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성체의 사랑 (나를 닮은 너에게)

Skyblue fiat 2015. 11. 5. 16:52

 

성체의 사랑

“나 여기 있다”고 말한 이가 바로 나임을 알게 되리라.

이사 52,6

 

 

 

작고 무력한 아기를 보아라. 나는 한때 그런 아기였다. 그러나 성체 안에서 나는 더욱 무력하다.

 

나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하늘에서 마리아의 태중으로, 태중에서 구유로, 구유에서 십자가로, 십자가에서 작은 빵과 한 잔의 포도주로 내려왔다. 그것은 내가 너의 음식이 됨으로써 너를 나로 변화시켜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 이기심에서 벗어난 구유를 통해, 그리고 마리아의 모성애를 통해, 섬삼위가 계신 천국으로 올라가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9개월 동안 피조물인 인간의 몸 안에 있었지만, 네가 태아였을 때 네 어머니 안에 있던 것과는 달랐다. 너는 제약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마리아 안에 있던 신인神人은 그녀의 태중에서 그 어떤 인간보다 훨씬 더 지력이 높았다. 인간적으로 그 안에서 나는 너처럼 자유를 갈망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성체 안에서, 마리아의 태중에서보다 훨씬 더 의존적이고, 훨씬 더 비좁게 자리하고 있다.

 

마리아가 나를 품고 있었듯이 너도 나를 품고 있다. 마리아가 나를 들어 올려 품에 안았듯이 너도 나를 너의 혀 위에 들어 올린다. 마리아가 경건했듯이 너도 경건하냐? 마리아가 그랬듯이 너도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느냐? 마리아가 그랬듯이 너도 나와 이야기하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영적으로 내 발 앞에 엎드리고, 네가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느냐?

 

너는 나를 자주 영할 수도 있고, 전혀 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가치 있게 여기며 존경심을 가지고 영할 수도 있고, 하찮게 여기며 무관심하게 영할 수도 있다. 나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너를 기다리고 있다. 네가 나를 육적으로 영할  수 없을 때에도 네가 나를 원한다면 영적으로 너에게 올 것이다. 나는 최대한 가깝게 너와 결합되기를 갈망한다. 나는 사람으로서 너에게 오고, 또한 신으로서 너에게 온다. 그 모두가 사랑 때문이다.

 

내가 빵을 들고 전능하신 아버지를 우러러 볼 때 나는 이 모든 것을 생각했고, 감사를 드린 다음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루카 22,19)하고 말했다.

 

나의 아버지를 우러러보는 이 행위는 단순한 동작이 아니었다. 나는 사랑을 위해 성체성사를 세웠다. 그것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나의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그분의 뜻이었다. 십자가 위에서 죽는 것보다 인간의 음식이 되는 이러한 방식으로 나를 내어주는 것이 어떤 면에서 더 큰 희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  사실 그것은 둘 다 희생이란 점에서 같았다. 그러나 생각해 보아라. 영원히 사람들의 손안에 자신의 몸과 영혼을 내어주어 그들의 음식이 되고 일부 사람들의 모욕을 받고 대부분의 사람들에 의해 무시당하는 것보다 한 번 죽는 것이 더 쉽지 않겠느냐?

 

너는 너의 살아있는 몸과 영혼은 물론이고 네 사진조차도 사람들에게, 그것도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서 시간을 두고 그들이 제멋대로 사용하게 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에게 말한다. 나는 십자가 위에서보다 성체성사에서 더욱 완전하게 나를 내어준다.

거룩한 성체성사에서 나와 나의 또 다른 자아인 너는 무척이나 친밀한 합일을 이룬다.

 

좋은 결혼에서 남편과 아내의 결합은 두 사람의 몸과 영혼과 생명의 결합이다.

룩한 성체성사에서 우리의 결합은 그보다 더 친밀하다.

 

어머니의 태중에서 어머니와 아기의 몸은 하나로 결합된다. 그 아기는 어머니의 살 중의 살이고 뼈 중의 뼈다. 네가 영성체를 할 때 나는 정말로 태아가 어머니 안에 있는 것처럼 영혼과 신성을 지닌 몸과 피로서 네 안에 있다. 보통 너는 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그것이 너에게 가장 좋은 것이라면, 나는 이 큰 위로와 은총도 너에게 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기와 엄마의 결합보다 무한히 더 친밀하게 너와 결합된다.

 

사람은 몸과 영혼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이보다 더 완전한 결합을 생각할 수 있느냐?

그러나 성체성사에서 우리의 결합은 그보다 더 완전하다.

 

비유를 하자면 성체는, 나의 육화로 두 가지 본성이 결합되었듯이, 곧 나의 거룩한 인성이 영원한 아들 됨과 합쳐졌듯이 우리를 결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들에 불이 붙었느냐?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성체가 무엇이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일을 하는지 너에게 보여 주고 싶다.

 

또 다른 비유를 들자면, 다 녹은 초들이 서로 엉기듯이, 하나의 불꽃이 또 다른 불꽃과 섞이듯이, 커피에 크림과 설탕이 흡수되듯이, 바닷물이 민물과 섞이듯이, 성체성사에서 내가 너에게 올 때 우리도 그렇게 하나가 된다. 네 영혼이 그 자체와 가까운 것보다 내가 네 영혼에 더 가까이 있다. 나는 네 안에 있고 너는 내 안에 있다. 세례성사 때 너는 내 신비체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성체성사에서 우리는 하나의 살이 된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같은 몸과 피를 갖는다. 너를 온전히 나에게 내어다오. 그러면 우리는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같은 애정과 같은 열망과 같은 뜻을 같게 될 것이다.

 

 

 

- 나를 닮은 너에게/ 클래런스 J. 엔즐러 지음/ 바오로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