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권-53, 하느님 뜻이 땅에서도 다스리실 때
우리 주님께서 소유하실 세 나라는
지존하신 삼위일체의 상징으로서 서로의 반향, 서로의 반영이 되리라.
1927년 1월 28일
1 ‘지고하신 피앗’ 안에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모든 조물 안에서 활동하시는 이 피앗의 행위들을 따라다녔다.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어 이르셨다.
“딸아, 하늘의 질서를 보아라.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와 마찬가지로, 하느님 뜻의 나라가 땅에서 피조물 가운데에서 다스리게 될 때, 그때에는 땅에도 완전하고 아름다운 질서가 있을 것이다.
2 나는 그때 나라 셋을 가질 터인데, 하나는 천국에, 또 하나는 모든 조물 안에, 또 하나는 (이성 있는) 피조물 안에 있을 것이고, 각 나라가 서로의 반향, 서로의 반영이 될 것이다.
3 창조된 만물이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하리니, 모두가 질서정연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겠지만, 서로를 필요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각자에게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 주신 좋은 것들이 많이 있고, 단순히 많은 정도가 아니라 넘치도록 많이 있기 때문이다.
4 사실, 행복하고 무한히 부요하신 분에 의해 창조된 만물은- 게다가 그분의 재산은 아무리 나누어 주어도 줄어들지 않는 재산이다. - 그들 창조주의 행복과 부의 표를 지니고 있다. 그 모든 조물과 똑같이, ‘지고한 피앗의 나라’의 모든 자녀들도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하리니, 그것은 품위 있고 다스리는 자리이기도 할 것이다.
5 그들은 천체들 이상으로 하늘의 질서를 소유하며 서로 완전한 조화를 이루겠지만, 각자가 풍부한 재산을 소유할 것이기에 서로를 필요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가 자기 안에 자기 창조주의 재산과 그분의 영원한 행복의 원천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6 그러니 가난이니 불행이니 결핍이 재앙이니 하는 것은 내 뜻의 자녀들에게서 모조리 추방될 것이다. 무언가에 부족을 느끼는 자녀들이나 끊임없이 솟아나는 내 뜻의 모든 재산의 풍요를 누리지 못하는 자녀들을 가지는 것은, 그렇게도 무한히 부요하고 행복한 내 뜻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7 빛이 부족해서 땅에 약간의 희미한 빛만 겨우 보내는 태양이 보인다면, 너는 어떻게 말하겠느냐? 그리고 한 지점에서 별이 몇 개 박혀있는 하늘의 끝자락만 보이고 나머지는 창공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하늘이 보인다면?
8 너는 이렇게 말하지 않겠느냐? ‘태양의 창조주는 솟아나는 빛을 무한히 소유하시지는 않는다. 그러기에 약간의 희미한 빛만이 땅을 비추게 하신다. 그분은 또 도처에 하늘을 펼치실 능력이 없었다. 그러기에 우리 머리 위에 하늘 한 자락만 펼치셨다.’ 그리하여, 하느님은 빛이 부족하고, 그 창조적인 손의 작품들을 도처에 펼치실 능력이 없다는 생각이 너의 머리를 스칠 것이다.
9 하지만 네가 그 대신 태양에 빛이 풍부하고 하늘이 도처에 펼쳐져 있는 것을 보면, 하느님은 부요하시고 빛의 원천을 가지고 계시기에 태양에게 그처럼 많은 빛을 주셔도 그분의 빛은 조금도 잃지 않으신다는 것과 하늘을 도처에 펼치셔도 그분의 능력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할 것이다.
10 마찬가지로, 내 뜻의 자녀들에게 모든 것이 풍부하지 않으면, 내 뜻이 빈약해서 자기 나라의 자녀들을 행복하게 만들 능력이 없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11 왜냐하면 그 나라는 내 뜻이 만물 안에 가지고 있는 나라의 모습을 띨 것이니, 하늘이 곳곳마다 펼쳐지며 별들로 풍부하고, 태양에는 빛이 풍부하고, 공중에는 새가, 바다에는 고기가, 땅에는 초목과 꽃이 풍부한 것처럼 풍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지고한 피앗의 나라’는 모든 피조물을 반영하기에, 내 나라의 자녀들은 행복하고 모든 것이 풍부할 것이다.
12 따라서 각 사람은 하느님의 지고하신 뜻이 자리하게 하신 그 자리에서 풍부한 재산과 완전한 행복을 소유하리니, 그 신분이나 맡은 임무가 무엇이든 모두가 자기의 운명을 행운으로 여길 것이다.
그리고 지고한 피앗의 나라는 내 뜻이 모든 피조물 안에 소유하고 있는 나라의 완전한 반영이기에, 하나의 태양이 저 높은 데에서 보이고 또 하나의 태양이 이 아래에서, 이 나라를 소유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보일 것이다. 이 다복한 자녀들 안에 하늘의 반영도 보이리니, 그들이 그들의 행위라는 별들을 깃들이게 할 하늘이다.
13 더욱이,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늘이요, 별개의 태양일 것이다. 내 뜻이 있는 곳에는 하늘과 태양이 없을 수 없는 까닭이다. 오히려 내 뜻은 내 뜻의 자녀를 한 사람씩 소유할 때마다 내 뜻의 하늘과 태양을 만든다. 또한 내 뜻 자신의 흔들림 없는 소유와 거룩함과 끝없는 빛을 가지게 되는 곳에서는 하늘과 태양을 만들고 불어나게 하여 곳곳으로 퍼뜨린다.
14 하지만 이는 아직 전부가 아니다. 하늘나라의 반영인 모든 피조물은 음악, 유쾌한 행진곡, 천체, 하늘, 태양, 바다를 그들 안에 지니고 있고, 모두가 서로 사이에 걸쳐 질서와 조화를 가지고 있으며, 끊임없이 주변을 빙빙 돌고 있다.
15 이 질서, 이 조화, 결코 멈추지 않는 이 회전 운동은 장엄한 협화음과 악곡을 이루기에, 마치 ‘지고한 피앗’이 여러 악기를 연주하듯 이 모든 피조물 안에 숨을 불어넣는 것 같다고 할 수 있고, 따라서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멜로디를 이룬다. 피조물이 이를 들을 수 있다면 황홀경에 빠질 것이다.
16 그런데 ‘지고한 피앗의 나라’에는 하늘나라 음악의 반향과 모든 피조물의 음악의 반향이 있을 것이다.
질서와 조화, 끊임없이 그들 창조주의 주변을 빙빙 도는 모습이 너무나 장엄하고 아름다워서, 모든 피조물의 행위와 말과 발걸음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거룩한 의지의 숨을 받는 다양한 악기들처럼 독특한 멜로디가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이 같은 수의 각기 다른 음악회들이 되어, ‘거룩한 피앗의 나라’의 기쁨과 계속적인 축제를 이룰 것이다.
17 그러면 너의 예수에게는 하늘나라에 머무르는 것이나 땅에 있는 피조물 가운데에 내려와 ‘지고한 피앗의 나라’에 머무르는 것이나 더 이상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 (성삼위)의 창조사업이 승리와 완전한 개선을 구가할 것이고, 우리는 한 나라 안에 세 나라를 가질 것이다. 이는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상징인즉, 우리의 모든 사업들은 그들을 만들어 낸 분의 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18 그 후 나는 혼자 속으로, ‘지고한 피앗의 나라의 참된 자녀들은 행복하고 모든 것이 풍부할 것이다. 하지만 내 여왕이신 엄마와 바로 거룩한 뜻이신 예수님 자신은 이 아래 세상에서 가난하게 지내셨다. 그분들은 가난의 고통과 고충을 겪으셨다.’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덧붙여 말씀하셨다.
19 “딸아, (없는 것에 대한) 필요를 절감할 때 참된 가난이라고 할 수 있다. 뭔가를 먹기를 원하건만 아무것도 없다면, 겨우 연명하기 위해서라도 남들에게 (먹을거리를) 청하지 않을 수 없어지는데, 이런 가난은 사람이 필요를 절실히 느끼는 거의 강제적인 가난이다.
20 그 대신, 나와 내 천상 엄마의 가난은 그처럼 필요를 절감하는 가난이 아니었고 강제적인 가난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우리 안에는 ‘영원한 피앗’의 온갖 충만함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그러므로 자원한 가난, 자발적인 가난, ‘거룩한 사랑’의 압착기에서 짜여 나온 (과즙과도 같은) 가난이었다.
21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었으니,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화려한 궁전이 세워졌을 것이고, 일찍이 본 적도 맛본 적도 없는 음식들과 함께 잔치들이 베풀어졌을 것이다. 사실, 필요하다면 새들마저 우리의 작은 바람까지 이루어지게 했으리니, 새들이 저네들의 창조주와 여왕에게 봉사하는 일로 기뻐하면서, 과일이며 물고기며 또 다른 것들을 부리로 물고 왔을 것이고, 트릴(顫音)로 노래하듯 지저귀며 우리를 위해 더없이 감미로운 가락을 내었을 것이다.
22 우리는 그래서 우리의 그 유일무이한 특성으로 피조물의 주의를 끌지 않으려고 새들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가서 하늘 궁창 아래로 계속 날아다니라고, 거기에서 우리의 뜻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자 새들은 그 명령에 순종하며 물러갔다.
23 그런고로 우리의 가난은 사랑의 성격을 띠고 있었고, 세상의 천박한 것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도록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모범을 보인 가난이기도 하였다. 그것은 필요를 절감하는 그런 가난이 아니었고, 결코 그럴 수도 없는 것이었다. 내 뜻의 충만함과 생명이 군림해 있는 곳에는, 온갖 불행이 단숨에 끝장나듯 생명을 잃기 때문이다.”
24 그 무렵 존경하는 디 프란치아 신부님이 내가 신열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앞으로 출판할 한 작품과 나를 위해 남겨 놓은 돈이 있으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 돈으로 구하면 된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웃음기가 어린 듯한 표정으로 오시어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25 “그 사제에게 내 이름으로 알려라. 내가 고마워하고 있다고, 너에게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주려고 하는 그의 착한 마음에 상을 주겠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내 뜻의 딸은, 내 뜻이 모든 것으로 풍부하게 해 주기 때문에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도 그에게 알려야 한다. 더구나 내 뜻은 이 딸에게 다른 사람이 뭔가를 주는 것을 보면 질투를 느낀다. 홀로 내 뜻만이 자신의 딸에게 모든 것을 주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26 사실, 내 거룩한 뜻이 다스리는 곳에는 자연적인 수단과 재산의 풍부함이 해를 끼칠 우려가 없다.
내 뜻의 딸은 더 많은 수단을 가지며 더 큰 풍요를 누릴수록 그들 안에서 ‘지고한 피앗’의 권능과 선성과 풍요를 더 많이 보고, 모든 것을 거룩한 뜻의 순금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뜻은 많이 줄수록 더욱 큰 영광을 느끼며 이 피조물 안에 자신의 생명을 실현한다. 또 내 뜻으로 하여금 지배하며 다스리게 하는 그에게 내 뜻 자신의 것들을 주면서 더 큰 영광을 느낀다.
27 매우 부유한 아버지의 자녀들이 가난하다면 어불성설일 것이고, 그런 아버지는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 자신의 몸에서 나온 자녀들이 고난과 곤궁의 삶을 영위한다면, 그 재산의 목적이 무엇이겠느냐? 아버지는 대단한 부자인데 그 자녀들은 가진 것이 없을뿐더러 주린 배를 채울 수도 없을 지경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아버지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요, 자녀들에게는 참기 힘든 괴로움이 아니겠느냐?
28 그것이 자연적인 세계 속에서도 어불성설이고 아버지의 수치가 되는 일이라면, ‘지고한 피앗’의 초자연적 세계 속에서는 한층 더 그러할 것이다. 지고한 피앗은 여느 아버지를 초월하는 부성을 지닌다. 그 자신 안에 모든 선의 원천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피앗이 현존하는 곳에는 행복이 깃든다. 이 피앗은 또한 사람을 모든 것으로 풍요하게 한다.
29 더군다나 그것은 거룩한 뜻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영육에 사물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시력을 주어, 거룩한 뜻을 막처럼 가리고 있는 자연적인 것들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그러면 그녀는 그 막을 찢으면서 자기 안에서 지배하며 다스리는 숭고한 여왕인 거룩한 뜻을 그 자연적인 것들 안에서 찾아낸다.
30 그리하여 그 영혼에게는 자연적인 것들이 사라진다. 만물 안에서 자기가 소유한 흠숭하올 뜻을 찾아내어 입 맞추며 경배하고, 그러면 일체 만물이 그녀에게 거룩한 뜻이 된다. 그러니 자연적인 것이 하나 더해지면, 그것이 그 영혼에게는 자기가 소유한 거룩한 뜻의 한 새로운 행위가 되는 것이다.
31 따라서 내 뜻의 자녀인 사람에게 자연적인 것들은, 내 뜻이 행하는 것과 행할 수 있는 것과 소유하고 있는 것 및 내 뜻이 그 피조물을 얼마나 넘치도록 사랑하는가를 더 많이 알리는 수단들이다.
32 그런데 너는, 어째서 사람들에게 자연적인 수단들이 부족한지, 어째서 이 수단들이 강탈되는 일이 흔하며 그들은 결국 더없이 비참한 빈자의 신세가 되고 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으냐?
33 그것은 첫째, 그들이 ‘지고한 피앗’의 충만함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 그들이 자연적인 것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하느님 자리에 자연을 두고, 자연적인 것들 안에서 하느님의 지고한 뜻을 보는 대신, 탐욕스럽게 그것들에 집착하면서 헛된 영광과 그들을 눈멀게 하는 존경과 마음의 우상을 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영혼을 안전한 상태로 있게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자연적인 수단들이 부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34 그러나 내 뜻의 자녀인 사람에게는 그 모든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 그들을 모든 것으로 풍부하게 하여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게 해 주고자 한다.”
20권-54, 예수님께서 글을 쓰지 않으신 까닭.
이 글에는 하늘나라의 반영이 있다.
하느님 뜻의 나라가 도래할 시기.
자원해서 겪는 고통의 위력.
1927년 1월 30일
1 ‘다정하신 예수님께서는 여러 번 나에게 매사에 당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분은 글을 쓰신 적이 없었다. 복음서에 딱 한 번 그분께서 (땅에) 무언가를 쓰셨다는 대목이 나오지만, 그때에도 그분은 펜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쓰셨다고 되어 있다. (요한 8,6 참조 - 역주) 그런데 나에게는 글을 쓰기를 원하시니, 내가 그분을 본받는 길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시는 셈이 아닌가? 그분은 조금도 쓰지 않으셨는데, 나는 이토록 많이 써야 하니 말이다?’
2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그분께서 귀여운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오셨다. 내 팔에 안겨 얼굴을 내 얼굴에 갖다 대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내 딸아, 입맞춤을 내게 주면 내 입맞춤을 너에게 주겠다.”
3 그렇게 여러 차례 입맞춤을 드리고 나자 그분은 한 번 더 그렇게 하라고 하신 다음,
“딸아, 내가 왜 글을 쓰지 않았는지 알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것은 너를 통해 글을 쓸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4 실상 너의 지성에 활기를 불어넣고, 너에게 낱말들을 공급하고 내 손으로 너의 손을 움직이고, 너로 하여금 펜을 잡고 종이 위에 낱말들을 쓰게 하는 것은 나다. 그러니 글을 쓰는 것은 나지 네가 아니다. 너는 다만 내가 쓰기를 원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뿐이다.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이 너의 일이고, 나머지 일은 내가 혼자 다 하는 것이다.
5 네가 느껴 알다시피, 너는 여러 번 쓸 힘이 없어서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나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나라는 것을 네 손으로 직접 감지하게 하려고 나 자신의 생명으로 너를 감싸 활기 있게 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몸소 쓰곤 하였다. 너는 여러 차례 이를 체험하지 않았느냐?
6 그런데, 한 시대가 지난 뒤에야 ‘지고한 피앗의 나라’를 알릴 터인즉, 나는 ‘구원의 나라’를 먼저 알릴 시간을 주고 그다음에 ‘거룩한 피앗의 나라’를 알리기 위하여, 그 당시에는 글을 쓰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피앗의 나라가 더 가까이 왔을 때에 너와 함께, 너를 통해 쓰기 위해서였고, 또한 피조물에게 나의 이 뜻의 극단적인 사랑을, 곧 그들에 대한 사랑으로 내 뜻이 행했고 겪었고 행하고자 하는 것을 새로운 선물로 주기 위해서였다.
7 딸아, 새로운 것은 흔히 새로운 생명, 새로운 재산을 가져온다. 사람들은 그래서 새로운 것에 주의를 쏟으며 마치 그것에 실려 가듯 몸을 맡긴다. 게다가 내 거룩한 뜻에 대하여 새로이 나타내 보이는 이 새로운 것은 신적인 힘과 감미로운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8 그것은 인간적인 뜻의 (연기에) 그을린 영혼 위에 천상 이슬처럼 쏟아져 내리면서 행복과 빛과 무한한 재산을 날라다 주는 일꾼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 새로이 드러내 보이는 것들 속에는 또한 아무런 위협도 대경실색할 것도 없다. 그런 어떤 것이 있다면 인간적인 뜻의 미궁 속에 남아 있기를 원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머지 모든 것 속에서 사람은 단지 천국의 메아리와 언어 및 저 높은 곳에서 오는 향유를 볼 수 있고- 이 향유는 사람을 거룩하게 하고 신화(神化)한다. - 지복의 나라에만 가득한 행복에 대하여 계약금을 치르는 셈이 된다.
9 나는 그래서 ‘거룩한 피앗’에 관한 글을 쓰는 것에 큰 즐거움을 느낀다. 내 아버지의 나라에 속한 것들에 대해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의 이 표현들 속에서, 천국의 메아리, 지고한 뜻의 기나긴 사랑의 연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피조물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재산의 공유를 알아보지 못하는 자들은 너무나 신의가 없고 배은망덕한 자들일 것이다.
10 그럼에도 그분께서는 세계 역사를 통해 지나간 모든 것은 제쳐두려고 하시는 것 같다.
마치 창조된 만물의 새 역사가 이제 막 시작되려는 것처럼, 새 시대, 새 창조를 시작하시기를 원하시니 말이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하는 대로 맡기고 있어라.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이나 더없이 중요한 일이다.”
11 그 말씀을 듣고 나는, “저의 사랑이시여, 당신께서는 이 ‘영원한 피앗의 나라’를 다른 무엇보다 더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모든 사랑과 업적들이 거기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것들이 이 나라에 도움이 되는 것을 자랑으로 삼기까지 하십니다. 그토록 끔찍이 사랑하시는 나라 - 그 나라는 언제 오겠습니까? 당신께서는 어찌하여 그 나라의 도래를 서두르지 않으십니까?” 하고 그분께 물었다.
12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딸아, 내 거룩한 뜻에 대한 지식들이 달릴 길을 달리고 있으면, 사람들은 그 지식들 안에 있는 위대한 선을 보고 만장일치로 내 나라가 속히 오기를 열망하며 간청할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어떤 사람도 생각한 적 없는 선으로서, 내 뜻의 나라는 하늘나라의 유출, 천상 행복의 메아리, 지상 선들의 충만이 될것이기 때문이다.
13 그리고 창조된 만물도 그들의 소리 없는 언어로, 아니 외관상으로만 소리 없는 언어로 그렇게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 안에 내 뜻이 있고, 이 뜻이 크고 우렁찬 소리로 모든 사람에게 알려질 권리, 그 모두 위에 군림하여 다스릴 권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14 그러므로 땅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그 메아리와 그 탄식이 하나일 것이고, 모든 존재에게서 나오는 이 기도, 곧 ‘지고한 피앗의 나라가 오소서.’가 또한 하나일 것이다. 그러면 그 나라가 승리를 구가하며 피조물 가운데로 올 것이다.
15 여기에 지식의 필요성이 있다. 지식이 자극제가 되어 사람들의 식욕을 돋울 것이기에 그토록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할 것이고, 그리하여 모두가 그토록 행복한 나라에서 살고 싶은 원의와 열망을 느낄 것이다. 그들 자신의 뜻으로 인해 처하게 된 폭정과 종살이에서 해방되기 위함이다.
16 그들은 내가 드러내 보인 모든 것과 ‘지고한 피앗’이 내포한 좋은 것들에 대한 지식에 진보함에 따라 너의 모범을 찾아낼 것이다. 즉, 네가 어떻게 하늘과 땅을 휘저으며 곳곳으로 돌아다니고 이 나라가 속히 알려지게 되기를 청하는지를 볼 것이다. 그들은 또 네가 그들에게 그토록 위대한 선을 얻어 주려고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를 알게 될 것이고, 그 나라 안에서 살기 위해 자진해서 다가가려면 어떻게 처신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17 따라서 모든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 내 나라가 모든 것을 완전히 갖추어, 더없이 큰 것이든 가장 작은 것이든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네 눈에 작아 보이는 것이 내 지고한 뜻의 나라의 기초를 이룰, 순금으로 바뀐 거룩한 돌일 수도 있는 것이다.”
18 나중에 나는 혼자 생각에 잠겼다. ‘다정하신 예수님께서는 ‘지고한 피앗의 나라’를 크게 기리며 찬미하신다. 하지만 바로 거룩한 뜻이신 그분 자신이나 이를 전체로 소유하셨던 내 천상 엄마나 이 세상에서는 행복하지 않으셨다. 그분들은 오히려 세상에서 고통을 가장 많이 받으신 분들이다.
19 그리고 나 자신도 그렇다. 그분께서는 나를 그분 뜻의 맏딸이라고 하시지만, 사십삼 년이나 침상에만 붙박여 지내게 하셨으니, 그 동안 내가 무엇을 겪었는지는 예수님만이 아신다. 그럼에도 나는 실상 행복한 수인(囚人)이기도 하므로, 설령 누가 내게 제왕의 홀(笏)과 면류관을 준다고 하더라도 나의 이 행복한 운명과 바꾸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은 나를 넘치도록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20 그러나 이 행복이 인간의 눈앞에서는 사라진다. 외관상으로는 (행복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님의 고통과 여왕이신 분의 고통 및 예수님의 피조물 중에서 가장 작은 나 자신의 처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행복과 그 고통은 아무래도 모순으로 보이는 것이다.’
21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불현듯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하나의 선, 하나의 나라를 이룩해야 하는 사람과 그것을 누리기 위하여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나는 속죄를 통하여 인간을 속량하며 구원하려고 이 세상에 왔다. 이 일을 하기 위하여 그들의 고통을 받아들여야했고, 그것을 나 자신의 것인 양 짊어져야 했다.
22 공동 구속자가 되어야 했던 내 거룩하신 엄마도 나와 다를 수 없었다. 그분께서 나의 작은 인성을 빚기 위하여 그 지극히 깨끗한 가슴에서 나에게 주신 다섯 방울의 피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분의 심장에서 나온 것이었다. 우리에게 있어서 고통은 임무였고 이 임무를 완수하려고 우리가 세상에 왔으니 만치, 그것은 연약한 본성에 강요된 고통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원해서 겪은 고통이었다.
23 그러나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우리가 겪었던 그 수많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숭고한 행복과 언제나 새롭고 끝없는 기쁨들과 지속적인 낙원을 나와 여왕이신 내 어머니에게서 떼어 놓을 수 없었다.
24 고통에서 우리를 떼어놓은 것이 - 왜냐하면 고통은 우리에게 본질적이거나 본성적인 것이 아니라 수행해야 할 임무였기 때문이다. - 우리 거룩한 뜻의 본성인 무한한 행복과 기쁨의 바다에서 우리를 떼어 놓는 것보다 더 쉬웠을 것이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었고 또 우리 안에 생겨나게 했던 이 바다는 바로 우리 자신이요, 우리의 본질이었으니 말이다.
25 태양의 본성은 빛을 주는 것이고, 물의 본성은 갈증을 해소해 주는 것이며, 불의 본성은 온도를 높이고 모든 것을 불로 만드는 것과 같이 -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스스로의 본성을 잃을 것이다. - 내 뜻의 본성은 내 뜻이 다스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행복과 기쁨과 낙원이 솟아나게 한다. 하느님 뜻의 불행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그렇지 않다면 하느님 뜻의 완전한 충만도 없다.
26 인간적인 뜻의 개울은 바로 그 인간에게 쓰라린 슬픔을 만들어주는데, 그런 인간적인 뜻이 우리 안으로는 들어온 적이 없었으므로 우리에게는 언제나 행복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고, 기쁨의 바다들도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27 심지어 내가 십자가 위에 달려 있었을 때에도, 또 내 어머니가 내 거룩한 발밑에서 (영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도, 완전한 행복은 결코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만일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면, 나는 나 자신을 신성에서 떼어 내어 거룩한 뜻 바깥으로 나가서 오직 인간적인 본성만으로 행동했을 것이다.
28 그러므로 우리의 고통은 우리가 와서 완수할 임무로서 우리 자신이 택한, 완전히 자발적인 고통이었다. 인간 본성이나 허약의 결실, 또는 타락한 본성에 대한 강요의 결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너는 너의 고통 역시 맡은 바 임무로서 치르는 고통, 곧 자원한 고통이라는 것이 기억나지 않느냐?
29 실제로, 나는 산 제물의 신분에로 너를 부르면서 이를 자발적으로 수락하는지 물었었다. 그러자 너는 완전한 자유의사로 받아들이면서 ‘피앗’을 발하였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 나는 다시 후렴을 읊듯 너에게, 내 거룩한 뜻 안에서 또 이 뜻과 함께 사는 것을 수락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너는 다시 ‘피앗’을 발하였다. 이 피앗이 너를 새 생명에로 다시 태어나게 하여 그 자신의 딸로 삼았으니, 이는 ‘지고한 피앗의 나라’를 이룩하기 위하여 그것에 합당한 임무인 고통을 너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30 내 딸아, 자원해서 받는 고통은 세력과 제국을 가질 만큼 강한 능력이, 하느님마저 지배할 능력이 있다. 천상 아버지의 배를 찢고, 하느님 안에서 행한 그 찢음을 통하여 은총의 바다들이 넘쳐흐르게 하면서, 지고하신 임금님의 승리와 이 자원한 고통의 제국을 가진 사람의 승리를 이룰 능력이 있는 것이다.
31 그러므로 크고도 놀라운 일인 구원사업에 자발적인 고통이 필요하였다. 위대한 기적인 내 ‘피앗의 나라’에도 그러한 고통이 필요하고, 그것은 임무로서의 고통, 거룩한 뜻에서 활기를 얻는 고통이다. 이들은 하느님과 피조물을 지배하는 제국을 소유하고 있어서 그 임무에 내포된 크나큰 선을 줄 수 있는 것이다.
32 따라서, 바로 거룩한 뜻인 내가 고통을 받았다고 해서, 또 내가 너를 이리도 오랫동안 침상에만 붙박여 지내게 했다고 해서, 그것이 너의 말처럼 ‘거룩한 피앗의 나라’의 행복에 대한 나의 찬미와 모순이 되는 것은 아니다.
33 하나의 선, 하나의 나라를 이룩해야 하는 사람은 이 한 가지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은 고통을 받으며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하느님을 이겨 선을 얻어 내는 일이다.
그 선을 받을 사람은 다른 어떤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을 받아들이며 그 진가를 인정하고, 투쟁과 고통을 치르며 마침내 승리를 얻어 그 전리품을 그들에게 주며 기뻐하게 한 사람에게 감사하는 일이다.
34 그런즉 피조물 가운데에 있는 내 뜻의 나라는 천상 행복의 반영을 가져올 것이다. 피조물 가운데서나 천국에서나, 지배하며 다스리는 뜻은 하나의 같은 뜻일 것이기 때문이다.
35 나의 인성이 존귀하신 여왕의 십자가에 못 박힌 심장의 지극히 순수한 피로 빚어진 것과 같이, 구원사업은 나의 지속적인 못 박힘으로 이루어졌으니, 해골산에서 나는 구원된 사람들의 나라 위에 십자가 인장을 찍었다. 이와 같이 ‘지고한 피앗의 나라’는 십자가에 못 박힌 한 사람의 심장에서 나올 것이다. 내 뜻이 너의 뜻을 십자가에 못 박아 내 뜻의 나라를 내놓을 것이고, 이 나라의 자녀들을 위한 행복을 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36 이 때문에 나는 산 제물의 신분에로 너를 불렀을 때부터 줄곧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에 대하여 네게 말했었다. 너는 그것을 손발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으로 생각했고, 나는 너를 그 못 박힘 안에서 지내게 하였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내 나라가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그 못 박힘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너의 온 존재 안에서 내 뜻이 완전히, 지속적으로 못 박힐 필요가 있었고, 이것이 바로 내가 너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이니, ‘지고한 피앗의 나라’를 내놓으려면 너의 뜻이 내 뜻의 계속적인 못 박힘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