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제 자신의 빛이 아닌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것”

Skyblue fiat 2023. 1. 9. 08:35

“제 자신의 빛이 아닌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것”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교도권의 중심에는 권력, 성공, 통계나 숫자를 추구하지 않는 교회의 얼굴이 있다. 그것이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비결이다.

ANDREA TORNIELLI / 번역 김호열 신부

 

생전에 교황직을 사임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전임교황으로 선종했으며, 교황의 예우에 따라 묻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례로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장례미사가 거행된 성 베드로 광장은 기도의 물결로 가득했다. 전임교황이 일평생 사랑하고 따랐던 바로 그 주님의 얼굴을 마침내 마주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전 세계에서 감사의 기도가 바쳐졌다. 선종 직전 전임교황의 마지막 말은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였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그의 후임자 프란치스코 교황을 하나로 묶는 독특한 특징은 전임교황이 교황으로 선출된 다음 날 오전 첫 미사 후 연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 직무는 그리스도의 빛을 오늘날 사람들에게 비추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제 자신의 빛이 아닌, 그리스도의 빛을 말입니다.” 자신의 빛, 주인공 역할, 자신의 생각,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빛을 비춘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말했듯이 “교회는 우리의 교회가 아니라 그분의 교회, 하느님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종은 자신에게 맡겨진 좋은 것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셈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옭아매지 않습니다. 우리는 권력이나 위신, 존경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임교황이 추기경 시절 이미 교회를 괴롭혔고 여전히 괴롭히고 있는 병폐에 대해 수년 동안 경고해 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 병폐란 바로 제도와 조직에 의존하는 것, 다시 말해 스스로 “주목받기 위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중요한” 존재가 되길 원하는 것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10년 5월 파티마 방문에서 포르투갈 주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가톨릭 신앙은 더 이상 사회의 공동 유산이 아니고 종종 이 세상의 ‘신들’과 권력자들에 의해 위험에 빠지거나 훼손된 씨앗으로 보일 때, 단순한 연설이나 도덕적 호소, 심지어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일반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메시지를 발화하는 것만으로는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닿지 못하고, 그의 자유에 닿지 않으며, 그의 삶을 변화시키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면서 자신들의 신앙을 통해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이끄는 신앙인들과의 만남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연설이나 거창한 추론, 윤리적 가치를 생생하게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다. 선교사명을 위해 종교적이고 개종강요적인 마케팅 전략은 필요하지 않다. 또한 오늘날 교회는 과거처럼 주목받고 과거의 권력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그 반대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그의 후임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둘 다 본질로 돌아가는 것의 중요성, 오직 주님으로부터 조건 없이 받은 빛으로 풍요로워진 교회로 돌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설교하고 또 증거했다. 

 

이처럼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선교사명의 핵심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지난 2000년 신앙교리성(현 신앙교리부) 장관으로 재임할 당시 교리 교사를 위한 희년 참가자들에게 연설하며 이 같이 말했다. 최근 교황청 전교기구 기관지 「피데스」(Agenzia Fides) 지안니 발렌테 편집장이 인용하기도 한 내용이다. 당시 추기경이었던 그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신 복음 내용으로 교리 교육을 시작했다. “겨자씨는 모든 씨앗보다 가장 작지만, 일단 자라면 정원에 있는 다른 풀보다 더 커서 나무가 됩니다.” 그는 세속화된 사회에서 “새로운 복음화”에 대해 말할 때 “조바심의 유혹, 즉각 큰 성과를 내려고 양적성장을 추구하려는 유혹”을 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이는 “하느님의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운 복음화가 “교회에서 멀어진 많은 이들을 새롭고 더 세련된 방법으로 즉시 끌어들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교회 역사 자체가 “큰 일은 항상 작은 씨앗에서 시작하고 대규모 움직임은 언제나 한시적”이라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숫자만 가지고 셈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외적인 권력은 하느님 현존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대부분 이 같은 구조를 하느님의 개입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따라서 완전히 다른 성공과 메시아의 표징, 이를테면 사탄이 주님께 제안한 것처럼 일련의 성공을 기대했던 제자들의 관심에 응답합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그리스도인들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작은 공동체였고, 세상의 기준에 따르면 보잘것없었다”며 “실제로는 밀가루 반죽에 들어가는 누룩처럼 그들 안에 세상의 미래를 실어 나르는 씨앗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새로운 복음화는 세상에서 교회의 “공간을 넓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듣는 회중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조직을 확장하고 힘을 키우려 하지 않고 생명이신 그분께 자리를 내어 줌으로써 사람들과 인류의 선익에 봉사하길 원합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침으로써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이 복음에 대한 참된 헌신의 기본 조건입니다.”

 

그리스도인, 신학자, 주교 그리고 교황으로서 베네딕토 16세의 오랜 생애 동안 함께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인식, 이 같은 자각이다. 그것은 그의 장례미사 강론에서 다시금 메아리쳤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에게 항상 “존경과 순명”을 보여준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장례미사를 거행하며 다시금 그러한 자각을 언급했다. 바로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사목규칙』을 인용한 것이다. “그대에게 간청하니, 현세의 삶에서 폭풍우가 닥쳐올 때 그대의 기도로 나를 지탱해 주십시오. 내 잘못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고 굴욕을 주더라도 그대의 공덕이 나를 일으켜 세워줄 것입니다.” 이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정녕 혼자서 결코 감당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해도 혼자 감당할 수 없으며, 따라서 자신에게 맡겨진 하느님 백성의 기도와 돌봄에 자신을 내어 맡길 줄 아는 목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 장례미사

 

“제 자신의 빛이 아닌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것” - 바티칸 뉴스 (vaticannews.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