님을 손님으로 자주 모셨으므로 사부님의 생활과 행동을 눈여겨보고 목격함으로써 사부님의 거룩함의 향기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어 경외심을 품게 되었고, 구원의 정신을 낳기에 이르렀다. 그는 프란치스코가 잠을 거의 자지 않고 밤새도록 기도하며 하느님과 복되신 동정 성모를 찬미하는 것을 목격하고 놀라서 말하였다 :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사람이구나!”이리하여 그는 가지고 있던 재산 모두를 서둘러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주었지만 부모에게는 주지 않았다. 이렇게 완덕의 길에 나아가는 자격을 얻어가며 그는 거룩한 복음의 권고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하고 나서 나를 따라오너라.” 그가 이렇게 하고 났을 때에 생활과 습성에서 성 프란치스코와 유대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형제들의 수가 증가한 후에 이 자상한 사부께 순명해서 딴 지역으로 파견될 때까지는 언제나 성 프란치스코와 함께 있었다. 그의 하느님께로의 회두는 소유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데에 있어서 회두하는 다른 형제들의 모범이 되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그렇게 장한 사람이 와서 회두한 것을 몹시 기뻐하였으니, 그는 필요한 동료와 충실한 친구를 보내 주심으로써 주께서 염려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25. 즉시 아씨시 출신의 또 한 사람이 그를 따랐다. 그의 행동은 마땅히 큰 칭송을 들을 만하였으니, 그는 성스럽게 시작하였고 머지않아 더욱 성스럽게 완성한 까닭이다. 얼마 안 있어 에지디오 형제가 그를 따랐다. 그는 단순하였고 곧은 사람이었으며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알았다. 그는 아주 오래 살았는데, 거룩하고 의롭고 경건한 생활을 하였으며, 우리에게 완전한 순명과 육신노동과 고적한 생활과 그리고 거룩한 관상의 모범을 남겨 놓았다. 그후 이들에게 한 사람이 더하여진 다음에 필립보 형제는 이들의 수가 일곱이 되게 하였다. 주께서 그의 입술에 정화하는 뜨거운 돌을 대심으로 해서 그는 하느님에 관한 감미롭고 진꿀과 같은 말씀을 입밖으로 분출할 수 있게 되었다. 공부한 바 없었지만 성경을 이해하고 풀이할 수 있었으므로 그는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이 무식하고 배운 바 없다고 여겼던 그분들의 모방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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