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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사제운동] 3. 영성 / 다.'마리아 운동’ 라. '다락방'모임들 마. 교회에 주시는 도움이다

Skyblue fiat 2025. 5. 12. 12:12

'마리아 사제운동' 개요

 

1991년 2월 2일 주의 봉헌 축일, 밀라노에서 스테파노 곱비 신부.

 제 1부: 3. 영성


다. ‘마리아 운동’

이 운동은 사제가 아닌 모든 수도자와 평신도로 구성된다. 이들은 사제 및 주교와의 평온한 친교 안에서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께 봉헌하는 삶을 살기로 서약하는 이들로서, 어떤 법적 제약도 받지 않으며, 소속된 교회 단체에서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다.

 

이들은 ‘마리아 운동’의 구성원으로서 성모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삶을 살 것을 약속한다. 성모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세례 때의 봉헌(서약)에 충실히 머물고, 기도와 속죄를 통해 부단히 회개하는 노력을 함으로써 친교와 일치의 증인이 되기 위함이다.

 

1) 세례(서약)을 실천하며 산다

이 책 끝에 실려 있는 ‘마리아 운동’ 소속 “수도자와 평신도들의 봉헌기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 봉헌으로 저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를 통해서, 영세 때 발한 모든 서약을 실천하며 살고자 하나이다.”

 

이 말은 분명히, 성모님의 티 없으신 성심에 자신을 봉헌한 신자가 무엇보다도 세례 때 발한 서약을 오늘날 실천하며 사는 데 있어서, 어떻게 성모님의 도우심을 받게 되는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너무나 속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세례 때 발한 서약을 실천하며 살기가 무척 어렵다고 여기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세례는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세례를 통해 은총과 신적 생명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되며, 그분의 형제가 되어 우리 자신의 삶 안에 그분의 삶을 재현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제, 온갖 사회 홍보 매체들을 통해 쉽사리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의 도구로 이용되거나 심지어 조종당하기도 한다. 그 방식이 어찌나 교묘한지, 흔히 자신도 거의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가치와 상반되는 속된 가치들을 받아들여 세상과 공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세례식 때 발한 서약을 일상생활 속에서 배반하며 살고 있는 세례자들이 얼마나 많아졌는지 모른다!

 

성모님께서는 그러므로 당신의 티 없으신 성심께 신자들이 봉헌하는 것을 ‘마리아 운동’의 특별 서약으로 요구하신다. 그러면 그분은 ‘엄마’로서 그들을 부드럽게 이끄시어, 예수님과 교회에 온전히 충실하면서 세례 서약을 삶에 옮기도록 해주신다.

 

2) 친교와 일치의 증인이 된다

신자들의 ‘봉헌기도’에는 이런 구절도 들어 있다.

“저희는 교황과 교계제도 및 사제들과 일치함으로써, 교황의 교도권에 대한 반항으로 교회의 기초 자체를 위협하는 추세에, 과감히 맞서는 방벽이 될 것을 약속하나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운동에 속하는 모든 신자 고유의 특별한 서약이니, 이 서약이 그들로 하여금 교회 안에서 언제나 친교와 평화와 일치를 도모하는 구성원이 되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이 교회 정화의 시기에 교회는 막중한 고통의 때를 치르고 있다. 마리아 사제운동은 무엇보다도 교회의 모든 고통에 온전히 참여하여, 그 수많은 쓰디쓴 잔을 교회와 함께 마시고자 한다.

 

그러니 이것은 비판이나 판단, 하물며 단죄를 통해 활동하라고 부름 받은 운동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이 운동은 오늘날 많은 이들이 따르는 방식, 다시 말하면 우리 ‘어머니’인 거룩한 ‘교회’를 출판물까지 동원하여 노골적으로 혹독하고 악랄하게 비판하는 방식에 대해, 의견을 같이하지 않을 뿐더러 공공연하게 배척하는 것이다.

 

3) 회개 서약을 한다

역시 평신도 '봉헌기도'에 이런 구절도 있다.

“저희는 복음 말씀대로 마음 깊이 회개할 것을 서약하나이다."

 

성모님은 또한 이 운동에 속한 신자들이 기도와 속죄의 길을 통해 날마다 회개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그래서 성모님은 엄마다우신 자상한 주의와 심려를 기울이시어 그들이 죄를 피하고 하느님 은총 안에서 살도록 도와주신다. 고해성사를 자주 받고 뜨거운 사랑으로 '성체'를 영하며, 언제나 '하느님의 법'을 지키라고 호소하시면서, 무엇보다도 순결의 덕행을 닦으며 살겠다는 서약을 하라고 하신다.

 

이는 교회의 교도권이 최근에 다시 확언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특히 청소년과 약혼자들은 순결을, 혼인성사를 받은 부부들은 정결을 지키며 살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순결은 오늘날 절실히 필요한 덕행이다. 도처에 만연한 불경스러운 불순결에 대응하여, 세상을 더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검소한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서 만인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갈수록 더 자극적이고 외설적으로 되어가는 유행을 배척함으로써, 또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비도덕적 출판물과 흥행물의 유포 및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그 거대한 진흙탕의 계속적인 범람을 막음으로써 그렇게 하여야 한다.

순결, 절제, 겸손에 있어서 모든 이의 모범이 되어라. 또한 사람의 신성한 인격을 모독하는 곳은 어디랄 것 없이 피해야 한다. 사제들을 둘러싸고 모인 나의 충실한 군대, 나의 위대한 '백의군(白衣軍)'을 이루어라.”
(1973년 11월 1일)

 

현재, '마리아 운동'에 가입한 전 세계 평신도의 수는 수천만에 이르고 있다.
사제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삼는 이들이 바로 이 평신도들이며, 이들에게서 구체적 도움과 소중한 격려를 얻는 것이다.


라. ‘다락방’ 모임들

마리아 사제운동은 교회 생활이 영위되는 모든 상황, 곧 가입자들이 개인적으로 속해 있는 모든 양상의 교회 생활 속에서 활동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수도원에서부터 본당에 이르기까지, 또 신학 분야에서 사목 분야, 영성 분야에서 선교 사도직 분야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사제가 이 운동의 정신으로 살아가면 갈수록 그만큼 더 열정적으로 헌신하게 되고, 교회의 자발적 주도성을 체현하게 된다. 그러나 이 운동은 교회 생활 내부에서 사제들과 신자들이 종종 모여 함께 기도하고 형제애를 나누는 고유의 활동을 함으로써 성장한다. 이를 일컬어 ‘다락방’ 모임이라고 한다.

 

1) 지역 다락방, 교구 다락방 및 가정 다락방

지역 및 교구 다락방은 언제나 그 곳 주교와의 일치 안에서 성장한다. 주교가 몸소 이 모임에 참여할 수도 있고, 동의와 축복만을 가끔 보낼 수도 있지만, 어느 경우에나 마찬가지이다.

 

이 다락방들은 공동 기도와 형제애의 실천을 체험하게 하는 바람직한 기회를 제공하고, 모든 이에게 의심과 어려움을 극복하여 봉헌의 험난한 길을 과감히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큰 도움을 가져다준다.

 

이 운동에서는 같은 형제들을 모으는 직책을 맡은 사제들 중에서 전국, 지역 및 교구 단위의 ‘책임자’가 선정된다. 각 나라 책임자들이 우리에게 고무적인 보고서를 보내 주는데, 이 보고서를 보면 다락방 모임들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정 다락방’은 오늘날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한 것이니, 가정생활의 붕괴가 심각한 문제가 되어 있는 까닭이다.

이것은 이 운동에 속한 하나 또는 몇몇 가정이 한 집에 모여서 여는 ‘다락방’이다. ‘묵주기도’를 합송으로 바치고, 봉헌 생활에 대해 묵상하고, 문제점과 어려움들을 서로 나누면서 형제애를 체험하고,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께 행한 봉헌을 함께 새로이 하는 모임이다.

 

오늘날의 그리스도 신자 가정들이 가정 다락방을 통해 신앙과 기도와 사랑의 참된 공동체를 이루며 살 수 있는 도움을 얻는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2) 다락방 모임의 구성

‘다락방’의 구성은 매우 단순하다.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모여 있었던 제자들(*사도 1,12-14 참조)을 본받아 함께 모이면, 그것이 곧 ‘다락방’이 되기 때문이다.

 

모이는 목적은 다음과 같다.

 

- 성모님과 함께 바치는 기도

다락방은 무엇보다도 기도의 모임이 되어야 하고, 그것도 성모님과 함께 바치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거룩한 묵주기도’를 합송하는 것이 모든 다락방 모임의 공통된 특색이다. 이는 성모님께서 우리의 기도와 하나가 되시도록 하는 기도이니, 우리는 그분과 함께 기도하게 되고, 그분은 영혼들에게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를 친히 밝혀 주시는 것이다.

 

“너희 ‘천상 엄마’인 나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너희가 다락방에서 바치는 ‘묵주기도’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사랑과 구원의 사슬이 되어, 사람들과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감싸 안을 수 있고, 너희 시대 모든 사건의 전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계속 이 기도를 드리고, 기도의 다락방이 많아지게 해 다오.” (1979년 10월 7일)

 

- 봉헌의 생활화

다락방 모임은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께 드린 봉헌을 생활화하게 하는 상부상조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는 길은 성모님의 방식대로 (사물을) 보고 느끼고 사랑하고 기도하고 활동하는 습관을 붙이는 데 있다. 다락방 모임의 순서 중에 들어 있는 묵상 시간은 이를 위해 활용할 일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른) 여러 가지 쇄신 (사항)에 관한 성찰은 누구에게나 필수적인 것이지만,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간은 일반적으로 이 운동의 책에서 뽑은 내용을 공동 묵상하는 데 쓰인다.

 

따라서 이 시간을 어떤 유식한 강연이라든가 문화적 쇄신에 관한 강좌를 듣는 것으로 보내는 것은 다락방 모임의 정신에 부합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모임을 매우 풍성하게 해 주는 단순하고 가족적인 친교의 분위기에서 동떨어질 위험이 있는 것이다.

 

- 형제애의 실천

끝으로, 모두가 진정한 형제애를 체험하도록 부름 받는 것이 다락방 모임이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다락방에서 우리가 언제나 체험하는 가장 아름다운 점이 아니겠는가?

 

기도를 많이 할수록 성모님의 활동 영역을 그만큼 더 넓혀 드릴 수 있을 뿐더러, 우리를 하나로 결합시키는 사랑 안에서 우리가 그만큼 더 성장하고 있음 역시 아울러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너희가 나와 함께 다락방에 모이기 바라는 까닭이 무엇이겠느냐?... ‘엄마’와 함께 서로 참된 형제애를 나누며 살도록 도와주기 위함이다. 오늘날의 내 사제들은 엄마가 불러서 그 주위에 모인 형제들처럼 참으로 서로 알고,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할 필요가 있다. 내 아들 사제들이 오늘날 너무도 외롭게 버림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홀로 고립되지 말기 바란다. 서로 돕고 사랑하면서 모두가 서로를 형제로 느끼고, 실제로 형제가 되어야 한다.” (1974년 1월 17일)

 

사제들이 무엇보다도 절감하고 있으므로 (그만큼) 그들의 위험(부담)이 되고 있는 고독에 대응해서, 오늘날 성모님이 주시는 약이 바로 다락방 모임이다. 성모님과 함께 다락방에서 형제들처럼 서로 알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마. (이는 성모님께서 오늘날의) 교회에 주시는 도움이다

마리아 사제운동의 기원, 확장 및 영성을 소개하고자 노력한 이 ‘머리말’의 제1부가 끝에 이른 지금, 의당 하나의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즉, 오늘날의 교회에서 이 운동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그러잖아도) 현재 활동 중인 각급 단체들이 수없이 많은데, 그 가운데서 이것이 지니는 교회 생활 내에서의 역할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매우 단순하게 해야 할 것 같다. 마리아 사제운동은 ‘천상 엄마’께서 오늘날의 교회에 주시는 도움이라고 말이다. 그 목적은 교회로 하여금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현존을 깨닫게 하고, 엄청난 고난 속에서도 위로를 받게 하며, 스스로의 허다한 자녀들이 바치는 사랑과 기도에 에워싸여 있음을 항상 느끼게 해 주려는 데 있다.

 

성모님은 마리아 사제운동을 통해, 교회가 현재 겪고 있는 정화의 괴로운 위기를 극복할 강력한 도움을 주시고자 하신다.

 

이 위기로 말미암아 과거에 번창하던 수도회들 — 장엄 서원 수도회건 단순 서원 수도회건 한가지로 — 이 현재 유독 곤경에 처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성모님은 당신 ‘사업’(인 이 운동)으로 당면한 고난기를 모든 자녀들이 어머니와 함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려 원해 오셨고, 그래서 먼저 사제들을, 다음은 수도자와 평신도들을 부르시어 당신의 티 없으신 성심께 봉헌하며 ‘교황과 교회’에 충실하라고 당부하시는 것이다. 이 운동이 교회법적인 어떤 조직체로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그러한 성모님의 도움을 모든 이가 더욱 수월히 받을 수 있게 하려는 데 있다.

 

바로 여기에 이 운동의 취약점이 있다. 법적인 외형이 없으므로 그 성장을 용이하게 하는 공식 인가를 요청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점이 또한 이 운동의 강점이 되기도 한다. 단체적 제약이 전혀 없으므로 사제와 수도자들이 쉽게 가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한 그루의 큰 나무에 비유한다면, 마리아 사제운동은 이미 뻗어 있는 수많은 가지 가운데 돋아난 또 하나의 가지라기보다, 차라리 나무에 내밀한 힘을 불어 넣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에서 솟아나와 교회의 모든 가지로 퍼져 가는 이 힘은 그 각 가지로 하여금 스스로의 역할과 고유한 면모에 따라 성장하면서, 더 큰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모든 가지에 전해 주게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마리아 사제운동의 가장 감동적인 특성은 어디에 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바로 이 운동의 본질적 가난에 있다고 확언해야 할 것 같다.

 

어찌나 가난한지 공식 (면모의 측면으로 보면) 존재조차 없는 것이다. (이렇듯) 존재마저 없는 이상, 어떤 모양으로든지 (제 단체) 명단에 끼일 수 없음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끼리 이런 우스갯소리를 할 때가 더러 있다.
“이미 십만 명이 넘는 사제와 수천만의 신자가 마리아 사제운동에 속해 있지만, 이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는 세상 어디서도 못 찾을 것입니다!”

 

어찌나 가난한지 이 운동은 고유의 (생활) 수단을 소유할 수도 없고, 유산이나 (다른) 무슨 재산을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오로지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보내지는 헌금만으로 살아가면서, 이 책의 출판과 보급에 소요되는 엄청난 경비를 충당해야 한다. 이 점에 있어서도 각 나라 본부는 자치적으로 이 운동의 생활을 꾸려나간다. 역시 ‘섭리’의 안배에 따라서이다.

 

이 운동은 (또한) 인간적 지원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가난하다. 마주치는 불가피한 어려움 속에서 기쁨과 위로가 될 수 있는 것마저 없으니 말이다. (이를테면,) 웃어른들의 특별 추천이라든가 교회 당국의 찬사와 격려, 혹은 다른 여러 방식으로 공로를 인정받는 것 같은 지원이다.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안전한 지주는 오직 당신의 티 없으신 성심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닌 유일한 추천서는 성모님께 봉헌함으로써 성덕에 이르는 도움을 받는 사제들 각자의 삶 안에 기록되는 추천서뿐이다.

 

마리아 사제운동의 이 철저한 가난을 우리 모두 사랑하고 감사히 여기며 실천해야 한다. 바로 마리아의 가난이 당신의 이 ‘사업’ 속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평범한 가정주부의 옷 아래 숨어 있는 천상 ‘모후’의 가난이다. 우리의 ‘원죄 없으신 엄마’, 온통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님께서 바로 이 가난(의 정신)에 따라, 당신 배필 요셉과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당신 아들이신 예수님을 여느 주부처럼 소박한 생활로 온전히 섬기며 사신 것이다.

 

그러한 마리아의 가난이 그분의 이 사업에도 언제나 반영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하면,) 마리아 사제운동 역시 오로지 교회를 섬기되, 사랑의 온전한 섬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만 존속하고 활동하고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운동은 (독자적) 존재(로서의 외형을) 지니지 않아야 하고, 다만 교회 생활 안에서 교회를 섬기는 것만으로 살 수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교회는 정녕 이 피비린내 나는 교회 정화기의 막중한 ‘십자가’를 지는 데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아울러 (성모님의) 티 없으신 성심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수많은 아들들을 통해 주시는 빛으로 지탱되어, 더없이 찬란한 교회 (본래의) 광채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내게 응답한 너희를 통해 나의 '빛'이 더욱더 교회 안에 퍼져 나가고 있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 만민의 복음화와 구원을 위한 활기와 신뢰, 힘과 새로운 열정을 되찾고 있다.” (1980년 11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