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네 번째 계명이란 용서하지 않는 것이 미움의 한 형태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까지 강조된 말을 듣는데 익숙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크리스챤들이 “미움”과 같은 강한 말을 듣지 않으려고 물러서는 경향이 있지만,
“미움이란 어떤 의미인가?”하고 자문해 봅시다. 미움이란 한 사람에게 나쁜 일을 원하는 것이며 그 사람에게 타당하게 상처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과 정반대이니, 사랑은 선만을 바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용서하지 않는 상태일 때 그 주위에 영적 사슬이 둘러져 있으며, 용서받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영적 사슬이 감겨져 있습니다. 양편 다 속박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살다 보면 이런 저런 때에 어떤 사람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일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도 상대방도 기분이 나쁩니다. 그리고 양편 다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자신을 정당화할지라도 평화나 평정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긴장과 불안만이 존재합니다. 원망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과 적개심의 벽이 우리 마음을 둘러싸고 있으며, 사랑이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것과 똑같이 어둠과 부정적인 태도와 증오도 마음에서 흘러나오며, 이는 우리가 사랑이 없는 태도로 반응할 때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마음에 가득 찬 것이 입으로 나오는 법이다. 선한 사람은 선한 것을 마음에 쌓아두었다가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사람은 악한 것을 마음에 쌓아 두었다가 악한 것을 내놓는 것이 아니겠느냐?”(마태 12,34-35).
결국 우리가 용서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직면해야 할 때가 옵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면 그 시간이 우리에게 빨리 올 것입니다. 조만간 우리는 누군가에게 용서를 베풀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에게 선을 행하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그들에게 행방을 가져다주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니요”라고 한다면 그들이 자신의 감정 속에서 속을 끓이게 내버려 두는 격이 될 것입니다. 마음이 불편한 것을 느끼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을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이기심이 끼어든 것이지요. 우리 자신의 감정들도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거듭거듭 우리를 부르셔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나쁜 것을 바라지 말고 선과 좋은 일만을 원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창세기 38-47장에서, 형제들에 의해서 노예로 팔려간 요셉의 이야기 안에서 분명히 이 사실을 봅니다. 요셉은 에집트에서 주님께 충실함으로써, 그 나라의 수상의 직위에까지 올랐습니다. 기근이 에집트를 덮쳤을 때 요셉의 형들이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도움을 청하러 그에게 왔을 때, 그 나라의 우두머리 격인 요셉은 다음과 같이 자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내 감정에 나 자신을 맡겨 버릴까?” 혹은 “마침내 내가 원하는 곳으로 그들이 왔구나. 이제 앙갚음을 해야겠다.” 그와는 반대로 요셉은 그들을 포옹하고 사랑하였습니다. 그 다음 형들에게 “내게 더 가까이 오십시오”하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그대로 했을 때, 요셉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나를 에집트로 팔아 넘겼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나를 이곳으로 팔아 넘겼다고 해서 마음 괴로워하실 것도 또 자신들에게 분노하실 것도 없습니다…”(창세 45,4-5). “그리고 나서 요셉은 친동생 베냐민의 목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베냐민도 그의 목에 매달려 울었다. 다시 요셉은 형들과 일일이 입을 맞추어 인사하고는 붙잡고 울었다. 그제야 형들은 그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창세기 45,14-15).
흔히 우리도 요셉과 같은 처지에 놓입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 마음을 깊이, 부당하다고 할 정도로 상해 주고 후에 도움을 찾아 우리에게 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해서 용서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원통함과 적개심을 품는다면 이는 증오의 한 형태입니다. 이것은 어둠입니다. 그 사람에게 용서를 베푼다면 그것이 사랑이요 빛이며 우리는 속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라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계명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묵상해 보면(루가 10,30-37), 강도를 당한 그 피해자가 사마리아인이 데려다 준 여관에서 떠난 후에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그가 나은 후에 폭행을 당하고 강도를 당한 그 길을 따라 걸으면서 그는 자기를 때리고 궁지에 몰아넣은 그 강도들을 용서해 주겠다고 생각했을까요? 그의 곁을 그냥 지나가 버리고 그에게 아무런 관심이나 연민을 보여 주지 않은 레위 사람을 용서하였을까요? 길 저쪽으로 지나가 버린 제관을 용서하였을까요? 루가 복음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묵상하고 우리에게도 같은 상황이 주어졌더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상상해 보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입니다.
기회가 주어질 때 용서하지 않는다면 악의를 지닌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선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용서하지 않을 때, 원통한 생각이나 분개하는 마음을 품고 있을 때, 우리는 악의를 지니고 있는 셈입니다. 악한 지향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정신과 의사는 그의 환자들 중 90%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그를 찾아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강력한 주장입니다.
로마서 8장 1절에서 성 바오로는 우리에게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결코 단죄받는 일이 없습니다”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다른 사람을 단죄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시니 우리도 다른 이들을 단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 용서는 신적 사랑 / 로버트 드그란디스 / 성요셉출판사
'사랑해요주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서는 신적사랑〕감정과 기억의 치유를 구하라 ★ (0) | 2015.02.06 |
---|---|
〔용서는 신적사랑〕용서하겠다는 결정을 내려라 (0) | 2015.02.06 |
〔용서는 신적사랑〕상처를 주는 이들과 용서를 베풀어주고 싶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라 ★ (0) | 2015.02.06 |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해서 설명하시다. (0) | 2015.02.04 |
깊이가 세 단계나 된다 (기도의 3단계) -임마누엘 수녀 (0) | 2015.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