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용서는 말과 마차처럼 병행합니다. 사랑과 기도는 지속적인 것입니다. 하나가 다른 것 속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사랑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 사람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원하는 것이며 기도는 주님께서 그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이는 사랑의 표명입니다.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행동하는 사랑이며 예수님의 제자됨을 명백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학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따를 때 우리가 하는 기도를 통하여 자동적으로 우리 마음을 활짝 열고서 그들을 용서할 수 있으며 –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상상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도 동안, 성령의 감도하에, 상상력을 사용하는 것은 지극히 강력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악을 위해 사용할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그에게 빚진 돈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그를 속일 수 있을까?”하고 우리의 상상력을 사용한다면, 그때 우리는 앉아서 그렇게 할 음모를 꾸밉니다.이는 잘못이며 어둠 속에 우리를 집어넣는 일입니다. 그러나 선을 위해 우리의 상상력을 사용한다면 성령의 빛에 의하여 인도를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선을 위해 상상력을 사용하며 용서하기를 원하는 사람을 그려 보면서 예수님께서 그 사람 뒤에서 계시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주님, 당신이 그를 용서하셨고 또 저를 용서하셨으므로 이 사람을 용서합니다. 당신은 그를 사랑하시고 또 저를 사랑하십니다. 이제 저도 그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싶습니다”하고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상상력을 사용함으로써 그 그림을 사용하여 주님께 직접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림 한 장은 천 마디의 말만큼 가치가 있습니다. 기도 중에 상상으로 그린 그림은 이 천 마디의 말만큼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외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을 때 자주 바리사이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음에 틀림없습니다. 마태오 복음 23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 매우 빈정대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을 개별적인 인간으로 비난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누구도 한 개인으로 비난하신 적이 거의 없으나, 한 집단으로서 그들을 찬성하실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의 사목에 가장 큰 장애물이었기에, 또한 예수님께서는 사랑에 관하여 그토록 자주 말씀을 하신 까닭에, 기도하셨을 때 분명히 바리사이들을 위해 기도하셨음에 틀림이 없다고 저는 느낍니다. 그들이 당신과 당신의 가르침에 닫힌 마음이었지만 당신은 그들에게 마음이 열려져 있어야 함을 의식하셨다고 확신합니다. 바리사이들이 지나치게 폐쇄적이 되지 않도록 그분은 분명히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당신의 마음을 상해 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으니, 주님을 따르는 우리도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용서를 베풀고 싶은 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를 효과적으로 하는 한 가지 방법은 “용서 명단”에 그들의 이름을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아주 간단한 것으로써, 용서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놓은 명단이며 기도 중에 성령께 용서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드러내 보여 주시며 도와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캐더린 마샬은 「기도의 모험」이라는 그녀의 저서에서 이렇게 하라고 사람들을 격려하고 있는데, 저는 이것이 도움이 되고 효과적임을 발견했습니다.
흔히 우리는 어떤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기도를 하였는데도 별 진전이 없음을 발견한다면, 이 사람이 여러분에게 준 상처와 고통을 과거에 경험한 고통과 상처와 연관을 시키고 있으므로 어려울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일은 결혼에서 꽤 자주 일어나는데, 배우자들이 그들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로 말미암아 받은 과거의 상처를 현재 상황에 연관을 시키는 까닭입니다. 사랑과 주의와 애정의 결핍을 배우자에게 투사하는 것이지요. 현재 남편이나 아내가 당면하는 상처가 그들이 과거에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에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하면서 어떤 사람을 용서하는 수준에 이르는 것이 어렵게 여겨질 때는, 지나간 삶 속에서 만난 어떤 사람과 연관시키고 있지나 않은지 살펴보십시오.
결혼에 있어서, 흔히 여자는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 일반적으로 남자들로부터 받은 상처와 고통을 남편에게 투사할 것입니다. 상처와 분노와 거부 들이 묵은 감정들이 모두 솟구쳐서 이러한 감정들을 남편에게 투사하는데 남편은 물론 그녀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합니다. 남편은 그와 비슷하게 과잉지배를 받는다거나 잔소리를 들은 것과 같은, 어머니로부터 경험한 분노와 상처를 자기 아내에게 투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경우, 남편들과 아내들은 맞붙어 싸울 것이며, 실제적으로 한편이나 양편 다 그들의 어머니 혹은 아버지를 대항하여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확실히 상처투성이며 고통스러운 남편과 아내 사이에 상호 작용이 있기는 하지만, 그 고통은 보통 앞서 일어난 일들에까지 소급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적 치유의 역할 – 먼저 일차적인 관계 즉 어머니 아버지의 관계를 치유하는 것입니다. 먼저 이 일차적인 관계를 치유하지 않고서 효과적인 결혼 상담을 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용서해 주고 싶은 사람들을 위하여 먼저 기도하십시오. 단 일차적인 관계의 치유를 먼저 구하십시오. 용서의 명단을 사용해서 용서를 베풀어 주고 싶은 사람들을 모두 창의적인 상상력을 통하여 예수님께로 데려가십시오.
- 용서는 신적 사랑 / 로버트 드그란디스 / 성요셉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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