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9월 23일 금요일
[백]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비오 신부는 주님의 다섯 상처와 똑같은 오상을 받았다. 그러므로 비오 신부는 현대의 성인 중에서도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가 1226년 이탈리아 아시시의 라베르나 산에서 오상을 받은 첫 수도자라면, 비오 신부는 1918년 이탈리아 남부 산 조반니로톤도 수도원에서 오상을 받은 첫 사제다. 성 프란치스코가 제 2의 그리스도라 불렸듯이 비오 신부 또한 이 시대의 제 2의 그리스도라 불릴 만하다. 비오 신부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따라 프란치스칸 영성을 사는 카푸친회 수도자로 살다 1968년 죽을 때까지 50년 동안 눈에 보이는 오상을 몸에 지니고 살았다. 1910년에 받은 보이지 않는 오상의 기간 8년까지 합하면 오상을 지니고 산 기간이 58년이나 된다. 성 프란치스코가 오상을 지니고 살았던 2년에 비하면 비오 신부는 훨씬 긴 기간 동안 오상을 지니고 산 것이다. 사람들은 오상에 대해 궁금해 했다. 오상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오상에 대해 비오 신부에게 물었다. "신부님, 오상도 아픕니까?" 비오 신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주님께서 이것을 나에게 장식품으로 주신 줄 아시오? 당신 손에 못을 박고 180도로 뺑 돌려보시오. 그러면 내가 느끼는 고통을 조금 느낄 수 있을 것이오." 어떤 사람들은 오상의 깊은 상처, 그 구멍이 은총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상의 고통은 매우 실질적이고 상상을 뛰어넘는 격렬한 것이었다. 오상의 상처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나왔는데 그 양이 하루에 찻잔으로 한 잔 정도였다고 한다.
- 오상의 비오신부 이야기. 이상각지음. 바오로 딸.
‘오상(五傷)의 비오 신부’로 널리 알려진 비오 성인은 1887년 이탈리아의 피에트렐치나에서 태어났다.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1910년 사제가 된 그는 끊임없는 기도와 겸손한 자세로 하느님을 섬기며 살았다. 비오 신부는 1918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1968년까지 50년 동안 예수님의 오상을 몸에 지닌 채 고통받았다. 곧, 그의 양손과 양발, 옆구리에 상흔이 생기고 피가 흘렀던 것이다. 이러한 비오 신부를 2002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입당송 시편 132(131),9 참조
주님, 당신의 사제들이 의로움의 옷을 입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환호하게 하소서.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특별한 은총으로
거룩한 비오 사제를 성자의 십자가에 참여하게 하시고
그의 사제 직무를 통하여 하느님의 놀라우신 자비를 새롭게 베푸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를 그리스도의 수난에 결합시키시어
빛나는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코헬렛은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데,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고 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한다(복음).
제1독서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 코헬렛의 말씀입니다.3,1-11
1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2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3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을 때가 있다.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5 돌을 던질 때가 있고 돌을 모을 때가 있으며
껴안을 때가 있고 떨어질 때가 있다.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간직할 때가 있고 던져 버릴 때가 있다.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9 그러니 일하는 사람에게 그 애쓴 보람이 무엇이겠는가?
10 나는 인간의 아들들이 고생하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일을 보았다.
11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
또한 그들 마음속에 시간 의식도 심어 주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44(143),1ㄱ과 2ㄱㄴㄷ.3-4(◎ 1ㄱ)
◎ 나의 반석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 나의 반석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그분은 나의 힘, 나의 산성, 나의 성채, 나의 구원자, 나의 방패, 나의 피난처이시네. ◎
○ 주님,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피시나이까?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헤아리시나이까? 사람이란 한낱 숨결 같은 것, 그 세월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사옵니다. ◎
복음 환호송 마르 10,45 참조
◎ 알렐루야.
○ 사람의 아들은 섬기러 왔고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18-22
18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9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22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갈라 2,19-20)와 복음(마태 16,24-27)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 기도
주님,
거룩한 신비로 복된 비오를 영광스럽게 하셨으니
그를 기억하여 주님의 제대에 바치는 이 예물을 굽어보시고
저희에게 용서와 평화를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마태 24,46-47 참조
행복하여라, 주님이 돌아와 보실 때에 깨어 있는 종! 주님은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기시리라.
<또는>
루카 12,42 참조
주님은 당신 가족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세우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복된 비오를 기리며 받아 모신 천상 음식으로 저희가 힘을 얻어
믿음을 온전히 간직하며 구원의 길을 충실히 걷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어제 복음에서 헤로데의 의문으로 제기된 예수님의 신원 문제는 오늘 복음으로 이어집니다.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신 예수님께 제자들이 드린 답변은, 안타깝게도 헤로데가 전해 들은 소문(루카 9,7-9 참조)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군중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아니라,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선구자’(세례자 요한, 엘리야) 또는 ‘되살아난 옛 예언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 임금으로 삼으려고나 하였을 뿐(요한 6,15 참조), ‘수난을 겪는 메시아’ 곧 백성에게 배척을 받고 돌아가심으로써 그들 모두를 구원하실 구세주를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백성의 이러한 몰이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시는 그 순간까지도 계속되겠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 모두를 살리는 그 길을 방해 없이 끝까지 가시고자 베드로에게 함구령을 내리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코헬렛의 저자는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라고 고백합니다. 마치 오늘 복음의 군중처럼 가끔은 우리도 하느님의 계획을 헤아리지 못하고, 당장의 변화만 바라다 지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도 군중의 몰이해와 외면을 이겨 내는 세월 끝에 성부께서 계획하신 구원을 이루셨고, 성 비오 사제도 오십년이 넘게 오상(五傷)의 고통을 참아 내며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온 힘을 쏟았다면, 우리라고 어찌 그 인내와 기다림의 시간을 건너뛸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모든 일에서 우리를 위한 최선의 때와 방식을 마련해 두셨음을 확신하며 언제나 희망 안에서 이 구원의 길을 힘차게 걸어갑시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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