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가톨릭 십계명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십계명 [그리스도의 시]

Skyblue fiat 2024. 1. 6. 01:24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131. ‘맑은 내’에서의 예수.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1945. 3. 15.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합니까? 호사입니까? 수많은 하인들입니까? 무수한 땅들입니까? 황혼부터 새벽까지 계속되는 연회입니까? 아닙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집과 빵과 옷이 전부입니다. 생활에 불가결한 것들입니다.

여러분의 주위를 둘러보시오. 누가 가장 행복하고 가장 건강합니까? 노년의 건강한 평온을 즐기는 사람입니까? 향락자들입니까? 아닙니다. 정직하게 살고, 정직하게 일하고, 정직한 것을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음란에 중독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건강하고, 주지육림에 중독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민첩하며, 시기심에 중독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명랑합니다. 반면 점점 더 많이 소유하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평화를 죽이고, 기쁨이 없으며, 시샘과 남용으로 소진되어 일찍 늙어갑니다.

 

나는 ‘너희는 도둑질하지 마라’는 계명을 ‘너희는 너희 이웃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는 계명과 연결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과도한 욕심은 그를 도둑질하도록 충동합니다. 그 두 개의 거리는 매우 짧습니다.

 

모든 욕구가 죄 되는 것입니까?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밭이나 공장에서 일하며 자기의 가족을 위한 음식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것을 얻기를 원하는 가장은 확실히 죄짓는 것이 아니라 가장으로서의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더 즐기기만을 원하고, 향락을 더 누리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재물을 취하는 사람은 죄짓습니다.

 

시샘! 남의 재물을 탐내는 것은 탐욕과 시샘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나의 소중한 자녀들이여, 시샘은 하느님으로부터 사람을 갈라놓고, 그를 사탄과 결합시킵니다.

여러분은 루치페르가 자기의 것이 아닌 것을 탐낸 최초의 존재였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그는 대천사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천사였고, 하느님을 뵙는 지복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으로 만족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느님을 부러워하여 하느님이 되기를 원했고, 그래서 마귀(demon)가 되었습니다. 최초의 마귀 말입니다.

 

두 번째 예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모든 것을 부여받아 지상낙원과 하느님의 우정을 누리며,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은사들로 축복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과 악에 대한 하느님의 지식을 시샘했고, 그래서 에덴에서 추방되었고, 하느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죄인들이 된 것입니다.

 

셋째 예입니다. 카인은 아벨의 주님과의 우정을 시샘하여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아론과 모세의 누이인 마리아128)미리암)는 자기의 오라비를 시샘하여 이스라엘 역사에서 첫 번째 나병환자가 되었습니다.나는 하느님의 백성의 전체역사를 통하여 한걸음씩 여러분을 인도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과도한 욕심은 사람들을 죄인들로 만들고, 나라에 재앙을 불러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 세기를 두고 쌓이고 쌓인 모래알들이 산사태들을 일으켜 마을들과 그 주민들을 뒤덮어버리는 것처럼 개인들의 죄들이 쌓이면 나라에 재앙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나는 자주 어린이들을 예로 들었는데, 그들은 순진하고 잘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에게 욕심이 없는 새들을 본받으라고 말하겠습니다.

보시오. 지금은 겨울이어서 과수원들에 먹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그놈들이 여름에 먹이를 쌓아두려고 애씁니까? 아닙니다. 그놈들은 주님을 믿습니다. 그놈들은 작은 벌레 한 마리, 낟알 하나, 빵 부스러기 하나, 먹다 남은 것 하나, 물에 떠 있는 각다귀 한 마리쯤은 언제나 잡을 수 있다는 것, 겨울에 둥지를 틀 수 있는 따뜻한 굴뚝이나 양털뭉치 하나쯤은 항상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놈들은 둥지를 만드는 데 쓸 건초가 필요하고 새끼들에게 줄 더 많은 양식이 필요할 때가 되면, 목장에는 향기로운 풀이 있고 과수원과 밭고랑에는 맛있는 먹이가 있고 공중과 땅에는 곤충이 가득할 거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놈들은 천천히 노래합니다. ‘조물주시여, 당신께서 저희에게 주시는 것과 주실 것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놈들은 사랑의 계절이 되어 짝짓기를 즐기고, 자기들의 새끼들이 많이 불어나는 것을 보게 되면, 재빨리 목청껏 찬미가를 부릅니다.

새보다 더 명랑한 피조물이 있습니까? 그런데 사람의 지능에 비하여 그놈의 지능은 무엇입니까? 산 앞의 차돌 한 개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놈은 여러분에게 교훈을 줍니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아무런 불순한 욕구들이 없이 사는 사람은 새의 기쁨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께서 자기의 아버지라고 느낍니다. 그는 떠오르는 해를 보고 미소 짓고, 내리덮이는 밤을 보고 미소 짓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태양은 자기의 벗이고, 밤은 자기의 자양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악의 없이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복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어느 모로도 그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정직한 생활은 질병들을 막아주고, 평화로운 휴식을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의 건강과 잠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습니다.

끝으로 그는 항상 올바르게 살아와서 하느님께서는 자기에게 미소만을 지으시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왕도 죽고, 부자도 죽습니다. 왕권도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돈도 영생불멸을 사지 못합니다. 왕들의 왕, 주들의 주 앞에서는 왕관과 금전은 가소로운 것일 뿐이고, 율법에 따라 산 생활만이 가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방의 끝에 있는 저분들은 지금 무엇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말하시오.”

“저희는 안티파스의 죄는 무슨 죄인가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습니다. 도둑질입니까, 아니면 간통입니까?”

나는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이 아닌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나는 그는 하느님보다 육체를 숭배하기 때문에 우상숭배의 죄가 있고, 간통, 도둑질, 불법적인 욕망들을 품은 죄가 있고, 곧 살인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여러분에게 대답하겠습니다.”

“그는 구세주이신 당신에 의하여 구원받겠습니까?”

“나는 뉘우치고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을 구원할 것입니다. 뉘우치지 않는 사람들은 구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그가 도둑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는 무엇을 훔쳤습니까?”

“자기 동생의 아내를 훔쳤습니다. 돈을 훔치는 것만이 도둑질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평판을 짓밟는 것, 처녀를 유혹하는 것, 남편에게서 아내를 빼앗는 것도 남의 소나 나무를 훔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둑질입니다. 도둑질은 간통, 간음 또는 거짓증언에 의하여 가중됩니다.”

 

“그러면 매음하는 여자는 무슨 죄를 짓습니까?”

“만일 그녀가 유부녀라면, 간통과 자기의 남편에 대한 도둑질의 죄를 짓습니다. 만일 그녀가 미혼이라면, 간음과 자기 자신에 대한 도둑질의 죄를 짓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요? 그 여자는 자기의 것을 주는데요!”

“아닙니다. 우리의 육체는 하느님의 성전인 영혼의 성전이 되도록 하느님에 의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온전하게 보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에게서 하느님과 우정과 영원한 생명을 훔치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창녀는 사탄에게만 속해 있겠군요.”

 

“모든 죄는 사탄과의 매음(prostitution)입니다. 죄인은 몸을 파는 여자처럼 부정한 이익을 얻기를 바라며 부정한 사랑으로 사탄에게 자기를 내어줍니다. 사람을 더러운 짐승처럼 만드는 매음죄는 중한 죄, 매우 중한 죄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다른 모든 대죄(capital sin)가 매음죄보다 덜 중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우상숭배에 대하여 뭐라고 말할까요? 살인죄는?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금송아지 사건 후에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분은 다윗의 두 가지 범죄 후에 그를 용서해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해주십니다.

 

회개는 죄들의 수와 중대성에 비례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더 많이 뉘우치는 사람은 더 많이 용서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뉘우침도 일종의 사랑, 적극적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자기의 회개로 하느님께 말씀드립니다. ‘저는 당신의 진노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말합니다. 더 사랑하면 더 사랑받습니다. 완전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완전히 용서받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가시오. 그러나 그 전에 나는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마을 입구에 많은 자녀를 거느린 한 과부가 굶어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빚 때문에 세 들어 살던 집에서 쫓겨났는데도, 그 여자는 그래도 집주인이 자기를 내쫓기만 했다며 그에게 ‘고맙다’고 말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준 기부금으로 그들에게 식량을 사주었습니다만, 그들에게는 안식처가 필요합니다. 자비는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희생입니다. 자비를 베푸시오. 그러면 나는 여러분에게 그분의 이름으로 상급을 약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